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 ||
<colbgcolor=#bf1400> 경복궁 내의원 景福宮 內醫院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 |
건축시기 | 창건시기 미상 1867년 (중건) 1915년 이전 (철훼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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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복궁에 있는 내의원 청사이다. 사옹원 서쪽에 있다. 《북궐도형》에는 또 다른 이름인 약방(藥房)으로 적어두었다. 내의원은 궁중 의료기관, 쉽게 말해 왕실 병원이다. 자세한 내용은 내의원 문서 참조.2. 역사
궁 안에 꼭 필요한 기관이니만큼,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처음부터 현재 자리에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태종 대에는 내약방(內藥房)이었으며, 전의감에 속해 있었다가 1443년(세종 25년)에 세종이 이름을 내의원으로 바꾸고 독립시켰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고종 때 재건했으나 일제강점기에 헐렸고 이후 경복궁 2차 복원 공사 2단계(2023년~2034년)에서 제외되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복원될 예정이다.3. 구조
<colbgcolor=#bf1400> 《북궐도형》의 내의원 및 행각 내부 구성도 |
4. 부속 건물
4.1. -의관방(醫官房)-
내의원의 본청이다.
4.2. -의약청(醫藥廳)-
왕과 왕비의 병환이 위중할 때 설치되어 치료를 전담하던 곳이다.
4.3. -침의청(針醫廳)-
침술로 병을 다스리던 곳이다.
4.4. -입심억석(入審憶昔)-
창덕궁의 억석루처럼 중국 신화에 나오는 농사와 의약의 신인 신농(神農)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억석(憶昔)'의 뜻은 '옛날(昔)을 생각한다(億)'이다. 《한경지략》에 따르면, 영조가 내의원에다 신농(神農)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라고 하면서 '입심억석(入審憶昔)'이란 글자를 써서 하사했다고 한다. 신농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 중 한 명으로, 다양한 풀들을 일일이 먹어가면서 약의 효능을 알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의약의 창시자로 추앙받았다.[1] 즉, 신농을 생각하여 정성껏 약을 만들라는 의미이다.
<colbgcolor=#bf1400> 경복궁 입심억석에 걸려있던 '조화어약', '보호성궁' 현판 |
잘보면 '어(御)'과 '성궁(聖躬)'이 다른 글자보다 약간 높이 있다. 왕을 상징하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경복궁 2차 복원 계획에선 복원될 예정이었으나 복원계획 축소로 제외되었다.
4.5. -장무관직소(掌務官直所)-
각 관아의 장관 밑에서 실질적으로 사무를 관장하던 장무관들이 근무하던 곳으로 내의원의 사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보인다.
뒤쪽의 방 2칸은 규장각의 남외행각 동편과 연결되어 있었다.
원래의 경복궁 2차 복원 계획에선 복원될 예정이었으나 복원계획 축소로 제외되었다.
[1] 의약 뿐 아니라 농업의 창시자로도 잘 알려져있다. 애초에 이름이 '농사(農)의 신(神)'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