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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4:01:00

명분

1. 개요2. 설명3. 전쟁과 명분
3.1. 창작물에서
4. 관련 문서

1. 개요

명분(, Cause)[1]은 일을 꾀하면서 내세우는 표면적인 정당성이나 이유 혹은 처한 위치에 따라 지켜야 할 도리나 규범을 뜻하는 한자어다. 보통 전자가 더욱 많이 쓰인다.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써 오기 시작했지만 공자의 정명론의 영향으로 지금의 뜻으로 자리잡았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이 있다.

2. 설명

명분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인간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아무리 뒤가 구리다 해도 제대로 된 명분은 같이 따를 사람을 만들고 공동체 의식을 확실히 하며 이것 하나로 전쟁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인간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낱 조직폭력배들마저 명분이 없으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명분 없는 분쟁을 일으키면 다른 모든 조직들의 적으로 찍히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명분이 필요한 경우는 흔하다. 학교에 숙제를 해가지 못했다고 할 때 "하기 싫어서 안 했어요"와 "몸이 아파서 못 했어요"는 천지차이다.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났을 경우에도 이들이 평소에 쌓아놓은 이미지가 대등하다면 대체로 사람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사람의 편을 들기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게 된다.

심지어 인간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극악무도한 짓도 명분에 따라서는 정당화되곤 한다. 가령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면 천인공노할 중죄로 다스려지지만 악명 높은 범죄자를 사적제재로 살해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적국의 인물을 암살하거나, 전쟁에 참여하여 침략자와 맞서 싸우거나 하는 일로 사람을 죽이면 '미담, 영웅담, 숭고한 희생' 등으로 흔히 불린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반반한 명분마저 없는 사람은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을 벌이거나 무리수를 두다 망했고, 명분이 확고한 사람에겐 굳이 명분을 더 만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같이했고 그 명분을 달성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사람들이 나서서 도움을 줬다.

명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극단적인 사례로 안두희 피살 사건의 범죄자인 박기서를 들 수 있다. 박기서는 객관적으로 보면 79살의 노인을 방망이로 후려쳐 죽인 살인마에 지나지 않지만 김구를 암살하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형이 수차례 감면되어 이후에도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안두희의 행적, 그리고 '국부를 시해한 자가 세 치 혀를 놀리며 천수를 다하는 것을 그냥 놔둘 수 없었다'라는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는 명분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살인죄를 저질렀음에도 각계각층에게서 탄원서와 격려금이 쏟아지며 국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고, 그 결과 이례적으로 법정 최저형인 5년보다도 낮은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그마저도 특사를 받아 1년 4개월 만에 출소했다. 게다가 살인 도구인 정의봉은 원칙대로라면 경찰이 몰수하여 폐기해야 했지만 재판 후 범죄자인 박기서에게 반환됐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유물로서 전시되는 등 일개 살인 도구로는 엄청난 대우를 받고 있다.

흔히 '명분 VS 실리'라 하여 어떤 결단을 내릴 때 그 근거로 가시적인 이익과 무형적인 명분 중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클리셰가 있다. 하지만 명분과 실리는 크게 구별되는 개념이 아니며 명분 자체가 실리에서 파생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전쟁 명분으로 흔히 거론되는 "자국민 피해에 대한 보복",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전파", "잃어버린 국토의 수복" 등을 보자. 먼저 "자국민 피해에 대한 보복"의 경우, 게임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상대의 배신이나 침략 행위에 대해 내가 보복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또다른 배신과 침략을 일으키게 된다.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전파"의 경우 일종의 소프트 파워를 통한 침략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잃어버린 국토의 수복"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국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행위다. 어찌됐든 모두 실리와 맞닿아 있다. 오해하기 쉬운 정치현실주의에서도 명분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며 앞서 말한 것처럼 실리 자체에 명분을 포함시켜서 해석하고 있다.

3. 전쟁과 명분


명분 중의 명분은 역시 선전포고를 위한 전쟁 명분(Casus Belli)이라 할 수 있다. 전쟁론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외교 관계가 성립되고 주변국들까지 포함한 일종의 국제 질서가 형성되면 전쟁을 위한 명분은 외교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명분 없는 전쟁은 국력차가 크다 해도 승리를 보장하지 못하며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과 같다.

외교적 문제뿐만 아니라 명분 없는 전쟁은 전쟁초에만 효과를 거둘수 있다. 이른바 속전속결이다. 전쟁이 수렁에 빠지기 전인 초기에 전쟁을 끝내지 못할 시 중반부터 자국 군대의 군인들에게 "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내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들며 사기를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상부에서 추가적인 명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이는 항명, 이적행위, 프래깅, 쿠데타, 전후 PTSD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더 나아가 추가 예비군 동원과 추가 민간인 징병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자국민들이라도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근세 이전에 일어난 대표적인 '명분 없는 전쟁'으로 임진왜란을 들 수 있다. 당시 김충선을 비롯한 수많은 항왜들이 거리낌 없이 조선으로 투항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명을 치기 위해 길을 요구한다'라는 전쟁 명분은 전쟁초 전국만 통일되었지, 통합되지 않은 일본 다이묘들간의 내부 분열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중-후반 부터는 조선의 항전, 속전속결의 불가능, 명나라 참전 등으로 전쟁이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고려 후기 원나라의 일본원정 때의 일본은 원나라의 침략으로부터 국토를 방어해야 한다는 합당한 명분이 있었다. 그래서 가마쿠라 막부는 각지의 다이묘들을 규합해 압도적인 국력차에도 불구하고 태풍이 덮쳐올 때까지 원나라의 침공을 두 차례나 버티는 데 성공했다.

현대에는 미국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 공격(진주만 공습)을 당하며 시작했던 2차대전 때에는 그 전까지는 전쟁을 반대하던 국민 대다수가 분노하여 한 목소리로 전쟁을 요구했으며, 입대를 못 했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로 온 국민이 전쟁 수행에 열정적이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9.11 테러의 복수라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국민 상당수에게 전쟁의 이유와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대대적인 반전운동과 징병기피가 벌어졌다. 이런 풍조를 보고나서 징병된 이들이 기존 미군들과 섞이게 되면서 사기의 추락이 확산되었고 결국 국력상으로 북베트남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이라는 명분이 있었음에도 허무한 패배를 맞이했다. 이라크 전쟁도 앞서 베트남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분석해서 반전여론의 사전 차단 등 효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실체도 불분명한 대량살상무기라는건 결국 재조사를 거치면서 후반부턴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분 때문에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한편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러시아돈바스 전쟁에 본격적인 개입을 위해'특수군사작전'이라는 명목으로 전쟁을 강행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진 상태라 국가들간의 전쟁 명분은 충분했지만, 내전에 본격적인 개입이 아닌 특수작전이라는 괴상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세계 민간인들은 명분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런 풍조를 캐치한 각국의 정부들은 적극적으로 반전여론을 끌어내었다. 이에 러시아 내부에 있던 우크라이나계 사람들이 호응하여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에 발을 들인 러시아군은 그냥 도로만 타고 이동하면 되는 줄 알고 쾌속으로 달리다가 서방제 재블린에 반격 당하고, 당초 계획보다 길어지면서 보급품도 부족해서 돈좌 되어 후속부대를 기다리던 공수부대들이 전면적으로 후퇴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초반의 졸전들은 명분 보다는 보급과 지휘의 문제였지만 이후 반전 분위기를 보면서 징병된 러시아 병사들에게는 명분 부족이 더 크게 작용하면서 탈영항명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군은 군사력 세계 2위 지위에 걸맞지 않는 졸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크라이나 측은 자신의 영토와 삶을 지킨다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확전 2일 만에 최전선인 키이우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며 자신과 내각이 우크라이나군과 생사를 함께한다고 선언하며 우크라이나군과 국민들을 독려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기적 같은 선전을 벌이는 중이며, 이에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및 군수품 지원으로 답했다. 하지만 전쟁 중반부 부터 러시아는 전열을 가다듬었고, 내부 여론조차 (푸틴의 강압이 크긴 하지만) 반전에서 전쟁으로 선회하였다.[3]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의 기조를 유지하지 못해 동원령의 확대로 인한 징병 과정에서도 징병 저항 등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으며, 전비 감당이 어려워 서방의 지원이 끊어지면 답이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있는 상태에서 서방에게 노출될만한 무리한 전과를 올리기에 병력을 갈아넣고 있다.

다만 국력을 비롯한 군사력의 차이가 압도적이라면 명분 없이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역사책에 박제되긴 하지만)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더러움과 비겁함으로 현대까지도 회자되는 영국의 아편전쟁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명분이 마땅찮다는 점 때문에 영국 의회에서 단 9표 차로 가결됐을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당시 전쟁 반대 여론을 주도했던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은 "중국이 아편을 금지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그걸 트집잡아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냐? 세상에 이렇게 부도덕하고 추악한 전쟁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며 전쟁에 찬성하는 세력들을 규탄했다. 아편 처리를 맡은 임칙서는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국제법을 공부하고, 압수한 아편에 가격을 매겨 돈으로 배상하는 등 전쟁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허나 대영제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포고를 해 버렸고, 어쨌든 승리해 큰 이득을 쥐었으나, 지금까지도 혐성국이라며 까이는 초대형 흑역사로 남고 반영 진영에서 널리 써먹는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자세한 건 제1차 아편전쟁 문서를 참조할 것.

3.1. 창작물에서

창작물에서는 이런 전쟁 명분이 가볍게 다뤄지거나 아예 무시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4] 토탈 워 시리즈 등에서는 명분없이 멋대로 이웃 세력, 심지어 동맹 세력에게 공격을 가해도 약간의 외교 페널티 이외엔 이렇다 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5] 다만 그렇지 않은 예시로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사의 게임은 유독 명분 없이는 전쟁 수행이 어렵다. 크루세이더 킹즈 2는 그 유명한 막장 플레이성과는 별도로 명분 없이는 전쟁이 불가능하며, 크루세이더 킹즈의 다음 시대를 다룬 Europa Universalis의 경우도 강력한 명분을 갖출수록 전쟁 수행시 보상이 커지고 전쟁 명분 없이 개전하면 많은 디버프를 얻어맞는다.[6] Hearts of Iron 시리즈는 전쟁 명분을 정당화하거나 중점이나 사건(이벤트)을 통해 얻어야 선전포고가 가능하며, Stellaris도 2.0에 들어서 전쟁 명분이 추가되어 사전 정치외교공작 없이는 원활한 전쟁 수행이 무척어려워졌고, 어찌저찌 개전한다 해도 궤도 폭격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행성파괴병기 등 대량살상병기를 무분별하게 동원하면 주변국들에게 심각한 적대감을 사 운신이 힘들어지게 변화되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도 명분이 강력한 전쟁일수록 적대감과 페널티가 낮아지고 명분이 약할수록 외교에 치명타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에 따라서는 내정적 페널티까지 입게 되는 식으로 구현되었다. 특히 문명 1부터 문명 5까지는 선전포고는 명분이 어쨌든간에 그냥 선전포고였다.[7]

문명 6에서는 역대 시리즈 중에서 처음으로 전쟁의 명분을 직접 고를 수 있는데, 전쟁 시 적국과 제3국의 적대감과 외교 페널티를 낮춰주는 정도가 명분마다 다르다. 특히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는 AI와의 외교를 주요 컨텐츠로 만들었기 때문에 명분 없이 함부로 전쟁을 걸었다간 외교 관계가 전부 파탄나서 문명이 금방 가난해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턴마다 엄청난 속도로 깎여나가는 외교적 환심 때문에 외교 승리를 쟁취하기 어려워진다.

4. 관련 문서


[1] Cause 는 대의라고 번역되는 경우도 많으며 큰 틀에서는 명분과 일치한다. 크고 올바른 뜻이 곧 명분이기 때문이다.[2] 수백년 간 수많은 희생을 만들어낸 십자군 전쟁이 이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3] 반전에서 전쟁으로 선회된 원인 자체도 빈부격차의 개선과 국제적 제제를 이악물고 버텨낸 현상 때문이다. 말그대로 군입대만 하면 돈을 퍼다주는 수준이기에 사실상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 우크라이나가 전비 감당 못하고 서방의 지원으로만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4] 매번 전쟁을 하던 삼국지에도 계속 명분으로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구현하면 짜증나고 재미 없다.[5] 다만 외교 패널티 시스템이 이후 시리즈에 갈수록 중요도가 높아져 마냥 무시하긴 힘들어졌다. 최신 시리즈에서는 아예 대놓고 악의 제국이 되어 세계를 피로 휩쓸 생각이 아니라면 최소한 동맹을 통수친다거나 하는 행동은 금물이다.[6] 전쟁피로도와 안정도 디버프를 받는다. 하지만 안정도 -2 부터 전쟁이 가능하고 시스템상 안정도는 -3 밖에 없다. -2 안정도를 가진 국가에 국가 재앙이 없다면, 사시살 무제한 전쟁이 가능하다. 전체적으로 명분없는 전쟁은 안정도가 0 이상인 국가, 재앙이 1개 이상 남아있는 국가를 위한 패널티이다.[7] 그러나 문명 5에서는 외교 상호작용 중 상대국과의 적대를 선언하는 공개비난 선택을 한 뒤 선전포고를 할 경우, 제 3국으로부터 전쟁광으로 질타받는 정도가 완화될 수 있는 등 어느정도의 시도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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