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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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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가 있는 아르메니아인 디아스포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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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 행진에 나선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
영어 Armenian Americans
아르메니아어 ամերիկահայեր, (amerikahayer)
인구 485,970명(2017년 자가응답 통계 기준)

1. 개요2. 이민사3. 현황4. 인물5. 여담6. 관련 문서7.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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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은 아르메니아계 혈통을 지닌 미국인들을 지칭한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해외 거주 아르메니아계 중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수를 자랑한다. 2017년 미국 통계 조사에 의하면 485,970여 명의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 있다고 하며, 이 가운데에는 킴 카다시안의 경우처럼 조상 중에 아르메니아인이 있다고 아는 정도이지 실제 아르메니아인 민족 정체성 자체는 희박한 사람들이 많다고도 한다. 비공식적으로는 훨씬 많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 있을거라 추측되지만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아르메니아인 정체성이 비교적 희박하다는 정도이고, 실제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은 미국인 집단 중에서 모국 관련한 정체성이 가장 강한 집단 중 하나이다.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 중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도 비율은 오늘날에도 무려 80%에 달하며, 소수종파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 신도 비율도 3%에 달한다. 또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중 53%가 아르메니아어 구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목록에도 나와있지만 유독 ian으로 끝나는 성씨가 많은데, 아르메니아어로 -yan, 영어로 번역된 -ian은 후손,가족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son, 켈트어의 mac-, O'-와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2. 이민사

이미 1618년 사파비 제국 출신 아르메니아인 상인이 버지니아에 정착하여 담배 농장을 운영했다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아르메니아인들의 미국 정착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서구 기독교 국가들과 무역을 할 때 무슬림들이 서구인 무역상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을 금지하고 대신 자국 내 그리스인이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들과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근세 시절부터 프랑스 및 미국 등 서구 국가들과 교류가 활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미국으로 이민, 정착하였다.

대규모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미국으로 이민하게 된 계기는 바로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제노사이드가 벌어지는 동안 아나톨리아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 상당수가 오스만 제국보다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하던 시리아레바논 지역 혹은 러시아 제국 방향으로 피난하였다. 당시 주로 레반트 지역으로 피난하였던 아르메니아인 난민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다시 프랑스 해운 회사들의 도움으로 프랑스나 미국 등으로 이주하는데 이들이 오늘날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의 직계 기원이 된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이전 미국에 체류 및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의 수는 4천여 명 정도의 규모였으나, 1895년에는 여기에 3배에 달하는 12,000여 명의 아르메니아인 난민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당시 아르메니아인 이민자 중 76%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는데 이는 같은 시기 입국한 동유럽 유대인의 문해율 74%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은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다소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중동 이민자나 히스패닉 등으로 오인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차별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연유로 아르메니아인들은 초창기 배를 타고 도착했던 미국 북동부 해안 지방 대신에 당시 이미 히스패닉 인구가 적지 않았던 캘리포니아 일대로 재이주하였다.[1]

미국 이민국 통계에 따르면 1899년에서 1917년 사이에 54,057명의 아르메니아인이 미국에 입국하였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오스만 제국(46,474명) 출신이었고, 러시아 제국 출신(3,034명), 캐나다(1,577명), 영국(914명), 이집트(894명)가 뒤를 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 혁명 전후하여 프랑스나 독일, 중국 등을 거쳐서 미국으로 망명한 경우도 많았다.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내에서 부유한 상인으로 출세한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들 상당수는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러시아 밖으로 망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아시아인으로 분류하여 이들의 이민을 쿼터제로 제한하였고, 러시아인들과 혼혈된 경우 혹은 부유층이 아닌 이상 미국으로의 망명은 쉽지 않았다.

1970년대 소련에서는 유대인들의 미국 혹은 이스라엘 이민을 허가하는데, 같은 시기 같은 이유로 소련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아르메니아인 인구가 적지 않았다. 약 9만여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소련 여권을 들고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중동 아랍권 각지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스라엘의 아르메니아인 박해나 레바논 내전으로 인한 레바논 경제 악화, 이란 혁명 등을 이유로 미국으로 망명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유대인들과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아랍인들보다도 더 극심하게 박해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아르메니아인 쿼터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 인구가 대부분 빠져나갔다. 1970년대 초반까지 중동의 파리로 불리며 번영하던 레바논은 레바논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경제가 황폐화되었고 이에 많은 레바논 아르메니아인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 혁명 과정에서 일부 아르메니아계 이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던 바 있다.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과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는 약 70만여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혹은 미국이나 프랑스 등으로 이민하였다. 물론 소련 해체 이후 모스크바 등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중 미국으로 이민한 경우도 적지는 않다.

3. 현황

오늘날 미국에서 아르메니아계 인구가 가장 밀집해 거주하는 지역은 캘리포니아 LA 일대라고 한다. 미국 내 다른 유럽계 이민자들이 주로 처음에 입항할 때 발을 디뎠던 뉴욕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던 것과 다르게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은 주로 LA에서 사업을 확장하며 기반을 다져나갔다. 특히 글렌데일[2]에 아르메니아계들이 많다고 한다.[3]

유대계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미국 정계에 로비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유대계의 압도적인 로비력에 비하면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이 비교적 부유한 민족집단이기는 해도 유대계 미국인에게 인구수와 경제력에서 밀린다. 실제로 로비를 벌여 1993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때는 미국이 아르메니아를 지지하여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지원받도록 만들었지만, 2020년 벌어진 2차 전쟁 때는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의 강력한 우방[4]이 되자 미국내 유대인들과 아제르바이잔의 엄청난 로비에 크게 밀려 아르메니아는 미국에게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이렇게되자 더더욱 아르메니아와 이스라엘 사이는 나빠졌다.

4.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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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국내에서 제작 방영된 아르메니아 관련 다큐멘터리에는 휴가, 명절 때 아르메니아에 있는 본가로 이란,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친척들이 비행기를 타고 모여서 안부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6. 관련 문서

7. 외부 링크



[1] 또한 미국 북동부 지역은 아르메니아인들과 사이가 나쁜 유대인들이 특히 많이 살던 지역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미국 북동부 지역에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2] 현지 백인 인구의 다수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다. 아르메니아인들중에서 디즈니랜드나 그랜드캐니언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글렌데일이 정확히 어디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3] 글렌데일에 위안부 평화비가 생길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기억하는 현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도 공감하는 여론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아제르바이잔이 산유국으로 이스라엘에 엄청난 석유를 수출하는 터라 강력한 우방국이 되었다. 이슬람이 대다수인 아제르바이잔에 이스라엘군이 가서 합동훈련을 할 정도이다.[5]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짐 엘리엇[6] 첫 발견된 이후 수백년간 외부인이란 외부인은 모두 죽여댔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 이는 선교가 성공하는 발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