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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르네상스 (1989~1999) Disney Renaissance | |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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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즈니 르네상스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전성기를 의미하며 1989년 인어공주부터[1] 1999년 타잔까지를 말한다.[2]2. 특징
디즈니 르네상스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가 잇따라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인 성과를 거두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부문에서 창조적인 재기를 경험한 시대를 의미한다. 디즈니 역사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였지만 1989년 개봉한 인어공주는 당시 디즈니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애니메이션 영화가 됐으며, 10년에 걸친 디즈니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됐다. 특히 1991년부터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회자되는 디즈니 명작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해당 시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 수익, 수상 경력을 모두 사로잡아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흥행 면에서는 알라딘과 라이온 킹이 각각 1992년과 1994년의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포카혼타스, 타잔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달성하며 총 11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장편 애니메이션 상 부문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미녀와 야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는데 이는 애니메이션 장르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줌과 더불어 그 입지에 걸맞은 개선된 대우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후 2001년 장편 애니메이션 상 부문의 신설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한다.
이 르네상스 작품들 중에 전반기 4작품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은 그야말로 디즈니의 밥줄이라고 볼 수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캐릭터들도 이들이고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도 이들이다. 디즈니 상품이 전시된 코너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들도 이들. 그에 반해 후반기 작품들은 뮬란, 타잔 정도를 제외하고는 디즈니에게 상대적으로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3]
디즈니 르네상스는 19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90년대 최고의 문화 컨텐츠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같은 시기에 있었던 일본에서의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중심으로 한 소년 점프 만화 붐과 성룡, 유덕화, 이연걸, 주윤발, 주성치 등을 내세웠던 홍콩 영화와 더불어서 1990년대 3대 최고의 문화 황금기로 평가받고 있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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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르네상스 이전
1966년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이후 회사의 CEO가 여러 번 교체되었지만 이전과 같은 성과를 이루어내는 데 실패한다.디즈니가 사망 직전 제작에 관여했던 정글북과 아리스토캣은 흥행해 성공했지만 그의 사후 1970년대 들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침체기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이 중지될 위기에 빠지게 된다. 테마파크 사업으로 연명해가던 디즈니[4]는 1984년, 기업사냥꾼 솔 스틴버그(Saul Steinberg)가 시도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었고[5] 회사의 경영상태가 불안정해지자 월트 디즈니의 조카이면서 디즈니 이사회의 일원이었던 로이 디즈니[6]는 백기사들을 포섭해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막는 동시에 월트 디즈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현 회사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자 하였다. 당시 디즈니 상황을 정리한 글
같은 해 투자자 시드 배스(Sid Bass) 및 그의 가족이 디즈니 지분 18%를 매입해 회사의 대주주로 올라서게 되고 그후 시드 배스의 도움을 받은 이사회의 의결을 통해 디즈니 경영진이 바뀌게 되어 외부 인사 3명이 들어오는데,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가 월트 디즈니의 사위이면서 당시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던 론 밀러를 대신해 월트 디즈니 컴퍼니 CEO로 부임했고, 마이클 아이스너와 함께 파라마운트에서 근무했고 훗날 드림웍스를 설립한 제프리 카첸버그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회장으로, 워너 브라더스에서 근무했던 프랭크 웰스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사장으로 취임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침체기 전반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을 주도했던 볼프강 레이더먼이 은퇴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은 뒤 디즈니는 마이클 아이스너 체제 하의 새로운 제작진의 주도 아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후 나온 타란의 대모험이 흥행 실패를 하고 말았지만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위대한 명탐정 바실과 올리버와 친구들을 성공시키면서 서서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3.2. 르네상스의 시작
인어공주(1989)의 개봉과 함께 디즈니의 운명의 흐름이 바뀌었고, 적절하게 이름 붙여진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는데, 이것은 부활과 새로운 창조적인 높이의 시기이다. 이전 10년과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연기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내면적인 감정을 노래로 투영하는 새로운 서사 공식이었다. 혁신적인 에어브러싱과 역광 효과, 그리고 유명인의 목소리 재능에 새로운 초점을 맞추면서, 이 시대는 엄청난 관객을 끌어 모았고 종종 이 회사의 전성기로 여겨진다.
영국 영화 협회 #
영국 영화 협회 #
1988년 영화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의 성공 이후 디즈니는 오래전부터 제작하려고 했던 인어공주의 애니메이션화를 결정한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보다 음악을 곁들여서 브로드웨이 뮤지컬풍인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감독은 〈위대한 명탐정 바실〉을 공동으로 연출한 론 클레먼츠 & 존 머스커 콤비다. 이에 따라 뮤지컬 〈리틀 샵 오브 호러스〉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몸담았던 작사가 하워드 애쉬먼과 작곡가 앨런 멩컨을 인어공주의 제작진으로 초빙해 작품의 작사, 작곡을 맡겼다.[7]
그리고 1989년 11월 14일 〈인어공주〉가 개봉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원작이면서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대담한 각색과 작곡가 앨런 멩컨과 작사가 하워드 애쉬먼의 뛰어난 작사, 작곡 능력을 발휘한 뮤지컬 넘버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오늘날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결정지었다. 이 작품은 같은 주 개봉한 MGM의 애니메이션 〈찰리의 천국여행〉[8]을 크게 웃도는 흥행수입을 기록했으며, 최종 흥행 수익은 북미 흥행 8,400만 달러를 기록해 역대 가장 많은 수입을 얻은 애니메이션 작품이 됐다. 또한 평론가들에게 찬사[9]를 받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하면서 디즈니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90년 11월 15일 〈생쥐 구조대〉의 속편인 〈코디와 생쥐 구조대〉가 개봉했다.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첫 속편이다. 평론가들에게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인어공주〉만큼의 성적은 얻지 못했다. 북미 흥행이 2,800만 달러에 그쳐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에 발표된 작품 중 가장 인지도가 낮으며, 유일한 흥행 실패작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기술 혁신면으로 셀화를 사용하지 않고 CAPS라고 불리는 컴퓨터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화면 제작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제작 속도가 높아지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1991년 11월 22일 〈미녀와 야수〉가 개봉했다. 최초로 영화화 기획이 제기된 것은 월트 디즈니가 생존해 있던 1930년대의 일로, 반세기 만의 영화화가 되었다. 제작 초기는 뮤지컬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인어공주〉의 성공으로 인해 뮤지컬로 제작하게 됐다.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CG가 들어간 작품이며, 특히 무도회 장면에서의 슈퍼 앵글은 지금 시각으로 보면 약간 3D 티가 나지만 당시로선 굉장히 과감한 시도였기에 영상미적으로 극찬을 받았다.[10] 1억 4,500만 달러를 기록해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수입 1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 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 되었다.[11] 아쉽게도 트로피는 경쟁작인 〈양들의 침묵〉이 가져갔으나,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받았고 이외에 음향상 부문에서도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흥행과 비평을 모두 잡은 대성공을 거뒀고, 현재까지도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1992년 11월 24일 〈알라딘〉이 개봉했다. 〈인어공주〉 를 연출한 론 클레먼츠 & 존 머스커 콤비의 작품으로, 작화는 지난 작품들보다 더 발전했으며 픽사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제공된 CGI 애니메이션을 포함했다. 극중 노래의 작사, 작곡에 있어서는 개봉 전년에 사망했던 하워드 애쉬먼[12]을 대신해 팀 라이스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앨런 멩컨과 함께 남은 뮤지컬 넘버를 완성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인 로빈 윌리엄스를 지니 역에 캐스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최초로 북미 흥행 수입 2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 되더니 전 세계 5억 달러를 기록하여 신기록을 달성해, 1992년 가장 흥행한 영화가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이외에 음향상과 음향효과상에도 후보에 있었다. 이 영화의 주제가 〈A Whole New World〉는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1994년 6월 5일 〈라이온 킹〉이 개봉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의 순수 각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알라딘 등과 병행해 제작이 진행되던 작품으로 감독 로저 앨러스 & 롭 민코프를 포함해 스태프는 젊은 층 위주로 구성됐다. 작곡가도 계속해서 기용됐던 앨런 맹컨이 아니라 나중에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등을 맡게 될 한스 짐머와 팝스타 엘튼 존이 기용됐다. 영상미적 측면에서는 디즈니 르네상스 중 최대의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국내 영화감독 중에서도 오프닝 부분에 동물들이 모여드는 씬의 섬세한 그림자 처리를 보고 경악했다는 회고를 남긴 사람들이 몇 있을 정도. 〈라이온 킹〉은 그야말로 초대박이 터져서 애니메이션 최초로 북미 흥행 3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 되었고 전 세계에서 7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해 1994년 가장 흥행한 영화가 됐다. 〈알라딘〉이 보유하고 있던 최고 흥행 기록을 라이온 킹이 바로 갱신한 것이다. 2013년 〈겨울왕국〉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작품으로는 사상 최대의 히트작이었다. 또한 사운드트랙은 북미에서만 1,000만장이 팔리기도 했다. 평론 측면에서도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까지 수상했다. 이러한 대성공으로 현재까지 디즈니 르네상스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개봉하는 영화들이 줄줄이 성공한 덕분에 디즈니 경영진은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에 충분한 자금을 배분하게 됐고, 그에 따라 애니메이션 부문 거점은 10년간 글렌데일의 간이 거점으로 내몰렸던 상태에서 되찾을 수 있었다. 240,000 평방 피트의 건물이 로버트 스턴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1994년 12월 16일 버뱅크에 있는 디즈니 메인 스튜디오 거리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 개관하였다.
3.3. 르네상스의 후반
1994년에 사장 프랭크 웰스가 세상을 떠난 뒤 CEO인 마이클 아이스너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인 제프리 카첸버그가 경영권 싸움을 벌였고, 패한 제프리 카첸버그가 디즈니에서 나와 드림웍스를 설립하게 되면서 디즈니 르네상스가 서서히 저물어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95년 6월 16일 〈포카혼타스〉가 개봉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를 소재로 어린이가 아닌 성인을 타깃으로 하는 의욕적인 시도가 이뤄진 작품이었지만 흥행 수입은 전작 〈라이온 킹〉의 절반 수준이었다. 다만, 북미 흥행 1억 4,000만 달러, 전 세계 흥행 3억 4,000만 달러로 흥행은 성공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음악상과 주제가 〈Colors of the Wind〉는 주제가상을 받았다. 제작에 있어서는 원주민학 전문가에게 이야기를 듣는 등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개봉 후에는 인종차별적 관점에서의 비판도 받았다.
1996년 6월 21일 〈노틀담의 꼽추〉가 개봉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원작으로 〈미녀와 야수〉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다. 기존의 디즈니 작품들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띄고 있어 디즈니 르네상스 작품중에서도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 때문인지 제작비 1억 달러에 북미 흥행 1억 달러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다만, 해외 흥행은 2억 3,000만 달러를 기록해, 전 세계에서 3억 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도 올랐다. 작품성 면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미술적 연출이나 레이아웃, 배경 등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점에서는 아직도 평가가 높은 작품이 되고 있다.
1997년 6월 27일 〈헤라클레스〉가 개봉했다. 모티브는 제목과 동명의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 〈인어공주〉, 〈알라딘〉의 론 클레먼츠 & 존 머스커 연출, 그리고 작곡가 앨런 멩컨이 세 번째 협업을 이룬 작품이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흥행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북미 흥행이 1억 달러를 넘지 못했고 전 세계 흥행도 2억 5,000만 달러에 그쳤다. 주인공 헤라클레스가 신화와 다르다는 점과 가스펠을 섞은 사운드트랙, 가벼운 코미디풍이라는 점도 찬반을 불러 일으켰다. 다만, 최근 들어서 작품성면에서 어느정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르네상스 작품 중 과소평가된 수작으로 꼽는 팬들도 있다.
1998년 6월 19일 〈뮬란〉이 개봉했다. 중국 전설 '화목란'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원래는 단편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나중에 다른 프로젝트와 합류하는 형태로 장편화됐다. 플로리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메이션 표현은 중국 미술의 간결한 표현 등에 영향을 받았다. 음악은 제리 골드스미스, 삽입곡은 매튜 와일더와 데이비드 지펠이 맡았다. 흥행면에서는 3억 400만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여 성공했고, 디즈니 작품의 상업적 지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됐다. 용감하고 진취적인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평단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는 디즈니 르네상스 작품 중 하나다.
1999년 6월 16일 〈타잔〉이 개봉했다.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소설 타잔을 원작으로 한 첫 애니메이션 영화로 음악은 팝스타 필 콜린스가 담당했다. 영상적으로는 2D에 3D를 활용하는 디즈니의 역량이 절정에 오른 작품으로, 특히 타잔이 나무를 미끄러지듯 타며 질주하는 씬의 360도 워킹이 당시에 크게 화제가 되었다. 1억 3,00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4억 5,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라이온 킹〉 이후 르네상스기 작품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비평을 얻었으며, 필 콜린스의 주제가 〈You'll Be in My Heart〉는 〈포카혼타스〉의 〈Colors of the Wind〉 이후 4년만에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서는 '딥 캔버스'라고 하는 입체감 있는 3D 배경을 실현하는 소프트웨어가 사용되고 있어, 향후 디즈니 애니메이션 작품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영원할것만 같았던 디즈니 르네상스는 〈타잔〉을 끝으로 10년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3.4. 르네상스 이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위시로 한 3D 애니메이션의 등장으로 인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이후 나온 〈환타지아 2000〉은 전 세계 9,000만 달러에 그쳤다.이에 첫 3D 애니메이션인 〈다이너소어〉를 내놓아 전 세계 3억 4,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평은 많이 엇갈렸다. 이후 〈쿠스코? 쿠스코!〉,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은 전 세계 흥행 2억 달러에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했다.[13] 그나마 〈릴로 & 스티치〉가 3억 달러, 〈브라더 베어〉가 2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으나 〈보물성〉과 〈카우 삼총사〉는 제작비도 못 건지는 흥행 참패를 남겨[14] 디즈니는 한동안 2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았다. 이후 디즈니의 2번째 3D 애니메이션 〈치킨 리틀〉이 전 세계 흥행 3억 달러를 넘겼지만 평은 좋지 않았다.
3.4.1. 디즈니 리바이벌
자세한 내용은 디즈니 리바이벌 문서 참고하십시오.2008년 볼트와 2009년 공주와 개구리를 기점으로 하여 다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작품성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 들어 라푼젤을 시작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흥행세가 다시 회복되고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전성기인 '디즈니 리바이벌'이 시작되었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특히나 2013년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겨울왕국과 2014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된 빅 히어로까지 2년 연속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면서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 받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성기가 다시 왔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2016년 개봉한 주토피아와 모아나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사로잡는 데 성공해 상승적인 기류를 이어나갔다.
4. 성과
4.1. 흥행
개봉 연도 | 제목 | 제작비 | 북미 박스오피스 | 전세계 박스오피스 | 홈 미디어 판매[15] |
1989년 |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 $40,000,000 | $111,543,479 | $211,343,479[16] | VHS 판매량 1,000만대 |
1990년 | 코디와 생쥐 구조대 The Rescuers Down Under | $27,000,000 | $27,931,461 | $47,400,000 | |
1991년 |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 $25,000,000 | $224,033,956 | $443,001,576[17] | VHS 판매량 2.200만대[18] 블루레이 판매량 607만장[19] |
1992년 | 알라딘 Aladdin | $45,000,000 | $218,967,620 | $504,050,219[20] | VHS 판매량 3,000만대[21] |
1994년 | 라이온 킹 The Lion King | $45,000,000 | $422,783,777 | $968,483,777[22] | VHS 판매량 3,200만대[23] 블루레이 판매량 393만장[24] |
1995년 | 포카혼타스 Pocahontas | $55,000,000 | $141,579,773 | $346,079,773[25] | VHS 판매량 1,710만대[26] |
1996년 | 노틀담의 꼽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 | $70,000,000 | $100,138,851 | $325,338,851[27] | |
1997년 | 헤라클레스 Hercules | $80,000,000 | $99,112,101 | $253,712,101[28] | |
1998년 | 뮬란 Mulan | $90,000,000 | $120,620,254 | $304,320,254[29] | |
1999년 | 타잔 Tarzan | $130,000,000 | $171,091,819 | $448,191,819[30] | VHS 판매량 1,050만대 |
디즈니 르네상스 작품들은 코디와 생쥐 구조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가 성공했다.[31] 그 해 흥행 1위는 2개[32]를 만들어냈으며 10편 중 8편의 영화가 그 해 전세계 흥행 TOP 10 안에 진입했다.
4.2. 수상
수상 연도 | 제목 | 아카데미 시상식 | 골든 글로브 시상식 | 기타 |
1990년 |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 주제가상 수상[33] 음악상 수상[A] | 주제가상 수상[35] 음악상 수상[A] 뮤지컬 / 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 후보 | 2022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 |
1992년 |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 주제가상 수상[37] 음악상 수상[A] 최우수 작품상, 음향상 후보 |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 수상 주제가상 수상[39] 음악상 수상[A] | 애니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 수상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후보 2002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 |
1993년 | 알라딘 Aladdin | 주제가상 수상[41] 음악상 수상[A] 음향상, 음향편집상 후보 | 주제가상 수상[43] 음악상 수상[A] 뮤지컬 /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 후보 | 애니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 수상 그래미상 올해의 노래상 수상, 올해의 레코드상 후보 |
1995년 | 라이온 킹 The Lion King | 주제가상 수상[45] 음악상 수상[46] |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 수상 주제가상 수상[47] 음악상 수상[48] | 애니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 수상 2016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 |
1996년 | 포카혼타스 Pocahontas | 주제가상 수상[49] 음악상 수상[50] | 주제가상 수상[51] 음악상 후보 | 애니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 수상 |
1997년 | 노틀담의 꼽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 | 음악상 후보 | 음악상 후보 | |
1998년 | 헤라클레스 Hercules | 주제가상 후보[52] | 주제가상 후보[53] | |
1999년 | 뮬란 Mulan | 음악상 후보 | 주제가상[54], 음악상 후보 | 애니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 수상 |
2000년 | 타잔 Tarzan | 주제가상 수상[55] | 주제가상 수상[56] |
디즈니 르네상스 영화들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3번 후보에 올랐으며 11번 상을 수상했다. 불과 10년 만에 10편 중 1편을 제외한 작품이 모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이 중 6편은 적어도 1개 이상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디즈니 르네상스의 핵심 주역 중 한 명인 작곡가 앨런 멩컨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8개의 트로피를 수상했다.
5. 여담
- 디즈니 르네상스 애니메이션들은 2010년대 이후 실사화로 리메이크하고 있다. 비평이나 관객들의 반응면에서는 호불호가 꽤 갈리고 있으나, 대부분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알라딘은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 많은 디즈니 르네상스 애니메이션들이 뮤지컬로 제작됐다. 코디와 생쥐 구조대, 포카혼타스, 뮬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들을 뮤지컬로 만들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1위를 기록했다.
- 디즈니툰 스튜디오에서 르네상스 애니메이션들의 후속작을 제작하기도 했다. 코디와 생쥐 구조대와 헤라클레스를 제외하면 모든 작품의 후속작이 제작됐다. 그러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평가는 좋지 못한 편.
-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디즈니는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대표적으로 다람쥐 구조대, 테일스핀(TaleSpin), 오리형사 다크, 벙커스(Bonkers), 전사 골리앗 등이 이 시기의 제작됐다. CBS에서 방영된 인어공주, 알라딘 등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성공한 작품들의 TV 시리즈를 새로 제작해 토요일 아침 프로그램에 들여와 일정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디즈니 만화동산이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 1993년 디즈니의 자회사인 터치스톤 픽처스에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제작했다. 다만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디즈니 르네상스 작품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 디즈니 르네상스 시대에 디즈니의 엄청난 성공은 다른 많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사들의 영향을 끼쳤다. 대형 영화제작사들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작풍을 디즈니 스타일의 뮤지컬풍으로 만들어 디즈니의 성공을 따라하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제작된 대부분의 작품은 흥행 수입에서도 생각만큼의 결과를 남기지 못했고 평론가들의 평가도 좋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썸벨리나(Thumbelina), 매직 스워드, 백조 공주, 고양이 댄스(Cats Don't Dance)를 들 수 있다. 다만, 아나스타샤, 이집트 왕자 같은 작품들은 성과를 거뒀다.
- 이 시대에 디즈니는 자신들의 소유한 캐릭터들을 상품화하는 것을 더욱 강화했다. #
6. 관련 문서
[1] 애니메이션 부서에 국한되지 않고 회사 자체의 전성기를 논할 때 1988년 개봉한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를 르네상스의 시작점으로 보기도 한다.[2] 일부에서는 2000년까지라고 말하며 환타지아 2000이나 다이너소어까지를 디즈니 르네상스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디즈니 르네상스의 끝은 타잔으로 여긴다. 환타지아 2000은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기획 의도나 특징 면에서 확연히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이너소어는 호불호가 갈리나 질적으로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에 견줄 정도는 분명히 아니라는 의견이 대세이다.[3] 여담이지만 이 4작품 중 3작품이 디즈니 프린세스 작품들이고 라이온 킹은 사람이 아니라 사자고 인지도는 적지만 디즈니툰 2편부터는 프린세스가 나오기 시작했다.[4] 당시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보면 애널리스트들은 미키 마우스보다도 디즈니랜드 때문에 투자자들이 디즈니를 인수하고 싶어할 것이다고 분석하였다.[5]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코카콜라 역시 디즈니의 인수를 협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출처 또한 루퍼트 머독이 디즈니를 인수할 것이다는 루머도 존재했다. 출처 사실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당시인 1966년에도 디즈니의 인수 루머가 있었을 정도로 과거 디즈니는 이런 루머에 종종 관련이 되는 편이었다.[6] 디즈니 공동 창업주인 로이 디즈니의 아들로 디즈니 가문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회사에 몸담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원래는 경영진 중 한명이기도 했지만 월트 디즈니 사후 회사가 콘텐츠 제작을 소홀히 하고 점점 안정적인 테마파크 쪽에만 투자를 집중하자 '디즈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니라 부동산 회사가 되어 간다'고 비판하며 1977년 창의성이 상실된 회사에 회의감을 느끼고 사임했다가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막아내고서 회사가 안정의 상태를 되찾은 이후 월트 디즈니 피처 애니메이션의 회장으로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7] 하워드 애쉬먼은 작품의 프로듀서로서 제작에도 참여했다.[8] 공룡시대의 돈 블루스 감독의 작품이다.[9]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그의 평론에서 4점 만점의 4점을 주며 "드디어, 다시 한번, 우리 모두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 그리고 다른 1세대 고전들로부터 기억하는 일종의 해방적이고 독창적이고 즐거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고 말했다.[10] 이외에도 Be our guest 넘버에서의 연회 씬도 CG 활용으로 화제였던 부분이다.[11] 이후에 픽사의 업과 토이 스토리 3가 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12] 애쉬먼은 생전에 '알라딘'의 음악을 제작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사용된 것은 3곡이다.[13] 그래도 이 중 쿠스코? 쿠스코!는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고 평가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14] 다만 보물성은 흥행이 처참해서 그렇지 작품 자체는 평가가 좋으며,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도 올랐다. 하지만 카우 삼총사는 말그대로 잊혀져버린 망작이 되었다.[15] 북미 기준[16] 1989년 전세계 흥행 순위 6위[17] 1991년 전세계 흥행 순위 3위[18] 역대 북미 VHS 판매량 6위. #[19] 역대 블루레이 판매량 3위.#[20] 1992년 전세계 흥행 순위 1위[21] 역대 북미 VHS 판매량 2위.[22] 1994년 전세계 흥행 순위 1위[23] 역대 북미 VHS 판매량 1위.[24] 역대 블루레이 판매량 14위.[25] 1995년 전세계 흥행 순위 5위[26] 역대 북미 VHS 판매량 9위.[27] 1996년 전세계 흥행 순위 5위[28] 1997년 전세계 흥행 순위 12위[29] 1998년 전세계 흥행 순위 7위[30] 1999년 전세계 흥행 순위 5위[31] 아쉬운 성적을 거둔 헤라클레스도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며 흥행에 성공했다.[32] 알라딘, 라이온 킹[33] Under the Sea[A] 앨런 맹컨[35] Under the Sea[A] 앨런 멩컨[37] Beauty and the Beast[A] [39] Under the Sea[A] [41] A Whole New World[A] [43] A Whole New World[A] [45]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46] 한스 짐머[47]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48] 한스 짐머[49] Colors of the Wind[50] 앨런 멩컨, 스티븐 슈왈츠[51] Colors of the Wind[52] Go the Distance[53] Go the Distance[54] Reflection[55] You'll Be in My Heart[56] You'll Be in My 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