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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1:03:51

천공(역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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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ddd><colcolor=#fff,#000> 천공
天空
파일:천공스승.jpg
본명 이병철 → 이천공[1]
통명 천공 (天空)
진정[2]
출생 1952년[3] ([age(1952-12-31)]~[age(1952-01-01)]세)
경상북도 대구시 남부출장소 대명동
(現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가족 불명[4]
학력 국민학교(중퇴)
현직 유튜버, 역술인(교주)[5]
종교 해동신선도 → 정법시대[6]
교리 정법[7]
연구소 정법시대[8], 지역살리기운동본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활동4. 저서5. 유튜브 활동(정법시대)6. 사상7. 비판 및 논란8. 기타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역술인, 유튜버. 스스로를 진정(眞政), 천공(天空)이라고도 칭한다. 정치권에서 혼동하여 진정 스님, 정법 도사, 정법 시대라고 잘못 부르기도 한다.

자신은 천공, 그리고 현재 하나뿐인 제자에게는 혜공이라는 호를 붙였다.

2. 생애

※ 참고로 그의 이력 상당수는 천공 개인에서 나온 것이며, 교차검증은 되지 않는 내용이다. 천공은 학교나 직장 등 단체에 소속된 적이 없어 문서화된 경력이 없고, 본인의 인생을 현대인이 믿기 어려운 설화 수준으로 표현하여 정체가 불분명하다.
1952년, 경상북도 대구시 남부출장소 대명동(現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4세에 부산 감천문화마을고아원에 부모로부터 버려졌다. 6세부터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 등 유년 시절부터 혹독한 사회생활을 배워 나갔으며, 7세에 초등학교 2학년에 중퇴하였다. 그는 "소년기에 밴텀급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 태권도 2단, 당수 3단짜리 형들 4명과 싸움에서 얻어터져 대학병원에서 21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다"고 밝힌 바 있으며, 그러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부산 영도구 일대에서 찹쌀떡을 팔았는데 직업여성에게도 찹쌀떡을 팔았고 그러함이 자신이 똑똑했기에 가능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어서 그가 밝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청년기에는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로 똑똑하다고 여기고 잘난 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면서 뜻을 맞추어 일할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현생에서 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다음 생을 기약하려고 하였다"며 "배신과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느껴 세상을 등지고 죽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나라의 산들을 둘려보다가 1988 서울 올림픽이 끝날 즈음(36세 즈음)엔 죽으려고 하였다.

그러다 1985년 즈음(만 33세)[9] 울산신불산에서 무녀 활동을 하는 어떤 보살[10]과 인연이 생겼다. 생판 모르던 이 보살이 그가 태어난 곳부터 고아가 된 과정까지 그리고 죽으러 온 것까지 모두 아기동자의 말로 한 것을 듣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분이 말하기를 "왜 죽으려고 하십니까, 죽으면 안 됩니다."고 만류하면서 100일간만 기도를 한 후에 죽으라는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불산 홍유폭포 근처에 머물게 되었다.

스스로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로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를 알고 죽겠다는 생각에 죽음을 100일간 미루고 그 세계를 알기 위해서 시작한 그 때부터 신불산에서 수행이 시작되었다. 신불산에서 수행이 시작되면서 산에 죽으러 들어오기 전까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고, 제일로 똑똑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삶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지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 때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천지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17년을 머리를 들지 않고 땅만 쳐다보면서 허리를 굽혀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면서 아무 말 없이 생활하였고, 산신에게 올린 좋은 음식들은 먹지 않고 귀신들을 주기 위해 버려진 명태 대가리 등 버려진 음식들을 주워 먹으면서 세상의 모순과 의문을 풀어내기까지 입을 다물고 생활하였던 생활이 10년 지나서야 그것이 바로 수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수행이 3년 7개월째가 되면서 밤에는 차원계를 왕래하며 신들과 대화하고 천지 대자연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수행이 시작된 지 12년째가 되었을 때 봄에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냥 때 맞춰서 땅 보면 되는 거 아님?? 13년 차가 되면서 쓰레기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 때부터 비로소 세상이 보이기 시작을 하였고, 낮에는 쓰레기를 줍고 밤에는 약 15분 정도 잠을 자고 차원계를 왕래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17년간의 수행에서 의문이 풀리지 않을 때는 곡기 끊기를 수십 회 거듭하면서 70번을 죽었다 살아나기를 되풀이하였고, 죽었다가 살아날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물가이며, 물가로 가서 두 손으로 물을 떠올리는 순간에 깨우침을 얻었던 것은 바로 목숨을 걸고 각오한 깨우침이였다고 한다. 이후 마침내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는 정법을 깨닫고 나서 50세에[11] '천지 아래 무엇이든 물어라'고 일성을 던지며 세상에 나와서 힘들고 어려운 시대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은 본인의 주장이며, 행적에 대한 입증 자료는 현재 없다.

3. 활동

3.1. 2023년

3월 5일에 "세계홍익태권도연맹"[12][유령단체]으로 호주에 "천공컵"을 개최했다. #

7월 27일 천공이 세계홍익태권도연맹[유령단체]의 총재 명의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세계홍익태권도연맹 대회 개최식에 참석했다.

호주에서 열린 대회 이후 2번째인데 호주 때에는 "천공컵"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이름에 천공이 빠지고 다른 이름으로 바꾼 대신 오히려 천공이 더 노출됐다.

에티오피아 고위 인사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참석했다고 한다.

8월 2일 천공은 2인자 신경애와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세계태권도연맹과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다하지만 확인 결과 세계태권도연맹은 세계홍익태권도연맹과 관련이 없다고 한다. #

4. 저서

자기개발서가 많다. 출판일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5. 유튜브 활동(정법시대)

대자연의 정법인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는 법칙을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기존의 종단처럼 기도하고, 절하며 매달리는 기복 신앙을 벗어나 지금은 노력하는 것이 기도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감사하게 받아들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종교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잘 사는 진리의 말씀과 인간이 살아 나가는 법칙에 대해서 정법으로 풀어 주셨으며, 보이는 세상의 모든 환경이 옳고 틀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중들이 스스로 깨칠 수 있도록 즉문즉설로 정법을 설파하시며, 우리의 홍익 이념으로 인류 미래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후천 정법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남 탓하지 않고, 내 고집과 주장하지 않으며, 불평불만하지 않고, 겸손한 삶을 살면서 홍익인간으로서 내 앞과 옆에 사람들과 소통되는 삶을 살아라 이웃과 사회, 나라와 인류를 이롭게 하는 빛나는 삶을 살아가라고 가르침을 주고 있으십니다. 불평불만하고 남탓하기 시작하면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내환경이 한단계씩 떨어지게 된다며 절대 하지말라고 합니다.
2011년 11월 30일 개설하였다. 일상생활의 고민거리부터 정치, 사회 평론, 고전 강의[15]까지 다양한 컨텐츠를 다룬다. 홍익인간을 강조하며 채널에서 천부경 해석을 한다.


천공에 대해 소개한 그것은 알기 싫다 429c "아는 게 많은 줄 알았는데"(천공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한참 전인 2021년 9월 4일자 방송)[16]

채널의 특징으로는 동영상을 정말 어마무지하게 많이 만든다. 유튜브 누적 조회수가 2억 3천 100만 회가 넘는데, 이 조회수를 100만짜리 동영상 231개가 아니라 1만짜리 동영상을 2만 3천 100개 넘게 올려서 달성했다는 게 놀라운 지점.[17] 기본적으로 최근의 트렌드나 화젯거리를 찾아내서, 그와 관련된 강의들을 만들어 올린다. 배구선수 김연경의 훌륭함, 달러 기축 통화의 힘과 블록체인, 신입사원급의 잦은 이직에 대한 직장 선배의 대처법, 젊은 사람들이 매운 맛을 선호하는 이유, 네이버-서울대 산학협력 발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한 백신접종에 적극 동참해야 하는 까닭 등등 정말 오만 가지 주제에 대해서 썰을 푼다. 이런 물량 공세 때문에 뭘 검색해도 이것과 관련된 정법 동영상이 하나 정도는 걸린다. 이게 궁금해서 본 사람들 중 혹해서 정법에 발을 담그게 되는 식이다.

하지만 강의에서 드러나는 지식 수준은 평범한 무직 백수 수준[18]이며, 이웃과 잘 지내라는 등 한마디로 동네 아저씨가 시류에 맞춰 시사상식 좀 섞어서 착하게가 아니라 바르게 살라고 말하는 뻔한 넋두리 수준이다. 자기개발이나 인생의 가르침, 사람의 인성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2025년 가을 남북통일' 이야기도 존재한다. #

천공의 수제자였다가 결별한 지공은, 천공의 지적 수준이 문맹에 가까우며, 한글을 알긴 하나 카카오톡 등을 이용하여 단순히 글 몇자 끄적거리는 정도이며, 문장을 연결시킨다거나 복잡한 구조의 문장을 독해하는 능력이 없다고 폭로한 적이 있다. 또한 천공의 이름으로 출판한 책들은 천공이 직접 쓰지는 않았고, 전부 천공의 측근들이 정법강의나 천공의 어록을 옮겨 적은 것들이라고도 폭로했다. 또한 지공은, 천공 본인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정법강의에 나와 당당히 밝혔다고도 말했다. 다만 지공이 지금은 천공과 결별한 뒤 강력한 비판자가 된 점과, 아무리 뻔한 이야기라도 매일 사이버 렉카처럼[19] 뉴스에 나오는 주요 현안 서너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늘어놓는 것을 보면, 지식이 부족해도 문맹까지는 아니고 조선일보 등의 일간지를 읽고 이해하는 수준은 된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헬마우스도 그것이 알기 싫다에서 천공 영상을 여러 편 본 이후, 매일 조선일보를 열심히 읽는 동네 아저씨 수준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자신이 차원계를 왕래하면서 다른 차원의 존재와 교신하고 대화해서 교육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신불산에서 17년 동안 수행하면서 자신의 옷은 딱 한 벌로 지냈다고 주장한다. 집에서 세탁기 나오면 그것조차도 비상 상황일 듯

2021년 4월 4일, 자신의 유일한 제자는 유튜브 Love & Respect를 운영하는 혜공 신경애 정법시대 문화재단 이사장뿐이라고 하였다. 이에 2021년 10월 비제도권 언론들에서 신경애 원장을 인터뷰하기도 하였다. 시사일보 여성시대

2022년 현재, 댓글은 전부 막혀 있다.

이태원 압사 사고를 두고 외교활동의 엄청난 기회가 왔다고 하는 등의 망언을 했다. 결국 아무 말 대단치로 관심을 끌어 먹고 사는 사이비 교주[20], 선동꾼에 지나지 않으나,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현혹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유사 사례로 허경영 등이 있으며, 이는 시대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교양 수준이 높이져 더 이상 통일교신천지 등의 사이비 종교가 물의를 일으키고 지탄을 받자 종교적 색채를 뺀 지도, 교양 교육, 갱생 등의 형식으로 성업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처럼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조종하고 있다는 의심이 윤석열 내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 관련 논란 이후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6. 사상

특이하게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질량, 공부, 풀다(동사)가 있다. 질량은 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람의 탁월한 지혜의 수준을 말하는 듯 하고 풀다는 지혜를 바탕으로 세계의 현상을 해석하고 해결하는 지적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계관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강의를 많이 들어서 공부를 해서 질량을 늘려서 인생을 잘 풀어가라는 취지의 말을 반복한다. 결국 자신의 강의를 많이 들으면 인생이 잘 풀린다는 논리의 무한반복이다.

불평불만을 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다. 정작 자기가 제일 남 탓을 많이 하는 것은 안 비밀 이 말을 너무 확대해석해서 모든 것을 참으라는 식으로 오해하여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하지 말되, 불평불만 할 상황에 놓이면 일단 피하고 본인이 그 상황이 발생하도록 처신을 잘못해 온 부분이 있는지 되돌아 봄이 상책임을 많은 강의에서 설법한다. 특히 남 욕을 억지로 듣고있어야 하는지 묻는 강의에선 그 시간에 무식하게 시간낭비 하느니 집에가서 쉬는게 낫다고 조언한다. 또한 상대의 나쁜 행동이 보여서 말하고 싶은 경우 참지 말고 비판하는 것도 권장하는 편이다. 다만 비판하면서 너때문에 내가 힘들다느니 지나치게 남탓을 하는 것은 불평불만이니 지양하고 그냥 행동 자체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비판하고 바로 빠지라고 말한다. 솔직히 대인관계에서 이렇게 하면 사람좋다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강의다. 그런데 천공은 다른 사람이 세상을 불평하는 것을 불평한다. 본인 논리대로라면 천공은 다른 사람이 불평하는 행동을 간단하게 비판을 하더라도 이런 걸로 영상 컨텐츠를 만들어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을 통한 사람들 간의 소통은 적극 권장한다. 다만 정작 본인의 강의 댓글창은 막아두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천공은 태권도 수련을 엄청나게 강조하는데 이는 수련을 빌미로 사람들이 정법에 발을 담그게 하려는 수법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이런식으로 다른 분야에서 관계를 쌓은 다음 종교로 끌어들이는것은 신천지 등 사이비 종교에서 포교용으로 자주 쓰는 수법으로, 수련센터의 지도자가 정법강의를 권한다면 즉시 정리해서 나오는 것이 좋다.

7.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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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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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쥴리 벽화 사건
가족 아버지 김광섭 · 어머니 최은순 · 배우자 윤석열
기타 윤석열김건희 난 · 명태균 · 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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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에 개명했다. 기사 참고[2] 과거에 사용하던 호로, 간혹 스님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별 관련이 없다. 불교와 관련이 없어서 법명이 아니다. 아호의 일종으로 보인다.[3] '진정스승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자서전에서 1952년생(壬辰)이라고 본인이 밝혔다. 다만 MBC에 제보되어 확인된 법정출생년도는 1958년생이다. 당시에는 영아사망률이 워낙 높아서 출생신고를 늦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4] 결혼을 했는지, 자녀가 있는지 불명이다. 다만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오랫동안 산 속에서 수행을 해서 미혼이고 사실이라면 아내와 자녀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고아 출신이라 형제자매도 없다.[5] 천공은 사이비 종교를 비판하는 여론을 회피하기 위함인지 본인 스스로 교주라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사실상 교주와 다름이 없다. 다만,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헌금하는 행사는 없다.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결정 이전인 2009년에 천공은 유부녀 여제자 신모씨(현재도 천공의 수제자 노릇을 하고 있으며, 천공이 인공이라는 호칭을 지어주었다.)와 간통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간통 사건을 맡은 재판부도 천공의 직업을 사이비 종교의 교주라고 판단하였다. 기사 참고[6] 천공 본인이 창시한 신흥종교이며, 종교명만 변경되었다. 법인격을 갖춘 종교단체는 아닌 법인격 없는 사단에 해당한다. 개신교, 가톨릭 등 기독교 방식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한심하다며 천공 본인이 하느님의 제자이니 차라리 자기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낫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 그러나 천공의 교리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매우 다르며, 오히려 동양적인 도교사상에 가깝다. 천공은 2004년 7월부터 유부녀 제자 신모씨와 약 2년간 대전 서구 맑은아침아파트에서 동거(몇몇 다른 추종자들도 함께 동거)를 한 사실이 신도들에게 결국 알려지면서 "우리에게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하신 분이 왜 남의 가정을 깨시냐?"고 거센 비판을 받아 겨우 꾸려온 해동신선도의 교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 현재 천공은 기존의 방식대로 종교단체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지 해동신선도라는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정법시대라는 표현을 쓰면서 마치 종교와 관계없는 생활 강의인 것처럼 포장하였다. 그러나 해동신선도 시절보다 교세가 확장한 현재에는 정법시대의 자금 규모가 커지면서 공금 유용 의혹 및 신도 간 (내부에선 서로 회원님, 연구원님으로 호칭) 내분 조짐도 보이는 등 여전히 운영이 미숙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기사 참고[7] 유승민 후보의 "전 정법이 누구인지, 사람 이름인지조차 모른다"라는 발언으로 인해 이름이 '정법'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발언에 나와 있듯 실제로는 유승민 후보가 정법을 법명같은 별칭으로 오인한 것이며 '정법'은 천공이 가르치는 생활도의 일종이다.[8] 용산구 서빙고로 67, 파크타워 103동[9] 후술하지만 17년 수행하고 50세에 사회로 다시 나왔다고 하므로, 신불산에 간 시점은 만 33세인 1985년이 된다.[10] 여성 무당을 가리키는 표현.[11]2002년 무렵 산에서 사회로 다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을 못 봐서 대신 월드컵을 보러 내려온 듯[12] 세계태권도연맹과는 무관한 단체이다.[유령단체] 존재 불분명한 유령 단체. 상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유령단체] [15] 여기서 말하는 고전은 책이 아니라 옛날의 의식(儀式)이나 법식(法式)을 뜻한다.[16] 24분 28초부터 보면 된다.[17] 첫 영상 업로드가 2011년 11월 30일인데, 하루 평균 3개씩 10년 동안 업로드해 온 것이다. 단 항상 같은 배경에서 그날그날 시사 주제에 대해 썰을 푸는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편집 부담은 덜할 듯하다. 근성이 느껴지는 지점. 가끔 분위기 일신을 위한 특강 영상도 있는데 그런 건 외부에서 사진 몇장 찍어서 붙이고 오디오만 내보내는 식으로 때운다.[18] 적어도 평범한 장년층은 자기 직업 분야에서는 상당한 지식과 분석 능력이 있지만, 직업다운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천공은 그마저도 없는 사람이다.[19] 그것이 알기 싫다에서 헬마우스는 천공을 사이버 렉카의 원조라고 칭했다.[20] 본인은 교주 대신 법주로 칭한다.[21] 아카이브 참고[22] "대통령 뒤에 붙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일을 찾아야 된다" "영부인들끼리 교류하고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데 나가서 좋은 대화를 하고 서로 나누는 길이 터져야 한다"면서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먼저 일어나면서 영부인(에 의해)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환경(으로) 틀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영부인이 초청 받아 갔다 오면 다음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초청하기가 쉽고 (이렇게)길을 뚫기 시작한다"며 "영부인이 바빠져야 한다. 그것이 국익의 엄청난 길을 열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아무리 남자들이 대통령을 하고 있지만 그 나라들 안에서도 정치는 영부인이 하는 것"이라며 "영부인들끼리 가까워지면 대한민국이 그 나라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세계의 내명부 수장들과 만나고 그 아래 총리급, 장관급 부인들과도 만나 얘기를 들어주면 1등이 된다"면서 "영부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통령이 움직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런 내조를 할 줄 알아야 되고, 국민을 위해서 이 나라 대표로 나가서 세계에 위상을 떨쳐야 한다. 그런 영부인 한 사람만 나오면 대한민국은 달라진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끝으로 천공은 "영부인들이 대화를 잘 하고 왔다. 그때 영부인이 나갔을 때 그 나라 대통령도 만날 수 있다. 그 남편도 오는 것이다. 그 나라 대통령을 만날 수가 있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고 오면 어떻게 되냐. 다음에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리로 초청하기 쉬운 것이다. 길을 뚫기 시작한다"고도 했다.[23] 위 영상 8분 8초 부터 보면 된다.[24] 말 그대로 회의중단한다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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