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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인천 아시안 게임/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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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화 점화자 논란3. 도시락 문제4. 자원봉사단의 자질 문제5. 시설관리 문제
5.1. 선수촌 문제5.2. 경기장 문제5.3. 기타 시설 문제
6. 운영 문제7. 판정 논란8. 도미타 나오야 카메라 절도 사건9. 인천광역시의 통제10. 교통 문제11. 조직위의 태도12. 기타13. 기사 모음14. 관련 문서

1. 개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진행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 문서.

국제대회 운영중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야 노상 있는 일이지만, 대한민국은 1988 서울 올림픽외에도, 1986년, 2002년 두 번의 하계 아시안 게임, 1999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 2002년 한일 월드컵,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수많은 국제대회를 개최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이상의 대회들은 선수단의 성적, 흥행, 운영수지 면에서 나름대로 최소한 중박은 거두었다. 특히, 1988 서울 올림픽은 올림픽이 개최된 역사 이래 몇 안 되는 흑자 대회였다.

하지만, 수많은 국제대회를 개최해 본 풍부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 게임은 그 수준이 처참할 지경이라 여러모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게 각계의 반응이다. 거기다 개최도시인 인천광역시의 시민들에게까지 수준이하의 경기 운영과 강압적인 경기관람 강요, 거기에 예고없는 규제를 시행하는 등의 짓들로 외면을 받았으며, 민심까지 극도로 나빠졌다. 사실 그 이전부터 신도시 개발,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등 인천광역시의 재정 상태가 극도로 빈궁해졌다는 점으로 인해 개최권 반납 이야기까지도 나왔을 정도였다.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원래 이 아시안게임 대비를 위한 시설인데 폐막 2년 만인 2016년 7월 30일에야 개통된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이는 이미 전례가 있다. KTX1997년 외환 위기만 아니었으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개최 이전인 1998년에 개통하였을 것이며, 역시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또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대비하여 2002년 개통 예정이었으나 외환 위기로 인해 자금 사정이 전국적으로 후달려서 3년이 지난 2005년에서야 개통이 가능했다.

아시안 게임으로 한동안 재정난을 겪었던 인천광역시는 2018년이 되어서야 재정정상단체가 되었다. 인천광역시의 재정자립도는 서울 다음으로 울산과 엎치락 뒤치락할 정도로 높고 300만의 대도시인 만큼 무리한 국제대회 개최였지만 그 후유증을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 홍보성이 적극적이지 못한 차량 2부제 시행에다가 2부제 시행에 일부 섬지역(중구 영종도, 강화군, 옹진군 등)은 같은 인천시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섬에 농어촌 지역이라는 이유로 이들 지역을 제외시켜서 오히려 도시성향의 인천 본토와 지역차별을 하는게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어났을 정도였다. 또한 인천시민 외에도 타 지역에서 오는 차량도 인천시에 오면 차량 2부제에 동참해야한다는 강제적인 태도까지 취하였는데 인천도 그렇지만 타 지역의 경우는 이런 사정을 당연히 모르는 편에다가 이들의 관광수요가 밀접한 강화, 옹진, 연평도, 백령도, 영종도 등의 섬 지역은 제외해버려서 오히려 혼란과 착오만 부추겼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 수준이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유정복 당시 시장[1]안상수[2], 송영길 전 시장[3]은 비판받고 있다.

이러다보니 스포츠서울 지에서는 아예 국정감사를 해야 한다는 기사까지 실었다. 또, 이에리사 아시안게임 선수촌장은 나라 망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판하며 "4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런 꼴로 만들지 말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2. 성화 점화자 논란

극비 사항에 속하는 성화 점화자가 개막식 이틀 전에 언론에 알려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도록 두루뭉술하게 소개되었어야 마땅한데, 배포된 보도자료에 성화 점화자가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한 명으로 압축된 예상 점화자는 실명까지 언급된 채 고스란히 언론에 드러나 버려, 연예인 홍보를 위한 고의유출이 아니었냐는 의혹까지 불러 일으켰다. 결국, 변경되지 않은 채로 점화자 이영애가 2명의 어린이와 함께 3인 공동으로 성화를 점화했다. 그나마 2명의 어린이는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이끌 유망주로 선발된 다이빙 선수 김영호와 리듬체조 선수 김주원이었지만 메인 점화자가 연예인이라는 부분 때문에 점화자 논란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또한, 그 점화자가 스포츠와는 큰 연관이 없는 연예인이란 점은 또 다른 논란거리를 낳았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의 성화 점화자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는 대체로 그 국가의 스포츠 스타가 맡는 게 관례였다. 참고로 이영애는 아시안 게임 개최지인 인천광역시 출신도 아니며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즉 굳이 연예인에게 점화를 맡길 것이였으면 이영애가 아닌 인천광역시 출신이나 스포츠와 관련있는 연예인을 점화자로 섭외했으면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4]

과거에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는 육상스타 장재근박미선(육상)이,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한민국의 하형주와 북한의 계순희(둘 다 유도선수 출신)가 공동 점화하였다. 다만, 1988 서울 올림픽은 예외였는데 이건 그 당시 누구나 손기정 옹이 될 거라고 예상한 탓에 보안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손기정 옹은 도입 주자가 되었고 2년 전 아시안 게임의 슈퍼스타인 임춘애가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돈 뒤 1명의 운동선수와 2명의 일반인이 점화자로 선정된 것이다. 운동선수는 대학생 유망주 마라토너 김원탁(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이 있었다. 나머지 2명은 당시 신분이 흑산중학교 소흑산분교 체육교사, 서울예고 무용과 학생. 무용도 넓은 의미에서는 체육의 한 범주로 포함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넓은 의미에선 3명 모두 체육인이라고 볼 수 있다.[5]

하다 못해 역대 근대 올림픽 사상 최악의 막장 대회로 회자되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성화 점화자도 스포츠계의 전설적 인물인 무하마드 알리였고[6] 대회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성화 점화자도 펠레, 호나우두 같은 월드컵 스타가 아닌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 수상자인 마라토너 반데를레이 리마였다.[7] 이후 같은 우리나라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당연하게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김연아가 점화했고, 인천 아시안게임보다 더하다는 평을 듣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성화 최종 점화자도 인도네시아의 전직 배드민턴 선수 수지 수산티[8]가 맡았다.

그런데, 인천 아시안 게임은 이런 관례도 깡그리 모두 다 무시한 셈이다. 이미 2002 한일 월드컵때도 조추첨에 나선 사람이 연예인 송혜교여서 안 그래도 말이 많았는데[9] 이번에는 아예 성화 최종 봉송자가 연예인이니까 더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 봉송자를 선정할 때도 영국 국적인 클라라"건강미를 대표한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선정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런 비판에 대해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은 임권택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과했으나, 총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은 연예인 2명 나온 것으로 한류잔치라고 비판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를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3. 도시락 문제

4. 자원봉사단의 자질 문제

5. 시설관리 문제

5.1. 선수촌 문제

선수촌 숙소 및 식당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5.2. 경기장 문제

5.3. 기타 시설 문제

9월 20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 있는 성화대의 불이 갑자기 꺼졌다. 성화가 갑자기 꺼진 이유는 내부 수조 온도 상승으로 센서가 오작동해서 꺼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참고로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이와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었는데, 성화대를 경기장 내로 옮기다가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6. 운영 문제

7. 판정 논란

8. 도미타 나오야 카메라 절도 사건

일본 수영선수인 도미타 나오야가 9월 25일 경기를 마친 뒤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 내 사진기자 취재석에서 한국 기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카메라 렌즈를 뽑고 몸체를 자신의 가방에다 몰래 숨겨 카메라를 훔치는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 참조.

9. 인천광역시의 통제

인천시와 조직위가 인천 시민들에게 아시안 게임 관람 강요와 예고없는 규제를 가하는 등의 사고를 터뜨리고 있다. 아시안 게임 혹은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인천광역시 시민들에게는 엄연한 민폐행위다.

10. 교통 문제

11. 조직위의 태도

경기 개최간 다양한 문제점과 사고가 발생하고, 내외신을 가리지 않고 이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조직위원회는 똥고집만 피우고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권경상 사무총장은 미디어 브리핑 자리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인천 아시안 게임이) 17번의 아시안 게임 중 가장 진행이 잘 되고 있는 대회'라면서 '운동회라니 굉장한 모욕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직위 측이 날이 선 태도를 유지하자 기자들도 분노하였고, 미디어 브리핑 회장은 고성이 오갔다고 한겨레에서 보도했다.

조직위 측에서는 아예 부정적인 보도에 대해 대응을 하지 말라는 함구령까지 내렸다고 알려졌다. 언론 대응 담당자를 알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졌다면서 알지 못한다고 잡아떼는 모습을 보였다.

네티즌들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는 이어졌다. 공식 홈페이지의 응원 게시판에 조직위를 비판하는 댓글이 등록되자, 9월 26일 홈페이지 관리자 측에서는 300여 개의 댓글을 삭제하였다. 단순한 비방성 게시물부터 개선을 바라는 건전한 비판까지 싸잡아서 지운 이 행태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이 분개하였다.

10월 3일 열린 조직위의 마지막 브리핑 회장에서 박달회 조직위 보도지원단장은 '대회를 운영하는 초반 시스템상에 문제가 있었으나, 실패한 대회는 아니었다'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1/6에 불과한 개최 비용을 들었다. 그러면서 '대형사고나 인명 등의 피해가 없었으므로 수준낮은 대회는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12. 기타

13.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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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련 문서



[1] 아시안게임 개최 당시 현직 시장이었다. 2014년 민선 6기에 당선되어 7월 1일부로 임기를 시작, 그리고 아시안게임이 9월에 개막했기 때문에 첫 임무부터 국제 경기 주최라는 무거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18년 민선 7기 재선에 실패했으나 다음 선거인 민선 8기에서 재선에 성공해 현재 다시 시장을 맡고 있다.[2] 민선 3, 4기 인천시장으로서 2007년에 아시안게임 개최권을 따냈으나 인천시를 빚더미에 앉힌 시발점이라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3] 민선 5기 인천시장으로서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전임 시장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재선에 실패해서 결국 개회 선언은 후임 유정복 시장이 하게 된다.[4] 여담이지만 사실 인지도도 있으면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연예인이 한 명 존재하긴 한다. 샤이니민호는 인천광역시 출신에다 아버지1988 서울 올림픽에서 축구 국가대표였다. 게다가 민호의 소속 그룹인 샤이니 역시 범아시아적 인기를 끌었고, 연기력도 좋아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영향력을 넓힌 민호인지라 인지도에도 문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민호를 섭외했다면 오히려 이영애보다 최종 점화자로 적절했을지도 모른다.[5] 한편으로 이 3인은 각각 체육계, 교육계, 문화계를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기에는 올림픽 당시 출범한 노태우 정부의 '보통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하기 위한 뜻도 있다고 한다.[6] 프로 복서로 유명하지만 1960 로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7]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 마라톤 레이스 중 선두로 달리다가 때 아닌 관중 난입 봉변을 당해서 동메달로 레이스를 마감한 그 선수 맞다.[8]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한국 배드민턴 팀의 경계 대상 0순위였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도 여자 단식 결승에서 대한민국의 방수현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인도네시아의 하계 올림픽 출전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됐던 선수다.[9] 그래서 당시 유럽 쪽에서는 차범근 사망설이 돌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 당시 차범근은 1998 프랑스 월드컵 경질 이후의 대한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축구협회에서 제명당한 상황이었다.[10] 다만 위 문단에도 나왔듯이 최종 성화 주자를 연예인(이영애)으로 정하여 논란이 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