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노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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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 한국 장르문학에서 웹소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때 잠깐 라이트 노벨이 판타지 소설 등 기존 장르 문학을 대신할 것처럼 떠올랐었지만 라이트 노벨도 결국 양판소나 다름없는 문제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1]라이트 노벨이 선정성과 자극성에 몰두하는것은 슈에이샤의 소년 점프 중심의 메이저 만화들과 잡지들과 경쟁하기 위한 가도카와를 위시한 출판사들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2] 소년 점프나 다른 만화들도 막나가는 설정이나 전개나 잔혹성 그리고 캐릭터들의 신체 노출이 여타 매체의 작품들과 비교했을때 강렬하나 라이트 노벨에서 이 정도의 수위로는 경쟁이 안되니 만화에서 표현하는것보다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와 장면들 위주의 선을 넘은 라이트 노벨 작품들을 내게되고 이에 맞춰서 경쟁을 하느라 너도나도 자극적이고 막나가는 라이트 노벨들을 냄으로써 라이트 노벨판의 수준이 떨어질때로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런 작품을 써내는 작가부터가 문제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출판사는 그런 작품들의 출판을 거부하고 퇴짜를 놓을 수 있다. 그러나 돈을 우선시한 판단하에 형편없는 작품들의 출판을 용인하고 시장에 파는것이 지금 라이트 노벨 출판사들의 공통적인 문제인것이다.
2. 평론
라이트 노벨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에는 라이트 노벨이 주목받으며 평론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먼저 오쓰카 에이지는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서 만화 & 아니메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였다. 그는 캐릭터 소설(라이트 노벨)은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만화나 애니메이션 속의 세계라는 허구를 묘사한다고 분석한다. 일반적인 문학에서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나'를 묘사하지만 라이트 노벨에서는 현실이 아닌 허구의 '나=캐릭터'를 그린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아즈마 히로키는 오쓰카의 분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에서 게임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였다. 그는 「세이브→선택→분기→엔딩→로드→다른 선택→분기→다른 엔딩」이라는 게임의 구조에서 착안해 그걸 바탕으로 하는 메타적인 주제의식을 게임적 리얼리즘이라 명명하고 라이트 노벨(과 미소녀 게임)에 그것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라이트 노벨은 콘텐츠지향미디어임에도 불구하고 메타적인 상상력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지향미디어의 구조를 도입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매체라는 설.
한편 신조 가즈마는 《라이트 노벨 「超」입문》에서 '제로 장르'라는 개념을 제창하였다. 그는 본래 라이트 노벨은 SF, 판타지, 호러 등 각종 장르에서 매력적인 요소, 아이템, 설정을 흡수해서 재밌는 소설을 만드는 형식이었으나 기존의 장르의 영향에서 벗어나 無장르의 장르로서 발달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그 결과 라이트 노벨은 점점 장르성에서 일탈해 평범한 청춘소설이나 사소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라이트 노벨에 관한 평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최지인이 작가로 데뷔하기 이전에 평론가로서 활동하며 블로그와 잡지 등에서 평론을 발표한 정도가 고작이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라이트 노벨 평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시드노벨 홈페이지 등에서 작가 지망생들이 제각각 소모적인 토론을 하고 있는 정도이다.
일부 견해 중에는 상업성, 대중성이 좀 더 짙을 뿐 문학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3] 귀여니의 작품에 대한 아마추어리즘 평론도 일단은 존재한다. '대중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인 것이다.'라는 말에 따르면 무시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이며, 게임 판타지 장르와 같이 그 동안의 문학보다 더욱 빠르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한다. 오히려 예술성을 강조하는 문학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셈.
반면 고전적인 견해를 따르는 평론가들의 경우, 작품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각 작품별 특징을 찾기 어려운 점을 지적하고, 상업적인 목적이 짙은 포르노에 불과하다는 평까지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상단에는 마치 라이트노벨이 일본 한정으로 진지한 비평 대상이 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해 놓았는데, 실제로는 예시된 평론가 전원이 주류문학계에서 백안시되고 있는 서브컬처 평론가들일 뿐이다. 정통 아카데미 크리틱치고 라이트노벨을 진지하게 다룬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4]
3. 목록
3.1. 과도한 선정성과 비윤리성
그러나 예술도 고상하여야 예술이 될지어늘, 귀족 자제의 육체의 노예가 되려는 자살 귀신 강명화[5]도 열녀로 되는 문예가 무슨 예술이냐? (중략) 민중생활과 접촉이 없는 상류사회 부유하고 귀한 집안의 남녀 연애사정을 그림을 위주로 하는 음란을 장려하는 문자는 더욱 문단의 수치이다.
- 신채호, 《낭객의 신년 만필》에서 당시의 '신소설'을 비판하며.
- 신채호, 《낭객의 신년 만필》에서 당시의 '신소설'을 비판하며.
소위 라이트 노벨의 선정성은 상당한 수준인데, 대표적으로 여자 캐릭터의 섹스 어필이 지나치다는 문제점이 있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라이트 노벨이 노출로 대표되는 서비스신을 남발하고 있다. "일단 벗기고 보자."는 식이다. 표지에다가 대놓고 어필한다. 물론 아닌 작품도 있긴 하지만 이것말고는 여성향 라이트 노벨이 아닌 이상에야 하나도 없어서[6] 대부분은 '라이트 노벨=선정적'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다.
- 가슴 크기 등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것.
- 등장인물이 성희롱 발언을 농담이랍시고 대놓고 여성 캐릭터에게 내뱉는 것.
- 빈유 캐릭터가 '빈유는 희소가치다!'라고 말하는 것.
- 빈유 캐릭터가 거유 캐릭터와 자신의 가슴을 비교하며 걱정하는 것.
- 유사 성행위
- 적나라한 묘사로 성적인 망상을 하는 것.
- 주인공이 문을 열었는데 히로인이 옷을 벗고 있는 것.
- 주인공이 눈을 떴는데 히로인이 알몸으로 옆에 누워있는 것.
등 매우 자주 있다.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면 독자들이 하나의 자극적인 요소로 즐기고 그냥 넘어가겠지만, 이런 식으로 섹스 어필이 지나친 작품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예 처음부터 외설적인 드립이나 요소가 난무하는 작품을 만들 생각으로 지은 글이라도 상당히 회의적인데 내용은 거창한 것처럼 해놓고 이런 묘사만 쓸데없이, 불필요하게 많이 하니까 내용의 개연성이 더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또한 섹스어필 서술과 동반되어 노출도가 심한 일러스트를 삽입하거나, 개인에 따라 성적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는 일러스트를 표지에 내세우는 사례도 종종 일어난다. 이게 지나칠 경우 주소비층인 오타쿠들이야 그렇다 쳐도 사람들에게 좋은 시선과 평가를 받긴 힘들며, 한국에서나 일본 현지에서나 막 나가는 뽕빨물로 여겨지거나, 심하면 불쏘시개, 맥심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물론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나 금병매와 같이 성애 묘사와 문학성을 동시에 잡은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들은 정황이나 대단히 정교한 심리묘사 등 나름대로의 문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전이 된 것이지 성애묘사 하나만으로 고전이 된 것이 아니다.
또한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작가의 윤리의식을 의심케 하는 작품마저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러한 작품들이 "부도덕한 성관계(윤간, 강간 등)는 나쁘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면 그나마 다행이나 대부분의 이러한 작품들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화되는 내용, 혹은 가해자의 행위를 순애로 미화하는 내용이 대다수이며, 위와 같은 범죄를 옹호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3.2. 무분별한 만화 문법의 수용
가장 큰 문제점으로 기본적인 소설의 작법 형태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일종의 전위적인 글쓰기라 볼 수도 있지만, 작법을 따르는 것은 단지 그 시대 문학 작문의 틀을 따르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가 읽기 쉽도록 배려하는데 의미가 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한 예로 지나친 의성어나 의태어, 만화속에서 말풍선안에 혹은 캐릭터의 머리 위에 ! 또는 ?가 뜨는 느낌을 살리기 위한 !과 ?의 마구잡이 사용, 나무위키처럼 "(…)"의 사용을 남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직접 눈으로 보자.[7] 또한 만화처럼 시각적인 강렬한 임팩트와 역동성을 주고자 한 면을 글자로 뒤덮기도 한다라이트 노벨 연출의 예.
또한 서술하는 시점에 일관성이 없는 사례도 때때로 있고[8], 따옴표로만 이루어진 대화가 수 페이지에 걸쳐서 도배되기도 한다. 만화에서 그림을 없애고 말풍선을 따옴표로 묶어서 만화의 귀찮은 점들을 없애버린 형태로 작가의 머릿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그냥 써 놓은 결과로, 대화자가 두 명이면 독자는 그럭저럭 따라잡을 수 있지만 셋만 되어도 독자의 피로도가 엄청나기 때문에 좋은 서술 방식은 아니다.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면서 라이트 노벨의 취지인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목적이 가볍게(=대충) 쓴다로 변질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볍게 읽는 글이라고 해서 가볍게 쓰는 것은 아니다.[9] 가볍게 생각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독자가 뇌를 멈춘 상태로 봐야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독자의 생각을 대신 해줄때 비로소 진정한 가벼운 소설이 탄생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되는가하면 소설에는 소설만의 표현 기법이, 만화에는 만화만의 표현 기법이 있는 법인데 라이트 노벨은 소설에 만화의 표현 기법을 적용시키려 하기 때문에 탈이 나는것이다. 만화와 소설은 서사적인 매체라는점에서 닮았지만 시각 매체와 활자 매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매체다.[10] 대부분의 라이트 노벨 작가들은 활자 매체보다도 만화 같은 시각적 매체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둘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볼법한 장면을 고스란히 활자로 옮긴다. 그러다 보니 소설적인 부분이나 구성이나 문체에 취약점이 발생하고 글 자체가 형편 없어지는 경우로 이어지는 게 빈번한것이다.
원래 라이트 노벨들이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술했듯이 라이트 노벨의 출발은 일반적인 문학들이 다루는 전쟁, 삶과 죽음, 인간의 실존, 디스토피아 미래세계와 같은 무거운 주제에서 약간 벗어나서 독자들에게 가볍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충 읽히는 장르로 변질되었고 심지어 이야기나 소설로서의 본연의 모습으로 평가받으려는 작품이 아닌, 일러스트나 서비스신으로 먹고 사는 라이트 노벨도 있을 정도다. 물론 라이트 노벨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 한 권 한 권 마무리를 지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수작 라이트 노벨도 있지만, 그런 작품은 많지 않다.
3.3. 경박하고 자극적인 전개 또는 편의주의적 전개의 증가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는 말 그대로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긴 하지만, 그걸 쓰는 작가의 마인드가 가벼운 정도를 넘어 경박할 정도가 되면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기존 트렌드를 별 고민 없이 답습해서 대충 쓰겠다거나, 서비스씬이 넘치는 서술 및 모에 그림으로 성공하겠다는 마인드 말이다.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 이유에 관한 의견 중에는, '라이트 노벨 작품을 쓰는 작가(생산자)들이 곧 라이트 노벨을 보는 오타쿠(소비자)이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로 인해 어느 정도 퀄리티를 추구하는 오타쿠들 사이에선 표지에서 대놓고 서비스씬 캐릭터들이 즐비한 작품들을 비판하거나 소위 씹덕이란 극성 오타쿠들을 혐오하는 현상들까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독자층도 굳이 신경 쓰며 읽으려 하지 않기에 작가가 작품에 단발적이고 자극적인 몇몇 장면을 투입하고 전체적인 흐름과 소설작법의 요소는 무시해버리는 케이스도 있다. 또한 파이가 커졌다 해도 아직은 소규모로 찍고 파는 시장이라 작가들 입장에선 한 권에 지나친 시간을 들이면 수익은커녕 생계 유지도 어렵다. 때문에 책 발매의 텀이 길어야 몇 달 정도밖에 안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로 연구해서 소설을 쓰기보단 급하게 집필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소년만화에서 흔히들 나오는 우정·승리·노력과 같은 기본으로 추구할 가치나 주인공의 절실함이나 깊은 주제의식도 없는 편이다. 고전 라노벨에선 적어도 주인공들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이나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를 위한 노력 등의 요소가 보였지만 갈수록 가벼운 주제와 쉽고 빠른 해결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진정성과 감동을 느끼기 힘들다는 의견이 생겼다. 물론 가벼운 주제를 정하거나 주인공이 사사로운 이익에 쫓아다니는 면모를 보인다고 까일 수만은 없지만 지나친 경박한 전개 및 아마추어스런 문장력들로 인해 방향성의 문제보다는 작품 수준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곤 한다.
경박하고 자극적인 작품이 곧 '팔리는' 작품이 아님을 보편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나아질 수 있는 문제다. 자극성은 잠시 눈길을 끌지만 지속적인 추진력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작품의 플롯과 주인공의 진정성. 그 '가벼워서 잘 나간' 작품들조차 어디까지나 좁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냈을 뿐, 다른 장르 문학이나 순문학, 만화, 영화 등과 비교해서 보면 미미한 수치에 불과하다. 예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굳이 없는 경박함까지 만들어가며 쓸 이유는 없다. '무거우면 안 팔린다.'는 마인드는 반대로 말하면 독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오덕 비율은 꽤 낮으며 순수문학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도 제법 많고, 무거운 주제를 가진 소설들을 보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가벼운 걸 넘어 경박한
모든 예술은 객관적 상대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기에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라이트노벨이 상업 소설이라서 그렇다거나 가볍게 읽는 소설이기 때문에 옹호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라이트노벨 역시 소설이며, 따라서 순문학의 양식을 따르며 동등한 선상에서 평가를 해야 소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라노벨을 위한 특별한 잣대를 들이밀 이유는 없으며, 그러면 안 된다(물론 다른 장르소설도 마찬가지다). 라이트 노벨이 소설을 자칭하는 한 순문학의 양식을 따라야 하며,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이미 '소설'이 아니라 '잡문'[12]에 지나지 않는다.
3.3.1. 클리셰, 타 소설 소재 남용
소설가가 되자 사이트에 '슬라임' 키워드가 '제목'에만 들어가도록 검색하였을때 검색되는 작품 갯수다. 캡쳐일(2020.12.19) 기준 763작품이나 검색되어지고 있다. |
예를 들면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작품이 나오고 해당 작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자, 이후 작품들에서 슬라임 열풍이 불어 다양한 슬라임이 메인 소재인 작품이 등장하였다. 물론, 매우 장황한 문장형 제목으로 어그로를 끈 채로. 필력이 그런대로 나쁘지않다면 이것 나름대로 성공하는 작품도 존재하긴 하지만, 다수는 전형적인 양산형 라노벨로 종결나는 편이다. 그리고 현 라노벨들이 이러한 흐름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3.3.2. 주인공 지상주의와 먼치킨화
You gotta keep in mind what’s interesting to you as an audience, not what’s fun to do as a writer. They can be v. different.
작가로서 풀어나가기에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서 흥미로울 만한 것이 뭔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 픽사의 前 스토리 아티스트 에마 코츠
유행하는 이세계물 및 치트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식이다. 최근에는 독자들도 외면하고 있어서 일부러 주인공을 모험가나 용병, 생산직이나 힐러 같은 약하거나 인식이 나쁜 직업으로 설정해 놓거나 심지어는 종족을 바꿔서 슬라임이나 고블린 같은 걸로 설정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봐야 처음만 그런 거고 스토리가 진행될 수록 점점 강해져서 결국엔 세계관 최강자가 되어버린다. 작가로서 풀어나가기에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서 흥미로울 만한 것이 뭔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 픽사의 前 스토리 아티스트 에마 코츠
그나마 이세계물은 낮은 레벨로 설정해 실패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나가면서 작품의 주제를 나타내고 완결을 내는 방식이라도 존재하는 반면, 치트물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성장 가능성이 없고 최강인 주인공으로 설정하거나 문제나 갈등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마법이나 도구, 능력 등을 가지고 작품을 시작하기 때문에 성장의 여지가 없고 갈등이 생겨나지 않아, 결국 작품성이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자 아예 두 가지를 합친 이세계 치트물이 탄생해서 더더욱 문제점이 심화된 상황이다.
더구나 이런 경향이 짙어지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능력까지 지니거나, 죽여도 죽지 않는다고 멀쩡하게 입을 턴다던가, 가진 힘이나 이능력의 성능에 비례해서 상대하는 적들도 신 따위가 되고 스케일도 우주급이 되면서 파워 인플레나 비현실적인 묘사 문제도 따른다.
이는 다른 문제점들보다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데, 주인공이 지나치게 강하면 중간중간 생기는 갈등이 간결하고 짧게 끝나버려 재미가 없어지고, 또한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아에 배제하고 있거나 매우 짧게 서술해 캐릭터의 성장성이나 가능성을 막아 작품성이 떨어진다. 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혹은 현자의 손자따위의 작품들은 더 문제가 심각한데, 전자는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릴 수가 없고 후자는 사건에 휘말리기는 하는데 너무 전형적인 루트여서 식상하고 재미가 없다.
왜 이런 흐름이 생긴거지 요약해보자면
- 주인공이 힘을 얻는 과정이 빨라진것도 주인공이 고된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고생하면서 힘을 얻는건 질리도록 나왔다. 또한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노력론, 근성론이 라이트 노벨의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에게 와닿지 않게되었다.
- 오늘날은 라이트 노벨의 주 독자층이 즐겨하는 게임의 회차 플레이, 공략 / 정보글, 유튜브 게임 영상 등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캐릭터 육성 정보의 습득과 성장속도가 어느때보다 빨라진 시대이고 이런 경향은 캐릭터의 느리거나 평범한 성장을 답답하게 느끼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오늘날에 회귀물이 인기있는것도 주인공이 이미 힘을 갖고 있거나 미래의 정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어서 극의 중심에서 모든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
물론 지나가는 군인 A보다 약한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의 주인공의 예시도 있고 오버로드처럼 주인공의 시선보다 주변의 인물들의 시선을 위주로 서술하거나, 능력적으로 완벽한 주인공이 정신적으론 미성숙하여 주위의 사건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거나 주변 인물들간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 특수한 분쟁거리를 만들고 이를 심도 있게 해결해내는 영웅서사적인 방법 등등 작정하고 쓰고자 하면 주인공이 먼치킨이라도 재미있을 이야기들은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인류의 각종 신화에서 증명된 바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라이트 노벨 작가들은 어려운 전개를 만들 역량이 없기 때문에, 전개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혹은 깊이 생각치 않고 '간편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닌 '간편히 휘갈겨 쓰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아니면 주인공에게 너무 몰입해서 자기투영을 해버려서, 대충대충 만들거나 주인공에 대한 애정만을 가지고 쓰다보니 무성의한 내용과 주인공 지상주의로 점철된 소설들이 양산되는 현상이 생기고 말았고, 독자들도 오로지 사이다만을 갈구한 나머지, 머리를 써서 독서하는 걸 완전히 포기해버려 이는 전체적인 작품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말았다.
3.3.3. 부실한 설정, 편의주의적인 전개
마물을 멀리서 감정으로 분석해보니 적진의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건 내가 던전에서 교전한 적 있는 미들 오크나 미들 트롤의 상위종이었다.
하이 오크와 하이 트롤이다.
내가 싸웠던 미들 트롤이 상당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상위종이라면 돌파력과 파괴력이 뛰어날 거라는 건 명백했다.
거체가 휘두르는 곤봉 공격은 사람을 쉽게 쳐날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좌익과 우익을 굳히고 있는 건 페가서스 나이트와 사지타리우스, 기동력이 뛰어난 병사다
페가서스 나이트는 신마에 타서 싸우는 비행이 가능한 기병이며 사지타리우스는 머리는 뱀이고 하반신은 말인 마물이다.
「......좋아!」
머릿속에서 승리의 그림이 그려졌다.
남은 건 진형을 짜서 적확하게 전투 상황을 판단, 부대를 움직이는 것뿐이다.
「저에겐 있습니다. 저 마물의 군세를 상대로 승리의 그림을 그릴 힘이 있어」
「승산은?」
「내 읽기대로 전황이 움직여 준다면 9할 정도」
내 말을 들은 모험자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중앙부대가 방어전을 하는 사이에 이쪽의 정예부대의 우익과 좌익이 적 양익을 격파
그대로 적중앙군의 좌우와 뒤를 잡아 포위망을 완성시킨다.
(중략)
포위섬멸진의 완성이었다.
이렇게 300의 전력으로 5000의 마물군을 요격한 시리루카 마을 방위전은 종결을 맞이했다.
아군의 피해는 셀 수 있을 정도였으며 압도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마물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준 건 대침공의 모든 역사를 돌이켜봐도 이 전투가 처음이었다.
이 싸움에서 루크가 채용한 전술, 포위섬멸진은 적의 침공에 가장 효과적인 전법으로서 후세까지 높게 평가, 연구되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재능이 여기에 탄생했다.
- L노벨의 최하위 직업에서 최강까지 출세하다 ~꾸준한 노력은 치트였습니다~ 中의 내용
위의 내용과 같이 현실이든 토탈워 같은 게임에서든 저런짓을 하면 무조건 필패할 전술[13]을 짜놓은 뒤 그냥 주인공 능력으로 어거지로 이기는 전개처럼 막장설정을 지닌 라이트노벨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에는 서서먹는 이세계 인에게 힘들테니 의자를 만들어주고 앉아서 먹게 했더니 이세계인들이 너는 이 편한 방식을 생각하다니 혹시 천재? 라는 정말 골때리는 소설마저 있다.하이 오크와 하이 트롤이다.
내가 싸웠던 미들 트롤이 상당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상위종이라면 돌파력과 파괴력이 뛰어날 거라는 건 명백했다.
거체가 휘두르는 곤봉 공격은 사람을 쉽게 쳐날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좌익과 우익을 굳히고 있는 건 페가서스 나이트와 사지타리우스, 기동력이 뛰어난 병사다
페가서스 나이트는 신마에 타서 싸우는 비행이 가능한 기병이며 사지타리우스는 머리는 뱀이고 하반신은 말인 마물이다.
「......좋아!」
머릿속에서 승리의 그림이 그려졌다.
남은 건 진형을 짜서 적확하게 전투 상황을 판단, 부대를 움직이는 것뿐이다.
「저에겐 있습니다. 저 마물의 군세를 상대로 승리의 그림을 그릴 힘이 있어」
「승산은?」
「내 읽기대로 전황이 움직여 준다면 9할 정도」
내 말을 들은 모험자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중앙부대가 방어전을 하는 사이에 이쪽의 정예부대의 우익과 좌익이 적 양익을 격파
그대로 적중앙군의 좌우와 뒤를 잡아 포위망을 완성시킨다.
(중략)
포위섬멸진의 완성이었다.
이렇게 300의 전력으로 5000의 마물군을 요격한 시리루카 마을 방위전은 종결을 맞이했다.
아군의 피해는 셀 수 있을 정도였으며 압도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마물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준 건 대침공의 모든 역사를 돌이켜봐도 이 전투가 처음이었다.
이 싸움에서 루크가 채용한 전술, 포위섬멸진은 적의 침공에 가장 효과적인 전법으로서 후세까지 높게 평가, 연구되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재능이 여기에 탄생했다.
- L노벨의 최하위 직업에서 최강까지 출세하다 ~꾸준한 노력은 치트였습니다~ 中의 내용
게다가 현자의 손자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 일행들이 먼저 적과 투닥투닥 싸우다가 질 거 같을때 그제서야 주인공이 와서 간단하게 쓸어버리거나 장비에 능력을 부여하는 것도 애당초 이세계에 통용 될 지도 모르는 문자인 한자를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능력을 부여하고서 주인공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칭송하는게 대부분이며 현자의 손자 외에도 최근에 나온 전생 귀족의 이세계 모험록과 같이 주인공이 제시한 오셀로를 보고 "오오 이것은 정말 간단하고 쉬우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 상품이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라며 칭찬하는 장면까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작가들의 수준이 매우 낮아졌음을 느낄 수가 있다.
작가 본인이 근면하게 지식을 쌓고 심사숙고해서 글을 쓰면 이런 문제는 없을테지만 라노벨 작가들의 상당수가 자신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개념들과 설정들을 함부로 라이트 노벨에 도입하는 것에서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던지 몇년은 파고들어야 초심자 수준을 벗어나는데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라노벨 작가들이 그런 노력조차 했을리가 없는것이다. 왜냐하면 라노벨 작가들은 어떻게든 소재를 누구보다도 빨리 선점해서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스낵 컬처를 즐기며 소비하는 독자[14]들의 찬사와 인기를 얻기 위해서 면밀한 조사와 검토 과정을 생략해버리기 때문이다. 라노벨의 이러한 부실한 설정들의 원인은 체리피킹식으로 자신이 도입한 설정들의 개념과 원리를 선택적으로 차용하는 것에서도 있는 것이다.
4. 해결 방안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 걸쳐 해결해야 한다. 대표적인 해결책으로는 회사 측에서 작정하고 작품성을 위주로 투고 난이도를 높이는 것, 작가 측에서 최소한 성의 있게 작품을 쓰고 지나친 설정이나 과도한 소설의 틀 파괴를 피하는 것, 독자 측에서는 작품에 대해 인기가 흥한 만큼, 너무 지나치게 비판을 받은 작품은 미화나 포장이 아닌 수준 높은 지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소설가가 되자라는 투고 사이트에서 인기가 높은 작품만을 노리고 계약하는 출판사가 많아져 투고 난이도 제한은 사실상 무리이다. 이렇다면 출판사 담당 편집자가 이걸 수정해야 하는건데 편집자도 여러 인물을 맡는이상 꼼꼼하게 확인하는데에 한계가 있어서 질적 저하는 피하기가 힘들다.
보는 사람은 가벼워야하겠지만 작가가 가볍게 쓰는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무게감 없이 붕 뜨고 흔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들과 무의미한 수준의 스토리 라인을 단순히 가볍게 만든단 이유로 왕창 집어넣는 나태한 자세는 라이트 노벨이 현재 처한 현실이며, 작가들의 나태함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팬들의 공격에 의해서 라이트 노벨이란 장르 자체에 큰 회의감을 느끼고 모두 떠나버리고, 그로 인해 가뜩이나 줄어드는 팬덤은 자정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 캐릭터에 대한 찬양만을 할 뿐인 기계가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작가의 변덕이나 하는 이유 등으로 캐릭터가 작품에서 이탈하거나 하게 되면 이에 대한 팬덤의 반항으로 인해 크게 매출이 줄어들게 된다. 이제는 단순히 가볍게 써진, 글로 써진 만화가 아닌, 하나의 소설로서 훌륭한 작품이 절실한 상황이다. 때문에 상업성과 오락성, 문학성을 조화시키며 소설을 쓸 때의 무게감을 잡는 것은 오늘날 모든 라이트 노벨 작가들에게 직면한 중대한 과제이다.
[1] 실제로 양판소/문제점과 라이트 노벨/비판을 살펴보면 몇 가지는 판박이 수준이다.[2] 라노벨계의 큰 손인 가도카와는 슈에이샤와 만화 출판으로는 현저하게 밀리지만 그 대안으로 라이트 노벨을 선택했고 그 결과 라이트 노벨 출판에서는 비교되지 않을만큼의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다.[3] 의견이 분분해서 일방적으로 맞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 모두 각자의 논리적 체계가 있으므로 개개의 논리적 정합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4] 일부 평론가들은 포르노(에 속하는 포르노 문학)도 예술의 일부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어쨌든 포르노도 '있을 법한 일'로서의 성행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5] 강명화(康明花, 1900~1923): 본명은 강도천. 평양 출생. 11세의 어린 나이에 기생이 되고 17세에 서울로 상경하여 대정권번에 이름을 올렸다. 서도잡가와 시조를 잘했고 사교성이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대구 부호의 아들 장병천과 사랑에 실패해 결국 자살하였다. 요컨대 부잣집 아들 꼬시려다 자살한 것을 순애로 미화하는 것이 무슨 예술이냐는 내용.[6] 애초에 여성향 라이트 노벨은 일본에서는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는 로맨스 판타지로 갈아탄지 엄청 오래되었다.[7] 작품별로 이어져 있는 4페이지들이다. 그 말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런 모습들로 가득하다는 것. 본문에는 설명이 없지만 마지막은 라노벨 중 거의 유일하게 소설 작법을 지키는 늑대와 향신료와의 비교이다. 다만 일부는 일본식 화법을 억지로 한국어로 번역해서 어색해진 부분도 있다. 허나 언어의 장벽은 어디에나 있고 보통 잘 쓴 소설들은 국가 고유의 화풍이 덮여진다. 즉, 결국엔 작가의 역량 문제로 이어진다.[8] 시점 이동은 순문학에서도 자주 나타나지만 일관성의 틀은 대체적으로 유지하는 편이다.[9] 길게 갈것없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보면 이해가 쉽다. 팝콘 뜯으면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가볍게 보는 영화지만, 이런 영화들의 액션씬을 찍고 구상하기 위해 제작진이 얼마나 머리를 굴렸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10] 하물며 시각 / 영상 매체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작품들끼리도 표현면에서 엄연한 차이가 발생한다. 만화나 게임을 실사 영화화하면 형편없는 작품들이 나오는것도 이런 차이점을 이해못한 영화 감독들의 실수인것. 그러하니 시각 매체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의 감성을 정적인 활자 매체로 옮겨적는 라이트 노벨이야 말할것도 없다.[11] 경박해져 가던 당시 독일 시단을 비판하며. 시에 관한 말이지만 라이트노벨에도 적용 가능하다.[12] '예술적 가치가 없는 잡스러운 문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정한 체계나 문장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되는대로 쓴 글'을 의미한다.[13] 옛말에도 성을 함락시키려면 성 주둔병력의 3배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포위는 적을 말려 없애는 치밀함과 적보다 많은 병력으로 둘러싸 우위를 점하지만 그만큼 보급량 관리와 주변 전세전황도 파악해야하는 간단한 이론이면서 매우 힘든 전술이다. 적은 포위 당하면 활로를 열기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기 때문에 자신들과 비슷한 규모거나 적은 규모면 싸움을 걸어오고 인원수가 너무 많으면 최대한 타격을 주기 위해 농성을 한다. 게다가 윗 내용을 보다시피 성이라는 조건은 아니지만 3:50의 병력차에 병력도 훈련도 낮은 잡병으로 정예몬스터를 포위전술로 상대한다. 이때는 한곳으로 집중시켜 장애물이 많은 숲에서 게릴라전 형식으로 조금씩 소모시켜 피해를 줘도 모자랄 판에 잡병을 분산시키는 것은 각개격파 당하기 딱 좋으며 조금만 생각하면 해당 전술이 얼마나 허점 투성이인지 알게 된다.[14] 라노벨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까지만 해도 라노벨 타깃은 10~20대였지만 2010년대 후반 이후 라노벨 시장이 정체, 쇠퇴하면서 신규 독자 유입이 끊겨 독자 연령대가 20~30대 직장인 독자로 올라갔다. #, 라노벨 시장, 10년 동안 독자층은 어떻게 변했나? 따라서 이러한 독자들이 꼭 저연령층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15] 여기에 비추어 보면, 순수문학은 지나치게 예술적이라 융성하지 못하고, 라이트노벨을 비롯한 장르문학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 융성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16] "윌리엄 랠프 잉"이라고도 읽힌다. "W.R.잉"이라는 건 그가 소설가로서 사용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