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조조의 아들을 죽이다 | |
장르 | 대체역사, 빙의, 회귀 |
작가 | 은수랑 |
출판사 | KW북스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2. 04. 06. ~ 2023. 08. 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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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삼국지 대체역사소설. 작가는 《삼국지 유봉전 : 계한의 부흥》을 집필한 은수랑.2. 줄거리
조조가 아끼던 첫째 아들을 내가 죽였다.
그리고 조조에게 살해당할 미래를 깨우쳐 버렸다!
"조공은 원한만으로 장군을 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미래의 기록처럼 죽지 않고자 조조에게 항복했지만,
돌아온 건 반역 누명과 가족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깨어난 2회차 인생!
"이번 생엔 씹어먹을 조조에게 복수도 하고, 내 가족도 지킬 것이다!"
가족의 행복과 전생의 복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장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조조에게 살해당할 미래를 깨우쳐 버렸다!
"조공은 원한만으로 장군을 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미래의 기록처럼 죽지 않고자 조조에게 항복했지만,
돌아온 건 반역 누명과 가족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깨어난 2회차 인생!
"이번 생엔 씹어먹을 조조에게 복수도 하고, 내 가족도 지킬 것이다!"
가족의 행복과 전생의 복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장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조가 숙모를 범하자 장수는 격분하여 조조를 습격, 조앙과 전위를 죽이고 조조를 쫓다가 낙마한다. 이때 미래 대한민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장수가 빙의하고, 미래 역사에서 본인은 오환족을 정벌하다 병사하고 자식은 위풍의 난에 휘말려 대가 끊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수는 역사를 바꾸고자 조조에게 귀순한 뒤 은퇴했는데, 사이코패스 조비에게 갈굼을 당한 끝에 일가족이 참살당한다. 그리고 조조를 습격하다 낙마해 빙의한 시점으로 회귀한다. 빙의로 얻은 미래 지식과 1회차 인생으로 얻은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장수는 2회차 인생에서 조조와 조비 부자를 죽여버리기로 결심한다.
3. 연재 현황
2022년 4월 6일부터 문피아에서 연재를 시작하였다.카카오페이지에 연재본이 발매되었다.
2023년 8월 9일 총 350화로 완결되었다.
4. 특징
형식은 전형적인 삼국지 대역물이지만, 미래에서 빙의한 인물이 한번 죽고 회귀하면서 단편적인 미래 지식과 1회차 인생의 경험을 결합시켜 착오를 줄인다는 아이디어와, 양주 기병을 거느리고 가후를 군사로 둔 시작부터 거칠 게 없는 주인공이 오직 조조를 죽이기 위해 천하통일이 아닌 군웅할거 난세를 조장한다는[1][2] 독특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3]5. 등장인물
5.1. 장수 진영
- 장수
삼국지에서 가후의 꾀를 빌어 조앙과 전위를 죽인 것으로 유명한 군벌로 이 작품의 주인공. 특이하게도 3회차 같은 2회차 인생을 살고 있다. 미래인이 빙의하면서 미래 역사를 알고는 1회차에서 자신의 기병은 바로 조조에게 넘기고 군에서 은퇴해 수도에서 한량처럼 은거한다는 생을 살아갔지만, 그럼에도 끝내 위풍의 난에 엮여 조비에게 핍박받은 끝에 일가족이 비명횡사하고 다시 원래 역사에서 조앙과 조안민을 죽인 시점으로 회귀한다.
즉, 본작의 장수는 조조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원 역사의 기억과 조비에게 핍박당한 2회차의 기억을 갖고 3회차 회귀를 하였기 때문에 조조 밑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조조와 조비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한다. 조조를 뒤쫓다 역습을 당한 원래 역사를 살짝 비틀어서 조조의 계책에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4] 우금을 죽여서 조조 세력에 커다란 타격을 입힌다. 이후 완성에 주둔하면서 여남으로 내려오는 유비가 완성에 정착하도록 도와주며, 그 사이 형주로 들어가 형남 반란 토벌 및 손권의 강하 침공을 막으면서 유표 진영에 분란의 싹을 심는다. 유표와 채모 괴월 등 형주 호족들이 자신을 견제하려던 것을 유기와 유비를 끌어들여 막아내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유비의 세를 불려주고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세력을 이끌 수가 없기 때문에 유비를 내세우고 자신은 그 아래에서 공신이 되겠다는 것이 장수의 목표.
빙의한 미래 지식 때문에 줄탁동시나 계륵 같이 시대상 아직은 나오지 않은 표현을 무심코 내뱉곤 하는데, 하필 학식깨나 있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는 일개 무부일 줄 알았는데드립 좀 치는데재치있는 말을 한다고 칭찬하는 개그가 종종 나온다. 물론 미래 지식으로 알고 있기는 해도 학문이 깊은 건 아니라서 꼬치꼬치 따지고 들면 대충 얼버무린다.[5]
서서와 방통, 제갈량의 평가로는 상상할 수 없는 통찰력과 유비와 조조에 맞먹거나 그 이상 가는 군재를 가진 걸물이지만, 대성하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결점이 있다고 한다. 서서의 말로는 오래간 함께 해와 손이 잘 맞는 병력만 아끼는 호불호 강한 성격과[6] 어떤 면에서도 잠시도 숨기지 않는 사적인 원한에 의한 움직임을 예로 들었다. 제갈량은 이 탓에 유비의 흥망과는 별개로 조조를 몰락시킬 기회가 온다면 후자를 중시해 유비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고 평했다.[7] 서서는 갓 형주를 장악해가는 유비 세력에 너무 먼 일을 본 걱정이며 장수는 유비가 먼저 자신을 해하지 않는 한 장수는 자신이 위에 서야 할 일을 굳이 무모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장수는 조조의 세력이 안정권에 들어서지 않는 한에서는 유비가 조조의 복수보다는 대세를 위해 손권을 먼저 친다는 선택을 조건부로 지원해주었고,[8] 유비 세력에서는 훗날 익주의 이엄을 능가하는 지분을 가진 대공신[9]이므로 형식상 좌장군 유비 산하세력에 가까운 장수인데도 대등한 대우를 해준다.[10] 그렇게 유비 산하에서 수많은 공을 세우는 과정에서 조비를 처형하고 제 2차 관도대전에서 아들 장천이 조조를 죽이는데 성공하며 복수를 마무리짓자,[11] 헌제를 옹립하면서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12] 업후로서 살아 간다. 아들 장천은 조조를 사살하여 명성이 높아졌고 유비에게 전장군의 관직을 받는다.[13] 장수의 장손인 장후는 북방 이민족이 대거 들고일어났을 때, 양호, 육항, 마융 등을 이끌고 난을 평정했던 명장이며 충무후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장수의 직속 기병인 랑연군은 중국 4대 기병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정예 기병으로 이름을 날린 듯하다.
- 가후
장수의 책사. 본작에서는 조조에게 항복한 후에도 장수와의 연을 기억하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조가의 악랄함을 견디지 못해 실패했다는 언급이 있었다. 회귀한 장수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자, 혼란스러워하다가도 서로간에 진솔한 대화를 통해 실 역사의 비겁한 이미지가 아닌[14] 진실로 능력과 실적으로 평가를 남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며 장수의 제1책사로 활약하게 된다. 이 책사로서의 능력이 엄청난 지라 유비가 내심 탐을 내고 있으며 아직 원 역사에 비해 경력이 부족한 제갈량과 방통도 조언을 구할 정도.[15] 특히 장수의 존경심은 그야말로 남달라서 제갈량과 방통, 서서가 이야기를 나눌 때 장수가 가후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주군인지 헷갈린다고 할 정도다.[16]
이전이라면 가후 본인의 처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모면할 정도의 계책만을 진언했겠지만, 장수와 함께한 뒤에는 유비군의 전략을 설계하는 제갈량과 논의해 전략의 방향을 바로잡거나 참모로 참여했을 때 적극적으로 계책을 진언하게 되었고, 이를 넘어서 위기를 무릅쓰고 마등을 찾아가거나 2차 관도대전 진행 중에 업성에 수행원[17] 한 명과 잠입하여 고관들을 설득하는 등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유비가 조조를 물리친 뒤 양표의 후임으로서 태위가 된다. 원래는 장수처럼 관직에서 물러나려고 했으나 웅지를 더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장수의 설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마지막 화에서 가후의 속마음이 서술되었는데, 가후는 장수를 가슴으로 낳은 아들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났다.[18]
- 호거아
장수 휘하의 부장. 조조가 탐냈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으로,[19] 조조에게 넘어가지 않고 장수의 휘하에서 조조군을 박살내는 큰 공을 세운다. 그 후에도 장수의 오른팔로서 각지에서 활약한다. 제 2차 관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고 이후로도 계속 장수를 섬긴다.
- 감녕
익주에서 난을 일으켰다가 유언에게 진압당해 형주로 도망친 신세. 본작에서는 감녕의 난부터가 유표가 후방에서 조장하고 지원해 일으킨 것이라고 하며, 난이 실패한 뒤 형주로 도피해오자 이제는 처치곤란한 불청객으로 푸대접하고 있다고 한다. 감녕도 이런 대우에 실망해 손오로 넘어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싸우면서 장수에게 감화되어 현재는 완전한 장수의 사람이 되었다. 특히 본인이 원래 의탁하려 했던 손책의 후계자인 손권의 대규모 원정군을 사실상 장수와 자신들 포함 수천 병력으로 막아내면서 능조의 팔을 베어버리는 등 큰 전공을 세운다. 기병이 주력인 장수의 군대에서 휘하 금범적들을 기반으로 한 보병전에 능한 장수이기에 역시 보병전 전공인 황충과 은근한 라이벌 기믹이 있다. 다만 이끌고 있는 병종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공을 다투진 않고, 간접적으로 이번 싸움에선 내 공이 크네 니 공이 크네 따지는 수준이다.[20]
- 왕찬
장수가 장선의 반란을 평정한 뒤 형남의 안정을 구실로 유표에게 빼내온 인재. 원래 역사대로 17세 나이에 황문시랑을 제수받은 천재지만 못 생겨서 유표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가후는 왕찬을 얻으려면 유표의 견제심리를 이용해서 왕개를 청하라고 꾀를 냈고 과연 유표는 아끼는 사위를 보내는 대신 왕찬을 보냈다. 장수는 미래인의 지식으로 왕찬에게 산술대결을 이겼고,[21] 이 후 왕찬을 쏠쏠하게 써먹는데 산술에 뛰어나 말릉성과 유수오 등을 축조하거나, 공성병기를 설계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후장수의 간섭에 시달리며[22] 원 역사처럼 영웅기를 집필한다.
- 위연
장수가 조조의 남정 당시 발탁해낸 장수. 신야성 전투에서 공을 세운 뒤 장수의 지시를 따라 채모의 밑으로 들어가 일종의 첩자로서 활동했다.[23] 채모가 실각한 뒤 장수에게 만이병 5천의 지휘 권한을 받아 장비와 함께 예장에서 황개와 싸우며 군사경험을 쌓는다. 장비가 완성 원정을 나가자 본인이 직접 예장전선을 맡게 된다. 여담으로 정사에 따르면 처음부터 유비의 부곡이었지만, 여기서는 형주군에 소속된 일개 병사였다가 장수가 공을 세울 때마다 파격적인 승진을 시켜줘[24] 장군으로 만들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지만 반골의 상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정사보단 연의의 설정을 많이 채용한 캐릭터다. 원래 역사에서의 자오곡 계책처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작전을 제시하곤 한다. 위험천만하지만 발상의 착안점 자체는 예리하기 때문에 장수도 처음 제시에는 식겁하지만 이를 설계한 이유를 듣고 감탄할 정도. 조비가 한중에 침공했을 때, 곽회가 조비 휘하에 있다는 것을 일전 조비와의 전투를 통해 알았던 장수가 인간 상성인 위연이라면 곽회의 전술을 깨부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데려갔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험지에 있는 아군 본진을 내주고 평지에 자리잡은 상대의 본진을 점령한 뒤 역으로 험지에 가둬서 아사시키는 전략을 제시하여 장수가 조비에게 복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5.2. 조조 진영
- 조조
장수의 원수. 회귀한 장수는 조앙과 전위뿐만 아니라 조조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해 우금까지 기어코 죽이면서 조조와 돌이킬 수 없는 원수 사이가 된다. 언젠가 장수를 씹어죽일 것을 다짐하며 원소와 관도대전을 준비한다. 장수가 가능한 역사를 비틀었지만, 내부 분열이 극심한 원소군과 달리 조조의 깃발 아래 단합한 조조군은 원래 역사대로 오소 습격에 성공하며 원소를 물리친다. 그러나 하북에서 전과가 무색하게 원래 역사와 달리 유비와 장수가 형주에서 세를 확보했고, 하북 정리를 잠시 뒤로 미루고 형주를 정벌하려 한다. 하지만 가후의 책략으로 서량의 마등이 불온한 기미를 보이자 회군해야 했고, 하북의 정세 역시 조조의 바람과 달리 원소가 원담을 과감히 숙청하고 원상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뭉치게 된다. 결국 큰 맥락은 같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원래 역사와 달리 답답하게 꼬여버린 상태다. 그럼에도 끝내 곽가의 계책으로 원상을 몰아내고 기주와 청주를 차지했으나 유비는 이미 형주와 양주, 서주 일부에 이어 합비, 여남, 완성 등을 점령하여 조조 못지 않은 대세력으로 성장한 터라 사실상 조조와 유비의 양강 구도가 되어버렸다. 이후 유비와 장수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허도를 버리고 업으로 천도하고자 하나 관도에서 후미를 잡혀버렸고, 천자는 업으로 피신시킨 뒤 유비군과 결전을 벌이나 끝내 최후의 순간에 장천이 쏜 화살에 목을 맞아 그대로 절명한다. 그의 사후 그의 모든 관직이 삭탈되고 역적으로 규정되는 건 덤.
- 조비
장수의 원수 2. 특히 이쪽은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들여놓고 학대 정황 및 공개 망신까지 준 터라 더더욱 장수가 이를 갈고 있다. 그런데 장수가 회귀한 시점에서 조비는 장수와 딱히 인연이 없기 때문에 졸지에 아버지 잘못 둬서 엄한 아들까지 피해를 본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관우와 제갈량의 허도 침공 때 등장하여 오관중랑장으로서 황궁을 방어한다. 물론 조비의 능력으로는 관우와 정면으로 붙었다면 맥없이 털렸겠으나, 순욱의 안배 상 잠시 시간만 끌면 되는 것이기에 황궁 방어에 있어 사기 진작의 요소로는 조비의 역할이 중요했고 그 역할은 충실히 해냈다.장수는 조비가 나왔단 얘기를 듣고 내가 가서 목을 땄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이후 완성 전투 이전의 서전에서 장수의 량주 기병을 막기 위해 출진하며 장수와 첫 대면을 하게 되고 당연하겠지만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탈출한다. 이후 후계 경쟁에서 밀릴 것 같자[25] 한중 원정으로 이를 만회하고자 하지만 조비가 한중에 원정 온 걸 알자마자 눈에 불을 키고 달려온 장수의 개입으로 인해 또 다시 패배한다. 위연의 계책으로 적진에 고립되었으나, 복수를 갈망하던 장수에 의해 바로 잡히지도 못하고 피골이 상접할 지경까지 포위당해 있어야 했다.[26] 결국 장로가 소설상 대형 떡밥을 던지며 이제 그만 조비는 정리하라고 충고를 하고 나서야 장수는 조비를 잡았고 거기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날 살려주면 조조에게 천거하겠다니 금은보화를 안겨주겠다니라며 비굴하게 굴다가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스토리에서 퇴장하게 된다.
- 우금
조조의 오자양장 중 한 사람. 회귀한 장수가 원래 역사를 되씹어 기습의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에, 조조와 합류하지 못하고 뒤로 몰린 끝에 전사한다. 장수가 굴린 이 스노우볼이 훗날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데, 특히 관도대전에서 맹활약했던 우금이 일찌감치 죽으면서 관도대전의 양상이 미묘하게 바뀌었고, 또 다른 스노우볼에 의해 원소가 더한 삽질을 한 덕에 조조의 승리로 끝나긴 했지만 조조가 천하를 장악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잡하게 꼬인다.
- 하후연
조조가 총애하는 무장 중 하나로 정사에서도 공격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알려진 무장. 여기서도 특유의 신속한 기동을 이용해 유비의 가족을 포로로 잡을 뻔했지만[27] 때맞춰 장수가 개입하며 엿을 제대로 먹는다. 이후 합비로 진격하는 관우와 장수에 맞설 원군으로 출정하게 되는데, 합비의 단단한 방어를 믿고 수춘에 주둔하면서 전황을 우주방어 소모전으로 끌고갈 태세를 취한다. 하지만 합비 공략은 페이크였고 장수가 서주를 공략하면서, 광릉과 낭야를 장수와 원상에게 빼앗겼고, 서주 공략의 미끼 역할을 했던 관우군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히기는 했으나 서주 상실에 비하면 허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장수가 재차 합비 공략을 나섰을 때 원군으로 나섰으나, 장수가 이중 목책으로 합비를 둘러싸는 장기전을 준비해오자 장기인 속전이 막혀버렸고 추수 직후 쳐들어와 9개월이 지난 다음 해 여름에 수공을 통해 합비가 위기에 처하자 포위를 돌파하려 했지만 끝내 실패해서 합비가 넘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유비-장수의 양주(동오) 평정 이후에 벌어진 익양 전투에서 장수군을 공격하다가 장수가 날린 화살이 팔뚝에 관통했고, 주태와 맞서 싸우던 중 손권이 준 명광개를 믿고 일부러 급소를 내어준 주태의 함정에 걸려 가슴 한가운데에 창이 꿰뚫려 죽게 된다.
- 하후돈
연의에선 용장이지만 정사에선 후방 보급 등을 주로 담당한 덕에 삼국지 독자들에게 행보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무장. 조조의 남정 때 선봉대를 이끄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사에 나온대로 이전의 조언을 무시하고 유비를 뒤쫓다가 박망파에서 매복에 걸린다. 연의에서는 서서의 화공에 당했지만 여기서는 정사와 연의를 섞어서 서서가 페이크로 화공 실패를 연출하자 여기에 낚여 깊숙히 밀고 들어왔다가 관우에게 뒤를 급습당해 대패한다. 이후 합비성에 원군으로서 온 마초, 방덕과 함께 출정하지만 장수는 애초에 합비를 점령할 의사가 없었고, 기만 전술에 휘말려 장수가 유수오를 구축하는 걸 방치하게 되어 또 다시 당하고 말았다.
- 곽가
장수의 역습으로 피를 본 조조군을 수습한 책사. 이때 자신 역시 장수의 역습을 눈치 채지 못한 죄가 있다면서 우금과 전위, 조앙마저 잃은 것에 탄식하면서 장수에게 보복을 다짐한다. 이후 건강이 나빠지며 병석에 누웠는데 죽더라도 조조의 승산을 높이기 위해 화타에게 부탁해 독초를 먹고 일시적으로 나아진다. 그리고 조조를 찾아가 자신이 생각해둔 계책을 말하며 고간, 원희, 공손강을 찾아가 원상과 충돌하게 만든다. 결국 최후의 계책으로 원상을 몰아내고 조조가 기주를 차지하는 것을 성공시킨 뒤 사망한다.
- 조인
조조의 최측근 명장. 원소의 객장 신분으로 여남의 반란을 계획하던 유비를 추격하다가 장수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그 후부터 장수를 철저히 경계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유비와 장수를 경계해서 조조군 최고의 명장인 조인이 후방으로 빠지는 바람에,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조조를 만만하게 보고 별동대로 조조군을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패전으로 이어졌다. 장수는 원래 역사대로 원소가 물량으로 찍어누르고 조조가 버티면서 이전투구 양상이 오래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조조가 하북을 정리하면서 곤혹해한다. 이후 하후연과 같이 조조가 믿을 만한 무장들이 대거 죽음을 맞으며 사실상 거의 유일하게 독자 작전권을 지닌 무장이 되었고 2치 관도대전에서도 장수를 물 먹이기 직전까지 가나 장천의 조조 저격이 성공하고 황제의 조조 역적 선포까지 더해지는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나 결국 패하고 조창을 데리고 도망친다. 이후 조창과 장안으로 향해 버티기에 들어가지만 워낙에 관중과 량주가 혼란스럽고 관우, 장비가 하북을 우선적으로 정리하려는 태도가 강해서 사실 맘 먹으면 토벌은 가능하다고 하니 앞으로의 미래는 암울할 것으로 보인다.
- 유복
양주자사. 연의에서 손권에게 굴욕을 안겨준 것으로 유명한 합비성을 일궈낸 장본인. 당연히 장수도 이를 알고 있어 처음에는 아군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간옹과 미축이 지속적으로 설득했지만 흔들리지 않고[28] 오히려 모반을 꿈꾸던 뇌서를 쫓아내기까지 한다. 이후 합비성에서 장수와 대척하지만 애당초 장수의 목표는 합비가 아닌 합비를 도우러 오는 원군이었던지라 제대로 놀아나고 만다.[29] 이후 수성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서 다음에 관우가 발석거를 비롯한 공성 장비까지 동원한 공세를 잘 막아냈지만, 이번 공세 또한 장수는 합비가 아닌 서주의 광릉 공격을 감추기 위한 블러핑이었다. 이렇게 서주를 통해 유비와 원소가 공동전선을 펴서 조조를 견제하는가 싶은 형국에서, 난데없이 장수가 폭우를 예측한 공성 전략으로 합비를 공략해 끝내 항복한다.[30][31] 이후 휘하로 들어오란 제안은 거절하여 자택에 연금당한다. 이후 병으로 죽을 때가 다가오자 장수가 풀어주었고 이후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원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 악진
장수의 1차 합비 공세때 1차 원군을 이끌며 첫 등장. 그러나 장수의 기습으로 무참히 박살나며 일군을 이끄는 지위에서 부장으로 강등된다. 이후 장수의 수춘 공세를 막아내는 역할로 나온다.
- 장료
장수의 1차 합비 공세때 1차 원군을 악진과 함께 이끄나 그와 의견 충돌을 일으키며 결국 악진과 갈라져 본인만 합비성으로 들어간다. 성안에 들어가서 유복의 철저한 준비를 확인하고 원군이 필요 없었겠다며 한탄하고 실제로 큰 활약도 못하고 돌아간다.[32] 이후로도 조조의 주 무장으로 나서나 관우에게 자주 당하는 역할(...). 그래도 관도대전에서 장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조조 진영에서 가장 활약하였으나, 또 다시 관우와의 일기토에서 부상을 입었다. 조인과 조창이 도망갈 때 언급이 없어서 독자들이 조조 진영의 네임드들 중 조인과 함께 가장 으뜸으로 꼽는 장료의 행방을 궁금해했는데, 다음 화에서 2차 관도대전에서 당한 상처가 도져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 진등
현 광릉태수이자 여포를 배신하고 조조에 붙고 손책의 침공을 막아낸 것으로 유명한 인물. 장수가 광릉에 쳐들어오자, 이제 곧 겨울이 와서 해류가 바뀌어 물살을 거슬러 올라와야 하는 배편으로는 보급이 어려워질 테니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겨울철 해류 문제를 이미 알고 있던 장수는 원상과 손을 잡고 하북에서 물살을 타고 내려온 원상군에게 보급을 받아 회음을 공략한다. 결국 광릉 자체를 상실한 채 본인만 간신히 도망쳤다. 이후 장패와 합류하여 게릴라전으로 장수를 괴롭혔으나 유인계에 걸려 패배하고 하비로 물러난다. 유비가 말릉에서 대군을 일으켜 출진할 때, 원 역사와 같이 숨을 거뒀다고 한다.
- 전예
장수의 2차 합비 공세에서 하후연의 부장으로 등장. 유비군 소속이었다는 태생적 약점을 지닌 탓에 서서의 이간계 타겟으로 선정되었다. 비록 전예 본인의 조조에 대한 충성심은 진심이라 찔릴 건 없었지만 결국 하후연은 일말의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쓰지 못했으며 후방에 남아있는 사이 하후연이 장수의 움직임을 읽지 못해 원군이 합비에만 집중하는 사이 서주를 털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후 3차 공세에는 합류하나 합비 수비 전략 자체가 틀어진 상황이라 전예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고, 악진을 따라 수춘성 수비에 가담한다.
- 양수
고사성어 계륵의 당사자로 잘 알려진 인물. 원 역사대로 조식을 후계로 미는 파벌에 속하며 장수의 공세를 막기 위해 조식에게 여러 조언을 주는데, 정사에서도 묘사된 넌씨눈 기질 탓에 정욱이 은연중에 고개를 젓게 만들 정도다. 결국 주유의 계책에 걸려들어 포로로 잡히게 되는데 자신의 인맥을 들먹이며 풀어달라고 하다가 재갈이 물리는 처지가 되고 만다.
- 조식
원 역사에서 조비의 동생이자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인물. 조비를 고립시키고자 한 장수의 책략으로 은연 중에 공을 많이 세웠고 그렇게 차기 후계자로서의 기반을 닦던 중 벌어진 주유와 장수의 공세로 포로로 잡히게 된다. 그나마 전생의 장수와 직접적으로 원한이 있던 건 아니라서 일단 목숨은 부지했다.
- 순욱
원 역사에서 조조의 책사들 중 넘버원으로 항상 거론되는 인물. 관우의 허도 기습 공세 당시 유일하게 이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대응하여 천자가 유비군에 넘어가는 사태를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조조가 위공이 되자 이를 막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자결한다.
- 정욱
순유, 순욱, 곽가, 가후 등과 같이 원 역사 조조 초기 책사진을 담당하던 인물. 여기서는 장수로 인해 순유와 순욱 등이 빠르게 리타이어하면서 명실상부한 조조군의 넘버원 책사가 된 상태다.
- 사마의
조조가 업 천도를 결정했을 때 잠시 등장. 천도를 반대하려 했지만 장수의 거래를 받아들인 동생과 아버지의 제지로 끝내 말을 하지 못한다.
5.3. 유비 진영
- 유비
주인공인 장수가 조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조조의 대항마로 선정한 인물. 원소의 객장 신분으로 여남에서 조인에게 쫓기는 것으로 첫 등장했다. 그러나 쫓겨오던 조인군은 장수에게 격퇴당하고, 장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완성으로 들어간다. 완성으로 들어간 이후 유표의 지원을 받으며 조조를 견제했고, 조조군이 남하를 개시하자 완성을 버리고 형주로 피난한다. 그 과정에서 원래 역사에서 번성에서 강릉으로 탈출할 때처럼 백성들을 데리고 갔다. 다행히 장수의 개입으로 장판파 전투 같은 난리판은 벌어지지 않았고 무사히 형주로 입성한다. 이후 형주에서 세력을 형성하며 장수의 적절한 도움에 힘입어 형주의 실권까지 장악한다. 결국 강동 원정까지 성공하여 손권의 항복을 받아내며, 형주 일부와 익주만 가지고서 위와 맞섰던 원래 역사와 달리 세를 크게 불리고 있다.
결국 헌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어 한나라를 이어간다. 후세에는 대영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듯하다.
- 관우
유비가 여남에 파견될 때까지만 해도 모습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후 합류하며 등장한다. 동탁의 휘하에 있던 장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와 같이 지내다보면서 그 능력을 인정하며 인지부조화에 빠진 장비를 꾸짖기도 한다. 여강을 공략한 장수가 형주로 돌아간 동안 여강의 방위를 책임지기도 했으며, 이후 강동 원정에서는 말릉을 함락시키는 공을 세운 뒤 장수와 함께 합비를 공격하러 간다.[33] 제갈량과 함께 허도를 급습했으나 순욱의 적절한 대처로 물러났고, 회계 공략 때는 영끌모드로 나온 주유와 한타 싸움을 벌여 최후의 승리를 얻어낸다.[34] 명실상부한 유비 진영의 에이스이자 만인지적. 이후 아들인 관평의 소개로 자신의 딸과 장수의 아들을 결혼시키기로 약조한다.[35]
- 장비
여남에서 조조와 전투를 벌이다 장수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첫 등장. 소인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답게 동탁의 휘하에 있던 장수를 경멸했으나 역시나 시간이 흘러 그 능력을 인정한다.[36][37] 이후 예장에서 황개와 싸우며 겸사겸사 위연도 키워주다가[38] 유비의 부름을 받고 그와 함께 완성 공격에 나선다.
- 간옹
유비군의 원로. 성격이 거친 장비와 관우를 적절히 중재하며, 유비의 심리를 읽어서 장소의 분위기를 끌고 가는 분위기 메이커. 첫 만남 당시 장비가 대놓고 장수를 비난하면서 험악해진 분위기를 적절히 중재했다.
- 서서
유비가 처음으로 얻은 책사. 장수가 유표의 요청으로 양양으로 갔을 때 저잣거리에서 왈패들과 싸우는 서서를 발견해서 유비에게 천거했다. 강동에 파견되는 정보원으로서도 활동하기도 하는 등 장수와의 교류를 이어가고 그 덕분에 유비 밑에 있으면서도 장수와 가까운 인물 중 하나가 된다. 장수의 심계를 경계하는 제갈량에게 그는 한계가 뚜렷하고,[39] 주공께 호의가 있으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할 정도다. 원래 역사에서는 장판파 전투에서 어머니가 조조군에 붙들려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투항했지만, 장수가 역사를 바꾸는 바람에 장판파의 난리통 자체가 벌어지지 않아 계속 유비 밑에 남게 되었다.
- 조운
장수가 바꾼 역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유비 진영에서 피해를 본 인물. 장판파에서 무사히 철수하는 바람에 조운의 활약상 자체가 통째로 삭제됐고, 유비가 형주에서 세를 얻는 동안 관우, 장비의 위명은 모르는 이가 없지만 조운은 그냥 유비군 장군A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그 능력이 어디 간 건 아니라서 장수는 몇 차례 조운을 데려와서 조커로 유용하게 써먹는다. 원래 역사에선 유비 사후 제갈량의 북벌 즈음에 일선 지휘관으로 나서게 되지만, 역사가 바뀌면서 관우, 장비 다음으로 일군을 이끌며 활약하게 된다. 무용 뿐만 아니라 기병 지휘관으로서 역량도 뛰어나기 때문에 사전에 간단한 지침만 내리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조운의 판단에 맡길 정도로 유비와 장수의 신뢰를 받는다.[40]
- 방통
연의에서 사마휘가 와룡봉추로 칭찬한 인재 가운데 봉추. 양양의 호족인 방가의 일원으로서 나이도 꽉 찼으니 슬슬 사관하라는 압력을 받고 모실 만한 주군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일찌감치 유표는 싹수가 노랗다고 보고 친구 서서와 무언가 일을 꾸미는 장수의 그릇을 재보기 위해 제 발로 찾아온다. 장수는 방통이 충성을 바칠 주군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난세를 평정하기 위한 도구로서 적합한 주군을 찾는다는 점을 간파하고는 유비와 연결시켜준다. 이후 유비와 형주 대호족 가문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완성 전투에서 장비 옆에 붙어 함께 싸워 승리를 이끈다.
- 제갈량
연의에서 사마휘가 와룡봉추로 칭찬한 인재 가운데 와룡. 원래 역사처럼 서서가 유비에게 추천했으나, 유비가 두 번이나 몸소 방문했는데도 거절하는 바람에 관우와 장비는 분노했고,[41] 서서와 유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그런데 장수가 유비 곁에서 바람을 잡아준 덕분에 마음을 굳힌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영입한다. 정사와 연의를 적절히 섞은 듯한 캐릭터로, 여러가지 변수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사전 정리작업을 거쳐 싸움을 시작한 순간 이미 이긴 싸움이 되는 책략가이다. 때문에 이게 처음부터 끝까지 맞아떨어지면 작두 탄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42] 반대로 상대가 도중에 필승공식을 꼬아버리면 나가리판이 되는 단점도 있다. 오군 공략에서는 주유가, 허도 공략에서는 순욱이 카운터를 날리면서 자칫 패배로 끝날 뻔했다.[43] 서주 출신이다 보니 광릉 수복 이후에는 그쪽으로 가서 관우와 미축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으며 이후 주유와 육손 등 오나라 측 책사들이 대거 합류하며 부담이 줄어 원 역사의 과로사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술 논의를 좋아해서, 랑연군을 상대로 원앙군을 모티브로 얻은 대 기병[44] 전술을 확립하였고, 장수가쪼잔하게 지기 싫다는 마음에궁기병을 이용한 스웜 전술을 선보여서 곽준이나 관평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냐고 원망의 눈빛을 보낼 때도 제갈량 본인은 이런 대처방법도 있었다며 오히려 대 기병 전술을 논의하려 들 정도.
- 육손
어린 나이에 육가의 가주를 맡은 젊은 기재로, 장수가 서서를 보내 미리 끈을 대서 동오의 속사정을 알려준다. 손책이 죽은 직후라서 아직 손가의 휘하에 들지 않았으며, 손책에게 가문이 크게 피를 봤기에 내심 손가를 증오한다. 원래 역사와 달리 손가와 화해하는 대신 형주에서 유비가 세를 펴자 손가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담한다.[45] 이후 회계로 물러난 손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으며 손권의 공세 당시 이릉대전처럼 화공 작전으로 승리를 거두나, 이를 역이용한 주유의 계책으로 오군을 내줄 뻔한다. 다행히 장수의 빠른 판단으로 인해 주환이 신속하게 오군에 도착하며 큰 화는 피했다. 하지만 끝내 손권 세력에서 주유의 입지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침투한 세작을 역이용해 거짓 정보를 퍼뜨려 오군 점령을 위해 친정을 나온 손권군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했고, 대의를 위해 복수를 위한 손가 멸문 대신 항복을 받아내는 쪽으로 타협을 본다.[46]
장수에게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강동을 제패해가던 손가와 애매한 사이였던 육가의 가주인 그에게 처음 손을 내민 것도 장수였고, 육손이 어린 나이임에도 회계에 고립된 손권의 상대를 맡기도록 유비에게 보증을 서주기도 했으며, 주유에게 계책을 역이용당했을 때도 이는 어찌 보면 육손이 손가 세력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므로 육손이 좌천될 수도 있는 문제였으나 이에 대해서도 변호를 해준 듯하다.[47] 그 외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육손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는지, 육손 본인이 다소 곤혹스러울 정도였다고.
- 주환
본디 오나라 대표 호족 세력인 주씨의 인물로 유비의 강동 원정 당시 오군을 방어하였으나 장수에게 패하며 포로로 잡힌다. 이후 육손이 유비 휘하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유비 세력으로의 귀부를 결심했으며 가문의 사병인 주가군을 이끌고 전장에서 활약한다. 무능한 상관을 싫어했다는 원 역사처럼 마침 양주의 내정을 맡던 서서의 골칫거리가 되어있어서 합비 공략을 고작 3만 명[48]을 끌고 가겠다고 하자 서서가 주환과 주가군을 떠넘겨버렸다(...). 그럼에도 우연히 상황이 맞물려서, 마침 장수가 생각했던 전략인 합비를 둘러싸고 성을 쌓아 말려죽인다는 임무 때문에 막 합류했던 주가군이나 위연의 만이병, 감녕의 금범적, 황충의 원앙군 모두 동격의 임무를 하달받았고[49] 합비 공략에 성공하여 공적을 세운 직후, 육손의 계책이 진행되는 상황을 들은 장수의 지시로 위연과 함께 오군을 역격하려던 주유군을 저지하는 공적을 세운다.[50] 이에 육손과 주유가 펼쳤던 서로간의 두뇌싸움에 감탄하면서도 이 둘의 두뇌싸움을 멀리서 지켜보고 바로 최선책을 지시한 장수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여담으로 구봉과 라이벌리가 있다. - 구봉
첫 등장은 합비 수성전에서 유비가 파견한 원군의 수장 중 한 명으로써 등장. 원 역사대로 유비가 양자로 삼으려하고 있었고 그 미래를 잘 알고 있던 장수가 이를 막기 위해 서주의 해적 토벌을 핑계로 서주에 묶어두며 시간을 끌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감부인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며 자신이 입양을 받아들였다면 위험해졌을 걸 깨닫고 멍 때리다가 장수에게 감사를 표하지만 그래도 내심 영웅의 후계가 될 기회가 사라짐을 아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 요화
연의가 아닌 정사를 반영하여 형주의 호족으로 나온다. 다만 한중 공방전 즈음에 유비에게 임관했던 정사와 달리, 유비가 조조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백성들을 거느리고 완으로 물러난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유기에게 임관을 청해 유비 진영에 가담했다. 이후 관우의 부장으로 활약한다.
- 곽준
형 곽독과 함께 장수가 형주에서 발탁한 인재. 원래 역사에서 관우가 형주 공방전에서 목숨을 잃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주변 인물들과 불화였기 때문에, 장수는 자신보다 관우가 거느리는 편이 더 좋다며 강권하다시피 떠맡겼다. 관우는 입으로는하여간 요즘 애들은곽준이 매사 너무 신중해서 탈이라고 핀잔을 주지만 내심 어떤 명령을 내려도 척척 수행해내는 곽준을 어여삐 여기며 절강 대전에서도 중책을 맡길 정도다. 그리고 곽준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며 강동 정복에 큰 공을 세운다.[51]
5.4. 손권 진영
- 손책
원 역사와 같이 뛰어난 전투력으로 강동을 정벌하며 세를 키우는 무장. 그러나 이를 경계한 조조의 암약과 본인의 무모한 행보 탓에[52] 엄백호의 사위였던 주숙렴이 보낸 자객들에게 살해당한다. 장수는 원래 역사에서 손책이 허도를 공략할 작정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격한 성품을 저어해서 손책과 손을 잡는다는 구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참고로 암살 자체는 원래 역사와 같으나, 이 작품에서는 장수가 서서를 통해 주숙렴에게 좋은 무기를 팔아치운 탓에 시행이 더 빨랐다.
- 손권
이 소설 속 바뀐 역사로 인한 최대 피해자. 형이 죽고 나서 강동을 물려 받고 4만이 넘는 병력을 몰고 강하 원정 시작하는 것까지는 원래 역사와 같지만,[53] 강하 원정에 장수가 개입하면서 본진을 급습당해 목이 날아가기 직전 상황까지 놓이는 등 제대로 몰린다. 이후 주유의 책략으로 조조를 형주로 끌어들였지만, 조조도 신야에서 농성하는 문빙과 장수를 뚫지 못하고 결국 강하에서 아무런 성과도 못 거두고 철수한다. 이후 형주에서 세를 확보한 유비와 장수가 대대적인 강동 원정을 감행하며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오군도 잃어버리고 회계로 밀려난다. 이후로도 오군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세를 펼치나 끝내 실패하고 회계마저 항복하자 더이상 저항할 힘을 잃고 투항했다. 이후 교주자사로 임명되어 교주로 떠나는데, 이에 반발하는 손익에게 자신이 유비와 같은 입장이었더라도 똑같이 했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하게 했을 거라고 말한다. 유비가 조조를 물리친 뒤에는 새로이 양주자사로 임명되어 돌아온다.
- 주유
역시나 바뀐 역사로 인한 최대 피해자 2. 회귀한 장수가 극도로 경계하는 인물이기 때문에[54] 웅지를 펴볼 만하면 어김없이 장수의 방해 공작이 들어온다. 손책이 죽은 뒤 강하 원정을 이끌었는데 황조를 대패시키고 성을 포위해 승리를 목전에 두었지만 하필 장수가 개입하면서 태사자를 잃고 정보가 농락당하며 순식간에 위기 상황에 놓인다. 채모의 정병을 격퇴한 사이에 후퇴하는 척 하면서 우회한 장수에게 손권 역시 죽을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는 등의 대실패로 원정이 끝나기 직전에 놓였으나 조조가 남방 원정을 하게끔 판을 짜놓으며 응수한다. 그러나 조조가 신야에서 막히며 생각보다 재미를 보진 못했고 뒤이어진 강동 원정에서도 유비와 장수를 막지 못하고 오군까지 빼앗겨버린다. 그래도 강동의 주랑이 허명은 아닌지라 제갈량이 짜놓은 판을 뒤집어엎을 뻔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힘이 달려 실패한다.[55] 그래도 후퇴하면서 지속적으로 유비군을 괴롭히며 혼을 빼놓았다. 이후에도 육손의 화공을 간파하고 이를 역이용해 오군을 점령할 뻔해서 육손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었다. 유비 조조 원상이 서로 대치에 들어가자 잔뜩 몸이 달은 손권의 독촉을 받아 오군 탈환을 위해 공세를 벌였으나, 결국 육손의 기만전술이 적중하며 후퇴한다. 손권이 항복한 이후에는 좌장군 직속으로 들어가 유비군의 새로운 책사로서 활약한다.
- 태사자
손권 진영의 최고 맹장. 손권이 황조를 치면서 조커 역할을 맡기기 위해 예장에 병졸을 남겨두고 태사자 본인만 몰래 불러왔다. 이 계책이 적중해서 황조의 수군과 유표가 보낸 유반의 원군은 대패한다. 당연히 원군으로 문빙을 보낼 줄 알았던 장수는 뒷목을 잡았고[56], 직접 판을 뒤집기 위해 가후와 상의하여 태사자를 꾀어내어 죽인다. 이 일은 단순히 동오 1티어 맹장의 이른 퇴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손권과 동오의 세력이 주저앉는 스노우볼이 된다. 태사자가 예장에 부곡을 남겨두고 손권의 병사를 이끌다가 죽은 것 때문에 가뜩이나 호족 기반인 동오 장수들을 중앙에서 통제할 명분을 잃었고, 적벽대전에서 노장 정보와 같은 비중을 지녔던 주유가 손권의 완전한 신임을 얻지 못하고 발언권이 약화된다.
- 여몽
괄목상대 하기 이전의 혈기 넘치는 용장 여몽. 강하 원정 중에 장수의 기병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패퇴했고, 손권이 중용한 이후 승승장구하던 여몽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장수의 서량기병대가 정보를 우회해 본영을 습격하자 호거아와 다른 부장들을 상대로 악전고투하며 손권의 퇴로를 연다.
- 정보
손견 대부터 손가에 충성한 노장. 뛰어나지만 젊은 주유가 군권을 쥔 것에 은근히 불만이 있었고, 황조를 지원한 장수와 상대하면서 가후에게 이 점을 공략당한다. 주유가 계획한 전법으로 싸우다 패퇴한 여몽 대신에 장수를 압박했으나, 장수는 처음부터 정보가 주유에게 가진 반감을 이용해 정보를 상대하는 척하다가 몸을 빼서 손권의 본진을 들이친다. 그제서야 복귀해 장수를 막으려 했으나 하필 장수가 자기 대신 보내놓은 사람이 다름 아닌 황충이었던 탓에 한참을 맞싸우느라 끝까지 돕지 못했다. 유비에 의해 강동이 함락된 이후 동기들인 황개, 한당과 함께 교주자사 직을 맡은 손권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아 교주로 떠난다.
- 주태
태사자가 강하 전쟁 중에 장수에게 죽고 감녕은 동오로 넘어오지 않은 작중에서 동오 제일의 맹장. 손권이 내려준 명광개를 믿고 기마술을 동반한 장수의 일격을 막아내거나[57] 유비 세력에 편입된 이후 하후연에게 역시나 명광개를 미끼로 헛점을 노출한 뒤 이대도강의 수법으로 하후연을 죽이는 공을 세운다. 관도대전에서도 허저가 이끄는 정예병에 정면으로 맞서고 분위장군에 임명되는 등, 손권의 휘하에서 항복한 인물들 중에서는 흔치 않은 수혜자가 되었다.
5.5. 유표 진영
- 유표
장수를 지원해 북쪽의 방패로 삼고 있는 형주의 군벌. 감투뿐인 자사직을 가지고 내려와서는 호족을 끌어들인 암투끝에 형주를 장악한 걸물. 그러나 호족들의 이반과 본인의 군재 부족을 알기에 장수와 황조 등을 지원해 방패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장수의 이름값이 높아지고 유비가 형주 쪽으로 오자 그들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황조도 손권의 강동 원정을 장수 덕에 막아내면서 장수-유비쪽에 붙자 채모, 괴월 등의 일부 대가문과도 협력을 하지만 채모와 괴월이 장수의 안배에 의해 권위를 잃게 되면서 유기에게 실권을 넘기고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 골방에 쳐박힌다. 이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사망하게 되는데, 사망 시기를 예측한 장수가 이에 맞춰서 군사훈련을 한 때문에[58] 유표의 죽음이 유야무야 넘어가버렸다(...)바뀐 역사로 인한 최대 피해자 3
- 유기
유표의 장남으로 동생인 유종을 밀어주는 아버지로 인해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고 이에 장수가 형남에서 자신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카드로 선택해서 형남으로 이동한다. 명목상 장수의 직속상관이니 장수의 공이 유기의 공도 되는지라 점점 권위가 상승하고 장수의 교병지계 때 장수를 실각시키려는 채모와 괴월을 유비와 협력해 양양에서 저지하려 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게 되고 교병계가 통해 채모, 괴월이 몰락하며 명함뿐이나마 형주의 실권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러나 몸도 약하고 유기도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는지라 직접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실권을 유비와 장수가 휘두를 수 있게끔 해주고 있으며 그 덕분에 현재 비중도 공기다. 그럼에도 장수에게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며, 장수의 3차 합비 원정 때 원군을 정예로 보내줄 것을 유비에게 간곡히 부탁하기도 한다.[59]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병상에 누웠고, 병문안을 온 장수에게는 고마움을, 왕찬에게는 미안함[60]을 드러낸다. 장수와 왕찬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자 편하게 눈을 감았고, 숨을 거두기 전에 유비에게 자신의 후임을 정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 황조
유표와 협력 관계인 강하의 군벌. 손권의 강하 침공 당시 주유에게 수전에서 패배해 극월성에서 수만 대군에 포위당한 신세였으나, 장수의 도움을 받아 손권을 밀어내는데 성공했으며 이때의 도움 덕에 역시 지원을 왔으나 무참히 깨진 채모를 갈구는 데 동참하기도 한다. 그 후 형남 정벌을 하는 장수를 지원해 1만의 수군과 자기 아들까지 보낸다.
- 채모
형주 대가문 중 하나인 채씨 가문의 수장. 유표의 후계자 자리에 유종을 밀어주는 탓에 유기 세력으로 간주되는 장수와 은근 반목하는 사이였으며 특히 손권의 강하 침공 당시 손권의 목을 벨 뻔할 경지까지 간 장수와 달리 자신은 무참히 깨져버리며 황조와 장수에게 갈굼받는 신세까지 전락하며 더더욱 반목이 깊어진다. 조조가 주유와 손 잡고 남하하자 채모의 이반을 경계한 장수에 의해 발언권을 크게 억눌린다. 그 결과 장수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유표의 암묵적 지지하에 장수를 실각시키려 하지만 장수가 대공을 세우며 실패하고 결국 형주에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이 후에는 여남 태수가 된 주유의 사항계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음으로써 조조와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유비 휘하에 남기로 결정했다.
- 괴월
채모가 채씨 가문의 수장이라면 이쪽은 괴씨 가문의 수장으로, 채씨와 괴씨는 유표의 후계로 유종을 미는 대표적인 호족이다. 역시나 채모가 영향력을 상실할 때 덤으로 쓸려 나간다. 이때 죗값을 자처하며 정계에서 잠시 발을 뺐지만, 유기의 후원자를 자처하는 유비가 형주에서 인망을 얻는 한편 오와 합비를 차지하며 세력을 넓히고, 원소 사후 조조가 예상 밖으로 원상과 지지부진한 대치를 이어가며 삼국정립 양상을 보이자,간보기를 끝낸괴월과 괴량은 유비에게 임관을 청하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다.
- 황충
삼국지연의에서 오호대장의 일원으로 삼국지 독자들 사이에선 유명한 장군이지만, 소설 첫 등장 시점에선 유표 휘하의 중랑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사실상 찬밥 신세였다. 형남 반란 토벌 때 장수가 데리고 가며 인연을 맺은 뒤, 장수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원앙진을 다루는 병사들을 육성하며 장수를 따라다니며 전장에서 활약을 이어간다. 사실 유표 휘하에서 빛을 못 본 이유는 차마 FM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꼬장꼬장한 성격이라 형주 정계에 단단히 찍혔던 것이고, 장수 밑이라고 그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장수는 활 잘 쏘는 장수들은 죄다 그렇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다(...)일단 태사자는 맞았다.여담으로 장수가 등용한 또 다른 유표 휘하 장수인 감녕과 라이벌리가 있다.
- 문빙
원 역사에서 손권에 맞서 수십 년간 강하를 지켜낸 철벽 수문장. 여기서는 장릉에 주둔하며 여남의 이통을 견제하고 있으며 이전에도 장수가 형남 반란 토벌 때 데려가고 싶어했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으로 언급되었다. 이후 강하 원정 때 밀리게 된 손권 측에서 조조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남쪽에 손을 쓰면서 이통의 발이 묶이자 방통이 재빠르게 설득해서 신야성으로 오게 된다. 거기서 장수와 함께 직접 친정을 온 조조의 군세를 막아내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유비의 강동 원정 때 수군을 지휘해 관우와 함께 움직이며 말릉을 점령하는 공을 세우기도 한다.
5.6. 원소 진영
- 원소
소설이 시작된 시점에서 조조와 대립하는 하북의 최강자. 초반에는 여포와 원술이 아직 살아있던 만큼 큰 충돌 묘사는 없었으나이 후 유비가 여남에 내려오기까지의 과정이 스킵되며[61] 이들이 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조조와 대립한다. 사실 이 소설에서 장수가 주로 활동한 지역이 형주나 강동이어서 하북의 원소는 직접적인 등장보다는 언급만 되는 형태로 등장한다. 이후 역사와 달라진 점은 원 역사에선 관도대전 초반에 쓰고 버린 별동대 전략을 장수와 유비가 성공을 하면서 계속 밀어붙이다가 실패한 것.[62] 다만 그 과정에서 병력 2만을 더 살렸다는 소소한 이점[63]도 얻어냈고 조조의 손을 빌려 마음에 안드는 첫째 아들 원담의 힘을 완전히 빼버린 뒤 청주자사 직위 박탈 및 원담의 심복인 곽도를 자택 연금까지 시켜 후환을 확실하게 제거하지만 원 역사의 급사 행보는 피하지 못했다. 다만 원 역사와 달리 후계 정리를 확실히 했기에 하북은 원소의 사후에도 원상을 중심으로 뭉쳐 조조에게 제대로 된 저항을 해내고 있다.[64] 하지만 결국 유주에 파견된 원희마저 원상을 배신하는 바람에 원상 대에 원씨 세력은 몰락하고 말았다.
- 원상
원소에 의해 공인된 하북 원씨 세력의 후계자. 역시나 직접적인 등장보다는 언급만 되는 편으로 주인공인 장수가 일으킨 나비효과 덕에 더욱 확실히 후계 자리를 굳히게 되고 아버지가 죽자 몰려오는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 형주의 실권을 장악한 유비에게 직접 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다만 원상의 나이가 너무 어린지라 내부에서도 불안해하는 인사들이 있었고[65] 대표적으로 여광, 여상 형제가 동평을 조조에게 들어 바치려 하지만 신비가 눈치채서 막아내는데 성공하고 본인도 이를 기반으로 조조를 잘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병주자사 고간이 끝내 배신하면서 그쪽 관련해선 좀 꼬이긴 했지만 그래도 원 역사에 비한다면 상당히 수월하게 상황을 풀어나가고 있다. 다만 원소의 핏줄은 어디가지 않는지 책사들이 또 봉기 파벌과 심배 파벌의 대립 구도가 되는 바람에 서주에 발을 담그게 되고 이 때문에 전력이 나뉘어져 당장의 이득은 봤으나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안되는 상황에 처했다.[66] 서주 점령 외에는 세력 유지만 어찌저찌 해내고 있었으나 결국 고간을 미리 정리하지 못한 게 화근이 되어, 곽가의 계책으로 고간, 원희, 공손강이 군대를 일으켰고 조조군까지 개입하여 기주를 잃고 청주로 피신하게 된다. 유비에게 구원 요청을 해보았지만 이미 원상의 효용이 다했다는 판단 하에 유비도 적당히 도와주는 생색만 냈고, 사실상 주 근거지를 잃은 약소 군벌로 전락하게 된다.[67][68] 원상의 세력이 약체화되자 사실상 유비와 조조의 남북 대결이 되었고, 조조 세력의 패망 이후 헌제에게 칭신했다. 헌제가 장수를 유비의 견제 카드로 삼으려 했지만 장수가 이를 알고 미리 사직을 요청하자 원상을 대체로 내세웠으나, 원상의 입지는 장수에 비해서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유비가 선양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원 역사에서 요동의 공손강에게 통수 맞고 죽은 것을 생각하면 원 역사보다 오래 살면서 황제의 푸쉬까지 받아봤으니 나름 수혜자라 할 수 있다.
- 원담
원소의 장남이지만 끝내 후계자가 되진 못했고 특히 관도대전에서 살아남은 2만의 병사 대부분이 자기 휘하였던지라 관도대전 직후에는 뻣뻣하게 고개 들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못할 권위가 있었다.[69] 다만 이를 내버려둘 원소가 아니었던지라 창정에서 원담을 강제로 선봉에 서게 했고 결국 대부분의 병력을 상실하며 힘을 잃게 되고 청주자사 직위가 박탈되었으며 오른손이던 곽도까지 발이 묶여버렸고 원상이 권좌에 오른 뒤에는 아예 원담 본인도 가택연금되어 철저하게 감시당하는 등 움직일 방법도 없는 상태다. 실제로 조조가 원담을 이용해 하북을 흔들어보려 했지만 워낙 철저히 감시되고 있어 어렵다는 곽가의 말에 단념할 정도다.
- 신비
원 역사에서 사마의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위나라의 신하. 여기서는 역사대로 원소 휘하에서 복무하고 있었으며 본디 형을 따라 원담파에 속해 있었지만 장수의 경고를 듣고 재빠르게 원상파로 갈아타 화를 피했다. 이후 원상파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심배와 봉기의 바로 아래에 위치할 정도의 권위를 얻었으며 봉기가 내심 경계할 정도다. 이후 여광, 여상의 배신을 간파해 막아내는 공을 세우며 원상의 총애를 얻게 되고 군사중랑장의 지위에 오르게 되며 이 지위로 장수의 광릉 원정군에 물자를 지원해주기도 한다.
5.7. 장로 진영
- 장로
원 역사에서 한중을 장악했던 오두미도의 수장. 삼국지 속의 난세의 현장에서 한중에 틀어박혀 철저히 중립적 태도를 고수하다가 조조가 공세를 퍼붓자 유비에게 도움을 청한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흔한 삼국지 대역물의 잠깐 등장하는 군벌로 보이지만... 280화에서 직접 등장하고 나선 장수와 대화를 아는데 장수의 지난 환생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으며 조비에 대한 복수는 일단 정리하면 요술서를 주겠다고 말한다. 현재 소설상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시한 인물.
5.8. 기타 진영
- 마초
마등이 조조에게 신종하는 길을 택하며 량주 기병을 이끌고 조조를 돕는 것으로 첫 등장. 당연하겠지만 주인공의 적대 세력을 지지하는 만큼 장수에게 밀리거나 제갈량의 함정에 시달리거나 장비와 일기토 뜨다가 치명상 입거나 하는 등 소설상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개고생을 겪는다. 그러다가 한중 공방전에서 장수의 충고를 받고 더 이상 조조의 개가 되지 않겠다고 하며 기병을 이끌고 빠져 나간다. 이후 조조가 전사하고 잔존 세력이 조창과 조인의 인솔하에 관중으로 갔다고 하니 이들과 적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 방덕
마초의 부관이자 친우로 한 번 빡돌면 눈 돌아가는 마초의 제어장치 역할도 겸하는 인물. 한중 공방전에서 마초가 반조조 행보를 걷기로 결심하며 그 역시도 조조와 적대할 것으로 보인다.
[1] 관도대전이 조조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 사실상 천하대세가 결정나기 때문.[2] 물론 이는 진정으로 통일을 막기 위함이 아닌, 유비의 세력기반으로 형주와 양주를 생각하고 있고, 이 기반이 갖춰지기 전까지 조조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함이다. 당장 최강의 세력은 원소지만 실질적인 역사를 아는 장수나 가후, 제갈량, 방통, 서서 등을 비롯한 책사진들은 조조가 곧 원소 세력을 압도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3] 조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대항마로 선택한 유비의 세력이 안정권에 들어서자 익주를 제외하면 유비 조조 원상 3개 세력의 삼국정립 구도로 흐르고 있다. 원래 역사에서 형주를 3개 세력 모두가 일부를 점유했듯 바뀐 역사에서 서주를 3개 세력이 나눠 가진 점도 비슷하고, 원상이 서주 점유를 위해 뒤통수를 시도한 것마저 동일하다. 차이점이라면, 익주의 경우 익주로 들어갈 길목(한중, 형주)을 모두 점령한 유비가 조조와의 빠른 결전을 위해 방치해두었기 때문에 작품 끝까지 독립된 세력으로 남았으며, 장강 방어선을 낀 손권과는 다르게 원상은 조조의 공세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해 사실상 청주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이탈해버렸고 원상 자신을 배신한 고간(병주), 원희(유주), 공손강(요동) 등과 비슷한 규모로 쪼그라들어 사실상 유비-조조 이강체제로 접어들게 되었다.[4] 이는 휘하 기병들의 신임을 얻기 위한 안배였다. 원래라면 아예 추격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았으나 호전적인 양주 기병의 불신을 살 우려가 있기 때문.[5] 천재 기믹이 있는 등장인물 가운데 왕찬은 업무 짬처리로 입을 막아버릴 수 있지만, 미래의 사위나 다름없는 소년 주불의가 찾아오면 쩔쩔매는 개그가 나온다.[6] 즉,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울타리에 들이지 않기에 세력 확장에 큰 제약이 있다. 유비나 조조가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세력을 확장하거나 온존한 모습과 같은 걸 보여줄 생각이 없다는 뜻.[7] 제갈량 뿐만 아니라 작중 다른 인물들도 '조조가 죽을 죄를 지은 건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장수가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가' 의아해한다. 회귀한 장수 입장에서는 전생에 본인을 포함한 일가족의 원수지만, 이 시대 사람들 눈에는 숙모를 욕보인 죄를 추궁하는 것이니. 오히려 장남과 호위무사, 핵심 장수를 살해당한 조조가 장수에게 죽자고 덤벼야 정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타도 조조를 외치는 처지에 대놓고 이를 지적하는 인물은 없다.[8] 손권이 멸망하지도 않았는데 합비를 먼저 친다는 선택을 했던 건, 시간을 주었다가 합비가 아예 난공불락이 되어 조조가 마음 놓고 원상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갈량조차도 합비의 사정을 파악한 뒤 납득했다. 장수 역시 조조의 복수가 우선이되 가후의 조언을 받아들여 유비 세력과 척지지 않게 적절히 양보할 땐 양보해주었다.[9] 원래 역사와 달리 여남에서 유비를 구해주며 어느 정도 군세를 갖출 수 있었고, 장수 자신이 지키던 완성을 내주어 형주에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양주 점령에서도 육손과의 내통을 미리 구상하고 오군 점령에서 공을 세우는 등 활약하여 사실상 유비의 세력 기반을 만드는 데 장수의 공은 제일에 가까웠다. 또한 조조의 남진을 피해 백성을 이끌고 남하하던 유비를 구해준데다, 책사들을 천거해 유비 세력의 대전략을 구성할 수 있었고, 구봉의 입양을 막아 후계자 분쟁조차 없애주었기 때문에 유비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은혜를 입은 셈. 사실 원 역사에서 이엄이 탁고를 받기 전까지의 (역사 기록 상의) 공적은 장수에 비견될 수 없는 수준이다.[10] 다른 군웅이라면 은혜를 입고도 언제든 상황이 달라지면 입을 싹 씻겠지만, 인의를 앞세우는 유비라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은혜를 잊지는 않을 것이라는 장수의 계산도 있었다.[11] 2차 관도 대전의 마지막 순간, 조조를 눈앞에 두고 화살이 다 떨어져 자신의 손으로 조조를 죽이지 못하게 되자 닿을리 없는 창을 던지고 한탄했으나, 마지막 남았던 화살 한 발이 아들 장천에게 주어졌고, 장천이 조조를 격살하게 된 것. 장수는 이를 두고 자신 역시 조조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지만, 1회차 인생에서 자신을 죽인 것은 조비였으나 장천을 죽인 것은 조조였고, 이 때문에 복수 역시 장천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순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12] 헌제는 장수를 유비의 견제책으로 내세울 작정으로, 특별히 공을 치하하면서 청을 한 가지 들어준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장수는 헌제가 여전히 유약함을 보였고, 애초에 본인의 지향점 역시 조조-조비에게 복수를 한 뒤에는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직을 요청하였다.[13] 장천은 장수가 은퇴하자 본인도 은퇴하려 했으나, 이렇게 되면 유비가 장수를 아예 정계에서 배제하려고 은퇴시켰다는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유비가 적극적으로 말렸다고 한다. 사실 유비 세력에서 장수가 거의 자신 수하인 랑연군을 비롯한 정예 기병을 전담하다시피 한데다 장수 본인이 유비와 대립할 의사가 없음을 은퇴로 드러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장천이 유비 세력의 핵심인 관우의 사위였기 때문에 랑연군을 장천이 이끌게 하는 것은 유비에게 명분으로나 실리로나 이득이었다.[14] 그렇지 않아도 이 시점에서 이미 동탁과 사도구의 부하로 있던 데다, 자신이 제시한 계략으로 사도구가 삼보에서 벌인 깽판 탓에 이력에 큰 흠이 있는 상태이다.[15] 둘 모두 유비 휘하에 들어간 시점이 208년 이후인데, 200화 기준으로 아직 207년이다. 원래 역사라면 두 사람 모두 재야에 있을 시점이며, 이론이야 나름 충족되었지만 이를 실전에 펼칠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경험이란 것이 중요하게 묘사되는데, 그 주유마저도 장수의 기병을 이론상으로만 알고 여몽에게 대 기병 전술을 전수해주었으나 여몽이 실전과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완전히 탈탈 털려버린 것이 대표적이다.[16] 유비 세력 내에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양보를 했던 장수이지만, 가후만큼은 내줄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을 만큼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 장수는 하루 빨리 조조의 복수를 하고 싶어하지만 가후의 조언을 듣고 유비의 양주 정벌을 지지하는 등, 가후의 조언을 항상 귀담아듣는다. 1회차에서 가후의 조언으로 위풍의 난과 연루되기 전까지 장수가 조조의 은밀한 토사구팽을 피한 기억도 장수가 가후에게 호감을 갖는 이유다.[17] 이 수행원이 바로 위풍이다.[18] 회귀한 장수가 가후에게 시류에만 맡기지 말고 주도적으로 살라는 조언이 가후에게 있어서는 평생 남을 뻔한 후회를 남기지 않게 해준 조언이었던 것이다.[19] 보통 장수의 숙모 추씨가 주목받지만, 호거아도 조조가 직접 뇌물까지 주면서 빼오려고 했을 정도로 유능한 무장이라는 기록이 있다. 작중에서는 호거아에게 황금을 내려 장수에게 이간책까지 펼친 것으로 묘사된다.[20] 원앙진을 습득한 농병을 이끄는 황충이 야전에서 수비와 토벌전 위주인 반면, 금범적을 다루는 감녕은 주로 공성전과 수전에서 활약하기 때문이다. 역할 자체가 겹치지 않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공을 비교할 뿐이라 싸움 전에 서로 임무를 자기가 맡겠다고 전공을 다투는 갈등양상을 나타날 일이 없다.[21] 이게 왕찬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영웅기를 집필하던 왕찬에게 이 일을 다시 끄집어내자 바로 격분하면서 다시 대결하자고 악을 쓴다(...)[22] 영웅기가 전후편으로 나뉘었는데, 후편의 경우 장수의 간섭으로 서술하지 못한 내용들을 적어둔 것이다.[23] 장수 역시 의도치 않게 연의처럼 반골의 상의 이미지를 씌우게 된 터라 위연에게 내심 미안해했다.[24] 방통은 공을 세워서 직위를 올려준 게 아니라 공을 세우라고 직위 먼저 올려준 거 아니냐고 딴죽을 걸었다. 물론 장수 입장에서도 재능을 알고 있었으니 십인장 직위는 미리 준 것이 맞다.[25] 조비가 장수에게 대패한 당시에 조창과 조식은 공을 세웠기 때문.[26] 장수의 생각으로는 저놈은 남의 고통을 느껴봐야 한다 했었다. 특히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가정 자체를 파탄내버렸으니 더더욱 그렇게 고통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명령으로도 아예 조비를 죽이고 항복하면 벌하고, 그냥 도망치면 살려주겠다고 했을 정도.[27] 덤으로 이 때 유비의 가족들과 함께 서서의 모친도 있었기 때문에 서서는 장수에게 은혜를 입은 셈이 되었다.[28] 다만 장수는 어차피 유복의 상위호환인 제갈량을 얻을 텐데 영입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찔러본 것에 불과했다.[29] 유복 입장에서야 당연히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지만, 이를 보고받는 조조의 입장에서는 자신조차 패배시켰던 장수에게 합비가 위험해보이는 것이 당연했고, 하북을 침공한 상황에서 대규모 원군을 꾸리지 못하니 당연히 장수가 잡아먹을 수 있는 규모의 원군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30] 추수 직후 합비를 이중 목책으로 포위한 뒤, 다음 해 여름까지 진득하게 포위했다. 원군으로 파견된 하후연은 공성이 실패하고 퇴각하는 적군을 추격해 피해를 입히는 역할이었어서 목책을 공성하는데는 부적합했고, 포위당한 합비성의 유복군 역시 수성에만 일가견이 있었을 뿐 성 밖을 나서는 순간 오합지졸이 될 게 명약관화해서 이중 목책을 통한 포위를 뚫어낼 수 없었다. 그나마 낙관적인 상황이라면 포위에도 불구하고 합비성의 군량이 추수 직후라 꽤나 넉넉하다는 점이었는데, 장수는 이 점을 이용했다. 이중 목책을 이용한 포위는 사실 페이크였고, 진짜 계책은 몰래 건설한 둑을 폭파시켜 합비를 수장시키는 것이었다. 마침 추수 이후에 들이닥친 공성전이라 백성들까지 성내에 몰린 상황에서 물난리로 인해 군량이 모조리 바닥난 상황이 되었고 덕망으로 유명한 유복이 이를 방치할 수 없어 끝내 항복을 받아냈다. 유복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혼잣말로 심배였다면 항복하지 않았을거라고 중얼거린 건 덤이다.[31] 장수는 조조를 죽이기 위해 북진이 유일한 길이지만, 유비는 손권을 끝장내고 형주와 강동을 아우르거나 혹은 원래 역사대로 파촉을 차지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때문에 유비의 관심사를 세력 안정이 아닌 타도 조조로 돌리기 위해서는 북벌의 거점이 될 합비를 꼭 점령해야 했다.[32] 유복의 수비군은 수비에 특화되어 있어 야전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하는데다 장료는 고작 500명의 결사대만 이끌고 성 안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원군과의 기각지세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1차 원군은 박살나고 정작 원군에 남아있으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장료는 무력화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33] 정확히 말하면 관우만 합비를 공격하며 시선을 끄는 동안 장수는 슬쩍 서주로 빠져 그곳을 공략하는 책략이었다.[34] 병력 수는 주유가 우위였으나 정예 병력이 손권에게 대부분 배치되어 있던 주유에 비해 관우는 정예를 거느려서 팽팽한 싸움이었지만, 형주에서 얻은 요화 곽독 곽준이 오의 숙장들 못지 않게 잘 싸워준 덕분에 승패가 갈렸다.[35] 원래는 장수의 딸 장은과 자신의 차남(관흥)을 연결해 줄 생각을 했으나 혼처가 이미 정해진데다 장수의 아들에 대해 관평이 호의적으로 말해주어 성사되었다.[36] 다만 능력은 인정하지만 둘 간의 사이는 대놓고 대립각만 안 세울 뿐 썩 좋진 않다. 장수만 봤다하면 말을 틱틱 쏘고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가는 말이 곱진 않으니 장수 역시도 말이 곱게는 안 나오는 모습을 보인다. 관우와 장수가 사돈이 된다는 말에 왜 하필 그 집안이랑 사돈 맺냐며 한탄하기도 한다.[37] 이는 장비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면이 큰데, 군자는 우대하지만 소인은 대놓고 혐오한다고 정사에도 적혀있다. 북방 출신인 장수의 성격도 군자와는 거리가 머니 그래서 싫어하는 것.[38] 3차 합비 원정에 불려온 위연은 궂은 일인 예장 수비를 스승인 장비에게 떠넘긴 셈이라 생각했는지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39] 호불호가 너무 명확하고 인재들을 소수 정예로 운영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장수에게 임관하지 않고 유비에게 갔다는 의견도 덧붙였다.[40] 장수의 무한신뢰에 오히려 조운이 '도대체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이렇게 믿어주지?' 곤혹스러워할 정도다. 그도 그럴게,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기병대장으로 활약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장수는 이미 유비조차도 이기지 못했던 조조를 이긴 몇 안되는 명장이었던데다 그의 휘하 기병은 명성이 매우 높은 양주 기병이었기 때문이다.[41] 가후는 제갈량이 두 번이나 거절했던 이유를 추측하기를, 만인지적이라 불리는 관우와 장비가 유비의 양팔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곧장 임관하면 관우와 장비에게 휘둘릴 여지가 크므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함이라고 한다.[42] 특히 마초가 제갈량의 매복계에 혼쭐이 났다. 매복을 피해서 우회하는 족족 새로운 매복에 걸렸다(...)[43] 다만 카운터라고 해서 주유나 순욱이 절대 여유롭지는 않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받아치고 운 좋게 그게 통한 상황이었다. 순욱 같은 경우는 원상과 대치하던 병력을 빼내 허도를 침공하는 관우를 쳤는데, 원상이 고간과 대립하는 입장인지라 당장 군대가 이동해도 바로 빈틈을 노리지는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벌인 도박이었다. 반대로 주유의 경우 전술 측면에서 제갈량에게 꽤나 곤란함을 먹이기도 했지만, 이를 예측한 장수와 가후가 바로 오군으로 들이닥친다는 비책을 적중시켜 결국 주유가 상황 역전에 실패하고 말았다.[44] 조조가 북방을 어느 정도 평정했으므로 호표기의 전력이 강해졌기 때문에 이를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45] 덕분에 오군 정벌에서 가후, 제갈량, 육손 위촉오 삼국을 대표하는 세 책사가 작전회의를 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46] 장수는 복수의 기회를 육손에게 직접 주고자 했고, 양주에 파견되었던 관우는 손가를 품으려는 유비의 계획이 손가 멸문과 함께 틀어질 것을 우려해 장수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 육손은 이에 대해 자신이 직접 손가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대의와 복수를 타협함으로써 관우와 장수를 중재했다.[47] 사실 육손이 유비 세력 내에서 친한 파벌이 몇 없기도 했다. 같이 항복했던 오군 사성 중 인척관계인 고가의 고옹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가문은 경쟁관계이기 때문.[48] 심지어 3만 명 중 1만 명은 갓 징집한 농병이었다. 이전 관우와 함께 합비 공략에 나섰을 때도 4만 명으로 갔던 걸 생각하면 합비 공략을 하기엔 적은 병력이었다.[49] 주환이 계속해서 주가군을 어필했던 것도 중요한 임무를 달라는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주환이 불만을 품지 않을 상황이 된 것.[50] 만약 합비 공략전에서 주가군에게 공적이 적게 돌아왔다면 주환도 의심해서 이를 듣지 않고 항명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에 불만이 없던 상태인 주환도 처음 오군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골칫거리처럼 보이는 주가군을 오군으로 돌려보내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할 정도로 장수의 지시가 터무니없었기 때문.[51] 방금 막 합류한 후군으로 우회하는 적을 막으라는 임무였는데, 곽준은 관우의 지시를 이해하고 휴식을 취하되 전투 태세를 풀지 말 것을 강조했고 원 역사대로 다수의 적을 상대로 후군을 방어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주유의 노림수를 격파했고, 곽준을 믿은 관우가 전방에서 주유군을 격파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52] 암살에 대해 말해봐야 도리어 의심만 살 테니 암살당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정도로 격한 성정의 소유자였다.[53] 사실 완전히 같지는 않다. 원 역사에서는 손권이 200년에 후계를 물려받은 뒤, 황조 토벌을 시작하는 해가 203년이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장수의 안배로 인해 이술이 반란을 시작하기도 전에 숙청당한 데다 손보는 반란 의도를 숨겼기 때문에 후계를 물려받았고, 암살을 시행한 주숙렴의 배후에 형주 호족이 있다는 정황이 진작에 발견하면서 당장 강하 원정을 시작할 배경이 되었다.[54] 아예 '내가 천하에서 인정하는 다섯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공공연히 말한다.[55] 육손이 배반해서 강동 정세를 알려주고, 제갈량의 고전을 상정한 가후의 책략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유가 더 뛰어나다고 보기도 힘든 것은, 손견 시절부터 경험을 쌓아온 주유와 달리 제갈량은 첫 출전이였고, 육손은 항장에 어린 나이라 유비의 믿음을 사지 못해 계책이 일부만 쓰였다.[56] 이는 유비가 완성에 자리잡은 뒤 워낙에 빠르게 민심을 잡아서 유표의 경계심을 산 게 원인이었다. 때문에 유비를 막을 역할로 문빙을 남기고 상대적으로 문빙보다 능력이 부족한 유반을 파견했던 것.[57] 태사자 역시 작중에서 무예 자체는 장수보다 우위였으나 기마술의 차이로 인해 장수에게 죽고 말았다.[58] 장수는 유표의 죽음을 틈타 조조가 남진을 할 것을 우려하여 미리 조직력을 맞춘 것이었다.[59] 유비의 결정에 아무런 의견을 달지 않는 유기가 유일하게 나서는 경우가 장수가 전쟁에 나설 경우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 뿐이라고 한다.[60] 당사자인 왕찬은 용모가 추레한 자신을 피하던 유표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유기는 자신 때문에 왕찬이 중앙인 양양에서 벽지인 장사로 좌천되었다고 생각해서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61] 취소선 처리했지만, 장수와 가후가 유비를 반조조 세력의 수장으로 삼을 계획을 수립한 게 여포와 원술의 멸망 이전 유비가 조조의 밑에 의탁하고 있을 때였으며, 계획이 수립된 이후 작중에서는 (원 역사처럼 전개되어) 유비가 여남에 별동대로 파견된 내용이 바로 진행되었다.[62] 장수는 이를 듣고 힘을 잔뜩 끌어모아놓고는 잔손질이나 하다 망했다고 표현했다.[63] 2만이나 더 살리긴 했으나 당장은 이점이 아니었다. 2만이라는 병력이 죄다 청주 쪽의 병력이라 원담의 세력이 그만큼 커져 후계자 대립에서 원상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원소에게 더 큰 골칫거리가 되었기 때문. 실질적으로는 장수의 안배로 신평-신비 형제가 원담 지지에서 원상 지지로 선회한 덕에 관도대전에서의 실책이 죄다 곽도에게 몰려 원 역사에 비해 후계 구도가 안정화된 것이 컸다.[64] 물론 여광, 여상 형제와 고간이라는 예외가 있긴 했지만 원 역사의 내분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고 그나마도 여광, 여상은 제대로 배신도 못하고 신비가 파견한 견초에게 컷당했다.[65] 이는 유비와 제갈량도 똑같이 염려한 상황이다.[66] 서주의 일부를 가져온 탓에 유비 세력을 별도로 경계해야하기 때문. 오히려 서주를 온전히 내주었으면 원상과 유비 사이의 경계선이 산맥이 되어 유비 쪽의 경계는 훨씬 적은 전력으로 방비하고 병주를 탈환할 전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67] 제갈량이 원앙진에 영감을 받아 생각해낸 대 기병전 전술도 꺼내들지 않은 채로 적당히 패배를 방치했고, 오히려 청주에 조조의 시선이 쏠린 틈에 하후돈이 지키던 완성을 탈환한다.[68] 사실 유비 입장에서는 원상을 도울 이유가 없어진 것이 맞다. 기존에야 유비와 원상이 힘을 합쳐야만 조조와 동등한 세력이 될 수 있어서 원상의 서주 일부 점유를 눈감아주거나, 허도 급습 당시 서주에 뒤통수를 친 것도 넘어갔으나 남방 개발이 완료되고 유비 단독으로 조조와 맞설 수 있는 세력이 된 상황에서는 원상은 괜히 세력을 유지시켜주었다가 조조와 연합하면 골치만 아파질 수 있었기 때문.[69] 실제로 신비가 허유를 고발하면서 원 역사의 오소 참사를 막을수도 있었지만 원담이 일부러 쉬쉬해버리는 바람에 오소 참사는 그대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