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10:30:19

고열지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1. 개요

顧悅之
(320 ~ ?)

동진의 인물로 자는 군숙(君叔). 양주 진릉군 무석현 출신. 동진의 유명 화가인 고개지의 아버지다. 의로운 행동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진솔하고 신의를 중시하는 성품을 가졌다고 한다.

2. 생애

영화 2년(346년) 3월, 은호가 건무장군, 양주자사(揚州)에 임명되었을 때, 고열지를 징소해 양주별가로 삼았다. 은호는 고열지를 신뢰하여 모든 정무를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하니, 고열지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척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매일 같이 격무에 시달리던 그는 과로한 탓에 건강이 크게 악화하여, 고작 30대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등이 노인네처럼 굽어버렸고, 머리카락도 하얗게 세어버렸다. 어느 날, 회계왕 사마욱이 자신과 동년배임에도 머리가 새하얀 고열지를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나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소?"
고열지가 대답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으면 그 자태가 더욱 무성해지고, 갯버들은 가을이 오기도 전에 먼저 시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사마욱은 그의 말이 타당하다 여기며 만족했다.

영화 10년(354년) 정월, 중군장군 양주자사 은호가 잇달은 북벌의 실패로 조정의 군량과 병장기를 낭비했다. 호시탐탐 국가대권을 노리고 있던 정서장군 형주자사 환온은 은호를 향한 조야의 원망에 힘입어, 조정에 상소해 은호의 축출을 청했다. 조정은 환온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은호가 필요한 존재였으나, 여론이 험악한 탓에 부득이하게 환온의 청에 따라 은호를 축출할 수 밖에 없었다. 은호는 면직되어 서인 신분으로 신안(信安)에 유배당했고, 귀양지에서 근심과 울분에 잠겨 이내 사망했다.

훗날 고열지는 상소하여 은호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을 청원하니, 조정에서 그의 청에 따라 은호의 이전 관직을 회복시켜 추증해주었다. 이후 상서좌승을 지내다가 재직 중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