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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1:50:49

손주은

손사탐에서 넘어옴
<colbgcolor=#0083ff><colcolor=#ffffff> 메가스터디교육 대표이사 회장
손주은
孫主恩 | Son Joo-eun
파일:메가스터디 손주은.jpg
출생 1961년 3월 21일 ([age(1961-03-21)]세)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무성리
(現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무성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밀양 손씨 (密陽 孫氏)
학력 신방국민학교 (졸업)
창덕중학교 (졸업)
부산동성고등학교 (졸업)[1]
한국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영어과 / 중퇴)[2]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제39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
가족 아버지 손용택(1939년 ~ 2017년 3월 6일)
어머니 최성례(1936년 ~ 2019년 7월 21일)
남동생 손성은(1967년생)[3][4]
여동생 손은희, 손은실[5], 손은정, 손은진
배우자 김정미(1961년생, 1986년 결혼 ~ 현재)
딸 손희소(1993년생)
아들 손희재(1996년생)[6]
종교 개신교(예장통합)
직업 기업인
현직 메가스터디교육 대표이사 회장
윤민창의투자재단[7] 이사

1. 개요2. 경력
2.1. 출생 ~ 대학생2.2. 보습학원2.3. 대치동 강의2.4. 메가스터디 창업2.5. 공부는 잘 하는 사람이 잘한다
3. 유명한 제자들4. 비판5. 그를 대상으로 한 수험생의 장난6. 정치성향7. 어록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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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강사. 現 메가스터디교육의 공동 창업자 겸 대표이사 회장.

대한민국 사교육, 인터넷 강의 업계의 대부격인 인물로, 일부 부유층만 독점하던 국내 최고 강사진의 수업을 인터넷 강의라는 혁신적인 플랫폼으로 대한민국 교육 인프라의 불균형 해소에 기여했다는 찬사와 한국의 비뚤어진 교육열에 편승해서 교육이라는 중대사를 지나친 상업주의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와는 별개로 대한민국 교육계 전반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끼친 사교육계의 대부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별명은 손펠레. 입시철마다 대학 예측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손주은이 빵꾸/폭발 예측을 하면 오르비, 수만휘, 독편사를 비롯한 입시 커뮤니티가 들썩인다.

이제는 현장에서 벗어나 대기업, 고등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특강을 열거나 메가스터디 경영에만 집중하고 있다. 근래에는 장학재단과 스타트업 투자재단을 꾸렸다. 강의 흡입력도 장난이 아니다. 여러 특강이 동영상으로 돌아다니는데 강의 흡입력이 대한민국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다. 일명 1타 강사로 유명한 사람의 TCC 특강 영상에도 절대 처지지 않는다.

2. 경력

2.1. 출생 ~ 대학생

1961년 3월 21일,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무성리(현재 행정구역으로 창원시 의창구 동읍 무성리)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혈액형은 B형. 부친 손용택1991년 지방선거에 민선 경남도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도의원을 역임했다. 2017년에 부고 기사가 나왔다. #

어릴 때부터 상당히 명석했던 모양으로,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이 그의 영재성을 눈여겨보고 방과 후에 각종 교육을 직접 시켜줬다고 하며 그 덕분에 1학년 직후 바로 3학년으로 월반하면서 국민학교를 5년만에 졸업했다. 부산동성고등학교 25회 동창들이[8] 자기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1학년 담임 선생님과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고 한다.

3수 끝에[9]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에 입학해서 졸업했다. 원래는 경영학과가 목표였다고 한다. 이 당시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400일 넘게 하루도 안 거르고 만날 정도였다고 한다.[10] 하지만 헤어졌고 큰 충격을 받아 2년 동안이나 방황하면서 공부도 손 놓다 싶다가 3학년 때도 학사 경고를 받을 정도였고 도피처로 군대에 갔다는데, 전역 후 당시 재학 중에 아버지가 자신을 억지로 결혼을 시켰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이후 대학원에 갈지, 고등고시를 볼지 선택 못하고 방황하다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긴 상태에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잣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룹과외를 하면서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2.2. 보습학원

사정이 조금 나아진 이후에는 조그만 보습학원을 차리고, 소수인원을 대상으로 혼자서 전과목을 다 맡기도 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열성과 특유의 쇼맨십 덕택에 학부모와 학생들의 신뢰를 얻으며 여느 보습학원이 그렇듯 돈도 짭짤하게 벌어가긴 했는데, 교육당국의 보습학원 단속에 적발되어 폐업하게 된다.

2.3. 대치동 강의

파일:attachment/손주은/sontongsa.jpg
손선생 통합사회[11] 강사 시절 대표 프로필 사진으로 수능에서 통합사회 컨셉이 먹히던 6차교육과정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그의 수강홍보 포스터나 교재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워낙 유명한 대표 프로필 사진이라, 그 당시 그의 강의를 수강했던 사람들이라면 추억보정 효과로 빵터질만한 짤방이다.

보습 학원이 쫄딱 망하자, 다시 일어나려고 1997년 대치동에 위치한 강남대일학원에서 (자기 주장으로는) 최초의 통합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 강의를 열었다.[12] 그렇게 어두웠던 초창기를 지내다, 특유의 화통한 성격과 능숙한 말솜씨, 수능 특성에 맞는 강좌를 열어서 유명세를 탔다.

특히 그가 상당히 공을 들였던 초창기 강의를 수강했던 학생들이 공부 잘하는 특목고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의 입소문의 효과는 대단했고, '손선생', '손사탐'이라 불리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강남에서 최고의 사회탐구영역 스타강사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강남 학군에서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로, 그가 사회탐구 강사로서 재기한 거점이 된 강남대일학원(現 강남메가스터디학원) 주변 대치역 사거리가 손사탐 강의 수강신청 기간에는 차량과 인파가 적은 심야인 밤 10~12시 이후에 수강신청이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차량과 인파로 혼잡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아픔이 있으니 1991년 가을에 교회에 갔다오던 아내와 아들, 딸이 택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은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났고, 아내와 딸은 중상을 입고 입원해 아내는 한 달만에 깨어났으나 딸은 1년 후에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때문에 한동안 미친 듯이 강의만 했다고. 이후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다시 얻었다.

문/이과 학생 모두 공통사회를 시험보던 "손사탐" 시절에는 1달에 최소 4억을 버는 스타강사였다. 2002년경 출간했던 손주은의 저서 "손사탐 1,200제"는 공부 좀 한다는 수많은 학생들이 "이범 과탐 1,000제"와 함께 1권 정도는 샀던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돈을 쓸어담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현재는 연 매출이 수백억대에 달하는 1타 강사도 꽤 많지만, 2002년 당시 기준으로 한달에 4억원은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훨씬 큰 액수였다. 당시 월드컵 특수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던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시세가 3억원 정도였으며,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600원이던 시절이었다. 거기다가 지금에 비해 인터넷 강의 사이트(스카이에듀, 이투스 설립 전)나 강의 보급이 낮았고 불법적인 경로로 강의를 듣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에, 국어/수학/영어에 비해 인터넷 강의 수강률이 낮았던 사회과목 강사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 매출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애초에 2024년 현재도 한 달에 4억원을 버는 스타 강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

2.4. 메가스터디 창업

한창 학원 강사로 잘 나가던 시절, 강의가 끝난 후에 한 모녀가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손주은은 학생의 성적이 많이 올라 찾아 왔는 줄 알았다고. 알고보니 손주은의 강의를 들으려고 무리하게 대치동으로 이사를 했고, 몇개월 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여 감사인사를 전하러 온 것이었다. 결국 본인이 강의를 열심히 하는 것이 또 다른 불평등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회의감이 강하게 들어 수 차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홈쇼핑을 보다가, 강의도 홈쇼핑 방식으로 진행하면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메가스터디를 창업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수험생 대상 인터넷 강의 시장을 키운 주역이다. 당시 강남대일학원 언어영역 스타강사였던 조진만 강사[13]와 함께 2000년 7월에 메가스터디라는 인터넷 사교육서비스업체를 공동 창업했다. 사교육서비스 업체로는 최초로 코스닥에 주식을 상장하기도 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확장되고 교육과정이 7차로 바뀌어 통합사탐이 가지는 메리트가 거의 사라진 이후에는 수업일선에서는 물러나 경영에 주력하다가, 2008년부터인가 다시 사회문화, 국사, 한국근현대사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 예전만큼 사탐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본 가락은 있어서 그런지 강의 평은 나쁘지는 않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대 과탐의 스타 강사였던 이범이 7차 교육과정 이후 교육 평론가가 되어 2010년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정책보좌관으로 발탁되어 사교육 때려잡는 일에 나서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손주은과 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은 워낙 많지만, 달리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교육격차를 해소한 일등공신이다. 수십년 동안 교육부가 수많은 돈을 퍼붓고도 하지 못했던 수도권과 지방 시골 지역 학생의 교육 격차 해소를 인터넷 강의로 해냈다.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된 후 어차피 모두가 강남 1타 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농어촌 학교에 따로 가산점을 줄 필요가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놀라운 일이다. 즉 명과 암을 모두 가진 인물.

한편 2015년에 와서는 창업 당시와는 생각이 많이 바뀐듯 보인다. 2015년 12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메가스터디 창업 등 사교육에 몸담은 자신의 인생을 후회한다는 내용이 담긴 인터뷰를 했다.
"저는 한국 사회 고도성장기의 사교육 시장에 잘 편승해서 너무 쉽게 성공했고 부를 얻었지만 '떳떳하냐'고 물으면 떳떳하지는 않다"
"사교육에 발을 담근 스물여덟 살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일을 할 것"
링크(아카이브)

2.5. 공부는 잘 하는 사람이 잘한다

한때 그의 통합사회 첫 수업시간을 녹화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14] 그 이유는 공부를 잘 하는가 못 하는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유전자"다라는 발언이 나오기 때문. 즉, 유전자가 좋지 못한 학생들은 아무리 공부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영상의 핵심은 안 되면 포기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기보다는 성적을 단기간에 올리기가 그만큼 어려우니 목숨을 걸 각오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악마의 편집 마냥 뒷부분을 제외하고 앞부분만 보면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돼 라며 학생들을 기죽이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영상을 보면 그의 평소 강의 스타일이 어떤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영상에서의 키포인트는 공부는 절대로 처음부터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며 엉덩이 - 손 - 머리 - 가슴의 단계로 간다라는 것이다. 즉,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책상에 바른 자세로 오래 앉아있는 것이 중요하고 직접 손으로 쓰면서 공부해야 그 다음에 머리로 들어온다. 그리고 머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이 영상을 찍은 지 10년이 훨씬 더 지난 2014년 현재에도 똑같은 말을 강연 때마다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2021년에 출연한 홍진경의 찐공부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공부는 유전자니까 의미없다는 식의 부분만 와전된 상태로 강조되어 맥락이 무시되곤 하는데 상술했듯이 강의의 주제는, 명문대 가서 공부로 출세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현대는 과거와 다르게 좋은 대학의 전통적으로 취업이 잘되는 전공(법대, 이공계, 의대, 상경계 등)을 배운다고 돈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보장은 없으니,[15] 자신에게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는 이야기다. 좀 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목표를 위해 엉덩이와 가슴으로 공부해야 함을 강조하는 강의다.

위에는 손주은을 변호하는 것처럼 써놨지만 동영상에서는 초반부터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를 결정하는 것은 80%가 유전자라고 정의를 하고 시작한다. (5:00) 해당 강의에서 성공 사례로 말해준 과외생도 부친이 의사고 모친이 이대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이건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지. 사실은 학생의 관리나 이런 걸 잘 못했던 거야'라고 말하는 등 끝까지 유전자 운운을 하며, 또한 비교적 최근에 촬영된 영상을 봐도 학부모들에게 '가슴에 손 놓고 본인들 학창 시절 성적을 생각해봐라'라며 안 될 학생들은 안된다는 말을 여전히 한다.[16]

여기서 말하는 유전자는 우리가 흔히 우월한 유전자, 열등한 유전자를 말할 때의 그 유전자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전자는 타고난 성향[17]이라고 보아야 한다. 영상 뒷부분에 최종적으로 공부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여기서 유전자는 가슴으로 공부 할 수 있는 성향을 타고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영상 앞부분에도 한국 교육에서 유전자를 타고 나지 않은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하며 그래서 공부를 해보고 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공부 말고 딴길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영상을 요약하면, 단순히 공부 못하는 애들은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기죽이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쓴소리가 아니다. 자신이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하여 공부 할 수 있는 성향을 타고난 사람인지를 판단해보고, 그렇지 않다면 딴길 가고, 만약 자신이 그런 성향을 지녔더라도, 목숨 바쳐 공부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동영상의 시작은 손주은의 과외 첫 제자에 대한 이야기이다.[18] 반에서 30등에 머물고 외모에 관한 콤플렉스도 심하던 이 여학생이 손주은을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지고 하루에 17시간씩 공부를 해서 반 1등 수준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화여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내면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 후에 고시를 쳐서 크게 성공한다는 이야기이다.[19] 그러나 반전이 있었으니, 사실 그 여학생의 부모가 양쪽 다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였다는 것.[20] 손주은도 동영상 와중에 "얘는 유전자에는 문제가 없잖아.", "이건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지. 사실은 학생의 관리나 이런 걸 잘 못했던 거야"라고 언급한다.

3. 유명한 제자들

손주은의 제자중에는 최초의 수능 만점자인 오승은도 있고, 그 해 수능 차석자인 이형철(현, 서울대 의과대학 임상조교수)[21]도 있다. 하지만 손주은은 위에도 언급된 과외 첫 제자가 공부를 제일 열심히 했다고 한다. 하루에 17시간을 꼼짝않고 공부하고 모나미 볼펜 한 자루를 하루 걸러 갈아치울 정도였는데 '앉은 자리에서 8시간 정도 필기를 하면 볼펜 한자루를 다 쓸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손주은의 "고3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신통치 않았던 학생이 나온다. 어머니 뵈기가 죄송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공부를 잘 하게 돼서 지방 거점 국립대를 갔다고 한다. 주변에서 고3때 성적이 확 오른 실례를 살펴보자.

사실 그 영상은 최근 영상이 아니라 꽤 오래 전인 2001년 겨울에 03학번을 대상으로 촬영된 것이고 당시 그의 수업을 수강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다 들어보았을 정도로 잘 알려진 말일텐데 뒤늦게 화제로 떠오른 셈이다. 그리고 03이 아닌 그 전 학번들도 손사탐 수업을 들었다면 누구나 지겨울 정도로 들은 말이다.

그 외에 손주은이 강연 등에서 언급하는 제자들이나 기타 인상 깊었다는 수험생, 혹은 특정 인물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4. 비판

강의 스타일은 수업 중에 욕을 많이 해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특히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조는 학생을 극히 싫어해서 조는 학생을 발견하는 즉시 온갖 욕설을 퍼부음과 동시에 분필을 던져서 맞췄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명중률이 100%는 아니라서 타겟이 아닌 주변 학생들이 억울하게 맞을 때도 있었으며, 도가 지나친 경우 앞으로 불러내어 망신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인터넷 강의용 영상 촬영 도중에도 이런 행동을 하곤 했다. 수업 중 학생들에게 문제를 풀어보도록 시간을 주기도 했는데, 이때 문제를 안 풀고 딴짓을 하거나 졸다가 걸렸을 경우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폭풍 욕설이 날아왔다. 욕설의 수위는 일반 교사였다면 매장당했을 수준이었다.

강의 시간에 욕설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데, 가령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통치 방식을 설명할 때 무단정치 시기를 "깡패 새끼들이 땅을 뺏어 갔다"고, 2기 문화정치(민족분열정치) 시기를 "사기꾼 새끼들이 쌀을 뺏어 갔다"고, 3기 민족말살정치 시기를 "군바리 미친 개XX들이 모조리 다 뺏어갔다"고 욕을 섞어 설명하는 식. 이런 스타일이 귀에 쏙쏙 들어와 잘 익히게 되었다는 학생도 있지만 강의 듣는 내내 불편했다는 학생도 많다.

심지어는 다른 강사를 까기도 했는데, 이 중에는 본인의 회사인 메가스터디 소속 강사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메가스터디 외국어 영역 스타 강사 김기훈을 강의 중에 수시로 디스했는데, 그의 대표 강의인 리딩 스킬을 보고 쓰레기라고 칭한 적도 있다. 물론 실제로 김기훈의 리딩 스킬 강의는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독해 그 자체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영어권 국가들의 작문 스타일을 이용해서 일종의 수학 공식처럼 문제를 풀 수 있게 만든 건데, 작문은 수학이 아니다 보니 항상 예외가 발생하고 그 예외가 발생할 때마다 어떻게든 자기 공식에 끼워 맞추려 발악하는 김기훈의 모습을 보고 사기훈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김기훈의 구문 독해, 어법 강의 등은 상당히 괜찮고 정공법적인 스타일이기 때문에 더욱 대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배경과는 무관하게 대표이사인 손주은이 본인의 회사 소속 강사의 강의 스킬을 쓰레기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리 좋은 행동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본인 학원에서 쓰레기 강의를 판매하고 있다고 말하는 꼴이니. 참고로 손주은과 김기훈은 비즈니스 외적으로는 사이가 안 좋기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당시 메가스터디 1타 강사인 김기훈과 로즈리를 지칭해서 이들이 뉴욕 거지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말한 유명한 사건도 있다. 이후 수많은 영어 강사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은 한국인 강사가 과연 뉴욕 거지보다 영어를 더 잘 하는가 아닌가"라는 논쟁 대상에 수시로 휘말리곤 한다.

또한 노골적인 돈 욕심과 알바질 때문에 삽자루밝히리 사건 이후를 기점으로 손돼지, 돈주은 등의 별명으로 맹비난을 받았다.[22] 이전에도 사교육업의 수장으로 이미 이런 별명으로 욕을 먹는 것이 다반사이긴 했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사교육 시장에 몸담아 부를 얻은 것이 떳떳하지 않다는 말을 했는데, 삽자루가 밝히리를 통해 댓글 알바를 고발한 것은 2009년이다. 삽자루가 고발할 때만 해도 댓글 알바 같은 것 없다면서 발뺌할 정도로 돈에 욕심을 보이던 사람이 몇 년이 지나 사교육 시장에서 부를 얻은 것이 후회된다고 하면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만했다. 다만 2021년 댓글 알바 동원으로 인해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강사 박광일로 인해 삽자루의 근황이 새삼스럽게 부각되는 와중에, 악감정이 있을 법한 삽자루의 투병 지원에 나섰다는 삽자루의 아내 임 씨 및 국어 강사 정지웅의 인터뷰로 미루어보아 그 이후 어느 시점부터 사람이 변하게 된 건 사실로 보인다. 기사

강의 시간도 매우 불성실한 편이었다. 수업은 잘 하지만 유명세를 믿어서 그런지 강의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았던 편. 심지어 한 시간을 늦게 도착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손주은이 항상 늦는 것은 시간표 때문이었는데, 이는 몇몇 시간표 따위 항상 안 지켜도 강의 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 거물급 스타 강사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른 학원 시간표와 교차하여 비교했을 때 이동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턱도 없는 시간표를 짜기도 했다. 물론 손주은은 메가스터디의 대표인 만큼 남이 시간표를 강제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명백히 손주은의 잘못이다. 학생은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시간만큼의 교육을 받고자 학원비를 내는 것인데, 이를 어쩌다 조금 늦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씩 늦는 일이 빈번한 것은 소비자인 학생에 대한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것이며, 그런 주제에 본인은 학생이 수업 중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다고 가차없이 욕을 퍼붓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 외에도 이용재의 말에 따르면 설문조사로 "손주은 선생님의 강의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라고 해놓았는데, 보기를 1번 매우 좋음, 2번 좋음 만으로 제한해서 설문을 구성해놓고 수강생 99.9%가 좋다고 대답한 대단한 강의라고 선전한 적이 있다고 한다.

5. 그를 대상으로 한 수험생의 장난

과거에 발신 번호 표시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는 어느 누구라도 익명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었는데, 이를 악용해서 수업시간에 그의 핸드폰으로 익명 문자를 보내 장난을 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 중에는 기상천외한 문자도 많아서 학생들에게 웃음을 주었는데, 가장 유명한 문자 중 하나가 손주은 3행시.
선생은 발음이 헷갈린다.
로 어와 으를 헷갈린다.
제나 헷갈린다(...).

즉, 손주은 선생의 '어' 발음과 '으' 발음이 잘 구분이 안 된다고 놀리는 내용이다. 손주은 본인이 보기에도 이게 웃겼는지 이따금씩 수업 첫 시간에 직접 저 3행시를 소개하면서 자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발음 헷갈리는 컨셉을 자신도 은근히 즐기는 면이 있긴 있었다. 예를 들면 알파벳 V를 일부러 큰 소리로 버이!!라고 읽는다든지...

또한 과거 메가스터디 사이트를 중심으로 돌던 글도 있는데, 실제 사례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손주은이 첫 시간에 "내 고향이 '원'자로 끝나는 동네인데 어디인지 아는 사람 있나?"라고 하자 어떤 용자학생이 우스갯소리로 "동물원이요!" 라고 대답을 해서 손주은이 욕을 몇 사발씩 퍼부으면서 "어디서 선생 고향을 동물원이라고 하냐!"라고 고함을 쳤다는 후문도 있다(...).

6. 정치성향

한석원 등과 함께 대표적인 진보 성향 강사다.[23][24] 국사 강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개혁가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한국근현대사 강의에서는 군사정권 파트가 나오자 욕을 퍼붓는 점을 보면 그의 정치성향을 잘 알 수 있다. 사실 국사에서는 맑시즘 유물 변증법의 토대가 되는 유물론을 기반으로 흐름을 설명한다고 밝히고 시작하며, 실제로도 일관되게 유물론적인 논리로 설명한다.[25]

거액의 자산가인데다가 학원재벌, 그리고 독실한 개신교인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 말기 혹은 노무현 정부 초기에 강남권에서 입시설명회를 하면서 "여기 앉아 계신 학부모님들 대부분은 아무래도 기득권 세력이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 2008년 총선 당시에 통합민주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펼치기도 했고, 열린우리당새천년민주당의 통합을 주도하는 단체에 참여했던 것을 보면 말 다 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고등학교 선배인 이종혁한나라당 의원한테 300만 원을 후원한 적이 있고, 조선일보와도 모종의 친분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성향과는 별개로 사적인 친분인 듯하다.

물론 본인이 몸담고 있는 업계인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한석원과 달리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뭔가 미묘한(...) 태도를 보인다. 미래에는 사립학교 재단을 설립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다. 메가스터디 사내에서는 손주은 본인에 대해 군수공장 공장장인데 반전(反戰)주의자라고 부른단다.

한 입시설명회에선 앞으론 교육시장의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 원인이 젊은 층이 아이를 가지지 않아 노동인구가 없어 부양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로 인해 한국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고 말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양천구 갑 후보로 출마했던 송한섭을 공개 지지했다. 이는 과거 송한섭 후보가 손주은에게 배웠던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정치성향과는 별개로 부친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몸담았다. 민자당의 주류가 PK의 김영삼 계열임을 생각하면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7. 어록

학부모님들... 자식들 죽어라 대학교 보내려고 하시는 모양인데... 지금 서울대 경영학과백수들 넘쳐납니다. 대학교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건 경제성장 시기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좀 똑똑한 분들은 이 시기에 재미 좀 보셨을 겁니다. 근데... 여러분이 자식들 공부 못한다고 잔소리 하실 텐데 현실을 냉정히 보셔야 됩니다.

기본적인 공부머리는 80%가 유전이라는 것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고 심지어 노력하는 것조차도 유전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모님들부터 현실도피하지 마시고, 자기 자신부터 똑바로 아셔야 됩니다. 부모님들 고등학교 때 공부했습니까? 대학교 때 공부했습니까? 솔직히 놀지 않았습니까? 다만 놀아도 갈 회사가 많은 운 좋은 세대였을 뿐이지.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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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은 사무실의 화이트보드. 사학과 출신답게 톤유쿠크의 말을 인용해놓았다.

[1] 방송인 이경규와 고등학교 친구로 고등학교 2~3학년 때 같은 반이였다.[2]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대학이다.[3] 현재 메가스터디교육 대표이사이다.[4]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 출신[5]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관련한 국내 최고 권위자이다.[6] 본래 다른 1남 1녀가 있었으나 후술할 교통사고로 인해 모두 세상을 떠났고, 다시 1남 1녀가 태어났다.[7] 창의적인 스타트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재단으로, 사재를 털어 설립하였다. 손주은 회장은 재단 설립과 관련해 "그동안 공부가 너희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세상이 됐다."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젊은이들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윤민'은 1991년 교통사고 당시 중상을 입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의 딸아이 이름이다. 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혁신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을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8] 이중에서 고3때 같은 반이었던 이경규도 포함된다. 동기생들과 같이 참석한 인터뷰를 보자.[9] 재수를 해서 한국외대 영어과에 합격했으나 이름만 걸어놓고 다시 삼수를 했다.[10] 여자친구 집이 가난해서 등록금 보태주겠다고 이때도 과외를 했었다고 한다.[11] 2015 개정의 고1 공통과목 통합사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12] 초창기 수능 당시에는 선택과목 체제가 아니라 지리, 역사, 정치와법, 경제 등 사회탐구 전 영역을 다 같이 시험보는 형식이었다. 이는 과학탐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시험 성격상 이 당시에는 지리와 역사를 같이 섞어서 낸다거나, 정법 관련 지문에서 경제를 물어보는 등 다양한 교과목의 내용을 융합해서 출제하는 탈교과적인 문제도 여럿 출제되었는데, 이 때문에 여러 강사가 따로따로 가르치는 강의보다는 한 강사가 폭넓게 가르치는 강의가 당대의 수능 시험 대비에 더욱 적합했다.[13] 2001년에 급성 폐렴으로 인해 향년 32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요절했다.[14] 강의 중 내년 2002년 12월 26일이라고 언급하는걸 보아서 2001년 12월 정도에 찍힌 영상으로 보인다.[15] 여기서 추가적으로 이전 세대까지가 명문대만 나오면 성공이 보장되던 편한 세대이고, 지금 이후부터는 대학 졸업은 성공을 구성하는 많은 변수 중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설명한다.[16] 맥락 자체는 어차피 돈 있는 강남 사모님들이시니 사교육비에 날릴 돈 모아서 애 크면 뭐 하나 차려주고, 학창 시절에는 영혼을 맑게(...) 만드는 교육을 시켜주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것이었다.[17] 성향은 분명 영상에 나오는 2번 의지, 3번 노력과는 분명 다르다.[18] 본인도 이 제자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언급한다.[19] 고시 합격 후에는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으며 2011년에는 보건복지부 서기관으로 근무했다.[20] 이 여학생의 아버지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출신 의사이고, 어머니는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이다. 이 발언도 이 학생의 부모님의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 소위 말하는 좋은 머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가진 성향을 이 학생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21] 손주은이 수업시간 중 자신의 옛 제자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학생이다. 참고로 수능 만점자 오승은과는 같은 학교 동창.[22] 그래서인지 몰라도 입시설명회 같은 곳에서 간접적으로 삽자루를 깠다.[23] 이종혁, 송한섭 등 보수정당 정치인도 친분이 있다면 후원한다.[24] 의외로 학원 강사들은 교직에 몸담고 있었거나, 민주운동가 경력때문에 빨간줄이 그여서 교사 채용에 낙방했던 사람들이 학원가로 흘러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진보 성향인 경우가 대다수다. 선술한 한석원만해도 운동권 출신이고, 5.18 민주화운동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윤상원도 평상시에는 과외수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이다. 정봉주, 정청래, 박정 등도 학원강사 출신이다.[25] 강민성도 흐름으로 유명하지만, 유물론적으로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26] 그의 집안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여동생 중 둘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목사이며 그 중 한 명은 프랑스 파리 제4대학교(현재 파리 제6대학교와 통합되어 소르본 대학교가 됨)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기독교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