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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9:23:47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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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원인4. 비판 및 반론5.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어의 관용구로, '사람은 천성이 바뀌지 않으므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계몽하고 교화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뉘앙스의 속담들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등이 있다.

2. 배경

현직 형사들이 특사 등으로 사면된 범죄자들이 사회에 적응을 못 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 년만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다가 체포된다고 자주 증언하고[1] 뉴스에서도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전과 n범)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이 소개되면서 생긴 인식이다.[2] 미디어 특성상 자극적이자 부정적인 사례만이 너무 자주 소개되다 보니 이게 일종의 밈이 된 것이다. '공포 마케팅'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을 보면 사람의 갱생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사람을 죽여 무기수였던 가해자를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근 교수는 그를 초등학교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로서 정성을 다해 옥중 뒷바라지를 다해주며 조기에 석방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경찰행정학과 교수로서 미성년자 때 실수한 후배를 다시 고쳐 쓰면 갱생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며 법원도 그렇게 판단하여 풀어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수가 수백만 원의 생활비를 여러 차례에 대주자 나중엔 사업 자금을 대줄 것을 요구했고, 거절당한 후에 결국은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 그래서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말도 있다.

사람에게는 경로의존성이 있다. 특히 인간의 이념은 20대 때 형성되어 이후엔 잘 안 바뀐다고 한다.# 실제 20대 때 막노동을 하다가 변호사가 된 장승수와 같은 사례는 있긴 하지만 이것도 드문 사례이며 나이를 먹어갈수록 극적인 변화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다. 일례로 '대도' 조세형은 갱생하여 목사가 됐다고 여러 차례에 나왔는데 결국 일본에 선교하러 가서도 절도하다가 체포되어 망신당해 그를 믿고 적극 변호하던 엄상익 변호사가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 유명한 조폭 출신들도 맨날 갱생했다며 선교사 활동한다고 미화되다가 어느 날 다시 불미스러운 일에 엮여 감옥에 가는 등 이런 사례들이 언론에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사람은 고쳐 쓰기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특히 이 인식이 진실임이 못 박히는 데 영향이 컸던 TV 프로가 바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인데 백종원이 성심성의껏 솔루션해주자 앞으로 잘 따르겠다고 했으면서 얼마 못 가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방송이 조작이라 주장한 뚝섬의 장어집과 경양식집의 주장이 시청자들의 분노를 상당히 끌어냈고, 나중에 이대 백반집[3]이 긴급 점검 방송이 악의적 편집으로 나갔다며 맞대응을 하겠단 발언으로 이 속언이 상당히 주목 받았다.[4]

군대에서도 말썽을 일으킨 사람들의 과거를 조사할 때도 드러나는데 장교 준사관 부사관 군무원 병 할 것 없이 후임이나 부하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대개 과거에도 학교나 직장에서 집단으로 남을 괴롭히던 전적이 있다. 원인도 많은데 묶어서 보면 선천적으로나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후천적으로 열등감이 있거나 자존감이 부족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즐거움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 패턴을 보면 쌓인 분을 풀듯이 비꼼과 패드립 같은 욕설로 시작하여 같이 괴롭힐 사람들이 알아서 참여할 시간을 준 다음,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협박과 물리적 폭력 등을 아낌없이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군대 부조리로 인한 사건 사고 기사가 대부분 이 루트를 탔다. 괜히 나쁜 짓 하지 말라고 해서 살해당하기도 한다.

군 내 부적응으로 군무 기피를 하던 사람들의 과거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괴롭혀진 경우가 꽤나 빈번했다. 물론 쓸데없이 나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역시 자신의 과거를 희석하기 위해 상당히 밝게 행동하려다가 위의 집단에게서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부와 동기들이 조금만 코칭해 줬으면 본인은 물론 군인들에게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을 것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랬으면 매년 2개 대대를 완편하고도 남을 인원들이 복무 부적응으로 보충역 편입이나 제대하거나 심하면 면제를 당하고 상처만을 안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상술한 문제 집단이 군무 기피를 위해 이를 연기하거나 후술한 피해 집단이 보상 심리로 같은 피해 집단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는데 심사하는 간부들과 병영 생활 상담사 등 심사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를 알고 있음에도 너무 대놓고 티를 내지 않은 이상에야 그냥 눈감고 넘어가 줬다. 그 이유는 '괜히 붙잡고 있어봤자 아군에게 총질밖에 더 하겠나?'와 '저런 밥버러지를 위해 굳이 국가의 돈을 처들여야겠나?', '사고 나면 괜히 우리에게 책임 소재 올 수도 있다'가 가장 주요했다.

여담이지만 이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 여기는 천리마 운동 시기부터 인간 개조를 핵심 개념으로 가졌으며 모든 인간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개조하는게 국가의 정책이다. 김일성계형순를 3번이나 혁명화(좌천) 보냈다가 복귀시켰다를 반복하고 나서 역시 사람은 고쳐쓸수 있다라고 발언한 적도 있을 정도다.

3. 원인

3.1. 복잡성

사람을 '고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사람은 일반 물건과 달리 일원화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은 처음부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데 수제품이야 그 특성상 다원화될 수 있지만 목적이 있고, 기성품에는 '규격'이 있어서 그것에 문제가 생겨도 결국은 설계가 벗어나진 결함이 발생하지는 않으며, 여러 종류의 기성품들을 놓고 보면 제각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제각기 설계와 목적이 있다.

콘텐츠는 개발되는 내내 또는 업데이트되는 내내 경험과 학습이 쌓이고 변화해 설계가 벗어나지거나 목적이 바뀔 수는 있지만 특정 환경 속에서 변화하니 기존 버전이 보존되지 않는 이상은 거의 다원화되지 않는다. 한글로 예를 들면 양력 1446년 10월 9일 사회에 진출한(반포)[5] 이후 한국어의 변화에 맞춰 조금씩 바뀌어나가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문자라는 역할이 바뀌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맞춤아기처럼 설계되어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며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살아가는 내내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도 경험과 학습이 쌓이고 변화한다. 즉, 똑같은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 자체가 다른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인간은 같지만 경험의 차이로 다른 인간이 되기도 한다. 한날한시에 같은 유전자로 동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유전적 문제나 훈육 차이 문제로 다른 존재가 되고, 서로 태어난 곳도 태어난 시기도 부모의 출신도 가르침을 받은 선생도 다르지만 환경의 영향으로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똑같은 물건을 써도 똑같은 방법으로 쓰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쓰는 목적이 다르기도 하다.

이렇게 모든 개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겪고 있는 문제 또한 서로 다르고, 따라서 사람을 고칠 때는 개개인에 따른 특성 파악과 그에 기반한 효율적 프로그램을 설계하여 고쳐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러기에는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 자원이 상당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며 개인주의화가 상당히 진행된 선진국,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규모의 경제와도 유관한 문제이다. 물건으로 따지면 주문제작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속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비슷한 면도 있으며 '조별 과제'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그렇다고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서로 다른 것 또는 어려워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해주고 용납하는 것도 아니다. 아나바다, 이웃간 교류 등으로 물건을 장수만세시키도록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을 나누어 스트레스 등을 풀면서 이런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만 무관심/외로움, 물가 상승, 지구 온난화(관련 영상), 세대 갈등/세대 차, 음식물 쓰레기, 층간소음 등은 걱정하면서도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가난할수록 돈 버는 데 집중할 뿐이며 자녀와 함께 사는 헬리콥터 부모이면 이웃을 멀리하면서 돈이 잘 되는 취업/취직을 할 것을 강요하는 황금만능주의적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현재 열악한 환경에서 안 되니 다른 환경에서는 더 안 된다는 식으로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제성이나 가정 형편 등을 이유로[6][7] 해당 개체의 갱생 가능성을 잠정적으로 부정하는 일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주 발생하며 이를 반영한 것이 해당 속담이다. 이는 비정규직, 빨리빨리가 판을 치는 이유와도 유관하다. 그러나 맞춤아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라는 책도 나왔다.

예를 들어서 고금석삼중 스님의 극진한 설득과 지도로 개심하여 말면에는 불가에 귀의하고 기부도 하는 등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김선자는 삼중의 극진한 설득과 지도를 듣기는커녕 선량한 척 연기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자신은 무죄라고 우겼으며[8] 처형되기 직전에 본색을 드러내 부자들에 대한 증오와 자기정당화를 유언으로 남겼다. 똑같이 교화해 보려고 노력했어도 누구는 교화되었으나, 누구는 교화되지 않은 것이다.

3.2. 편견 및 고정관념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떤 인물이나 사물, 상황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내려 자신의 관점을 확립한 뒤에는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해도 이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길거리에서 나도는 수많은 사이비 종교유사과학들이 이를 증명한다. 한 번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 믿음의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근거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예단한다. 유명한 유사과학인 지구 평평설 주장론자들의 논지를 예로 들 수 있다.

첫인상이 주는 느낌은 강렬하다. 해당 문서에서 설명되었듯이 약 62%의 확률로 직장 생활에서 첫인상이 계속 유지된다. 즉, 3명 중 약 2명 가량은 자신이 처음 그 사람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고는 그것을 잘 바꾸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 첫인상을 반박할 수 있는 여러 모습이 존재함에도 이러한 확률이 나온는 것은 초두효과가 그만큼 강력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면인 사람의 한 가지 행동을 보면 그 인상이 그 사람을 향한 첫인상으로 강렬하게 남아 '그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식의 논리가 탄생한다. 설령 그 사람이 이후에 상반되는 행보를 걷는다 하더라도 그의 전 행동을 본 사람들의 약 2/3 가량은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는 식의 인식을 지배적으로 갖고 있어, 그의 새로운 행보에 그 저의를 의심하거나, 아예 믿지 않아버리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린다.

이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편리한 판단을 내리고 그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전에 자신의 관점도 올바르게 고쳐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 사람을 중립적이자 종합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9]

4. 비판 및 반론

문장만 놓고 본다면 다수의 짧은 경험을 통해 다소 무분별하게 공감받을 수 있는 주장이며, 실제 장기적이고 통계적인 현실과는 괴리가 심하다. 즉,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명제 자체는 논리적이라기 보단 감정적으로 주장될 수 있는 부류에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개심해서 새출발하는 사람도 있는 만큼 이 말은 이분법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이론 가운데 ‘역사의 종말 환상(End-of-history illusion)’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나는 이미 충분히 변화했고, 충분히 많은 경험을 했어. 지금이 내 역사의 거의 마지막이야. 그래서 앞으로 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도 비슷하다. 물론 이 '역사의 종말 환상'은 '자신'에 대한 예측에 관한 이론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람은 의외로 쉽게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의 실험을 따라가 보자. 길버트 교수가 40세 사람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가치관과 성격이 얼마나 변할 것 같은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이들이 답한 변화의 정도는 고작 10%였다. 변해봐야 10% 정도만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50세가 된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난 10년 동안 가치관이나 성격이 얼마나 변했나요?”라고 물어보면 완전히 다른 답이 나온다. 이들 대부분은 “많이 바뀌었지. 세월이 참 무섭더라고. 마흔 살 때에는 내가 진짜 공격적이었는데, 쉰이 되니 많이 차분해졌어.”라는 식으로 과거를 회고한다. 50세 응답자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변화를 측정한 수치는 평균 40%였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조금 전 그런 답을 한 50세 응답자에게 “그러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얼마나 변할까요?”라고 물으면 그들의 답이 또 보수적으로 바뀐다. 그들은 “에이, 앞으로는 변할 일 없죠. 내 나이가 벌써 쉰이에요.”라며 변화의 가능성을 축소한다. 응답자들이 답한 자신의 미래 변화의 정도는 고작 5%에 머물렀다. 하지만 60세 응답자에게 “지난 10년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변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이 사람들은 “50대가 예상외로 참 다이내믹하더라고요. 인생관도 많이 바뀌었어요.”라고 답한다. 이들이 답한 10년 동안 자신의 변화를 측정한 수치는 30%나 됐다. 어느 나이에서도 사람은 미래의 변화를 현실보다 매우 보수적으로 예측하는 셈이다.

실제로 출소하고 재범을 저지르는 이들도 많지만 각종 통계를 보면 재범률이 결코 100%인 건 아니다. 높은 재범율은 그 결과만 보지 말고 왜 재범을 저지르는지 그 원인을 봐야 알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교도소소년원 시설이 너무나도 열악하여 재사회화 교육이 거의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 있는' 사람을 고치는 방법은 교도소나 보호소 같은 시설에 모아두고 그저 보편적 효과만 낼 수 있는 교정법을 일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고작이다. 단순히 자유를 박탈하고 오래 가둬놓기만 하므로 사람이 변할 계기부터가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원을 예로 들면 소년원에서는 성격 교정이 이뤄지지 않고 직업 교육이 주로 이뤄지며 교정 시설은 딱 한 곳만이 존재한다. 가끔 주어지는 인성 교육 시간에서도 전문적 심리학자도 아닌 일반인이 따분하게 앞에서 도덕적 이야기와 훈곗거리만 늘어놓는다.[10] 관심병에 걸린 사람에겐 병먹금이 답이라지만 아무에게나 무작정 병먹금으로 일관하면 황금만능주의에 빠지는 등 가정이나 사회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게임 중독 관련 글 쉽게 말하면 설렁탕, 매운탕, 그라탕 등을 한 곳에 모아두고 음식들의 맛을 개선하겠다면서 닥치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과 같은 행위다. 이러니 누구는 교정의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누구는 전혀 보지 못하고, 누구는 오히려 악화되는 것이다. 우화 '팔려가는 당나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막상 이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면 피해자의 보상 심리 등 때문인지 솜방망이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패자부활이 거부되는 것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느릿느릿' 문서의 예시처럼 본인, 왕족, 귀족, 평민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매우 많은 노력을 했다. 공동체, 생활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1-1, #1-2, #1-3, #2, #3, #4, #5, #6).

대중은 항상 편향된 정보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는 가용성 편향 또는 생존자 편향으로도 설명된다. 이 말은 으레 재범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인터넷이나 신문 등의 기사, 자극적인 연애 사연 등을 보면서 내보내기 쉬운 말이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정말 깔끔하게 회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매스컴이나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항상 자극적이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다루기에 출소한 전과자가 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면 대서특필되지만, 개과천선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았다고 해서 기자가 일일이 찾아다니지는 않으며, 그런 걸 보도해봐야 대중의 관심을 못 받는다.

이 말은 사람이 '스스로' 고칠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정하는 대상은 사람 자체 말고 '사람을 고쳐 쓰려 하는 행위'에 있는 점도 자주 간과된다. 개요란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이 말은 타인이 나서서 행동을 교정하거나 계몽하려는 행위를 만류할 때 쓰는 말이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개과천선하려는 사람을 좌절시키거나 조롱할 때 쓰는 말이 아닌데 후자의 뜻으로 오용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 갱생하게 도와주려는 것을 견제하기도 하거나, 흉악범은 갱생될 수 없다며 범죄자의 교화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엄벌주의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라며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되기도 한다. 이는 논리적 오류 가운데 인신공격의 오류(연좌·정황 오류)와도 맥이 닿아 있으며 갱생 수단, 민심 회복 수단 등을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셈이기도 하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 관련 글들(1, 2)이나 마음의 상처, 복고, 좋았던 옛날 편향, 향수 등등 관련 글들(#1#2)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5. 관련 문서


[1] 식객 설날 떡국 편에서 현직 형사인 등장인물이 특사 등으로 출소한 이들 중 많은 수가 사회에 적응 못하고 짧으면 한 달, 길게는 반년 뒤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고 언급한다. 해당 에피소드의 메인인 강만성이 사기 전과 4범, 최동철이 혼인 빙자 간음 3범이다. 후일담에서 허영만이 현직 형사를 취재하면서 얻은 정보라고 한다.[2] 이 말이 나타나게 된 대표적인 계기가 망언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이다.[3] 맛이나 조리법을 바꾸는 것은 주인장의 마음이지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위생 차원에서 불량하게 되돌아갔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손님의 만족도가 떨어졌는데도 백종원의 이름을 팔아 거짓으로 홍보한 것도 문제가 된 지점.[4] 물론 백종원의 진심이 담긴 독설을 듣고 변화한 홍탁집도 있으므로 무조건 속단해서는 안 된다.[5] 이 날은 남한의 한글날이기도 하다.[6] 성과를 중시한다. 일이 닥치는 대로 수습에 치우치기보다는 원인을 살펴서 처음부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옳은데 불편한 진실을 못 본 척 해결하는 것이 더 당연하게 여겨진다. '황금만능주의'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7] 한편으로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하려는 이유일 수도 있다. 사람은 기계보다 충격에 대개 약하며 밥을 먹고 자야 되지만 기계는 잘 만들어지면 전기를 공급하고 어느 정도로 식혀주는 것으로 되며 기계비도 인건비보다 싼 편이다.[8] 이 때문에 삼중조차도 그 말에 속아서 정말로 김선자가 무죄라고 한때 믿어 재심을 부탁하기도 했다. 증거가 너무 명확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9] 그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이는 발생적 오류이다.[10] 청소년 전문가들이 미성년자 범죄 처벌 강화에 회의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교정시설부터가 대단히 열악한데 이곳에 사람들을 더 많이 밀어넣으면 훨씬 더 열악해지고 사람은 사람대로 달라지지 않는다. 무기력을 학습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