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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바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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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교황 문장.svg 가톨릭 교회의 교황
파일:159_b_urbano_II.png
제158대 복자 빅토르 3세 제159대 복자 우르바노 2세 제160대 파스칼 2세

<colbgcolor=#ffe100><colcolor=#670000>
제159대 교황
우르바노 2세
Urbanus II
파일:external/0479041abc49bb8e5bc8927062261bb13c0f6ca13896f53f7c9dce4566fe169c.jpg
교황명 <colbgcolor=#FFFFFF,#1F2023>우르바노 2세 (Urbanus II)
본명 오도 드라주리(Odo de Lagery)
외드 드샤티용(Eudes de Châtillon)
출생 1035년
프랑스 왕국 샹파뉴 라주리
사망 1099년 7월 29일 (향년 63~64세)
교황령 로마
재위 제159대 교황
1088년 3월 12일 ~ 1099년 7월 29일
시복 1881년 7월 14일, 레오 13세
축일 7월 29일
언어별
명칭
라틴어: Beatus Urbanus II
이탈리아어: Beato Papa Urbano II
영어: Blessed Pope Urban II
프랑스어: Pape Urbain II

1. 개요2. 교황이 되기까지3. 개혁을 지속하다4. 클레르몽 공의회와 그 이후

[clearfix]

1. 개요

Deus Vult!
하느님께서 (성전을) 원하신다!
가톨릭의 제159대 교황.

중세사에 큰 획을 그은 교황이자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프랑스인으로는 2번째 교황이다.

국내 세계사 교육 과정에는 라틴어 발음대로 우르바누스 2세로 표기된다.

2. 교황이 되기까지

라주리의 오도[1]는 1035년 프랑스 상파뉴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랭스에서 성 브루노의 제자로서 1064년 수도자가 되어 클뤼니 대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로마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교회 개혁을 도왔고, 1078년에는 오스티아주교가 되었다. 1084년 신성 로마 제국교황청 사절로 파견되어 퀘들린부르크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대립교황과 추종자들을 단죄하였고, 1088년 3월 12일 교황 빅토르 3세를 계승하였다.

3. 개혁을 지속하다

교황의 자리에 오른 후, 우르바노 2세는 그레고리오 7세빅토르 3세 시대를 거치는 동안 쌓인 문제들을 떠안아야 했다. 그는 그레고리오 7세가 밀어붙인 개혁의 원칙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전임 교황들의 문제 때문에 일단은 신중한 타협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교황권이 확고해지자 그는 강경책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의 영토를 재정복하여 아라곤카탈루냐 등을 교황령에 귀속시키려 하였다. 또한 교황령신성 로마 제국과 맞서기 위해서는 시칠리아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1098년 7월 5일에는 시칠리아 영토를 교황에게 헌납한 대공 로제리오 1세에게 준교황 사절의 권한을 부여하고 칙서로써 이를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서로 동맹을 맺어 교황을 압박하는 것을 염려하여, 동로마 제국과도 협상을 시도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4. 클레르몽 공의회와 그 이후

교황은 1089년 멜피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는 평신도에 대한 성직 수여,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혼인을 금지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또한 1095년 프랑스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다시 소집하여 이전의 칙서를 더 강화하는 한편, 기존 교황청의 입장을 지속하여 앞으로 그리스도인끼리 서로 싸우지 않을 것[2]을 교회법으로 선포하였다. 또한 본처를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프랑스 왕 필리프 1세를 크게 꾸짖었다.

무엇보다도 이 클레르몽 공의회에서는 성지 탈환과 분열된 동방정교회와의 재일치를 주장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다는 말과 함께 십자군 운동을 일으켰다. 우르바노 2세는 자신의 대리자로서 아데마르 주교십자군총사령관[3]으로 임명하였으나,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2주일 전에 사망하였고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매장되었다.

그의 시복식은 사후 800년이 지난 1881년 7월 14일,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거행되었다.

[1] 교황이 되기 이전의 세속명.[2] Pax Dei, 즉 하느님의 평화라고 부른다. 13세기까지 지속된 기독교 교계의 이념이었다.[3] 사실 1차 십자군의 총사령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제후들이 단합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도 총사령관이 없어 지휘계통의 통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데마르 주교가 1차 십자군의 구심점이 된 것은 맞다. 그는 전투적인 능력도 출중했고, 고드프루아와 보에몽, 레몽 사이의 다툼을 잘 중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티오키아 공방전 때 역병으로 사망한 후 제후들 사이는 벌어진다.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이에 대한 의지가 없었으면 1차 십자군은 실패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