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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00:55:28

간장 두 종지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내용3. 한현우 기자에 대해4. 문제점
4.1. 지나친 비약4.2. 격이 떨어지는 표현 사용4.3. 거짓말 가능성
5. 반응6. 기타

1. 개요

2015년 11월 28일조선일보 B3면에 실린 칼럼으로 한현우 주말뉴스부장[1]이 작성했으며 오피니언란에 걸맞지 않게, 유려한 수사법을 가졌으나 예민한 수준을 넘어 신경질적인 수준의 칼럼으로 구설수에 올랐다가 가십으로 사그라들었다.

기사 링크: 조선일보, 다음 뉴스

언론인, 그것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제도권 언론사인 조선일보의 부장 위치에 있다는 사람임에도 간장 두 종지(4인 착석 중 간장 2개인 상황)를 더 안 줘서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로 간장 못 받은 상황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약시키는 칼럼을 썼다.

물론 중국집 주인장에게 간장을 두 종지 더 달라는 부탁은 전혀 문제가 없다. 종갓집 간장이 아닌 이상 그냥 내주면 그만일 뿐이다. 2인당 한 종지라는 건 네 명이서 두 명끼리 같은 간장 종지를 써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도 위생적으로 당연히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간장이 아니다.

기자가 신문을 사유화한 뒤 매우 사소한 일을 신경질적으로 쓴 것으로 씁쓸한 사례다. 중국집에서 고작 간장 두 종지 안 가져다 줬다고 마음이 제대로 상해 화려하며 정돈된 격식 있는 수사법으로 본인의 처지를 길게 서술해 지면을 낭비한 유명한 사례다.

가장 문제점은 마지막에 사실상 중식당을 저격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소거법으로 유추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지면을 갑질 목적으로 사유화한 셈이다.

2. 내용

파일:간장 두 종지.jpg
[Why] 간장 두 종지
한현우·주말뉴스부장

[마감날 문득]

모든 우리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없고 모든 남의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많다. 태평로를 사이에 둔 동아일보 기자들이 조선일보 앞에 와서 밥을 먹고 조선일보 기자들은 동아일보 쪽에 가서 밥을 먹는다. 기이한 일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 귀찮아서 어쩔 수 없이 회사 근처 중국집에 갔다. 탕수육 하나와 짬뽕 짜장 볶음밥 등을 시켰다. 탕수육이 먼저 나왔는데 간장 종지가 두 개뿐이다. 우리 일행은 네 명인데 간장은 두 개. 종업원을 불러 "간장 두 개 더 주세요" 했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간장은 2인당 하나입니다."

간장은 2인당 하나. 대가리 두 개당 하나. 간장님은 너 같은 놈한테 함부로 몸을 주지 않는단다, 이 짬뽕이나 먹고 떨어질 놈아. 그렇게 환청이 증폭되면서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여기가 무슨 배급사회인가. 내가 아우슈비츠에 끌려가다가 "마지막 소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짬뽕 한 그릇과 탕수육 몇 점 먹는 것이오"라고 애걸하고, 검은 제복을 입은 간수가 "네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마. 그러나 간장은 2인당 하나"라고 말하는, 뭐 그런 것인가. 내가 짜장면 한 그릇 시키고 "한 그릇 시켰지만 두 그릇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도 아니고 "군만두 시켰으나 탕수육을 서비스로 줄 수 있나요"라고 물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간장은 2인당 하나라니. 당장 쿠팡이나 위메프에 간장 한 박스를 주문해 이 집에 배달시키고 다음에 와서는 "내가 킵해놓은 간장 있지? 그것 좀 가져와. 대접에 간장을 부어 먹을 테니까 대접도 네 개"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어떤 경우에는 을이 갑을 만든다.

매식(買食)이 일상인 직장인들과 매식(賣食)이 생계인 음식점 종사자들은 항상 부딪힌다. 서로 조심해야 한다. 설렁탕을 주문했고 설렁탕이 나왔는데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먹은 만큼 돈을 냈는데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이 이상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그 중국집에 다시는 안 갈 생각이다. 간장 두 종지를 주지 않았다는 그 옹졸한 이유 때문이다. 그 식당이 어딘지는 밝힐 수 없다. '중화', '동영관', '루이'는 아니다.

3. 한현우 기자에 대해

이 기사를 작성한 장본인인 한현우(韓賢祐, 1967 ~ ) 기자는 이 사건으로부터 11년 전인 2004년문희준 락 자격증 논란을 빚었던 기사를 쓴 범인이기도 하다. 저 기사의 락 자격증 운운하는 소리도 마찬가지로 왜곡보도이며 사실 기자가 문희준을 반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하도록 협박해서 억지로 만든 상황이다.

그는 다른 칼럼으로도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 청춘이여, 록을 들어라[2]

2016년 5월 21일에 냉면 예찬 칼럼을 내놓았는데 기사의 서문이 이렇다. "다시는 젊은 후배들과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미각(味覺)만 아직 미성년에 머물러 있는 그들에게 1그릇 1만원짜리 냉면을 사줘봐야 '뭐 이런 걸 먹으러 택시를 타고 오나'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들은 심지어 냉면의 5분의 3을 남기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먹은 게 없는데 도대체 뭘 잘 먹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이번에는 "서울 을지면옥은 그중에서도 나의 평양냉면 이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이다."이라고 자기 마음에 드는 냉면집을 마치 광고하듯이 홍보했다.[3] 앞선 논란들이 있었음에도 냉면을 또 갑자기 들고 나와서 역시 조선일보 기자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자신의 무전여행 경험을 얘기하더니 뜬금없이 '포켓몬이 청년들에게 어떤 실존주의적 물음을 던지는지는 모르겠다'며 '게임에 열광하는 흙수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칼럼을 썼다.

2018년 6월 25일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칼럼을 기재하였다. # 1970년대의 신입사원과 2010년대의 신입사원을 비교하면서 2010년대의 신입사원은 패기와 열정이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4] 이 칼럼이 기재된 지 얼마 안 있어 미디어스에서 이 칼럼에 대한 반박이 올라왔다. 요지는 열정을 쏟아부을 환경을 만들지도 않았으면서 열정을 강요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

결국 2018년 1월 이런 사건들이 빌미가 되어 문화2부장으로 전보되었는데 이는 좌천당한 것이다. 2019년에 다시 논설위원실로 전보되었다.

4. 문제점

4.1. 지나친 비약

간장 종지를 더 달라는 부탁은 잘못이 없으며 안 준다니 화 내는 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화를 인심이 없다며 툴툴대는 수준이 아니라 언론 칼럼에 대문짝만하게, 그것도 과장되게 썼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자신의 이해득실에 한해서는 칼같이 철저한 내로남불과 보복성 칼럼은 덤.

간장뿐만 아니라 반찬 및 부자재는 모든 업소가 자신만의 기준을 바탕으로 손님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물은 셀프 같은 것들이다. 그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음식 맛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가 방문을 자제하는 등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지나친 업태를 보일 때는 직접적으로 항의할 수도 있다.

이런 평가들 속에서 업장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이 자본주의 경쟁체제다. 다만 2인당 간장 1종지라는 업장의 내규가 과연 거대언론의 칼럼에 오르내릴 정도로 큰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애초에 그 룰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찾아가면 된다. 충분히 개인에게 그럴 자유가 있으며 업장의 입장에서도 그 정도의 룰을 정할 자유는 충분히 있다.

게다가 "간장은 2인당 하나. 대가리 두 개당 하나. 간장은 너 같은 놈한테 함부로 몸을 주지 않는단다, 이 짬뽕이나 먹고 떨어질 놈아. 그렇게 환청이 증폭되면서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문장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피해망상적 의식의 흐름을 보면 감정상태가 무척 위태로워 보이는 데다 워낙 일반적이지 않은 반응인 까닭에 칼럼의 품질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집필자 개인의 정신건강을 염려하는 의견도 있었다. 설령 이 글을 올린 날에 심사가 급격히 꼬일 만한 어떤 다른 일을 겪은 뒤에 상기한 중국집에서의 일을 겪었다고 해도 그것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풀어낸 것을 정당화시키기는 힘들다.

그 다음에 이 상황이 '아우슈비츠'에서 군인에게 죽기 전에 중국음식이랑 간장 좀 달라고 간청하는 그런 상황이라는 비유를 한 건데 기자이기 이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사용해서는 안 될 아주 몰상식한 단어 선택이다. 과연 이 기사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기자의 찌질한 사적 고발이라는 것을 굳이 덮어서 사회적으로 '고객들에게 가능한 서비스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몰인정한 가게들'에 대한 것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하면 이 기사는 문화와 대중 상업에 대한 것이지 결국 사회, 국가, 정치에 대해 다루는 기사가 절대로 아니다. 한 기사가 다루는 분야가 있다면 그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적절한 어휘와 표현이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식당에 대해 다루면서 비유로 다른 나라의 유명한 시장거리나 그 식당에 간 정치인을 언급하는 등 간접적으로 사회/외교와 연관이 있게 쓰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비유를 근거로 끔찍한 인류 학살인 홀로코스트의 현장인 '아유슈비츠'를 언급하는 것은 애초에 이 기사에 쓰일 표현도 아니며 그 표현을 과연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성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가치도 없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의 소재지인 폴란드나 거기서 죽어나간 유대인들의 나라인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간 기자는 맞아죽어도 할말 없을 수준이다.

마지막에서 2번째 문단을 보면 '매식(買食)이 일상인 직장인들과 매식(賣食)이 생계인 음식점 종사자들은 항상 부딪힌다. 서로 조심해야 한다. 설렁탕을 주문했고 설렁탕이 나왔는데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먹은 만큼 돈을 냈는데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이 이상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사람이 한 말은 결국 손님은 자기가 시킨 메뉴가 나왔는데 왜 고맙다고 얘기해야 하며 주인은 손님이 당연히 내야할 돈을 낸건데 왜 고맙다고 얘기해야 하냐는 산술적 발상인데 고맙다고 얘기하는 게 그렇게 문제고 그렇게 불만일 일인가? 그건 이 이상한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서나 있는 기본적인 사람 살아가는 예의의 문제이고 오히려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한국보다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액면가(돈)를 냈으니 상대가 몸소 시간과 경험과 땀을 흘려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까지도 못 주겠다는, 칼럼의 말마따나 '옹졸한' 황금만능주의적 사고방식이며, 인간관계를 극한까지 돈으로 환산하려 할 경우 얼마나 사람의 인격이 비틀어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타인과 사회의 도움이 없으면 돈은 결국 잘 안 타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함에도 사회의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이란 사람이 이를 망각하는 것이다.

4.2. 격이 떨어지는 표현 사용

'대가리', '놈', '몸을 주지 않는단다', '킵 해놓은'과 같이 수준 낮은 표현들을 버젓이 신문에 기재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설사 실제 발언을 뉴스 기사에서 보도하더라도 순화될 법한 표현들이다. 식당을 상대로 "... 있지? 그것 좀 가져와."라고 심정을 토로하거나 '다시는 안 갈 생각이다... 옹졸한 이유 때문이다.'라고 속마음을 내비치면서 인격 수준까지 의심하게 했다.

끝에서는 '그 식당이 어딘지는 밝힐 수 없다. '중화', '동영관', '루이'는 아니다.'라고 중식당을 저격했는데 이것 역시 안 가르쳐주겠다면서 바로 가르쳐주는 듯한 문구라 치졸해 보인다는 반응이 많다.[5] 더구나 2015년 당시 조선일보 본사 주변 중식당은 4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식당이 특정됐다.[6]

4.3. 거짓말 가능성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사실 식당 주인이 직원의 응대방식에 대해 사과한 뒤 간장을 더 갖다 줬고 계산할 때 찍어주는 도장도 하나 더 찍어 줬다고 한다. 조선일보 그 중식당, 간장 줬고 종지 더 샀다

중화요리집에서 간장 종지는 단순히 1인당 1개가 식사 시 편리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지만 고급 중식당에서도 2인당 1개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츰 변화해야 할 문제지만 그 식당은 허름한 변두리 중국집도 아니고 제법 고급 중식당에 속하는데[7] 서비스가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고 쳐도 주인은 이를 알고 제대로 사과하고 적절히 수습했지만 기자가 데스크로 돌아와 제대로 사고를 터뜨린 것.

엄밀히 따지면 거짓말은 아니고 뒷 얘기를 생략한 것이다. 그런데 뒷 얘기가 등장하면 중화요리집을 아우슈비츠로 탈바꿈시킨 화자의 논지가 흐트러지게 되는 데다 칼럼의 의도 역시 달성할 수 없게 되니 가위질된 것 아닐까 추측할 따름일 뿐이다.

5. 반응


反조선일보 경향의 사이트는 물론이고 조선일보 구독자들 사이에서도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2015년에 조선일보 회사 앞에 있는 중국집은 4개밖에 없었다. 그 중 세 곳이 아니라고 했으니 네티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도 저 칼럼의 중국집이 어디인지를 알아냈고 뜻하지 않게 바이럴 마케팅을 받아 버린 저 집은 이제 흥할 것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도 11월 30일 월요일이 되자 폭격을 날렸다.한겨레는 간장 두종지 사건을 인용해서 원전안전위원을 비판했다.
그 다음 날인 12월 1일에도 커뮤니티와 언론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6. 기타


[1] 1967년생.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1993년에 조선일보에 입사했고 2020년 기준으로 조선일보 논설위원 자리에 있다.[2] 이 기사도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닌 왜곡이 판을 치고 있으며 이 헛소리에 낚인 (구)주식 갤러리 이용자들(우파, 보수 성향이 절대다수)은 온갖 쌍욕을 섞어 가면서 한국 록 전체를 비하했다. 글에서 언급된 당사자인 신대철의 페이스북[3] 출처1, 출처2[4] 이런 '요즘 젊은 것들은' 운운은 본인이야말로 젊을 때 실컷 들은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 수준의 꼰대질일 뿐이다.[5] 특히 이 막줄이 화룡점정이라는 반응도 굉장히 많다.[6] '열빈 광화문점'으로, 조선일보 본사 건물 바로 옆에 있다.[7] 그러니 그릇이 부족해 그랬다는 말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