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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쇼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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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 제7대 국방장관
<colbgcolor=#2861aa><colcolor=#fbdc68> 러시아 연방 제14대 국가안보회의 서기
세르게이 쇼이구
Серге́й Шойгу́ | Sergei Shoigu
파일:세르게이 쇼이구.jpg
본명 세르게이 쿠주게토비치 쇼이구[1]
Серге́й Кужуге́тович Шойгу́ [2]
Sergei Kuzhugetovich Shoigu
출생 1955년 5월 21일 ([age(1955-05-21)]세)
소련 러시아 SFSR 투바 자치주 차단
(現 러시아 시베리아 연방관구 투바 공화국 차단)
재임기간 초대 비상사태부 장관
1991년 4월 17일 ~ 2012년 5월 11일
제66대 부총리
2000년 1월 10일 ~ 2000년 5월 18일
초대 통합 러시아 당대표
2001년 12월 1일 ~ 2004년 11월 27일
제3대 모스크바 주지사
2012년 5월 11일 ~ 2012년 11월 6일
제7대 국방장관
2012년 11월 6일 ~ 2024년 5월 12일
제7대 독립국가연합 국방장관회의 의장
2012년 12월 11일 ~ 2024년 7월 3일
제14대 국가안보회의 서기
2024년 5월 12일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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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861aa><colcolor=#fbdc68> 부모 아버지 쿠주게트 세레비치 쇼이구
어머니 알렉산드라 야코블레브나 쇼이구
형제자매 누나 라리사 쇼이구
배우자 이리나 쇼이구
자녀 장녀 율리야, 차녀 크세니야
신체 175cm
학력 시베리아 연방 대학교(졸업)
종교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3]
소속 정당
약력 소련 공산당 아바칸시 위원회 제2서기
소련 공산당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위원회 감찰관
러시아 SFSR 국가건축건설위원회 부의장
초대 비상사태부 장관
러시아 보안위원회 위원
핵무기위원회 위원
초대 통합 대표
제66대 부총리
초대 통합 러시아 대표
제3대 모스크바 주지사
제7대 국방장관
제7대 독립국가연합 국방장관회의 의장
애국자 설립자 겸 대표
제14대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위원장
계급 대장
서훈 내역 러시아 연방 영웅
참전 시리아 내전
대 IS 군사 개입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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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 이력2.2. 소련 붕괴 이후2.3. 국방장관 임명
2.3.1. 블라디미르 푸틴의 후임?2.3.2.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2.3.3. 잠행과 숙청설2.3.4. 바그너 그룹 반란과 그 이후
2.4. 국방장관 직에서 경질, 그 이후
3. 평가
3.1. 긍정적 평가3.2. 부정적 평가
4. 소속 정당5. 진급 이력6. 여담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러시아의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2012년 11월 6일부터 2024년 5월까지 러시아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2. 생애

2.1. 초기 이력

소련 러시아 SFSR 투바 자치주의 차단(Чадан, 투바어로 차다나·Чадаана)에서 1955년 투바인 아버지 쿠주게트 쇼이구(Кужугет Сереевич Шойгу, 1921–2010)와 러시아인 어머니 알렉산드라 쿠드럅체바(Александра Яковлевна Кудрявцева, 1924–2011)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누나로 라리사(Лариса, 1953–2021)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뒷마당에서 싸움질도 하고 사납게 흐르는 강에서 얼음 덩어리 위를 건너 뛰어다니기도 했는데 당시 그의 별명은 '사탄'이었다고 한다. 1977년 도시공학 전공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 폴리테크 연구소를 졸업하였으며 동시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토목건설 분야에서 일하면서 계속해서 승진하면서 소련 공산당 간부 그룹에 합류했다. 주로 시베리아에서 경력을 쌓았으나 1990년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였다.

2.2. 소련 붕괴 이후

1991년 4월 구조부대(Rescuer Corps)의 사령관을 맡았다. 몇 개월 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이 독립하던 혼란스운 시기가 도래했고 러시아 비상대책위원회의 책임자가 되어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 시절부터 보리스 옐친블라디미르 푸틴의 측근이 되었다. 1992년 소장으로 진급했고 1992년 북오세티야-인구셰티야 분쟁 중에 북오세티야와 인구셰티야 영토에 임시 행정부의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비상대책위원회와 국방부 산하 소련 시민방위군(Civil Defense of the USSR)이 통합되었고 비상사태부로 승격되었다. 쇼이구는 비상사태부 장관과 예하 준군사조직인 비상대책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비상사태부는 러시아 등 구 소련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에 대부분 존재하는 독특한 부처로, 재난, 테러 등 여러 비상, 긴급 상황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업무를 맡고 있으며 민방위를 총괄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흔히 국민안전처에 해당한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재난대책도 주 업무 중 하나지만 그 밖에 드러나지 않는 일들도 해 왔다. 애초에 소련 시절에 NKVD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여담으로 바실리 추이코프도 지상군총사령관에서 물러난 뒤 퇴역 전까지 시민방위군 사령관을 지냈다.

1996년 러시아 대선 당시 보리스 옐친의 선거대책본부 큐레이터를 담당했으며 1999년에는 푸틴을 지지하는 정당인 통합[4]를 창당해 푸틴을 지원하였고 1999년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 2001년 통합통합 러시아로 통합되었고 2004년까지 당수를 역임했다.

2003년 대장 계급을 받았다. 그의 대장 진급은 매우 이례적인데 그는 2000년대 초반 러시아 대장 진급자 평균 연령보다 10살 이상 젊었다. 러시아군에서 대장을 달면 빠르면 1년 길어도 몇년 후에는 정년퇴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쇼이구는 대장 승진 이후 20년간 현역에 있다.

2.3. 국방장관 임명

블라디미르 푸틴이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복귀(2008년 5월 8일)한 직후 1991년부터 맡아 오던 비상사태부 장관에서 물러나고 모스크바 주지사가 되었다. (2012년 5월 11일~ 2012년 11월 6일) 6개월 간의 재임을 거쳐 2012년 11월 러시아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현 총참모장도 같은 시기에 임명되었고 두 사람은 10년 가까이 흐른 현재까지 러시아 군부의 수뇌부로 활동 중이다.

푸틴의 전폭적인 신임 하에 강력한 러시아군 증강 및 개혁 작업을 펼치면서 러시아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가 국방장관에 취임한 2012년 러시아군의 군사훈련이 2배 증가하는 등 군사력 증가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전임 장관인 세르듀코프가 시작한 군 개혁을 지속하면서도 세르듀코프가 지나치게 군의 기존 역량을 불신하고 프랑스로부터 미스트랄급 상륙함을 도입하는 등[5]의 행동으로 군부의 미움을 사 밀려난 점을 거울삼아 군부의 심기를 다독이며 개혁의 완급을 조절했다. 2013년 러시아 정부 내각의 장관 중 가장 인기 있는 장관으로 조사되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IS와의 전쟁 등의 중심에 서 있었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제 군사 전문가들은 쇼이구가 러시아의 군사적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진단하고 이블린 파카스 전 미 국방부 러시아 최고 담당자는 "최근 러시아군의 작전 능력과 조직, 물류 실력은 전엔 볼 수 없었던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주간 군사전문지 편집장 미카일 코다레녹은 "러시아군이 스스로를 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f0278443_570108fb58880.jpg
방산비리나 제품 결함에 관련해서도 많이 신경썼는데 3월 26일 시찰 중 공수부대원들에게 잠수장비가 무겁다는 불평을 듣고 제작자에게 가서 따지다가 복합소재를 적용해서 그렇다는 변명을 듣자마자 무슨 말도 안되는 핑계냐고 일갈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2.3.1. 블라디미르 푸틴의 후임?

파일:세르게이 쇼이구(대조국전쟁 승전 69주년).jpg
2014년 5월 9일, 대조국전쟁 승전 69주년 퍼레이드 당시의 모습

블라디미르 푸틴의 강력한 신임을 바탕으로 러시아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다 보니 푸틴의 후임으로도 거론된다고 한다. 러시아 정계에서 정적(政敵)이 거의 없는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2015년 '러시아 국민들의 정치인 신뢰도 순위'에서 64%를 획득한 푸틴의 뒤를 이어 28%를 얻어 2위에 올랐다.# 특히 2020년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꼽혔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후임설이 더 유력해졌다.

다만 사실상의 종신집권을 할 수 있게 된 푸틴이 언젠가 결국 물러난다면 병이나 고령으로 인한 노쇠화 때문일 텐데 쇼이구도 푸틴과 나이 차이가 3년밖에 나지 않는다. 때문에 후임 후보에 오르지 못하거나 만약 후임에 오른다 하더라도 임기 한 번을 수행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푸틴 수준의 절대권력과 장기 집권은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2.3.2.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러시아군을 지휘하면서 미국 재무부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기사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전 약 2주째가 되는 3월 4일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쇼이구는 키이우 정권은 지역 행정 능력 상실, 8,000명의 외국인 인질이 키이우에 있어,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도시에는 민족주의 용병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등의 터무니없는 선전 발언들을 남발하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인용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보국에 의하면 푸틴은 쇼이구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게 두려워 반역혐의 및 부패죄로 처단할 예정이라는 정보가 나왔다고 한다.#[6] 하지만 가짜 뉴스였다.

2.3.3. 잠행과 숙청설

실제로 3월 24일까지 12일째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서방의 언론에서는 건강 문제를 겪고 있거나 국방부 장관직에서 해임된 후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1 #2 이후 3월 경 서구권 매체에서 GRU 국장 이고르 코스티우코프와 같이 심장 부위 통증과 호흡 곤란이 똑같이 일어났으며 상태가 위독하다는 말이 나왔다. 단순한 노령에 건강 문제일 수도 있으나 상기한 증상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증상이기도 해 감염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또는 소련 시절에 개발하여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암살 시도에도 쓰인 노비촉의 증상과도 유사하여 일각에선 숙청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측 보도에 따르면 이미 3월 14일부로 장관 직에서 해임되었고 후방총국장 불가코프 대장이 장관 대리를 맡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다가 2주만인 24일 관영 매체에 그의 모습이 재등장했다. # 하지만 이전처럼 푸틴과 직접 대면 회의하는 모습이 아니라 푸틴의 화상 회의 중 모니터에 그의 얼굴이 나타나는데 이 화면이 부자연스러워 영상에 대한 조작설이 제기되는 등 영상 공개 이후 오히려 거취에 대한 의혹만 증폭되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4일 "아시다시피 현재 국방장관은 일이 많아서 언론에 나설 때가 아니다"고 밝혔으며 3월 25일에는 아제르바이잔 국방부장관과 아르차흐 일대 문제를 전화통화를 통해 의논했다고 밝혔다. # 사진만 나왔다. 3월 27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며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일단 건재함을 보였다. # 이후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푸틴과 대면 회동도 하여 숙청설은 가짜 뉴스임이 판명났다. #

2.3.4. 바그너 그룹 반란과 그 이후

한편 4월 보도에 따르면 해당 잠행기에 북한과 중국에 무기지원을 요청하러 출장을 갔다는 설이 돌았다. 이 때 중국에게는 거절당했으나 북한에는 허락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인사의 카더라 통신일 뿐 이후에 북한 무기가 사용된 바는 확인되지 않았다. 5월 5일에는 우크라이나 내 NATO 무기가 타격 대상이라고 밝히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5월 9일에는 전승기념일 77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열병보고를 맡았다. # 7월 22일에는 2022년 흑해 항로 협상에 참여하여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구를 복구한다는 내용의 협상문을 승인하였다.

2023년 6월 24일부터는 바그너 그룹의 쿠데타 시도까지 겪었다. 바그너 그룹의 리더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국방부와 쇼이구 국방장관을 타겟으로 이미 공개 선언했지만 이후 프리고진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일단 자리를 보존했다. 2023년 6월 28일에는 진압작전 참가자 치하 행사에도 참석했다. 바그너 그룹 반란/경과 문서 참조.

7월 25일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4시를 기해 기습적으로 쇼이구의 방북을 알렸으며 이례적으로 동지 경칭도 붙였다. 이전 열병식에 방북한 인사는 러시아 연방평의회 의장 발렌티나 마트비옌코인데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진전된 북러관계를 상징하는지 역대급 거물이 파견된 셈이다. 타스 통신은 쇼이구의 방북 계획이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이라고 발표하였고 발표가 이루어진 당일인 25일 심야에 북한에 도착하였다. 북한 국방상 강순남, 총정치국장 정경택, 총참모장 박수일, 외무성 러시아 담당 부상 임천일과 러시아 대사 알렉산드르 마체고라가 영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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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심야, 쇼이구를 맞이하는 북한 국방상 강순남

이후 강순남과 회담을 진행했고 연회에 참석했으며 북한군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가 되었다는 립서비스를 했다. 해방탑만수대를 참관하고 김정은과 회담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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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쇼이구를 접견하는 김정은

7월 26일 밤 김정은과 함께 《무장장비전시회-2023》에 참가하여 화성-12나, 화성-17, 화성-18등 주요 북한 무기를 둘러보았다. 7월 27일 0시에 열린 전승절 대공연을 관람했다. 7월 27일 러시아 국방부 텔레그램에서 쇼이구가 북한 열병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후 기념보고회에 참석하였으며 김정은과 오찬을 가지고 연회에도 참석하는 등 매우 후한 대접을 받았다. 2023년 7월 27일 북한 열병식에 주빈으로 참석했으며 열병식이 끝난 후 성대한 배웅을 받으며 러시아로 돌아갔다.

2.4. 국방장관 직에서 경질, 그 이후

2024년 5월 12일, 푸틴 5기 출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로 영전하는 방식으로 국방장관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전해졌다.#[7] 후임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전 제1부총리[8]가 임명되었다.

2024년 9월 13일,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을 만났다.#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그는 러시아군의 군사력 증강과 현대화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신형 군장 및 미래보병체계 사업 라트니크, 차세대 다용도 차체 플랫폼 프로젝트 아르마타, 같은 여러 군 현대화 작업을 진행하였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AK-12라트니크 군장 수십만 세트를 보급하는 등 성과를 내는데 성공하였다.

전세계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병영부조리데도프시나를 전체적인 영역에선 39 ~ 40%가 감소하였으며 사건사고는 17%, 병역기피 80%와 대민범죄 57%, 군 보병 사고와 손실 31%까지 감소시킨 점도 크게 호평받는 요소 중 하나다.

3.2. 부정적 평가

바그너 그룹과 갈등을 일으켜서 예브게니 프리고진바그너 그룹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또한 군 내 파벌 싸움을 위해 의도적으로 바그너 그룹에 무기와 탄약 보급을 멈추는 등 졸렬한 모습을 다수 보여와 끝내 바그너 그룹의 쿠데타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단 것이 정설이다.

또한, 군 내 부패 척결에 힘썼다던 초기 이미지와 달리, 현실은 시궁창 이었음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하여 절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러시아군에게 전쟁 초기 주어진 장비는 형편없었으며, 작전 계획은 유아 수준이었고, 그 결과는 전투에서 참패로 이어졌다. 쇼이구 시절의 뿌리 깊은 부패는 국방장관이 교체된 지금도 러시아군을 괴롭히고 있으며, 심심하면 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로 관계자들이 잡혀들어가는 현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소련 공산당|]]
1977 - 1991 정계 입문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1 - 1995 탈당

1995 - 1999 창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9 탈당

1999 - 2001 창당

2001 - 현재 신설 합당

5. 진급 이력

6. 여담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21107113131_1.jpg
* 비상사태장관 시절 사진. 대장 군복 차림이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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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바어: 세르게이 퀴쥐게트오글루 쇼이구[2] 러시아어 강세를 적용하면 [sʲɪrˈɡʲej kʊʐʊˈɡʲetəvʲɪtɕ ʂɐjˈɡu\]. 투바어 표기는 'Сергей Күжүгет оглу Шойгу'[3] 그가 투바인이다 보니 투바인들이 많이 믿는 티베트 불교 신자라는 루머#가 돌았고, 실제로 고향 투바에 티베트 불교 사원 건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은 5세 때 세례성사를 받은 러시아 정교회 신자라고 2008년 모스크바 공감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바 있다. # 러시아 정교회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유아세례를 주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부모가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절 열병식이콘 밑에서 성호를 긋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다.#[4]통합 러시아의 전신[5] 그러나 돈바스 전쟁 때문에 도입이 결국 무산되었다.[6] 해먹은 게 너무 많아서 전방에 투입된 러시아군이 전투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하니 이것만큼 숙청하기 좋은 명분도 없는 셈이다. 물론 부패의 최종책임은 당연히 이 분이 져야겠지만 독재국가에서 독재자가 직접 책임질 일은 없으니 같이 해먹은 사람이 죽어주는 수밖에 없다.[7] 다만 이에 대해 해당 서기직은 '전직 측근의 집합소', 즉 한직이라 주장하면서 국방장관보다 서열은 좀 더 높을지 모르나 실질적인 권력/권한이 없으며 쇼이구의 측근인 국방차관들 3명이 현재 체포되어 수사중인 상황이라 까닥 잘못하면 쇼이구도 엮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수월해졌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으로 전임 서기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가 푸틴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던 요직이라는 주장도 있다.[8] 경제 전문 기술관료로 군 경력이 없다. 전쟁 이후 치솟는 국방비 관리를 위해 임명되었다는 것이 중론.[9] 남편이 미국의 경재제재 대상이라는 말이 떠돌았다.[10] 인스타그램에 남편과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았고 아버지와 찍은 사진들도 종종 올리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비판이 거세졌는지 모두 비공개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