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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1:23:29

에네코 아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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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에네코 아리차.jpg
Eneko Aritza
가문 에네코 왕조
출생 770년
프랑크 왕국 비고르
사망 852년경 (향년 82세)
팜플로나 왕국 팜플로나
재위
기간
팜플로나 왕국 국왕
824년? ~ 852년
아버지 에네코 세메노이츠
어머니 오네카
형제 오르티 에네코이츠
배우자 오네카(또는 토타) 베라스코이츠
자녀 아소나 에네코이츠, 가르치아 1세 에네코이츠, 가린도 에네코이츠, 누닐라 에네코이츠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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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팜플로나 왕국 초대 국왕.

2. 생애

770년경 프랑크 왕국의 이베리아 영토에 속한 비고르 지역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에네코 세메노이츠는 비고르 백작으로 전해지나 에네코가 어린 나이일 때 사망했다는 것 외에 별다른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 오네카는 남편이 사망한 뒤 물라 족장 무사 이븐 푸르툰(موسى بن فرتون‎)과 결혼해 무사 이븐 무사 알 카사위(موسى بن موسى القسوي)를 낳았다. 알 카사위는 훗날 에브로 계곡 상류에 정착한 아랍 가문인 무왈리드 바누 카시 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형제로 포르툰 에네코이츠가 있었다.

당시 피레네 산맥에 거주하는 바스크인들은 프랑크 왕국후우마이야 왕조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 서로 다른 주군을 섬겼다. 많은 바스크인들은 카롤루스 대제가 이베리아 반도에 쳐들어왔을 때 아랍 토후국의 편에 서서 피레네 산맥을 통과하던 프랑크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등 친 아랍 성향을 보였다. 반면 일부 바스크인들은 프랑크 왕국을 지지했는데, 벨라스코 가문이 이들의 지도자를 자처했다. 이들은 피레네 산맥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였다.

799년, 프랑크 왕국 지지자들이 에네코의 친척인 무타리프 이븐 무사를 암살했다. 이후 프랑크 지지자들이 피레네 산맥의 패권을 장악했고, 그들의 지도자인 가스콘 벨라스코는 806년경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피레네 총독'으로 지명되었다. 812년, 루도비쿠스 1세가 파견한 프랑크군이 팜플로나로 진군했다. 그러나 아랍 부족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본국으로 귀환했는데, 그 과정에서 퇴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바스크 여자와 아이들을 인질로 잡아갔다. 이로 인해 바스크인들 사이에서 프랑크 왕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11세기 코르도바의 아랍 역사가 이븐 하이얀(Ibn Hayyan)에 따르면, 816년 아브드 알 카림 이븐 아브드 알 와히드 이븐 무깃(Abd al-Karim ibn Abd al-Wahid ibn Mugit)이 팜플로나의 사히브이자 '신의 적' 가스콘 벨라스코를 상대로 전쟁을 감행해 사흘 만에 벨라스코를 잡아 죽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벨라스코 가문은 몰락했고, 반 프랑크 입장을 표명한 에네코는 이 일을 계기로 바스크인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820년, 에네코는 아라곤 백국의 분쟁에 개입해 프랑크 가신을 자처한 아스나르 1세 갈린데즈를 몰아내고 가르시아 갈린데즈가 백작에 선임되게 해줬다. 이후 가르시아 갈린데즈는 에네코의 사위가 되었다. 824년 아에블루스 백작과 아즈나르 산체스가 이끄는 프랑크군이 팜플로나로 쳐들어왔지만, 론첸스발레스 전투에서 에네코가 이끄는 바스크군에게 패배했다. 10세기에 기술된 나바라 왕국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이때부터 팜플로나의 국왕을 칭했다고 한다. 반면 9세기 아랍 연대기에서는 그를 "팜플로나의 사히브"라고 칭할 뿐 왕으로 지칭하지 않았다.

840년 이복형제인 무사 이븐 무사 알 카사위가 후우마이야 왕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 에네코는 즉시 알 카사위와 합세했다. 후우마이야 왕조의 아미르 아브드 알 라흐만 2세는 토벌군을 파견했으나 격퇴되었다. 843년 알 하리트가 이끄는 토벌대 역시 알 카사위와 에네코에 의해 격파되었고 알 하리트는 체포되었다. 이에 진노한 아브드 알 라흐만 2세가 친정에 나섰고, 이번에는 반란군이 크게 패했다. 포르툰 에네코이츠는 전사했고, 알 카사위는 말을 잃고 도보로 탈출해야 했으며, 에네코와 아들 가르치아는 부상을 입은 채 도주했다. 844년 에네코와 알 카사위는 후우마이야 왕조에 귀순했고, 에네코의 아들 가르치아와 알 카사위의 아들 루브 이븐 무사는 코르도바에 인질로 보내졌다.

이후 후우마이야 왕조가 바이킹의 침략으로 세비야가 초토화되는 등 혼란에 휩싸이자, 알 카사위는 이 때를 틈타 반기를 들었다가 846년 아브드 알 라흐만 2세의 왕자 히샴에게 패배하고 귀순했다. 847년, 알 카사위는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군이 당도하자 또다시 항복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850년 에네코 아리차와 함께 또다시 봉기했다. 이번에는 후우마이야 왕조군이 쉽사리 진압하지 못하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결국 852년 9월 아브드 알 라흐만 2세는 알 카사위와 팜플로나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채 사망했고, 뒤를 이어 아미르에 오른 무함마드 1세는 팜플로나 왕국과 알 카사위로부터 명목상의 충성을 받아내는 대가로 그들이 자기네 영토를 알아서 통치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때 팜플로나 왕국의 군주로 에네코가 아니라 아들 가르치아 에네코이츠가 언급되는 것을 볼 때, 에네코는 852년경에 이미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에네코는 오네카(또는 토타) 베라스코이츠라는 바스크인 여성과 결혼했다. 대다수 역사가들은 그녀의 아버지는 816년에 사망한 팜플로나 영주 베라스코라고 추정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아라곤 백작 아즈나르 1세 가린도이츠의 친척이었다고 추정한다. 두 사람은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 가르치아 1세 에네코이츠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팜플로나의 국왕이 되었고, 차남 가린도 에네코이츠는 860년 우에스카 왈리아를 역임한 무사 이븐 갈린드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장녀 아소나 에네코이츠는 무사 이븐 무사 알 카사위와 결혼했으며, 차녀 누닐라 에네코이츠는 아라곤 백작 가르시아 갈린데즈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