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완 아톰 (1963~1966) 鉄腕アト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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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a3c,#dddddd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작품 정보 ▼ {{{#!wiki style="margin: -5px 0px -11px" | 장르 | SF, 액션, 슈퍼히어로물 | |
원작 | 데즈카 오사무 | ||
총감독 | |||
음악 감독 | 오노 마츠오(大野松雄) | ||
음악 | 타카이 타츠오(高井達雄) | ||
애니메이션 제작 | 무시 프로덕션 | ||
제작 | |||
방영 기간 | 1963. 01. 01. ~ 1966. 12. 31. 1970. 09. 19. ~ 1972. 10. 01. | ||
방송국 | 후지 테레비 (화) 18:15[1] (토) 19:00[2] TBC-TV / (일) 18:00 | ||
편당 러닝타임 | 24분 | ||
화수 | 193화 | ||
시청 등급 |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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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설의 1화. 스폰서는 메이지제과였다. 작화는 미국의 1930년대 애니 수준. |
일본의 만화 철완 아톰을 원작으로 하는 TV 애니메이션으로 첫번째 시리즈작이었다.[3] 무시 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아 1963년 1월 1일부터 1966년 12월 31일까지 후지 테레비에서 방영했다. 총 193화. 총감독은 원작자 데즈카 오사무.
2. 특징
일본에 초당 2~3 프레임 밖에 안 쓰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붐을 일으킨 작품이다.[4] 이렇게 만들면 매우 싸고 빠르게 만들 수가 있었다. 이렇게 TV에서 매주 틀어 광고 및 굿즈 판매로 돈을 번다는 기획이었고 성공을 거뒀다. 이후로 후지TV는 물론이고 타 민영방송에서도[5] TV 애니가 편성되었지만, 대개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서 당시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만화영화로도 불리지 못하고 TV 만화[6]라고 불렸다. 나중에 타이거 마스크와 내일의 죠가 나오면서 비로소 TV 애니메이션도 애니메이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2.1. 제작기
당초엔 애니메이션 제작의 꿈이 크던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콘티를 짜고 연출했으나 움직임이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우며 화면 전환은 전부 생략해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지 않는 영 이상한 애니메이션이 나왔고 데즈카 오사무는 자신이 애니메이션엔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한다.[7] 그리고 연출 직원을 더 뽑기로 한다. 스기이 기사부로를 중심으로 타사에서 스카웃한 린 타로, 신인 직원 중 실력이 뛰어났던 토미노 요시유키 이 3인의 로테이션 감독 체제를 만들어 흑백에 리미티드임에도 연출은 볼만한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3. 주제가
1963년 일본 내수판 오프닝. 참고로 1화부터 30화까지는 보컬이 없었다. [8] |
작사: 타니가와 슌타로(谷川俊太郎) 작곡: 타카이 타츠오(高井達雄) 노래: 카미타카다 소년합창단(上高田少年合唱団) 1. 空を越えて ラララ星のかなた 소라오 코에테 라라라 호시노 카나타 하늘을 날아서 랄랄라 별의 그너머로 行くぞアトム ジェットのかぎり 유쿠조 아토무 젯토노 카기리 나가자 아톰 제트 연료가 있을때까지 心やさし ラララ科学の子 코코로 야사시 라라라 가가쿠노코 마음이 다정한 랄랄라 과학의 아이 十万馬力だ 鉄腕アトム 쥬만바리키다 테츠완 아토무 10만 마력의 힘이다 철완 아톰 2. 耳をすませ ラララ目をみはれ 미미오 스마세 라라라 메오 미하레 귀를 기울여 랄랄라 눈을 크게 떠 そうだアトム 油断をするな 소다 아토무 유단오 스루나 그래, 아톰 방심하지마 心正し ラララ科学の子 코코로 타다시 라라라 가가쿠노코 마음이 올바른 랄랄라 과학의 아이 七つの威力さ 鉄腕アトム 나나츠노 이료쿠사 테츠완 아토무 일곱가지 위력이다 철완 아톰 3. 街角に ラララ海の底に 길거리에서 랄랄라 바닷속에서 今日もアトム 人間守って 오늘도 아톰은 인간을 지키네 心はずむ ラララ科学の子 신나는 마음의 랄랄라 과학의 아이 みんなの友達 鉄腕アトム 모두의 친구 철완 아톰 |
- 한국어 번안 주제가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주소년 아톰
용감히 싸워라
착하고 올바르게
랄랄라 착하고 올바르게
과학의 힘 정의의 승리
우주소년 아톰
(1970년 동양방송 방영 판)[9]
푸른 하늘 저 멀리(빰빰빰)
밝은 태양 안고서(빰빰빰)
돌아온 아톰
돌아온 아톰(아톰)
착하고 슬기롭게
착하고 씩씩하게
정의의 사자 아톰
평화의 사자 아톰
우리의 친구 아아아톰(아톰)
(1984년 KBS판)
푸른 하늘 저멀리
랄랄라
힘차게 날으는
우주소년 아톰
용감히 싸워라
언제나 즐거웁게
랄랄라
힘차게 날으는
우주소년 아톰
우주소년 아톰
(1980년대 비디오판)
1.땅을 차고 하늘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라
우주소년 아톰
아톰이 돌아왔다
지구의 평화 위해
언제나 용감히 싸워라
우주의 저편으로 아톰이 나가신다
2.천하무적 우주소년
정의와 평화의 용사
우주소년 아톰
아톰이 돌아왔다
악의 무리 물리쳐라
우리의 초능력 로봇
우주의 저편으로 아톰이 나가신다
(1995년 SBS판)||
4. 에피소드 가이드
===# 결말 #===엔딩은 만화보다 일찍 나왔는데, 다른 어떤 매체(만화판, 후속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원조 아톰 애니메이션만의 독특한 결말로 일종의 열린 결말이었다. 지구 온난화를 되돌리기 위해 아톰이 핵폭탄을 가득 실은 캡슐을 태양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끝나며, 아톰이 파괴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지만 오차노미즈 박사가 “지구는 평화를 되찾았지만 아톰은 돌아오지 않았다. 허나 아톰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만약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톰이 태어났던 이 작업대 위에서 제2, 제3의 아톰이 태어날 수 있겠지…”라 말하는 것이 결말이다.
역시나 이후 아톰을 더 연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만화판은 연장이 되었고 애니판 결말에 추가로 아톰을 살리는 전개가 들어갔다. 진짜 아톰의 완결편은 1970년에 나왔다.
5. 해외 공개
5.1. 대한민국
한국에선 <아톰>이란 제목으로 TBC-TV를 통해 1970년 9월 19일부터 1972년 10월 1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6시대에 편성했다. 해당 작품의 인기 때문에 롯데공업 라면스낵 '라면땅' 포장에도 실렸다.하지만 더빙본 동영상은 전체 유실된 로스트 미디어다.
5.2. 미국
미국에선 <Astro Boy>라는 제목으로 NBC를 통해 방송되었다. 처음에는 인기가 좋았으나 결국 104화가 더빙되는 것으로 그쳤다. DVD도 발매되었으며, 모든 화가 수록되어 있다.6. 기타
이 애니메이션 때문에 데즈카 오사무는 애니메이터의 저임금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여러 업계인들이 부정하고 있다. 데즈카 오사무 항목 참조. 오히려 데즈카는 이 작품을 만들 때 연출가와 애니메이터를 모집하면서 "토에이 애니메이션보다 돈을 2배 더 주겠다."라는 조건으로 사람을 모았다고 한다. #139편은 현재 아톰 에피소드 중 유일한 로스트 미디어이다. 원래는 125, 127편도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24년 3월 발견되었다.
1964년 1월 25일에 방영된 56화 '지구 방위대(地球防衛隊)'는 시범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로 1회 분량을 컬러로 제작하였고,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 시청률인 40.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만 송출은 흑백으로 했기에 당시 일본에서 이 에피소드를 컬러로 본 사람은 없었다.[10]
1978년 5월 11일 중국 CCTV[11]에서 첫 방영되었는데, 이는 중국에서 방영된 최초의 해외 TV 애니메이션이었다.
타카하시 료스케는 아톰 애니가 여러 번 나왔고 이 애니는 움직이지도 않지만 스토리와 연출은 이게 최고라고 한다.
[1] 1963년 방영분[2] 1964년 이후 방영분[3]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이 있지만, 당대의 방송기록들과 추가적인 자료확인에 따른 결과에 의하면 일본 최초 TV 애니메이션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생방송 방송 및 테이프 돌려쓰기가 일상적인지라 자료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되기는 할것이다.[4] 그래도 중요한 장면에선 8프레임 이상 쓰기도 한다.[5] NHK는 197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자체제작 애니메이션(미래소년 코난)을 편성하기 시작한다.[6] 실제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테레비 망가(テレビマンガ)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7] 오죽하면 토미노 요시유키는 "데즈카 씨는 만화가라서 애니는 하나도 모른다."라고 했으며 스기이 기사부로도 "그 사람을 존경하지만 애니엔 재능이 없다."라고 깠다. 린 타로는 데즈카가 화면 전환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아 자신이 직접 영화의 편집 기법을 애니메이션에 도입했다고 한다.[8] 이 오프닝은 1965년 140화부터 사용된 후기판 오프닝이다.[9] 동영상 자료 등은 남아있지 않은 듯 보인다. 다만 해당 가사로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 검색을 해보면, 위 가사를 인용한 과거 언론 기사 등을 찾을 수 있기는 하다.[10] 다만 이는 당시 일본의 컬러 TV 보급 실태를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이른 편인 1960년 9월 10일에 정규 컬러 방송을 시작했음에도 이 에피소드가 방영된 지 2년 후인 1966년 기준으로도 절대다수의 TV가 흑백 TV였던 것은 물론 컬러 TV 보급률이 0%대였을 정도로 컬러 TV가 없다시피했고, 이 때문에 컬러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컬러로 송출해도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메리트가 전혀 없었으니 흑백으로 송출한 것이다.[11] 그로부터 고작 10일 전(1978년 5월 1일) 사명을 '베이징 텔레비전'에서 '중국 중앙 텔레비전'으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