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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13:46:07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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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Константин Циолковский | Konstantin Tsiolkovsky
파일:치올코프스키.jpg
본명 콘스탄틴 에두아르도비치 치올코프스키
Константин Эдуардович Циолковский
Konstantin Eduardovich Tsiolkovsky
출생 1857년 9월 17일
러시아 제국 랴잔현 이젭스코예
사망 1935년 9월 19일 (향년 78세)
소련 러시아 SFSR 칼루가
국적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 →
[[소련|]][[틀:국기|]][[틀:국기|]]
직업 교사, 공학자, 물리학자
종교 무종교 (유신론)[1]
서명 파일:Konstantin_Tsiolkovsky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기타4.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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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구는 인류 문명의 요람이다. 그러나 누구도 요람에서 평생을 살 수 없다.
Земля - это колыбель разума, но нельзя вечно жить в колыбели.
우주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한 그의 유명한 말.

콘스탄틴 에두아르도비치 치올코프스키[2]러시아 제국-소련물리학자이자 로켓 이론 기초, 국제우주정거장의 아이디어를 제시한 로켓의 아버지이다.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으나 소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인물이었고 사후에도 소련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우대를 받았다. 허나 러시아 제국과도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세계 최초 인공위성스푸트니크도 1957년 그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 발사된 것이다.

2. 생애

그는 러시아 제국 라잔현 이젭스코예 마을의 산림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0세 때 성홍열을 앓게되어 청각을 잃어버렸고, 이 점이 학습과 공부에 여러모로 방해가 될 것이란 것을 염려하던 어머니의 결정으로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면서 아무런 방해나 걱정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그가 고작 13세일 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힘든 삶을 살아왔었다.

이후에 청소년으로 성장한 이후부터 그는 여러 도서관들을 다니면서, 거의 독학으로 물리학천문학, 철학, 문학 등을 공부[3] 했으며, 꾸준한 학습 과정을 거쳐서, 생활고(빵과 물만으로 매일매일을 연명했었다.)에 시달리던 그는 '적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과 거처를 얻어달라'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을 따르기로 하였고, 교사 검정 고시에 끝내 합격하여 자기 고향, 칼루가의 중등학교 과학 교사가 되었다. 독학으로 교육 공무원이 된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배워온 지식들을 토대로 인류의 역사를 바꿀 여러 과학 이론 논문과 공상과학 문학들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우주항법(cosmonautics)의 이론적 정립, 발전에서 많은 공헌과 인간이 다른 행성들의 환경을 재설계할 수 있게 되는 시대, 즉 행성의 지구화가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찍이 예견했다. 1896년 외계 지능과의 교신에 관한 책을 집필했고, 또 1903년에는 다단계 액체 연료 로켓으로 인간이 지구의 대기 바깥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방법에 관해 상세하게 기술했다. 에펠탑에서 영감을 얻어 궤도 엘리베이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기도 했으며 추력방향의 변경이 가능한 로켓엔진, 우주정거장, 연소실의 설계,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한 자세제어, 우주와 출입가능한 에어록의 설계 등 로켓이 발명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현대에도 쓰이는 이론적 배경을 설계했다. 참고로 1903년은 라이트형제가 세계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던 시기다. 인류가 비행을 처음 시작할 때 치올코프스키는 우주여행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고, 현재도 큰 틀에서는 이 이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차르정 시절에는 그의 연구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었으나,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공산당에 의해 중용되어 사회과학 사회주의 아카데미의 일원으로서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였다. 신생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하여 이 시기에 다단 로켓, 심지어는 우주정거장의 이론적 가능성까지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노고를 인장한 소련 정부와 공산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으며, 그의 사후에 소련은 그의 과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뤄주었다.

비록 그가 살아 생전에는 로켓을 만들기는 커녕 실물을 보지도 못했지만, 이러한 이론적 기초를 닦아주었기에 로켓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 블라디미르 첼로메이, 발렌틴 글루시코, 미하일 얀겔이 주도한 냉전 초기 소련의 우주과학기술 성과물들(예: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4],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과 우주 유영, 지구 외 태양계 행성 탐사선 임무 등)도 치올코프스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생전에 직접 로켓을 만들어 발사할 수 있는 당시 기술적인 한계와 집적 액체 로켓 모형을 발사할 기회가 없다보니, 이후 최초의 액체 로켓 발사를 성공시킨 로버트 고다드, 이 기술을 발전시켜 잘 써먹은 베르너 폰 브라운, 세르게이 코롤료프 등 후대의 항공우주 과학자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못한 편이다.

어머니를 어릴 때 여위었고, 아들 2명은 자살, 2명은 병마, 딸도 1명은 병으로 죽었으며, 본인도 병상에 누워있던 60세에서야 그 공로를 정부와 학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평생을 말도 안 되는 공상과 기이한 지적 탐구를 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괴짜란 평가를 받았으며, 거의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왔다. 모든 연구는 얼마되지 않는 가산을 들여서 진행해야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대로 평탄치 않은 삶을 지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치올코프스키는 그가 생전에 불가능이라고 남들이 비관하던 자신의 공상과 이론들을 사후에 그의 후배들을 통하여 증명해내었고, 결국 그는 인류 모두가 기억하지는 않지만, 인류를 지구에서 우주로 나아가 번영하는 길을 제공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천재로서 생애를 보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3. 기타

쥘 베른이 쓴 달 세계 여행을 보고 완전히 엉터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5] 사실 쥘 베른도 이걸 알았기에 이 소설에서도 대포 안에서 온갖 완충 장치를 하고 설계되었지만 달에 도착할때 같이 탄 개는 머리가 으스러져 죽었으며 사람들도 한참을 기절해야 했고 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미의 컴퓨터 여행에서 한 에피소드 주역으로 나왔다. 밈에게 달 세계 여행을 보고 너무 허구가 많다고 지적하고 우주로 배를 만들어 직접 쏴 올리는 게 더 현실감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밈과 같이 현실화된 우주선을 우주복 차림으로 타고 이게 언젠가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1957년 그의 동상이 스푸트니크 1호가 쏴 올라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밈이 1957년 그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 인류는 세계 최초 인공위성을 쏘아 우주로 올렸습니다라고 에피소드가 끝난다.

1950년대 소련이 무인 우주선을 이용해 달의 뒷면 촬영에 성공했을 때, 한 분화구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의 이름을 딴 유명한 수식이 바로 치올코프스키 로켓 방정식이다. 이 로켓 방정식을 통해 다단 로켓 구성이 사용연료 대비 적재량(payload)의 비율을 높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련과 현대 러시아에서 우주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을 꼽으라면 반드시 포함되는 인물이다. 나머지 둘은 세르게이 코롤료프, 유리 가가린이다. 로스코스모스 설립 이전 구 소련 우주국 청사 로비엔 이 세 인물의 대형 초상화가 치올코프스키, 코롤료프, 가가린 순으로 걸려 있었다.

4. 어록

- 콘스탄틴 E. 치올코프스키의 어록 출처
Человечество не останется вечно на земле, но в погоне за светом и пространством сначала робко проникнет за пределы атмосферы, а затем завоюет себе всё околосолнечное пространство.

인류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빛과 우주를 추구하기 위하여, 먼저 소심하게 대기권 밖을 정복한 이후에, 태양계 내 모든 행성과 공간을 차지할 것이다.
- «Воздухоплавание в наше время / 우리 시대의 항공학», 1912년.
…Это даст возможность даже громадные оранжереи делать со стенками очень тонкими. Может быть, даже и растения переработаются так, что будут жить без внешней газовой среды, перерабатывая всё внутри себя, как зоофиты (кактусы). Если мы мечтаем о таком преобразовании для животных, то тем более можем научно думать о том же для более простых существ, каковы растения.

...이것은 심지어 거대한 온실들도 벽을 가능한 얇게 만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아마도 식물들조차 외부 기체 환경 없이 살 수 있도록 재활용될 것이고, 그들의 내부의 모든 것을 동물-식물(선인장)처럼 재활용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동물을 위한 이러한 변화를 꿈꾼다면, 우리는 더 단순한 생물들, 즉 식물에 대해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Жизнь в межзвёздной среде/성간 환경에서의 생활», 1919년.
Планета есть колыбель разума, но нельзя вечно жить в колыбели.

행성지성의 요람이다. 그러나 누구도 영원히 요람에서 살 수는 없다.
- «Исследование мировых пространств реактивными приборами / 제트추진 기관을 통한 우주 탐험 연구 논문», 1911—1912년.
Сначала неизбежно идут: мысль, фантазия, сказка; за ними шествует научный расчет, и уже, в конце концов, исполнение венчает мысль.

먼저 첫 번째로 진행되는 것은 생각, 공상, 꿈 같은 이야기이고, 과학적인 계산이 뒤따르게 되어있으며, 그리고 마지막 결말에는, 계획하던 바의 성과가 있을 것이다.
- «Исследование мировых пространств реактивными приборами / 제트추진 기관을 통한 우주 탐험 연구 논문», 1911—1912년.
Невозможное сегодня станет возможным завтра.

오늘 실현시킬 수 없는 것은 가까운 미래라면 실현시킬 수 있게될 것이다.
- «Исследование мировых пространств реактивными приборами / 제트추진 기관을 통한 우주 탐험 연구 논문», 1911—1912년.
Многие думают, что жизнь так сложна, так загадочна, что начало её не могло зародиться на такой ничтожной пылинке, как Земля, что жизнь есть произведение безграничной вселенной, зародилась где-то на планетах, между далёкими солнцами, в течение бесконечности веков, и только перенесена случайно на Землю, где и расцвела. Конечно, об этом можно говорить. Но не преувеличивают ли загадочность жизни? Это во-первых. Во-вторых, перенос жизни через мировые пространства довольно трудно допустить:

많은 사람들은 생명이 너무 복잡하고, 신비로우며, 지구처럼 작고 평범한 행성 속에서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은 무한한 우주의 산물이고, 행성들, 먼 항성들 사이의 어딘가에서 시작되었고, 오직 우연히 지구로 옮겨졌다. 틀림없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명의 신비로움이 과장되지는 않았을까? 그것이 우선이다. 둘째로, 우주 공간을 통한 생명의 이동은 현재 과학 기술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 «Зарождение жизни на Земле / 지구상 생명의 기원 », 1922년.
Млечный Путь содержит сотни миллионов солнц и миллиарды планет, на которых могла бы зародиться жизнь:

은하수에는 수억 개의 항성과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수십억 개의 행성이 있다.
- «Зарождение жизни на Земле / 지구상 생명의 기원 », 1922년.
...Они, герои, смельчаки, проложат первые воздушные тропы трасс: Земля — орбита Луны, Земля — орбита Марса, а ещё далее: Москва — Луна, Калуга — Марс.
...용감한 영웅인 그들지구 - 달의 궤도, 지구 - 화성의 궤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스크바 - 달, 칼루가 - 화성 같은 첫 번째 비행로를 열어낼 것입니다.
- 1935년 5월 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참가자들을 위한 전연방라디오 연설 중에서.


[1] Georgy Manaev, "How are religion and Russian space science connected?", 「Russia Beyond」, 2021.5.27.[2]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치올콥스키"[3] 보통 수준의 학습을 한 건 아니였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도서관의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하여, 도서관이 다시 문을 닫기 직전에 도서관 관리인이 그를 직접 문 밖으로 내쫓을때까지 최대한 많은 책들을 가능하다면 다 읽으려했을 정도였다.[4] 그의 사후 1957년에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였는데, 발사 과정에서 치올코프스키의 로켓 방정식을 이용하여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지구 대기권 바깥의 궤도로 날려보내는데 성공하였다. 자신의 이론을 직접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순간이기도 한 셈이다.[5] 거대한 대포로 사람이 속에 탄 포알을 달로 쏴서 간다는 줄거리인데, 실제로 그렇게 쏘면 엄청난 압력으로 포알 속 사람은 발사 순간 끔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