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 ||
<colbgcolor=#bf1400> 경복궁 향오문 景福宮 嚮五門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 |
건축시기 | 1395년 (창건) / 1867년 (중건) |
<colbgcolor=#bf1400> 향오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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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복궁 강녕전의 정문이다.2. 이름
‘향오(嚮五)’ 뜻은 ‘오복(五福을) 향함(嚮)’이다. 《서경》 - 〈홍범〉 편에 나온 ‘향용오복(嚮用五福)’에서 따왔다.‘향용오복(嚮用五福)’은 ‘다섯 가지 복을 권유하여 누린다’는 뜻이다. 저기서 말하는 오복은 ‘수(壽: 목숨)’, ‘부(富: 재물)’, ‘강녕(康寧: 건강 및 편안함)’, ‘유호덕(攸好德: 덕을 베풀기 좋아함)’, ‘고종명(考終命: 제 명에 편히 죽음)’이다. 즉, 임금이 오복을 편하게 누리며 백성들 역시 오복을 누릴 수 있게 좋은 정치를 하라는 의미이다.
강녕전 이름도 오복의 종류 중 하나인 ‘강녕(康寧)’에서 따왔다.
3. 역사
1394년(태조 3년) 경복궁 창건 당시에 처음 지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탔고 270여 년 뒤인 1867년(고종 4년)에 중건하였다.강녕전이 1876년(고종 13년)에 화재를 입어 1888년(고종 25년)에 재건되었는데 저 때 향오문도 강녕전과 같이 불탔다 다시 지어졌는지는 모른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기 위해 강녕전, 교태전 일곽의 건물들을 해체, 이전하였다. 그러나 향오문과 강녕전 남행각은 무사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4. 구조
- 지붕은 맞배지붕, 처마는 홑처마로, 공포는 초익공 양식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양성바름을 하고 그 위에 용두와 취두를 두었다. 문짝과 측면의 벽은 붉은색 나무판이다. 문의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 단청은 모로단청[2]으로 칠했다.#
- 왕이 다니는 가운데 칸의 넓이를 양 옆 칸보다 넓게 만들었다.
- 각 칸의 인방 위에 풍혈을 뚫은 궁판을 올렸다. 좌, 우 칸에는 풍혈 8개가 뚫린 궁판을, 가운데 칸에는 풍혈 10개 뚫린 궁판 하나를 올렸다. 궁판들 위에 홍살을 놓았으며 가운데 칸 궁판에 현판을 걸었다.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