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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배우)

이진수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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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이정길
김혜자
(1989년)
이진수
김창숙
(1990년)
주현
고두심
(1991년)

}}} ||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이진수
李辰洙 | Lee Jin-su
파일:이진수 배우.jpg
출생 1938년 1월 25일
경기도 경성부 관철동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A]
사망 1998년 9월 21일 (향년 60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묘소 경기도 용인시 용인공원묘지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전의 이씨[A]
배우자 김민자[3]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휘문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 / 중퇴)
한국신학대학교 (학사)
데뷔 1956년 연극 〈시라노 드 베르주락〉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배우 겸 연출가, 소설가, 외화 번역가.

2. 생애

1938년 경기도 경성부(현재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초동교회 조향록 목사의 주선으로 한국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국립극단 제1기 배우로, 1955년 고등학생 시절 참가한 전국 고교 연극경연대회에서 연출가 임영웅의 연출 데뷔작인 〈사육신〉에 출연해[4]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이후 1962년 연극 배우로 첫 데뷔하였다. 이후 연출, 외화, 외국 연극 번역가로도 활약하면서 약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하였다. 또한 한국연극협회 연기분과위원장, 한국배우협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한국 연극계의 발전에 공헌했다.
파일:attachment/ljspjh.jpg
<colbgcolor=#878787> 이진수가 연기한 박정희 前 대통령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1987년 KBS 드라마 〈욕망의 문〉으로 처음 텔레비전 배우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지도가 상승한다. 왜냐하면 맡은 역할이 박정희를 모티브로 한 대통령이었는데 실제 인물과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 이후 KBS 〈훠어이 훠어이〉, MBC 〈제2공화국〉, 〈제3공화국[5]과 《전쟁과 사랑》에서도 박정희 역을 맡아 이창환 이전의 박정희 전문배우로 널리 알려진다.

1988년 영화 〈나신들〉의 단역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글솜씨도 있었는지 소설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를 발간하고, 희곡 작품집 《현대 영미 희곡집》을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기독교방송에서 〈이진수의 세상만사〉라는 아침 시사프로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1998년 9월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던 도중 21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60세. 영결식은 동년 9월 23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야외무대에서 범 연극인장으로 치러졌다.#

3. 여담

파일:1687253637321.jpg}}} ||
<colbgcolor=#878787> 〈제2공화국〉에 출연한 이진수와 이창환


[A] 출처: 이영욱, 1990, 〈[반갑습니다]-연극배우 이진수〉, 《바둑생활》 1990년 12월호, 3쪽.[A] [3] 최불암의 아내 배우 김민자와는 동명이인이다.[4] 이 때 같이 작업한 사람이 배우 박근형, 성우 안종국 등이다.[5] 다른 공화국 시리즈와는 다르게 박정희의 탄생부터 다룬다. 이진수는 해방 이후 만 29세의 모습부터 연기하는데 그래서 박상희 역을 맡은 김상중과 같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 어색함이 느껴진다.(...)[6] 이창환은 이진수 이후 박정희 전문배우로 활동했으며, 첫 박정희 연기가 〈제3공화국〉에서 이진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것이었다.[7] 이 드라마에서 주로 다루는 시기는 1960년대 초중반으로, 그 당시 박정희는 40대 중후반이었다. 그런데 이진수는 방영 당시 무려 55세였다. 이진수는 28세(만 나이 기준, 극에서는 연 나이인 29세로 표기하였다.)의 박정희부터 연기했는데, 이때문에 '청년이 너무 늙어 어색하다.'(...)라는 비판을 받았다.#[8] 무슨 실수냐면, 이순신 장군이 죽고나면 병사들이 북을 치며 무대가 돌아가면서 막을 내리기로 했는데 기계소리만 들릴 뿐 무대 회전이 안 되었다. 쓰러진 연기를 한 이순신 장군 역의 배우 장민호가 그걸 모르고 기계 소리가 멈추자 극이 끝난 줄 알고 일어났던 것.[9] 성우 차명화도 과거에 "〈만선〉을 라디오 연극으로 녹음할 때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동료 남자성우가 "돛 달아라!"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혼자 무게를 잡고 다른 대사를 쳐 빈축(?)을 샀다. 슬쩍 장난이 생겨 골탕을 먹이기 위해 출연한 다른 성우들과 짜고 이 부분에서 침묵을 하기로 하고 극을 진행했는데, 해당 장면이 연출되자 아무 것도 모르고 그 남자성우는 점잖은 목소리로 혼자 만선이로구나 읇었고 당연히 좌중은 폭소. 이 동료성우가 바로 홍시호였다고 한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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