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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292> 1940년대 | <colbgcolor=#EEE,#333> 일본 제국 | <colbgcolor=#fefefe,#191919> |
| 1950년대 | 중국 | J-5 (1956) | |
| 일본 | T-1 (1958) | ||
| 중국 | |||
| 1960년대 | 인도 | HF-24 마루트 (1961) | |
| 중국 | Q-5 (1965) | J-7 (1966) | J-8 (1969) | ||
| 1970년대 | 중국 | ||
| 일본 | T-2 (1971) | ||
| 이스라엘 | 내셔 (1971) | 크피르 (1973) | ||
| 일본 | F-1 (1975) | ||
| 1980년대 | 대한민국 | KF-5 제공호 (1982) | |
| 중국 | J-8 II (1984) | ||
| 이스라엘 | |||
| 중국 | JH-7 "페이바오" (1988) | ||
| 대만 | F-CK-1 징궈 (1989) | ||
| 1990년대 | 이스라엘 | ||
| 일본 | F-2 "바이퍼 제로" (1995) | ||
| 이란 | 아자라크쉬 (1997) | ||
| 중국 | J-10 | J-11 (1998) | ||
| 2000년대 | 인도 | LCA 테자스 (2001) | |
| 중국-파키스탄 | JF-17 "썬더" / FC-1 "샤오룽" (2003) | ||
| 중국 | JL-9 / FTC-2000 "샨잉" (2003) | ||
| 이란 | 사에케 (2004) | ||
| 2010년대 | 중국 | J-20 (2011) | |
| 대한민국 | FA-50 파이팅 이글 (2011) | ||
| 중국 | J-16 (2011) | FC-31 (2012) | J-15 "페이샤" (2013) | ||
| 이란 | 코우사르 (2018) | ||
| 2020년대 | 대만 | T-5 융잉 (2020) | |
| 중국 | J-35 (2021) | ||
| 대한민국 | KF-21 보라매 (2022) | ||
| 튀르키예 | 휴르제트 (2022) | 바이락타르 크즐엘마 무인 전투기 (2023) | 칸 (2024) | ||
| 이란 | 카헤르 313 무인전투기 (2024) | ||
| 중국 | J-36 | J-50 (2024) | ||
| 인도 | MWF 테자스 Mk.2 | TEDBF | | ||
2030년대 | GCAP | 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 무인 전투기 | ||
| 대한민국 | KF-21EX(block 3) | KUS-LW 무인 전투기 | KUS-FS 무인 전투기 | ||
| 대만 | |||
| 인도 | AMCA | ||
| 2040년대 | 대한민국 | KF-X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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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歼-9 |
1. 개요
중국에서 개발을 시도하였던 요격기. 이후 J-10의 기반이 된다.2. 제원
| Chengdu(成都) J-9[1] | ||
| 분류 | 단발단좌 초음속 요격기 | |
| 개발사 | 601 연구소 (601研究所) 611 연구소 (611研究所) | |
| 승무원 | 1명 | |
| 익면적 | 50m² | |
| 엔진 | WS-6 터보팬 엔진 × 1기 | |
| 엔진추력 | 122 kN (12,490 kgf) | |
| 최대속력 | 마하 2.5 | |
| 항속거리 | 2,000 km | |
| 최대상승한도 | 23,000 m | |
| 상승률 | 220 m/s | |
| 항전장비 | 205식 레이더 | |
| 무장 | PL-4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4 | |
3. 상세
1964년 601 연구소(이후 선양 항공기 제작공사[2])에서 J-7을 대체할 차세대 전투기로서 개발을 시작했으나 문화대혁명과 수시로 변화하는 요구사항으로 인해 개발이 중단되었고, 이후 611 연구소(이후 청두 항공기 공업 그룹[3])으로 프로젝트가 이관되어 개발을 지속하게 된다.당시 인민해방군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J-7은 고고도 및 장거리 요격 임무를 담당하기에는 성능이 부족했기 때문에 601연구소에서는 2가지 계획안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이후 J-8이 되는 J-7을 확장하고 쌍발기로 개조한 비교적 위험 부담이 적은 설계였고, 다른 하나는 단발 고성능 기체인 J-9이었다. 당시 J-9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데다 요구되는 강력한 엔진 또한 중국이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더 높았으며, 이에 선양은 델타익 및 이중 델타익 설계를 1965년에 내놓는다.
1966년에 허가를 받고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수평미익이 존재하는 J-9A-IV(또는 J-9-4)와 무미익 델타익 형상의 J-9B-V(또는 J-9-5)가 제시되었는데, 이 중 J-9B-V 모델이 요구사항을 만족해 선정되었으나 문화대혁명 이후 1968년에 J-9B-V 또한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밝혀져 J-9A-IV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선양은 J-8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J-9의 개발은 청두로 넘어가게 된다.
1970년에는 항속거리, 최고속도, 최고고도가 더 높아지게 요구사항이 변경되어 J-9A-IV 모델은 폐기되고 J-9B-V는 카나드를 장착하고 하단 공기흡입구 대신 측면 공기흡입구를 탑재한 J-9B-VI(또는 J-9-6)로 재설계된다. 1975년에는 PL-4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도록 개량된다. 엔진은 탑재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WS-6 터보팬 엔진이 개발 부진으로 늘어지자 더 약한 R29-300 터보제트 엔진을 역설계한 엔진을 탑재하기로 한다.[4] 그리고 1980~81년에 비행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프로젝트는 결국 1980년에 취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