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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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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수안보면
水安堡面 | Suanbo-myeon
<colbgcolor=#1d2088><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충청북도
기초자치단체 충주시
행정표준코드 4390121
관할 법정리 8리
하위 행정구역 24행정리 72반
면적 73.37㎢
인구 2,826명[1]
인구밀도 38.5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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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의원 | 제1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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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의원 | 나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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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원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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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관동길 9-9 (온천리 100)
수안보면 행정복지센터
1. 개요2. 역사3. 주요 시설4. 언어5. 교통6. 도로
6.1. 중산리6.2. 수회리6.3. 온천리
6.3.1. 중부6.3.2. 북부
6.4. 안보리6.5. 사문리6.6. 미륵리6.7. 화천리6.8. 고운리
7. 출신 인물
[clearfix]

1. 개요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면. 충주시 최남단이자 최동단이며, 역사 깊은 명천(名泉)인 수안보온천(水安堡溫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 역사


충주시 최남부로 괴산군과 인접한 위치에 걸맞게 괴산과 충주 사이를 오간 역사를 지니고 있다.[7][8] 이웃 괴산군 장연면/연풍면과 함께 연풍군이라는 별개의 군현이었던 적도 있다.

2005년까지 쓰던 '상모'라는 명칭은 무려 고구려 시대부터 쓰던 유구한 지명이다. 역사적으로 거쳐왔던 지명인 '장연', '연풍'은 괴산군 장연면, 연풍면[9]으로 이어졌다. 1914년에 각기 별개의 면으로서 괴산군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수안보면 일대만이 충주에 편입되어 갈라졌다.
湖西之延豐縣水安保地有溫水。品佳。病者坌集。【此水亦有冷熱二源云】
충청도 연풍현 수안보 땅에 따뜻한 물이 나온다. 품질이 좋다. 아픈 이들이 모여든다. 【이 물은 또한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의 두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천지 편 - 지리 류 - 온정(溫井) #
'수안보'(水安堡)는 '보(洑) 안쪽의 물탕'을 한역한 명칭이다. 온천리 서쪽의 안보리(安堡里) 역시 유래는 동일하다. 이 지명이 제일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문헌인 오주연문장전산고로 추정된다고 한다. 상모면이던 시절에도 온천은 '수안보 온천'이라고 불려왔다가 2005년에 아예 면 이름까지도 수안보면으로 개칭하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수안보면

3. 주요 시설

수안보온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용출온천이다. 태조 이성계가 피부병을 치료하고 숙종이 휴양을 위해 찾았다고해서 "왕의 온천"이라 불린다. 수안보온천수는 맑고 깨끗하며, 받아서 한 달 이상 두어도 썩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피부가 탱탱해지고 윤기가 흐른다.
충주시청 공식 소개 문구

단연 온천이 유명하다. 이 일대의 온천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해서 고려사에도 실려있을 정도이다.# 현대적인 시설을 설치한 것은 1800년대 말이라고 한다.

수안보 온천의 특징은 단연 뜨거운 온도. 자체적으로 수온 53℃를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로도 용출수의 온도가 대략 50℃를 웃돌며 겨울철에도 40℃를 넘는다. 특히 시에서 운영하는 족욕탕조차 온도 조절을 크게 하지 않아서 뜨거운걸 잘 못참는 사람은 발조차 못담굴만큼 뜨겁다. 또한 중앙 집중관리 방식이라 수안보 내 어느 숙박시설을 가도 완전히 똑같은 온천물이 나온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도 보듯 수안보 온천은 과거 관광 명소로 무척 유명했으나 오늘날에는 쇠퇴하여 관광객 수가 많이 줄었다. 다만 2024년 11월에 중부내륙선 수안보온천역이 개통하면 판교역에서 KTX-이음 열차를 이용하여 1시간 20분만에 접근이 가능해져 관광 수요가 다시 증가할 전망이다. #

주요 호텔로는 수안보상록호텔(3성), 수안보파크호텔, 라마다 바이 윈덤 수안보(구 THE 조선호텔 수안보) (2성) 이 존재한다. 한화리조트도 있었으나 1993년 개업하여 2021년 8월 폐업했다.#[10] 2024년엔 료칸식 호텔인 유원재호텔이 개업하였다.

온천리 서쪽 괴산으로 넘어가는 쪽에는 스키를 탈 수 있는 충청북도 유일의 스키장인 사조 리조트가 있었지만 자금난으로 운영을 중지했다. 남동쪽 사문리/미륵리는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다. 특히 제천시와의 경계인 미륵리에는 만수 계곡이 있다. 수회리에는 중앙경찰학교가 소재해있다.

2017년을 즈음해서는 국토종주 자전거 라이더들이 하룻밤 묵고가는 코스가 됐다. 이화령을 저녁에 넘기엔 위험하기에 보통 탄금대 근처 충주역이나 충주터미널, 수안보에서 묵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안보 주변에 자전거 여행객을 환영하는 숙소가 생겼다.[11]

주요 특산물로 이 유명해서 꿩요릿집이 상당히 많다. 다만 맛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가격대도 적지 않은 편이다. 충청북도답게 다슬기도 많이 먹는 편이라 올갱이국 하는 집을 찾기 어렵지 않다. 또한 동네 규모에 비해 카페와 치킨집이 많은데 카페는 프랜차이즈는 없고 대다수가 개인 운영 카페들이다. 치킨집도 많은데 프랜차이즈 치킨집도 BBQ, BHC, 네네치킨 등 꽤 있는 편이다.

2021년에는 복합 병원인 위담통합병원이 들어섰다.

4. 언어

이 지역의 언어권은 충주 방언권에 속한다. 인접한 괴산군[12]과 동일한 언어권이다. 경기 방언과도 95% 이상 동일하다.[13] 소조령 너머의 연풍면도 동일하다.

5. 교통

외지인이 수안보로 오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IC가 가장 가깝기는 한데, 바로 연결되는 508번 지방도가 굴곡이 상당한 왕복 2차로 고갯길이라 충주IC에서 3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는 게 좀 더 편할 수 있다. 또한 남쪽에서 오는 경우라면 연풍IC에서 3번 국도를 타면 훨씬 빠르게 올 수 있다.

충주터미널 일대에서 수안보까지 자가용으로 약 25~30분, 대중교통으로는 40~50분 가량 걸린다.

면 내의 리는 중앙의 도로를 따라 거의 일렬로 배치돼있다. 북쪽부터 남동쪽으로 ㄴ자 모양으로 중산리-수회리-온천리-안보리-사문리-미륵리 순이다. 화천리, 고운리는 이 축에서 벗어나있다. 화천리는 안보리 남쪽에, 고운리는 중산리 남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깊은 산골이다. 고운리는 2010년대에 남쪽 안보리와 통하는 길이 새로 공사중이다.

충주시의 다른 면과는 북부의 살미면 외에는 접하지 않는다. 1989년 이전까지는 북부 2개리를 통해 대소원면과도 접했었다.

508번 지방도 주정산로를 통해 서쪽 괴산군 장연면으로 통한다. 508번 지방도는 이후 동쪽으로는 미륵송계로로 이어져서 제천시 한수면과 통한다. 한수면과는 꽤 길쭉한 경계를 접하고 있지만 산지로 되어있어 동남쪽 미륵리를 통해 한수면 남쪽으로 이르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14]

3번 국도 중원대로가 수안보면 온천리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충주 시내로부터 괴산군 연풍면으로 지나간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는 접해있으나 차도는 없고, 등산로만 있다. 다만, 미륵리에서 동쪽으로 뻗는 고갯길은 오늘날에 추풍령으로 유명한 고갯길이 열리기 전 삼국시대까지 자주 이용되었었다고 한다. '하늘재'라고 불렸으며 월악산, 미륵송계로에 관련 내용이 있다.

시외버스 관련으로는 수안보시외버스정류장을 참고. 정류장 전용 건물은 따로 없고 수안보공판장에서 표를 판매하고 있다. 승/하차장도 당연히 없고 그냥 길변에 세워준다.[15]

철도는 아직 없으나 2024년 12월에 중부내륙선 수안보온천역 개통이 예정되어 있다. 수회리나 중산리 일대는 더 가까운 살미역을 이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6. 도로

6.1. 중산리

6.2. 수회리

6.3. 온천리

6.3.1. 중부

아래 물탕길/장터길은 각각 동서/남북축 도로를 담당하고 있다.
* 물탕1길
* 물탕2길
수안보 온천리 동서축 핵심 도로. 수안보교 동쪽부터는 주정산로로 처리된다.
* 장터1길
* 장터2길
* 장터3길

6.3.2. 북부

6.4. 안보리

6.5. 사문리

6.6. 미륵리

6.7. 화천리

6.8. 고운리

7. 출신 인물


[1] 2024년 6월 주민등록인구[2] '잉근내'(仍斤內)는 아래 '괴양'(槐壤)이라는 표기를 쓰기 전에 쓰던 지명이다. '잉걸불'할 때의 '잉걸'이 [덩어리\]라는 의미로서 '塊'(덩어리 괴)로 한역되었다가 이후 '槐'(홰나무 괴)로 바뀌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괴양군(槐壤郡)·잉근내군(仍斤內郡)·괴주(槐州)에 대하여(기관 로그인 필요)[3] 고려시대에 '괴주'(槐州)를 거쳐 현재 괴산군이 되었다. 1413년 '-주'(州) 지명들을 일괄적으로 '-산'(山), '-천'(川)으로 바꾼 것의 일환이다. 인근 제천도 그렇게 이름이 바뀐 것이다.[4] 고사리면+수회리면[5] 면의면+장풍면[6] 현내면. 단, 북부 일부는 고사리면 신혜원이었다. 원풍리 북쪽에 '고사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7] 제천과도 가깝기는 하나 이 일대에서 가까운 제천시 영역인 한수면은 조선 시대에는 청풍현이라는 별개의 고을이었기에 제천시와는 역사적으로 무관하다. 오히려 한수면 남부의 송계리와 그 동쪽 덕산면 일대는 충주에 속했다.[8] 북쪽 살미면은 적어도 조선 후기부터는 계속 충주 일대에 속해왔다.[9] 해체된 연풍군을 계승한 명칭이다. 부군면 통폐합으로 많은 군이 사라졌을 때, 산하 면 중 일부가 본래 군의 이름을 계승하여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인근 제천시 청풍면 역시 사라진 청풍군을 계승한 명칭이다.[10] 경비 등 최소한의 인원만 배치한 채 방치하다시피 해놓은 와이키키 관광호텔과 달리 이쪽은 연수원 등의 목적으로 쓰이고 있어 최소한 폐건물 신세는 면한 상태다.[11] 다만 자전거 정비, 수리를 할만한 곳이 전혀 없기에 충주 시내에서 수리를 하거나 아예 자가정비를 해야한다. 그나마 자가정비용 공구를 조금 비치해놓은 숙소가 몇 있으며 자전거 용품을 파는 카페가 하나 있긴 하다.[12] 증평군 일대는 청주 방언권이다.[13] 실제로 지역 말을 들어보면 사투리라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충주문화원에서도 이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다만, 충북 중동부 지방인 충주, 괴산(증평 제외) '밥 먹은 거니?'를 '밥 먹은 거?'라 하거나(수원, 용인, 이천, 여주 일대도 완전히 같다), , 무수/무우라고는 한다. 이는 그나마 경기 방언권과 어느 정도 다른 거라 보면 되겠다.[14] 충주시에서 한수면으로 진입하는 또 다른 길인 36번 국도 월악로는 한수면 서쪽으로 통하는데, 이 길은 수안보면 북쪽의 살미면을 지난다.[15] 2007년까지는 북쪽 스키장 삼거리 근처의 건물 1층에서 표를 팔고 2층부터는 숙박업소로 운영했으나 폐업했다(폐건물/과거 목록/충청북도). 2020년도 경에는 건물을 철거했고 앞서 언급한 유원재호텔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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