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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1 11:37:04

사카모토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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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사카모토 류이치
坂本 龍一 | Ryuichi Sakamoto
파일:RyuichiSakamoto2023.jpg
출생 1952년 1월 17일
도쿄도 나카노구
사망 2023년 3월 28일 (향년 71세)
도쿄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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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170cm
부모 아버지 사카모토 카즈키(1921~2002)[2]
어머니 사카모토 케이코(1925~2010)[3]
자녀 장녀 사카모토 아키코(1972~)[4]
장남 사카모토 후타(1975~)[5]
차녀 사카모토 미우(1980~)[6]
차남 소라 네오(1991~)[7]
학력 세타가야구립 소시가야 초등학교 (졸업)
세타가야구립 치토세 중학교 (졸업)
도쿄도립 신주쿠 고등학교 (졸업)[8]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작곡과 / 학사)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음악연구과 작곡전공 / 석사)
직업 음악가,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피아니스트, 키보디스트, 배우
레이블 일본 컬럼비아(1978 - 1979)
알파 레코드(1978 - 1983)
MIDI / SCHOOL(1984 - 1986)
CBS 소니 / TERRAPIN(1987)
버진 레코드(1989 - 1991)
도시바 EMI(1993)
포 라이프 레코드 / güt(1994 - 1997)
워너 뮤직 재팬(1998 - 2006)
commmons(2006 -)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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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름3. 생애4. 음악 스타일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5.2. EP5.3. 사운드트랙
6. 필모그래피7. 오토바이오그래피8.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9. 다른 아티스트와의 관계10. 논란 및 사건 사고11. 여담

1. 개요

일본작곡가이자 뮤지션.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의 음악가로, 특히 영화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골든글로브상그래미 어워드[9]를 수상한 인물이자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다.

2. 이름

坂本龍一 는 일본인의 인명이므로 일본에서는 당연히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읽지만, 서양에서는 일본인들의 해외 진출시 또는 서구권에 본인들을 알리던 관례대로 성씨와 명을 도치시킨 ‘류이치 사카모토’로 소개되었고, 이 이름이 한국에도 그대로 소개되어 아직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양식 표기대로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부른다.[10] 비슷한 예로는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음악가 구라모토 유키 역시 '유키 구라모토'로서 훨씬 많이 알려져있다.

네이버에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검색해도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등재된 프로필이 표시되는데, 법적으로는 엄연히 잘못된 표기이다.[11] 허나, 네이버에 등재된 그의 인적 사항은 본인 또는 대리인이 직접 기재하였다고 적혀 있으므로, 일본 외의 모든 국가에선 서양식 로마자 표기법을 기준으로 자신을 소개하길 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외국인들에게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알려지길 원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것과 국가나 공적 문서 등에서 그를 공식적으로 표기하는 기준을 따지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일본인이며, 그는 별도의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 또한 아니다. 일본은 이중국적에 관해 한국과 유사한 법적 명시 사항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가 서구에 이름을 알린 동양인이고 오랜 시간 미국을 왕래하며 살아왔다 하더라도 그는 법적 복수국적을 취득하거나 국적을 변경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가 공식적인 서류나 인물 등재 자료, 언론 기사 등에 기재될 시 법적으로 명시된 권고 사항과 형평성 유지 등의 원칙에 따라 그의 이름은 '성' 과 '이름' 순으로 적힌 '사카모토 류이치' 라고 적는 것이 권고된다고 할 수 있다.

3.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사카모토 류이치/생애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사카모토 류이치/생애#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사카모토 류이치/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음악 스타일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클로드 드뷔시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에 많은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자서전에서는 한때는 진지하게 자신이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믿었을 정도였다.[12] 실제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바흐의 곡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의 기악곡 여러 곳에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적 구조가 발견된다. 실제로 헐리우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해진 OST곡은 드뷔시의 달빛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핵심 인 반복되는 멜로디 조차 비슷하다.

이 외에도 고전음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학도답게 많은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다양한 나라들의 민속음악에도 관심이 많고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마지막 황제의 사운드트랙 제작 당시 의뢰를 받고 중국으로 날아가기 전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OST인 만큼 구할 수 있는 중국 음악의 음반을 모조리 구해서 공부하고 갔다고 자서전에서도 밝힌 바 있다. 한국의 민속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아주 오랫동안 교류하는 국악인들이 많이 있다.

재즈, 탱고, 보사노바, 영화음악을 비롯해 일렉트로니카와 월드뮤직[13][14], 뉴에이지, 힙합까지 아우르는 음악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싫어하는 음악으론 헤비메탈, 비주얼계를 꼽았다. 헤비메탈에서 더 마니악한 데스메탈은 들어보고 싶지도 않다고 하며 비주얼계는 촌스럽다는 것이 이유. 젊은 시절에는 컨트리 뮤직, 하와이안 음악을 싫어했는데 나이를 먹어가고 하와이를 직접 방문해보면서 좋아졌다고 한다.

많은 수의 영화 음악을 맡은 만큼 그가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에도 명곡이 많은데, 앞서 언급된 《전장의 크리스마스》나 《마지막 황제》 외에도 《The Sheltering Sky》의 동명 테마곡 The Sheltering Sky, 《철도원》의 테마곡 Popoya, 《바벨》 중에 나오는 Bibo No Aozora[15] 등이 유명하다.

대표곡들은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 시절부터 엄청나게 많다.[16] YMO 시절 곡들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연주한 곡들의 느낌도 각별한데, 각각의 원곡과 피아노 편곡 중 하나씩만 알고 있기에는 대단히 아쉬울 것이다. 인기있는 필수적인 몇 곡만 들어보고 싶다면 Self-Portrait(페이지 상단의 곡), Technopolis, Tong Poo, Energy Flow, Tibetan Dance,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등. 아마도 그의 곡 중에 제목을 몰라도 어느 한 곡 정도는 들어봤다 싶을 것이다. 은근히 한국의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아는 곡도 있을 것이다.

그가 가장 관심 있어했고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벌인 쪽은 전자음악, 환경음악 쪽이다. Async와 영화음악 중에서 베스트를 추려 3인조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한 1996이 있다. 솔로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경이로우면서 아름다운 앙상블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 솔로 연주는 BTTB나 Playing The piano가 유명하다.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5.2. EP

5.3. 사운드트랙

6. 필모그래피

7. 오토바이오그래피


GQ JAPAN의 전편집장 스즈키 마사후미와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담이 자서전 형식으로 출판된 책이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작가 본인과 관계 소속사와 출판사의 첨삭을 거쳐 기획되는 형태인데, 오토바이오그래피는 인터뷰어가 추가되어 기획과 첨삭을 함께 하며 인터뷰어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인터뷰어 지승호가 신해철 등과 이런 형태의 작업을 해왔는데, 차이가 있다면 지승호와 신해철이 함께한 '쾌변독설'에서는 지승호의 존재가 드러나있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책은 스즈키 마사후미의 존재가 드러나지는 않는다(지승호의 작업은 그래서 오토바이오그래피보다는 인터뷰집에 해당한다.).

이례적으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스즈키 마사후미 본인의 후일담이 담긴 챕터가 마지막으로 실려있다. 이는 이 책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실상 마지막 책이기 때문에, 그가 죽기 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 대화를 하고 또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듣고 지켜본 타인, 인터뷰어이기 때문에, 그가 경험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작성 된 내용이다.

모두 출판사 신쵸의 기획으로 수록 내용 일부는 신쵸의 월간지에서 미리 공개됐고, 추가 내용이 더해져 단행본으로 나왔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이후 14년만에 두 번째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가 출간됐다.

8.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



한국에 <Ryuichi Sakamoto Social Project, Korea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 가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2010년 12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실험 프로젝트 「skmtSocial Project 사카모토 소셜 프로젝트(통칭, #skmts)」가 본래 명칭이며, 여기에 Korea를 붙여, 한국 팬들에게 집중된 정보를 제공하고자 <itmusiccreative 잇뮤직크리에이티브>에서 운영하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각종 뉴스를 한국어로 전달하며, 생전 사카모토 류이치 본인과 자주 소통했으며, 그의 유족들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파일:2011skmt.jpg

2011년 1월 9일 사카모토 류이치의 단독 콘서트 <Ryuichi Sakamoto|Playing the Piano - Korea 2011>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의 내한을 주관하던 에이전시 측은 내한 일정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지않았다.(인력 부족, SNS에 대한 필요성을 못느꼈던 때) 이에 팬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컸고, 잇뮤직크리에이티브측에서 에이젼시측과 협의 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각종 정보를 공유 받아 안내하기 시작했다. 당시 윤상은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활동을 언급하기도 했다.

파일:skmttrio2021.jpg

2012년 12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 트리오 내한 공연 <Ryuichi Sakamoto Trio Tour 2012|Japan & Korea> 에서 부터는 정식으로 프로모션 업무에 협력한다.

파일:LIFELIFEposter.jpg

2018년 서울 Piknic 에서 열린 사카모토 류이치의 특별전 [RYUICHI SAKAMOTO: LIFE, LIFE] 에도 참여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측에서 이들의 참여를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사적으로 친분이 꽤나 두터워진 것으로 보인다.

파일:piknic2023.jpg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후 출간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가 한국의 위즈덤하우스에서 한국어판으로 발간. 출간 기념 추모전 기획도 참여했다. 이 행사는 서울 Piknic에서 열렸고 2023년 7월 13일부터 7월 31일까지 3주동안 진행됐다. 추모전 소식이 위즈덤하우스와 류이치사카모토소셜코리아에서 동시에 선공개되었다.

파일: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메인 포스터.jpg

이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오퍼스> 한국 개봉 프로모션에도 참가, 사카모토 류이치와 관련된 대부분의 한국내 프로모션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그외 사카모토 류이치와 YMO 중심의 음악감상회 등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운영하는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의 SNS 채널은 해당 링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9. 다른 아티스트와의 관계

10.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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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1. 여담


[1] 코로나 사태로 2019년도에 열릴 시상식이 2020년으로 미뤄졌다[2] 가정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였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예계 활동에 대해서도 오히려 "내가 너 딴따라나 해라고 음악학교 보낸줄 알아?"라고 못마땅하게 여겨서 부자간 갈등을 일으켰고, 연예활동에서 성공한 이후로 축하받을 때에도 "저놈은 저놈이고, 저는 저입니다"라면서 여전히 나쁘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후 발견된 일기에서는 오히려 아들의 탄생을 반기고 YMO의 일정을 세심하게 챙기는 등 아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음이 드러났고, 이를 안 류이치는 결국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3] 결혼전 성은 시타무라(下村)[4] 대학 시절 결혼했다 이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 소생[5] 둘째 부인 야노 아키코가 데려온 양아들로, 사카모토가 야노 아키코와의 결혼 후 정식 입양했다.[6] 야노 아키코 사이 소생[7] 매니저 소라 노리카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혼외자. 그 후에 야노 아키코와 별거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6년에 이혼하였다. 그 후 정식 배우자는 없지만, 소라 네오가 태어날 때부터 소라 노리카와 동거하며 지냈다. 아버지 다큐멘터리 연작을 찍으면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2024년 해피엔드로 극영화 데뷔했다.[8] 동급생으로 시오자키 야스히사 전 관방장관이 있다.[9] 제31회 그래미 어워드 "마지막 황제"로 수상[10] 일본에서는 공문서를 포함하여 일본인의 씨명을 로마자로 표기할때는 서양식인 이름-씨 순서로 사용하는 것이 공식이었다. 2019년에서야 이 원칙이 폐기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적으로는 자신들의 씨와 이름명을 이름-씨 순으로 표기하는 예가 여전히 많다.[11]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등에선 인명 법칙에 따라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표기하고 있다.[12] 2008년도 인터뷰에서 밝히길 14살 즈음에 드뷔시의 환생임을 반쯤 믿으며 그의 싸인을 연습해보는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였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거칠고 반항적이었던 청년기적 인성과 여성편력도 닮았으며, 말년에 성품이 온화해진 것도 비슷하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결말이나 끝내 그도 드뷔시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13] 특히, 대학시절부터 민속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학위를 받은만큼 전 세계의 민속 음악들과 전자음악을 결합한 실험적인 음악들이 많다. 인터뷰 때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은 뉴욕 바로 옆에 있는 것 같고, 일본 팝 음악은 마치 아랍 억양처럼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듯, 두 가지 이상의 문화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한국의 국악에도 엄청 관심이 많다. 윤상의 음악에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음악적인 다양한 시도가 많다.[14] 음악도감 작업 기간 도중에 촬영된 다큐멘터리에는 월드뮤직으로 차있는 플로피 디스크를 Fairlight 신디사이저에 삽입하는 장면이 수록되기도 하였다. 이날 그가 작업한 곡은 음악도감 2015년 재발매판에 수록된 M31 TOKYO MELODY.[15] 영화 속에 포함된 건 피아노 & 바이올린 어레인지 버젼. 원곡은 힙합 느낌이고 스스로 노래도 불렀다. 또한 Trey Songz가 부른 Can't Be Friends의 샘플 원곡이기도 하다.[16] 사카모토 류이치 스스로도 솜씨가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YMO로 발표한 음악은 마찬가지로 능력있는 작곡가인 나머지 두 멤버들과 의견이나 발상을 주고받은 곡들이다. 사카모토의 자서전에 의하면, 멤버들은 자신이 생각해내지 못 한 재밌는 발상을 제시했으며 그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지 못 했을 작업이었다고 밝혔다.[17] 지구촌에 매설된 지뢰들을 제거해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지 말자는 취지의 기획앨범이다. 참여진만 해도 그 면면이 화려한데, 일본 측 아티스트들만 해도 UA, 테루(GLAY), CHARA, 사쿠라이 카즈토시, SUGIZO 등이 참여하는 등 일본음악 매니아들이 들으면 군침을 흘릴 구성. 해외 참여진도 브라이언 이노, 한국의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등이 참여하는 등 그 면면이 화려하다.[18]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담당한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영화다.[19] 2022년 온라인 콘서트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2022'를 영화한 작품[20] 2024년 NHK 다큐멘터리 'Ryuichi Sakamoto: Last Days'를 영화화 한 작품[21] '해리 호소노와 옐로 매직 밴드'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등의 명의를 썼다.[22] 사카모토 류이치의 Self-Portrait 역시 다카하시의 드럼.[23]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사망 직전 부쩍 마른 모습, 그리고 그의 요양 생활을 함께 해온 아내 키요미 다카하시의 사진이 올라와있다.[24] 다만 이혼 원인이 불륜과 종교라는 예민한 문제였음에도 후일 서로 관계는 나쁘지 않았는지, 사카모토의 사망 이후 야노 아키코가 직접 트위터에 추도 메시지를 남겼다.[25] 2004년 출연했을때 좌중을 압도하는 화려한 입담을 선보였다. 해당 방송에서 MC 스나이퍼와 콜라보한 undercooled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26] 원래는 m-flo의 Verbal과 작업을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27] 한국 공연시 특별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유희열이 피아노 연주를 대신하여 지상파 방송에서 공연한 버젼도 있다. 유희열도 사카모토를 매우 좋아하기에 이뤄진 퍼포먼스라고 함. 실제로 내한 공연에 유희열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가 다녀갔다.[28] 일본이나 영미권에서는 주로 40~50대의 중년 남성들이 그의 팬인데, 한국에 와서 봤더니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젊은 사람들이 싸인회에 와 줄 서있는 걸 보고 여러 가지 의미로 감격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90년대 말에 개방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중년들은 이 사람을 알기가 어렵다.[29] 작곡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맡았고, 작사는 유키코의 같은 사무소 선배 마츠다 세이코(Seiko 명의로 참여). 화려한 작곡진과 절정에 이른 유키코의 인기로 커리어 처음으로 오리콘 1위를 차지하나, 몇달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해 동시에 마지막 1위 곡이기도 하다.[30] 1993년 나카모리 아키나의 27번째 싱글 Everlasting Love, NOT CRAZY TO ME 등의 악곡을 작곡했다.[31] 본인이 근황올림픽에서 상황을 밝혔는데, 친분있던 작곡가가 시상식 당일 오전에 부탁받아 참석했는데, 당시 대본은 물론이고 어떠한 가이드도 없는바람에 수상소감에서 축하합니다라고 짧게 말했고, 본인이 누군지는 밝혀야 할꺼같아서 가수겸 탤런트 한사랑입니다로 말했는데 무명 연예인 홍보를 하러 내보냈다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32] 실제로 보고 충격받을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하자면 여장하고 아카시야 산마를 덮치는 그런 내용이다.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방송에서 딜리버리 헬스(출장 성매매)로 개그를 치는 모습은 한국인이 보기엔 꽤 충격적일 것이다.[33] 어쩌면 이러한 관심 때문에 하츠네 미쿠 오케스트라라는 YMO 커버 앨범도 정식으로 허가를 내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