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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제주 4·3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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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Jiseul
파일:지슬 포스터.jpg
감독 오멸
출연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등
장르 드라마
제작 자파리 필름, 설문대영상
배급 영화사 진진
상영시간 108분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년 3월 21일
총 관객수 145,398명
등급 15세 이용가

1. 개요2. 시놉시스
2.1. 배경
3. 예고편4. 등장인물
4.1. 동광리 주민4.2. 군 토벌대
5. OST '이어도 사나'
5.1. 가사
6. 평가
6.1. 편향성 논란6.2. 별점 테러
7. 수상8. 흥행9. 미디어 믹스
9.1. 그래픽 노블
10. 외부 링크
10.1. 인터뷰 모음
11.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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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3월 21일에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로,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948년 11월말 부터 1949년 1월 중순까지 동굴[1]에 숨어 지내다 토벌대에 발각되어 희생당한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인 '지슬'은 지실(地實)에서 온 말로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다.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2. 시놉시스

1948년 11월. 제주섬 사람들은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삼삼오오 모여 피난길에 오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디서부터 일어나고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산 속으로 피신한 마을 사람들은 곧 돌아갈 생각으로 따뜻한 감자를 나눠먹으며 집에 두고 온 돼지 굶주릴 걱정, 장가갈 걱정 등의 소소한 가정사를 늘어놓으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2.1. 배경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큰넓궤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일대에 있다.1948년 11월 군경 토벌대는 동광리 무등이왓 주민들을 집결시키고 주민 10명을 선별해 마을 주민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로 사살했다. 무등이왓 주민들은 살기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옆마을 삼밧구석 주민들과 합류하여 마을 인근의 큰넓궤라는 동굴을 발견해 정착했다. 어린이와 노인은 주로 동굴에서 지내고 마을 청년들은 마을 경비와 식량 조달을 맡아 생활하였으나 1949년 1월 중순 토벌대의 오랜 추적끝에 동굴이 발각되고 말았다. 토벌대는 마을 주민들을 끌어내려 했으나 청년들이 고추를 태운 연기에 도저히 동굴 진입이 어려워 포기하는 대신에 동굴의 입구를 막아버리고 무등이왓, 삼밧구석 마을을 불태웠다. 다음 날 토벌대가 돌아가자 청년들은 주민들을 한라산에 안전하게 피신시켰으나 한라산에 매복해있던 토벌대에 붙잡혀 일부는 현장에서 바로 사살, 나머지는 중문 정방폭포에서 사살 후, 수장되었다. 이들 120여명의 주민들이 살던 무등이왓, 삼밧구석 마을은 4.3 후에도 복구되지 않아 아직까지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있다

3. 예고편

지슬 본 예고편

4. 등장인물

영화에서 사망장면이 확실하게 나오거나 언급된 등장인물은 볼드체로 표기한다.

4.1. 동광리 주민

4.2. 군 토벌대

5. OST '이어도 사나'

원곡 영화.ver

원곡은 제주어 가수 양정원의 4집 앨범 "모다들엉"에 수록한 동명의 곡으로 신나는 리듬의 원곡과는 달리 암울한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멜로디를 편곡하였다.

5.1. 가사

제주어 가사는 볼드체로 표준어 해석은 보통 글꼴로 표기한다. 또한 순덕 역을 맡은 배우 강희가 부른 파트, 원곡자이자 용필 역을 맡은 가수 양정원이 부른 파트, 모든 출연진의 합창 파트로 나눈다.
제주 바당에 배를 띄왕
(제주 바다에 배를 띄워)

노를 젓엉 혼저 나가게
(노를 저어서 어서 나가자)

보름아 보름아 불지 말어라
(바람아 바람아 불지 말아라)

좀수허레 가는 배 떠나 감쩌
(잠수하러 가는 배 떠나 가네)

물질허레 바당에 들언
(물질하러 바다에 들어가)

테왁[7] 호나에 목싐을 멧경
(테왁 하나에 목숨을 맡겨)

설룬애기 두웡 바당에 드난
(서러운 아기 두고 바다에 들어가)

살고저 살고저 허멍 셍복을 따곡
(살고자 살고자 하며 전복을 따고)

어~어허어~어~어허어~

이승질 저승질 갓닥 오랏닥
(이승길 저승길 갔다 왔다하며)

숨 그차지는 숨비소리
(숨 끊어지는 숨비소리)

좀녀 눈물이 바당물 되언
(해녀 눈물이 바닷물 되어)

우리 어멍도 바당물 먹언
(우리 어머니도 바닷물 먹어)

나도 낳곡 성도 나신가
(나도 낳으시고 형님도 낳으셨는가)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쳐라 쳐라

아방에 아방에 아방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

어멍에 어멍에 어멍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

이어도 가젠 살고나 지고
(이어도 가서 살고자 하네)

제주 사름덜 살앙 죽엉
(제주 사람들 살아서 죽어서)

가고저 허는게 이어도 우다
(가고자 하는게 이어도 입니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6. 평가

네이버 영화
기자, 평론가 평점
8.86/10
관람객 평점
9.20/10
네티즌 평점
6.22/10
[8]
알다[知], 안다[抱], 아름[私]. (역사의 그늘에 묻힌 평범한 사람들을) 알고, (원망보다 위로를 건넨 그들을 품에) 안으며, 그 끝에서 곱디고운 그들과 연대하는 나(私). 그래서 감히, 아름답다.
- 송경원 (★★★★)
동류의 사람들이 너는 나와 다른 무엇이라는 이유를 들어 서로 증오하고 살해했던 풍경을 흑백 이미지의 역설로 담아내며 관용과 기억, 그리고 위로를 빌어 감싸 안는다. 기적 같은 영화
- 허지웅 (★★★★)
한국 감독들이 행복한 이유
- 박평식 (★★★☆)
기억을 잃어버린 신들의 위령제
- 이용철 (★★★★★)
어떤 영화는 그 자체로 숙연한 제의(祭儀)가 된다
- 이동진 (★★★★☆)
억울한 원혼은 물론 기괴한 살귀마저 잠재우는 씻김굿
- 황진미 (★★★★☆)

6.1. 편향성 논란

남로당 학살은 안 나오고 토벌대의 학살만 나온다는 것 때문에 이 영화가 편향적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물론 남로당 무장대도 양민학살과 약탈을 저질렀다는 것은 사실이다. 빨치산에 의한 본격적인 도민 피해는 중산간이 초토화되고 한라산 금족령이 발효되면서 도민들과 빨치산이 단절된 이후에 나타났다. 봉기 초반에는 이전에 벌어진 사태들이 있었기에 도민 여론이 빨치산에 호의적이었고 부락들도 대체로 빨치산에 협조적이었으나 토벌대에 의한 학살을 경험하면서 빨치산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에 빨치산은 물자 수급 등에 있어 난항을 겪게 되었고 특히 군경에 의해 주민들로 구성된 민보단이 조직되어 빨치산과 대치하게 되면서 우익세력에 선별적으로 한정되어 있던 빨치산의 학살이 전면화되었다.

한 미군보고서[9]에 따르면 1949년 3월 말까지 약 1만 5,000명이 죽은걸로 추정되는데 최소한 80%가 토벌대에게 살해됐다고 한다. 그리고 빨치산 영향력과는 거리가 있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도 자주 학살당했다. 다음 내용은 당시의 상황을 유재흥 장군이 증언한 내용이다.
제주도에 가보니까 산중에 피난민 2만 명 정도가 있었어. 그리고 바닷가에는 경찰‧군인이, 산쪽에는 공비하고 피난민이 있는 등 서로 갈라져 있으면서 밤이 되면 욕하고 싸우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나는 ‘군인은 무조건 산으로 올라가라, 공비토벌 해야 한다’며 3개 대대와 1개의 유격대대 등 4개 대대를 한라산 중복지역으로 이동시켰어. 처음에는 각기 전투지역이 있으니까 각 대대가 다니면서 소탕을 했고, 마지막에는 내가 4개 대대를 기동시키면서 작전을 했지.[10]
산속일수록 빨치산이 많고, 바닷가일수록 토벌대가 많았다. 토벌대는 제주도 내에서 피아식별 따위 없이 그냥 보이는 족족 전부 쏴죽이는 수준이였으며 심지어 전직 군인이나 경찰의 가족도 예외는 없었다.

6.2. 별점 테러

특정 사이트 유저들이 영화 내용과 실제 역사를 왜곡하는 댓글을 남기고 별점 테러를 하여 네이버 영화 평점란이 개판이 됐다. 영화에선 남로당 미화는 없는데도 남로당 미화한다고 거짓선동을 하고, 일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남로당을 묘사하며 영화를 안 봤다는 걸 인증했다. 그리고 많아봐야 최대 500명선을 넘지 않는 작은규모 였던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민 1~2만명을 죽인 초토화작전을 빨치산 토벌이라 왜곡하거나 양민학살을 남로당 탓으로 몰기도 하며 일부는 당시 빨갱이토벌을 위해선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피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테러를 받은 영화의 관계자들은 네이버에 항의하였고# 이에 네이버는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별점란을 리뉴얼 할 계획을 하고있다고 한다. #

7. 수상

8. 흥행

2013년 4월 4일 독립영화로선 높은 관객수인 7만 관객이 극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6일까지 8만, 8일에는 9만 관객을 넘기면서 거뜬히 10만 이상을 돌파할 예정이다. 전국 상영관이 겨우 81개에 일부 상영관은 교체상영까지 하고 있음에도 엄청난 선전이다. 4월 11일 누적관객수는 9만 6808명이다. 이런 흥행 덕에 11일부터 상영관 10개를 추가해 총 66개관에서 상영되었으며 18일부터는 14개 상영관이 추가되었다.

2013년 4월 12일에는 드디어 누적 관객수 10만 명을 돌파하였다.# 지슬의 10만 돌파 전까지 독립영화로서 1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전설이 된 293만 관객이 본 워낭소리, 44만 관객이 본 울지마 톤즈, 12만 관객이 본 똥파리 그리고 외화 독립영화로 22만 5천 관객이 본 원스까지 여지껏 모두 4편에 지나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흥행이다. 2014년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300만을 넘기면서 독립영화 흥행 역대 1위가 되었다.

그 밖에 8~9만 관객을 넘긴 독립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9만 7천 관객을 동원한 소명(2010)과 9만6천 관객을 동원한 위대한 침묵[11]이 있을 뿐이며 독립영화로 관객 3만을 넘겨도 엄청난 대박이다.

17일에는 전국 11만 5천 관객을 넘겼으며 박스오피스 8~9위권을 계속 지키고 있다. 똥파리 흥행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 듯.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슬'은 22일 893명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12만 3253명을 기록하면서 똥파리를 넘어섰다. 3월 21일 전국 개봉 이후 한 달여 만이다. 4월 30일까지 13만 2215명 관객을 넘어섰다.

여담인데 흥행이 가장 많이 되는 지역은 1위가 서울(5월 6일까지 전국 13만 5천 관객)로 29개 상영관에서 5만 8천이 넘는 관객이 봤으며 그 다음이 바로 제주로 겨우 3개 상영관에서 상영함에도 2만 7천명이 넘는 관객이 봤다.

6월 들어서 이젠 전국 2개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수준이지만 전국관객 14만 1500명을 넘어섰다.

9. 미디어 믹스

9.1. 그래픽 노블

2014년 4월 3일,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그래픽 노블이 발매되었다. 작가는 김금숙. 수묵화로 그려진 것이 특징.

10. 외부 링크

10.1. 인터뷰 모음

11. 기타



[1] '크고 넓은 동굴' 이라는 뜻의 제주어인 큰넓궤[2] 처음부터 들고 있던 미제 소총은 교전 중에 고장났다. 상표를 죽이는데 사용한 총은 군인에게서 뺏어온것.[3] 독립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연극 배우로 훗날 봉오동 전투(영화)에서 제주도 출신 독립군 병사 '재수' 역을 맡으면서 상업영화에 데뷔했다.[4] 경찰 가족이라 원래 토벌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나[14] 마을에 온 군 토벌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5] 본업은 제주어 창작가요를 부르는 가수로 엔딩 주제가 '이어도 사나'를 작사,작곡하고 불렀다. 2023년 현재 혈액암 투병으로 모든 활동을 접은 상태다.[6] 계급 오류. 이는 한국전쟁 및 그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류로 한국전쟁 때 까지 병의 계급은 이등병(이병), 일등병(일병), 하사였으며 하사가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957년에 군진급법 개정에 따라 지금의 병장, 상등병으로 개편되었다. 그래서 한국전쟁 및 그 이전이 배경인 작품에서 X상병, X병장이라는 계급이 등장하면 당연히 고증 오류이다. 하사관 계급은 이등중사(지금의 하사), 일등중사(지금의 하사), 이등상사(지금의 중사), 일등상사, 특무상사(지금의 원사)이었다.[7] 태왁은 해녀가 수면에서 몸을 의지 하거나 헤엄쳐 이동할때 사용하는 어로용구이다.[8] 별점 테러로 인해 관람객 평점보다 크게 낮은 점수가 나타난다.[9] Hq. USAFIK, G-2 Periodic Report, No. 1097, April 1, 1949.[10] 劉載興(82세,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당시 제주도지구전투사령관, 국방장관 역임, 2002. 9. 6. 채록) 증언.[11] 종교영화가 아닌 일반 상영관 10개에서 장기간 상영하면서 이뤄낸 것이라 순위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영화는 특정종교 성격이 강해서 모르거나 신도들 단체관람으로 이뤘다는 지적도 있다.[12] 군인들은 표준어나 다른 지역 사투리를 쓰는데 이것도 같이 자막처리 된다.[13] 소리만 들리고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