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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2:30:04

고열지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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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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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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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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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기(戴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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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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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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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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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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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顧悅之
(320 ~ ?)

동진의 인물로 자는 군숙(君叔). 양주 진릉군 무석현 출신. 동진의 유명 화가인 고개지의 아버지다. 의로운 행동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진솔하고 신의를 중시하는 성품을 가졌다고 한다.

2. 생애

영화 2년(346년) 3월, 은호가 건무장군, 양주자사(揚州)에 임명되었을 때, 고열지를 징소해 양주별가로 삼았다. 은호는 고열지를 신뢰하여 모든 정무를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하니, 고열지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척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매일 같이 격무에 시달리던 그는 과로한 탓에 건강이 크게 악화하여, 고작 30대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등이 노인네처럼 굽어버렸고, 머리카락도 하얗게 세어버렸다. 어느 날, 회계왕 사마욱이 자신과 동년배임에도 머리가 새하얀 고열지를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나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소?"
고열지가 대답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으면 그 자태가 더욱 무성해지고, 갯버들은 가을이 오기도 전에 먼저 시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사마욱은 그의 말이 타당하다 여기며 만족했다.

영화 10년(354년) 정월, 중군장군 양주자사 은호가 잇달은 북벌의 실패로 조정의 군량과 병장기를 낭비했다. 호시탐탐 국가대권을 노리고 있던 정서장군 형주자사 환온은 은호를 향한 조야의 원망에 힘입어, 조정에 상소해 은호의 축출을 청했다. 조정은 환온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은호가 필요한 존재였으나, 여론이 험악한 탓에 부득이하게 환온의 청에 따라 은호를 축출할 수밖에 없었다. 은호는 면직되어 서인 신분으로 신안(信安)에 유배당했고, 귀양지에서 근심과 울분에 잠겨 이내 사망했다.

훗날 고열지는 상소하여 은호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을 청원하니, 조정에서 그의 청에 따라 은호의 이전 관직을 회복시켜 추증해주었다. 이후 상서좌승을 지내다가 재직 중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