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05 01:38:42

고개(전연)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권 「전조록일(前趙錄一)」 2권 「전조록이(前趙錄二)」 3권 「전조록삼(前趙錄三)」 4권 「전조록사(前趙錄四)」
유연 · 유화 유총 유총 유총 · 유찬
<rowcolor=#fff> 5권 「전조록오(前趙錄五)」 6권 「전조록육(前趙錄六)」 7권 「전조록칠(前趙錄七)」 8권 「전조록팔(前趙錄八)」
유요 유요 유요 유선 · 유성 · 유익 · 유윤
<rowcolor=#fff> 9권 「전조록구(前趙錄九)」 10권 「전조록십(前趙錄十)」 11권 「후조록일(後趙錄一)」 12권 「후조록이(後趙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석륵 석륵
<rowcolor=#fff> 13권 「후조록삼(後趙錄三)」 14권 「후조록사(後趙錄四)」 15권 「후조록오(後趙錄五)」 16권 「후조록육(後趙錄六)」
석륵 석홍 석호 석호
<rowcolor=#fff> 17권 「후조록칠(後趙錄七)」 18권 「후조록팔(後趙錄八)」 19권 「후조록구(後趙錄九)」 20권 「후조록십(後趙錄十)」
석호 석세 · 석준 · 석감(鑒) 석민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21권 「후조록십일(後趙錄十一)」 22권 「후조록십이(後趙錄十二)」 23권 「전연록일(前燕錄一)」 24권 「전연록이(前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외 모용황
<rowcolor=#fff> 25권 「전연록삼(前燕錄三)」 26권 「전연록사(前燕錄四)」 27권 「전연록오(前燕錄五)」 28권 「전연록육(前燕錄六)」
모용황 모용준 모용준 모용위
<rowcolor=#fff> 29권 -2l 「전연록칠(前燕錄七)」 30권 「전연록팔(前燕錄八)」 31권 「전연록구(前燕錄九)」 32권 「전연록십(前燕錄十)」
모용위 토욕혼· 모용한· 모용인· 모용각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33권 「전진록일(前秦錄一)」 34권 「전진록이(前秦錄二)」 35권 「전진록삼(前秦錄三)」 36권 「전진록사(前秦錄四)」
부홍 부건 부생 부견
<rowcolor=#fff> 37권 「전진록오(前秦錄五)」 38권 「전진록육(前秦錄六)」 39권 「전진록칠(前秦錄七)」 40권 「전진록팔(前秦錄八)」
부견 부견 부비 부등
<rowcolor=#fff> 41권 「전진록구(前秦錄九)」 42권 「전진록십(前秦錄十)」 43권 「후연록일(後燕錄一)」 44권 「후연록이(後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수 모용수
<rowcolor=#fff> 45권 「후연록삼(後燕錄三)」 46권 「후연록사(後燕錄四)」 47권 「후연록오(後燕錄五)」 48권 「후연록육(後燕錄六)」
모용수 모용보 모용성 모용희
<rowcolor=#fff> 49권 「후연록칠(後燕錄七)」 50권 「후연록팔(後燕錄八)」 51권 「후연록구(後燕錄九)」 52권 「후연록십(後燕錄十)」
모용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53권 「후진록일(後秦錄一)」 54권 「후진록이(後秦錄二)」 55권 「후진록삼(後秦錄三)」 56권 「후진록사(後秦錄四)」
요익중 요양 요장 요흥
<rowcolor=#fff> 57권 「후진록오(後秦錄五)」 58권 「후진록육(後秦錄六)」 59권 「후진록칠(後秦錄七)」 60권 「후진록팔(後秦錄八)」
요흥 요흥 요홍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61권 「후진록구(後秦錄九)」 62권 「후진록십(後秦錄十)」 63권 「남연록일(南燕錄一)」 64권 「남연록이(南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덕 모용초
<rowcolor=#fff> 65권 「남연록삼(南燕錄三)」 66권 「하록일(夏錄一)」 67권 「하록이(夏錄二)」 68권 「하록삼(夏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혁련발발 혁련창 혁련정
<rowcolor=#fff> 69권 「하록사(夏錄四)」 70권 「전량록일(前涼錄一)」 71권 「전량록이(前涼錄二)」 72권 「전량록삼(前涼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궤 장실 장준
<rowcolor=#fff> 73권 「전량록사(前涼錄四)」 74권 「전량록오(前涼錄五)」 75권 「전량록육(前涼錄六)」 76권 「촉록일(蜀錄一)」
장중화 · 장령요 · 장조 장현정 · 장천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특
<rowcolor=#fff> 77권 「촉록이(蜀錄二)」 78권 「촉록삼(蜀錄三)」 79권 「촉록사(蜀錄四)」 80권 「촉록오(蜀錄五)」
이류 · 이웅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81권 「후량록일(後涼錄一)」 82권 「후량록이(後涼錄二)」 83권 「후량록삼(後涼錄三)」 84권 「후량록사(後涼錄四)」
여광 여소 · 여찬 여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85권 「서진록일(西秦錄一)」 86권 「서진록이(西秦錄二)」 87권 「서진록삼(西秦錄三)」 88권 「남량록일(南涼錄一)」
걸복국인 · 걸복건귀 걸복치반 · 걸복모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rowcolor=#fff> 89권 「남량록이(南涼錄二)」 90권 「남량록삼(南涼錄三)」 91권 「서량록일(西涼錄一)」 92권 「서량록이(西涼錄二)」
독발녹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고 이흠
<rowcolor=#fff> 93권 「서량록삼(西涼錄三)」 94권 「북량록일(北涼錄一)」 95권 「북량록이(北涼錄二)」 96권 「북량록삼(北涼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저거몽손 저거무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97권 「북량록사(北涼錄四)」 98권 「북연록일(北燕錄一)」 99권 「북연록이(北燕錄二)」 100권 「북연록삼(北燕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풍발 풍홍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 개요2. 생애

1. 개요

高開
(? ~352)

전연의 인물. 자는 불명. 기주(冀州) 발해군(勃海郡) 수현(蓚縣) 출신. 고첨의 장남.

2. 생애

모용외의 거듭된 설득에도 끝까지 전연에서 관직을 받지 않았던 아버지와는 달리, 고개는 연왕 모용준 재위기에 출사하여 창려(昌黎)태수를 지냈다.

영녕 2년(351년) 4월, 갈족후조 정권이 무너지고 염민염위가 들어서자, 발해 사람 봉약(逄約)이 수천 호를 거느리고 염위로 귀순하여 발해태수에 임명받았다. 염민은 여기에 더 나아가서 후조의 발해태수였던 유준(劉準)을 유주(幽州)자사로 삼고, 발해에서 나름 독자적인 세력을 거느리던 호족 봉방(封放)도 인정해주면서 방약, 유준, 봉방으로 하여금 각기 발해를 통치하게 하였다. 이에 연왕 모용준은 오재장군 봉혁에게는 방약을 토벌토록 하고, 고개에게는 유준과 봉방 토벌을 맡겼다. 다만 고개가 발해에 이르렀을 때, 유준과 봉방은 아무런 저항없이 항복하여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후 고개는 태원왕 모용각의 참군으로 배속되었다.

영화 8년(352년) 4월, 태원왕・보국장군 모용각을 따라 염민 정벌에 참여하였다. 모용각은 상산(常山) 방면으로 들어가던 염민군의 뒤를 쫓아 염대(廉臺)에서 따라잡고 전투를 하였는데, 10번 싸워 10번 모두 이기지 못하였다. 당시 염민의 군사들은 대부분 보병이었던 반면에, 전연군은 대부분 기병이었기에, 염민은 더욱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고자 인근 숲 속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이때 고개가 모용각에게 말했다.
"염민이 숲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그를 제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속히 경기병을 보내 적에게 보이게 하고, 못 이기는 척 후퇴하여 적을 평지로 유인한 뒤에 전군을 들어 공격해야 합니다."
모용각은 고개의 계책을 따랐고, 과연 염민은 유인책에 걸려들어 평지로 뛰쳐 나왔다가 전연군에게 패하여 결국 사로잡혔다. 그러나 고개는 전투 중에 입은 부상으로 사망하였다.

고개의 동생 고상(高商)은 강직하고 의연한 성정에 학문을 좋아하여 연왕 모용준 시기에 범양(范陽)태수를 지내고 있었는데,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피를 통하며 통곡하였다. 이 때문에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지자, 연왕 모용준은 그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참지 못하였고, 이내 좌우를 향해 말했다.
"자고로 형제의 우애 중 이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고상을 오늘부로 창려태수에 삼겠노라."
그러자 고상은 눈물을 흘리며
"신의 형이 이 군(郡)에서 사망하였으니, 신은 차마 이곳에 부임하지 못하겠습니다."
라 하였다. 이를 들은 모용준은 요서태수로 고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