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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23:46:21

호아네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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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es III.a Nafarroakoa
가문 알브레(알브레트) 왕조
생몰년도 1469년 ~ 1516년 6월 17일
출생지 푸아 백국 베른
사망지 나바라 왕국 모냉
재위
기간
나바라 왕국 국왕 1484년 - 1516년
아버지 알브레 영주 알랭 1세
어머니 프랑수아즈 드 샤티용
형제 가브리엘, 샤를로테[1], 아마네유, 피에르, 루이즈, 이자벨
배우자 카탈리나 1세
자녀 아나, 마걀렌, 카탈리나, 호아나, 키테리, 안데르 페부스, 헨리케 2세, 부에나벤투라, 마르틴, 프란치스코, 카를로스, 이사벨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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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라 왕국 33대 국왕.

2. 생애

1469년경 알브레 영주 알랭 1세와 리모주 자작 기욤의 딸 프랑수아즈 드 샤티용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가브리엘[2], 샤를로테[3], 아마네유[4], 피에르[5], 루이즈[6], 이자벨[7]이 있었다.

1484년 15살의 나이에 나바라 왕국의 여왕 카탈리나 1세와 결혼해 나바라 공동 왕이 되었다. 결혼식은 1484년 6월 오르테즈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당시 나바라 왕국은 아라곤 왕국을 등에 업은 보몽 가문과 반 아라곤 성향을 띄던 아그라몽 가문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바라 국왕 대관식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또한 카탈리나 1세의 모후이자 프랑스 왕족인 발루아 가문의 일원인 마들렌이 섭정했기에, 그는 별다른 실권을 누리지 못했다.

1494년 아그라몽 가문과 보몽 가문이 평화 협약을 맺고 페란도 2세가 조인한 후에야 아내와 함께 나바라 공동 왕 대관식을 겨우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라곤 국왕 페란도 2세와 카스티야 여왕이자 페란도 2세의 아내인 이사벨 1세는 호아네스 3세를 몰아내고 그들의 아들인 아스투리아스 공 후안과 카탈리나 1세를 결혼시키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1495년 마들렌이 사망했고, 호아네스 3세는 카탈리나 1세와 함께 나라를 공동으로 통치했다. 1512년 아들 헨리케 2세와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의 딸간의 혼약을 논의해, 장차 있을 지도 모를 아라곤-카스티야 왕국의 침략에 대비해 프랑스 왕국의 보호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아라곤 국왕이자 이사벨 1세 사후(1504년) 카스티야 왕국의 섭정을 맡던 페란도 2세는 나바라 왕국이 프랑스 왕국과 결혼 동맹을 맺는 것을 좌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1512년 7월 25일, 페란도는 알바 공 파드리케 알바레스 데 톨레도에게 군대를 맡겨 나바라 왕국을 침공하게 했다. 아라곤군은 순식간에 나바라 왕국의 수도 팜플로나를 함락하고 피레네 산맥 이남의 상(上) 나바라를 휩쓸고 아라곤 왕국의 영토로 삼았다. 이탈리아에서 쫒겨나 처가인 나바라에 망명해 있던 매제 체사레 보르자가 맞서 싸웠지만 패배하여 체사레는 전사했고, 카탈리나 1세와 호아네스 3세는 적의 공세에 압도되어 피레네 산맥 너머로 도주한 뒤 파우, 오르테즈, 타르베 등 피레네 산맥 이북의 하(下) 나바라만 겨우 건졌다. 페란도 2세는 한동안 나바라 왕을 자칭하다가 1513년 3월 23일 팜플로나에서 회의를 소집해 모든 귀족들에게 충성 서약을 받아낸 후 1515년 나바라 왕국 자체를 없애고 아라곤 왕국의 직할지로 삼았다.

1516년 1월 23일 페란도 2세가 사망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정세가 어수선해지자, 호아네스 3세는 이 기회를 틈타 나바라 출신의 페드로 장군과 함께 피레네 산맥을 넘어 빼앗겼던 영토를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현지에 주둔한 적군에게 격퇴된 뒤 모냉(Monein)에 있는 에스구아라바케 성으로 후퇴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 후 카탈리나 1세는 1517년 2월 12일 몽드마르상에서 사망했고, 아들 헨리케 2세가 나바라 왕위를 물려받았다.

3. 가족 관계



[1] 체사레 보르자의 부인.[2] 아베네스 쉬르헬프 영주[3] 체사레 보르자의 아내[4] 파미에, 코민게, 레스카르의 주교이자 추기경[5] 페리고르 백작[6] 시메이 공 샤를 1세의 부인[7] 푸아 가문의 일원이자 베나지 백작 가스통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