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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02:41:48

고니시 유키나가/기타 창작물

1. 개요

각종 창작물에 등장하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다루는 문서.

2. 소설

2.1. 숙적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숙적>이란 소설에 꽤 옹호조로 등장하고 있다. 엔도 슈사쿠가 <침묵> 등 기독교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니시에게 호의적인 시각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1]

<숙적>에서는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의 온갖 애증관계를 히데요시의 시종이던 젊은 시절부터 세키가하라 전투의 패배 후 고니시가 죽는 시점까지 묘사하고 있다. '면종복배'라는 고니시의 이미지는 여기서 형성되었다. 이 작품에서 고니시는 일본과 조선 양국을 파멸로 몰아갈 히데요시의 전쟁을 막기 위해 고뇌하다가 결국 신자로서도, 무사로서도 크게 부도덕한 행동인 주군 히데요시의 독살을 결심하고 아내 이토를 시켜서 히데요시를 오랜 시간에 걸쳐 증거가 남지 않게 독살하고 만다. 고니시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자, 아내 이토가 살아남아서 승자인 기요마사마저 독살해 버린다. 시종일관 집요한 라이벌이지만 고니시의 사후 생전에 느끼던 적의를 상실하고 허무감에 빠지는 기요마사의 모습 등, 여러모로 허무주의가 감도는 줄거리가 특징.

2.2. 임진록

임진록에서는 소서, 소섭, 소서비등의 이름으로 괴물화되어서 김응서와 대결한다. 잘 때 눈을 뜨고 잔다거나 목을 베어도 그 목이 날아와 도로 붙기 때문에 잘린 단면에 재를 뿌려야 한다는 식이다. 심지어 고니시의 수청을 든 평양 기생 계월향은 김응서가 소서를 죽이자 "내 뱃속에 소서의 자식이 있는데 마저 죽여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까지 죽이라고 청한다. 김응서가 계월향의 배를 찌르자 태아는 튀어나와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맴돌다가 떨어져 죽는다. 태아가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 했는데!" 하고 말까지 한다. 그런데 이 '소서비'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으로 나오는 판본도 많다. 왜냐면 소서비라는 창작물의 캐릭터가 애초에 고니시 본인이 아니라, 고니시의 가신인 나이토 죠안이 교섭 과정에서 사용한 명의인 고니시 히다노카미(小西飛騨守)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2]

2.3. 왜란종결자

이우혁왜란종결자에는 나름 개념있는 악역으로 나온다. 전술한 것처럼 일본군의 선봉장으로 활약했음에도 전쟁을 원치 않았고 일찍 끝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점을 높이 산 듯.[3]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향한 충성과 무의미한 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많은 고뇌를 한다. 참전 당시 데리고 온 이가 닌자들의 첩보를 통해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마물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전쟁의 배후에 악한 존재들이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려고 애쓰지만 전개는 역사 그대로. 닌자 겐키가 유명한 승려가 불경을 적어준 것을 속옷삼아 마수들의 습격을 방지한 것을 보고, 키리시탄답게 자신도 성모송 등을 속옷에 적어 둔다. 그런데 겐키는 불경 덕에 여러 차례 목숨을 건졌지만 고니시는 기도문을 아무리 적어도 소용없었다.[4]

성격적으로는 상인 출신이라는 컴플렉스로 교양 못지않게 활, 검술 등의 무사적 소양에도 집착하는 것으로 그려지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알고 인정도 있지만 아무튼 충성은 유지해야 된다는 낭만주의자로 묘사된다. 작중에서는 흑호가 일본군 진영을 헤집고 다니는데도 쫄지 않고 정면에서 화살을 날리면서 화살의 행방으로 전쟁의 앞날을 점친다는 대범한 짓을 하기도.

2.4. 7년전쟁

2010년 타계한 김성한 작가의 소설 7년전쟁에 자주 등장한다.[5] 이 소설에서 고니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분량도 많다.[6] 초반에는 쓰시마 사람들과 도요토미와 엮어서 자주 나오고 임란 이후 평양까지는 조선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어서 진격 상황만 묘사되었다. 이후 평양성에 주둔하면서 동시에 명나라의 심유경이 등장하고부터 비중이 많아진다. 외교를 통해 무의미한 전쟁을 막으려 하면서도, 정작 전쟁 자체는 충실하게 행하는 복잡한 심경을 잘 나타낸다. 조선인 양녀인 오타 줄리아에 대한 아내와의 대화[7]를 통해 스스로가 위선자가 아닌지를 고뇌하는 장면도 나온다.

작가는 임진왜란을 기존의 조선의 일국사(一國史)적 측면이 아니라 삼국 간의 국제전쟁(7년전쟁)으로 바라본다. 일본인이라고 깎아내리지 않으며, 조선인이라고 옹호하지 않는 중립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나름 혜택(?) 아닌 혜택을 본 인물이다. 오히려 작가는 고니시나 가토같은 무장들보다는 '무능한 통치자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인임'을 밝히며 당시 삼국의 지도자들, 즉 조선의 선조, 명나라만력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전쟁 자체보다 외교전에 주력하여 소설을 쓴 작가의 성향상 고니시나 심유경이 핵심 인물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다.

2.5. 명군이 되어보세!

어릴 적에 동래에 살며 무릉도 출신 선비[8]에게 유학을 배우며 자라 한국어에 능통하고 일본인치고 유학에도 꽤 능숙하며 조선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다.[9] 바뀐 고니시가 히데요시에게 노부나가 주변 가신들에 간자를 심을 것과 혼노지 발발 때 당장 천하인이 되기보다는 오다에게 충성을 다해 세력을 키우라는 조언을 하여 오다가 혼노지에서 죽을 위기를 넘겼으니 일본 역사가 바뀌게 한 결정적인 인물.[10]

일본 최고의 조선 전문가라는 이유로 김조영·류성룡·이순신의 사신단이 방문했을 때에나 하성군이 볼모로 왔을 때 이들을 맞아 상대하며 접대 및 통역 역할을 하고, 그 후로도 오다에게 조선에 관한 조언을 하기도 하고. 직접 사신으로도 온다. 원역사와 달리 유학을 배웠지만 성당에 나간다는 걸 보면 여기서도 가톨릭 신자인 듯. 원역사에서처럼 대외 원정을 반대하는 입장이며 일본은 일본 본토만으로도 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1] 하지만 결국 오다가 조선 침공을 감행하자 주군인 히데요시를 따라 침입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히데요시가 주장하는 강원도 상륙에 반대하였으나, 그 근거가 스승에게 들은 카더라 통신이라는 약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맛을 다시며 수긍한다. 경인왜란에서 1군을 이끌고 선봉장이 되어 참전, 발포와 흥양을 점령해 교두보로 만든다. 그리고 약탈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고, 항복하면 무조건 살려주라는 명령도 내린다.[12] 그래봐야 결국 패망 확정이라, 일각에서는 항왜로 귀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원역사대로 가토 기요마사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 조선 수군과 수상전으로 정면대결하면 패배 뿐이니 노획한 조선 대포들을 연안 섬들에 설치해 상호 십자포화를 퍼붓는 해안포 시스템을 설치하여 조선 수군이 상륙교두보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면서 우세한 육상병력으로 조선 수군의 기지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조선 수군을 몰아낸다는 가장 현실적인 조선 수군 파훼법을 히데요시에게 진언하여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이항복이 해안포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은 상태다. 원역사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나지고 활약도 많이 하고 있지만 받고 있는 대우는 더 안 좋다.[13] 순천을 포위하던 모리 데루모토를 구원하고자 순천으로 갔다가 임꺽정이 이끄는 조선 해병대에게 근거지였던 흥양 교두보까지 빼앗기게 된다. 그후 히데요시 군이 경상도로 철수할때 김시민이 일부러 비워둔 진주성에 고립되었다가 김시민이 명예로운 철수를 제안해준 덕분에 간신히 경상도로 탈출한다. 주인공은 고니시가 이번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은 점을 특별히 감안해 능지처참형 대신 깔끔한 참수형을 내려주겠다고 생각하는 중.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고 조선으로 압송되어 참수형을 선고받으나 왜인임에도 조선어, 조선문화, 성리학에 능통하면서 왜란기 일본 정세에 빠삭하다는 점 때문에 정철이 처형을 미룰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을미동정록이 완성될 때까지 참고인이 되어 집행이 연기된다. 결국 7년간 경인란록, 을미동정록, 왜국도지, 신장록, 수길록, 행장기 등 십여 권의 서적 집필에 참여했다. 정철이 사망한 뒤에도 죄를 뉘우치는 모습을 감안하여 사형이 철회되고 마포에 건설 중인 성당 공사장에서 노역하는 것을 선고받는다. 독실한 천주교도인 고니시 입장에서는 성당 건축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한다. 원 역사에서 가토에게 영지를 모조리 뺏기고 사형당한 것과 비교하면 해피엔딩을 맞은 셈. 결국 성당 공사 노역 도중 추락사고로 사망하나 미소를 지으며 죽었다.

2.6. 내가 고니시라니

주인공. 현대 한국인이 취업기념 일본여행을 갔다가 9살의 고니시 유키나가로 환생하여 상인으로서 역사를 바꿔나가는 대체역사소설이다.

3. 드라마

3.1. 조선왕조 오백년

1985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 임진왜란> 편에서는 성우 정승현[14]이 연기했다. '소서행장'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사실 여느 16세기 조선인들이 그를 고니시라고 부를 이유가 없으므로 소서라고 부르는 게 고증에 맞는다. 임진왜란을 다룬 다른 사극(왕의 여자 제외)에서 챠센마게를 틀고 나오는 것과 달리 촌마게를 틀고 나온다. 다만 본작의 촌마게 자체가 고증에 맞지 않게 전국시대, 도요토미 정권, 에도 시대 초기의 촌마게가 아니라 에도 시대 중후기의 촌마게다.

3.2. 왕의 여자

배우 박경득[15]이 연기했다. 임진왜란을 다룬 초반부에 나온다. 여기서도 촌마게를 틀고 나오는데 조선왕조 오백년 때와 달리 이쪽은 제대로 된 전국시대, 도요토미 정권, 에도 시대 초기의 촌마게다.

3.3. 불멸의 이순신

"승산이 있고 없고가 중한 것이 아닙니다 다이나곤. 조선 출병과 대명 정벌이 관백 전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이미 전하의 칼집에서 칼은 떠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칼집을 버릴 차례입니다."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정승호가 연기했다. 자막으로 이름이 '고니시 유키나가'로 제대로 표기되어 나왔지만 후반부 들어 배우들이 '고니시 유키나'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16][17] 이름 밑에 작게 조선침공 제1선봉장이라는 자막도 달아주었다.[18]

성급하고 포악한 가토 기요마사와 대비되게끔 느긋하고 신중하나 때로는 굉장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대로 사위와 함께 전쟁을 막기 위해 조선에 줄기차게 통신사를 요청해 조선 측에 전쟁 분위기를 살짝 흘리고 선조의 편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가기 전에 빼돌리기까지 하나 무위로 돌아가자 전쟁 준비를 위한 것이라고 조선 지도를 바치며 재빠르게 입장을 바꾼다.

전란이 발발하자 선봉에 서서 부산진과 동래에 이어 한성평양성까지 터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히데요시의 침략을 막으려는 일들이 비중있게 다뤄지며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의 승리가 단순한 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조선군에게 심리적으로 희망을 줘서 전세를 바꿀 것이라는 대국적인 분석을 하고 그리하여 이순신에 대한 반간계(삭탈관직+백의종군)를 일찍부터 계획하는 등 이래저래 지장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일본군 무장 중에서는 그나마 입체적으로 나오는 편. 탄금대 전투를 앞두고 신립의 기병대에 대한 대책을 완벽히 준비한 후 그에 대해 "조선 최고의 명장을 사무라이로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라는 압도적인 포스의 대사를 읊기도 한다.

후반부에 들어서 하필 이순신의 영향력 내인 순천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이순신에게 시도때도 없이 털리기 바쁘다. 명나라군을 재물로 구워삶고 이순신에게도 매수를 시도하며 구원을 요청하거나 암살 시도를 하는 등 최종 보스 분위기를 내지만 늘 실패로 돌아가고 다른 왜장들처럼 이순신 타령으로도 모자라서 왜교성 전투에서는 바닷물에 빠지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19] 막판에는 이순신이 자신을 구원하러 온 시마즈와 싸우는 동안 슬쩍 도주를 시도하다 매복하던 조선군에게 걸려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도망간다.

작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느긋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여서인지 일본 장수들 중에서는 비교적 예의바른 모습을 보인다. 특히 명량 대첩 이후 왜군에 통보를 하기 위해 류성룡이 단신으로 찾아가자 부하들이 붙잡고 끌고 오다시피 했는데 "아무리 적이라지만 일국의 재상을 그렇게 험하게 대하면 쓰냐"며 부하들을 물리고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으니 어떻습니까? 동석하셔서 회포나 푸시지요."라고 존칭까지 사용하는가 하면 류성룡이 "임진왜란은 일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니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올려라."는 등 신경에 거슬릴 만한[20] 말을 하여 분노한 가토가 죽이려고 함에도 "비무장에 단신으로 온 사신을 죽이려 할 정도로 우리가 형편없어진 것이냐"며 질책까지 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도리와 예를 지킬 줄은 아는 인물인 것으로 묘사됐다.

3.4. 징비록

고니시 유키나가(징비록) 문서 참조.

3.5. 임진왜란 1592

2016년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는 배우 박동하[21]가 연기했다.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일본에 대한 묘사는 다수에게 호평을 받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의 배우 김응수와 함께 평가가 좋은 편.

3.6. 어떡할래 이에야스

파일:konishiyukinaga.jpg
<rowcolor=#fff> 세력 배역명 / 배우
파일:고시치노키리.svg
도요토미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이케우치 만사쿠 분)
히고 남반국의 다이묘이자 키리시탄. 라이벌인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히고를 양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수도인 한성에 제일 첫번째로 입성한 사람이다.

38화 히젠 나고야 성에서 잔치에서 농사꾼 코스프레를 하고 춤추는 장면으로 첫 등장한다. 그 이후 39화에서 정유재란에 참여한다.

4. 게임

4.1. 임진록 시리즈

HQ Team 의 RTS 게임 임진록 시리즈에서 제작진이 애착이 있던 것인지 계속 등장한다.

임진록 2에서는 검을 사용하는 돌격무장 스타일의 영웅 유닛으로 등장한다. 본영에서 생산되는 장수이다. 적절한 체력과 적절한 공격력을 보유했다. 업그레이드를 하면 사용할 수 있는 풍백술[22]은 지상군과 해군 유닛, 그리고 건축물들에게 사이오닉 스톰 이상으로 위협적이다.[23] 처음엔 없었다가 나중에 패치로 추가된 기술이다. 밸런스 붕괴를 막기 위한 것인지, 초반에 뽑을 수 있는 본체와는 달리 가장 마지막 테크에 있는 세이쇼오의 등용과 기술을 완료해야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

시나리오 진행 전 브리핑에서는 조선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신중한 면모가 부각된다. 부산진 전투 이전 브리핑에서 조선을 단숨에 굴복시키겠다는 가토에게 조선이 만만히 굴복시킬 수 없는 나라임을 설명하며, 탄금대 전투 돌입 전에도 배수진과 조선 기병의 돌파력을 경계한다. 해당 미션의 초반부가 고니시의 조언을 무시하고 경솔히 움직였다 조선군의 역습으로 위기에 놓인 가토를 구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정도. 이후의 브리핑에서도 세이쇼오가 입안하는 작전의 의도를 빨리 알아챈다던가, 히데요시의 특명 하에 조선 도공들을 데려오는 미션을 진행하는 식으로 지장 이미지가 부각된다. 정작 실제로도 라이벌이었던 가토와의 대립은 몇가지 의견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후속작인 스탠드 얼론 팩 임진록 2+ 조선의 반격에서는 명의 이여송, 조선의 곽재우 다음 가는 흉캐가 되어서 돌아왔다. 조선의 반격에서는 본영이 아닌 병기창고에서 생산되는 영웅으로 바뀌었다.[24] 검 영웅이라서 폭마혈도[25]를 장착할 수 있는데 또 마법 영웅이라고 기본 마나도 있어서 악세서리칸의 마법력을 퍼센트 단위로 올려주는 용왕탕 아이템을 쓸 수 있다. 이걸 몆번 먹여 적진에 투하시킨 다음 폭뢰격 두세 번만 쓰면 본진이 거의 원폭을 맞은 수준으로 초토화된다. 그나마 이여송이나 곽재우와 달리 말탄 장수가 아니라서 스피드는 빠른 편이 아닌데, 어차피 수송기를 타면 그만이기 때문에 큰 단점이 아니다. 게다가 전작의 풍백술도 여전해서 마법력을 200 추가시켜주는 용비늘검 아이템을 장착하고 원거리서 풍백술 좀 쏴주고 도망가면 쉽고 빠르게 적의 자원채취를 방해하거나 보병 유닛을 몰살시킬 수 있다. 처음에는 풍백술의 가치가 과소평가되어 잘 안쓰였지만, 초반부터 고니시를 빨리 띄워 정면교전과 자원채취를 방해하는 게릴라를 겸하다가 용비늘검을 포함한 아이템 획득을 기다려 그 아이템빨로 정면교전에서 압승하는 운영이 개발된 이후 일본의 유일신으로 거듭났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전작보다 지장 이미지가 더욱 부각된다. (실제 역사와 비교한 개연성은 차차하고) 도쿠가와가 정권을 장악할 시 일본의 재침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조선의 근심을 노려 2장에서 미츠나리 세력과 조선의 동맹을 성사시키는 사절 역할을 맡는다. 4장에서는 명에 사절을 파견하려는 도쿠가와를 함대를 동원해 방해한 것으로 묘사된다. 6장과 7장에서는 양동작전을 벌이는 도쿠가와에 대항해 적절한 기만책으로 오히려 도쿠가와가 일차적으로 패주하게 만드는 등 실제 역사에서 고니시가 차지한 비중보다 더 큰 활약상을 보여준다. 20장에서는 명군의 배신을 알리기 위해 조선군 진영으로 향하나 아사코의 기습 공격을 받고, 21화에서는 조선군 진영에 명의 배반 사실을 알린 뒤 쓰러진다. 그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4.2. 천하제일상 거상

천하제일상 거상에선 말을 탄 채로 쌍검을 사용하는 장수로 등장한다. 기마무사 레벨 50부터 경우 전직 가능. 쌍검난무라는 기술을 사용하는데, 자기 주위의 적들을 지속적으로 타격하는 기술이다. 중복사용이 가능하여 스타크래프트지우개처럼 쓸 수 있다. 요즘은 고니시가 몹보다 먼저 지워진다 레벨 90부터 2차장수 세쓰노카미[26]로 전직시킬 수 있다. 2차 때늗 일직선으로 돌격하여 적들을 관통하면서 일격을 가하는 기술을 쓰는데, 잘만 맞추면 대미지가 곱절로 들어가는 덕에 한때는 보스 잡이에도 썼을 만큼 강력했다. 물론 이것은 장수 조합 중심이 메타이던 시절 이야기고, 사천왕 중심으로 메타가 바뀐 지금은 잡몹 하나 못 잡는 데다 맞추기도 어려운 노답기술이다.

여담으로 이 2차장수 세쓰노카미의 배경 스토리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27] 고니시가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하다가 용마를 보고 전 재산을 털어서 그 용마를 샀다는 내용. 배경스토리가 역사를 뒤엎는 것으로도 모자라 판타지 소설 수준이다...

4.3. 지휘봉의 행방

파일:지휘봉의 행방_고니시 유키나가.png

비주얼 신장 150cm, 비주얼 연령 43세, 취미는 돈계산. 상인 출신이라 주판을 들고 있다. 꽤나 계산적인 성격이나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이묘로서 가신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것. 패색이 짙어지자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항복한다. 세키가하라 후 역사대로 처형당하지는 않고 안코쿠지 에케이와 함께 상인으로 해운업을 운영하게 된다.

4.4.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파일:小西行長1.jpg 파일:小西行長.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Yukinaga_Konishi_%28NAS%29.jpg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한국인들에게 흔히 알려진 무관의 이미지보다는 주로 정치력만 적당히 쓸만한 문관 타입으로 등장하는데, 전투나 지모도 낮은 편에, 그나마 높은 정치조차도 특화되었다고 하기엔 어렵다. 특히나 삼국지도 아니고, 능력치 인플레가 심한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선 더더욱 메리트가 없는 능력치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천록에서도 각 능력치가 50~60대 사이를 오가는 B~C급 무장이라 써먹기가 어려웠다. 다만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에서는 후나부교를 맡았던 경력 때문에 수군 적성이 S를 찍기도 했다. 천도에선 수군이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쓰기 힘든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만 철포능력치가 괜찮기 때문에 군소 다이묘에 후반 시나리오를 한다면 쓸만하다(특히 후반부 모리 가문이나 우키타 가문으로 플레이 한다면 중요한 인재풀 중의 한 명이다).

라이벌 가토 기요마사에 비하면 우월한 정치조차 압도적이진 않은데 열등한 전투력은 확 차이가 나서 하위호환 격의 인상을 준다.

전 시리즈에서는 숨겨진 능력인 종교는 가톨릭으로 나온다.

알다시피 혁신에서는 수군적성이 S이다. 능력치는 77/63/70/84의 정치만 +B급이고, 나머지는 -B의 무장. 적성들은 철포, 게략이 B이고, 병기, 내정이 A이고, 전법이 창금 1단계, 철포 1단계 매성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B급이다. 그대신 병기, 내정이 A이라 어느정도 굴려갈수가 있고 수전에서는 한 A급 정도 되고, 철포1을 가지고 있고 적성도 B이라서 육지에도 부장용으로 쓸만하다.

신생에서는 통솔 81, 무용 68, 지략 78, 정치 89가 되어 딱히 처지는 능력이 없는 정치 특화의 밸런스형 장수가 되었다. 특히 통솔이 가토 기요마사의 82와 거의 엇비슷하게 되었고. 지략은 78로 기요마사와 완전히 똑같아, 무력의 가토 vs 정치의 고니시로 차별화된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라이벌이었던 가토에 비해 처지는 능력이 없는 것은 임진왜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역대 시리즈 중 고니시의 능력치가 가장 높게 나온 시리즈다.

1588년 이후에는 규슈 남부의 다이묘로 등장하는데, 바로 남쪽엔 공포의 시마즈가 존재하고 북쪽엔 여러모로 우월한 가토 기요마사가 있어서 많이 어렵다. 그나마 사가라 가문 사람들을 주워다 쓸 수 있는 게 다행.

여담으로 위의 창조에서의 일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불멸의 이순신에서 고니시를 맡은 정승호와 비슷하게 생겼다. 코에이에서 참고한 것인지는 알수없다.[28]

4.5. 태합입지전 5

그럭저럭 쓸만한 문관. 상인 출신이라 그런지[29] 산술과 변설 적성이 높아서 군자금조달이나 매입, 매각 등 재정 관련 주명을 수행하기 딱 좋다. 가신으로 두고 있으면 돈도 잘 벌어오는 편. 하지만 전투 쪽으로는 능력치가 좋지는 않고 병과적성 중 수군 적성은 높지만 해적을 하지 않는이상 별 쓸모 없는 능력치라... 가톨릭 신자임을 보이는 듯 여기서는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다.이 게임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아버지인 고니시 류사도 상인 직업으로 등장하며 플레이도 가능하다. 근데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사카이가 아닌 주고쿠 지방의 히메지의 상인으로 나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플레이 할 경우엔 유키나가가 직속 부하로 들어오는 이벤트가 있다. 사족으로 패도의 장에서 상인으로 플레이 할 경우 당주인 아버지와 혈연 관계라 독립이벤트를 볼 수 없으니 주의. 아버지가 병사해서 본인이 이어받거나, 평정때마다 상인사분쟁이 뜨기만을 바라야 한다.

4.6. 전국무쌍 시리즈

4편까지 출연하지 않은 상태. 카토 키요마사도 3편에서 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시다 미츠나리, 기요마사와의 관계 덕에 출연을 원하는 인물을 투표할 때 십위 안에는 들고, 미쓰나리 주변 인물이 거진 다 나왔으니 앞으로 못 나올 법은 없다. 이제 서군에 추가할만한 사람은 그 아니면 바다를 헤엄쳐 오사카 전투와 엮을 수 있는 우키타 히데이에, 모리가와 엮을 수 있는 안코쿠지 에케이 뿐이다.

100만인의 전국무쌍에는 출현했는데, 서양풍의 복장을 하고, 주판을 들고 있는 채로 나왔다.

5. 만화

5.1. 마계전생

마계전생 OVA에서는 고니시의 비참한 최후에 원한을 품은 고니시의 가신이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를 배후조종하여 시마바라의 난을 일으키고 반란 실패 후 죽어가던 아마쿠사에게 마인으로 전생할 것을 제안하고, 어린아이들마저도 학살한 야규 쥬베이에 대한 원한[30]에 사무친 아마쿠사가 이를 받아들여, 아마쿠사를 사랑하던 가신의 딸을 제물로 마인으로 전생하는 내용이 나온다.

5.2. 효게모노

9권에서 첫 등장. 외모는 현존하는 초상화나 동상의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따르며, 어딘가 한군데씩은 똘끼가 있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비교적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 기질이 호방한 다른 다이묘들과 달리 신중하다 못해 소심해보이기까지 할 정도.

명나라심유경과는 함께 상인의 독립국을 건설하기로 의기투합한 베프 수준이며, 심유경과 함께 기본적으로 주전보다 주화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이시다 미츠나리와 같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간계로 구워삶아보려다 실패하는 장면도 잘 묘사되어 있다.

가토 기요마사와는 은근한 알력을 보인다. 가토가 포로 상태에서 도망치려던 임해군, 순화군과 마주쳐 싸닥션을 날리며 위협하자 간지나게 나타나서 왕자님들에게 사과하라며 훈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로는 등장이 좀 뜸해진 상태. 아마 역사적 수순대로 이시다 미츠나리 편에 붙어 상인 독립국의 야망을 불태우다 비장하게 최후를 맞을 듯하다.

5.3. 노부나가를 죽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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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일륜의 데마르카시온에서 등장. 1화에서 조선 침략에 동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조선군은 100년 간의 난세를 이겨낸 우리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득의양양하며, '태합 전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니 이대로 한성을 점령하자'고 부하들을 독려한다.

1화 전쟁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고니시는 조선을 복속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부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고, 사위 소 요시토시[31]가 국서를 위조[32]하자는 제안을 하자, 이게 실패한다면 조선의 사신도 물론이요 관련자 둘의 목숨도 없다라고 당황하지만, 소 요시토시는 위험한 방법인 걸 알지만, 마땅히 생각난 수는 이것 밖에 없고 아버지 소 요시시게도 이 난제의 부담감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는데, 자기도 따라갈 것 같다고 우는 사위의 모습을 본 고니시는 소 요시토시가 어떻게든 통역하고, 자신은 조선정벌을 막을 수 있는 분을 찾겠다고 한다. 이 꼼수로 조선에서 통신사가 찾아오고, 주라쿠타이에서 어떻게든 회담을 진행하는데 성공했으나 통신사 앞에서 명 정벌을 운운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중요한 공식석상에 츠루마츠를 데리고 온 무례에 황성일이 격분해 나가버리자 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이 일로 국서를 위조한 것이 걸릴 것이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이 실책을 가리기 위해 조선 침공의 선봉이 되었다. 그랬기에, 동래성 전투 시작 전 필담을 교환하면서 속으로 제발 길을 비켜주기를 바랬지만, 동래부사 송상헌의 죽기는 쉬워도 길은 비킬 수 없다는 답신을 끝으로 동래성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한성이 점령당하고 선조가 도망을 갔는데도 조선 백성들은 일본군에게 끝까지 저항했고, 조급해진 고니시는 다른 일본군 장수들처럼 조선 의병들과 조선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기독교인임을 어필하는 장면 다음에 학살을 명령하는 장면이 나와서, 똑같은 학살자 입장이었던 가토도 '나와 같은 학살자 주제에 성자 행세 하냐?'라고 조롱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유키나가는 열악한 조선 땅에서 기약도 희망도 없는 전쟁을 벌인다. 조선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물갈이를 비롯한 여러 병에 시달리고[33], 사방에서 조선 의병들과 명군이 들이닥치는 판국에, 유키나가는 '조선도 이렇게 넓은데 명은 어떻게 정벌할지' 걱정한다. 그나마 머나먼 평양 땅에서는 일본의 개신교 박해가 닿지 못할 것이라 여겨서 망중지한을 겸해 아우들과 예배를 드리려 하나, 그 때 조승훈이 이끄는 명군이 평양성에 당도한다. 유키나가가 이끄는 선발대는 2차 평양성 전투에서 명군을 격파했으나, 전투 도중 친아우 토노모노스케[34]와 사촌아우 안토니오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는다. 유키나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인가'하며 절망한다.

여름철이 되고, 한성에서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위시한 봉행들이 명나라 정벌 기획을 겸하여 시찰을 나서고 있었다. 다른 장수들이 한 번 명군을 격파해 본 유키나가를 치하하며 차후의 대책을 묻자, 유키나가는 '평양성 전투에서는 명군이 조선군처럼 우리의 화승총(조총)을 얕보다 당했지만 다음에 올 명군 후발대는 화승총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올 것이기에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이야기가 부족한 군량과 앞으로 올 혹독한 조선의 겨울로 바뀌고 모두가 동요하자,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친서를 들이대며 '나약한 소리 말고 태합 전하(히데요시)의 명을 받들어 명나라 정벌에 착수하라'고 윽박지른다. 이에 쌓여 있던 불만이 폭발하여, 시마즈 요시히로모리 테루모토 같은 영주들이 '어째서 우리들 시코쿠, 규슈의 영주들만 전쟁에 동원되고 마에다 토시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동부 지역의 영주들은 동원되지 않느냐,[35]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미츠나리에게 항의한다. 여기에 유키나가도 거들어서, '당신네 봉행들도 군량이 부족한 육지의 섬 평양에서 한 번 싸워 볼 테냐'라고 항의하고 평양성으로 돌아간다.

그 와중에 평양에 당도한 심유경이 도요토미의 요구 조건을 묻자, 유키나가는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 것은 조공길을 조선이 멋대로 막아서다'라며 심유경을 속인다. '정명가도'란 원 목적을 말하면 명이 더욱 강경하게 나갈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 이후 속은 듯한 심유경과 함께 화친을 추진하려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니시를 믿지 않았던 심유경이 명 대군을 끌고 오면서 크게 격분한다.

평화와 신앙의 자유를 중시하는 선한 면도 그려지지만, 작품 내외적인 평가는 전형적인 위선자. 상술했듯이 가토한테 위선자로 비난받는 장면도 있다. 애초에 대놓고 '일단 (임진왜란을) 막아보고, 좀 그러면 조선이 먼저 일본을 공격했다고 알리자.'라 사위한테 말하는 장면이 있으며, 평양성에 있던 쌀을 다 뺏어서 수많은 조선인들을 굶어 죽게하고는 '병사가 우선이다'란 식으로 퉁치기도 한다.

6. 영화

7. 다큐멘터리

7.1. 역사에의 초대 임진왜란

조선 침략군의 선봉장으로 나온다. 가토 기요마사보다 훨씬 비중이 높으며, 초반에는 반쯤 진 주인공이다시피 할 정도로 출연이 많다. 정발송상현을 차례로 격파한 후 신립마저 격파한 뒤 이렇게 외치며 돌격을 명령했다.
자, 이제 우리는 조선 전체 최강의 맹장 신립을 죽였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오직 북진 뿐이다. 자, 북진!

하지만 정작 한양에 도착해보니 성은 텅 비어 있고 조선의 선조 임금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있어서 망연자실했다. 이후에도 계속 승승장구하며 북진했으나 평양성에서의 패배 이후 계속 연전연패를 거듭한 끝에 왜교성에 갇히게 된다. 왜교성에서 꼼짝을 못 하게 된 고니시 유키나가는 진린을 매수해 왜교성을 무사히 빠져 나가기로 했는데 다음과 같은 밀약이었다.하지만 이 밀약이 이순신에게 차단 당하고 이순신은 오랜 기간 동안 조선을 유린한 왜군들을 살려서 보낼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분노해서 포로로 잡아둔 명나라 병사 2명의 손목을 잘라서 진린에게 보냈다.

이후 노량해전이 벌어지고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순신과 싸우면서 시간을 벌고 있는 동안 고니시 유키나가는 준비하고 있다가 해가 뜰 무렵 달랑 갑옷만 입고 모든 것을 버린 채 뛰어서 도망쳐 왜교성을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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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엔도 슈사쿠는 고니시 이외에도 오토모 소린 등 키리시탄 다이묘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주로 현실정치와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신앙인답지 못한 자신의 행동 때문에 고뇌하는 등장인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2] 유키나가의 관직명은 셋츠노카미(攝津守)라서 구분할 수 있다.[3] 작가는 작중 인물들의 대사, 서술 등을 통하여 임진왜란을 완전히 비합리적이고 무의미한 전쟁으로 보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편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전쟁이 일어난 개연성을 마계의 음모로 땜질했을까. 그래서 무의미한 전쟁을 원치 않은 고니시는 비교적 호의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명실공히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몸에 들어간 환수의 기운을 이기지 못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반쯤 덩어리 비슷한 것이 되어 목숨구걸을 하는 추한 모습으로 그려질 정도다.[4] 효력이 없다기보다는 고니시에게는 마수들이 이후 접근을 안했기 때문이다. 대신 닌자의 말대로 가토를 회유했다. 또한 오타 주리아덕에 고니시도 인간성과 신앙심을 회복하고 주리아 자체가 성녀에 버금갈 순수하고 정결한 영혼이라 마수 자체가 접근못했다고 주인공측 인물이 설명해준다. 왜란종결자 세계관에서는 마수들은 태생부터가 악한 존재라 불가의 법력이나 가톨릭 기도력에 취약하다 나오며, 대신 환계의 환수들은 선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이에 면역이 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마수들과 한편을 맺은 환수(스포일러)가 대신 나서서 고니시를 위협한다.[5] 이 소설은 사실 1990년대 초반 이후 절판되었다가 2012년 20여년만에 5권으로 재출간되었다. 전쟁 자체보다 외교 문제를 많이 다룬다. 임란 수년 전부터의 일본쓰시마 섬의 상황이라든가, 1593년즈음부터 정유재란 직전까지의 심유경과 고니시의 행적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6]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선조도요토미 히데요시부터 힘없는 백성들까지 객관적으로 묘사된다. 등장인물도 엄청많다. 그중에서도 고니시의 비중이 많다.[7] 아내에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가 가여워서 양녀로 삼았다"고 말하자 아내는 "전쟁이 없었다면 그 아이는 부모를 잃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직설을 날린다. 이에 고니시는 대꾸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다.[8] 가상인물이며 등장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원역사보다 고니시의 능력이 훨씬 올라간데다 일본인도 차별없이 제자로 받아준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 나라에 해를 입혔지만 상당한 능력자에 개념인인 듯. 주인공은 누군지 알면 조져버릴 생각이었지만 고니시가 끝까지 함구하여 정체는 결국 미스테리로 남았다.[9] 사신으로 왔을 때 아이누와의 교역 문제를 완벽한 성리학적 논리로 항의해 주인공과 조정신료들이 잠시나마 제대로 반박도 못했을 정도다.[10] 사실상 오다를 구한 대활약을 했음에도, 부하의 공은 장수의 공이라는 이유로 고니시의 활약은 모두 히데요시 것이 된 듯 하다. 작중 일본에 온 류성룡이 히데요시 보고 오다를 구한 장수 아니냐고 묻자 바로 표정이 썩기도 했다.[11] 더군다나 여기의 고니시에게 조선은 어린 시절 유학생활을 한 제2의 고향이므로 개인적으로도 침공하기 싫을 것이다.[12] 하지만 다른 일본 장수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거나 조선의 문화를 잘 몰라 학살과 약탈을 저지르려하며 총대장인 노부나가는 포로는 필요없다며 점령한 성의 병사들을 몰살한다. 거기다 본인도 해안포 사격 명령을 거부하는 조선인 포로 둘을 무참히 참수했다.[13] 원 역사에서는 천하인 직속 가신이었지만, 여기서는 배신(가신의 가신)이라 자신보다 영지 적은 해적영주들에게도 무시당한다. 이는 칠본장 등 다른 히데요시의 부하들도 마찬가지. 그래도, 라이벌 가토보다는 나은게 조선전문가로 나름 오다에게 인정받는 고니시와는 달리, 가토는 대놓고 애송이라고 까인다.[14] 1993년 MBC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는 정일권 역, 1995년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역,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정몽주 역, 2003년 SBS 드라마 <왕의 여자>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15] 용의 눈물에서 소 사다모리 역.[16] 그 어떤 표기법에서도 이것은 오류이며, 이렇게 되면 이름 마지막 글자를 長이 아니라 中을 쓰는 셈이 된다.[17] 초반에 조선측 인물들은 고증대로 '소서행장'으로 불렀으나 시청자들의 편의를 위해서인지 일정 시점부터는 조선측 일본측 할 것 없이 현지발음대로 불러주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갑자기 유키나'카'로 잘못 발음하는 일이 늘었다.[18] 마찬가지로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일본 수군 선봉장'이라는 자막을 붙여주곤 했다.[19] 이러한 행보의 변화는 역시 계속해서 이순신에게 패배를 거듭한 결과 스트레스가 쌓인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20] 물론 일본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류성룡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희가 다 이겼는데 이제는 우리가 이기게 생겼네?"라며 비웃듯이 말한 측면도 있었다.[21] 일본의 연극 무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배우인데 포스있게 나왔다.[22] 고니시의 풍백술은 패치 버전에서 쓰인다.[23] 사실 데미지 자체가 잘 박히는건 기병인데 보병 유닛들의 맷집이 워낙 약하고 물량위주로 운영하는데다 풍백술의 지속시간이 길어서 보병학살용으로도 잘 쓰이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일꾼에게도 잘 먹힌다. 해상전에서도 장수가 나서는 건 제한되어 있으므로 쏠쏠하게 도움이 되겠지만 건물 자체를 터뜨리기 위해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다.[24] 대신 본영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이시다 미츠나리를 생산한다.[25] 폭뢰격, 즉 범위 내 메카닉과 건물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이 생기는 검 무기다.[26] 고니시 유키나가의 관직이 세쓰노카미였다.[27] 원래는 여기서 패해 참수.[28] 코에이는 예전부터 드라마나 영화에 해당역할로 나온 배우를 참고해서 일러스트를 그린바 있다. 다테 마사무네독안룡 마사무네에 나온 와타나베 켄과 비슷하게 그린다던지.[29] 1575년 패도의 장 플레이 시에는 아예 직업이 상인이다. 아버지 아래에서 일하게 된다.[30] 사실 쥬베이는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그 직후 나타난 가신이 아이들의 목을 친 후 아마쿠사에게 쥬베이가 죽였다고 거짓말을 한 것인데 이로 인한 분노로 폭주하는 아마쿠사의 초능력에 위기에 빠진 쥬베이가 아이들의 목을 이용해(아이들의 목을 방패로 내밀고 아마쿠사가 공격하지 못하는 틈에 역습) 그를 쓰러뜨렸다.[31] 고니시의 딸 마리아가 그의 정처였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이혼하게 된다.[32] 조선의 복속을 요구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국서를 일본에 새 국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를 축하하는 사절단을 보내달라고 위조한다.[33] 그래서 평양성 전투를 다룬 30화에서 유키나가의 얼굴을 보면 혈색도 안 좋고 다크서클이 진하게 드리워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니 체중도 꽤 줄어든 모양으로, 국서 위조 편에 비해 눈에 띄게 초췌해 보인다.[34] 세례명 페드로[35] 다만 전쟁이 장기화되며 동부의 대영주들도 마에다와 도쿠가와 정도를 제외하면 조선으로 병력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