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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에 대한 평가와 이들의 음악적 영향력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2. 음악성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록이면서도 록이 아닌 그 무언가이다."
— 핫뮤직 편집장 음악 평론가 조성진
음악적으로는 하드 록의 기조를 지켜나가면서도 고전 뉴올리언스 블루스, 사이키델릭 블루스, 아메리칸 포크 록, 브리티시 포크 록, 중동과 인도의 민속음악, 프로그레시브 록, 훵키, 레게, 뉴웨이브 등 수많은 음악적 자양분을 받아들여온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급변하는 최신 음악 조류와도 늘 함께 하며 뒤쳐지지 않았고, 지루한 매너리즘에 빠지지도 않았다.[1]— 핫뮤직 편집장 음악 평론가 조성진
보통 헤비 메탈을 창시한 밴드 3개를 꼽을 때, 가장 널리 알려져있는 밴드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레드 제플린은 다른 두 밴드인 사바스나 딥 퍼플에 비해 헤비 메탈 색체가 가장 적은 밴드로 평가받는다. 독일어 위키백과의 경우[2] 아예 레드 제플린을 헤비 메탈 밴드로 분류하고 있지도 않다.[3]
이는 근본적으로 두가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로, 레드 제플린은 1968년 크리스 드레야가 탈퇴한 이후 존 본햄이 사망할 때까지 단 한번도[4] 멤버 교체가 없었는데, 딥 퍼플과 블랙 사바스는 멤버 교체가 수시로 이뤄졌다. 두 밴드에 소속되어있던 아티스트들은 당연히 1970년대 전성기의 중간에 솔로 활동을 이어나갔고 레드 제플린의 멤버들보다 훨씬 다양한 멤버들과 원맨밴드를 만들면서 여러 헤비 메탈 뮤지션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지 오스본과 레인보우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밴드에 소속되어있던 랜디 로즈나 카마인 어피스 등의 뮤지션들도 1980년대 솔로 활동을 하며 80년대 헤비 메탈 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즉,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 같은 밴드처럼 친한 친구들끼리[5] 만든 밴드의 성격이 강했지만, 블랙 사바스와 딥 퍼플은 멤버들의 교체가 수시로 이뤄지고,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미줄처럼 다른 헤비 메탈 뮤지션들과도 관계를 맺으며 레드 제플린에 비해 훨씬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로는 그들의 음악이 헤비 메탈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로버트 플랜트부터 밴드의 음악이 1/3은 포크라면서, 레드 제플린이 헤비 메탈 밴드임을 부정한다. 레드 제플린은 고전적인 뉴올리언스 블루스에서 시작해, 사이키델릭 록, 포크 록, 프로그레시브 록, 소프트 록을 추구했고, 여기다가 중동과 인도의 신비한 음악, 팝, Funk, 레게, 뉴웨이브 등 수많은 음악들을 시도해왔는데 그러다보니 당연히 헤비 메탈의 비중은 고전 헤비 메탈 3대 밴드중 가장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다양한 음악들을 추구하면서 기본적인 뼈대로 삼은 음악은 로커빌리와 로큰롤을 기반으로 둔 블루스고[6] 헤비 메탈은 블루스 록을 변형하면서 시도했던 하나의 장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점은 헤비 메탈 색체가 적은 1집, 3집과 8집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3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 밴드답게, 헤비 메탈을 다른 밴드에 비해 적게 시도했음에도 그 영향력은 딥 퍼플이나 사바스에 못지 않다.[7] 대부분의 트랙은 헤비 메탈이 아닐지라도 그 속에 숨어있는 헤비 메탈 트랙 몇개는 후대 밴드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충분했다. 레드 제플린의 영향력을 언급한 밴드로는 대표적으로 밴 헤일런, 주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가 있는데, 이 밴드들은 1980년대 헤비 메탈의 방향을 제시한 가장 대표적인 세 밴드이다.[8] 심지어 지미 페이지와 연주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잉베이 말름스틴도 레드 제플린의 앨범들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헤비 메탈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은 적었더라도, 후대 뮤지션들에게 준 영감이 크기 때문에 그 음악성이 매우 고평가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음악적 영향
일반적으로 어클레임드 뮤직에서 산정한 올타임 아티스트 TOP 10 내에 들어가는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분야들 뿐만 아니라 타 분야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들이라고 여겨지는데, 레드 제플린은 여기서 무려 7위에 산정되었다. 실제로 후술할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록 음악가들 뿐만 아니라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팝과 힙합 음악가들도 있다.
먼저 레드 제플린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록 음악의 기술적인 면에 있다. 그들의 연주 실력은 인간 흉기들의 모임인 더 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크림 등의 밴드들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평가받으며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들과 맞먹을 정도의 연주실력을 갖춘 밴드는 정말 찾기 힘들다. 이러한 부분은 이들이 록 음악 역사상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밴드들인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를 뛰어넘는 부분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적인 면에서의 이들의 성과는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되고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레드 제플린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밴드가 되는 계기가 된다.[9],
레드 제플린은 기타 솔로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밴드이다. 지미 헨드릭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하드 록 기타에 있어서 기타 솔로는 정립된 개념이 아니었지만, 지미 헨드릭스와 지미 페이지의 등장 이후 하드 록에 있어서 기타 솔로는 하나의 음악적 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물론 킹크스의 You Really Got Me 등 기타 솔로를 시도한 곡들은 이미 차고 넘쳤지만, 그것을 하나의 정형화된 형태로 정리하여 하드 록과 메탈의 메인스트림으로 올려놓은데에는 블랙 사바스, 딥 퍼플, 아이언 버터플라이,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그리고 레드 제플린 등의 밴드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유하자면 록 기타 솔로에서 태핑 기술이 에디 밴 헤일런에 의해 처음 도입된 것은 아니지만 EVH가 실질적인 태핑 기술의 시초자로 꼽히는 것은, 이미 여러 형태로 사용되고 있던 태핑 기술을 헤비 메탈 기타 솔로의 한 부분으로 정립하여 메인스트림에 올려놓았기 때문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레드 제플린은 악기 연주 부분에서 본격적으로 록 음악이 복잡하고 어려운 연주 방식을 추구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 후반부터 사이키델릭 록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악기 수를 늘리고, 악기 연주도 할 수 있는만큼의 노력을 짜내서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를 극대화하는 시도가 여러 음악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여기에 정점을 찍은 밴드가 바로 레드 제플린이다. 이후 밴 헤일런이라던가,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 특정 악기의 연주 방식에 혁신을 일으킨 음악가들은 있었지만 레드 제플린처럼 기타, 드럼, 베이스, 보컬 등 거의 전 분야에 있어서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말 그대로 혁명을 일으킨 밴드는 매우 적다.[10] 사실 이런 지나치게 어려워진 악기 연주는 현대에 들어와서 록 음악을 하려는 사람이 적어진 원흉으로 꼽히기도 하고, 이 때문에 너바나와 그린 데이가 등장한 1990년대 이후로 이런 복잡한 악기 사용 양상은 록 음악에서 퇴조하고 있다. 그러나 레드 제플린이 록 음악 연주자들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은 대부분의 음악가과 리스너들이 동의한다.
좋든 나쁘든, 록 음악이 이정도로 상업적이었던 것은 레드 제플린과 이후 1980년대 중반 글램 메탈 씬밖에 없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레드 제플린은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밴드"였던만큼 록 음악 상업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져[11] 1970년대 후반 런던 펑크 밴드들에게 비난을 당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레드 제플린은 과도하게 상업주의에 치중된 밴드는 아니었으며 비록 7,8집이 1,2,3,4,5,6집에 비해 음악성이 떨어져 비판받기는 하지만[12] 1집부터 마지막 앨범까지 일정 이상의 음악성을 보여줬고, 비평적으로도 성공했다.[13]
레드 제플린은 하드 록 밴드중 가장 상업화된 밴드이기도 했지만, 인도 음악과 중동 음악을 헤비 메탈에 결합하고,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하는 등 동시에 가장 음악적으로 혁신성을 추구했던 밴드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들의 앨범중 가장 성공한 1,2,3,4,5,6집은 비단 헤비 메탈 뿐만 아니라 대중 음악사 전체로 영역을 확장해도 올타임 명반들로 여겨진다.[14] 이를 반영하듯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 선정 200대 앨범에서는 3집을 제외한 1집부터 6집까지 모든 앨범이 200위권 안에 들었는데, 이정도로 많은 앨범을 로큰롤 명예의 전당 200대 명반 리스트에 넣은 밴드는 비틀즈가 유일하다.
4. 음악 외적으로 미친 영향
블랙 사바스가 어둡고 악마를 숭배하는 듯한 헤비 메탈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고 롤링 스톤스가 양성적이면서도 퇴폐적이고 섹시한 로큰롤 스타의 이미지를 구축해 펑크 록과 글램 록이라는 록의 세부 장르가 탄생하는데 크게 기여를 했다면, 레드 제플린은 화려하고 마초적이면서도 섹시한 락스타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15]즉, 치렁치렁한 가죽옷을 입고 나와서 2~3시간씩 공연을 하고, 장발의 보컬리스트와 기타리스트가 헤드뱅잉을 하면서 샤우팅과 현란한 속주를 하고, 공연장 밖에서는 그루피족들을 몰고 다니는 록 음악가의 전반적인 이미지는 레드 제플린이 기여한 부분이 크다.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 히피 밴드라고 평가받는 레드 제플린의 화려한 의상과 무대 매너는[16] 글램 록과 더불어서 너바나가 등장할 때까지 거의 모든 록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하냐면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이라는 책에서는 레드 제플린이 헤비 메탈의 마초적인 면을 촉발시키기는 했지만 그것을 두고 이 밴드를 비난할 수는 없다라는 서술을 했다. 즉 장발에 가죽옷을 입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1980년대 글램 메탈 및 스래시 메탈 뮤지션들의 마초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는 이미 레드 제플린이 10~20년 앞서서 추구했던 것이었다.[17] 레드 제플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과 화려한 의상을 하고 다니던 밴드가 거의 없었다.[18] 이러던 것이 레드 제플린과 글램 록의 등장 이후에는 완전히 판도가 바뀌어서, 197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오히려 조촐한 의복을 입은 록 음악가들이 드물어진다. 또한 레드 제플린은 활동 당시 TV에는 아예 출연을 하지 않으며 다른 음악과 구별되는 록 밴드로서의 신념과 신비주의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이 기여하였다.[19]
공연 쪽에서 조금 더 깊게 가자면,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아레나 록 형성에 큰 영향을 줬다. 레드 제플린의 시대 이전까지 록밴드는 콘서트장에서 30분정도만 잠깐 노래를 부르고 나가는게 관례였고 비틀즈의 부도칸 공연이나 셰이 스타디움 공연도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레드 제플린은 공연 시간을 2시간 이상으로 확 늘리고 화려한 조명과 의상 등을 라이브 공연에 도입하여 대중 음악 전반의 무대 세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5. 평가
상술한 수많은 업적들과 막대한 영향력, 그리고 어마어마한 인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현대 대중음악의 본좌라고 불리는 비틀즈, 롤링 스톤스, 밥 딜런 다음가는 아티스트를 꼽을 때 데이비드 보위, 닐 영,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반드시 언급되는 아티스트이다.[20] 모든 아티스트가 아닌 그룹으로만 한정하면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다음 자리를 항상 지키고 있다. 모국인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평론가들이 정말 높게 평가하고, 미국 리스너들도 매우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영국 록 밴드다. 심지어 영국보다 미국에서 더 성공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평론가들, 특히 롤링 스톤에 의해 몇 안되게 고평가받는 1970년대 영국 록밴드이다.비록 Led Zeppelin I 앨범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표절 사건 때문에 커버 밴드다, 과대평가다, 거품이다 라는 말이 정말 끊이지 않고 나오는 밴드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연주법에 있어서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이들은 음악성보다도 영향력에 있어서 엄청난 평가를 받는 밴드다. 비틀즈와 지미 헨드릭스 이후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밴드가 레드 제플린이었고, 특히 악기 연주에 있어 그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디 밴 헤일런이 등장하기 전까지 하드 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지미 페이지였고, 조 페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기타리스트가 지미 페이지였다. 거기다가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 존 본햄의 드럼 실력까지 전반적으로 레드 제플린이 악기 연주에서 헤비 메탈과 하드 록의 역사 미친 족적은 지대하다. 단순한 영향력만이 아니라 악기 연주 그 자체만으로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
레드 제플린은 대중적 취향과 너무 동떨어지고 난해한 실험이 지나친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오버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혁신성이 너무 부족하여 과거와 똑같은 기성품적인 록 음악만 반복해서 찍어내듯 만드는 밴드처럼 고루하지도 않은 매우 중도적인 음악을 했다. 이런 면에서 당대의 음악적 유행과 조류에 아랑곳 하지 않는 실험과 파격으로 자기들만의 음악 세계를 계속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온 더 후같은 밴드에 비해 일부에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리고 펑크 록 밴드들에게는 거리의 생생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황한 노래만 부르고 잘난척 허세나 부리는 엘리티즘 공룡 밴드라며 공격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과 뒤에 언급될 표절 문제 때문에 활동 당시 평단의 평가는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한 예로 발매 당시 Led Zeppelin IV는 빌리지 보이스의 1971년의 Pazz&Jop 연말 설문조사에서 전체 30위로 간신히 턱걸이 순위로 올랐고, 평론가 순위에서는 아예 순위에 들지도 못했다.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이런 평가가 뒤집힌건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하드 록 밴드들이 록 음악의 주류를 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술했다시피 기타 기교, 보컬, 드럼, 베이스 계에서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평론가들의 평과는 별개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듣던 팬들이 커서 제2의 레드 제플린을 꿈꾸며 하드 록 밴드와 메탈 밴드들을 결성했고, 이런 밴드들이 1980년대 글램 메탈과 1990년대의 그런지를 주도하면서 점차 레드 제플린의 명성이 높아진 것이다. 밴 헤일런의 보컬 데이비드 리 로스가 레드 제플린의 광팬이었다는건 이미 유명한 얘기다. 러시는 레드 제플린의 곡을 커버하면서 시작되었고, 커트 코베인과 브라이언 메이가 기타를 연습할 때 친 곡은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과 Heartbreaker였다. 이처럼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 팬들이 80년대, 90년대, 그리고 90년대 음악의 영향을 받은 21세기의 록 음악에까지도 영향을 지대하게 행사하면서, 자연스럽게 평론가들의 평도 덩달아 높아지게 되었다.[22]
6. 레드 제플린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
- 1920~60년대 블루스, 로큰롤, 로커빌리 아티스트들
- 엘비스 프레슬리 : 로버트 플랜트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은 전부 엘비스의 광팬으로, 멤버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4명 모두 만장 일치로 엘비스를 꼽았다. 사실 엘비스는 그 시절 모든 록 키드들에게는 영웅같은 존재였다.[23]
- 로버트 존슨 : 전신인 야드버즈가 블루스 록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만큼 델타 블루스의 거장인 로버트 존슨에게서 짙은 영향을 받았다. 로버트 존슨의 곡인 Travelling Riverside Blues를 커버한 적도 있다.
- 하울링 울프
- 머디 워터스
- 버디 리치 : 존 본햄이 버디 리치의 영향력을 언급하였다.
- 얼스 파머
- 리틀 리처드 : 안 그런 록 음악가가 어딨겠냐만 로버트 플랜트의 시원한 샤우팅 등 보컬적인 면모는 리틀 리처드에게 영향을 받았다.
- 블라인드 윌리 존슨
- 스코티 무어
- 제임스 버튼
- 척 베리
- 1960년대 영미권 블루스 록, 하드 록 아티스트들
- 크림 : 특히 진저 베이커는 존 본햄이 그 영향력을 언급했던 드러머이다.
-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 더 후 : 레드 제플린은 더 후가 추구하던 하드 록을 계승하여 헤비 메탈로 발전시켰을 정도로 영향을 짙게 받았다. 또한 더 후가 역으로 레드 제플린에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
- 스몰 페이시스 : 특히 로버트 플랜트가 스몰 페이시스의 보컬인 스티브 매리엇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모드 밴드인 스몰 페이시스의 스티브 매리엇이 좀 더 소울스러운 기교가 많다면, 로버트 플랜트는 좀 더 하드하고 직선적인 보컬 성향이 강하다.
- 아이언 버터플라이 : 두 밴드는 1960년대 후반 하드 록의 라이벌로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았다.
- 롤링 스톤스 : 야드버즈 시절부터 알렉시스 코너의 밑에서 함께 블루스를 연습하면서 서로 음악적 영향력을 주고 받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레드 제플린 멤버들과 롤링 스톤스 멤버들 모두 서로의 데뷔 전부터 같이 알고 지냈다고 한다.[24] 대표적으로 존 폴 존스가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을 받아 보틀넥을 연주하였으며, 레드 제플린의 전성기 시절 발매된 앨범들은 웬만하면 롤링 스톤즈 이동식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또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이 당시 유행하던 레드 제플린에게 영향을 받아 좀 더 하드해 졌다는 특징도 있다.[25]
- 재니스 조플린 : 로버트 플랜트는 재니스 조플린의 광팬이었는데, 위의 스티브 매리엇과 더불어 재니스 조플린의 보컬 또한 벤치마킹하였다.
- 비틀즈 :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의 라이벌인 롤링 스톤스와는 상호간 영향력을 주고받았지만, 동시대의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하면 레드 제플린은 드물게 비틀즈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아티스트이다.[26] 이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적 뿌리인 블루스가 비틀즈 데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성을 제외한 밴드 경영 방식 등 대부분의 행보는 비틀즈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27]
7.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들
- 밴 헤일런 : 보컬 데이비드 리 로스와 기타 에디 밴 헤일런은 어릴때부터 레드 제플린의 팬이었다고 하며, 2대 보컬인 새미 헤이거 또한 레드 제플린의 팬이라고 한다. 당장 Eruption은 Heartbreaker의 기타 솔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에어로스미스 : 1970년대 아메리칸 하드 록 진영중 가장 블루스 색체가 강했던 밴드로,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 레드 핫 칠리 페퍼스 : 인터뷰에서 언급.
- 비스티 보이스 : 그들의 첫 앨범 Licensed to Ill에서는 한곡도 아니고 무려 3곡이나 제플린의 노래를 샘플링했다.
- 건즈 앤 로지스 : 액슬 로즈와 슬래시 둘 모두 록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레드 제플린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글램 메탈 진영에서 블루스 록의 색채가 짙은 노래들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액슬-슬래쉬의 보컬과 기타 조합은 외면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플랜트-페이지와 비슷한 점이 많다.
- 러시 : "우리는 레드 제플린이 되고 싶었다"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레드 제플린의 유명한 빠돌이 밴드로 꼽힌다. 애초에 시작부터가 레드 제플린의 카피 밴드였다. 또한 "킹 크림슨과 예스가 레드 제플린을 만났으니 그게 곧 러시다"라는 홍보 문구도 유명하다.
- 퀸 : 밴드 관리 구조나 악기 포지션을 레드 제플린에서 따 왔으며, 음악성 또한 레드 제플린과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세 음악가에게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초반 퀸을 비난하던 평론가들이 써먹던 단골 레퍼토리가 "퀸은 레드 제플린의 싸구려 하위 버전"이었을 정도니...
- 오지 오스본 : "레드 제플린 1집을 들었을 때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라고 발언.
- 너바나 : 커트 코베인은 "레드 제플린 별로 안 좋아한다"라고 했는데, 공연에서 레드 제플린 커버도 많이 했고 커트 코베인 자신도 어릴 때 제플린의 음반을 정말 매일 들었다고 한다.
츤데레?
- 푸 파이터스 : 너바나 출신의 멤버 데이브 그롤이 만든 밴드인데다가, 그롤은 너바나 멤버 중에서도 레드 제플린에 대한 신앙심[29]이 가장 강했기 때문에 푸 파이터스는 하드 록 밴드로도 분류된다.
-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 기본적인 음악 사운드는 레드 제플린에게서, 랩을 얹은 것은 비스티 보이즈와 Run D.M.C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 사운드가든 : 블랙 사바스, 도어즈, 레드 제플린이 자신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밴드였는데, 그중에서도 레드 제플린이 가장 컸다고 언급한 바 있다.
- Korn : 리더 조나단 데이비스의 "만약 동서고금 막론하고 딱 하나의 밴드와 함께 연주할 수 있으면 레젭을 꼽겠다"라고 한 발언이 유명.
- 화이트 스트라입스 : 레드 제플린을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꼽았다. 실제로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음악적 뿌리는 블루스이다.
- 오아시스 :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밴드였지만, 리더인 노엘 갤러거가 처음으로 들었던 록 음반이 5살 때 어머니께 생일 선물로 받은 Led Zeppelin II였으며, 본인 스스로도 오아시스는 비틀즈뿐만 아니라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 등의 화려한 록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마돈나 : 음악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본인도 레드 제플린의 팬인지라 Whole Lotta Love 등 레드 제플린의 여러 곡들을 커버하였다.
- 프린스 : 음악적인 부분에서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기타 연주 면에서는 지미 페이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직접 밝혔다.
- 에미넴 : 록 덕후인 에미넴답게 레드 제플린의 곡을 샘플링하기도 했다.[30] Kim, Arose라는 곡은 Led Zeppelin IV의 When the Levee Breaks를 샘플링한곡이며, 명곡 Lose Yourself의 리프 또한 Kashmir와 매우 흡사하다.
- 그레타 반 플릿 :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것을 넘어서 심하게 비슷한 사운드로 한때는 레드 제플린 카피캣 소리도 들었던 밴드이다. 특히 보컬이 로버트 플랜트와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 이적 : 자신의 음악적 기둥이 된 아티스트들로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을 꼽았다. 이적 문서에 따르면 1집과 2집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며, 어렸을 때는 지미 페이지같은 간지나는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고.
사실 레드 제플린이 하드 록 / 헤비 메탈 계열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비틀즈가 대중음악에서 가지는 영향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스타일이나 사운드 면에서는 잉베이 말름스틴처럼 솔직하게 "난 레드 제플린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31] 또는 "레드 제플린 싫다"라고 언급하는 메탈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레드 제플린이 불러일으킨 하드 록의 광풍의 영향력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즉 좋든 싫든, 하드 록 그 자체를 시대의 유행으로 만든 레드 제플린의 영향력은 지미 헨드릭스나 비틀즈가 그렇듯이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8. 그 외
- 레드 제플린의 앨범은 독특한 앨범 커버아트로도 유명하다. 3집과 6집은 커버가 요리조리 접히고 열리고 움직여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게이트폴드 커버, 5집, 7집, 9집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커버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힙노시스"의 디자인으로 이색적인 예술성을 선보인다.
[1] 이처럼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받아들였지만,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가장 기초적인 기반이 된 장르는 블루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2] 전통적으로 독일어권과 스칸디나비아 5개국은 헤비 메탈의 초강세 지역이다.[3] 개요 부분에 Led Zeppelin zu den Pionieren des Hard Rock, Bluesrock, Progressive Rock sowie des aufkeimenden Heavy Metal, verarbeitete aber auch Einflüsse der Folkmusik (레드 제플린은 하드 록, 블루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과, 급성장하던 장르였던 헤비 메탈의 개척자였지만, 포크 음악 역시 받아들였다) 라는 문구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레드 제플린을 헤비 메탈 밴드였다고 딱부러지게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4] 중간 중간에 존 폴 존스가 플랜트-페이지의 사랑 싸움에 답 없음을 느끼고 잠깐 탈퇴하다가 복귀하기도 했다.[5] 정작 멤버들끼리 서로 친해서 만들었던 밴드는 블랙 사바스 쪽이었다. 레드 제플린은 태생이 슈퍼밴드다. 그러나 밴드의 두 기둥이었던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가 애인 수준으로 친했고, 존 폴 존스와 존 본햄은 무작정 밴드를 탈퇴해 리치 블랙모어처럼 솔로 활동을 하기에는 인기가 부족했다. 반대로 블랙 사바스는 보컬 오지 오스본이 헤로인 중독을 비롯한 몇가지 복잡한 이유들로 밴드에서 해고되면서 슈퍼밴드 같은 성격으로 변했다.[6]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정통 블루스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에릭 클랩튼은 "내 음악은 정통 블루스지만 지미 페이지의 기타 연주는 블루스라기보다는 로큰롤이 혼재된 블루스다"라고 한 적이 있다.[7] 쉽게 생각해서 비틀즈가 펑크 록 밴드는 아니지만 라몬즈와 같은 초기 펑크 록 밴드들에게 아이디어를 준 것과 비슷하다.[8] 주다스 프리스트는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을 이끌며 헤비 메탈 장르의 부흥을 주도했고, 밴 헤일런은 글램 메탈 대중화에, 그리고 메탈리카는 스래시 메탈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9] 실제로 하드 록이 인기가 많은 미국에서는 인기 투표를 하면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와 1, 2위를 다툰다.[10] 그나마 크림, 블랙 사바스, 딥 퍼플, 더 후 정도.[11] 특히 레드 제플린이 록 음악 특유의 "저항 정신"을 내세우지 않고, 정치적인 곡들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득권층에 아부하는 밴드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12]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음악적 성과가 어마어마한 레드 제플린의 커리어 중에서”이다. 실제로 7,8집도 명반으로 인정받으며, 레드 제플린의 전성기 시절 음반들처럼 UK 차트와 빌보트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13] 이런 점은 1980년대 글램 메탈 씬과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글램 메탈 밴드중 상업적, 비평적으로 성공한 밴드가 건즈 앤 로지스 정도에 불과하며, 글램 메탈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음악가인 본 조비나 에어로스미스도 앨범의 평은 1970년대 하드 록 시대의 명반에 비하면 영 좋지 못하다. 밴 헤일런의 경우는 팬들조차 글램 메탈 시대보다 정통 헤비 메탈 시기의 앨범을 더 좋아한다.[14] 이중에서는 3집과 5집이 약간 딸린다. 3집은 대중적인 하드 록 넘버가 얼마 없고, 5집은 앞 뒤 앨범이 워낙 레전드급 명반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음악성이 떨어져보이는 것. 물론 앨범 따로 따로 평가하면 이 두 앨범의 평가도 엄청나게 좋다.[15] 오히려 록 음악의 음악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비틀즈는 마약 투약과 멤버간 불화 정도를 빼면 일반적인 록밴드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다. 이러한 이유와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비틀즈의 곡이 소프트 록 몇 곡 밖에 없기에 국내에서는 비틀즈를 록밴드가 아닌 올드 팝 그룹으로 생각하는 것이다.[16] 로버트 플랜트는 흔히 말하는 관중 조련을 하면서 무대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였고, 지미 페이지는 기타 솔로를 하면서 기타를 옆으로 들어올려서 치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솔로 도중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환호를 유도하는 퍼포먼스도 하였다. 그렇기에 이들은 프론트맨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17]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는 비록 부르는 곡들의 가사는 마초적이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는 양성적인 이미지가 컸기 때문에 마초적인 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믹 재거에 대해 게이같다는 평도 있었다.[18] 물론 60년대 초중반에 롤링 스톤스가 장발을 한채 미국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하다 벌거벗은 여자가 수영을 한다고 쫓겨난 적이 있기는 하다.[19] 비틀즈는 60년대 중반까지 아이돌의 위치에 있는 밴드였기 때문에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출연하는 단독 TV 쇼 까지 만들어질 만큼 TV에 활발히 출연하였고 롤링 스톤스 역시 자신들의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TV에 많이 출연하였다.[20] 여기에 프린스, 비치 보이스가 추가되기도 한다.[21] 이는 레드 제플린 현역 당시에 롤링 스톤은 비틀즈, 롤링 스톤스, 더 후 정도를 제외한 영국 록 밴드들과는 관계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당시 롤링 스톤은 레드 제플린뿐만 아니라 핑크 플로이드, 퀸 등의 영국 음악가들에게 악평을 내렸었다.[22] 굳이 비교하자면, 1970년대 디스코 이후 사실상 발전이 멈춘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 중심이었던 핑크 플로이드는 레드 제플린과 같은 높은 평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평가를 절하받는 경우가 상당하다. 레드 제플린이 현재와 같은 높은 평을 받는건 음악성보다도 그 영향력에 기반한다고 보는 것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23] 당장 비틀즈만 해도 엘비스를 숭배할 정도였다. 다만 롤링 스톤스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한다.[24] 레드 제플린 데뷔 이전에는 런던이 아닌 버밍엄에서 활동했던 로버트 플랜트나 존 본햄은 제외.[25] 대표적으로 롤링 스톤스의 1970년대 라이브 공연에서는 기타 사운드가 더 하드해지고, 원래 기타 솔로가 없는 곡들에서도 믹 테일러가 화려한 속주 솔로를 연주하였다.[26] 레드 제플린보다 조금 더 늦게 음악을 시작한 블랙 사바스만 하더라도 비틀즈를 그야말로 숭배할 정도이며, 레드 제플린이 한창 야드버즈로 활동하던 1967년에 데뷔한 핑크 플로이드도 비틀즈에게서 영향을 짙게 받았다.[27] 이를테면 애플 레코드의 선례를 따라 독자적인 레코드사인 스완 송 레코드를 설립하였다.[28] 물론 "제2의"니 뭐니 하는 칭호가 다 그렇듯이 데프 레파드와 레드 제플린의 사운드는 많이 다르다. 레드 제플린이 블루스 기반의 헤비 메탈에 도입한 밴드라면 데프 레파드는 글램 메탈의 효시로서, 헤비 메탈에서 블루스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밴드다.[29] "내가 어릴 때 믿은 종교는 레드 제플린이다"라고 했다.[30] Sing For the Moment에서는 에어로스미스의 Dream On을, 'Till I Collapse에서는 퀸의 We Will Rock You 비트를 사용하는 등, 에미넴은 자신의 음악에 고전 록 명곡들을 샘플링하거나, 록 주법을 사용하여 곡을 자주 만들었다.[31] 다만 맘스틴 역시 "지미 페이지는 정말 아름다운 앨범에서 아름다운 노래들을 쓰셨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기타리스트가 아닌 송라이터로서는 제플린에게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