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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07:03:20

키키 키린

키키 키린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파일:japan-academy-prize.png
최우수 여우주연상
제30회
(2007년)
제31회
(2008년)
제32회
(2009년)
나카타니 미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키키 키린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키무라 타에
(나를 둘러싼 것들)
제35회
(2012년)
제36회
(2013년)
제37회
(2014년)
이노우에 마오
(8일째 매미)
키키 키린
(내 어머니의 연대기)
마키 요코
(안녕, 계곡)
최우수 여우조연상
제33회
(2010년)
제34회
(2011년)
제35회
(2012년)
요 키미코
(우리 의사 선생님)
키키 키린
(악인)
나가사쿠 히로미
(8일째 매미)
제41회
(2018년)
제42회
(2019년)
제43회
(2020년)
히로세 스즈
(세 번째 살인)
키키 키린
(어느 가족)
나가사와 마사미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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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52F31><colcolor=#FFF> 키키 키린
[ruby(樹木, ruby=きき)] [ruby(希林, ruby=きりん)] | Kirin Kiki
파일:키키 키린.jpg
본명 [ruby(内田, ruby=うちだ)] [ruby(啓子, ruby=けいこ)] (우치다 케이코, Keiko Uchida)[1]
출생 1943년 1월 15일
도쿄부 도쿄시 칸다구
(現 도쿄도 치요다구)
사망 2018년 9월 15일 (향년 75세)
도쿄도 시부야구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A형
배우자 키시다 신(1964년 결혼 – 1968년 이혼)
우치다 유야(1973년 결혼 – 2018년 사별)
자녀 딸 우치다 야야코(1976년생)

1. 개요2. 활동3. 출연작4.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 국민 배우.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기키 기린이다.

2. 활동

한국에선 일본 문화개방 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1961년부터 연극을 시작한 원로 배우로 1964년 드라마 '일곱 명의 손자'에서 일약 스타가 된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하였다. 1978년부터 40년간 후지필름 광고 전속모델로도 활약했는데, 총 286편이나 출연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로 아래의 필모그래피에 쓰여진 대로 여러 작품을 함께했고, 고레에다 감독이 그만큼 좋아하는 배우였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도 친분이 있는데, 키키 역시 봉 감독의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마더를 가장 좋아해서 고레에다 감독에게 열정적으로 감상을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작중 김혜자의 역할을 보면서 자신이 연기하는 상상도 해보고 언젠가 봉 감독과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고 한다.

1974년 일본 TBS 테레비에서 방송된 드라마 '데라우치 칸타로 일가'[2]에서 주인공 타로의 친어머니를 연기하였는데, 실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40대 중후반을 연기하기 위해 머리를 탈색하고 쭈글쭈글한 장갑을 끼는 등 열연하였다.

남편은 일본의 유명한 가수 우치다 유야. 결혼 후 50여 년 간 별거를 하는 결혼 생활로 유명했다. 다만 키키 키린의 폭로에 따르면 우치다의 가정 폭력과 바람기 때문에 억지로 잡아둔 쪽에 가깝다고 한다. 둘이 상당히 사이가 나쁜 데다 정치 성향도 갈렸는지[3] 디스가 종종 있었다.

2013년 제36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수상 연설에서 암에 걸린 사실을 공표하였다.

2004년 유방암에 걸린 이후 온몸에 암이 전이되면서 계속 투병 생활을 해오다 2018년 9월 15일 도쿄도 시부야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3. 출연작

4. 여담



[1] 결혼 전 성은 나카타니(中谷).[2] 칸타로 역은 작곡가 고바야시 아세이가 맡았다.[3] 우치다 유야 역시 키키 키린의 사망 1년 후인 2019년 사망했는데 말년에 위안부를 부정하는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반대로 키키 키린은 오키나와 미군 기지 반대 시위대를 취재하면서, 본토인들의 오키나와 인식을 비판하는 발언을 남겼다.[4] 원제는 시모츠마 이야기.[5] 노래는 2분 50초부터. 참고로 이때 고 히로미는 21세, 키키 키린은 3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