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스위스는 Pz Jg G 13과 LPz 51을 구매하면서 전차 전력을 보강했으나, 무포탑 구축전차인 G 13은 한계가 명확했고, LPz 51은 땜빵 용도에 가까웠다. 사실 1950년, 영국은 스위스에 센추리온 전차를 판매하려 했으나, 한국전의 발발로 인해 전차 판매를 취소하였다. 국제정세가 조금 안정된 1952년이 되어서야 영국은 전차 판매 제한을 해제했고, 스위스는 M47 패튼과 센추리온 전차의 테스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9]
스위스는 M47 2대를 각각 100만 스위스 프랑에 구매했고, 센추리온 2대를 임대 형식으로 들여왔다. 험지 및 장애물 돌파에 우수함를 보였던 5단 수동 변속기와 20파운더 전차포는 심사위원들을 만족시켰고, 1954년 10월 29일 스위스 연방 의회는 센추리온 도입에 대한 안건을 통과시킨다. 1차 도입분은 비커스-암스트롱에서 100대가 생산되어 1956년 1월 17일부터 1957년 9월 23일까지 인도되었고, 판처 55로 명명되었다.
1956년 수에즈 위기와 헝가리 봉기는 국제정세를 악화시켰고, RP 57[10]에서 첸투리온 100대를 더 구매하는 안건은 의회에서 빠르게 통과되었다. 이 전차들은 판처 57로 명명되었고, 기존의 판처 55와 차이점이 있었다. 우선 기존 판처 55의 연료탱크는 540L밖에 실을 수 없었지만 판처 57은 1,100L까지 실을 수 있었다. 또한 포탑 바스켓이 장착되어 안전성과 전투력이 상승했다.
195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은 100대의 센추리온 Mk.5를 저렴하게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전차들은 남아프리카군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사실상 새 전차였다. 주행거리는 평균 500km밖에 되지 않았으며 ⅘는 한번도 사격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11] 이 전차들을 들여와서 더러워진 내부를 청소하고, 부품들을 수정하는데 드는 비용은 373,000 스위스 프랑으로 추산되었다. 당시 K+W 툰에서는 판처 58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스위스 연방 의회는 센추리온의 수입을 승인했고, 이 3차 도입분은 1962년 1월 16일부터 1964년 8월 20일까지 인도되었고, 판처 55로 분류되었다.
스위스가 첸투리온 전차를 도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파운더 포의 관통력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은 로얄 오드넌스 L7로 업건을 진행하였고, 스위스 또한 L7의 스위스 버전인 10,5cm Pz Kan 60로의 업건을 진행한다. 이 개량은 Rev I/Rev II[12]라고 블렸고, 이 개량에서 화재 경보 장치, 냉각수 제어 시스템 등이 새로 설치되었다. 개량사업 진행 중에는 개량이 완료된 차량을 Pz 55/60 및 Pz 57/60이라고 별칭했으나 개량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는 다시 Pz 55, Pz 57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은 개량된 센추리온들로 수 차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이에 1982년 1월, 연방 무기조달국 부국장이 텔아비브의 IMI를 방문하여 기술협력을 논의했다. 그리고 1983년 3월, 2대의 이스라엘군 숏이 스위스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스위스군의 Pz 55와 Pz 57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750마력 디젤 엔진을 장착하여 기동성을 향상시킴과 더불어 화재 위험성을 낮췄고, 신형 조향 장치와 신형 사통장치로 전투 효율성을 끌어올렸다. 물론 스위스군에게 몇가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테스트에서 문제가 단 한건도 발견되지 않아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1983년 12월, 첸투리온의 개량 프로그램은 중단된다. 이 결정은 판처 87 도입과 관련된 재정적 문제 때문에 내려졌고, 첸투리온에 계획된 Rev III는 전투 성능에 필요한 유지 관리에만[13] 국한되었고, 이스라엘제 날탄을 도입한 것을 끝으로 개량은 끝나게 되었다.
[1] 판처 57은 1960년부터[2] 8,4cm Panzerabwehr-Kanone 1955[3] 10,5cm Panzer Kanone 60[4] 7,5mm Panzermaschinengewehr 1951[5] Rev II에서 Pz Mg 51/71로 바뀐다[6] 8cm Nebelwerfer 1951[7] 7,1cm Leuchtgeschosswerfer 1974[8] '라이히터 판처'라고 읽는다.[9] 여담으로 스웨덴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센추리온 도입이 늦어져 AMX-13 도입을 추진하고 에밀 전차를 개발한다. 중립국들의 비슷한 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10] 군비 프로그램 57[11] 나머지 ⅕조차도 평균 50발밖에 발사하지 않은 상태였다.[12] Rev I는 판처 57을, Rev II는 판처 55를 대상으로 했다.[13] 당시 일부 부품이 영국에서 더이상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