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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2:53:55

로베르토 바조

로베르토 바지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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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디노 바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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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로베르토 바조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유벤투스 FC 주장
스테파노 타코니
(1990~1992)
로베르토 바조
(1992~1995)
잔루카 비알리
(1995~1996)
}}} ||
로베르토 바조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발롱도르 트로피.png
파일:FIFAWorldPlayer.png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파일:옹즈도르.png
파일:실버볼.png
1994 FIFA 월드컵 실버볼
파일:세리에 A 로고.svg
[[틀:세리에 A 도움왕(2000년대)|
2003-04 세리에 A 도움왕
]]
베스트팀
파일:1994_fifa_world_cup_logo.png

1994 Ballond'or
수상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2위
로베르토 바조
3위
파올로 말디니
1994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호마리우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3위
로베르토 바조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1994
수상
파올로 말디니
2위
로베르토 바조
3위
호마리우
1994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로베르토 바조
1995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조 파올로 말디니
}}} ||
로베르토 바조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1989
로날드 쿠만
(900만 유로)
1990
로베르토 바조
(1310만 유로)
1991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1500만 유로)

파일:세리에 A 로고.svg
세리에 A 역대 득점 순위 Top 3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2px -12px"
{{{#555555,#aaaaaa
<colcolor=#000,#fff> 순위 선수 국적 득점
1 실비오 피올라파일:UEFA ITA.png 274
2 프란체스코 토티파일:UEFA ITA.png 250
3 군나르 노르달파일:UEFA SWE.png 225
4 주세페 메아차파일:UEFA ITA.png 216
4 조제 알타피니파일:UEFA ITA.png파일:UEFA BRA.png 216
6 안토니오 디 나탈레파일:UEFA ITA.png 209
7 로베르토 바조파일:UEFA ITA.png 205
8 치로 임모빌레파일:UEFA ITA.png 196
9 쿠르트 함린파일:UEFA SWE.png 190
10 주세페 시뇨리파일:UEFA ITA.png 188
10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파일:UEFA ITA.png 188
10 알베르토 질라르디노파일:UEFA ITA.png 188
13 가브리엘 바티스투타파일:UEFA ARG.png 183
14 파비오 콸리아렐라파일:UEFA ITA.png 182
15 잠피에로 보니페르티파일:UEFA ITA.png 178
16 아메데오 아마데이파일:UEFA ITA.png 174
17 주세페 사볼디파일:UEFA ITA.png 168
18 루이지 리바파일:UEFA ITA.png 166
19 굴리엘모 가베토파일:UEFA ITA.png 164
20 로베르토 보닌세냐파일:UEFA ITA.png 162
21 루카 토니파일:UEFA ITA.png 157
2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일:UEFA SWE.png 156
22 필리포 인자기파일:UEFA ITA.png 156
22 로베르토 만치니파일:UEFA ITA.png 156
25 루이스 비니시오파일:UEFA BRA.png 155
25 카를로 레구초니파일:UEFA ITA.png 155
27 이스트반 나이에르스파일:UEFA HUN.png 153
27 에르난 크레스포파일:UEFA ARG.png 153
29 아드리아노 바세토파일:UEFA ITA.png 149
30 오마르 시보리파일:UEFA ITA.png파일:UEFA ARG.png 147
}}}}}}}}}}}} ||

브레시아 칼초 영구결번
No. 10

파일:유벤투스 FC 로고(화이트).svg
유벤투스 FC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국적 포지션 소속기간 출장경기 득점
피에트로 아나스타시(Pietro Anastasi) 이탈리아 FW 1968–1976 303 131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 이탈리아 FW 1990–1995 200 115
로메오 베네티(Romeo Benetti) 이탈리아 MF 1968–1969
1976–1979
159 23
로베르토 베테가(Roberto Bettega) 이탈리아 FW 1969–1983 481 178
카를로 비가토(Carlo Bigatto) † 이탈리아 MF 1913–1931 233 1
잠피에로 보니페르티(Giampiero Boniperti) † 이탈리아 FW 1946–1961 462 182
펠리체 보렐(Felice Borel) † 이탈리아 FW 1932–1941
1942–1946
307 161
세르조 브리오(Sergio Brio) 이탈리아 DF 1974–1990 378 24
잔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 이탈리아 GK 2001–2018
2019–2021
689 0
안토니오 카브리니(Antonio Cabrini) 이탈리아 DF 1976–1989 440 53
움베르토 칼리가리스(Umberto Caligaris) † 이탈리아 DF 1928–1935 198 0
마우로 카모라네시(Mauro Camoranesi) 아르헨티나/이탈리아 MF 2002–2010 288 32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 이탈리아 MF 1969–1976 239 41
프랑코 카우시오(Franco Causio) 이탈리아 MF 1967–1968
1970–1981
447 72
존 찰스(John Charles) † 웨일즈 FW 1957–1962 178 105
잔피에로 콤비(Gianpiero Combi) † 이탈리아 GK 1921–1934 367 0
안토니오 콘테(Antonio Conte) 이탈리아 MF 1992–2004 419 44
안토넬로 쿠쿠레두(Antonello Cuccureddu) 이탈리아 DF 1969–1981 433 39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 네덜란드/수리남 MF 1997–2004 235 10
알레산드로 델피에로(Alessandro Del Piero) 이탈리아 FW 1993–2012 705 290
루이스 델 솔(Luis del Sol) 스페인 MF 1962–1970 294 29
디디에 데샹(Didier Deschamps)[1] 프랑스 MF 1994–1999 178 4
안젤로 디 리비오(Angelo Di Livio) 이탈리아 MF 1993–1999 269 6
치로 페라라(Ciro Ferrara) 이탈리아 DF 1994–2005 358 20
주세페 푸리노(Giuseppe Furino) 이탈리아 MF 1969–1984 528 19
클라우디오 젠틸레(Claudio Gentile) 이탈리아/리비아 DF 1973–1984 414 10
욘 한센(John Hansen) † 덴마크 FW 1948–1954 187 124
파올로 몬테로(Paolo Montero) 우루과이 DF 1996–2005 278 6
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 체코 MF 2001–2009 327 65
라이문도 오르시(Raimundo Orsi) † 아르헨티나/이탈리아 FW 1929–1935 194 87
카를로 파롤라(Carlo Parola) † 이탈리아 DF 1939–1954 340 11
안젤로 페루치(Angelo Peruzzi) 이탈리아 GK 1991–1999 301 0
잔루카 페소토(Gianluca Pessotto) 이탈리아 DF 1995–2006 366 3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 프랑스 MF 1982–1987 224 104
피에트로 라바(Pietro Rava) † 이탈리아 DF 1935–1946
1947–1950
330 15
파브리치오 라바넬리(Fabrizio Ravanelli) 이탈리아 FW 1992–1996 160 68
비르지니오 로세타(Virginio Rosetta) † 이탈리아 DF 1923–1936 315 16
파올로 로시(Paolo Rossi) † 이탈리아 FW 1973–1975
1981–1985
138 34
산드로 살바도레(Sandro Salvadore) † 이탈리아 DF 1962–1974 450 17
가에타노 시레아(Gaetano Scirea) † 이탈리아 DF 1974–1988 552 32
루시디오 센티멘티(Lucidio Sentimenti) 이탈리아 GK 1942–1949 188 5
오마르 시보리(Omar Sívori) † 아르헨티나/이탈리아 FW 1957–1965 253 167
알레시오 타키나르디(Alessio Tacchinardi) 이탈리아 MF 1994–2005 404 14
스테파노 타코니(Stefano Tacconi) 이탈리아 GK 1983–1992 337 0
마르코 타르델리(Marco Tardelli) 이탈리아 MF 1975–1985 375 51
모레노 토리첼리(Moreno Torricelli) 이탈리아 DF 1992–1998 230 3
다비드 트레제게(David Trezeguet) 프랑스/아르헨티나 FW 2000–2010 320 171
잔루카 비알리(Gianluca Vialli) 이탈리아 FW 1992–1996 145 53
지네딘 지단(Zinédine Zidane) 프랑스 MF 1996–2001 214 31
디노 조프(Dino Zoff) 이탈리아 GK 1972–1983 476 0

[1] 세리에 B로 떨어지고 선수들이 이적하고 감독인 카펠로도 레알로 가버린 상황에 취임하여 2006-07 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을 하고 바로 팀을 승격시켰다. 그러나 선수 영입 권한으로 갈등을 빚고 사임하였다. 그 후로 몇 년을 삐걱거린 것을 보면 정말 아쉬운 점이다.

}}} ||

파일:IFFHS로고.png
IFFHS 선정 남자축구 레전드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fff; margin: -6px -1px -11px"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로테어 마테우스 페렌츠 푸스카스 바이충 부티아
알리 다에이 디노 조프 로베르토 바조 나카타 히데토시 차범근
자셈 야쿱 조지 웨아 안토니오 카르바할 라바 마제르 우고 산체스
요한 크루이프 마르코 반바스텐 루드 굴리트 윈턴 루퍼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호나우두 라이언 긱스 루카스 라데베 랜던 도노번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
스탠리 매튜스 데이비드 베컴 바비 찰튼 올레흐 블로힌 탄주 촐라크
프란시스코 헨토 마제드 압둘라 레프 야신 루이스 피구 에우제비우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은완코 카누 미셸 플라티니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모하메드 아부트리카 마흐무드 엘카팁 지네딘 지단 가린샤 지쿠
로저 밀러 쑨지하이 하오하이둥 프랑코 바레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데니스 베르캄프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 호베르투 카를로스 페테르 체흐 안드리 셰브첸코
케니 달글리시 에드가 다비즈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디디에 드록바 사무엘 에투
엔조 프란체스콜리 게오르게 하지 티에리 앙리 올리버 칸 카카
케빈 키건 마리오 켐페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로날드 쿠만 필립 람
미카엘 라우드루프 유니스 마흐무드 파울로 말디니 라파엘 마르케스 파벨 네드베드
모하메드 누르 제이제이 오코차 아베디 펠레 장마리 파프 안드레아 피를로
카를레스 푸욜 라울 곤잘레스 프랑크 레이카르트 히바우두 호마리우
호나우지뉴 파올로 로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페테르 슈마이켈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다보르 슈케르 프란체스코 토티 카를로스 발데라마 뤼트 판니스텔루이 로빈 반 페르시
사비 에르난데스
}}}}}}}}} ||


}}} ||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Roberto Baggio.jpg
이름 로베르토 바조
Roberto Baggio
출생 1967년 2월 18일 ([age(1967-02-18)]세)
베네토주 비첸차 칼도뇨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1],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eee,#191919> 선수 비첸차 칼초 (1983~1985)
ACF 피오렌티나 (1985~1990)
유벤투스 FC (1990~1995)
AC 밀란 (1995~1997)
볼로냐 FC (1997~1998)
인테르나치오날레 (1998~2000)
브레시아 칼초 (2000~2004)
행정 이탈리아축구연맹 (2010~2013 / 기술위원장)
국가대표 56경기 27골(이탈리아 / 1988~200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373A3C,#DDD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eeeeee,#191919>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가족 배우자 안드레이나 파비
장녀 발렌티나 바조
장남 마티아 바조
차남 레오나르도 바조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평가5. 기록
5.1. 클럽 기록
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6.3. 수훈
7. 어록8. 기타
8.1. 외모8.2. WAGs
9.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판타지스타의 유래가 된 선수로, 유벤투스 소속이던 1993년에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를 석권하고, 1994 월드컵에서는 엄청난 활약으로 이탈리아의 준우승을 이끌었다.[3] 한편 그가 브레시아 칼초에서 달았던 등번호 10번은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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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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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로베르토 바조/플레이 스타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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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199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4]이다. 마라도나가 휩쓸고 지나갔던 1990년대 초반은 춘추전국시대였으나, 그나마 호마리우와 함께 가장 선두에 서 있었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바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판타지스타[5]다. 그의 전성기 시절 플레이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고, 팀의 공격 전체를 단신으로 주도할 수 있는 극소수의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0년대는 전술의 발전으로 선수 개인의 힘이 아닌, 압박 축구와 같은 조직적인 팀 단위의 시스템 축구가 들어서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너무 자유분방한 플레이를 펼쳤던 그는 커리어 내내 사키, 카펠로, 리피, 트라파토니 등 이탈리아 최고의 감독들과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켰고, 그 결과 저니맨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바조는 1993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고, 1994년에도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다.[6]

또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세번의 월드컵에서 16경기 9골[7] 2어시스트 및 준우승, 3위, 8강을 기록, 특히 1994 월드컵에서 그는 토너먼트에서만 5골을 넣으며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실축[8]으로 준우승에 그치며 실버볼을 수상하였다. 반면 그가 사키 감독과의 불화로 제외된 유로 1996에서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트라파토니 감독이 그를 제외시킨 2002 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는 16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렇듯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그의 팀 내 비중은 엄청난 것이었다.

비록 바조의 팀 커리어는 다른 역대 레벨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그가 선보인 개인 기량과 큰 대회 활약상은 고평가 요소가 되고 있으며, 현재 바조의 위상은 역대 20~30위권 정도로 평가받는다.

5. 기록

5.1. 클럽 기록

시즌 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도움 경기 경기
1982-83 비첸차 세리에 C1 1 0 - 0 0 - -
1983-84 비첸차 세리에 C1 6 1 - 6 1 - -
1984-85 비첸차 세리에 C1 29 12 - 5 2 - -
1985-86 피오렌티나 세리에 A 0 0 0 5 0 - -
1986-87 피오렌티나 세리에 A 5 1 0 4 2 1 0
1987-88 피오렌티나 세리에 A 27 6 8 7 3 - -
1988-89 피오렌티나 세리에 A 31 15 6 10 9 - -
1989-90 피오렌티나 세리에 A 32 17 5 2 1 12 1
1990-91 유벤투스 세리에 A 33 14 6 5 3 8 9
1991-92 유벤투스 세리에 A 32 18 7 8 4 - -
1992-93 유벤투스 세리에 A 27 21 8 7 3 9 6
1993-94 유벤투스 세리에 A 32 17 7 2 2 7 3
1994-95 유벤투스 세리에 A 17 8 7 4 2 8 4
1995-96 밀란 세리에 A 28 7 11 1 0 5 3
1996-97 밀란 세리에 A 23 5 4 5 3 5 1
1997-98 볼로냐 세리에 A 30 22 9 3 1 - -
1998-99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23 5 9 6 1 6 4
1999-00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19 4 3 5 1 - -
2000-01 브레시아 세리에 A 25 10 8 3 0 - -
2001-02 브레시아 세리에 A 12 11 2 1 0 2 1
2002-03 브레시아 세리에 A 32 12 8 0 0 - -
2003-04 브레시아 세리에 A 26 12 10 0 0 - -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수훈

7. 어록

나는 축구와 20년 넘게 사랑을 했다. 축구를 할 수만 있다면 수명이 줄어들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어쩌면 나는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 도핑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용한 유일한 도핑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플레이 중에서 항상 가장 어려운 것을 고르고 있다. 평범한 3골보다는 화려한 1골을 넣는 것이 좋다. 그것이 판타지스타다.
PK를 득점한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축한 것은 모든 이에게 영원히 기억된다.
선수 경력에 미련도 후회도 없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PK는 다시 차고 싶다. 나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 바조에 대한 언사 #==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만 그를 넘버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네딘 지단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 선수들은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생각한다.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는 축구를 분석하고 해석해 법칙을 찾아낸다. 그들은 축구를 좁게 만든다. 하지만 바조의 플레이는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축구는 이런 것이다'라고. 바조는 축구를 넓게 만든다.
요한 크루이프
로베르토 바조는 최고의 이탈리안 판타지스타다. 그는 메아차보니페르티보다 낫고, 역대 최고 중에 포함된다. 펠레, 마라도나, 그리고 아마도 크루이프 바로 뒤에는 위치하겠지. 무릎 부상 문제가 없었다면 아마도 바조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카를로 마초네
그를 나와 비교하지 마라. 그는 유일무이한 선수다.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마라도나보다 생산적이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리그 내 최고의 No.10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으며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미구엘 몬튜오리 (1988-89 시즌의 바조를 두고)
그는 이탈리아 축구의 기념비다.
마르첼로 리피
바조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시대에 흔적을 남겼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메아차리베라가 뛰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선수는 바로 바조다.
메아차를 볼 수 있던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바조의 플레이를 보며 그를 떠올렸다. 바조는 판타지를 지니고 있다.
잔니 브레라
바조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것은 하나의 불행이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펠레
그는 기술적으로 완전무결하다.
그는 필드 안에서 불가능한 일이 없다.
지쿠
그는 완벽한 9.5번이다. 진정한 9번은 아니나 고전적 10번보다는 많이 득점하는 선수다.
미셸 플라티니
1994 월드컵은 바조와 나의 대회였다.
호마리우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을 발에 두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축구계의 몇 없는 희귀종 중 하나다.
장피에르 파팽
로베르토 바조는 진정한 축구의 천재였다. 그건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어려운 것을 마치 쉬워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플라티니가 말했던 것처럼 9번과 10번 사이의 선수였다. 미드필더도 아니었지만 스트라이커도 아니었다.
바조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를 데리고 있던 코치들이 문제였죠. 그들은 바조와 같은 재능을 다룰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바조는 지금까지 함께 뛰어본 선수들 중에서 최고였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여러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했다. 그 중에서 로베르트 바조는 가장 스페셜했다. 나는 라우드루프, 호마리우, 쿠만, 호나우두, 스토이치코프와 함께 플레이했다. 그러나 바조와 같은 선수는 보지 못했다.
펩 과르디올라
내가 겨뤄본 상대 중 최고의 선수는 바로 바조다. 그는 마치 축구가 쉬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맷 르티시에
이탈리안들은 그들의 조직력에 엄청난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그들의 영감은 바조로부터 나온다.
데이비드 플랫
그는 1994 월드컵에서 우리 아일랜드를 상대로 최고의 경기를 펼치지는 못했지만 결국 이내 환상적인 토너먼트를 가졌지. 천재적인 선수야.
데니스 어윈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로베르토 바조로 태어나고 싶다.
파올로 말디니
난 바조를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지금처럼 각광받지 못하던 시절에 태어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분명히 그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였어요. 지금 우리는 믿을 수 없는 클래스의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그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선수다. 그는 우리 대표팀의 보물이다.
지안프랑코 졸라
정말 천부적인 재능. 또한 선수들을 제치고 수비진을 침투하는데 거대한 능력을 지녔다. 그의 움직임과 기술 때문에 그는 마크하기가 까다롭다. 팀이 언제나 도움을 구하는 선수다.
알베르트 페레르
당신은 로베르토 바조를 본다. 그리고 이내 좋은 선수란 어떤 선수인지 깨닫게 된다.
라이언 긱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축구 선수를 보며 운 적이 두 번 있다. 첫번째는 로베르토 바조이고 두번째는 라이언 긱스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그는 1994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골을 넣어 탈락시켰지만 그래도 그는 내가 언제나 매우 동경해온 선수임에는 변함이 없다.
라울 곤살레스
바르사에서 인테르로 이적해 왔던 호나우두도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내가 인테르에서 20년 동안 함께 뛰었던 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단 하나의 이름을 말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로베르토 바조가 되어야 한다. 그는 퀼리티와 열정 사이에서 이상적인 밸런스를 가졌다.
하비에르 사네티
말총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계속 이렇게만 플레이 해준다면 레게머리를 한다 해도 개의치 않겠다.
로베르토 바조는 마치 라파엘로와 같다. 델 피에로는 그의 제자이므로 핀투리키오가 된다.
조반니 아그넬리
천사들은 그의 다리 사이에서 노래한다.
알도 아그로피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우리 팀 최고의 선수다.
아리고 사키 (1994 월드컵에서)
바조는 위대한 선수이며 난 그에게 엄청난 관심이 있다.
알렉스 퍼거슨
1990 월드컵 당시 나는 자원봉사 볼보이로서 체코전에 참가했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미드필더에서 공을 잡아 30미터를 폭풍같이 질주하며 골을 성공시킨 한 선수를 보았다. 나는 그를 보며 커서 꼭 저런 선수가 되리라 다짐했고,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이제 오고 있다.
프란체스코 토티 (2002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서 넣은 결승골이 가장 아름다웠고 환상적인 골이였다. 이전에는 바조를 몰랐으나 이 1골과 그의 크고 푸른 눈이 나를 사로 잡았다. 지금도 마음 속에 바조가 남아 있다.
마돈나
바조와 같은 선수를 만나려면 적어도 앞으로 20년이 걸릴 것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바조를 이탈리아에 그냥 남겨두겠다니, 한 마디로 이건 불공평하다. 다른 선수들에겐 주어진 기본적인 기회마저 봉쇄[10]해 놓았기 때문이다. 바조는 혼자서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선수이다. 나는 트라파토니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파올로 디 카니오 (바조의 2002 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촉구하며)
축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미국의 독자들에게 나는 로베르토 바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장거리 육상 선수들의 무한한 지구력, 단거리 선수들의 스피드, 러닝백의 밸런스와 포인트 가드의 시야를 모두 지닌 선수이다.
마크 우즈
로베르토 바조를 볼 때마다 한가지 생각나는 말이 있다. 품격과 격조는 시간이 지나도 쇠락하지 않는다. 그는 몸소 이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데이터스포트
그와 처음 그라운드에 선 날 나는 흥분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잔루카 잠브로타
바조가 브레시아에서 활약했을 당시 그는 다른 선수들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프리킥을 보였다. 나는 그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안드레아 피를로
로베르토 바조와 시합을 하고 난 후 너무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렸다.
안정환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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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딸 발렌티나 바조와 함께 셀카를 찍은 로베르토 바조.png
파일:La lettera di Roberto Baggio ai giovani.jpg

8.1.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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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미남은 누구야?
마돈나 (바조의 1990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전 골 장면을 보며)
그에겐 여성팬들을 기절하게 만들고 동시에 남성팬들을 울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가브리엘 마코티
미남 축구 선수로 유명하다. 판타지스타의 조건에 외모가 들어간 이유로, 미국의 어느 기자가 바조의 외모를 보고 "여성들에게 인기폭발하게 생겼다"고 말할 정도였고, 마돈나가 바조에게 프러포즈를 할 정도다. 나이가 든 현재도 미중년이다.

8.2. WA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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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동창 안드레이나 파비와 1989년에 결혼, 2남 1녀를 두었다.

9. 같이 보기

1 쳉가 · 2 바레시 · 3 베르고미 ⓒ · 4 데아고스티니 · 5 페라라 · 6 페리 · 7 말디니 · 8 비에르코보드 · 9 안첼로티
10 베르티 · 11 데 나폴리 · 12 타코니 · 13 잔니니 · 14 마로키 · 15 바조 · 16 카르네발레 · 17 도나도니
18 만치니 · 19 스킬라치 · 20 세레나 · 21 비알리 · 22 팔리우카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아첼리오 비치니

1 팔리우카 · 2 아폴로니 · 3 베나리보 · 4 코스타쿠르타 · 5 말디니 · 6 바레시 ⓒ · 7 미노티 · 8 무시 · 9 타소티
10 R. 바조 · 11 알베르티니 · 12 마르케자니 · 13 D. 바조 · 14 베르티 · 15 콘테 · 16 도나도니 · 17 에바니
18 카시라기 · 19 마사로 · 20 시뇨리 · 21 졸라 · 22 부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아리고 사키

1 톨도 · 2 베르고미 · 3 말디니 ⓒ · 4 칸나바로 · 5 코스타쿠르타 · 6 네스타 · 7 페소토 · 8 토리첼리 · 9 알베르티니
10 델 피에로 · 11 바조 D. · 12 팔리우카 · 13 코이스 · 14 디 비아조 · 15 디 리비오 · 16 디 마테오 · 17 모리에로
18 바조 R. · 19 인자기 · 20 키에사 · 21 비에리 · 22 부폰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체사레 말디니


[1] 세컨드 스트라이커[2] 공격형 미드필더[3] 그리고 그 결승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실축하여 비운의 대명사로도 꼽힌다.[4] 바조를 포함해 주세페 메아차, 잔니 리베라, 파올로 말디니, 잔루이지 부폰 정도가 거론된다.[5] 애초에 판타지스타 자체가 바조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6] 바조의 발롱도르 순위는 1993년 1위, 1994년 2위로 잔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인 최고 기록이며, FIFA 올해의 선수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순위는 각각 1993년 1위, 1994년 3위와 1993년 1위, 1994년 2위로 둘 다 이탈리아인 최고 기록이다.[7] 9골 중 6골이 토너먼트에서 넣은 골이다.[8] 이미 바레시, 마사로가 실축해 바조가 성공해도 베베투가 성공하면 패배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에이스였던 바조가 독박을 쓴 셈.[9]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10]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바조를 한 번도 기용하지 않은 점.[11] 사실 바조는 안드레이나 파비와 1989년에 결혼했기 때문에 마돈나가 유부남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이라서, 바조가 제대로 대처를 한 것에 가깝다.[12] 한국명은 '로베르토 바조: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13] 루드 굴리트는 안정환과 세대가 완전 다르기 때문에 경기를 함께 뛰어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