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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7:33:36

지젤 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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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번천
Gisele Bündchen
파일:Gisele-Bundechen-1.jpg
<colbgcolor=#ffb302> 본명 지젤리 카롤리니 노넨마셰르 뷘드솅[1]
Gisele Caroline Nonnenmacher Bündchen
출생 1980년 7월 20일 ([age(1980-07-20)]세)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주 오리존치나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거주지 미국 플로리다탬파
신장 180cm
직업 모델, 배우, 사업가, 자선운동가
BWH 34-24-34 [cm]
브라사이즈 C컵
머리색 금발
눈 색 벽안
옷 사이즈 4 (US); 34 (EU);
신발 사이즈
8 (US); 39 (EU);
배우자 톰 브래디(2009년 결혼 - 2022년 이혼)
자녀 아들 벤저민 레인 브래디(2009년생)
딸 비비안 레이크 브래디(2012년생)
성별 미상 (2025년 출산 예정)[3]
종교 가톨릭
소속 Model Management (함부르크)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어린 시절3. 모델 활동4. 연기 및 사업, 기타 활동5. 출연 작품
5.1. 영화 & 텔레비전5.2. 뮤직비디오
6. 수상7. 사생활8. 사건 사고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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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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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패션 모델.

2001년부터 매년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높은 모델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2007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16위로 선정됐으며#, 2012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여성 모델 수입 1위를 차지했다. 2014년에는 포브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84위로 선정됐다. 패션 잡지 보그는 지젤이 패션계의 헤로인 시크 열풍을 끝내고 글래머러스한 건강 미인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지젤은 2000년부터 2007년 중반까지 빅토리아 시크릿 엔젤로 활동했으며, 계약금으로만 2,5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역대 빅시 모델 중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을 이뤄냈다.# 지젤은 현재까지 1,200개가 넘는 패션 잡지 표지에 등장했다.#

지젤은 또한 세이브 더 칠드런, 적십자사, 국경없는의사회를 지원하고 있는 자선운동가이며#, 2009년부터 UN 환경 프로그램의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2.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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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시절 지젤, 쌍둥이 여동생 파트리샤와 함께

지젤은 독일계 브라질인 6세이며, 부모가 양쪽 다 독일계이다. 1980년 7월 20일 브라질 남부의 히우그란지두술[4]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은행원이자 연금 수급자였고, 아버지는 사회학자 겸 작가였다. 형제로는 라켈, 그라지엘라, 가브리엘라, 라파엘라,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파트리샤가 있으며, 여섯 자매의 딸부잣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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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자매들과 함께 (가운데는 어머니)

지젤은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독일어를 거의 접하지 못했기에 모두 잊어버려서 할 줄 모른다고. 모국어포르투갈어 외에도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다. #

지젤은 배구 선수[5]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1993년 어머니의 의견에 따라 자매인 파트리샤, 가브리엘라와 모델 과정에 합류하여 평소 좋지 않았던 자세를 바로 잡기를 원했다. #

3. 모델 활동

런웨이 워킹 모음

하이 패션과 커머셜 양쪽 분야 모두에서 최정상에 오른 전설적인 슈퍼모델이다. 하이패션과 커머셜 양쪽에서 전무후무할 정도로 크게 성공한 번천을 선배 모델들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1990년대에 유명했던 독일의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우리(슈퍼모델 전성기의 주역들)의 전성기 때 만큼 수익을 올리고 유명세를 가졌다고 볼 만한 모델은 지젤 번천뿐입니다."라고 한 바 있고, 그 유명한 나오미 캠벨 역시 "번천만이 유일한 슈퍼모델."이라고 인정했을 정도.

지젤은 1994년 상파울루의 한 쇼핑몰의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먹다가 엘리트 모델 매니지먼트의 한 관계자에 캐스팅되었다. 스카웃된 상황도 전설적 그리고 전국 대회인 엘리트 모델 룩에 선정되어 2위를 차지했다. 1995년 초 14세에 지젤은 모델 일을 시작하기 위해 상파울루로 이주했고, 1996년에는 뉴욕 패션 위크첫 데뷔했다.

지젤은 1997년 런던을 방문하여 43개의 패션 쇼에 오디션을 보았지만 거의 다 떨어지고 단 2개의 쇼에만 런웨이에 올랐다. 42명은 자신을 쳐다봐 주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20년이 흘러 은퇴한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다고. 20년간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고 할 만큼 프로 의식도 투철한 그녀이다. 이후 알렉산더 맥퀸은 1998년 봄 기성복 쇼인 "Rain!"에서 지젤을 선택했으며, 이 런웨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겨 최고의 유명 디자이너들로부터 차례차례 러브콜을 받아 슈퍼 모델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그 해에 미쏘니, 클로에, 돌체앤가바나, 발렌티노, 잔프랑코 페레, 랄프로렌베르사체의 광고 캠페인에 출연했다. 1998년 8월 보그 영국판과 1999년 8월에는 파리판의 커버를 첫 장식했으며, 엘리트 모델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IMG 모델스로 에이전시를 옮겼다. 특히 지젤은 캣워크의 모델이라 하면 머릿속에 어김없이 먼저 떠오르는 걸음걸이, 마치 말처럼 성큼성큼 큰 폭으로 걸음을 딛으며 앞뒤로 차내듯 걷는 호스워크 위킹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99년 7월에는 '섹시한 모델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첫 번째 보그 미국판을 장식했으며, 11월에 동료 슈퍼 모델인 케이트 모스, 앰버 발레타, 크리스티 털링턴, 이만 하맘, 로렌 허튼, 나오미 캠벨, 스테파니 세무어, 클라우디아 쉬퍼, 리사 테일러, 폴리나 포리즈코바, 캐롤린 머피, 패티 핸슨과 함께 첫 그룹 보그 커버에 출연했다. 12월에는 다시 한번 보그 미국판의 커버를 장식했다. 오지는 클라쓰 1999년 지젤은 올해의 VH1 / Vogue 모델상을 수상했다.
S/S 2000 - 패션 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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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스트레네스 지방시 프라다 구찌

2000년에 지젤은 미국의 음악, 정치·대중문화 잡지 롤링 스톤에 등장한 4번째 모델이 되었으며, 미국판 3개를 포함한 37개의 전세계의 보그 커버에 등장했다. 특히 1월에는 미국판과 영국판의 커버에 동시에 등장하였고, 6월에는 당대 최고의 스타배우였던 조지 클루니와 함께 출연했다. 또한 봄 패션 위크에서 뉴욕, 밀라노, 파리에서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돌체앤가바나, 크리스찬 디올, 발렌티노 쇼의 런웨이를 걸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지젤은 돌체앤가바나의 광고 캠페인에 참여해 총 11개의 연속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브랜드 향수 "The One"의 얼굴로 돌아왔다.
▲ 빅토리아 시크릿 런웨이 모음 (1999 - 2006[6])

하이패션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지젤은 미국 최대의 란제리 기업 빅토리아 시크릿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전속 모델인 엔젤을 8여년 간 하는 등 간판 모델로서 승승장구하며 명성을 쌓았다.[7] 본격적으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2000년에 지젤은 빅토리아 시크릿의 판타지 브라인 '레드 핫 판타지 브래지어'를 착용했는데, 이 브래지어는 1,500만 달러 상당의 가치가 있으며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비싼 란제리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어 있다. 이후 2005년에도 '섹시 스플렌더 판타지 브라'를 착용했다. 이 브래지어는 지금까지 제조된 2번째로 비싼 브래지어로 1,250만 달러에 달한다. 공교롭게도 첫, 2번째로 제일 비싼 판타지 브라의 주인공이 됐다.

2004년에는 다리아 워보위,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이자벨리 폰타나, 카롤리나 쿠르코바, 리야 케베데, 하나 스쿠포바, 젬마 워드, 카렌 엘슨과 함께 보그 미국판 그룹 커버에 2번째로 출연했다. 또한 지젤은 W, 얼루어, GQ, 포브스, 마리끌레르, 타임지, 베니티 페어, 에스콰이어와 피렐리 캘린더의 커버에 출연했다.

지젤은 2007년 타임즈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7년 9월 지젤은 마리오 테스티노가 촬영한 베니티 페어의 커버에 등장했다. 2008년에는 NBA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보그 미국판 커버에 출연했다. 포브스는 2007년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 목록에 지젤을 53위에 선정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슈퍼 모델로 선정되었다. 2007년 5월 빅토리아 시크릿과 계약을 종료했다. 2008년 8월에 뉴욕 데일리 뉴스는 지젤을 패션계에서 4번째로 강력한 인물로 선정했다. 더 인디펜던트는 2009년 5월 지젤을 패션 역사상 가장 큰 스타라고 칭했다. 지젤은 2009년 결혼을 하고 첫 출산을 하였는데, 출산은 모델로서는 큰 전환점이 되는 요소이긴 하나 임신과 출산 과정을 잘 넘기며 전성기 못지않은 몸매로 복귀했고, 2010년 발렌시아가의 패션 쇼 엔딩을 장식했다. 모델스닷컴의 머니 걸스 목록에서 3위, 가장 섹시한 모델 목록에서 2위를 차지했다. 또한 2010년까지 지젤은 여느 유명인들이나 모델들보다도 더 많은 보그 커버에 등장했다. 2011년 FHM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100인 목록에서 45위를 차지했으며, 맨즈헬스에서는 역대 가장 인기있는 여성 100명 중 25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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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S/S 2011

지젤은 프랑스 파리 패션 위크 동안 지방시의 봄/여름 2011 패션 쇼에서 클로징을 담당하며 깜짝 등장했다. 2011년에는 8개의 보그 커버에 출연했으며, 그 해에 그 어떤 모델이나 유명인들보다 많은 커버를 찍었다. 그 중에서도 2011년 7월 보그 브라질판 커버는 70,743부가 판매되어 가장 많이 팔린 잡지 호가 되었다. 2011년 초, P&G의 샴푸 브랜드 팬틴은 지젤이 제품의 광고 모델로 나서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판매율이 40%나 증가했다고 한다. 2012년, 지젤은 베르사체, 지방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봄 광고 캠페인에 출연했으며, 브라질은행(Banco do Brasil)의 첫 번째 글로벌 얼굴이 되었다. 동년 4월 타임지에서는 1923년 이래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아이콘을 강조한 All-TIME 100 Fashion Icons 목록에 지젤을 포함시켰다. 또한 보그에서는 2012년 8월에 잡지 창간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커버에 가장 많이 등장한 10명의 여성을 집중 조명하면서 그 중 지젤이 포함시켰다. 동년 8월에 케이트 모스를 대체하는 데이비드 율만의 얼굴로 발탁되었으며, 피터 린드버그가 촬영한 가을 캠페인에 등장했다. 2012년까지 지젤은 120개의 보그 커버에 출연했으며, 가장 많은 보그 브라질판 커버에 출연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12년에 지젤은 포브스가장 영향력있는 유명인 목록에서 61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라틴계 유명인 목록에서 4위를 차지했다. 이듬 해인 2013년에는 포브스 10 브라질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인으로 5위를 차지했다.

2013년 2월, 지젤은 샤넬 뷰티의 메이크업 라인 Les Beiges의 얼굴이 되었으며, 카트린 드뇌브, 소피아 코폴라, 판빙빙, 캐롤린 드 메그레과 함께 루이비통의 봄/여름 2014 광고 캠페인에 출연했다. 동년 12월에는 연간 400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고 팬틴의 앰버서더가 되었다. 다음 해인 2014년에는 샤넬 No.5 향수의 얼굴로 발탁됐으며, 동년 9월에는 언더아머와 다년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프로 운동선수의 개런티와 동등하며 이전 빅토리아 시크릿의 계약을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언더아머의 CEO 케빈 플랜크는 2016년 지젤과의 계약한 후 회사의 여성 브랜드 매출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2014년 1분기 동안 브라질판, 독일판, 이탈리아판, 캐나다판, 일본판과 중국판을 포함한 엘르의 17개 커버에 등장했다. 그리고 2014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모델로 2015년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랐으며, 2015년까지 지젤은 550개 이상의 광고 캠페인, 2,000개의 잡지 커버, 3,500개의 잡지 화보와 800개의 패션쇼에 출연했다.

2015년 런웨이 워킹에서는 20년만에 은퇴했다. 잡지 커버나 광고 캠페인 모델은 계속할 예정이라고.

2021년 2월, 지젤은 22년 만에 IMG 모델스를 떠나고 자신의 쌍둥이 자매인 파트리샤가 매니저를 맡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3.1. 활동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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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기 및 사업, 기타 활동

모델로서 크게 성공하자 배우로 눈길을 돌린 지젤은 2004년 택시 리메이크작인 《택시: 더 맥시멈》에 퀸 라티파, 지미 팰런과 함께 출연했으며,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세레나 역할로 출연했다. # 배우로 전업하여 할리우드에 진출한 듯 보였지만 이 영화들 이후 다시 영화에 출연한 적은 없으며, 다시 모델 일에 열중하고 있다.

2007년에는 어린 소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프로젝트인 더 러즈 재단을 시작했다. #

2010년 지젤은 모든 천연 성분을 사용하는 스킨 케어 제품 라인인 친환경 Sejaa Pure 스킨케어를 출시했다. #
런웨이 은퇴 이후로는 환경운동에도 나서고 있으며, 아마존 보호에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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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운반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FIFA의 전통에 따라 월드컵 트로피는 전 대회 우승국 대표팀 주장과 개최국의 유명인사가 함께 운반하는데, 지젤이 브라질 대표로 뽑힌 것. 함께 운반한 사람은 카를레스 푸욜이다.


2017년에 미셰우 테메르가 아마존 개발 규제 완화를 시도하려고하자, 이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서 테메르의 입지를 위축시켜 환경규제완화를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또한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아마존 개발을 옹호하면서 농림부와 환경부의 통합을 시도하려고 하자, 이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는데 보우소나루가 직접 농림부와 환경부를 통합한다는것은 오해라면서 움찔하게끔 만들었다.[8] 보우소나루가 아무리 트럼프를 찬양하고 이스라엘과 친분을 돈둑히 하는 막가파 노선을 걷고있다고는 하지만 번천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인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남편이 미식축구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으로 평가받는 톰 브래디이고 또한 트럼프와 친분이 있다보니 지젤 번천을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후 2018년 지젤은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이자 브라질 논픽션 부문에서 6개월 이상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Lessons : My Path to a Meanful Life>라는 책을 발표했다. # 책에서 얻은 수익은 사회와 환경보호를 지원하는 곳에 사용되었다. #

5. 출연 작품

5.1. 영화 & 텔레비전

<rowcolor=#fff> 연도 제목 배역 분류 비고
1996 MTV al Dente 시즌3 호스트 텔레비전
2004 택시: 더 맥시멈 바네사 영화
200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세레나
The O.C. 자신 텔레비전 에피소드: "The Heavy Lifting"
2008 Coração Vagabundo 자신 다큐멘터리
2010–11 지젤 & 더 그린 팀 지젤 텔레비전 목소리, 또한 총괄 프로듀서
2013 Mademoiselle C. 자신 다큐멘터리
2018 톰 vs 타임
2020 키스 더 그라운드

5.2. 뮤직비디오

<rowcolor=#fff> 연도 제목 가수 비고
2013 "All Day and All of the Night" 자신
2014 "Heart of Glass"

6. 수상

<rowcolor=#fff> 연도 시상식 부문 비고
1998 Phytoervas 패션 어워드 올해의 모델상 자신
1999 Vh1/보그 패션 어워드
2011 하바드 메디컬 스쿨 글로벌 시티즌 상
인터내셔널 그린 어워드 최우수 그린 해외 셀레브리티상
2017 그린 카펫 어워드 에코 수상자

7.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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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금발 모델 킬러로 유명한 미국의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2000년 4월부터 사귀기 시작해 5년 가깝게 사귀었다.

2004년에 지젤과 레오나르도는 피플지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커플에 꼽히기도 했다. # 전례 없을 정도로 그와 오래 교제한 여자친구라 결혼설까지 계속 돌았으나, 결국 2005년 말에 헤어졌다. 레오나르도와 지젤은 모두 좋게 헤어졌다고만 했고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했기에 알 수는 없다. 다만 결혼하고 아이도 갖고 안정적인 가정을 원했던 지젤과는 달리 자유분방한 타입인 레오나르도는 결혼을 원하지 않아 헤어졌다는 꽤 신빙성있는 카더라만 있다. 한데 이후 자신의 회고록에서 레오나르도와 교제 당시 우울증을 겪었었던 지젤은 자신의 사생활이 더 이상 보완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디카프리오와의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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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좌) / 두 자녀들과 함께(우)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미식축구 선수 톰 브래디와 2006년 12월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 이후 2009년 2월에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에 있는 세인트 모니카 가톨릭 교회에서 소규모의 결혼식(혼인성사)을 올렸고, 2009년 4월에 코스타리카에서 2번째 결혼식을 가졌다. # 그 해 12월에 아들 벤저민을 낳았고, 3년 뒤인 2012년 12월에 비비안을 낳아 현재 브래디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고 있다.

지젤과 톰은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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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짓 모이나한의 아들인 존과 함께

그러나 톰에게는 아들 하나가 더 있다. 지젤과 교제하기 전에 여배우 브리짓 모이나한과 사귀다 헤어졌는데, 결별 당시 브리짓이 임신한 상태였던 것. 톰과 지젤의 교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임신 사실을 발표한 브리짓은 2007년 8월, 홀로 아들 존을 낳아 키우고 있다. 그래서 브리짓과 결별한 직후 브리짓과 존을 나몰라라하고 지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톰에 대해 얼마간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 그쪽 정서가 쿨한 탓인지 셋 다 잘 지내고 있으며(…), 현재 브리짓도 새 남자친구를 잘 만나고 있다. 또한 브리짓과 존은 톰과 지젤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존은 어머니 브리짓과 살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아버지인 톰과 만나며, 지젤이 낳은 이복동생들 벤저민, 비비안과도 자주 교류하고 있다. 이 때 계모의 포지선인 지젤이 존을 잘 챙겨 주는 모습과 존이 벤저민, 비비안과 잘 노는 모습이 파파라치들에 의해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로 지젤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존을 친아들처럼 생각한다고 말했고, 브리짓 역시 지젤이 낳은 벤자민과 비비안 역시 아들 존의 가족이라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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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슈퍼볼 LIII 우승 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이런 지젤을 두고 톰 브래디의 트로피 와이프가 아니냐는 식의 멋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연애-결혼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재산은 톰보다 지젤이 더 많다.

남편이 절친하게 지내는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 때문에 곤경에 처했을 때, 남편에게 "정치 얘기는 아예 하질 말아라"라고 조언을 해서 톰 브래디를 구해 냈다.

2022년 10월 29일, 지젤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브래디와 이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13년간의 결혼 생활은 끝났지만 두 사람은 아이들을 공동양육하기로 했고 지젤은 톰의 행복을 바란다고 말했다.

톰 브래디가 보통은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인 40대 중반인데도 현역 미식축구 선수로서 계속 활동하면서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식축구 선수들은 경기 시즌이 되면 훈련 기간을 포함해 일년의 대부분을 홈그라운드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 때문에 톰 브래디가 가정과 육아에 소홀했던 구석이 있어 지젤과 갈등이 벌어졌다. 브래디가 가정에 신경을 쓸 수 없는만큼 지젤이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몫이 커졌기 때문. 아이들에게도 아버지의 빈 자리가 컸을테니 지젤의 맘이 편치만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식축구는 매우 과격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도 시합 도중 많은 부상을 입어 심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톰 브래디도 잦은 부상을 입었기에 그의 건강을 염려한 지젤은 현역에서 은퇴하길 바랐다. 이에 톰 브래디는 지젤 등과 오랜 상의 끝에 2022년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으나 6주만에 번복하고 현역에 복귀했다. 톰 브래디는 선수로서 계속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으나 은퇴를 번복한 그에게 지젤은 실망했고 결국 지젤이 이혼 전문 변호사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혼을 진행했으나 톰 브래디는 이혼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8.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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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A 시위대 무대 난입 당시 영상

이 사건으로 지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지젤은 이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이 일어난 후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PETA)은 나에게 모피의 실태에 대한 영상들을 보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던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모피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현재 지젤은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각종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2017년 8월 보그 파리의 표지에는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인조 모피를 입고 등장하여 동물보호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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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라질 포르투갈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는 '지젤 뷘드솅', 독일어로는 '기젤레 카롤리네 노넨마허 뷘트헨'으로 표기한다. 다만 본인은 활동명을 영어 표기법인 '지젤 번천'으로 표준화했다.[cm] 86-61-86[3] 호아킴 발렌테 사이 자녀[4] 주도는 호나우지뉴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포르투알레그리이며, 대한민국 축구 국대가 브라질 월드컵 때 대참사를 겪은 그곳 맞다. 원래 우루과이가 독립하던 시기에 같이 독립했으나, 독립국을 유지한 우루과이와 달리 브라질에 재편입되었다. 백인과 라틴계 혼혈이 많아 늘씬한 미남미녀가 많은 주로도 유명해 모델 에이전시에서 이 곳을 자주 방문한다고.[5] 브라질 배구는 축구처럼 세계적인 강팀이다.[6] 2004년에는 쇼에 서지 않았다.[7] 당시에는 하이패션에서도 일시적으로 글래머러스한 모델이 뜨던 시기였으며, 라켈 짐머만 등의 브라질 모델들이 유명세를 얻던 시기이기는 했으나 사실 죄다 저체중들이다.[8] 아마존 개발과 관련있는 농목축업자(까놓고 얘기하자면 브라질 농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주와 부농들)와 지지를 받은점이 크다. 브라질이 농묵축업으로 한가락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자금동원력이 세기에 룰라도 토지개혁이나 아마존 개발 관련한 이슈에 있어서는 이들을 마냥 무시할 수 없던 처지였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