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항공기 제작사에 대한 내용은 브레게 항공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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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guet | |
<colbgcolor=#000><colcolor=white> 정식 명칭 | Breguet |
한글 명칭 | 브레게 |
설립일 | 1775년([age(1775-01-01)]주년) |
창립자 |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 |
본사 소재지 | [[스위스| ]][[틀:국기| ]][[틀:국기| ]] 라베이(L'Abbaye) |
업종 | 손목시계, 회중시계 |
모회사 | 스와치 그룹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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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 브레게의 상징적인 모델인 Pocket Watch No. 5(좌측)와 그 모습을 계승한 브레게의 대표 모델인 3137(우측) |
브레게의 전통 모델들의 디자인을 종합해서 현대적인 무브먼트로 만든 트래디션 라인의 7077 모델 |
스와치 그룹에 속해 있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1775년에 창립된 유서 깊은 시계 브랜드이다.
클래식 시계에 있어서는 수많은 디자인 모티브를 제시했다. 가령 브레게의 로고에서도 보이는 원 가운데가 비어 있는 특유의 핸즈(시, 분, 초침)는 브레게 핸즈라고 부를 정도로 브레게의 상징과도 같은 디자인이며, 저 핸즈의 디자인은 브레게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에서 카피/오마주해서 사용한다. 그만큼 아름다운 클래식 디자인엔 정평이 나 있는 브랜드.
2. 역사
시계 장인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1]가 1775년 프랑스 파리 일드라시테의 콩시에르즈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창업했다.브레게는 창립 이래 투르비용, 리피터 등 기계식 시계 가격의 자릿수를 바꾸는 장치들을 발명하여 시계 기술을 선도하고 시계 제작사로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해왔으며 세계 시계 역사에서 브레게를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유럽의 많은 왕족, 귀족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고객들의 면면만 봐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 윈스턴 처칠, 아서 루빈스타인 등이 있다.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시계였다는 소리다.[2]
1810년, 최초의 손목시계인 브레게 2639를 제작하였다. 후술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실물이 없고 자료만 남아 있어 최초의 손목시계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못하고 있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프랑스 왕립 해군에 의해 시계 기사로 임명되었으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823년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사망한 후 아들인 앙트완 루이 브레게가 사업을 이어받았고 그 뒤에는 손자인 루이 클레망 브레게가 이어받아서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러다가 루이 클레망 브레게는 1870년에 당시 브레게의 수석 기술자였던 에드워드 브라운에게 사업을 넘겨주었고 이 때부터는 브라운 가문이 100년간 브레게를 이끌었다.
이후 1970년과 1987년에 회사의 소유권이 두 번 바뀐 후 1999년에 스와치 그룹이 브레게를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공군에 시계를 납품했던 역사가 있다. 브레게가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군납을 했다는 사실은 누군가는 흑역사라고도 하며,[3] 다른 누군가는 상관없다고 얘기한다. 이것과는 별개로, 파일럿 워치이자 브레게의 엔트리 라인업인 타입(Type)이 천만 원대 초중반의 가격에 포지셔닝되어 있어 브레게의 진입 장벽을 낮췄으며 디자인도 브레게가 잘 만드는 클래식 드레스 워치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다.
2015년 워털루 전투 200주년을 맞아 브레게는 우구몽 농장(Hougoumont Farm) 복원 프로젝트의 주요 후원자로 나서며 유럽 최고의 브랜드로서 그 위상을 드러냈다. 이번 프로젝트는 워털루 전투 당시의 치열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최후의 역사적 증거물인 우구몽 농장을 보존함으로써 유럽의 평화 및 안정 보장을 추구하였다. 이번 프로젝트 기념 행사는 국제 언론과, 유럽 왕족, 주요 정치인, 그리고 브레게의 CEO이자 회장인 마크 A. 하이에크(Marc A. Hayek)가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는 웰링턴(Wellington) 공작, 블뤼허 폰 발슈타트(Blücher von Wahlstatt) 대공과 샤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Charles Bonaparte)와의 악수로 세 사람의 결합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주었다.
3. 국내 매장
(B: Boutique, D: Duty free, M: 멀티샵)-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EAST(B))
- 신세계백화점 (강남점(B), 센텀시티점(M))
-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에비뉴엘(B))
-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B), 무역센터점(B))[4]
- 신라면세점 서울점(D)
- 신세계면세점 본점(D)
4. 발명
- 오토매틱 시계
용두를 수동으로 감는 방식이 아니라 시계의 움직임에 따라 로터가 감기면서 자동으로 동력을 얻는 방식이며 1780년에 발명하였다. 당시 브레게는 이 셀프 와인딩 시계를 '퍼페추얼'이라고 불렀다.[5]
- 미닛 리피터
리피터 시계 자체는 브레게 이전에도 있었지만 벨 형태가 아닌 공 스프링을 때리는 형태의 스트라이킹 리피터 시계는 1783년 브레게가 최초로 개발했다. 현대의 미닛 리피터 시계들 대부분은 이 방식을 채용 중이다.
- 투르비용
중력으로 인해 시계에 오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1801년에 투르비용이라는 시계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장치를 발명하여 특허를 받아 1805년에 최초의 투르비용 탑재 모델을 출시했다.[6]
- 손목시계
1810년, 나폴리 왕비이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여동생이었던 '카롤린 뮈라 보나파르트(1782~1839)'의 주문으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인 브레게 2639 모델을 만들었다. 브레게의 주문 장부의 기록에 따르면 5,000프랑 가격의 리피터 손목시계를 주문했다고 한다. 1849년의 수리 점검 내역서에도 한 백작 부인이 이 모델의 수리를 맡긴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존재했었음이 거의 확실시된다. 다만 기록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물이 어떠했는지는 남아 있지 않아서[7] 기네스북상으로는 1868년 파텍 필립의 시계가 최초의 손목시계로 등록되어 있다. 대신 1849년의 수리 점검 내역서에 적힌 상세한 외형 묘사를 기반으로 2002년, 2639의 특징을 계승한 '레인 드 네이플'을 출시하여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과시하였다.
5. 컬렉션
5.1. 트래디션(Tradition)
브레게 트래디션 7077[8] |
브레게 트래디션 7047[9] |
5.2. 클래식(Classique)
브레게 클래식 7137[10] |
브레게 클래식 5177[11] |
5.3. 클래식 컴플리케이션(Classique Complications)
브레게 클래식 뚜르비용 5365[12] |
브레게 더블 뚜르비용 5347[13] |
5.4. 마린(Marine)
브레게 마린 오라 문디 5557[14] |
브레게 마린 알람 뮤지컬 5547[15] |
브레게 마린 뚜르비용 에콰시옹 마샹 5887[16] |
5.5. 타입(Type)
5.6. 레인 드 네이플(Reien de Naples)
"브레게의 가장 놀라운 혁신 중 하나이자 가장 유용한 발상 중 하나가 바로 손목시계를 개발한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시에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브레게의 최초의 손목시계 개발을 증명하는 서류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1810년 6월 8일 나폴리 여왕의 주문을 받아 그의 작업장에서 특별한 시계를 제작합니다. 이 시계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초의 손목시계인 브레게 2639 시계입니다. 매우 아름답고 야심 찬 나폴리 여왕은 1808년부터 1814년까지 34개의 시계를 구입한 브레게 최고의 고객입니다."
'레인 드 네이플'의 소개 문구
'레인 드 네이플'의 소개 문구
5.7. 헤리티지(Heritage)
5.8. 하이 주얼리 시계
6. 기타
- 2010년 초까지만 해도 오데마 피게와 하이엔드 매출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회사였지만 신형 마린부터 연이은 신작 시계들의 혹평으로 20년 대에 들어서 큰 부진을 겪고 있다. 스위스 시계 매출 20위 권 밖으로 밀려났으며 같은 그룹 내의 블랑팡, 과거에는 매출이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차이나던 랑에나 프랭크 뮐러, 샤넬 시계 한테도 매출이 밀리는 굴욕을 겪고있다.
[1] 브레게 가문은 낭트 칙령 폐지 이후 스위스로 망명 온 위그노이다. 친척들 중에는 개혁교회 목사도 있었다.[2] 사실 파텍 필립이 최고의 시계로 평가받은 날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180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는 브레게가,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중후반까지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파텍 필립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3] 군납 특성상 하이엔드 브랜드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저렴한 시계를 다량 납품해야 하기 때문이다.[4] 부산점에도 매장이 있었으나, 철수하였다.[5] 지금은 퍼페추얼 시계라고 하면 대부분 퍼페추얼 캘린더가 장착된 시계를 뜻한다. 이 퍼페추얼 캘린더는 창업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스승이었던 레핀(Lepine)이 개발했다고 한다.[6] 첨언으로 투르비용을 최초로 손목시계에 탑재한 회사는 오데마 피게이다.[7] 시기적으로 따진다면 브레게가 압도적으로 먼저 손목시계를 제작하였으나, 현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브레게가 최초 손목시계 제작 회사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브레게도 필사적으로 현물을 찾으려고 노력 중인 것 같으나 쉽지 않은 모양.[8] 출처: https://professionalwatches.com/introducing-the-breguet-tradition-chronograph-independent-7077/[9] 출처: https://monochrome-watches.com/introducing-breguet-tradition-7047-fusee-chain-tourbillon-platinum-blue-specs-price/[10] 출처: https://monochrome-watches.com/breguet-classique-7137-new-versions-2020-introducing-price/[11] 출처: https://www.rabat.net/es/magazine/breguet-classique-5177-email-bleu-grand-feu.html[12] 출처: https://monochrome-watches.com/breguet-classique-tourbillon-extra-plat-anniversaire-5365-220-years-tourbillon-review-price/[13] 출처: https://swisswatches-magazine.com/blog/breguet-master-of-tourbillons/[14] 출처: https://www.wristwatchreview.com/for-your-consideration-breguet-marine-hora-mundi/[15] 출처: https://www.thepeakmagazine.com.sg/fashion-watches/breguet-alarme-musicale-5547/[16] 출처: https://monochrome-watches.com/breguet-marine-tourbillon-equation-marchante-5887-slate-grey-dial-pr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