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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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I: 알껍질막 천
유로파에 도착한 그의 몸집은 거의 집정관 사제에 가까웠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에테르가 필요했다. 누군가 손을 대기라도 하면 조각조각 붕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다. 팔들은 저절로 떨어져 버리고, 피부는 벗겨질 것 같았다. 그에게는 방어구와 네 팔로 붙잡은 천 년 묵은 직조기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그들은 조롱하듯 그에게 "남라스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공허한 방직공"이라는 의미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에게 "노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실제로는 "진짜가 아닌 인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았다.
에라미스는 모든 신입들을 따로 나눠 황혼 이전의 충성 관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했다. 남라스크는 얼음 아래의 작은 굴로 떠밀려 들어갔다. 달의 지표면은 방사능이 너무 강해 엘릭스니조차 오랫동안 생활할 수 없었다.
작은 윈터드레크들은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남라스크는 자기가 너무 약해서 필요한 에테르를 모두 얻을 수 없다고 다들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굴은 그가 죽을 자리였다.
"나도 일할 수 있다." 그는 헐떡이며 말했다. "붕대나 망토, 방어구 안감, 알껍질막 천, 에테르 흡수제, 기도 깔개, 물의 천 같은 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난 방직공이다!"
"키 큰 친구," 윈터드레크 중 하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 체격의 방직공은 없어. 에라미스를 섬기는 투사로 자원하는 게 어떻겠어?"
남라스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싸울 수 없었다. 리프에서 지팡이를 든 그것을 본 이후로, SIVA와 황혼의 틈, 런던의 일을 겪고 싸울 수는 없었다. 크리디스는 이것이 구원이라고 약속했다.
"깨진 알을 가져와라." 남라스크가 애원했다. "그러면 알껍질막 천을 만들어 주겠다. 그런 천 하나 없이 자손들을 어떻게 보듬어 줄 생각이냐?"
드레크들은 그가 이를 사용해서 알껍질을 얇은 섬유막으로부터 떼어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그걸 찢어 긴 섬유질로 만들고, 직조기를 위아래로 가로지르는 날실로 걸었다. 그는 두 손으로 직조기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세 번째 손에 든 끌로 조심스럽게 날실을 열었다. 너무 빨리 움직이면 알껍질막 실이 끊어질 수 있었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그의 네 번째 손이 빠르게 북을 날실 사이로 통과시키며 첫 번째 씨실을 걸었다. 실은 끊어지지 않았다. 직물 한 줄이 완성되었다.
"잘 봐라." 그는 드레크들에게 말했다. "에라미스가 적을 정복한 후에는, 우리도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지켜봤다. 떨어져 나간 후 다시 반쯤 자란 그들의 아래쪽 팔들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그들의 이름은 에오릭스, 오에릭스, 이릭스로 두 형제와 그들의 여동생이었다.
직조가 끝나고, 그는 드레크들에게 작은 알껍질 천 조각을 주었다. 그들은 깜짝 놀란 듯 중얼거리며 그 천에 볼을 비볐다. "야영지 대장에게 가져가라." 그는 말했다. "그리고 먹을 것과 실만 가져오면, 남라스크가 천을 얼마든지 만들어 주겠다고 전해라."
직조기에서 천을 망가뜨리지 않고 완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3. II: 열구멍
남라스크는 힘을 되찾은 후 비유체 루프 절단기를 사용해서 드레크들이 얼음 터널을 다른 거주지와 연결하는 것을 도와줬다. 그는 열구멍 매트를 직조해서 터널에 단열 처리를 했고, 일부 구역은 방어구를 벗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해졌다. 곧 알 한 더미가 부화했고, 자손들은 굴 속에서 자라났다.뒤엉킨 해안에서 달아난 후 처음으로, 남라스크는 자기 생존 외의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에라미스의 부관인 전사 파일랙스가 나타나 병사를 모집했다.
검은 하늘 아래 거친 얼음 위에서 그녀는 에라미스가 벽처럼 생긴 수정 판을 세워 올리는 영상을 재생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 에라미스는 벡스 미노타우르를 서리 관에 가두기도 했다.
"이게 모든 엘릭스니의 미래다. 너희 중 누가 이 힘을 손에 넣을 것이냐?" 그녀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너."
남라스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파일랙스의 전기 권총이 그의 이마를 짓눌렀다. 그녀는 휴전의 의미로 그들 사이에 무기를 내려놓고는 이렐리이스식 인사를 했다. "체격을 보면 옛 투사 같구나. 앞으로 나서라."
목소리가 떨릴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 강인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왠지 다른 자의 목소리 같았다. "지난번 엘릭스니가 새로운 힘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 전에도, 또 그 전에도. 그런 일에 관여하지는 않겠습니다."
파일랙스는 어깨를 으쓱한 후 권총을 들고 멀어져 갔다. "네 자리를 대신할 자는 얼마든지 있다."
그 후, 이릭스가 그의 마음을 바꿔 보려 했지만, 남라스크는 다시 거절했다. "에라미스는 이 힘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권위를 얻는다. 그런 힘을 아무에게나 줄 리 없어. 그랬다가는 권위를 잃고 말 테니까." 그는 말했다. "그녀가 서비터를 파괴했나?"
"그런 것 같아요." 이릭스는 조용히 말했다. "드레크들이 이야기하기로는, 힘을 주는 의식을 수행하면서 서비터를 부쉈다고 해요. 예전 방식은 이제 필요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그랬겠지."
사회는 언제나 폭력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걸까?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일꾼이 방직공이나 농부, 치유사가 아니라 권총 하나와 칼 하나만 들고, 오직 드레크의 목숨에 담긴 가치를 훔치는 단 한 가지 노동에만 종사하는 드레크여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남라스크는 그 법을 만드는 걸 도왔다.
그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구원을 설교하지만 모두를 구원할 수는 없다. 에테르를 넉넉하게 베풀지도 않겠지. 우리가 혼자서 구할 수 있는 것보다는 많지만, 그렇다고 필요한 양을 채워줄 만큼은 아닐 거야. 그게 지배의 규칙이다."
"전략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이릭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의 공허한 방직공이 되기 전에는 어떤 분이셨죠?"
"열구멍의 비밀을 알고 있나?" 그는 불쑥 그렇게 묻고는 장난을 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자손들이 얼어붙지 않게 열구멍 천을 바닥에 몇 장 놓았다. "단열재로서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고 있어?"
"열구멍의 비밀이 뭐죠, 남라스크?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녀가 그를 놀리듯 물었다.
남라스크가 그 천의 실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끝을 반대로 돌려 실 가운데를 채운 진공 방울을 보여주었다.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너무 세게 비틀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도 부서질 수 있지. 그리면 그 뒤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4. III: 깃발 천
얼음은 진공보다 더 빠르게 열기를 앗아가기에, 유로파는 공허보다 더 추웠다. 이곳 에테르에서는 얼음과 방사능의 맛이, 금속과 피의 맛이 느껴졌다. 남라스크는 여기가 엘릭스니의 새로운 낙원이 아니라, 아주 예전의 낙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추락하는 곳이었다."어떻게든 해 봐요." 이릭스가 애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여기서 다 죽고 말 거예요."
"싫다." 남라스크는 불퉁스럽게 내뱉고는 직조기를 뜯었다. 그는 에라미스에게 접근하면 결국엔 그녀의 선물을 받아들일 것 같아 두려웠다.
"어떻게든 해 봐요." 에오릭스가 애원했다. "보호자를 찾아 줘요. 당신이 위대한 전사였던 시절에 알고 지내던 다른 전사들도 있을 거 아녜요."
"싫다." 남라스크가 다시 말했다. 그는 자손을 들어 적외선 등의 온기를 쬐어 주고 있었다. 자기가 유로파로 부른 자들이 모두 에라미스에게 합류할 것 같아 걱정됐다.
"어떻게든 해 봐요." 오에릭스가 애원했다. "이이로파를 떠날 방법을 찾아 주세요.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에라미스 때문에 우리 모두 파멸할 거예요. 뭐가 두려운 건데요?"
"좋아." 그가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배신자를 찾겠다."
남라스크는 처음으로 리이스의 부활까지 먼 거리를 걸었다. 옛 인간 도시의 폐허를 기반으로 건설된 그곳의 모나고 복잡한 건축물을 보면 공포와 함께 피의 욕망이 되살아났다. 엘릭스니가 소위 최후의 도시라던 그곳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 안의 것들을 차지했던 때가 떠올랐다.
스닉시스와 피크시스가 에라미스의 방을 지키고 있었다. 쌍둥이는 그에게 이렐리이스식 인사를 했다. "당신이 여제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 여제 또한 예의를 지킬 것입니다, 오 위대하신 아킬—"
"그만." 그는 으르렁거렸다. 그 훔친 이름은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에라미스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바릭스는 어디 있지?"
옛 심판관 바릭스는 남라스크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그 굴에 영원히 갇힌 줄 알았습니다."
"네가 날 거기 넣었지?"
"아닙니다." 바릭스는 두 손을 맞잡고, 다시 나머지 두 손을 맞잡았다. "당신이 누구인지 몰랐던 그 날의 대장이 그랬지요. 잊혀진 것이 마음에 듭니까, 옛 연기의 검이여?"
남라스크는 이를 갈았다. 그는 애써 네 팔로 땅을 짚고 엎드렸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다."
"아니요." 바릭스는 속삭임에 가깝게 목소리를 낮췄다. "제 심판은 그대로입니다, 대군의 재앙이여. 당신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으니, 자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넌 너를 버릴 여왕만 거듭 섬기는구나." 남라스크도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에라미스의 파멸은 정해졌다, 바릭스. 그녀는 회오리에 잠식됐어. 한때, 나 또한 그랬다."
"에라미스도 그런 위험성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자기 짝과 아이들을 왜 다른 행성으로 보냈겠습니까?"
"아스리스가 떠났다고?" 끔찍한 소식이었다. 그녀는 에라미스를 인도하는 빛이었다. "너도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 나도 함께할 테니—"
"이제 전투에서 달아나겠다는 겁니까?" 심판관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꼬는 기색이 없는, 솔직한 질문이었다. "지금 에라미스가 당신을 다시 강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도?"
"나는 이제 드레크와 함께 살아간다. 이제는 자손도 있어. 그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
"당신이 리이스에 버린 우주선에도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런던에서도 인간 아이를—"
"지금의 난 그때의 학살자가 아니야!"
"아니, 맞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리프에 있을 때, 난—" 남라스크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야수 피크룰을 봤다. 그전에는 악마의 접합자를 보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우리 형체의 타락은, 이 복수는 중단되어야 한다, 바릭스. 부탁이다. 도와다오."
"도울 수는 없습니다." 심판관은 선고했다. "당신에게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릭스의 의수가 눈 위에 글씨를 썼다. 남라스크는 두 번째 눈을 몇 번 깜빡인 후에야 그게 인간의 글씨라는 걸 알아봤다. '미스락스'.
"그에게 당신의 이름을 전해 주겠습니다." 바릭스는 글씨를 문질러 지웠다. "당신을 도우려는 건 아닙니다." 그는 허리를 감싼 다 해진 파란색 깃발에 금속 손을 얹었다. "그 대가로, 새로운 깃발 천으로 이걸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실은 당신에게 보내 드리죠. 절 위해 천을 만들어 주십시오, '남라스크'."
남라스크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깃발 실은 너무 가늘고, 직물은 너무 치밀했다. 바릭스가 기계의 자손인 수호자들을 유로파로 불렀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 그는 작업을 마칠 수 없었다.
IV: 산산조각 망토
남라스크는 여섯 팔다리로 기어 굴 안으로 달려든 후 외쳤다. "떠나야 해! 죽음이 얼음 위를 거닌다!"
오에릭스와 에오릭스, 이릭스가 그 소식을 전했다. 남라스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았다. 그가 경고했다. "기계의 자손들로부터 숨어야 해. 보급품을 빼앗기면 방사능이나 에테르 부족으로 죽고 말 거야."
그들은 떠났다. 하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소총 탄환이 남라스크의 방어구를 꿰뚫었다.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지만, 공기와 에테르가 진공을 향해 폭발하듯 방출되며 뒤로 밀려났다. "수호자다." 그가 경고했다. "동족을 부를 거야." 수호자는 쉽게 도살하고 전리품을 빼앗을 수 있는 적 앞에 하이에나처럼 모여들곤 했다.
또 한 발의 탄환이 남라스크의 헬멧을 때렸다. "산산조각 망토가 있으면 전부 내게 넘겨라." 남라스크는 첫 번째 망토와 교환하듯 반달의 팔에 직조기를 안겼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물건이잖아요." 상대는 거부하려 했다. "이런 걸 아무에게나 주면 안 되죠!"
"돌아오겠다." 그는 약속했다. 남라스크는 방어구 안쪽에 흐르는 피를 느끼며 흥분한 채 망토에 실을 꿰어 담요를 만들었다.
그는 파편 발사기를 얼음에 발사하여 증기를 피워 올렸다. "이렇게 해!" 그는 소리쳤다. "구름을 피워 올리고 도망쳐!" 그들은 얼음을 향해 총을 쏘고는 달아났다. 유로파의 낮은 중력 속에서 얼음의 폭풍이 가라앉고, 남라스크는 투명 담요를 덮고 수호자를 향해 기어갔다. 수호자가 다른 이들이 아닌 자신을 쫓을 수 있도록, 가끔씩 눈에 띌 만큼 오랜 시간 모습을 드러냈다.
수호자가 그를 따라왔다.
남라스크는 얼음 위에 웅크린 채 서서히 얼어갔다. 인간은 엘릭스니의 형태를 조롱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두 개의 팔과 인형처럼 생기 없이 매끈하기만 한 얼굴에 박힌 두 개의 눈, 그리고 뭉툭하고 작은 치아까지. 그는 여덟 번이나 죽여야 했던 수호자를 기억했다. 그는 고스트를 숭배하지 않았다.
육신이 불타던 냄새를 기억했다. 어리고 늙은 평범한 인간들. 그들의 정원과 건축물. 그들의 행성과 세계. 오래전 그 명령을 내렸던 것을 기억했다. 불태워라. 불태워라. 불태워라.
수호자가 다가왔다.
남라스크는 방어구의 방열기로 얼음을 녹여 웅덩이를 만들었다. 수호자는 칼끝으로 남라스크가 숨어 있는 곳 바로 앞의 얼음을 두드렸다. 남라스크가 희미한 소리를 냈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전기 권총에서 발사된 투사체가 수호자의 방어구에 맞아 흩어졌다. 그들은 재빨리 돌아서며 검을 내리고 소총을 들어 이릭스를 조준했다. 어리석지만 용감한 이릭스는 드레크처럼 여섯 발로 기었다. 그녀가 그를 구했다.
수호자는 그녀를 놀리듯 말했다. "오, 우리 꼬마 말썽꾸러기가 내게 총을 쐈구나! 내 눈길을 끌고 싶었니? 좋아, 눈여겨 봐 줄게!"
그들의 차량이 나타났다. 수호자는 거기 올라타 이릭스를 쫓았다. 남라스크는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5. V: 물의 천
무리 중 몇 명이 절반쯤 얼어붙은 그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릭스의 이름을 부르며 환각에 휩싸인 듯 팔다리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를 풀어주는 사이, 멀리서 우주선이 공중으로 떠올라 아른거리며 은폐 상태가 된 후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버려졌다."왜 돌아온 거야?" 남라스크는 신음 소리를 냈다. "멍청이 같으니. 다른 이들과 함께… 탈출했어야지…"
"직조기를 돌려드려야 했습니다." 반달이 말했다. 그녀는 그걸 부상당한 그의 가슴 위에 떨어뜨렸다. 그는 포효했다.
며칠이 지났다. 무전기에서는 먼 곳의 교신이 비명을 지르듯 울려 퍼졌다. 서비터들 사이의 암호화된 전술 데이터. 에라미스의 설교. 머리 위로 울려 퍼지는 붉은 세상의 노래. 때때로 듣기 싫은 인간의 언어로 수호자가 새로운 정복을 과시하거나, 외설적인 영광의 시험에 관한 농담을 지껄였다.
파일랙스가 죽었다. 프락시스도 죽었다.
여사제 크리디스도 스닉시스와 피크시스와 함께 죽었다. 프라임 서비터도 파괴되었다.
에라미스가 죽었다. 자기 자신의 힘에 삼켜져 버렸다. 옛 리이스에서 태어난 자. 이제 그런 자는 생길 수 없었다.
남라스크는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날 줄 알고 있었다. 매번 이런 모습을 보았다. 그의 몰락자 동족은 패배를 너무 깊이 체득한 나머지 이제 스스로 패배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는 분노를 터뜨리며 얼음을 할퀴었다.
그의 낙오한 생존자 무리를 위해, 그는 물의 천으로 피난처를 만들어 주었다. 물의 천은 안쪽 두꺼운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얼려서 방사능을 조금이나마 차단할 수 있는 합성 피륙이었다. 상처가 고통을 줄 때는 얼음 위에 누워 감각을 누그러뜨렸다. 투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은 고마웠다.
"송신기를 찾아야 한다." 그는 말했다. "미스라악스에게 돌아오라고 연락해야 해."
하지만 유로파에는 여전히 다른 생존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손들과 함께 얼마 되지 않는 에테르를 들고 남라스크를 찾아왔다.
그들이 남라스크를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을 사냥하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6. VI: 초전도체
"우리 아버지가 그쪽으로 갈 거예요." 무전기의 목소리가 약속했다. "아버지의 우주선은 아주 빠르고, 항로를 헤매는 일도 없죠. 그분은 빛의 움직임을 연구했고, 빛은 당신들에게도 이어지니까요."에테르가 부족했다. 그래도 자손들에게는 모자람 없이 먹이자고 다들 합의했다. 나머지에게는 미량의 에테르만 지급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죽어갔다.
남라스크는 다른 이들에게 들리길 바라며 무전기의 목소리에 매달렸다. "그녀는 너희처럼 어리다." 하루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겨우 새끼 티를 벗었을 거야."
"우리 아버지가 그쪽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 목소리는 말했다.
응답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응답했다. "아버지가 누구지? 우리에게 빛은 부정되었는데, 그는 어떻게 그걸 연구할 수 있었나?"
그녀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건 그녀 잘못이 아니었다. 그가 손상된 수신기에 초전도체 실을 덧붙여 얼기설기 고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조금 언짢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아이도예요. 빛의 가문 켈인 미스라악스의 딸이죠. 아버지는 빛의 운반자들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빛과도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여행자의 수호자들 곁에서 함께 걷고 있죠."
남라스크는 공포에 질려 얼어붙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무전기의 초전도체 실을 떼어내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자들과 함께할 수는 없어!" 그가 으르렁거렸다.
오에릭스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남라스크는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여행자 아래에 서면, 수호자들이 분명히 그를 알아볼 것이다.
7. VII: 시간은 직물이다
"여기는 미스라악스." 칭호가 없는 이름이었다."구원의 가문의 폭력을 버리고 빛의 가문에 피난하려는 자들에게 알린다. 아스테리온 심연에 소형선을 착륙시키겠다. 꼭 필요한 것만 가져와라. 생존자가 소지품보다 우선이다. 메시지 반복 재생."
"아스티리아 심연." 투르하가 말했다. "어딘지 알아요. 그 근처 동굴에 숨으면 돼요."
"좋아." 남라스크가 말했다. 그는 직조기를 잡았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그도 깨달았다. '생존자가 소지품보다 우선이다.'
"이게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말했다.
오에릭스와 에오릭스가 그걸 빼앗았다. "이릭스는 직조기나 구하려고 죽은 게 아니에요."
그들은 이틀 동안 동굴에 머물렀고, 남라스크는 그들 몸의 온기가 얼음을 증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에테르 부족으로 느릿해진 몸짓으로 가까운 벽으로 기어가 가만히 바라봤다.
남라스크는 또 다른 동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또 다른 동굴, 또 다른 동굴을 바라봤다. 무한한 동굴에서 무한한 남라스크와 오에릭스, 에오릭스, 투르하, 자손들이 드러났다. 여기에서, 그들은 생존자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얼음 속에서 얼어 죽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기갑단의 손에 불탔다. 여기에서, 그들은 수호자들의 총에 맞아 동굴 속에서 피를 흘렸다.
"나가." 남라스크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일어나!" 그는 소리쳤다. "어서 일어나! 떠나야 해!"
그의 목소리에 담긴 생생한 공포에 그들은 자손들을 감싸 안고 달렸다. 빛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거대한 기계가 정말로 그들을 다시 지켜보는 것처럼, 교신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미스라악스다. 은신한 채 접근하고 있다. 5분 후 아스테리온 심연으로 가겠다. 안전한 곳으로 가고 싶다면, 날 찾아와라. 여전히 구원의 가문을 섬기고 있다면, 옛 법률에 따라 너희 여정이 안전한 것이 되기를 기원하겠다. 이건 구조 임무다."
남라스크는 검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위장의 왜곡을 찾았다. 저기다! 미스라악스는 목성의 배출 가스를 배경으로 떠 있었다.
"흩어져야 한다." 그는 투르하에게 말했다. "착륙 지역에 몰려 있는 건 좋지 않아—"
무전기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벡스 분자 증폭기 광선이 접근하는 소형선을 붙잡아 얼음에 충돌시켰다. 추진체, 공기, 에테르가 불길에 휩싸였다.
남라스크는 놀라지 않았다. 빛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거대한 기계는 그들을 지켜보지 않는다. "움직여야 한다." 그가 말했다. 그는 투르하에게 손을 뻗어 건드리려 했다. "어서 가야—"
하얀 안개가 그녀를 감쌌다. 작은 전기 방출이 그녀의 방어구를 뒤덮었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숨을 헐떡였다. 벡스의 순간이동이 그녀 안에 고블린을 생성하여, 그녀의 육체를 산산이 조각냈다. 그 기계는 붉은 눈을 무심하게 반짝이며 무기를 들고 발사 준비를 했다.
오에릭스는 사격의 충격에 즉시 목숨을 잃었다. 에오릭스가 그에게 달려들어 몸을 떠나는 에테르의 연기를 붙잡으려 했다. 과거의 신념에서는 몸을 떠나는 영혼이라 믿었던 그것을 붙잡으면 오에릭스를 살릴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에오릭스도 이내 살해되었다.
남라스크는 자손들과 벡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들에게 단 한 순간, 단 한 번의 호흡이라도 벌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남길 최고의 유산이었다—
"이리 와!" 어린 목소리가 소리쳤다. "엘릭스니, 이리 오라고!"
미스라악스가 나타났다. 혼자가 아니었다. 빛이 함께였다.
수호자가 함께였다.
8. VIII: 또한 빛이다
그들은 거대한 기계 아래 최후의 도시로 가고 있었다."뭘 두려워하는 거지?" 미스라악스가 남라스크에게 물었다.
"너는 왜 두려워하지 않는 거냐?" 남라스크가 물었다. 어린 자손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거기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 수 있겠나? 그들은 우리에게 복수하기를 원할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마땅한 일 아니겠나?"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나?" 미스라악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남라스크는 으르렁거리며 껍질을 뚫고 비어져 나온 무릎을 문질렀다. "그래. 나는—" 그는 다시 말을 멈췄다.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너도 인간에게 말해야 할 테니까. 네가 거짓말하게 하지 않겠다."
"예전의 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거겠지." 미스라악스는 추측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겠나?"
"천을 짓고 싶다." 남라스크가 말했다. "아직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조는 융합과 비슷한 구석이 있지." 미스라악스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융합자는 날실과 씨실이 아니라 금속과 육체로 일한다. 하지만 목표는 같아. 예술로 삶을 육성하고, 네 삶으로 예술을 육성하는 것."
"난 융합자를 믿지 않아." 남라스크는 투덜거리며 가슴을 문질렀다. 융합자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할까? 기계 암을 그의 뱃속에 채워 다시 강해지게 할까? 부패한 에테르를 주입해서 불멸의 광기를 심을까?
미스라악스의 주된 눈이 빛났다. "나는 예전의 융합자다. 모든 것에서 빛을 찾는 존재지. 옳은 융합자란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자일 것이다. 각성자가 리프에서 했던 것처럼."
"하지만 빛이 모든 것 안에 있지는 않아. 빛은 우리를 떠났다. 빛이 누구를 총애하는지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왜 빛을 찾으려 하는 거지?"
"빛은 한때 우리 안에 있었다." 미스라악스가 그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다시 그럴 수도 있다."
남라스크도 그런 시절을 기억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머나먼 기억 저편에 머무는 시간이었다.
"리이스… 나도 거기 있었다." 남라스크는 속삭였다. "그 회오리에… 첼치스가 쓰러진 후, 난 우주선을 보내 거대한 기계를 쫓았다. 전쟁을 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가문을 버리고, 내 함대를 보내 기계를 쫓았다. 많은 이들이 우리를 따라 집결했어. 각각의 우주선이 인간들과 나름의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마 내가 처음이었을 거다."
미스라악스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이해한다. 우리도 세인트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세인트가 그들의 이름을 알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남라스크는 최후의 도시에서 엘릭스니에게 제공된 구역에 정착했다. 낮에는 직조기를 다른 이들과 공유했다. 밤에는 곁을 떠나간 이들의 이름을 되뇌다가 잠이 들었다.
한동안 편하게 잠을 잤지만, 어느 날 한 인간이 그에게 소리쳤다.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자!"
남라스크는 돌아섰다. 마주 소리치고 싶었다. 우주선의 폐쇄된 공기에 관해, 폐쇄된 삶에 관해 외치고 싶었다. 살아남은 자손들과 살아남지 못한 자손들과 관련된 힘겨웠던 결정에 대해 한탄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들이 인간의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걸 생각할 만큼 타락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인 건 아이도처럼 젊은 엘릭스니였다. 그는 그들의 약속을 향해, 희망을 향해 울부짖고 싶었다. 아이도는 그를 싫어하며 피했고, 그게 최선이었다.
결국 남라스크는 인간을 위해 직조하는 법을 배웠다. 펠트를 만드는 작업을 가장 좋아했지만, 비단을 이용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는 비단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가끔은 직접 손으로 해 보기도 했다. 한 손으로 방적 돌기에서 실을 뽑아내면서 다른 손으로는 안정적인 인장 강도를 유지하면 최고의 천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수호자 워록처럼 빛을 직조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워록이 공간을 직조하는 방법은 비밀이었다. 어쩌면 미스라악스가 그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한 기계가 그의 시장 가판대를 찾아왔다. 그는 긴장한 듯 껍질을 문질렀다. 그런 기계 인간을 "엑소"라고 불렀다. 왠지 벡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기계로 이루어진 그 모습을 보는 게 그나마 불안하게 무른 인간이나 영혼이 두 개인 각성자를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엑소는 화려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군요." 그 기계가 말했다.
그는 겁에 질렸다. "남라스크는 천을 판다." 그는 목쉰 소리로 말하며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다.
"남라스크."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나도 늙고 공허한 방직공입니다. 당신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것 같군요. 하지만 내 동족 대부분과는 달리, 난 런던을 기억합니다. 당신도요."
그는 상대방을 가로막기라도 하듯 천 한 필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그의 손 두 개를 잡았다. 그녀의 기계 육체가 그의 손보다 더 따뜻했다.
"시간대는 매 순간 탄생합니다. 우리는 광대한 융단에 엮어 넣은 하나의 실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이 실 위에서 우리 사이에 일어났던 일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당신도 거기에서 달아날 순 없습니다. 당신은 도살자입니다. 당신과 나는, 아직 전쟁 중입니다." 그녀는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놓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입에서 에테르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장난이라도 치듯 그의 손 네 개를 모두 두드렸다. "제 이름은 고대의 여신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과 팔의 개수가 같은 여신이었죠. 여신의 네 손에는 다르마와 카마, 아르타, 모크샤가 있었습니다. 각각 법률과 욕망, 의미, 마지막으로 해방을 의미하지요. 죽음과 부활의 전쟁으로부터의 자유. 당신은 남라스크로 부활하면서 자유를 얻었습니까?"
그는 다시 말했다. "남라스크는 천을 판다."
"그런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모크샤가 당신의 부활을 허락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난 당신이 아킬레우크스였을 때 했던 짓을 잊지 않았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다른 약탈물과 함께 그 이름을 훔쳐 사용했다. 인간 영웅의 이름이었다. 위대한 전사이자 뛰어난 발로 유명했던 아킬레스, 그 이름은 "적의 재앙"이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