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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정한 50인의 인물로,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였다. 선정을 위해 KBS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내외 전문가그룹 100명과 인구 통계학적 분포에 따라 성별, 연령별로 구성된 KBS 국민 패널 1,800여 명이 참여한 1차 설문 조사로 100명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하였다. 이어 3주간 KBS 공영방송 50주년 홈페이지(kbs50.kbs.co.kr)를 통해 일반 시청자 7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하였다.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최종 50인은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KBS를 빛낸 50인 선정자문위원회’에서 적격성 검토를 거쳐 확정되었다. [A]: 가요무대 음악 감독을 맡은 KBS 악단장으로, 2022년 사망하였다. [B]: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을 기획, 연출한 PD. |
<colcolor=#000,#fff> 허참 許參 | Heo Cham | |
<colbgcolor=#fff,#191919> 본명 | 이상룡 (李相龍) |
출생 | 1949년 11월 30일[1] |
황해도[2] | |
사망 | 2022년 2월 1일 (향년 72세) |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 |
묘소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노동길 181 경춘공원묘원 |
본관 | 전주 이씨[3][4] |
신체 | 172cm[5], 70kg, 250mm[6] |
학력 | 영남상업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학 / 학사)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과정 수료) |
종교 | 개신교[7] |
직업 | 방송인, 가수, 배우 |
가족 | 아버지 이광연(1922.3.31.-2004.9.30.) 어머니 이명복(1928.10.13.-2021.3.8.)[8] 슬하 1남 3녀[9] |
활동 시기 | 1970년 ~ 2022년 (5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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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MC, 코미디언, 가수. 특히 가족오락관 사회자로 한국 예능계의 레전드급 인물로 이름을 남겼다.2. 생애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드라마에 심취하여 성우 흉내로 사람들을 웃기는데 능했고,[10] 학창시절 다니던 웅변학원[11]에서 발음법과 발성법, 화술을 배우면서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갖게 되었다. 1970년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한 허참은 이등병 때부터 부대 웅변대회에서 1등을 따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문화선전대 진행요원으로 뽑혔고 군 생활 내내 위문공연 MC로 활동했다.1973년 전역 후 방송인이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허참[12]은 처음엔 군대나 고향 친구 집을 떠돌다가 정동 MBC 부근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친구 집에 더부살이로 정착하여 채소나 생선 배달 등 잡일로 생계를 꾸리며 방송국 근처에서 계속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군대 친구와 종로에 놀러간 허참은 당시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 들렀다가[13] 통기타 그룹 쉐그린 공연 후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어 무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선대 MC 3년 경력을 살려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보일 정도로 입담을 과시하여 무대의 가수들과 관객들을 배꼽잡게 만들었다. 허참의 말솜씨에 감탄한 쉐그린 멤버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라고 묻자 허참은 "아... 기억이 안납니다" 라며 능청을 떨었고, "허 참,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는 면박을 "아 그래요, 제 이름이 바로 허참입니다" 라고 재치있게 받아치면서 클럽 안의 사람들을 전부 빵 터뜨렸다. 이것이 부산 청년 이상룡이 허참이란 예명을 쓰게 된 계기였다.[14]
허참의 재능을 알아본 이종환은 그를 쉘부르의 MC 겸 DJ로 채용하여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나중엔 허참 쇼 라는 자신만의 쇼를 열어 매번 쉘부르 입장권이 동날 정도로 유명해졌다.[15] 결국 1974년, 쉘부르의 손님으로 그를 지켜보던 당시 MBC PD 겸 DJ 박원웅[16]이 허참을 새 라디오 프로그램 청춘은 즐거워 MC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MBC 라디오의 MC와 DJ로 활약하던 허참은 1976년 경 MBC 내 모든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아나운서로 교체한다는 방침으로 일자리를 잃고 신발 장사를 하는 등 잠시 방송계를 떠났다가 TBC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적하여 7대 가수쇼 MC로 TV 무대에 진출했고, 그 이듬해인 1977년부터 TBC의 간판 쇼 프로 쇼쇼쇼의 MC를 맡으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MC로 떠오르게 된다.[17] 그 외에 DBS의 허참과 이 밤을 등의 MC로도 활동했다. 80년대 KBS 시절은 반 개그맨 + 반 진행자 포지션이어서 코미디 프로그램의 꽁트도 상당히 많이 출연했었다. 가족오락관을 하면서도 종종 개그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진행자 이미지에 나이도 30대였기에 망가지는 쪽 보다 망가지는 20대 후배 개그맨들을 극중에서 말리다가 당하는 역할이었다.
2.1. 가족오락관 MC로서의 활동
허참 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프로그램은 가족오락관이다. 또 반대로 가족오락관 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MC는 허참이다. 그만큼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가족오락관을 빼놓을 수가 없다.
언론 통폐합 후에도 TBC 때부터 MC를 맡아오던 쇼쇼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다가 1984년 제1회 방송부터 2009년 마지막 방송까지 KBS 가족오락관의 MC를 맡게 되었으며 국민적 사랑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진행자인 허참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한때 시청률이 35%를 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1987년에 교통사고로 인해서 딱 한 번 펑크를 낸 적이 있었지만 여성 MC가 스무 명이 넘게(21명) 바뀔 동안 허참만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프로그램의 마스코트 격인 존재가 되었다.
그 뒤 가족오락관이 2009년 4월 부로 2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 30대에 진행을 맡아서 환갑에 마무리하게 된 그는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나서, 한 주부 방청객이 '아저씨 잘 가요'라고 인사하는데 마치 은퇴하는 기분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어쨌든 그의 가족오락관 25년 진행은 2019년 11월 전까지 국내 단일프로 최장수 연속 진행 MC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이 기록의 최고 경쟁상대인 '일요일의 국민MC'로 유명한 전국노래자랑의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했고, 잠시 하차했다가 동년 10월 16일에 복귀했다. 그러므로 1994년 10월 16일부터 연속 진행 기록을 계산하면 2019년 11월을 넘겨야 허참의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 이는 2018년 11월 7일에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허참이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 마침내 송해가 그 기록을 뛰어넘었다.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 중에서는 1998년 5월 21일 첫 방송 이래 현재까지 임성훈과 박소현이 MC 자리를 놓지 않고 있는 SBS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허참과 송해에 견줄만한 편이다.
가족오락관 외의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스쳐지나간 여성 MC가 무려 140명에 달해 강심장에서 "MC계의 의자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2. 가족오락관 종영 이후
2011년에는 잠시 동안 아이넷TV 성인가요콘서트 MC를 맡기도 했으며 2012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지역 민방 전국 TOP 10 가요쇼의 MC를 맡는 등 음악 프로그램 MC로의 활동은 지속되었다.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부업으로 고깃집[19]을 경영하고 있었고, 개업한 지는 오래됐다. 위치는 삼육대 후문, 태릉교통 차고지 근처에 있다.[20] 그리고 2016년에는 같은 지역(남양주)에 유기농 채소 식당 '참스팜스'를 개업하였다.
2015년 8월, 대부업체인 미즈사랑 CF에 출연하면서 사채 CF에 출연한 연예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대전문화방송의 토크 앤 조이에 출연할 당시 유독 서수진 아나운서에게 시집 가라는 소리를 자주 했다. 정작 유지은 아나운서에게는 별로 그러지는 않았다.
2014년,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자신의 집 인근에 있는 공유수면을 불법 사용하다가 적발된 적도 있다.
2017년 2월 5일, 복면가왕에서 방귀대장 스컹크라는 가명으로 참가했으며 사슴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을 같이 부른 뒤 어니언스의 '편지'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이 때 심현섭이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내가 선생님께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면서 데꿀멍했다.[21]
2019년 11월부터 2020년 5월까지는 SBS의 아침 드라마 맛 좀 보실래요에 출연해 연기자로도 활동했다.
2021년 10월 18일에 손미나와 함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출연했다. #보이는 라디오 방송분
2021년 11월에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했다.
2022년 1월에 JTBC의 진리식당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 프로그램 기준으로 유작이 되었다.
2.3. 사망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허참의 빈소 |
2022년 설날 당일이었던 2022년 2월 1일 낮 12시, 지병인 간암으로 인해 향년 72세로 사망했다. 빈소는 서울특별시 소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되었다.(관련 기사)
허참 본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 간암 투병 사실을 지인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비밀로 했다[22]는 기사들이 나왔다.(예시) 그런데 조용필, 이홍렬, 강진 같은 극소수의 최측근 인사들은 알고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강진은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사망 몇주 전에 전조증상(얼굴에 병색이 보임)을 봤음에도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걱정만 했다는 얘기를 했다.
선배 송해와 함께 원로 MC로 손꼽히는 국민MC였으나, 먼저 세상을 떠났다. 송해는 생전에 자신이 죽거든 전국노래자랑 MC 자리를 허참에게 맡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허참은 2012년에 한 차례 임시 진행을 한 기록[23]이 있었다. 허참이 사망하고 4개월 뒤에 송해 역시 세상을 떠났으며, 전국노래자랑 MC는 최종적으로 코미디언 후배 김신영이 이어받았다가 현재는 남희석이 그 자리를 맡고 있다.
3. 기타
상당한 동안이었다. 예전에는 나이 들어보였지만, 허참도 꽃미남이 아닐 뿐이지 무서울 수준으로 나이를 안 먹는다. 한국 나이 기준 2018년에 고희를 맞았다.체격도 상당했다. 163cm라는 정소녀와 비교해봤을 때 머리 반절 이상 큰 것을 보면 확실히 172cm[24]이다. 나이를 먹으면 전성기 키보다 다소 줄어든다.[25]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은 허참은 2018년에 칠순을 맞았다. 따라서 소싯적에 체격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1976년에 <왜 몰라주나>, 2001년에 <추억의 여자> 음반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활동한 적도 있는데, 본인 말로는 가수 활동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를 보면서 양념으로 곁들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2019년에 <아내는 지금>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허참 사망 이후에 강진이 리메이크 곡으로 재발표하게 되었다. 실제로 허참이 본인 사망 이후엔 강진이 <아내는 지금>을 계속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1980년 11월 30일 밤 TBC TV의 마지막 방송인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를 진행하고 다음날인 12월 1일 오후 KBS 2TV의 첫 시작을 알리는 KBS 새가족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26] 즉 한국 방송계의 중요한 순간을 증거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2000년대 중반 주말 점심 버라이어티 프로에서 송해와 자주 엮이면서 코믹한 요리 대결을 하더니, 송해가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추석맞이 전국노래자랑 특별 MC로 대신 출연했다. 둘은 예명이 두 글자에 한 프로그램을 아주 오랫동안 진행한 장수 MC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나이는 송해가 무려 22세나 형[27]이다.
가족오락관으로 최장수 MC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가족오락관이 종영된 이후에도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계속하여 2019년 11월 3일자로 기록을 경신하였다. 그래서 송해가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내려놓을 경우 가장 유력한 후임 MC로 거론되던 인물이 바로 허참이었다. 안타깝게도 2022년 간암으로 사망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경력이 경력이다 보니 방송 커리어 내내 MC만 하고 게스트로 출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2008년 봄에 문화방송의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하고, 이후에는 카메오로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후 2017년 2월 5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98회에서 방귀대장 스컹크라는 가명으로 출연하여 개그맨 후배들을 놀라게 했다.
KMTV의 허참의 골든 힛트쏭을 쥬얼리S와 함께 진행했다. 한때 토지를 불법사용했다가 적발되어서 원상복귀했던 적이 있다.(관련기사)
앞서 설명한 대로 MC로 이름을 알린 방송사가 TBC였어서인지, JTBC 개국 당시 특집 프로그램(TBC 추억여행)에서 메인 MC로 돌아왔다. 개국 첫날 방송에다가 보조 MC가 강지영, 장성규라 이리저리 버벅대는 프로그램의 중심축을 관록으로 커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외로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경상도 사투리 원어민이다. 보통 진행할 때는 표준어로 말하므로 느끼기 힘들지만 표준어는 방송 때문에 익힌 것이다. 무릎팍도사(2008. 3. 12.)에 출연했을 때 부산 출신으로 방송생활 초기엔 사투리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과거 한국 방송계는 전체주의적 검열 인식이 남아있어 사투리를 쓸 수 없었다.[28] 요즘은 지방에서도 된소리 발음이 갈수록 퇴출되는 등 과거처럼 표준어와 사투리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방송가에서는 대략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부터 이경규, 강호동 등처럼 MC가 사투리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29] 이는 그의 젊은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는 상상도 못 했던 환경이었고, 그래서 스스로 표준어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토로했다. 말년까지도 촬영 중이 아닐 때는 부산 말씨로 이야기했다.[30]
후배 이홍렬은 평소 늘 짜장면만 먹는 짠돌이였는데, 자신이 일본 유학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공부하는 데 보태라고 꽤 큰 돈을 건네줘서 무척 감동했다고 회고했다. 더군다나 다들 모르던 허참의 암 투병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 또한 이홍렬이었다.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은 수제비[31], 순대 내장탕이었다.[32] 함께 가족오락관 MC를 진행했던 손미나에 따르면 국밥을 먹고 오면 방송이 잘 된다는 허참의 징크스 겸 루틴이였다고 한다. #
굉장히 짖궂은 성격이다. 가족오락관에서 이런 모습을 좀 많이 보였으며, 특별히 1169회에서는 볼과 볼 사이 코너에서 가발이 등장하자 그걸 본인이 쓰고 그 사이로 들어가서 당황하게 하고[33], 2014년에 1박 2일에서 설날 특집으로 가족오락관이 구성되자, 멤버 전체가 남성인 관계로 여성팀으로 편입할 멤버를 구하기 위해 까나리 복불복을 지휘해서 가족오락관에 대해 큰 애착을 표한 데프콘이 허참이 건 속임수[34]에 넘어가자 테이블 밑에 숨어있던 중에 슬그머니 나와 낄낄거리는 등 짓궂은 장난(?)을 방송에서 많이 쳤다.
가족오락관 진행 당시에는 이용식[35]의 하극상으로 이용식과 티격태격 케미를 보이곤 했다.[36]
4. 주요 출연작
4.1. 방송
방송일 | 방송사 | 프로그램명 | 역할 |
1977년 ~ 1983년 7월 17일 | | 쇼쇼쇼 | MC |
1984년 4월 3일 ~ 2000년 10월 5일 | 가족오락관 | ||
1987년 12월 | KBS 연기대상 | ||
1998년 8월 25일 | 고전해학극장 웃음이 보약 시어머니 길들이기 | ||
2000년 10월 14일 ~ 2009년 4월 18일 | 가족오락관 | ||
빙글빙글 퀴즈 | |||
잉꼬부부 재치부부 | |||
시선집중 오늘 | |||
스타에 도전한다 | |||
2000년 5월 6일 ~ 2003년 11월 1일 | 도전! 주부가요스타 | ||
2002년 2월 12일 | 설 특집 왕건오락관 | ||
2008년 3월 7일 ~ 2010년 3월 5일 | 허참의 골든 힛트쏭 | ||
2008년 3월 12일 | 무릎팍도사 | 게스트 | |
2009년 12월 31일 | 지붕뚫고 하이킥 | 특별출연 이참 역 | |
2011년 4월 18일 ~ 6월 6일 | 허참의 골든 가요쇼 | MC | |
2011년 | 성인가요콘서트 | 임시 MC | |
2011년 ~ 2012년 | TBC 추억여행 | MC | |
2012년 1월 17일 | 강심장 | 게스트 | |
2012년 9월 23일 | 추석 특집 지구촌 노래자랑 | MC | |
2012년 9월 8일 ~ 2018년 3월 11일 | 허참의 토크&조이 | ||
2012년 12월 27일 ~ 2015년 1월 27일 | 전국 TOP 10 가요쇼 | ||
코리아 헌터 | 나레이션 | ||
실버퀴즈쇼 청춘열전 | MC | ||
2013년 1월 4일 ~ 2017년 4월 11일 | 엄지의 제왕 | ||
2017년 2월 5일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참가자 | |
2017년 5월 28일 ~ 7월 23일 | 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 | MC | |
2019년 8월 25일 | 플레이어 | 게스트[37] | |
2019년 11월 12일 ~ 2020년 5월 1일 | 맛 좀 보실래요 | 허의료 역 | |
2019년 11월 13일 | 행복한 아침 | 게스트 | |
2020년 8월 3일 | 건강한 집 | ||
2020년 10월 21일 | 퍼펙트 라이프 | ||
2021년 4월 6일 |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 ||
2021년 4월 14일 | 백세누리쇼 | ||
2021년 7월 3일 | 트롯 매직유랑단 | ||
2021년 11월 13일 |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
2022년 1월 13일 | 진리식당 |
4.2. 광고
- 진로 양주 CF: 흑백 TV 광고다. 그 외에도 이 시기에 출연한 광고가 많으며, 오히려 칼라광고가 적은 편.
- 미즈사랑: 가족오락관이 패러디된 광고다.
- 진주내동공원묘원: 버스 광고에 대문짝만하게 방송인 허참이 추천하는 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 동아제약
- 동화약품 헬민
- 일양약품 영비천
- 웅촌명주막걸리
- 성주 남양공원
[1] 호적상 생일은 같은 해 8월 4일이다.[2] 원래 부산 출생으로 알려졌으나, 황해도에서 태어나 이후 부산에서 성장했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송해와 출신지가 동일한 셈이다.(하위 지역은 불명) 실제로도 평소에는 부산 사투리를 썼으며 방송 활동을 위해 이를 교정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음을 밝힌 적도 있다.[3] 양친의 묘비에 전주 이공광연 경주 이씨명복 지묘라고 쓰여있다.[4] 기사[5] 이선영과 키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1994년에 가족오락관에 서장훈이 출연했을 당시에 키를 묻다가 서장훈이 중학교 1학년 때 172cm이라 하자, 허참은 그 당시 서장훈의 키가 자신의 키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6] 1998년에 가족오락관 코너 <퀴즈! 순간의 선택> 에서 그게 문제랍시고 출제가 되자 스튜디오 전체가 초토화되고, 그걸 김창남이 틀리자 허참이 밝혔는데, 이때 김창남은 허참의 다리를 들고 확인사살에 나섰다.[7]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진 상의 촛대 밑에 깔려있는 근조보에 분당중앙교회 마크 및 명칭이 적혀 있었고, 위패에 개신교 십자가 기호와 함께 세로로 성도 허 참 이라 적혀있고, 영정사진 앞에 성경책이 펼쳐져 있으며, 장지인 경춘공원에 있는 묘지 위에 거대한 십자가와 세워진 묘비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성경구절이 새겨져있다.[8] 경주 이씨, 아들이 사망하기 1년 전에 사망하였다.[9] 3명의 딸 중 1명은 1975년생이다.[10] 특히 TBC 광복 20년의 조병옥 역할과 MBC 전설따라 삼천리 해설로 유명한 성우 류기현의 흉내를 잘 냈다고 한다.[11] 사실 허참의 부모님은 그를 정치인으로 키우고 싶어서 웅변학원에 보낸 것이었다.[12] 이 때 성공하면 갚겠다면서 여동생이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3만원(현재 화폐가치로 환산 시 약 57만원)을 빌려 서울에 왔다고 한다.[13] 마침 그날 쉘부르에선 오란씨 무료시음 행사를 하고 있어서 허참은 목이나 축이자는 생각에 들어간 것이었다.[14] 일설에는 누군가가 허참의 진행 능력을 보고 "허 참 정말 진행 잘하는구만"이라고 말한 걸 전해듣고 예명으로 삼았다는 말도 있다.[15] 그러나 이종환은 허참에게 정해진 급여 같은것은 주지 않고 숙식 제공으로 때웠다고 한다.[16] 1940~2017.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디스크 쇼 DJ로 이름이 높았다.[17]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으로 TBC가 사라지고 KBS로 채널을 옮겨 1983년 종영할 때 까지 쇼쇼쇼의 MC를 맡았다. 참고로 이전 MC는 초대 곽규석(코미디언, 예명 후라이보이)-2대 이한필(가수, 예명 위키 리, 전국노래자랑 MC 경력도 있다), 정윤희였고, 허참이 3대이자 마지막 MC였다. 허참의 대표적인 파트너는 정소녀였다.[18] 2010년대 초반 당시 보니하니에서 패러디되기도 했었다.[19] 상호는 '허참갈비' 이며, 간판에 그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다.[20] 본래 담터삼거리에 위치했으나 불암로 확장 과정에서 헐리고 현 위치에 있던 과수원숯불갈비라는 가게를 허참이 매입하였다.[21] 정작 심현섭이 먼 훗날 복면 가수로 나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22] 심지어 임플란트로 인해 아파서 얼마간 먹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여러모로 많이 숨기고 다녔다.[23] 2012년 추석 당일(2012년 9월 30일)에 방영되었던 '추석특집 지구촌 노래자랑' 편으로, 로니의 빌리진, 그렉의 너를 위해 등 레전드 무대들이 많이 펼쳐진 회차이며 2012년 9월 23일에 녹화했다. 참고로 하루 전인 2012년 9월 22일 전국노래자랑 인천광역시 서구 편 리허설 도중 송해가 과로에 감기까지 겹침으로 인해 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상황이라 녹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참고로 그 회차는 작곡가 이호섭이 대신 진행하였다.[24] 45살이던 1994년에 방송에서 본인이 밝힌 수치.[25] 70세에는 20세에 비해 4cm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척추 상태가 매우 좋아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참이 청년기였던 60년대 후반 내지 70년대 기준으로는 172cm도 큰 키이다.[26] 실제 방송 영상을 보면 허참은 곽규석, 임성훈 등과 함께 쇼 프로그램 안내 코너의 소개자 역할만 했다. 실제로 KBS 새가족의 MC를 맡았던 사람은 김동건 아나운서와 전날 밤 TBC 석간 고별편을 진행하고 KBS로 넘어온 이영혜 아나운서다.[27] 정작 후배 허참이 4개월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참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28] 당시 시대상 사투리를 검열한 다른 사례로 일본 만화에서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는 한국에 수입되면서 표준어 캐릭터로 변경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손오공(드래곤볼).[29] 이경규는 MC 활동이 늘어나며 사투리를 거의 교정해서 잘 티가나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노력해도 '음식'이 '엄식'에 가깝게 발음이 나와서 '먹을거리'로 바꿔 말하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30] 이는 TV쇼 진품명품의 진행자로 유명한 왕종근 아나운서도 똑같이 겪은 딜레마였다. 그가 1999년에 KBS를 퇴사했던 이유도 사투리 억양에 대한 콤플렉스였다고 했고, 실제로 그의 진품명품 진행 1기와 2기를 비교해보면 억양의 차이가 미묘하게 존재한다.[31]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끓여주셨던 멸치국물 수제비가 맛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32] 가족오락관 진행 당시 제작진들과 함께한 대부분의 한 끼 식사였다. 유작이 된 진리식당에서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순대 내장탕을 소개했다.[33] 하지만 출연자들이 번외 경기로 복수했다.[34] 3번과 4번에 까나리에 멸치액젓과 후추를 섞어넣고 커피라고 유도했다. 데프콘은 그대로 3번을 집어들고 까나리에 당첨되었다.[35] 허참이 이용식보다 3살 위다.[36] 대표적으로 퀴즈 5인 5답에서 틀렸는데 억지로 정답이라 따지기(846회), 대놓고 조롱하기(929, 1074회), 허참을 MC자리에서 못 밀어냈다고 후회하기(1074회), 몇대 몇 구호 가로채기(1135회), 음식 절도(1188, 1194회)가 있다.[37] 특집코너 <웃지 마! 가족오락관>을 오영실과 함께 공동진행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진 상의 촛대 밑에 깔려있는 근조보에 분당중앙교회 마크 및 명칭이 적혀 있었고, 위패에 개신교 십자가 기호와 함께 세로로 성도 허 참 이라 적혀있고, 영정사진 앞에 성경책이 펼쳐져 있으며, 장지인 경춘공원에 있는 묘지 위에 거대한 십자가와 세워진 묘비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성경구절이 새겨져있다.[8] 경주 이씨, 아들이 사망하기 1년 전에 사망하였다.[9] 3명의 딸 중 1명은 1975년생이다.[10] 특히 TBC 광복 20년의 조병옥 역할과 MBC 전설따라 삼천리 해설로 유명한 성우 류기현의 흉내를 잘 냈다고 한다.[11] 사실 허참의 부모님은 그를 정치인으로 키우고 싶어서 웅변학원에 보낸 것이었다.[12] 이 때 성공하면 갚겠다면서 여동생이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3만원(현재 화폐가치로 환산 시 약 57만원)을 빌려 서울에 왔다고 한다.[13] 마침 그날 쉘부르에선 오란씨 무료시음 행사를 하고 있어서 허참은 목이나 축이자는 생각에 들어간 것이었다.[14] 일설에는 누군가가 허참의 진행 능력을 보고 "허 참 정말 진행 잘하는구만"이라고 말한 걸 전해듣고 예명으로 삼았다는 말도 있다.[15] 그러나 이종환은 허참에게 정해진 급여 같은것은 주지 않고 숙식 제공으로 때웠다고 한다.[16] 1940~2017.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디스크 쇼 DJ로 이름이 높았다.[17]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으로 TBC가 사라지고 KBS로 채널을 옮겨 1983년 종영할 때 까지 쇼쇼쇼의 MC를 맡았다. 참고로 이전 MC는 초대 곽규석(코미디언, 예명 후라이보이)-2대 이한필(가수, 예명 위키 리, 전국노래자랑 MC 경력도 있다), 정윤희였고, 허참이 3대이자 마지막 MC였다. 허참의 대표적인 파트너는 정소녀였다.[18] 2010년대 초반 당시 보니하니에서 패러디되기도 했었다.[19] 상호는 '허참갈비' 이며, 간판에 그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다.[20] 본래 담터삼거리에 위치했으나 불암로 확장 과정에서 헐리고 현 위치에 있던 과수원숯불갈비라는 가게를 허참이 매입하였다.[21] 정작 심현섭이 먼 훗날 복면 가수로 나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22] 심지어 임플란트로 인해 아파서 얼마간 먹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여러모로 많이 숨기고 다녔다.[23] 2012년 추석 당일(2012년 9월 30일)에 방영되었던 '추석특집 지구촌 노래자랑' 편으로, 로니의 빌리진, 그렉의 너를 위해 등 레전드 무대들이 많이 펼쳐진 회차이며 2012년 9월 23일에 녹화했다. 참고로 하루 전인 2012년 9월 22일 전국노래자랑 인천광역시 서구 편 리허설 도중 송해가 과로에 감기까지 겹침으로 인해 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상황이라 녹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참고로 그 회차는 작곡가 이호섭이 대신 진행하였다.[24] 45살이던 1994년에 방송에서 본인이 밝힌 수치.[25] 70세에는 20세에 비해 4cm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척추 상태가 매우 좋아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참이 청년기였던 60년대 후반 내지 70년대 기준으로는 172cm도 큰 키이다.[26] 실제 방송 영상을 보면 허참은 곽규석, 임성훈 등과 함께 쇼 프로그램 안내 코너의 소개자 역할만 했다. 실제로 KBS 새가족의 MC를 맡았던 사람은 김동건 아나운서와 전날 밤 TBC 석간 고별편을 진행하고 KBS로 넘어온 이영혜 아나운서다.[27] 정작 후배 허참이 4개월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참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28] 당시 시대상 사투리를 검열한 다른 사례로 일본 만화에서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는 한국에 수입되면서 표준어 캐릭터로 변경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손오공(드래곤볼).[29] 이경규는 MC 활동이 늘어나며 사투리를 거의 교정해서 잘 티가나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노력해도 '음식'이 '엄식'에 가깝게 발음이 나와서 '먹을거리'로 바꿔 말하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30] 이는 TV쇼 진품명품의 진행자로 유명한 왕종근 아나운서도 똑같이 겪은 딜레마였다. 그가 1999년에 KBS를 퇴사했던 이유도 사투리 억양에 대한 콤플렉스였다고 했고, 실제로 그의 진품명품 진행 1기와 2기를 비교해보면 억양의 차이가 미묘하게 존재한다.[31]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끓여주셨던 멸치국물 수제비가 맛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32] 가족오락관 진행 당시 제작진들과 함께한 대부분의 한 끼 식사였다. 유작이 된 진리식당에서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순대 내장탕을 소개했다.[33] 하지만 출연자들이 번외 경기로 복수했다.[34] 3번과 4번에 까나리에 멸치액젓과 후추를 섞어넣고 커피라고 유도했다. 데프콘은 그대로 3번을 집어들고 까나리에 당첨되었다.[35] 허참이 이용식보다 3살 위다.[36] 대표적으로 퀴즈 5인 5답에서 틀렸는데 억지로 정답이라 따지기(846회), 대놓고 조롱하기(929, 1074회), 허참을 MC자리에서 못 밀어냈다고 후회하기(1074회), 몇대 몇 구호 가로채기(1135회), 음식 절도(1188, 1194회)가 있다.[37] 특집코너 <웃지 마! 가족오락관>을 오영실과 함께 공동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