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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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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의 계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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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치연대
평등사회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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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카데미학생회후진국경제연구회를 주축으로 하는 분파[2] 학계PD, PTR(무산계급혁명론), LC(노동운동)그룹, 트로츠키주의[3] 제독PD(AMC)+ND+제파PD(AF)[4] NL좌파+ND+제파PD(AP, 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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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NL 계열3. PD 계열4. IS5. PTR6. 옛 CA 계열
6.1. 21C 계열(다수파)6.2. 사회당 계열(소수파)
7. 환경운동8. 아나키즘

[clearfix]

1. 개요

운동권의 계파를 다룬 문서. 다만 오늘날에는 NL과 PD의 구분이 의미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 NL 계열

NL좌익 민족주의사회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크게 소위 자주계열(주체사상파)과 혁신계열로 나눠졌는데, 후자와 달리 전자는 이들은 대부분 진보정당운동 및 통일운동을 제외한 생활혁신운동에 무관심하다. 그 이유는 한반도의 당은 하나이기 때문에(...) 민중민주당의 경우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과 이적판결을 받은 코리아연대와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파의 순도가 높은 편. 실제로 공약들도 대부분 실생활과는 별로 관련이 없어보이고...

3. PD 계열

다른 운동권 계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여기도 계파는 복잡하다. PD사회주의 바탕이다. 기본적으로 정권 친화적이고 코포라티즘적인 한국노총부터, 보다 강성한 노동계급 운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민주노총도 있으며 그 외의 자잘한 지역노조, 일반노조 등 여기도 다양한 정파들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은 다른 운동권들과 상당히 차이가 있는 편이다. 태생적으로나 운용면에 있어서나 노동조합의 사회운동화를 꾀하는 쪽이라 보면 된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국민파(NLPDR), 현장파(제파PD), 중앙파(제독PD) 등 다양한 정파가 존재한다.

하위 항목은 노학연대 과정에서 노동자로부터 지도를 받아 생성된 운동권 정파이다.

3.1. 제독PD(중앙파)

84년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촉발되어 87년 민주화 이후에 NLPDRPD가 본격적으로 분리된다. 행진 계열은 지속적으로 학생운동내 PD 진영에서 최대 정파로 활동해왔다. 전성기에는 수도권 웬만한 대학 문과대학(또는 인문대학) 학생회는 다 행진에서 수권할 정도였다. 대학 내 페미니즘 학회 중 다수가 이쪽 계열이기도 하다. 또한 NL 제외하고는 지방대학에 의미있는 활동회원 수를 보유한 유일한 정파다.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의 가해자 여성(통칭 담배녀) 편에 서서 흡연을 성폭력이라고 주장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입장을 철회했다. 이 사건 직후에 서울대 행진은 박살이 났다고 한다.
현재 정의당의 3분의 1 이상이 PD계열 운동을 해온 경력이 있는 당원들이고, 대표진과 당 중앙도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노심조) 등 PD 좌장들로 포진해 있다. 정의당의 정식 학생위원회에는 사회민주주의 계열과 온건 NL계인 인천연합도 대거 존재하기 때문에 정통 PD계라고 보기에는 살짝 애매한 감이 있지만, 모멘텀은 당 중앙과 중도화된 지도부에 대한 비판으로써 민주노동당 초창기 시절 사회주의 강령을 내세우기에 PD계로 취급된다.

3.2. 제파PD(현장파)

극좌파 사회주의 정당이자 마르크스주의를 당 이념에 채택한 유일한 정당. 이름에는 당이라고 하지만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아니다. 강령상 노선 자체가 전위정당이기 때문에 정당 등록을 일부러 안 하는 것.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가 이쪽 계열이라 알려져 있기도 한데, 정확히는 민주노총 내 좌파 활동가 모임인 노동전선 계열이다.
이곳이 진정한 8-90년대 PD 이론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좋게 말하면 정통 나쁘게 말하면 화석 본인들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곳에서 출판한 책들을 보면 이런 책이나 이런 책 등 소련을 변호한 책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읽는 책들 역시 구소련의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에서 나온 철학사나 자본론 등으로 친소 성향이 강하다. 다른 PD 운동가들은 서구식 신좌파로 선회하든 현실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비판하든 노선수정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거 없이 냉전기의 제2세계 그 자체다. 여담으로 흑석동에 있는 연구소에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사진이 걸려 있다.

4. IS

흔히 트로츠키주의로 분류하지만 정통 트로츠키주의와는 약간 거리가 있고 굳이 따지자면 영국의 사회주의운동가 토니 클리프를 따르는 '클리프주의'라 할 수 있다. 학술행사로 맑시즘을 매년 개최한다. 엄밀히는 PD와는 전혀 다른 IST라는 독립적 정파이다. 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구권 붕괴로 소련식 모델을 이상향으로 하던 PD운동이 퇴조에 접어들었을 때, IS(International Socialists)라는 조직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념적으로는 프로페셔널 했으나, 현실적으로는 능동적이지 못해서 학생운동권 내에서도 소외된 이념적 엘리트 운동권들이었다. 대학가 서점에 그들만의 팸플릿을 만들어 파는 정도의 활동을 하다가, 문민정부 때 전원 검거당했다.# 이후 꾸준한 신문 판매와 2003년 이라크 전쟁 파병반대운동 등을 통해 다시 성장하여 현재는 '노동자연대'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고 있다. 2011년의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 이후로 페미니즘 운동 측으로부터 욕을 많이 먹고 있다고.

5. PTR

PTR은 무산계급혁명(Proletarian Revolution)의 약자이다. 이승만 정부 시기 유상매입 유상분배라는 원칙의 토지 분배 시행과 한국 전쟁의 여파로 인해 남한 사회는 봉건적 유제는 남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자본주의 단계라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자본 축적 수준이 독점자본주의단계로 들어서게 되면서 남한 사회가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렀기에 곧바로 사회주의혁명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계급모순을 중시하였으나, 그렇다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특수성에 해당하는 민족 통일 및 반미주의라는 가치를 경시하지는 않으며, 변혁주도세력은 노동자와 빈농, 혁명적 지식인으로 정하였다. 학생운동계파에서는 좌경적인 노선으로 인식되었으며, 극소수였기에 이렇다 할 단체를 구성한 적이 없는 계파이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반수정주의를 중시하고 있다. 현재 언론 단체로는 전국노동자정치협회가 있다.

6.CA 계열

CA는 사회주의 바탕이다.

6.1. 21C 계열(다수파)


1994년 CA에서 NL로 합류한 흐름이 다시 분리되어 등장했다. 전통적 운동권은 민족주의사회주의건 좌파적 사회주의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를 뿌리로 해서 출발하였으나 이들은 복지국가를 추구하기 때문에 거시적인 사회 변혁을 얘기하지 않는다. 전체 운동 하에서 청년학생운동을 위치 짓는 게 아니라 당사자로서 청년운동을 하기에 청년수당, 주거환경개선 등 세세한 정책들에 집중하는 편. 복지국가 수립이 목표인 정의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유에서 활동하던 유명인 조성주 소장이 대표적. 청년유니온 출신의 진보 인사들이 정의당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덤. 현재는 우리미래와 자주 연대를 하고 있다. 일단 위에 나온 21세기 진보학생연합과 계통적으로 연결되어있다.90년대까지 한국의 평화운동은 NLPDR이 주도해 오며 주한미군철수라는 의제가 중심이 되어, 보편적인 평화운동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독립된 평화주의/반군사주의 운동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휴전국가로 징병제 중인 한국에서는 여러모로 입지가 좁지만, 그래도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병역거부 수감자들을 지원하고, 비폭력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량살상무기 거래 반대운동을 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인상깊은 문구가 존 F 케네디미국 대통령의 "전쟁은 오늘날 전사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명성과 특권을 병역거부자가 누릴 수 있을 때 끝나게 될 것이다."라는 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엠네스티랑 여러모로 방향성이 닿기도 한다. 국내에서 유명한 병역거부자인 오태양의 존재로 인해 21C 성향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6.2. 사회당 계열(소수파)


전국학생행진과 더불어 PD의 양대 정파라고 하면 꼽히는 게 청년좌파이다. 2002년과 2007년 사회당에서 대선운동을 치른 적이 있으며 12년 무소속 김순자 후보캠프를 뛰었다. 전통적 사회주의가 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을 중시하는 반면 이들은 기성 노동조합에 포함되지 않는 기간제, 알바 등 불안정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프레카리아트)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 운동 등으로 확장세를 보이는 조직이었지만 알바노조 비선 폭로사건 이후 많은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엔 기본소득과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 알바노동자 계급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퀴어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세력 중 하나다.[6]

7. 환경운동

90년대 이후 운동권의 분화로, 기존 운동권에서 다른 노선을 모색하던 부류나 운동권과 거리가 있던 단체들이 결집한 케이스. 일일이 열거하기는 힘들지만 상기한 두 계열과는 확연히 다른 편인데 주로 CDR의 그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때에 따라서 PD랑 연합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NLPDR농활에 맞서 PD 진영에서 환활을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8. 아나키즘

운동권의 일부에 속해 있던 아나키스트들이 만든 단체들이 하술되어 있다. 현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대체로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당, 노동당 등의 진보정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된 사회단체다. 1945년 해방 이후 서울에 모인 아나키스트들이 모여서 "자유사회 건설자 연맹"을 조직하였고, 여기서 분화되어 1947년 국민문화 연구소가 조직되었다. 혁명이나 급격한 변혁노선보다는 생활 개선, 지역 자치를 통한 자유사회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군사정권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존속되고 있다.[7]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나키즘 서적 출판 및 아나키즘 계열 독립운동가 기념사업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결집된 조직. 조약골이란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현재는 거의 활동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8]
스스로 근원을 해방 이후 아나키즘/조합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조직한 독립노동당에 두고 있지만, 정작 둘간의 연속성이 불분명하다(...). 일단은 독립노농당 해산 후 결집한 아나키스트들의 모임인 '조선무정부주의 운동사 편찬위원회'가 발전한 것은 맞는데, 그 사이에 이합집산이 워낙 많았고, 단체로서 활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계승한다고 보기는 좀 뭣하다. 일단 해방 후 가장 활발히 활동한 아나키스트 하기락[9] 선생이 관여하긴 했으나, 사회운동 단체라기보다는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의 성격이 강했고, 현재는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심지어 명색이 아나키즘인데 의장이라는 사람이 수꼴스러운 글을 게시판에 자주 올리곤 한다(...).
줄여서 말랑키즘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의 투쟁을 중요시하는 곳이며 특히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아나키즘 내 여러 분파가 지닌 다양한 장점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한국 내 아나키즘 단체이다. 2022년 대한민국 제20대 대선 거부 캠페인, 2024년 제 22대 총선 거부 캠페인, 아나키즘 서적 출판 활동, 노동조합 투쟁 연대활동 등 현실에서 다양한 아나키즘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산하 조직으로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 서강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알바트로스'를 두고 있다.


[1] 6.15 남북공동선언[2]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한총련 내 강경파.[3]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맨 마지막 리플에 당시 사건 관련자가 달아놓은 리플이 있다.[4] 연세대학교 제47대 총학생회(이 계파를 전면에 내세우며 수권한 총학생회로는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내 TFT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5] 2004년 공식적으로 해소하여 지금은 없어진 정파. NL은 주체사상 노선을 버리고, PD는 혁명노선을 버리고 합리적인 운동권 세력과 손잡아 대중진보정당을 건설하려는 운동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 함께한 것이 PD계열 노동운동 최대정파였던 인민노련을 계승한 노회찬의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이다. 학생회 수권을 버리고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에 집중하고자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조직 약화의 결과로 귀결되었다, 그래도 비주사NL과 개량 PD세력의 합작의 결과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지만, 이후 합리적인 줄 알았던 파트너가 사실은 별로 합리적이지 않았는지 민주노동당의 분당, 통합진보당의 난리 등을 거쳐 현재는 정의당에 일부 남아 있으며 일부는 박주민, 강병원 의원들같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현역 당시에도 서울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90년대에 격년에 한번 총학생회를 수권하였으나 전국 캠퍼스에는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6] 하지만 알바노조 비선폭로 사건 당시 언더조직의 강령에는 反페미니즘적인 내용이 많아 논란이 되곤 한다.[7] 사실상 해방 후 친정부 노선을 견지했고, 창립자인 우관 이정규의 형 이을규(역시 아나키스트)는 이승만 노선에 합류하여 독립촉성 국민회 중앙위원, 이승만 정권 하의 감찰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사실 여기서부터 아나키즘을 버리고 한국의 내셔널리즘에 동화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이을규는 감찰위원 퇴직 후 1956년 진보당 등 야당연합에 참여했고 1960년 민주사회당 대표를 지내는 등 혁신계 운동에 참여했으며 말년엔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사상에 관한 논문을 집필하였다. 4.19 혁명 이후 혁신동지 총연맹에 참여한 아나키스트들도 더러 있었으나 이들은 사실상 5,60년대에 전향한다.[8] 이쪽 계열 출신 사람들은 조직을 처음 만든 지 20년 이상 지난 것(2020년대 기준)으로 추정되는데 피터팬 증후군이 있는지 아직도 90년대에 진보적인 것이 여전히 진보라 착각(이 사람들이 2000년 전후에 자신의 블로그 등에서 주장한 가치관을 그게 낡은 것인지도 모른 채 여전히 주장한다는 것)하며 역시나 변화를 못 따라가서 틀딱화 수구화 됐다. 참고로 90년대는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 되기도 전이고, 당연히 구글링도 없었고 한국인의 평균적인 외국어 실력도 지금보다 부족했기 때문에 정치적 식견을 넓히기가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인터넷 대중화는 IMF 사태 이후 IT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국민정부에서 대대적으로 가정용 컴퓨터를 보급하는 사업을 하면서부터다. 어려서 부터 인터넷을 접하며 가치관을 정립한 90대 이후 출생자와 머리가 굳은 후에 인터넷을 접한 세대 사이에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9] 해방 후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저작을 번역했으며, 이을규가 집필한 크로포트킨 관련 논문을 사후 출판하였다. 칸트 철학에 관한 권위자 중 한 명이었다. 단주 유림의 측근이었고 아나키즘 운동을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작고할 당시까지 고군분투 했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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