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20:57:58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

1. 개요2. 수여 기준3. 수상자4. 기타

1. 개요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상. 줄여서 쿠베르탱 메달이라고도 부른다. 명칭은 당연히 근대올림픽 창시자로 불리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이름에서 따왔다.

2. 수여 기준

스포츠맨십을 구현한 인물에게 수여한다.

물론 성적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수상자 명단을 보면 나름 성적을 낸 선수들이 많긴 하지만... 이 상을 받을 정도면 평범 이상의 정신력이나 인품을 갖췄다는 얘기이고, 그런 선수라면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 또 선수는 아니지만 스포츠에 또는 올림픽에 뚜렷한 공적을 남긴 사람에게 수여되는 경우도 있다.

스포츠 정신을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증표이다보니 어찌보면 금메달보다 더 큰 영예다. 메달은 올림픽 한 번에도 수두룩하게 배출되지만, 이 상은 1964년 처음 제정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수상한 사람이 25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올림픽 관련 메달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크고 의미가 남다른 메달. 수상할 경우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정도이며, 명예 그 이상이다.

3. 수상자

4. 기타

2012 런던 올림픽 펜싱에서 신아람의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을 때, 일각에서 쿠베르탱 메달 후보자로 추천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오심에 항의하면서도 3-4위전에 임했던 것이 이 상의 취지와 부합한다는 것이었는데, 쿠베르탱 메달의 인지도가 국내에서 워낙 낮아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4 소치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경기 도중 넘어져 스키가 부러진 러시아 선수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예비용 스키를 신겨 준 캐나다 코치 저스틴 워즈워스(Justin Wadsworth)가 쿠베르탱 메달 수상자로 유력시되었으나 정작 2014년 이후 수상자는 선수조차 아닌 사람들 투성이다.어째 점점 IOC 공로상이 되가는 느낌이다...

2016 리우 올림픽 육상 여자 5000m 예선경기에서 2500m 지점을 통과할 때 뉴질랜드의 니키 햄블린(Nikky Hamblin)이 넘어졌다. 뒤 따르던 미국의 애비 디아고스티노(Abbey D'Agostino)도 햄블린의 발에 걸려 트랙 위를 뒹굴렀다. 머리를 감싸쥐고 좌절하던 햄블린에게 디아고스티노가 다가가 위로의 말과 함께 일으켜 세워줬다. 햄블린은 다시 일어나 달렸지만, 이번엔 넘어지면서 십자인대가 파열된 디아고스티노가 절뚝이며 넘어졌다. 먼저 도움을 받았던 햄블린이 이번엔 디아고스티노를 일으켜 세워줬다. 햄블린은 16명중 15위, 디아고스티노는 십자인대 파열에도 불구하고 완주하며 16위로 예선을 마쳤다. 먼저 들어온 햄블린은 뒤늦게 들어온 디아고스티노와 감격적인 포옹으로 전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줬다. 대회 조직위는 넘어짐에 고의가 없었음을 이유로 두 선수 모두에게 결선진출권을 부여했지만 햄블린은 결선 17위에 그쳤고 디아고스티노는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기권하였다. 대회 종료 후 이들이 이 메달을 수상했다는 오보가 있었으나 이들이 수상한 것은 쿠베르탱 메달이 아니라 CIFP(국제 페어플레이 위원회)가 주는 페어플레이상이다.###### 이들 외에 노르웨이 핸드볼 대표팀도 1월의 유럽 대회 중 일어난 해프닝에 대한 대인배스러운 대응으로 이 상을 받았다(결과적으로 노르웨이는 졌고, 상대 팀인 독일이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다).


[1] 심기와는 별개로, 히틀러가 제시 오웬스를 비롯한 흑인 선수들에게 악수하고 축하해주는 행동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미담만큼이나 유명한 루머라서 오연스 생전에도 부정하는 발언 및 저술을 여러 차례 남겼다. 정작 올림픽 육상 4관왕인 제시 오언스를 무시한건 다름아닌 그의 조국이자 대표팀으로 출전한 미국이었다(...).[2] 3단 뛰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일본 육상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육상 선수다.[3] 1980년 오언스가 폐암으로 죽을 때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고, 1984 LA 올림픽에서 칼 루이스가 타이기록을 세웠다.[4] 아돌프 히틀러의 악수 거부 사건은 루머였던 반면에 정작 자국인 미국의 백악관에 초청도 못 받은건 유명한 사실이다. 당시 재선 선거전을 치르던 루즈벨트가 남부의 표를 의식해서 오언스를 초청하지 않았다고. 뉴욕의 호텔에서 올림픽 승전 파티에 참석할 때도 제시 오언스는 백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 해 화물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다고 한다.[5] 정확히는 싸우다가 치명상을 입었고, 4일 후 사망.[6] 8등까지.[7] 이 사건 때문에 브라질 육상 연맹에서 공동 금메달을 요구하며 강한 항의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리마 본인이 직접 "나는 메달을 두고 싸우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밝히며 사태를 직접 마무리짓기도 했으며, 경기 도중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도 "그 사건이 아니었다고 해도 내가 최종 1위를 했을지는 알 수 없다."라고 밝히며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