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02:38

경복궁 동십자각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3
현무문
천하제일복지천
오운각 옥련정
벽화실 청와대 관저
청와대 본관 청와대 녹지원 춘안당 융문당
칠궁 양정재 수궁(구 관저터) 융무당 태화궁
지희실 경농재(관풍루) 대유헌 경무대
청와대 위민관,헬기장
수궁 청와대 춘추관
마장 관가문 희맹공신단
금화문 팔도배미
청와대 영빈관,경호실
추성문 금위군직소 춘화문 춘생문
신무문 수문 계무문 광무문 춘도문 수문
숙문당 수문장청 군사방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 각감청 관문각
건청궁
서녹산 어구 동녹산
태원전 영사재 대왕대비전 세답방
순화궁 세답방 중궁전 세답방 종각
빈궁 세답방 공묵재 왕대비전 세답방 가회정 보현당 남여고 육우정 녹직처소 내재실
동장고 통화당 순화궁 외소주방 숙경재 서진설청 선원전 동진설청 경안당
순화궁 내소주방 진전 소주방 진전 생물방 화락당 나인처소
회안전 문경전 서장고 향원정만화당 벽혜당(왕대비전 생물방) 대향당 나인처소
정훈당
함화당 집경당 전기등소 만경전 건기당(왕대비전 내소주방) 요광당(왕대비전 외소주방) 어린이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나인처소
숙설소 영훈당
원역처소 빈궁 생물방 상궁처소 다경합 건복합
제관방 회광당(빈궁 내소주방) 광원당(빈궁 외소주방)
수인문 흥복전 중궁전 수방 대왕대비전 수방 제수합 영보당 벽월당(상궁처소)
중궁전 침방 대왕대비전 침방
국별장직소 원역처소(접견소) 장방 원역처소 아미산 자미당 자경전 집희당(대왕대비전 내소주방) 춘소당(대왕대비전 침방) 취운당(대왕대비전 수방) 나인처소
침채고 예춘당(대왕대비전 생물방) 벽로당(상궁처소) 웅향당(상궁처소)
국출신직소 함정당(대왕대비전 외소주방) 계응당(상궁처소)
하향정 임향당 나인처소
무겸직소 함원전 건순각
인지당 나인처소 보월당(상궁처소) 자운당(상궁처소) 나인처소
경회루 함홍각
교태전원길헌
복희당(대전 생물방)
북소위장직소 흠경각
양의문대전 내소주방난지당(대전 외소주방)대소대금방(나인처소)
응지당 강녕전연길당
파수각 경성전 연생전
수문 향오문
영추문 수문장청 내각(규장각) 검서청(규장각) 대전장방(내시부) 천추전 사정전 만춘전 자선당비현각 장방 수문장청 건춘문
습회당 협오당 장원당 중궁전 수랏간 왕대비전 수랏간 등촉방 등촉방 장방 관리사무소
군사방 수정전 별감방 군사방
초관직소 장무관직소 입심억석(내의원) 주원(사옹원) 수정문 사정문 오상방 원역처소
훈국군번직소 침의청(내의원) 약방(내의원) 내반원(내시부) 협의문
융무루ㅓ
근정전계인문
융문루
통장청 문기수청 춘방
서소위장직소 의약청(내의원) 영화문 계방
옥당
(홍문관)
검서청(규장각) 대전 수랏간 계조당 훈국군번처소 초관처소
누국 당후(승정원) 정원(승정원) 숭양문 월화문 근정문 일화문
일영대 선전관청 빈청
기별청
유화문
수각

덕양문
수각
봉선문 별군직청 주차장
영제교
춘방 책고 대청 상의원 면복각
신당 덕응방 북마랑 흥례문
전사청 연고 내사복시 거달처소 중마랑 동마랑 용성문 어도 협생문 계방 오위도총부
우마랑 국립고궁박물관 좌마랑 내구 연지 수문장청
매표소
군사방
수문장청
매표소
남소부장청 동소부장청
견마배청 남마랑 군사방 초관처소 영군직소
측사
측사 충장장청
서십자각 수문 광화문
(월대)
수문 동십자각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동십자각
景福宮 東十字閣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1 (사간동 126번지)
건축시기 1395년 (창건) / 1867년 (중건)
파일:동십자각.png
<colbgcolor=#bf1400> 동십자각[1]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경복궁망루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복궁과 떨어져 도로 정 중앙에 섬처럼 놓여있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58 (세종로)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궁성 정문 옆에 궁을 수비하는 망루를 두었다. 이것을 ‘궐(闕)’이라고 부른다. 즉, ‘궁궐(宮闕)’은 ‘궁(宮)’과 ‘망루(闕)’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물론 지역시대에 따라 궐의 모습도 달랐다. 그래서 궐이 정문과 가까울 때도 있었고, 멀 때도 있었다. 경복궁의 망루는 정문 광화문과 꽤 떨어져 있었으며 궁성 동남쪽, 서남쪽 끄트머리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그 중 동남쪽 망루가 바로 동십자각(東十字閣)이다. 서남쪽 망루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인데 일제강점기에 헐렸고, 현재는 동십자각만 남아 있다.

2. 이름

십자각(十字閣)은 말 그대로 건물 평면이 ‘열 십(十)’자인 건물을 말한다. 그런데 경복궁의 망루는 평면이 사각형이라 원칙적으로는 십자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볼 때 용마루가 ‘열 십(十)’자로 교차하는 모습이며, 망루와 맞닿은 궁장이 ‘열 십(十)’자 모양으로 교차해서 십자각이란 이름이 붙었다.#

3. 역사

파일:동십자각 원형.png
파일:동십자각 원형2.png
<colbgcolor=#bf1400> 경복궁 궁장과 붙어있던 시기에 촬영한 동십자각. 왼쪽은 궁성 밖에서, 오른쪽은 안에서 촬영한 것이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모르나, 망루라는 가장 기본적인 시설임을 감안할 때, 1395년(태조 4년)에 경복궁을 처음 지으면서 같이 조성한 듯 하다. 1427년(세종 9년)에 심하게 기울어져 철거했고, 이후 관련 기록은 없다.# 다만, 궁궐의 수비를 담당하는 중요한 건물인 만큼 머지않아 재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종 초에 흥선대원군경복궁을 중건할 때 복구했다. 《고종실록》의 이 기사를 보아 1866년(고종 3년) 무렵에는 이미 완공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조선박람회’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이 때 일제조선총독부에서[2] 박람회장 정문인 광화문[3]까지 도로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길을 확장하면서 동십자각을 에워싼 궁장을 헐었다. 그래서 동십자각은 길 한복판에 처럼 놓이게 되었고, 망루 위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이 때 사라졌다.

사실 저 정도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1923년 일제가 조선부업품공진회 개최와 동시에 영추문 앞으로 전차 선로를 개설했는데, 원활한 전차 통행을 위해 커브 길을 만들면서 동십자각과 대칭을 이루던 서십자각 건물 자체를 다 헐었기 때문이다. 동십자각 역시 삼청동 방향 전차 선로 개설 계획으로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천만다행으로 선로가 삼청동이 아닌 안국동 방면으로만 개설되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광복 이후 1972년 8월 3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받았다. 그러나 이미 경복궁 전체를 사적 제117호로 관리하고 있었기에 영역이 겹친다는 이유로 2006년 8월 28일 자로 지정 해제되었다.

1990년대 들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경복궁 복원사업을 진행할 때 광화문 권역 복원과 함께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원형으로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 동십자각의 경우, 정확히는 경복궁 담장과 잇고 없어진 계단을 복구하기로 한 것. 그러나 동십자각 담장 연결 시 도로가 좁아지는 문제가 생겨 현재까지 복원을 못하고 있다.

2018년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합의 끝에 동십자각은 현 위치에 두고 궁궐 담벽만 연결한다고 발표했다. 지금의 도로의 절반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우회도로를 완성한 후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4. 구조

5. 여담

파일:동십자각 조선박람회.png}}} ||
<colbgcolor=#bf1400> 조선박람회 개최 당시 동십자각을 덮은 조형물
상술한 1929년에 열린 조선박람회 때, 동십자각과 비슷하지만 훨씬 크기가 큰 임시 조형물을 동십자각 건물에 덧씌웠다.
}}} ||
<colbgcolor=#bf1400> 동십자각 조각상 발견을 다룬 [[KBS 뉴스 9|{{{#gold 〈KBS 뉴스 9〉}}}]] 클립
동십자각 계단 입구에 있었다가 담장 철거 시 사라졌던 서수 조각상을 문화재청에서 2019년에 발견했다. 이때까지 보관된 장소는 창덕궁 현장 사무실 근처였다. 궁궐 안에 있는 석조물 현황을 조사하다가 찾았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담장을 복원하면서 서수도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 사진 출처 - 카카오맵.[2] 경복궁 흥례문영제교 자리에 있었다.[3] 조선총독부 완공 직전인 1925년에 경복궁 동쪽 궁장(정확히는 건춘문 북쪽,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으로 옮겨졌다.[4] 스승 이종우의 회고에 따르면, 원제는 〈건설이냐? 파괴냐?〉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