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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8 06:31:20

폴 보퀴즈

파일:Paul_Bocuse.jpg

1. 개요2. 일생3. 대표 요리4. 이력
4.1. 수상 경력
5. 운영 식당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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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aul Bocuse
(1926년 2월 11일 ~ 2018년 1월 20일)

프랑스셰프. 프랑스 요리계의 전설이자, 요리계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요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셰프 중 한 명이다.[1]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국빈 만찬을 도맡는 등 프랑스 요리계의 거장이다. 미쉐린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 폴 보퀴즈의 오너 셰프로 3스타를 1965년부터 48년 이상 유지해왔다.

2. 일생

1926년 리옹 근교의 요리사 가문[2]에서 태어났으며, 1941년 리옹의 레스토랑 드 라 수아리의 클로드 마레(Claude Maret) 밑에서 견습으로 요리 인생을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기였던 1944년에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자원 입대해 복무하다가 부상을 당한 적이 있고, 1946년에는 라 메르 브라셰에서 다시 수행을 쌓았다.

이후 파리로 가서 라 피라미드의 오너 셰프 페르낭 푸앙(Fernand Point)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59년에 생가의 레스토랑을 이어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개명한 뒤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961년에 프랑스 국가 장인상인 MOF를 수상하였으며, 1965년 이후 2019년까지 미슐랭 가이드의 별 셋을 유지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을 방문했고, 일본식 정식 요리인 가이세키 요리와 쿄 요리[3]의 영향을 받았고, 식재료의 있는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것과 그릇에 계절을 담아낸다라는 사상을 프랑스 요리에 반영한 누벨 퀴진을 주창하게 되었다.

농어의 파이요리를 처음으로 만들어내 요리인으로서는 최초로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수상하였으며,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에게 송로버섯 수프를 대접하고 찬사를 받아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디저트 요리인 크림 브륄레(Crème Brûlée)를 현대화한 사람[4]으로도 유명하다.

말년에는 파킨슨병 등의 병에 시달리다가 2018년 1월 20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수면 중 사망했다. 사망한 장소는 자신의 집을 개조해 만든 레스토랑 2층의 방으로 이 방에서 보퀴즈가 태어났다. 기묘하게도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을 같은 방에서 맞았다. 그의 사망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제라드 콜롱 내무부 장관[5]이 추모 멘트를 남기고 리옹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은 필립 바르바랭 추기경이 주재했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6]

3. 대표 요리

4. 이력

4.1. 수상 경력

5. 운영 식당

홈페이지
폴 보퀴즈가 소유한 수많은 레스토랑 중에서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프랑스 리옹 인근에 위치해 있다. 1965년 문을 열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영업하며, 영업시간은 점심은 12시부터 1시 15분까지, 저녁은 8시부터 9시 15분까지 영업한다. 코스메뉴는 총 3종류가 있으며, 메뉴 1은 225유로[12], 메뉴 2는 300유로[13], 메뉴 3은 340유로[14]다. 메뉴판 그외 다른 메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보퀴즈의 수제자들이 운영 중인데, 다만 2020년부터 해당 식당은 반 세기 이상(1965~2019)의 미쉐린 3스타 기록을 깨고 미쉐린 2스타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외에도 스위스, 미국, 일본에서도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6. 여담



[1] 프랑스 셰프 중에서는 마리 앙투안 카렘,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같은 기라성 중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 외에는 적수가 없는 수준.[2] 무려 1765년부터 대대로 요리사로 일해왔다고 한다.[3] 일본의 전근대 사회 천황의 거처가 있었던 교토의 요리를 의미하며, 왕족과 귀족들이 즐기던 요리다. 당시에는 호화요리였으나, 현대 기준으로는 평범한 일본식 정찬에 불과하다.[4] 엄밀히 따지자면 크림 브륄레는 17세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런데도 보퀴즈가 크림 브륄레의 고안자인 것처럼 알려진 것은 그만큼 보퀴즈의 크림 브륄레가 전설적인 수준이었다는 이야기.[5] 16년 동안 리옹 시장을 역임했다.[6] 참고로 그로부터 반 년 후 조엘 로부숑도 사망했다.[7]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약자[8] 향기로운 국을 뚜껑이 달린 공기에 담고, 손님이 뚜껑을 여는 순간 향이 피어오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9] 버터 소스의 일종[10] 토마토 퓌레와 버터+식용 달팽이+달걀 등을 넣고 만드는 소스[11] La Mère Brazier. 1933년에 미슐랭 별 3개를 획득한 곳으로 오너 쉐프는 오줴니 브라쉐(Eugénie Brazier)(1895~1977)였다.[12] 약 33만 원[13] 약 45만 원[14] 약 51만 원[15] 22개국 동일하게 공동학위 과정이라서 졸업시 본교졸업증이 나온다.[16] 과거 오귀스트 에스코피에RMS 타이타닉 1등석 메뉴 개발에 참여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17] 더 타임즈 구독을 해야 읽을 수 있다.[18] 셋째 글은 작성자가 맛집 블로거 겸 유튜버 비밀이야다.[19] 물론 여기서 파는 식품들의 레시피는 모두 폴 보퀴즈의 레시피에 따른 것이다.[20] 프랑스는 영국, 서독, 소련과 같은 1967년에야 컬러 방송을 시작했다.[21] 램지도 방송으로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미쉐린 3스타를 얻은 실력파 셰프다.[22] 1977년 2월 25일 방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