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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3:10:48

다보르 슈케르

다보르 슈케르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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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보니미르 보반
(1994~1999)
다보르 슈케르
(1999~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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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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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Ballond'or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다보르 슈케르
3위
호나우두
1998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호나우두
3위
다보르 슈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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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카시
페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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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3년 수상 당시 국명[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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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아티아 축구 연맹
Hrvatska nogometna reprezentacija
파일:suker.jpg
이름 다보르 슈케르[1]
Davor Šuker
출생 1968년 1월 1일 ([age(1968-01-01)]세)
유고슬라비아 SFR 크로아티아 SR 오시예크
국적
[[크로아티아|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3cm / 체중 78kg
주발 왼발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행정가
소속 선수 NK 오시예크 (1984~1989)
GNK 디나모 자그레브 (1989~1991)
세비야 FC (1991~1996)
레알 마드리드 CF (1996~1999)
아스날 FC (1999~2000)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0~2001)
TSV 1860 뮌헨 (2001~2003)
행정가 크로아티아 축구 연맹 (2015~ / 회장)
국가대표 2경기 1골 (유고슬라비아 / 1990~1991)
68경기 45골[2] (크로아티아 / 1992~2002)

1. 개요2. 클럽 경력
2.1. 자국 리그2.2. 라리가 시절2.3. 라리가 이후
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수훈
6. 이야깃거리

[clearfix]

1. 개요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이자, 現 크로아티아 축구 연맹 회장.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가 3위에 오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1998년 발롱도르 2위 및 FIFA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다.

2. 클럽 경력

2.1. 자국 리그

1984년 유고슬라비아 시절 때 NK 오시예크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1989년 자국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고 청대 시절의 활약과 1990 월드컵 대표 승선을 계기로 성장했지만, 1991년 유고 내전 발발로 인해 자국에서 축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해외진출을 모색했고 라리가의 세비야 FC로 이적했다.

2.2. 라리가 시절

세비야로 이적한 슈케르는 첫 시즌에는 인상적이지 못했지만 세 번째 시즌인 1993-94 시즌 리그 24골로 호마리우(30골)에 이은 득점 2위로 시즌을 마치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성적을 끌어올려 95-96 챔피언스 리그에서 6경기 출장해 4골을 넣은 슈케르는 국가대표팀 활약과 함께 전성기를 맞으며 1996년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구 유고 연방 몬테네그로 출신 스트라이커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와 투톱을 짠 슈케르는 96-97 시즌 24골로 득점 3위에 올랐고 97-98 시즌에는 리그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4골을 터뜨리며 건재를 과시, 레알 마드리드가 유벤투스 FC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는 데 한몫했다. 그리고 1998 월드컵에서 생애 최고의 활약을 했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 부상에 시달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혼란기로 인해 슈케르는 스페인 무대를 떠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아스날 FC로 이적한다.

2.3. 라리가 이후

하지만 아스날에서는 9번의 저주+부상 후유증으로 총 22경기 8골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고, 먹튀라는 오명을 쓴 채 한 시즌만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 하지만 이미 부상 악화로 내리막길에 있던 슈케르는 웨스트햄에서도 자기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고, 분데스리가 TSV 1860 뮌헨으로 이적했지만 제대로 출장 기회도 잡지 못하고 두 시즌 동안 후보로 전락한 뒤 02-03 시즌을 마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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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축구의 황금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3] 우승의 핵심 멤버 중 한 명. 이 대회에서 6경기 6골로 득점 2위에 올랐다. (1위는 7골)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올림픽 대표로 2경기 출전 하여 골은 기록하지 못 했으며, 1990년 UEFA U-21 챔피언십에서 5경기 3골로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팀의 준우승을 이끌어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등 유럽 최고의 축구 유망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22세의 나이에 유고 대표팀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당시 대표팀 주전인 다르코 판체프, 즐라트코 부호비치가 있었기 때문에 벤치에서 경험을 쌓는 정도였다.

국가대표 커리어의 시작은 유고 내전의 시작으로 인해 모국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다. 모국인 크로아티아 소속으로 국가대표에 나서기 시작한 슈케르는 유고 내전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 연방 전체가 메이저 대회 출전 정지를 먹어 유로 1992, 1994 미국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크로아티아 국기를 달고 참가한 유로 1996에서 크로아티아의 황금세대 멤버인 투톱 콤비 알렌 보크시치,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던 즈보니미르 보반, 윙어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라는 화려한 공격진의 리더로 4경기 3골을 넣으며 크로아티아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황금기 중 하나인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조별리그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아깝게 패하기는 했지만 자메이카, 일본전에 1골씩 넣고 2승 1패로 16강에 안착한 후, 16강 루마니아전 결승골, 대회 최대 이변 중 하나인 8강 독일전에서 3번째 골로 독일을 3:0으로 대파하는 주역이 되었고, 4강전 프랑스전에서도 선제골을 넣었지만, 하필 이날 인생게임을 한 릴리앙 튀랑 때문에 1:2로 역전패하고[4], 3·4위전 네덜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정리해보면 슈케르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제외하고은 매경기 골을 때려 넣었고, 결국 7경기 6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골든슈와 실버볼을 수상했다. 월드컵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같은 해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를 기록하는 등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리즈 시절을 지휘했다.

아쉽게도 1999년 부상 이후 노쇠화까지 겹쳐 기량이 내리막을 걸으면서 유로 2000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이비차 올리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크로아티아 축구의 첫번째 전성기를 상징하는 선수로, 슈케르의 뛰어난 공격력을 필두로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즈보니미르 보반 등을 보유한 크로아티아는 지금은 사라진 축구 강국 유고슬라비아의 적통 후계자로서 당시 20세기말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 월드컵 골든슈+실버볼 등 개인 수상도 걸맞게 화려했다.

슈케르의 최대 장점은 뛰어난 오프 더 볼과 킥 능력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좋기 때문에 수비 뒷공간으로 들어가면서 볼의 궤적을 잘 읽고 최적의 위치로 움직여 깔끔한 퍼스트터치로 완벽하게 볼을 소유하고 마무리했다.특히나 왼발 킥이 특출난 선수로 당시 유럽에서도 손꼽혔으며, 이미 어렸을 때 부터 축구 지능과 결정력에 재능이 있어 무리없이 로컬 유스팀에 스카웃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아웃프런트 슈팅에 능숙하여 주발인 왼발을 이용하여 니어포스트든 파포스트든 상황에 맞게 감아차 골을 가져가며 칩슛능력이 매우 뛰어났을뿐 아니라 큰 각도로 휘어지는 인/아웃프론트 감아차기도 자주 보여주곤 했다. 세트피스 처리에도 일가견이 있어 프리킥도 종종 차곤 한다.수준급의 민첩성과 볼 컨트롤 능력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 능력을 지녔고 박스 안에서 순간적으로 센스있게 수비를 제치고 슈팅할 수 있다.

플레이의 일관성과 빠른 학습능력 또한 슈케르의 큰 강점으로 꼽힌다. 루카스 포돌스키처럼 국가대표에서는 온탕, 클럽에서는 냉탕으로 커리어 내내 활약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선수들도 많은데 슈케르는 클럽에서 보이는 좋은 활약을 유고슬라비아 시절부터 국가대표에서도 쭉 그대로 보여주는 든든한 모습으로 유명했으며, 자신의 플레이에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을 습득하는 능력도 빨랐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한 선수였다. 우선 피지컬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신장 자체는 평균 이상에 속했지만 굉장히 마른 체형이었기 때문에 커리어 초반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라는 우려섞인 평가를 듣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이 확립되고 클럽과 국가대표에서 좋은 활약을 한 이후에도 이점은 별 달라진 것이 없어 스태미나와 힘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 때문인지 볼 경합에서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속력이 좋은 스타일도 아니어서 주력으로 누군가를 제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오른발도 간간히 써준다고는 한데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보면 왼발의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6. 이야깃거리

현역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은 하지 않고 자국에서 청소년 축구교실 등으로 활동하였고, 2014년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도 각별한 사이로 유명하며 홍명보의 경질 이후 차기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국가대표 동료였던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를 추천하기도 했다.

2015년 당시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정운에게 귀화해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선수로 뛸 것을 대리인을 통해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에이전트의 언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운 선수는 고민 후 거절. 이후 K리그1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선수로서의 레전드급 활약과는 별개로 행정가로서의 평가는 나쁘다. 흐려진 판단력과 부정부패로 인해 크로아티아 축구팬들은 되려 암걸려 한다고... 이것 때문에 유로 2016 당시 체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크로아티아 훌리건들이 홍염을 던져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협회장으로써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호성적을 이끌었기 때문에 재평가가 존재한다.

미국의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와 비슷하게 생겼다.


[1] 과거에는 '수케르'라고 표기하기도 했지만 국립국어원의 세르보크로아트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슈케르'로 정착되었다.[2]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 現 U-20 월드컵[4] 이 날 튀랑은 슈케르의 선제골 상황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실점을 허용한 이후, 각성해서 자신의 A매치 142경기에서 넣은 단 두 골을 이 경기에서 몰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