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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5:05

윤서인 독립운동가 비하 논란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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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윤서인 페이스북 독립운동가.jpg
문제의 발언
1. 개요2. 전개
2.1. 발언의 공론화와 해명2.2. 2차 해명과 진실성 논란2.3. 윤서인의 한국해비타트 저격2.4. 광복회,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윤서인 고소2.5. 윤서인의 광복회 변호사 고소2.6.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추정되는 인물과의 인터뷰 논란
3. 문제점4. 반응
4.1. 광복회 및 독립운동가 후손
4.1.1. 당사자 반응4.1.2. 정철승 변호사의 고소 진행4.1.3. 무혐의 처분
4.2. 정치권4.3. 국민청원
5. 결과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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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디오머그에서 정리한 영상
2021년 1월 12일 윤서인이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국해비타트의 <독립운동가 후손 주거개선 캠페인> 홍보 이미지 중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주거 격차를 드러낸 이미지를 가져와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걸까? 사실 알고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고 글을 써 논란이 된 사건. 이 이미지는 세 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좌측 상단의 친일파 후손의 집 사진은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PD가 2018년에 공개해 화제가 된 사진이며 우측 상단의 한 장은 해비타트 측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2. 전개

2.1. 발언의 공론화와 해명

해당 내용이 기사를 통해 공론화되자 윤서인은 빠르게 글을 삭제했지만 "광역 어그로 끌리면 좋은 점"이라며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 관심은 코인이 아니라 계몽과 확장"이라는 관심이 끌리게 되면 자기가 유명해지니까 사람들을 가르쳐 줄 수 있게 된다고 해석될 수 있는 글을 올렸다.

이후 비판이 이어지자 "자신은 극단적 비교 예시를 미러링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이러한 행위를 비판한 전우용의 트윗에 대해서도 "100년 전 선조의 빈부와 지금의 빈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올린 말"이라며 자신의 발언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요지는 이미 6.25 전쟁으로 모조리 리셋된 상황에서 친일파 후손이든 독립운동가 후손이든 개개인의 노력으로 부를 쌓을 수 있는데 왜 호도하느냐는 주장이며 여론의 뭇매에 대해 항변하면서 독립운동가를 폄훼할 생각은 없었고 열심히 산 독립운동가가 있다고 말하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열심히 산 독립운동가의 예시로 들었다.

윤서인이 "기본적으로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승만처럼 아주 열심히 살았던 독립운동가도 있었지만 술과 도박에 찌들어 살거나 도둑질을 하다가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도 많았으니까"라고 덧붙이면서 물타기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안중근에 대해서까지 "안중근은 한일합병 전에(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쐈다"며 나라를 병합한 세력에 총을 쏴서 독립운동가로 편입된 것이지, 총을 쏠 때 안중근의 마음은 독립운동이 아니었고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있어 독립이 필요없었다고 주장해 다시금 논란을 키웠다. #

페이스북 포스팅의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 워낙 어그로성이 큰 문구인 데다 이들의 부 축적 과정도 아니고 결과만을 놓고 개인의 노력의 잣대로 기술하였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이를 조롱이라고 봤으며 사과하면서 언급한 내용들도 수구-극우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독립운동 폄훼 발언과 다를 게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과거에 수 차례 어그로를 끈 전적도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윤서인의 항변을 믿어 주지 않았다. (독립유공자 대우의 현실에 대해서는 관련 항목 참조) 또 그는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 사진만을 보고 '열심히, 대충' 살았다는 글을 적었는데 이를 풍자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해석한다면 삶은 단순히 한 가치만으로 판정하기 어렵고 이러한 발언은 물질적인 재산만으로 삶의 가치를 판가름한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2.2. 2차 해명과 진실성 논란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윤서인은 자신의 계정 윤튜브 커뮤니티에 사과문과 관련 해명을 작성해 올렸다. 이 사과에 대해 자기와 같은 정치적 의견을 가지는 사람들을 향해 '저들에게 빌미가 된 점'을 사과한 거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사과한 게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 해명문 펼치기 · 접기 ]
||이번에 논란이 된 제 글은 너무 짧게 쓴 게 실수였습니다
글의 의도를 모두 풀어쓰면 아래와 같습니다
---------------------------------------------
(만약에 퍼온 사진의 양극단 이분법이 진짜로 맞다면) 친일파 후손들은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 되고 독립운동가들 후손들은 대충 산 사람들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 중에도 얼마든지 부자가 있고
친일파 후손 중에도 얼마든지 가난한 자가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초기화까지 됐던 한반도에서 100년 전 조상의 빈부가 지금 후손의 자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긴 어렵다)
(그럼 위의 극단적인 비교처럼) 100년 전에도 소위 지금 친일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100년 이상을 끄떡없이 물려줄 재산을 쌓을 정도로) 열심히 산 사람들이고
지금 독립운동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들에 비해) 대충 산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미러링)
(어때? 말이 안 되지?)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비교 따위는 집어치워)
---------------------------------------------
논란이 되니까 뒤늦게 없던 의미를 갖다붙인 게 절대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100% 위의 의도로 글을 썼습니다
표현이 부족해서 오해를 부른 점, 그래서 저들에게 빌미가 된 점은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처럼 아주 열심히 살았던 독립운동가도 있었지만 술과 도박에 찌들어 살거나 도둑질을 하다가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도 있었으니까요
역사는 다양한 면을 갖고 있기에 후손들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딱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들은 저에게 '도'를 넘지말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언론들이 정해놓고 압박하는 그 '도' 밑에 제가 계속 눌려있을 수는 없습니다 ㅠㅠ
저들의 '도'가 과연 옳은 건지 의문을 제기하고 그 '도' 에 다가가 버티면서 표현의 폭을 지키고 넓히는 것이 제 인생의 사명 같은 느낌도 듭니다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표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글 해명 후에 자신의 본래 의도를 설명한다고 영상도 찍어 올렸다. 해명 영상

윤서인의 해명글은 다시 한 번 진실성 논란에 휘말렸는데 원문을 조작해 가면서 해명했다는 의견이 있다.

[해명글에 대한 비판] 본래 자신의 의도라는 것이 괄호 안에 쳐지며 사실상 원글에 비해 60%가 넘는 양이 진의로 쓰여 있다. 즉, 원글은 원 글의 반 정도 되는 양을 생략하고 쓴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을 한 것이다. 더불어 윤서인은 "어떨까"로 끝내는 미러링의 의도라고 해명했지만 원 글은 "어떨까"가 아닌 "아니었을까."라는 저자의 생각에 대한 단문형이다. 즉, 원문을 조작해 가면서 해명했다. 백 번 양보해 윤서인의 주장이 맞다고 해도 윤서인은 지난 수 년 동안 여러 차례 만화나 유튜브에서 운동권 세력을 선동에 이끌리는 무식한 사람들로 묘사해 왔던 반면 친일파는 똑똑한 이들로 묘사한 적이 많았다. 즉, 지난 행적이 있으니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해 봐야 믿기 어려운 것이다. 애초에 반성하지도 않았던 듯하다. 자신이 무조건 맞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는데 자신이 싫어하는 쪽과 똑같은 짓을 벌였다는 것이다.

2.3. 윤서인의 한국해비타트 저격

파일:윤서인_독립운동가_비하논란.png

영상

18일에 '내 인생은 늘 억울하다'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하나 더 올라왔는데 논란이 된 친일파,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 비교 사진은 사실 한국해비타트 독립유공자 캠페인에서 올라온 사진이었으며 마치 독립유공자 대부분이 국가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것마냥 표현되어 있어 이를 비판하고자 글을 올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광복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친일파나 독립운동가 후손의 재산 여부는 조상들의 독립운동 여부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정말 윤서인이 이를 비판하고자 한 의도였다면 해명 영상에서 언급했듯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무조건 가난한 것은 편견이며, 실제로 유공자 자손의 재산은 독립운동과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글을 썼어야 했지만 집 비교 사진만 딸랑 올려 놓고 친일파 후손들이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 거냐고 글을 썼으니 누가 봐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비꼬기 위해 올린 글로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논란과 별개로 그의 주장이 맞는지는 의심스럽다.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건 연좌제의 위험도 있고 나름 본인이 열심히 인생을 살아 왔을 수도 있지만 국가를 대신해 나선 독립운동가의 노력에 국가가 보상하지 못했음은 꽤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2.4. 광복회,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윤서인 고소

윤서인의 발언 이후 광복회에서 윤서인을 고소하기로 나섰다. 광복회는 안중근 후손, 신채호 후손, 몽양 여운형 후손과 같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모여있는 단체로, 회원이 8,300명이다. 광복회 측에서는 회원(후손) 8,300명에 1인당 만약에 100만 원씩으로 이렇게 우리가 위자료를 요구하면 83억 원이 된다며 83억 원 위자료를 청구를 시사했다.

윤서인은 자신에 대한 고소에 대해 "이게 인용된다면 법원 문 다 닫아야지"라며 자신을 드러냈는데 이에 대해 로톡뉴스를 통해 법무법인 주원의 박지영 변호사는 "민사 재판에서는 형사 재판과 달리 피해자 특정 등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다"며 "윤 작가 해명대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수(과실)에 의한 행위도 불법행위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윤서인의 주장을 반박했고 '독립운동가들'이라는 것도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는 근거"라고 밝혔다. 다른 불특정 집단과 달리 독립유공자법상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이들이므로 특정성 충족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다만 박 변호사는 "정신적 위자료를 낮게 책정하는 법원의 경향에 따라 1인당 100만 원이 전부 인정되기는 어렵고, 훨씬 적은 금액이 인정될 것"이라고 설명한 반면 이 사안을 다르게 본 변호사들도 있었다. 같은 기사에서 심앤이 법률사무소의 심지연 변호사는 "(인용될 확률보다는) 기각될 확률이 더 높다"고 내다봤으며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도 "특정 개개인을 지목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기엔 힘들어 보인다"며 같은 의견을 밝혔다.

국가보훈처의 선양단체로 신흥무관학교, 광복군, 진해산의병, 3.1 운동, 여운형, 윤봉길, 안중근 등의 기념사업회, 후손 들의 단체인 (사)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합세해 윤서인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정철승 변호사와 올렸다. #

광복회 측에 따르면 소송에 참여할 회원을 모집하는 단계이며 늦어도 설날 이전에 먼저 준비되는 수백명을 원고로 하여 정식으로 고소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고 소송인원이 모집됨에 따라 2차, 3차 소송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802억 소송을 걸었다거나, 인지세 2억 8000만원이 나왔다던가 하는 건 모두 가짜 뉴스라고 한다. # 이외에도 정철승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독립운동가 후손 이외에 윤서인에게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올렸다.

2021년 2월 6일, 정철승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자신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는데 광복회 회원 전원에 대하여 일괄적으로 고소함으로서 천문학적 위자료를 물리는 대신 200~300명 단위의 별개 소송으로 쪼개서 한 소송이 끝나면 또다른 소송을 하고 그 소송도 끝나면 또 새로운 소송을 하는 것을 반복해 향후 10-20년간 꾸준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반인인 제3자나 법정대리인이 이런 식으로 고소를 하면 변호사 선임비만 해도 장난 아니게 나올 것이지만 정철승은 그 자신이 변호사다. 물론 변호사가 당사자로서 이렇게까지 나서서 장기간의 고소를 예고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평판 또한 깎이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행동이지만 정철승은 예외적으로 본인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만큼 당사자로서의 감정도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그 피고소인이 '대한민국에서 안티가 많은 유명한 유튜버인만큼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제발 어떻게든 멕여줘라며 정의구현을 갈구하는 여론이 막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정철승 변호사는 윤서인 고소건을 두고 화장실 청소 같은 일이라고 언급했는데 본인이 그동안 수임해 왔던 사건과는 사이즈가 다른 일이라고 한다. 이전에 또 다시 '청소'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일의 이유를 들었는데 윤서인이 이러한 식의 비하적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 언급하며 변명하는 것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1] 이유라고 한다.

2021년 2월 24일, 광복회는 독립유공자 후손 249명이 윤서인을 상대로 100만원씩 총 2억 4900만원의 위자료 소송을 진행한다고 밝혔으며# 25일에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하였다. #

2022년 7월 11일, 검찰은 해당 사건이 명예훼손이나 모욕보다는 개인적 의견을 표명한 것일 뿐이라며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윤서인을 무혐의 처분했다. #

2.5. 윤서인의 광복회 변호사 고소

파일:윤서인_정철승_고소.jpg
광복회 정철승 변호인 고소

2021년 1월 19일 윤서인은 광복회의 법률대리를 맡은 정철승 변호사를 명예훼손, 모욕, 협박 혐의[내용]로 고소하고 이를 SNS를 통해 밝혔다. 정 변호사는 "윤씨가 사과글이란 것을 올리면서도 적반하장의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이번 고소는 윤씨의 죄질이 나쁜 점을 입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행위라 오히려 반갑다"고 했다. 관련 기사 정 변호사는 이후 과거 자신이 고양시의 악질 시행사와 14년간 싸워 보상금을 얻어낸 것을 언급하고 윤서인에 대해 법적으로 혹독하게 응징하겠다고 대응했다.

정 변호사는 2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씨가 그간 행태로 봤을 때 모욕감이란 게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며 "자기가 그 정도 모욕감을 느꼈다면 자기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해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큰 모욕감과 분노와 상처를 줬을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본인의 잘못에 대한 사과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서 광복회의 변호사 개인 계정을 털어 고소를 진행한 것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전형적인 '메시지가 공격이 안되니 메신저를 공격한다'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사실 정철승 변호사는 독립운동가 윤기섭의 외손자로 독립운동가의 후손 당사자이기 때문에 윤서인이 고소해도 독립운동가 후손 당사자로서의 분노의 표현으로 볼 경우 실질적으로 처벌 가능성은 없었으며 변호사들의 생각도 이와 같았다. 박지영 변호사도 "정당한 비판의 맥락에서 다소 거친 단어가 쓰인 경우는 모욕죄 등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하진규 변호사도 "다소 과격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3]

이후에도 윤서인은 정철승의 “윤봉길 손녀와는 말도 섞기 싫다, 혐오한다”는 발언을 지적하면서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했다.

2021년 7월을 기준으로 윤서인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듯하다. 윤서인 백남기 유족 명예훼손 사건 당시 강용석과 함께 어떻게 법적 대응을 할지 지속적으로 근황을 보인 것에 비해 이번에는 강용석은커녕 로펌을 섭외했다는 말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윤서인은 가로세로연구소 뒷담 논란으로 김세의와 강용석과의 사이가 틀어졌고 그렇다고 다른 변호사를 섭외하자니 자신의 의뢰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변호사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윤서인을 변호를 하면 자신들의 커리어에 엄청난 문제점이 생기기에 실제로 국선 변호사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인간쓰레기의 변호를 거부하는데#, @ 윤서인은 말할 것도 없다. 참고로 재판 일정까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없는 상태로 재판이 진행된다.

2022년 3월 정철승 변호사가 윤서인을 곰팡이로 비유한 것으로 들어온 모욕건에 대한 고소는 검찰선에서 무혐의로 불기소 처리했다. #

2.6.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추정되는 인물과의 인터뷰 논란

독립운동가 모욕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2월 4일 윤서인은 '독립운동가 후손을 내친 김에 인터뷰했다'며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내용은 당연히(?) 윤서인의 발언을 두둔하고 독립운동가 후손이자 이러한 일반화가 기분나쁘다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문제는 이 '독립운동가 후손'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증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저 여성이 독립운동가 후손이 맞냐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지만 윤서인은 왜 그걸 증명해야 하냐며 피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것이 사실이라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자처하는 이가 독립운동가를 모욕한 사람의 행동을 옹호한, 그 자체로 모순된 행동이 될 뿐더러[4] 윤서인이 과거에 여론조작을 시도한 사례가 있는 만큼 윤서인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독립운동가 후손이 맞는지 증명해 달라는 한 네티즌의 유투브 댓글을 평소처럼 조리돌림하기 위해 고정시키면서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닐 경우 윤서인 본인이 10억원 지급, 맞을 경우 댓글러가 100만원을 지급하는 내기를 제안했는데 이것도 과거 사례가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본인의 영상 속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한낱 돈놀이로 전락시키고 이를 자기 자신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과 과거 5.18 유공자 공개 등을 주장한 것을 역으로 들며 '자랑스런 독립유공자를 공개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돈까지 거나'는 비판이 쏟아졌으며 과거 논란을 바탕으로 내기에 응한 사람들도 윤서인이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리 섭외된 사람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윤서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이라는 것만 증명되었다.

이후 또다른 네티즌이 영상 속 인상착의 등을 토대로 윤서인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데려다 놓고 인터뷰한 인물이 다름아닌 윤서인의 페이스북 지인이자 열성 팬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결국 윤서인이 또 윤서인했다는 쪽으로 여론이 결집되었다. 이는 과거 김세의 기자가 윤서인 자신을 동원해 기사를 조작한 사례와도 오버랩되는데 인터뷰 당사자가 애초부터 윤서인의 열렬 지지자임이 밝혀진 이상 이미 영상의 신뢰도와 공정성,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발언의 대표성은 유족 진위 여부와 상관 없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영상을 ‘조작’이라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다.

또 김씨 성을 가진 이 인물이 영상에서 주장한 "자신의 조부는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과거 국가유공자가 되었으며 박정희 정부 이후 유족에 대한 예우[5]가 줄어들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박정희 정부 말기까지 서훈을 받은 김씨 성의 남성이 간접적으로 이들을 변호했던 김병로[6]를 포함해 10명 남짓 정도 거론되면서 이름만 대면 사실관계가 확인될 텐데 뜸을 들이는 까닭이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말이 진실이 아니라서 그런 것 아니냐는 여론도 나왔고 '초등학교 때 삼 남매가 표창을 받았으며, 이것이 박정희 사후 줄어들었다'는 발언은 연령을 미루어 볼 때 명백한 거짓이 된다.

영상 내에서는 ‘광복회 회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엿보인다. 윤서인은 상대방에게 광복회 회원 여부를 묻고 여기에 상대방이 몇가지 정황을 들어 긍정하면서 ‘국가유공자 후손’이라고 답하자 “광복회 회원과 독립유공자 후손은 별개이며, 광복회는 자발적인 일반 단체다”고 정리했는데 이는 사실관계와 전혀 다른 내용이다. 현재의 광복회는 단순 친목회가 아니라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하는 보훈단체로, 그 회원 자격도 법적인 요건이 존재한다.
4. 광복회의 회원: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제2호에 해당하는 사람과 같은 조 제1호 및 제2호에 해당하는 사람의 유족 중 각각 같은 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는 사람. 다만, 보상금을 받는 유족이 없는 경우에는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5조제1항 각 호 및 제12조제3항에 따른 선순위자 중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하고, 같은 법 제5조제1항 각 호에 규정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같은 법 제4조제1호 및 제2호에 해당하는 사람의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나이가 많은 사람 1명으로 하되, 유족 간의 합의로 1명을 지정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을 회원으로 한다.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3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윤서인은 광복회를 ‘자발적인 단체’로 이야기함으로서 광복회가 모든 국가유공자 후손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닌 일반 친목단체처럼 서술하는 오류를 범했다. 더욱이 인터뷰 내용에서 선순위 수권자인 큰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인터뷰 대상자는 본인이 '독립유공자 후손이기 때문에 아마 광복회 회원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것과는 달리 광복회 회원이 아니며 회원 요건 여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후 "포크스가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유튜브를 통해 윤서인에게 진짜로 100만원을 입금하였으며 윤서인이 "입금자가 원하는 어떤 방식이든 가능하다"고 공언한 대로 검증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자신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검증하기 전까지는 검증과 관련한 사항을 누출시키지 않을 것, 둘째는 독립운동가 본인과 후손에 대한 정보를 먼저 제공할 것. 여기에 추가적인 조건으로 검증의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독립유공자 후손과 윤서인, 본인과 동행인 네명이 참석하는 방식으로 두 번의 이동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윤서인이 '자신이 삼자대면을 통해 만나자고 했음에도 거부하였다'며 대포폰 연락이나 두 번의 이동, 동행인 등을 핑계로 검증을 결렬시키면서 결과적으로 그가 원하는 방식의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포크스가이'는 이미 통화를 통해 이러한 조건에 대해 동의를 한 상황이므로 이는 '입금자가 원하는 어떤 방식이든 검증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기망이라며 소송을 예고했고 윤서인이 문제삼은 검증의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는데 두 번의 이동은 동사무소보훈처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인증을 위한 것이며 동행인 또한 이를 기록할 촬영/편집자에 불과한 매우 정당한 조건이었다며 선을 그었다.

윤서인이 최초에 주말에 삼자대면을 통한 검증을 요청한 것도 서류상의 인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지켜보던 네티즌의 반응은 중학생 만남 회피 Mk.2였다. 특히 이후 최후통첩 식으로 2월 10일에 강남경찰서 민원실에서 모든 것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는데 정작 독립유공자 후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보훈처 방문여부에 대해서는 '관할 보훈청이 제주도라 방문이 어렵다'는 식으로 회피했기 때문에 의문을 자아냈다.

2월 8일 자정에 진행한 라이브를 통해 윤서인은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1968년에 대통령 표창 수여' 등의 정보를 흘렸고 다음 날 영상을 통해 해당 사실을 인증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김대원 지사의 후손으로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윤서인과 그 팬들은 윤서인의 승리를 이야기했지만 앞서 말하였듯 이미 독립운동가 후손의 진위 여부를 넘어서 인터뷰의 진실성 자체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인 데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검증해주겠다'는 말조차 지키지 않은 상황이어서 비판받았으며 이러한 논란 자체가 광복회의 고소 및 뒷담화 논란을 무마시키고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모아 보겠다는 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심지어 지역 명망가였던 김대원 지사의 조건을 들면서 아예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과 출발점이 달랐음에도 이를 순전히 자기 노력으로 포장하는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비판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내기를 신청했던 ‘포크스가이’는 영상을 통해 윤서인과의 녹취를 공개하며면서 ‘자신이 100만원을 통해 구매한 것은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닌, 검증 절차를 만들고 이를 승인하며 실행할 주체가 되는 것’이었다며 윤서인이 영상을 공개해 이를 어김으로서 윤서인은 기망으로 100만원을 편취한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한 다음 선택지로 1. 기망의 고의로 볼 수 있는 사기로 형사고소 및 부당이득 반환 청구의 민사소송, 2. 1의 연장선상에서, 소송자료를 유튜브에 보내 채널을 폐쇄 및 정지를 요구하는 것, 3. 원래대로 대면확인 후 정당하게 100만원 확보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요구는 무시되었으며 오히려 윤서인은 100만원을 인터뷰를 진행한 후손과 나누어 가지고자 하는 모습 등을 보였으나 당사자는 이를 거부하였고 해당 용처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을 끝으로 100만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3. 문제점

친일파 후손이 잘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이 어렵게 사는 것은 단순히 노력의 여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은 현대 한국에서는 일반상식에 가까운 사실이다.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파들과 그들의 후손이 일제강점기에 재산 축적이나 자녀들의 교육에서 유리했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에도 단죄는 커녕 공직이나 경제계에서 여전히 일반인들보다도 우위를 점해 왔다. 후손 개인의 개인적 노력여부와 별개로 애초에 출발점 자체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문재인 정부에서 논란이 된 페미니즘 및 코로나 방역에서 나오는 불공정 논란에 대해서 열심히 비판을 해 왔지만 정작 자신은 문재인 정부를 떠나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불공정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에 대해서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 부족을 문제로 여긴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생활고를 겪는 이유는 그들이 노력을 안해서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집안 탄압과 해방 이후에도 군경 등으로 득세한 친일파들의 탄압과 국가의 열악한 유공자 대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6.25 전쟁베트남 전쟁 참전 유공자, 5.18 민주화운동 등 국가유공자 대부분이 정부의 대우가 박한 편이다. 그래서 이들 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른 지가 오래되었다.[7]

서울특별시의회 친일반민족행위청산특위 홍성룡 위원장의 말마따나 소위 '친일한 사람'들은 부를 대물림 받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피폐했고 후손들은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윤서인은 이전부터 이같은 일반상식을 부정하며 친일 청산 활동 자체를 비하하는 언행을 보여 왔다. 이번에도 한국해비타트의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 개선 사업을 비꼬기 위해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후손을 '노력 안 하고 대충 살았던 사람들'로 비하하면서 모욕의 대상으로 삼았다.

윤서인 본인은 거센 사회적 비판을 받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 한국해비타트의 일반화 주장을 미러링할 의도였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나 애초에 한국해비타트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예우에 대한 비판과 독립운동가 후손 지원을 말하며 예시 중 하나로 저 사진을 든 것이지 친일파 후손 모두가 잘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 모두가 가난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당 캠페인을 통해 지원이 필요한 독립운동가 후손이 어느 정도인지 대한 통계를 제시함으로서 일반화를 피했다.

만약 정말 헤비타트측에서 그런 극단적인 일반화를 했다면 윤서인의 주장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친일파 및 후손들도 대부분은 6.25 전쟁 때 거지가 됐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해방 후에도 잘먹고 잘산 친일파들은 네임드(?)들의 사례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극빈층이었던 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에서 오늘날의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독립운동가 후손들만 성장이 빗겨나갔다고 주장한다면 역시 이상한 일일 것이다. 막말로 군사정권까지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중산층까지 올라오면 정부에서 추적해서 바로바로 재산 다 뺏고 판자촌으로 돌려보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문민정부부터 지금까지를 거치면서 독립운동가 후손들만 제자리고 판자촌을 탈출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될 것이다. 돈 외에도 다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판자촌에서 사는 사람이 돈 외에 다른 가치라도 이루었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런데 문제는 헤비타트는 본문에서 아주 상세하게 글의 취지가 그런 극단적인 일반화가 아닌 처우 개선에 있다는 것을 명시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까지 첨부했다는 것이다. 즉 사진 한 장에 급발진해서 의미를 곡해한 것은 윤서인 본인이다. 그의 친일 전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진짜로 비하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심지어 본인이 저런 의도로 말을 했다면 그것대로 정말 심각한 일이다. 정말로 저런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독립운동가 비하의 뜻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지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윤서인은 이미 백남기 농민 유가족 비하, 조두순 사건 피해자 우롱 등 행적이 논란이 되었고 명예훼손으로 법적 처벌까지 받았던 만큼 더욱 자숙해야 했던 상황임에도 이런 일을 일으켰으며 논란 이후에도 "내 말을 듣는 사람이 늘어났다! 내가 여론을 움직였다!"면서 관심을 요구하고 표현력 부족만 사과했을 뿐, 자신은 하나도 잘못이 없고 자신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광복회의 변호사를 고소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유튜버 아는 변호사는 다소 다른 방향의 해석도 내놓았다. 윤서인이 해당 논란 이후 올린 이화장을 방문하는 영상에서 벨을 누르고 관리인과 인터폰으로 통화하면서 "나는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이니 잠깐만 들여보내 달라"고 애걸하듯 말하는 장면을 언급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느냐며 그 사람이 독립운동가냐 친일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윤서인이 말하는 '열심히 살았다'의 근거는 그냥 돈이고, 결국 윤서인의 머릿속 논리는 친일이냐 항일이냐가 아니라 전적으로 돈으로 귀결되며 그의 머릿속에서는 돈을 벌게 된 과정보다 돈을 벌었다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윤서인은 인생의 기준 자체가 돈벌이, 그것도 '돈을 어떻게 버느냐'보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에만 맞춰져 있고 "내가 돈만 벌 수 있다면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든 미국이든 나라를 파는 일도 할 것이고 돈만 벌 수 있다면 외계인에게 지구도 팔 수 있다"는 머릿속 가치관이 튀어나온 것이 바로 저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굳이 그의 말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면 '친일파에 대한 아무런 단죄를 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에 대한[8] 반어법적인 풍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4. 반응

4.1. 광복회 및 독립운동가 후손

김원웅 당시 광복회장은 법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고 예고하였으며 8,300명 회원[9] 1인당 1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여 총 83억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광복회에 가입하지 않은 72,000여 명의 독립유공자 유족이 소송에 참여할 경우 소송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관련기사

또 김원웅 회장은 CBS에서 한 인터뷰에서 윤서인의 유튜브 행적과 친일적인 행적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보수 세력들이 눈감은 것과 윤서인이 여의도연구원에서 만평을 그린 점 등을 지적하면서 "윤씨의 활동 내역이 국민의힘과도 밀접한 관계가 좀 있다고 본다"며 "국민의힘이, 국민이 아니라 친일의 힘으로 유지되는 정당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윤씨 사건을 계기로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해서 보여주기를 바란다"란 입장을 밝혔다. #

독립운동가 장준하 열사의 아들 장호준은 "물론 어떤 미친 놈의 헛소리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뒤돌아보면 나는 대충 산 것이 아니라 헛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보다는 슬픕니다"라며 "좀 더 독하게 '열심히' 살아 봐야 하겠다"고 하면서 윤서인에 대한 비판과 좌절, 절망을 표했다.

신흥무관학교, 광복군, 진해산의병, 3.1 운동, 이상설, 여운형, 윤봉길, 안중근, 조소앙 등의 기념사업회, 후손들의 단체인 (사)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은 정철승 변호사를 통해 '윤서인'이라는 자에게 SNS나 유튜브를 통해 모욕, 명예훼손 등 피해를 당했거나 기타 법적 조치를 원하는 분들의 제보를 받는다고 밝혔다. #

4.1.1. 당사자 반응

윤서인이 올린 사진 속 허름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은 조병진의 후손으로 파악되었다. 이후 실제 독립운동가 조병진의 증손자로 자신을 소개한 이는 보배드림에 “일제에 부역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조그마한 힘이라도 함께 한 할아버지의 인생을 대충 살았다고 폄하한 윤서인 씨에게 묻고 싶다. 과연 잘 살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은 그 조상들이 자랑스러울까”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운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가슴 한 구석에는 부끄러움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꼭 그렇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해당 인물은 윤서인이 올린 집은 조병진의 딸, 즉 글쓴이 기준 고모할머니의 댁이라고 소개했으며 조병진 본인의 생가는 시골의 어머니가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이데일리

4.1.2. 정철승 변호사의 고소 진행

파일:광복회_윤서인_고소장.jpg

출처 : 정철승 변호사 페이스북

2021년 7월 12일 정철승 변호사는 독립유공자 및 후손 463명을 대리하여 윤서인을 형사소송법에 따라 고소했다고 밝혔다. # 정철승 변호사는 광복회로부터 법적 위임을 받아 법률 대리 및 민•형사소송법에 따른 고소를 진행했다.

4.1.3. 무혐의 처분

2021년 9월 14일 검찰에 송치되었다. # 그리고 2022년 7월 11일 무혐의 처분됐다. 무례한 표현이라고 가치판단을 내릴 수는 있으나 명예훼손이나 모욕이라고 보기에는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고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2. 정치권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저런 자들과 동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함께 밀려온다"며 비판했다. # 광복회 관계자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참담한 심정"이라는 말을 남겼다. # 조선일보기사를 올렸는데 네이버 뉴스/댓글 이용자들이 대거 몰려와 비판을 퍼부었다. 정작 윤서인 본인은 관련 글들을 삭제한 뒤 오히려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의회 친일반민족행위청산 특별위원회는 20일 “윤서인씨의 막말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의 극치”라며 “독립운동가를 능멸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한 윤씨를 엄벌해 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성룡 위원장은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며 “친일한 사람들은 부를 대물림받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삶은 피폐했고, 후손들은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모한 채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고 언급했으며 “윤씨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독립유공자 후손들께 부끄러운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

4.3. 국민청원

해당 청원

윤서인을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그를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은 올라온 지 하루만에 1만 6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윤서인의 페이스북 링크와 함께 “후손들에게 변변한 유산조차 남기지 못했을 만큼 조국을 위해 모든 걸 바치신 독립운동가 제위를 공개적으로 능멸한 상식 밖의 행위에 대해 단호히 처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

그러나 청원 마감일인 2021년 2월 13에 166,409명으로 종료되며 20만명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5. 결과

1년 10개월이 지난 2022년 11월 11일 윤서인이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정철승 변호사는 "광복회 어수선해지고 검찰 무성의해 법적 책임 면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6. 여담



[1] 유튜버 아는 변호사가 같은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들었던 이른바 '형벌의 위하력'이 이것이다. 단순히 해당 가해자에 대한 징벌에만 그치지 않고 그러한 징벌을 통해서 '이딴 짓 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것을 환기시켜 비슷한 범죄의 재발을 막는다는 취지.[내용] 정철승 변호사는 오늘 저를 '하찮은 자'라 말하며 자신의 로펌 신입 변호사들을 트레이닝하는 용도로 윤서인에 대한 소송을 맡겨보겠다는 글을 썼습니다. 변호사님 윤서인 부모도 검토해주세요 자식 잘못 키운 죄...” 라는 댓글이 달리자 그는 “그러게 말입니다 옛날같으면 일족이 도륙날 일인데..” 라는 무시무시한 답글을 달기도 하셨네요 #[3] 윤서인 측은 정철승 본인도 4월 12일 한 독립운동가 후손이 공개석상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의 멱살을 잡은 일에 대해 해당 인물에 대하여서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것 이외에는 자신을 드러낼 성취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같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안쓰럽게 느꼈다"고 발언하거나 "독립운동가 후손은 가난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고, 그래서 더러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거나 김원웅 빨갱이를 외치기도 한다", "어떻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국민의힘당과 민주당 사이에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역사 인식과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각만 있어도 쉽게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인데, 그것조차 안될 정도로 개탄스러운 수준의 후손들이 많다" 등의 발언을 한 점을 들면서 오히려 정철승이야말로 독립운동가를 비하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지만# 광복회장을 위시하여 정철승 등 일부 인물들이 정치편향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내부에서도 비판받는다고 해서 윤서인 자신의 흠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편향은 정치편향대로,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따로 떼놓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윤서인은 저런 인물들만 골라서 비판한 것도 아니고 독립운동 전체를 모욕했으니 가만히 있던 윤주경이나 광복회장의 부적절한 언행에 항의한 독립운동가 후손도 싸잡혀서 모욕당한 셈이다.[4] 물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해서 윤서인과 같은 정치적 지향성을 갖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윤서인은 이전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폄하 발언을 몇 차례 한 바 있고 이 문서에서 언급된 주장도 본인이 주장하는 진의와 별개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비하성 발언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를 독립운동가 후손을 내세워 옹호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5] 그 예우라고 하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 3.1절이나 광복절 등 기념식에서 가족이 표창장을 받은 것 정도였으며 물론 대학교 때까지 장학금은 꼬박꼬박 나왔다고 한다.[6] 물론 김병로는 1888년생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당사자의 연령은 김병로의 손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리다. 김병로의 손자인 김종인이 2021년 기준으로 80대 노인이었다.[7] 심지어 5.18은 채널A북한개입설을 주장하는 보도를 하는 바람에 북한개입설이 신빙성이 있는 것마냥 주장하는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존재할 정도다.[8] 아는 변호사는 친일청산 단죄 문제와 관련해서 형법의 위하력을 지적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벌을 주는 의미도 있지만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어 "너는 이딴 짓 하지 마라"/"내가 저런 짓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라고 환기시키는 효과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위하력을 행사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한 원인이 되었다는 해석이다.[9] 광복회원 및 안중근 의사 후손 또는 단체 등을 포함하며 독립운동가에 따라 후손이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 가문 한 단위에서 정식 광복회원은 1명만 가입이 가능하고 나머지 후손은 '유족'에 포함된다.[10] 기사에 나온 사진을 보면 윤서인이 친일파 후손의 집이라고 언급한 곳과 판박이이다.[11] 이를 밝힌 네티즌(조병진의 증손자)의 고모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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