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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 2005년 8월 14일 |
유형 | 정비사 과실, 조종사 과실, 연료 부족 |
발생 위치 | [[그리스| ]][[틀:국기| ]][[틀:국기| ]] 아테네 북쪽 40km 부근 (그리스 마라톤 시) |
탑승인원 | 승객: 115명 |
승무원: 6명 | |
사망자 | 탑승객 121명 전원 사망 |
기종 | Boeing 737-31S |
항공사 | 헬리오스 항공 |
기체 등록번호 | 5B-DBY |
출발지 | [[키프로스| ]][[틀:국기| ]][[틀:국기| ]] 라르나카 국제공항 |
경유지 | [[그리스| ]][[틀:국기| ]][[틀:국기| ]] 아테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국제공항 |
도착지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 |
사고 이틀 전, 라르나카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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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Πτήση 522 της Helios Airways2005년 8월 14일 키프로스 라르나카 공항을 출발하여 체코 프라하로 향하던 키프로스의 저비용 항공사 헬리오스 항공 522편 보잉 737 여객기[1]가 그리스 아테네 외곽에 있는 마라톤 시내의 야산에 추락하여 탑승객 121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 사고 원인은 정비사의 실수로 정비 중 여압장치를 '수동'으로 설정하고 테스트한 뒤 여압장치의 설정을 '자동'으로 설정하지 않아 기체의 기압이 떨어져 조종사를 포함한 탑승객 전원이 비행 중에 실신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2]
실수 하나 때문에 121명이 사망한 이 사고는 그리스 항공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었다. 이 사고 때문에 키프로스에서 꽤나 전도유망하던 헬리오스 항공은 이듬해인 2006년에 도산했다.
2. 사고기
▲ DBA[3] 소속이었던 2002년 7월 1일에 뒤셀도르프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4] |
3. 사건의 전개
헬리오스 항공 522편은 키프로스 남부에 있고 키프로스에서 제일 이용객이 많은 라르나카 국제공항을 출발해 아테네를 거쳐 프라하로 갈 예정이었다. 2005년 8월 14일 58세의 독일인 기장 한스위르겐 메르텐(Hans-Jürgen Merten)과, 51세의 키프로스인 팜포스 하랄람부스(Πάμπος Χαραλάμβούς Pampos Charalambous) 부기장이 조종하는 522편은 현지 시각으로 오전 9시에 승객과 승무원 121명을 태우고 라르나카를 이륙했다. 승객은 대략 키프로스인 9 : 그리스인 1의 비율이었으며 승무원은 키프로스인 4명, 독일인 1명, 그리스인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이륙한 지 몇 분 후 상승하던 사고기가 고도 12,000피트(약 3,650m)에 이르자 갑자기 이륙준비 경고음과 똑같은 소리의 경고음이[5] 울렸다. 이륙 준비 경고음은 보통 지상에서 이륙 준비에 문제가 있을 때 울리므로 조종사들은 왜 이 경고음이 울리는지 원인을 찾지 못하고 결국 라르나카 공항 안에 있는 항공사 운영본부에 문의했다.
조종실에서 경고음의 원인을 찾느라 애쓰던 동안 사고기는 계속 상승하였고 승객들은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도 26,000피트(약 7,850m)를 넘어섰을 때 산소 마스크가 내려오면서 승객들도 뭔가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한편 조종실에서는 객실에 산소 마스크가 내려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전히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 가운데 이번에는 환기장치 냉각팬의 경고등이 켜졌으며 조종사들은 지상 운영본부와 연락하면서 장비 과열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조종사들은 산소 부족으로 술을 두 잔 마신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고 지상 운영본부에서는 조종사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고 느꼈다.
얼마 후 냉각 경고등이 꺼졌지만 경고음은 여전히 계속됐다. 지상 운영 본부는 여압장치가 자동으로 되어 있는지 물었다. 만약 이때 조종사들이 지상 정비사의 이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고 여압장치가 자동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산소 부족으로 판단력이 많이 흐려진 조종사들은 이 질문을 무시하고 냉각장치 회로 차단기가 어디있냐며 지상 운영본부에 되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조종실로부터 더 이상 아무런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륙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후 관제소에서도 연락을 취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왜냐하면 기장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내러 객실로 가려다가 산소 부족으로 실신했고 부기장도 기장 실신 직후 같이 실신했기 때문이었다.
조종사들이 실신했지만 자동운항 시스템 덕분에 비행기는 비행을 계속하여 10시 30분경 경유지인 아테네 상공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고기는 관제소의 연락에 일절 응답하지 않은 채 아테네 공항 상공을 30분째 선회하기만 했고[6] 이에 그리스 항공 당국은 비행기가 하이재킹을 당했다고 의심하여 그리스 공군 소속 F-16 전투기 2대를 출격시켜 522편에 접근시켰다.
유령화된 헬리오스 522편과 옆을 따라 비행하고 있는 F-16. 이것이 사진으로 촬영된 헬리오스 522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4. 유령화된 비행기와 마지막 생존자
발진한 F-16 전투기 2대 중 1대는 522편 뒤에서 사격 위치를 잡았고 1대는 522편 옆에 바짝 붙어서 객실 안을 보았는데 산소 마스크가 내려와 있고 승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모두 실신해 있었다. 이쯤 되자 조종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관제사의 지시를 받은 F-16이 522편의 기수 쪽으로 다가서서 확인해 본 결과 조종실의 기장석은 비어 있었고 부기장은 자기 자리에서 기절한 상태였다.그러다가 F-16 조종사의 눈에 어떤 남자가 조종실에 들어와 조종간을 잡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는 후방 객실 승무원 안드레아스 프로드로무였다. 하지만 관제사와 전투기, 조종석 사이에서는 전혀 통신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 남자의 아래로 내려간다는 손짓 후 그대로 522편은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리스 시간 오후 12시 4분경 헬리오스 항공 522편은 아테네 근처 그라마티코 언덕(Γραμματικό Αττικής Grammatiko)에 추락하고 말았고 탑승객은 전원 사망하였다.
사고기의 시간에 따른 고도 |
사고기의 잔해 |
사고기의 비행궤적 |
5. 사고 원인 조사
구조팀과 조사팀이 모두 현장으로 급파되어 시신을 수습했고 사고 조사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찾아 나섰다. 부검 결과 탑승객 모두 사고기가 지면에 충돌하기 전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의문이 증폭되었는데, 사고 현장에서 조종석 패널의 일부분을 발견했고 이게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이후 발견된 패널의 일부 |
그래서 이 스위치가 왜 수동에 맞춰져 있었는가를 조사해 봤는데, 사고 당일 아침에 기체를 정비하던 정비사가 이걸 수동으로 맞춰서 여압 테스트를 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다시 스위치를 자동으로 돌려놓는 것을 잊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으며, 사고 직전에 해당 기체를 정비했던 영국인 정비사 앨런 어윈(Alan Irwin)을 121명을 살해한 죄로 체포했다.[7]
근본적인 문제는 스위치를 체크하지 않은 것이지만 조사 결과 회사 운영이 총체적 난국이었음이 드러났다고 한다. 영국 가디언지 기사에 따르면 사고 2주 전에 COO로 채용된 브라이언 필드는 회사가 "법을 가능한 정도까지 어기는 것이 권장되는 두려움의 문화(culture of fear where people were encouraged to stretch the rules to the limits)"였으며 기체들이 충분한 휴식 시간 없이 계속해서 운항 중이었다고 밝혔다.[8] 대부분의 직원들이 단기 계약으로 일하던 중이었고, 사고기 부기장은 심장 문제도 있는 데다가 운항 전 체크리스트를 종종 깜빡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조종사들이 어떻게 하면 실신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스 조사관들은 기상천외한 실험을 하나 하기로 했다. 즉, 동일 기종의 여객기를 올림픽 항공에서 빌려와서 실험을 했다. 물론, 안전장치를 추가로 설치하고 조종사들은 아예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후에 실험을 했다. 이는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도 나오는 장면이다.
이륙 직후 여압 조절을 수동으로 돌리고 고도 3,000m를 넘어가자 경고가 울렸으며 고도 7,000m를 넘기자 승객들이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다 산소가 적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승객이 어지러움을 느꼈다면 조종사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산소마스크는 승객석에서만 자동으로 내려왔을 뿐 조종석에서는 자동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조종사들을 위한 산소마스크는 당연히 준비되어 있었지만, 각종 장치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조종석에서 산소마스크가 자동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가 조종사들이 알지 못하는 오입력이 들어갈 경우 다른 사고를 일으킬 것을 우려해 자동 낙하 기능을 뺀 것이다.
그렇다면 승객들은 왜 실신했는가? 마스크의 산소 분량은 12분을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이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조종사가 객실여압고도인 8000ft(약 2500m)로 내려가는데 12분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고에서는 조종사들이 먼저 실신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고도가 낮아지지 않았다.
6. 마지막에 조종석에 들어왔던 그는?
한편, 전투기들이 다가왔을 때 조종석에 한 남자가 들어와 기장석에 앉아서 비행기를 조종하려고 했지만 조종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추락을 면하지 못했다. 그 남자는 바로 승무원 안드레아스 프로드로무(Ανδρέας Προδρομού, Andreas Prodromou)였다.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프로드로무는 기내 감압 이후 1차적으론 여분의 산소 마스크[9]에 의지하다가 이후 승무원용 캐비넷에 설치되어 있던 비상용 산소 탱크 4개로 의식을 유지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프로드로무는 키프로스군 특수부대 출신이었고 스쿠버다이빙 경력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체력도 단련되었겠지만 특히 일반인들은 단순히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오해하기 좋은 상황을 산소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이 쌓였을 것이고, 상황을 알아차리자 신속하게 산소 마스크를 덮어써 의식을 유지한 이후 계속해서 여분의 산소를 찾아 버텼던 것이다.
프로드로무는 영국 상업 운항 면장(UK CPL)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헬리오스 항공 522편과 같은 B737에 대한 면허는 없었으며, 조종석에서 교신을 시도했으나 주파수가 이륙한 공항인 키프로스 라르나카 공항에 맞춰져 있어 아테네 관제소 등과 교신할 수 없었다. 결국 비행기의 연료가 다 떨어지면서 전투기에게 내려간다는 수신호[10]만 남긴 채 추락했다. 프로드로무 혼자만 기절하지 않고 있었고, 조종석에 있었던 데다 구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조사 초기에는 프로드로무가 테러조직의 일원으로 모든 사람을 기절시킨 후 비행기를 추락시킨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서 교신이 되지 않았을 뿐 '메이데이(mayday)'를 다섯 차례나 외치면서 구조신호를 보내려고 했고, 비상용 산소 탱크로 기절한 조종사를 깨우려고 시도하는 등[11] 프로드로무는 비행기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이 밝혀졌다.
7. 결론
이 사고로 인해 그럭저럭 잘 운영하던 헬리오스 항공은 그대로 망해 버렸고 사고 다음 해인 2006년 운항이 정지되고 파산했다.한편 보잉도 결국 소송에 휘말리고 말았다. 조사 결과 보잉 737 기체 자체의 문제점도 드러났는데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오류(이륙 설정 오류[12], 객실 기압 문제[13])에 대해 같은 경고음을 냈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혼동될 여지가 있었다. 사고 이후 별도의 기압 문제 램프를 설치하였다. #
7.1. 탑승객 현황 및 국적 현황
탑승객 국적 | 승객 | 승무원 | 비고 |
[[키프로스| ]][[틀:국기| ]][[틀:국기| ]] | 103 | 4 |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 1 | |
[[그리스| ]][[틀:국기| ]][[틀:국기| ]] | 12 | 1 |
8. 매체
- 디스커버리 채널: 이 사고를 다루었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7년 1월 15일자에서 이 사고를 다뤘다.
- 플라이트 7500: 2014년작 공포 영화로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되었다.
-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 4에서 유령 비행기 에피소드로 다뤘다.
9. 기타
- 탑승객 중 3분의 1인 40명 가량이 어린이였다. #
- 1989년 7월 4일 소련의 MiG-23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는데 엔진고장으로 조종사가 사출좌석으로 탈출했는데 이때 충격 때문인지 엔진이 다시 정상가동되었고 조종사가 없는 상태에서 자동조종장치가 벨기에까지 전투기를 조종하다가 연료 부족으로 추락했다.
- 1999년 10월 25일 올랜도에서 댈러스로 가야했던 리어젯 35가 감압으로 인해 모두가 기절하는 바람에 사우스다코타까지 비행한 뒤에 연료부족으로 추락한 일이 있었다. 유명 골프 선수 페인 스튜어트도 이 사고로 사망했다. 자세한 내용은 1999년 사우스 다코타 리어젯 추락 사고 문서 참조.
- 2011년 7월 7일 제주항공 107편과 2015년 12월 23일 제주항공 101편에서 유사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제주항공 107편 조종사들이나 헬리오스 항공 522편 조종사들 모두 비행 전, 시동 후, 이륙 후, 1만 피트 체크 리스트에 기내 여압장치 설정 확인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대충 무시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다만 두 제주항공의 사고에서는 승객들이 기압차로 인한 귀의 통증을 호소하는 선에서 끝났으며 조종사들도 뒤늦게나마 사태를 인지하고 항공기를 강하시켜 다행히도 이 사고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1] 사고기의 별명은 "올림피아" 였으며 시리얼 넘버 29099/2982, 사고 당시까지 총 이착륙 횟수는 16085회이며 총 비행시간은 17900시간. 초도 비행 일자는 1997년 12월 27일로 사고 당시 기령은 7년이었다. 엔진은 CFMI CFM56-3C1.[2] 다만 정비사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는 힘든 게, 보잉 737 운항메뉴얼에서 여압조절장치 조작은 운항 전 체크리스트 극초반에 실시해야 하는 필수 절차다. 즉, 조종사들이 운행 전 체크리스트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은 것도 겹쳤다.[3] 1992년에 설립된 영국항공 산하의 저가 항공사, 이후 2006년에 에어 베를린에 인수되었다.[4] DBA 소속 당시 기체 등록번호는 D-ADBQ 였다.[5] 후술하지만 조사 결과 이때 울린 경고음은 여압장치 경고음으로 밝혀졌다.[6] 착륙을 위한 접근코스를 입력하지 않아 FMS가 표준 접근실패 절차에 따라 홀딩 모드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7] 사실 정비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게 보잉737 클래식부터 보잉 737 MAX까지 모든 보잉 737 운항 교범상 여압 조절 스위치를 자동모드로 전환한 뒤 순항고도와 착륙지역의 지표고도 정보를 입력하는 절차는 기내 비상전원 인가 바로 다음 즉, 운항 전 체크리스트 극초반에 실시해야 하는 절차다. 즉, 아무리 정비사가 수동으로 레버를 돌렸다고 해도 최종 책임은 조종사들에게 있었다.[8] 항공사가 보유한 비행기는 단 4대뿐이었다고 한다.[9] 비행기에 설치되는 산소 마스크는 실제 승객수보다 약간 더 많이 설치된다. 게다가 사고기는 승객이 모든 좌석을 채우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유분이 더 많았다.[10] 사실 추락하고 있다는 수신호였다.[11] 산소 탱크의 마스크 부분에서 조종사의 DNA가 검출되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수십 분 가까이 저산소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뇌세포가 심각할 정도로 손상되어 이미 뇌사 또는 질식사한 상태라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12] Takeoff Config[13] Cabin Altit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