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8:44

강정호/여담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강정호

1. 이장석의 매물, 혹은 보물2. 국대전 강세?3. 게이?
3.1. 손아섭과의 친분
4. 나훈아5. 그 밖의 이야깃거리

1. 이장석의 매물, 혹은 보물

히어로즈가 자금난에 허덕이며 선수팔이로 연명하던 시절, 강정호 또한 매물로 올라오는 게 아니냐며 넥센 팬들의 걱정을 자아낸 적이 있었다. 특히 이장석이 안 팔겠다고 공언했던 황재균마저 롯데로 팔려갔었기에 불안감은 더했다. 아무래도 리그에서 얼마 안 되는, 그것도 몇 년에 한두명 나올까말까한 대형 내야수(유격수 포함 내야 전 포지션 소화 가능한) 자원이다보니 다른 구단에서도 탐내지 않을 수가 없는 게 현실.

우선 히어로즈와 현금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던 KIA가 유력한 트레이드 후보로 떠올랐었는데, 아무래도 강정호가 광주 출신이다보니 KIA 팬들도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허나 이미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야구장 신축으로 300억 이상을 투입한 터라 추가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날지 불투명했고, 유격수로는 김선빈이 이미 버티고 있으며 3루수에는 일본에서 돌아온 이범호가 영입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LG는 너무 오랜 세월 야구를 못했던 관계로 긴축에 들어가서 여유가 없었으며 오지환정성훈이 자리잡았다. 삼성에는 김상수박석민이 있고, 두산이야 뭐 너무 많아서 누굴 쓸지 고민하는 게 일상이니.

하지만 2010년에 기아 프론트가 넥센과 접촉했지만 김선빈+50억을 불러서 파토났고[1], 2012년에 뜬금없이 나온 기사에 의하면 실제로 삼성에선 김상수가 뻔히 있는데도[2] 강정호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넥센이 80억[3]을 부르는 덕분에 당연히 무산되었다.[4]이런 걸 보면 '모 팀엔 누구가 있고'라는 식의 가정도 히어로즈에겐 불안할 뿐. 문제의 기사

다행히 장원삼, 이택근, 이현승, 황재균, 고원준 등등이 줄줄이 팔려가는 와중에도 강정호는 끝까지 히어로즈 유니폼을 지켰다. 우선 아시안게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군면제를 받은 덕에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 때문에 트레이드가 힘들어졌다. 강정호가 트레이드 대상이 될 경우 현금 가치로 환산하여 언더머니까지 포함하면 50억에서 최대 80억까지 추정치가 나오는데 이 정도의 자금은 웬만한 S급 FA 선수 한 명 몸값[5]이나 다름없다. 또 2012년부터 히어로즈가 선수팔이를 하지 않아도 구단 운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리그에 안착하였고, 결정적으로 이장석이 거포 자원을 선호하는데다 세이버메트릭스까지 배워서 선수들의 실제 가치를 측정하는 상황이라 강정호가 FA로 이적은 할지언정 트레이드로 국내 다른 팀으로 팔려나갈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2014년 시즌 후 해외진출 허용 연한이 된다는 것이다. 내수 시장에 내놓기에는 너무 아까우니까 수출[6]강정호처럼 막강한 공격력과 안정된 수비를 자랑하고, 젊기까지 한 유격수는 빅리그에도 많지 않다. 염경엽 감독도 선수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무엇보다도 구단주가 빌리장석이다 보니 이적료나 포스팅 대박을 터뜨릴 꿈에 부풀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실제로 2014 시즌 후 포스팅을 신청하여 500만 2015달러가 최고액으로 나왔고 이장석은 포스팅을 허가했다. 낙찰 구단은 피츠버그 파이리츠. 그리고 2015년 1월 17일 최종 계약이 성립됨에 따라 넥센 구단은 포스팅비를 벌게 되었다.

2. 국대전 강세?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이후로 국가대표 단골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는데 유독 대만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는 2개의 홈런을 포함한 5타점을 올려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2006년의 도하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우승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고, 2013년에는 비록 탈락하였고 본인도 전반적으로 타격감이 좋지 않았으나 예선 마지막인 대만과의 경기에서 2:0으로 밀리고 있던 8회에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아올림으로써 팀을 1승 2패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구해 내었다. 물론 승리와는 상관없이 팀은 득실차로 1라운드 광탈했다. 그리고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1회부터 쓰리런 홈런을 치면서 대만 킬러로써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대만킬러 문단이 생기게 무섭게 바로 결승전에서 팀내 라이벌인 박병호와 함께 삽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년엔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감독 나카하타 키요시에게 호평을 들었다. 그가 메이저 진출하는 것이 확정안된 시기라는 걸 감안하면 이미 외국리그에서 눈여겨보고 있었다라고 볼 수 있다.

3. 게이?

'강게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가 게이인 이유.jpg그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증거 사진들. 하지만 의 증언에 따르면 게이가 아니라 밤의 황제라고 한다![7] 시구 행사 등을 위해 방문한 여자 아이돌과 사진을 찍었을 때도 무덤덤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사진 때문에 의혹이 더더욱 커지고 있다. EXID와의 기념 사진 물론 실제로는 게이가 아니다. 그저 다른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것뿐인데 그 모습을 게이로 몰아가는 것이다. 한 게임 방송에서 패널로 출연한 김민영이 야구는 잘 모르지만, 야구 선수 이름을 몇몇 아는데, 그 중 하나가 강정호라면서, 강정호가 자신의 친구와 사귀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방송 3분 5초부터.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nitkowski.jpg

<무한도전> 타인의 삶 특집에서 정준하와 같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나왔는데 무도갤에선 야갤에서 농담조로 나온 강게이 드립을 진짜로 믿어버렸다.

자신도 처음 이 별명을 듣고는 싫어했다고 한다. 근데 하는 행동을 보면 진짜 싫어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이제는 포털 메인에까지 자신의 찰진 사진이 올라갔다. Ang?
파일:/image/109/2012/01/30/201201301502775334_1.jpg

결국 최훈이 요런 약빤 만화를 그려주었다. WBC 유격수가 3명인 이유.JPG 참고로 두산 베어스의 선수는 손시헌.

2013년 6월 수도권 야구선수 K의 무면허 음주운전 사고가 터졌다. 그러나 "여자와 동승한 상태로라는 정보가 추가되자 올라온 베스트 댓글이 여자랑 동승했으니까 강정호는 제외(...). 실제로 범인이 아니었다… 거기다 같이 용의선상에 올랐던 김용의"김용의 연봉으론 아우디 앞바퀴밖에 못 산다"는 이유로 탈락. 2013시즌 김용의의 연봉은 5,000만 원이다. 아무리 연봉이 5,000만 원 미만이라도 1군에 풀 타임 등록만 되면 KBO 규정에 따라 출전수당으로 5,000만 원이 보장된다는 걸 감안한다면 사실상 1군 최저 연봉이다.[8]

재미있는 점은 강정호가 살고 있는 구로구 신도림동 아파트의 같은 층 옆집(!!)에 유한준, 같은 동(!!)에 박병호가 신혼 살림을 차렸다는 것. 정말 우연의 일치로 같은 아파트를 구매하게 되었다는데 그 덕에 강정호는 심심하면 알콩달콩한 신혼집에 쳐들어갔었다고... 박병호는 신도림동에 살고 있다가 경기도 김포시로 이사갔다고 한다.

XTM공서영 아나운서가 강정호와 임용수 아나운서와의 인터뷰 중 불쑥 나타나 "강정호 선수 진짜 게이예요?"하는 돌직구를 날렸으나 강정호는 '남자는 별로 안 좋아한다' 하여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혔다.
파일:external/image.wowtv.co.kr/B20130603182222933.jpg

2013년 6월 4일 야구 읽어주는 남자에서 로지로부터 '강정호와 서건창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라는 질문을 대놓고 받았다.

한편 세계일보에서는 '강정호 "나는 남자 좋아해요"'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물론 오타.

2013년 6월 27일 SK전에서 크리스 세든에게 4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완벽하게 틀어막혔는데, 세든의 출중한 외모 덕에 게이에게 미남계가 통했다는 드립이 흥했다. 최훈야구친구에서 만화로 그림으로서 확인사살.

이 별명이 해외의 야구 팬들에게도 알려졌는지 한 팬페이지에서는 그의 성적지향에 대해(...) 투표를 하기도 했는데... 파일:KR9IArh.jpg
온갖 한국 야구팬들이 몰려가서 게이에 몰표를 넣는 바람에 졸지에 게이가 되어버렸다.

강정호의 파이리츠 이적 이후 팀 동료들이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질문한 기사가 올라왔는데 역시 베스트 댓글이...

혀갤에 "강정호는 팬 서비스가 너무 과도하게 좋아서 문제였다"라는 후기가 올라온 적이 있다. 사진을 찍는데 팬의 허리에 강정호가 손을 얹어서 팬이 엄청 당황했다고... #

미국에 가서도 의심스러운(?) 행각은 멈추지 않고 있다.
파일:/image/109/2015/05/23/201505230601773071_555f99634c847_99_20150523060303.jpg
기사 제목이 강정호 품에 안긴 그레고리 폴랑코
파일:/image/109/2015/05/23/201505230604774361_555f99ffa99e9_99_20150523060603.jpg
마르테 '강정호 같이 가~'
파일:/image/409/2015/05/23/051450859__MG_1869.jpg
강정호. 프란시스코 서벨리와 깊은 우정 과시
파일:/image/109/2015/05/27/201505271144779754_5565307e38ed8_99_20150527115203.jpg
강정호가 사구 맞은 부위를 애틋하게 쓰다듬는 닐 워커

현재 영어를 배우고있다는데 문제는 영어 과외 교사가 현지 남성이라는 말에 또 게이 드립이 돌고 있다(...). #

그러나 한동안 별다른 일이 없는 관계로 강게이라는 별명이 잊혀갔지만... 8월 10일 강정호가 쓰리런 홈런을 날리고 다음 회에서 프란시스코 서벨리가 솔로 홈런을 날린 뒤 덕아웃에서 서벨리가 강정호의 이마에 뽀뽀하는 장면이 잡히면서 꼼짝없는 게이 인증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이 경기는 ESPN의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 전국 방송이었다!! 문제의 그 장면

그리하여 급기야는 강게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오르고야 말았다!! 인터넷 중앙일보 기사 파일:iAZJGwr.jpg

하지만 이 모든 논란은 성폭행 논란이 터지면서 완전히 종식되었다. 차후 무고인게 밝혀지자마자 다시 살아나긴 했지만 그 뒤에 결혼까지 하면서 완전히 매장된 별명이 되었다. 다만 여전히 강정호를 지칭할 때 불리곤 한다.

3.1. 손아섭과의 친분

2014년 이후 내용이 많아져서 항목으로 분리했다.
파일:external/de1e5413d77a9d00d4ce7b7bdd0d8b04ccacca2de405362c50333e00e9fd7a21.jpg
나야? 쟤야? 똑바로 말해
파일:external/b487cd0d31daa01c22bda3fdff6383d98fccb34af45612500132f752f198f70f.jpg
에이씨
...문제의 5월 16일 장면.

4. 나훈아

'강게이' 별명 못지 않게 유명한 별명으로 '목동 나훈아'가 있었다. 2013년 시범경기 때 아프리카 넥센 자체 중계에서 이장석 대표가 '목동나훈아'라고 말하자, 같이 중계하던 직원이 "저 강정호 선수가 그 별명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는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피츠버그 올스타 내야수 조시 해리슨김선신에게 나훈아 이야기를 듣고선 직접 '나훈아'로 인증(?)하고야 말았다. 기사

파일:/image/zoominusa/2011/05/14/kmh_889142.jpg

파일:external/img.asiatoday.co.kr/2014120801000708500046551.jpg

피츠버그에서 목동 나훈아라고 쓴 피켓을 가져온 팬에게 정색했다... 강게이 드립에도 어느 정도 웃고 넘기던 걸 보면 정말 싫어하는 듯 하다.

5. 그 밖의 이야깃거리

이후 고스롭은 급히 트위터로 "정호라는 이름이 한국에서 괜찮은 이름인가?"[12]라고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았고, "정호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평범하고 흔한 이름이다"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121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12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조건이 황재균<->김민성 트레이드와 비슷했다고.[2] 물론 당시 김상수는 풀타임 유격수 1년차라 소포모어 징크스가 우려되기도 했고, 발은 빨랐지만(30도루) 괜찮은 타율(.278)에 비해 장타율이 썩 좋지 않았다.[3] 이 때는 이미 아시안 게임으로 병역이 해결된 이후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였다.[4] 3년 후 피츠버그에서 포스팅비 500만 달러(한화 약 55억 원)에 영입하게 되면서 이 때 강정호를 지켜낸 덕을 톡톡히 본다.[5] 사실 이것도 2013년 시즌 후 FA 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면서 올라간 금액이다.[6] 취소선이 쳐져 있으나 팀 입장에서는 최선의 전략으로, 국내 타 구단으로 트레이드해 경쟁 팀의 전력을 상승시킬 바에야 이적료를 받고 해외로 보내는 것이 훨씬 낫다. 실제로 히어로즈는 강정호의 포스팅비로 50억 원을 벌어들였다.[7] 강정호는 2010년 여자친구와 결별했다고 한다.[8] 다만 진지빨자면 실제 아우디를 타고 사고를 낸 김민우도 억대 연봉을 받은 해가 한두번밖에 없었던 게 함정이라 김용의보다 크게 돈을 많이 벌던 것도 아녔다.[9] 원래 니퍼트가 마운드에서 바지를 자주 고치는 버릇이 있다.[10] 사실 My boy 라는 문구는 영어권에서 친구에게 흔히들 쓰는 표현이다. 아마 미국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의 친구가 주인공이 뭔가를 해냈을 때 'That's my boy!'라고 쓰는 걸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11] 자신이 트레이드된다면 팬들이 대응해주실 것이라는 인터뷰에서 유래됐다.[12] 원문은 "Is Jungho considered a great name? Or do kids make fun of people named Jungho? Would you ever name your kids Jungho?"로, 해석하면 "정호라는 이름이 좋은 이름인가요? 아니면 애들이 정호라는 이름으로 놀리나요? 당신은 당신의 자녀에게 정호라는 이름을 지어주나요?"로, 꽤나 다급하면서도 진지하다.[13] 2024년 6월 8일 기준 본명으로 원상복귀했다.[14] 2024년 11월 1일 16차 라이브 업데이트와 함께 실명으로의 변경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