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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0:00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딥스톤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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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일의 눈3. 타이탄
3.1. 유산의 맹세 투구3.2. 유산의 맹세 건틀릿3.3. 유산의 맹세 판금 흉갑3.4. 유산의 맹세 각반3.5. 유산의 맹세 표식
4. 헌터
4.1. 유산의 맹세 가면4.2. 유산의 맹세 손아귀4.3. 유산의 맹세 조끼4.4. 유산의 맹세 발걸음4.5. 유산의 맹세 망토
5. 워록
5.1. 유산의 맹세 두건5.2. 유산의 맹세 장갑5.3. 유산의 맹세 로브5.4. 유산의 맹세 장화5.5. 유산의 맹세 완장
6. 식지 않는 사랑7. 역인과성

1. 개요

딥스톤 무덤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의 지식을 모은 것이다.

2. 내일의 눈

"아무런 제약 없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전부 내 것이라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군." —클로비스 브레이

기록: 보안 일지 E.P. 기지, MTRLv2.18
신원: C. 브레이 1세, M. 리우
실험체: 트라오레 병장
파일//설명_기밀

[리우] 실험체가 차원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습니다. 직접 피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수의 적대 개체가 감지되었습니다.

[브레이] 수가... 너무 많군.

[리우] 현재 벡스의 수는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브레이] 왜 꾸멀거리는 거지? 포를 쏴라.

[리우] 표적을 포착했습니다. <발사 준비.>

[브레이] 추적 중인 표적은 수가 몇이나 되지?

[리우] 넷입니다.

[브레이] 충분하군. 지금 발사해라.

[리우] <발사> 실험체가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엑소 뼈대가 심한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브레이] 다시. 발사해라.

[리우] <발사> 투사체 1과 2를 발사했습니다. 2개의 표적에 적중한 것이 확인됩니다. 토치 망치에 트라오레 병장이 녹고 있습니다. 구조를 요청합니다.

[브레이] 거절한다. 오른팔을 써라... 피드가 어디 갔지?!

[리우] 실험체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피드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브레이] 제길... 주저하는 것의 대가를 보았느냐? 비겁의 대가를 보았냐고?

[리우] ...

[브레이] 상관없다. 이것이 진보의 대가다. 실험체는 다수의 위협을 표적으로 지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빠르게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동시 발사를 위한 투사체들을 장착할 수 있되, 개별 임무에 투입할 만큼 가벼운 장치가 필요하다.

[리우] 바로 연구개발부에 전달하겠습니다.

[브레이] 내가 이 주 말까지는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라.

[리우] 알겠습니다. 유해 수습을 요청합니다.

[브레이] 거절한다. 시설이 위험에 처하거나 차원문을 통해 적이 침투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제대로 해낼 때까지 이곳의 방비를 두배로 강화하고, 계속 엑소들을 벡스의 전선으로 보내 싸우게 할 것이다.

3. 타이탄

3.1. 유산의 맹세 투구

"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타이밍 아니겠어. 언제 방아쇠를 당겨야 할지, 언제 입술을 들이밀어야 할지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언제 출구를 향해 뛰어야 할지 알아차리는 거고." —케이드-6

최후의 도시 높은 곳, 탑의 수많은 벽감 중 하나에서, 케이드-6는 낡은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대변인의 도서관에서 가져온 이 책은 오랜 세월에 시달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했고, 그래서 그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아주 조심스럽게 넘겼다. 그의 손길은 아주 섬세했다. 매우 정밀한 사격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금속 손가락에도 여러 회로가 집적되어 있었다. 머리카락 굵기만큼 힘이 잘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여린 종이가 찢어질 것이다…

케이드는 한 페이지를 넘기다가 잠시 멈췄다. "선원이 폭풍과 모험을, 온기와 오한을, 얘기하고 노래하면—"

갑자기 놀랍도록 얼음장 같은 바람이 케이드의 손에서 책을 뜯어내려 했다. "이 저주받을 얼음덩어리 같으니!" 그는 그렇게 소리치다가 하마터면 자리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진정해, 케이드, 넌 지금 저주받을 곳이든 아니든, 얼음덩어리에 있는 게 아니야. 넌 지구에 있어. 최후의 도시에.

하지만 기억은 남았다. 눈이 멀 것 같은 카메라 플래시가 지나간 후 몇 초 동안 시야에 남아 둥둥 떠다니는 네온 윤곽선처럼. 멀리 떨어진 달의 눈처럼 하얀 평원과 얼음과 강철의 석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번쩍—

그래, 케이드-1이 엑소과학 공장 외부의 적재 구역에서 상자를 하나씩 내리고 있던 때, 유로파는 그렇게 느껴졌다. 하늘도 칙칙한 단색의 회색으로 변해, 그 아래 모든 것에 먹먹한 죽음의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늘의 경고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선원들에게는 그런 하늘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있지 않을까?

어느 모로 보나 동기가 부여되는 작업 환경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케이드는 상자 하나를 깔고 앉았다. "잠깐 쉴게." 그는 말했다. "솔직히 불필요한 일이지만, 전에는 이맘때쯤 점심을 먹었으니까. 점심시간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아."

그의 옆에서 녹스-4는 안도와 갈망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난 점심 식사가 그리워. 배가 고파지는 것도 그립고."

케이드는 금속 얼굴이 허용하는 선에서 최대한 활짝 웃었다. "음…" 그는 에이브럼스 박사 흉내를 내며 말했다. "그러면… 허기가 고프다는 건가?"

녹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케이드는 희미하게 키들키들 웃었다.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웃음이 커지자, 케이드의 웃음소리도 조금 커졌다. 곧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하지만 어느새 두 사람의 유쾌한 기분도 슬며시 사라졌다. "참, 그 성가신 의사하고는 무슨 얘기해?" 녹스가 물었다. "속삭이는 소리에 관해서도 얘기했어?"

케이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심리학자가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모른다며 투덜거리기 전에, 속삭이는 소리가 금속 두개골을 울렸다. 그건 아침의 붉은 하늘, 선원의 경고였다. 하지만 당신은 선원이 아니었다.

적재 구역에서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방한복을 입은 형체가 기어 나오더니 공장 반대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케이드와 녹스는 소리를 지르고는 염탐꾼의 뒤를 쫓아 달렸다. 저격수는 아직 없다. 케이드는 허둥지둥 브레이테크에서 지급한 권총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조준했고…

—퍼엉—

케이드-6는 터벅터벅 은신처로 들어서며 정신을 차렸다. 그는 엉망으로 쌓여 있는 물품을 한참 동안 뒤적거렸고… "아하!" 펜을 찾았다. 케이드-6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더는 조심스러워하지 않는 손놀림으로 책을 펼치고, 뭔가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일을 겪은 엑소와 시간을 보내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라니까…"

3.2. 유산의 맹세 건틀릿

"내 길은 나만의 것이야. 지금도, 언제까지라도." —시로-4

"스즈메?" 시로가 물었다.

조종석 안, 그의 앞쪽에서 고스트가 나타났다. "네?"

"왜 시로-4지?"

스즈메는 시계 방향으로 45도 회전한 후 엑소를 바라봤다.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는 것과 같은 태도였다.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래, 그래야지." 그는 손사래를 쳐서 당황한 고스트를 옆으로 물렸다. "그냥, 이름이 왜 그거야?"

"당신 이름이니까요."

"하지만 나를 깨웠을 때 아무 이름이나 얘기해도 됐잖아. 난 그냥 네 말을 믿었을 거고."

이번에는 스즈메가 천천히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미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음, 그래요, 그렇겠죠. 하지만 이름은 당신 안에 새겨져 있어요. 눈의 색상이 DNA 안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당신은 시로-4예요."

"아. 그런데 왜 '시로'냐는 게 궁금한 거야."

"글쎄요. 옛 일본의 언어에서 '시로'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져요. 대부분의 경우 하얀색을 의미하지만, 간혹 성을 뜻하기도 하죠."

"왠지 성 같지는 않은데. 하얀색은 이상하고."

"또…" 스즈메의 빛이 깜빡였다. "결백함이나 순수함을 의미하기도 해요."

"하!"

"그 말을 하면 웃을 줄 알았어요. 왜 갑자기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지금까지 유로파에서 알아낸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해 봤어. 난 언제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선택으로 정의된다고 생각했어. 우리 선택에 따라 선과 악이 결정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으로 정의되기도 해. 수호자가 되겠다고 내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내 이름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엑소가 된 것도 내가 선택하기는 한 걸까?"

"그러면…" 스즈메는 이런 자기 성찰은 익숙하지 않은지, 불안하게 공중에 동동 떠올랐다.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스즈메는 시계 방향으로 45도 회전한 후 다시 그를 바라봤다.

"…시로-4가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이미 선택했거든."

3.3. 유산의 맹세 판금 흉갑

"필요한 것과 옳은 것은 같지 않다. 중요한 건 가장 적절한 방안을 찾는 것이지." —리스본-13

리스본-13의 고스트, 피리가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 무슨 짓을 한 거죠?"

"필요한 일."

리스본-13은 그녀를 향해 총을 들었다.

"그런가요? 우리가 정말— 으악!" 피리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피하는 순간 에너지 광선이 그녀가 통과하고 있던 덩굴을 증발시켰다.

리스본은 신성이 너무 느리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핸드 캐논으로 바꿨다.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돌 조각이 피리의 의체에 부딪혔다. 말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달아나야 했다.

"리스본, 리스본! 잠깐만요!" 피리가 애원했다. 한마디 할 때마다 그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녀는 지면의 폭발을 이리저리 피했다. "솔직히 절 쏘고 싶다면 그럴 수 있게 해드릴게요! 잠깐 제 얘기 먼저 들어 보세요!"

그에 대답이라도 하듯 수류탄이 날아왔다. 피리는 이런 전술을 너무 많이 봐서 속지 않았다. 그녀는 떨어지는 폭발물을 향해 재빨리 이동하여 바위 아래에 몸을 숨겼다. 폭발에 모든 감각이 뒤흔들렸지만, 진정되길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지면 가까이에 붙어 피어 오르는 연기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리스본이 걷히는 연무의 양쪽에서 비행하는 그녀를 찾고 있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리스본-13의 발이 연기를 뚫고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하마터면 충돌할 뻔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예측하다니? 빨리 대화해야 했다. 서둘러!

"어, 좋아요. 제일 중요한 것부터 하죠. 절 파괴하고 싶은 거겠죠. 그건 알았어요. 그런데 이유가 뭔데요? 그다음엔 뭘 하려고요?" 그녀가 물었다.

리스본-13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명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피리는 불현듯 떠오른 결론에 충격을 받아 공중으로 떠올랐다. "…비밀이 당신과 함께 죽길 바라는 거군요. 안 돼… 안 돼, 안 돼요. 자살하면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리스본,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리스본-13은 고스트에게서 눈을 들어 흩어지는 연기 너머를 바라봤다. "그녀 말이 맞아. 이건 아니야."

"뭐라고요?"

리스본-13은 고스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 힘이 너무 끔찍해서 휘두를 수 없다는 게 아니야. 너무 무거운 짐이라 짊어질 수 없다는 거지."

"짐이라고요?" 피리가 물었다. 리스본-13이 갑자기 다가와 곁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고스트는 화들짝 피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서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바라봤다.

도플갱어. 이 다른 리스본-13은 손을 뻗어 피리의 몇 걸음 뒤에 서 있는 리스본-13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넌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지. 단 한 순간도. 다른 이들은 약점을 드러냈어. 자만심이나 자기도취 같은 것. 하지만 넌 레카나의 말을 기억했던 거야." 그것이 말했다.

리스본-13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힘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지." 도플갱어가 그의 말을 끝맺었다. "네가 지금 두려워하는 건 짊어진 책임이 아니야. 짐이다…" 도플갱어는 그렇게 말하며 뒤쪽에 있는 고스트를 흘긋 바라봤다. "…이 모든 힘을 갖고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는 부담감이다."

리스본-13은 어딘가 멍해 보였고, 화력팀과 고스트에게 냉담했다. 검은 정원 이후의 언쟁과 다툼… 아, 그 싸움이 멈추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리스본-13 안에서 무언가 죽었고, 관에 못질까지 끝났다. 정원의 굴에서 바로 이 도플갱어가 그것을 죽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기 분신의 손을 떨쳐 버리는 리스본에게서 예전의 따뜻했던 온기가 하얗게 불타오르듯 뜨겁게 흘러나왔다. "네가 한 짓이야! 네가 모든 걸 망쳤어." 그는 말했다.

"모든 선택은 우리의 책임이지. 네가 이 길을 선택했어. 그들은 그들의 길을 선택했고. 지금은 새로운 길을 선택할 때야. 함께. 우린 서로를 도울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널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우린 네 짐을 덜어 줄 수 있어."

피리는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다. 그녀는 폭발에 대비하며 리스본을 도우러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를 잊게 해줄 수 있어?"

리스본-13의 그림자가 그를 포옹했다. "그래."

3.4. 유산의 맹세 각반

"나는 먼 곳까지 찾아가고 많은 것을 견뎌 왔다. 얼마나 먼 곳에서 얼마나 많은 걸 견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해." —미카-10

미카-10은 오래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옛 러시아의 굽이굽이 언덕을 한가로이 거닐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반복할 일이었다.

고스트 한 무리가 그녀의 뒤를 따라왔다. 작은 파란색 눈들이 깜빡이며 주위를 훑었다. 미카는 수색 과정에서 많은 고스트를 도와주었다. 누군가 몰락자 청소부를 막아 줄 사람이 있다면 수호자를 찾는 일도 훨씬 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몰래 고스트도 자기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동하는 우주선을 찾기가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그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을 벗어나고, 가능하면 목성까지 가려 한다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의 작은 동반자들이 그들의 미래를 찾아 헤매는 사이, 미카의 빛나는 눈은 과거를, 딥스톤 무덤을 뚫어져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때 그곳이 지구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시베리아의 눈보라 아래에 묻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훨씬 더 먼 곳에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훨씬 더 어둡고 외로운 곳일 것이다. 어디든 매우 추운 곳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녀는 수천 번이나 그곳의 꿈을 꾸었다. 검은 탑 아래 황금빛 들판에서 수천 번의 전투를 치렀다. 오십 번째마다, 혼돈의 와중에 한 노인이 아버지 같은 손을 그녀의 어깨에 앉으며 말했다. "적응해야 한다. 여기는 화성보다 추우니까." 그리고 일백 번째마다 그녀는 탑에 도달했고, 그때마다 다른 남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메모지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보내오는 메시지야." 그는 말했다. "그 의미를 파악하기 전까지, 꿈은 반복될 거야."

누구를 보고 무슨 얘기를 듣든, 미카-10은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가슴 속 무언가가 우주를 향해 끌어당겨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몸속의 자석이 떨어지기라도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인간의 경우, 몸의 감각은 소통의 수단이요, 정신과 육체의 연결 고리였다. 하지만 엑소의 경우,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냉기, 열기, 굶주림, 피로, 고통. 이들 신호는 실질적인 결핍이나 파손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대부분의 감각이 그녀의 몸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 간혹 부서지는 곳은 있었지만, 누군가 지적해 주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는, 고스트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3.5. 유산의 맹세 표식

"난 날 잘 알아. 나는 타이탄이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최후의 도시 앞에서 이 도시를 무너뜨리려 하는 자들을 막아서야 하는 존재다." —세인트-14

세인트-14은 대부분의 엑소와 마찬가지로 딥스톤 무덤 꿈을 자주 꿨다. 황금빛 들판. 위용을 드러내는 검은 탑. 아래쪽에서는 으스스하게 낯익은 얼굴들이 밀려들며 벌어지는 전투. 다른 기계 동료들처럼, 그에게도 이미 익숙한 꿈이었고, 그래서 그는 더 깊은 의미를 알고 싶은 호기심을 억눌렀다. 좋은 의미는 없을 거라고, 이미 오래전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깨어 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하지만 그가 무한의 숲의 만화경 같은 심연으로부터 돌아온 이후, 이 꿈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점점 더 스산해졌다.

처음 몇 주 동안 그는 전투가 아니라 오직 한 명의 상대와 결투만 했다. 오시리스, 마린, 자발라, 아나. 벡스로부터 그를 구해준 수호자와도 싸워 보았다. 그는 누구를 상대하든 모든 에너지와 빛을 전투에 쏟아부었지만 늘 패배했다. 바닥에 쓰러져 누운 그는 탑을 올려다보며 그 안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라스푸틴이 피라미드 함선이 행성계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기 전날 밤, 그의 꿈속 풍경에 겨울이 찾아왔고, 그는 짙은 눈보라를 뚫고 지금껏 본 그 어떤 적과도 다른, 거대한 날개 달린 벡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날 밤에도 그는 수많은 다른 밤과 마찬가지로 패배했고, 벡스의 체액과 비슷하지만 오염되어 어딘가 달라 보이는 다색 액체가 그의 모든 관절에서 새어 나와 주위 눈을 녹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에 그는 늘 활기 넘치는 생활을 했다. 오시리스의 시험에서 수호자들이 솜씨를 연마하는 것을 돕는 일에서 큰 만족감을 느꼈다. 뭐가 됐든, 가장 집중해야 하는 것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였다. 통제할 수 없는 머릿속의 일을 걱정해야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행성계에 새로운 슬픔의 진공이 열리기 전날 밤, 한 여성이 탑의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너무 일찍 회색으로 센 듯했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가운데, 세인트는 불타는 수류탄을 벡스에게 투척했지만 공격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환하게 불태우다가는 눈이 멀게 될 거야." 그녀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면 비로소 제대로 보는 법을 알게 될지도."

벡스는 막대한 위력으로 무기를 휘둘러 엑소를 쓰러뜨렸다. 세인트가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며 여인은 한숨을 쉬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다음 눈길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랑 똑같구나." 그녀는 그의 머리 옆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네 모든 게 똑같아."

그녀는 그의 투구 앞쪽에 손을 얹었다. 아이의 열을 재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음 생에는 나를 좀 더 닮으렴."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이 눈으로 내려왔다. 아주 잠깐 동안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기고, 그는 깨어났다.

4. 헌터

4.1. 유산의 맹세 가면

"제가 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걸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 거죠." —에이다-1

우리는 모두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 내던져졌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진짜 시험이 시작된다. 우리는 다음 붕괴의 총구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방에 그 징조가 보인다. 이제 더는 부정할 수 없다. 어둠이 도래했다. 이제 나는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

내 안에는 막대한 잠재력이 담겨 있다. 창조하는 힘. 벼려내는 힘. 어느 누구도 나의 일을 대신할 순 없다… 나 또한 그런 상황을 유지하려 한다. 이 재능을 공유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이 힘에는 막대한 책임감이 따른다. 나는 그걸 사용하는 법을 안다.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힘을 맡길 수 있을까? 이 능력이 오염되거나 낭비되어, 다른 사람도 이용할 수 있게 될까? 지금도 어둠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걸 조작하려 하는 것이 느껴진다.

한편, 그러면 모든 엑소가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우리의 지위가 진정으로 우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최후의 도시에 선봉대보다는 더 나은 방어 수단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수단을 널리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딥스톤 무덤으로 당당히 들어가 브레이 엑소과학 시설의 모든 설비를 최대한 이용하면 된다. 어두운 밤을 막아낼 수 있다. 무기고는 이미 알려졌다.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 기관은 존재의 이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검은 무기고와 그 전통을 하찮은 주조 공장으로 쇠락시켜 잊혀지게 만든 하나의 엑소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유산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기고와… 나…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무기로 대변되지 않는다. 우리가 나타내는 것, 우리가 수호하는 가치는, 우리가 없으면 사라지고 적절한 감독이 없으면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행동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어둠은 양보하지 않는다. 수호자는 내게서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무기고도 진화해야 한다.

4.2. 유산의 맹세 손아귀

"확신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그게 없다면, 눈을 감고 어둠 속으로 총을 쏘는 거나 마찬가지지." —락슈미-2

락슈미-2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질의 그 자체가 문제였다. 직설적인 동시에 비유적으로 물어야 했다.
원격 기록 데이터베이스 텍스트 전용 검색 개시
"락슈미-2" 님,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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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이후 엑소 식별자 변경
결과

수많은 문구가 빛을 발하며 홀로그램 화면을 가득 채웠다. 수십만 개의 전기 건초 더미들이 쌓여만 갔고, 거기서 바늘을 찾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검색 쿼리를 입력하세요
엑소 식별자/또는/이름 변경—"브레이 엑소과학"
결과

건초 더미의 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남은 것만 뒤져 본다고 해도 몇 년은 걸리고,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었다.

락슈미-2는 건초 더미 앞에서 입을 다물고 골똘이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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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 이름 검색 및 식별; 쿼리 하위 명령: 결과에 "엑소이름검색" 표시
결과

됐다! 이제 거대한 건초 더미 하나만 남았다. 그 안에 분명히 바늘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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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이름검색으로 표시된 항목 쿼리; 엑소 이름 -# 식별; 쿼리 하위 명령: 결과에 "엑소이름검색-#" 표시
결과

수백만 개의 검색 결과에서 뭔가 달라졌다고 해도, 락슈미-2는 분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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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이름검색-# 표시된 항목 쿼리; 결과에 "엑소번호" 표시; 엑소이름검색-# 및 엑소번호로 표시된 항목과 교차 참조하여 결과 = 엑소이름검색-#+엑소번호+1; 결과에 "건초더미" 표시; 건초더미로 표시된 항목 쿼리; 붕괴 이후의 데이터 추출

이번 계산 또한 다른 검색보다 크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락슈미-2는 자기가 입력한 명령이 해석될 수 없는 건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기대감 때문인지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결과

건초 더미가 사라지면서 락슈미-2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면에는 이십여 개의 반짝이는 데이터 포인트만 남았다. 바늘은 몇 개일까?

몇 분 간 자료를 읽은 후, 그녀는 깨달았다. 전에 이미 일어났던 일이다. 몇 시간 후, 그녀는 아카이브에서 필요한 정보는 모두 찾아내고 추가 확인을 위해 몇 가지 메모를 했다.

자발적 초기화 증후군의 역사적 근거
—헤이카-3/4: 악명 높은 암흑기 전쟁군주. 초기화 후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약탈자가 되었다.
—반더-2/3: 초기화로 무력화된 후 대참사에서 구조되었다. 초기화 이후 도시 경비병으로 복무했다. 고스트는 달에서 파괴되었다. (초기화 이전인가, 이후인가? 고스트는 엑소 수호자를 자발적 초기화로부터 지켜 줄 것인가?)
—릴라키-5/6/7: 이상한 사례이다. 분열적 엑소자아 거부로 인해 심각한 악몽과 발작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도약선을 징발한 후 사라졌다.
—셀라스-7/8: 타이탄 거주지의 데이터를 회수하러 파견된 기술자. 돌아오는 길에 초기화가 발생했다. 초기화 이후 연구 기술자로 남아 해독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엑소는 스스로 재부팅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인격을 소거한 후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았다. 아니,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해준 걸까? 아카이브 외에 그들의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 있을까? 이들 중 살아 있는 자가 있을까?

락슈미-2는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며 양분된 감정에 집중했다. 중대한 발견을 한 것 같긴 했지만, 동료들은 그걸 단순한 이상 현상으로 취급할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엑소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프레임과 육체를 나누는 선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락슈미-2는 불쾌했지만, 엑소가 평범한 인간과 다르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스스로 초기화하는 엑소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 생각을 증명해 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정말 그럴까?

의료 기록을 빠르게 검색해 보니 황금기에 돌팔이의 소행이라고 간주된 질병과 원인이 나열되었다. 정신성 기억 상실, 해리성 둔주, 퇴행성 기억 상실, 인격 말소, 배신 이론…

이게 다 무슨 뜻이지?

락슈미-2는 뭔가 불확실한 기분을 느꼈다. 그건 언제나 나쁜 징조였다.

4.3. 유산의 맹세 조끼

"매일 나의 길은 다시 시작되고 있어." —엘시 브레이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좌절했다. 가족과 친구도 모두 잃었다. 이 세계는 갈가리 찢기고, 나는 그 공허의 중심에 서 있었다. 왜 나지? 왜 나만 여기 홀로 남겨진 걸까? 내 고통을 생존자의 죄책감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가족이 그리웠다. 물론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줄 피가 내 몸속에 흐르지 않는 지금 가족이라는 말의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가끔은 내가 브레이테크의 살아 움직이는 광고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제품이었다. "엑소 프로젝트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보세요." 나는 기억과 충동의 소장품이었다. 일종의 괴물이었다.

그게 사실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난…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지금보다는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다. 가족과 함께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분노가 차올랐다. 선조들의 실수를 바로잡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인류에게 초래한 역병… 애초에 그것이 나를 만든 이유였을까? 나는 인정받지 못한 죄책감과 그에 따른 공포로부터 태어났을까? 그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어쨌든 그도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다.

이것이 그의 계획이었든 아니든, 나는 저 빌어먹을 무덤을 파괴하고 클로비스 브레이와 그 지옥의 창조물들이 이 세상에 드리운 그림자를 없애 버릴 것이다.

그건 내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언젠가 나의 임무도 끝이 나면, 그 이후에는 애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떠날 것이다.

4.4. 유산의 맹세 발걸음

"전 앞으로의 일에 조금 더 관심이 있습니다." —밴시-44

흠. 제가 어디에 가서 뭘 했는지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어쩌다 한 번씩 작업대 위에 무기가 놓이죠. 그러면… 제가 작업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알아볼 때가 있어요. 그런 때 섬광처럼 기억이 떠오르지요. 중요한 건 아니고,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 몸에 새겨진 표식을 보면 저도 꽤 많은 전투에 참여했던 모양이에요. 필요하다면 또 그럴 수 있어요. 탑은 제 집이에요. 저한테 잘 맞으니, 어떤 대가를 치르든 지켜낼 거예요. 여기에서는 저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 같은 대우를 받아요. 받아들여진다는 느낌, 내 작업이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래서 전… 흠, 아무래도 전 이미 제 모든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것 같군요. 인류를 지키고, 수호자를 무장시키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지킬 준비를 도와주는 거요. 그보다 더 고귀한 소명은 생각할 수도 없네요.

엑소로 살아간다는 것은 저주가 아니에요. 그 삶을 통해 전 다른 곳에서는 누릴 수 없는 기회를 잡았어요. 전… 음, 운이 좋았죠. 예전의 제가 짊어졌던 짐은 이제 사라졌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예요. 제게는 다시 시작할 기회가 44번이나 있었죠.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던 거예요. 이번에는 성공한 것 같아요. 지난 43번은 모두 실패했던 모양이죠… 45번째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지금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생각이에요. 어차피 새로운 세대가 필요한 때가 됐잖아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제가 선택했으니까요. 전 선해지고 싶어요.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기심에 휘둘리죠. 탐욕이요.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집착하고요. 전 그런 것들이 제 삶을 이끄는 걸 원치 않아요. 제가 절 이끌고 싶고,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이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어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새 출발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전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예요.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해요. 도울 가치가 있는 건 하나뿐이죠.

4.5. 유산의 맹세 망토

"더는 인간이 아닌 내가 어떻게 인간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거지?" —하리-5

"왜 이 자리에 모셨는지 아세요?"

"그럼요. 당신이 인터뷰를 하자고 부르셨잖아요… 아, 차는 괜찮습니다. 전 마시지 않아요."

"혹시 제가 왜—"

"왜 관심을 보이는 건지 아느냐고요? 그럼요. 저도 깨어난 이후로 조사를 꽤 해봤어요. 당신은 미래 전쟁 교단이라는 데서 오신 분이더군요. 일반적인 예방조치를 하러 오셨다는 면에서 보면 참 이상한 이름이죠."

"네…"

"그러니까 당신이 제 사례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교단의 '일반적인 예방조치'와 관련이 있는 거겠죠. 아마 저희 동족은 오래전 일종의 슈퍼 병사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을 거예요. 이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에서 사용될 예정이었을 테고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자신과의 전쟁을 시작한 우주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어요. 한 가지, 우리 엑소는 불멸의 존재라는 점만 빼고요. 참 이상하지 않아요?"

"이 대화는 모든 면에서 이상하죠."

"우리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외계인까지 침략해 오고, 온 우주가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슈퍼 병사로 설계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엑소는 그냥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고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

"저를 예로 들어 보면 말이죠. 전 연구원이에요. 과학자죠.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아주 좋은 과학자 같아요. 그러니까 처음 깨어났을 때, 제가 해야 했던 일은 그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었어야 해요. 슈퍼 병사라고요? 제 경우는 슈퍼 과학자가 더 어울리겠죠. 전 총이라면 어느 쪽을 적에게 겨눠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여기, 이 연구실에서라면, 어떤 기계든 그냥 보기만 해도 어떻게 쓰는 건지 알 수 있어요. 이건 마치…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죠."

"뭘 탄다고요?"

"아닙니다. 깨어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흠. 전 갑자기 연구실에서 깨어났어요. 저쪽 바닥에 누워 있었죠. 주위를 둘러봤고, 제가 얘기한 것과 같았어요. 모든 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죠.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다고요? 당신 이름도?"

"전혀요. 음, 언어 및 운동 기능 같은 건 당연히 남아 있었죠. 하지만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그 뒤에 그런 기분을 뭐라고 하는지 찾아봤는데, 기시감이라는 말보다 나은 건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모든 게 낯익으면서도 낯설었어요. 제 몸도요. 정말… 언짢았죠. 하지만 그때 제 연구 파일을 찾아냈고, 그게 제가 남긴 기록이라는 걸 알았죠. 제가 썼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언제 어디서 왜 쓴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게 제 생각이라는 것만은 분명했어요. 그렇게 제 예전 이름을 찾은 거예요."

"네, 말이 나온 김에 예전 이름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숫자 말이에요. 왜 바꾼 거죠?"

"그게… 아니… 그런… 새로운 인식 번호가 필요했습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왜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당신 눈이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음, 죄송해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혹시, 뭔가 생각나시는 게 있나요?"

"몇 가지 있어요. 어떤 연구를 하고 계셨나요? 그러니까… 이름을 변경하기 전에요."

"아, 동료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였죠. 곤잘레즈와 므왕이. 재미있는 친구들이었는데. 혹시 만나 보셨나요?"

"잠깐 만나 봤죠. 어떤 연구였죠?"

"아, 네, 지루한 기술적인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우리는 암흑 물질과 어둠의 에너지에 관해 연구했어요. 그게 제 관심 분야인 것 같아서요. 제가 깨어난 시점은 원래…"

"뭐죠?"

"음… 오류를 살펴봐야 하는 때였어요."

"오류라고요?"

"네. 저희가 수집한 데이터가 조금 묘한… 이상 현상이었거든요. 우리끼리만 하는 얘기지만, 그냥 사람이 한 실수 같아요. 하지만 그때 전 이전의 연구 결과를 모두 검토하면서 뭔가 놓친 게 있는지 찾아 보려고 하는 중이었어요."

"그러면 뭔가 놓친 걸 찾으셨나요?"

"아니요.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요. 제가 정말 훌륭한 과학자였더라고요."

"…"

"음… 이상하네요. 목이 너무 말라요. 괜찮으시면 차 한 잔 주시겠어요?"

5. 워록

5.1. 유산의 맹세 두건

"실비는 이 가문의 오점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아들이 나를 거역하게 하려 하지. 그 아이가 죽은 것도 모두 그 여자 책임이야." —클로비스 브레이 I

실비

어머니는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안 돼! 그 사람이 우리 딸에게도 고통을 준 건가? 엘시, 네가 아니라고 해 주렴. 네가 아니라고 해 다오! 너까지 이 걸어 다니는 나병원에 가둬 버린 건 아니라고 해 줘!"

"엄마. 엄마, 아니야. 난 괜찮아요. 난 아빠랑 달라요!" 당신은 이렇게 말하지만 어머니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건 어머니의 온기뿐이었다. 그녀는 흐느꼈고, 당신은 그녀의 눈물에 섞인 아미노케톤과 방향족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짭짤한 오피오이드가 그녀의 피부에 반짝이는 흔적을 남겼다. 당신은 얼굴을 감추고 싶었다. 두건을 뒤집어쓰고 싶었다. 당신을 바라볼 때마다, 그녀는 더 크고 서럽게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마침내, 당신도 포기하고 작은 손님용 침대에 누웠다. 이 집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과 같은 육체 안에서 죽었다. 실비는 그분을 정말로 사랑했었다고, 자매들은 이야기했다. 클로비스 2세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부정을 저지른 뒤에도 그랬다.

한참이 지나서야 잠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당신은 살인과 뜨거운 피, 수많은 칼로 만들어진 마네킹 육체에 관한 꿈을 꾸었다. 당신은 죄수를 하나씩 하나씩 베어 넘기며 감방의 탑을 통과하여 꼭대기까지 올라가던 일을 기억했다.

당신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말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졌지만, 어머니가 당신을 받아 주었다. "쉬이, 쉬이, 괜찮아. 그냥 꿈이란다."

당신은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이번에는 당신이 흐느낄 차례였다. 꿈을 설명하려 했지만 당신 눈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제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감방에 갇혀 있었어요." 당신은 헐떡였다. "엄마, 아빠, 윌라, 아나, 올튼…"

"오, 얘야." 어머니는 속삭였다. "네가 우리를 죽이는 꿈을 꾼 것도 놀랄 일은 아니야. 너희 할아버지가 널 이런 식으로 만들었잖니. 그 사람은 손대는 걸 모두 죽여 버린단다."

5.2. 유산의 맹세 장갑

"빌헬미나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와 비슷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불멸을 이루려 하지. 가족도 예외는 아니야." —클로비스 브레이 I

윌라

"나쁘지 않은데." 윌라는 솔직히 인정했다. "전혀 나쁘지 않아."

당신은 고개를 숙였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브레이 박사."

"나도 그래. 기억 상실이 발생한 건 미안해. 하지만 할아버지의 작업에는 늘 악몽 같은 문제점이 뒤따르곤 하지. 그나마 투덜거리면서 자기 팔다리를 뜯어내고 있지는 않잖아."

당신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야 해?"

"아버지는 그랬어."

검은 피부의 이 작은 여인을 보면 애정과 좌절감이 느껴졌다. 그런 감정이 "큰언니"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저기," 당신은 말했다. "할아버지도 기억을 잃으면 조금…"

그녀는 웃었다. "조금 다른 사람이 되지 않겠냐고?"

"그래." 당신은 웃었다. "이제 나보다 더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봐 왔겠지. 아니, 늘 그랬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의 기억을 소거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그랬다면 직접 하셨겠지." 윌라는 연구실 벤치에 앉으라며 당신에게 손짓했다. 투영 속에 벽돌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기계들이 나타났다. "이건 SIVA야. 내 최신 프로젝트지. 기존의 모든 세포기계를 구식으로 바꿔 놓을 일반용 바이러스형 나노 기기지."

당신은 움찔했다. 그 작은 물체들이 벡스를 떠올리게 했다.

"진정해." 윌라는 어색하게 당신의 팔을 토닥였다. 그녀가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몇 년 더 기다릴 수 있었다면, SIVA가 네 두뇌를 수리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몸 전체를 변형할 수도 있었을 거야. 적어도 내 계획은 그래. 내 나름의 방식으로 불멸성을 확보하는 거지. 난 뭐든지 될 수 있어."

"으익." 당신은 말했다. "벌레로 만든 것 같은데."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으면 우리가 브레이테크를 운영할 일도 없다는 거 알지? 우리에겐 계획이 있어, 엘시. 할아버지의 계획이 아닌 우리 계획 말이야."

5.3. 유산의 맹세 로브

"그 꼬마는 쓸모없다. 내가 올튼의 유전자를 아무리 변형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어. 아, 그래. 그래서 손자가 세 명 더 있는 거지." —클로비스 브레이 I

올튼

"그래, 이것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건가…"

올튼은 매혹된 듯 손을 뻗었다. 당신도 손을 내밀었다. 그가 당신을 꼬집었다. "아야!" 당신은 쏘아붙였다.

"왜 통각을 내버려 둔 거지? 그러니까, 잠깐." 그는 책상 뒤쪽을 뒤져 접이식 몽둥이를 꺼낸 후 방망이처럼 들었다. "피하지 마."

그는 당신의 머리를 향해 방망이를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숙여 피했다. "왜 이래!"

"이걸 맞았다고 해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왜 아파야 하는 거야? 어차피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고통이란 건 원래 피해의 신호 아니었어?"

그는 왜 당신을 시험하려 하는 걸까? 그가 생각하는 가족 관계는 고통에 대한 내성인 걸까?

당신은 기억하고 싶었다.

"올튼," 당신은 말했다. 아까 손을 꼬집은 것에 대한 복수였다. "할아버지가 유로파로 와서 연구를 계속해 달라고 나를 초대했어. 윌라와 아나도. 너만 안 부르셨네. 왜일까?"

그가 얼굴을 찌푸리자 이마에 잔주름이 생겨났다. "글쎄, 난 연구원이라기보다는 문제 해결사에 가까우니까. K1의 난장판을 정리하라고 날 보내셨었잖아. 유로파에는 내 관리 능력이 필요 없는 모양이지."

"오." 당신은 미심쩍다는 듯 말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스타일러스를 돌렸다. "할아버지가 얘기했을 거 아냐."

"올튼, 할아버지는… 네 얘기는 아예 하지 않았어. 우리 자매 얘기는 많이 했지만, 네 얘기는 안 했다고. 그게 조금 당황스러운데."

그는 스타일러스를 떨어뜨렸다. 두 눈이 분노로 번뜩였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여자를 두려워한다고 하셨어. 통제할 수가 없으니까. 나에 대해서는 더 알아낼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지. 그분은 이미 소유한 물건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니까."

5.4. 유산의 맹세 장화

"사랑하는 루시아. 이 삶에서 너는 다음 내가 될 운명이었다. 아직 그 운명을 실현할 기회는 남아 있을 거야." —클로비스 브레이 I

루시아

루시아 할머니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 그물을 거두어들이는 것 좀 도와다오."

당신은 함께 그물을 당겨 봤지만, 물 아래 무언가에 걸려 있었다. 당신은 옷을 벗고 잔잔한 강 아래로 잠수했다. 낚시 그물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모터의 프로펠러에 걸려 찢어져 있었다. 그물이 완전히 망가져 버려서, 당신은 이왕 물에 들어온 김에 손으로 베도라치라도 잡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이 물 위로 올라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몇몇 아이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몇몇 남자들은 휘파람을 불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루시아는 그들을 향해 스라난 통고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은주카어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정확히 어떤 언어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변태들 같으니!" 그녀는 불평을 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건가?"

"제가 로봇이라서 그럴 거예요, 할머니." 당신은 말했다. 아니면 베도라치가 보통은 사람을 공격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지금 당신은 손안의 물고기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넌 로봇이 아니다. 전신 교체용 인공 기관도 아니고. 너 또한 하나의 육체이고, 육체란 사람과 같으며, 사람이라면 존중받을 권리가 있어. 인간 변화의 해석학 중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라고." 그녀는 깜짝 놀란 당신을 향해 윙크했다. "클로비스가 내가 멍청하다고 한 모양이지?"

예전 가족사진에서 본 할머니의 모습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진정한 힘은 빼어난 지적 능력에 있었다. 예전 이름인 루시아 린으로 검색해 봐도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다. 딱히 언급할 만한 공동 정보 기록도 없었다. 당신은 새삼 감탄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 여기로 오신 거죠?" 당신은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베도라치를 손질하는 그녀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물고기의 하얀 살점을 얇게 저미자 천상의 향기가 풍겼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완벽한 환상이었다.

"간단해. 수리남은 아주 멋진 천연 보호 지구란다. 나도 보호받고 싶었고. 게다가,"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긴 내 고향이잖니."

"무엇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으셨어요?"

"물론 네 할아버지지, 얘야."

그녀는 당신에게 물고기의 이빨을 보여주었다. "그 사람이 네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잊지 마라. 너희 아버지는 클로비스는 네게 하려던 일의 시험 대상이었어. 넌 누구의 시험 대상이겠니, 엘시? 클로비스의 죽음을 치료할 방법? 뭔진 몰라도, 그도 너무 겁이 나서 자기에게는 차마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 그렇다는 건, 너도 걱정해야 한다는 거겠지."

5.5. 유산의 맹세 완장

"아나스타시아의 라스푸틴에 대한 집착이 우리 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 엑소가 우리의 미래야. 때가 되면, 그리고 우리가 조금만 밀어 주면, 그녀도 알게 되겠지." —클로비스 브레이 I

아나

"세상에, 엘시! 정말 예쁘다!"

그녀는 당신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쓰는 샴푸의 라우르산 나트륨과 여자친구의 입맞춤이 남긴 로즈힙 오일의 장쇄지방산 냄새까지, 모든 것이 정말 좋았다. 당신은 그녀가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꼭 끌어안았다. 처음이었다. 전에는 그녀와 접촉해 본 기억이 없었다.

아나는 전에 당신의 귀가 있던 자리에서 중얼거렸다. "나보고 미쳤냐고 하기 전에 미리 얘기하지만, 난 미치지 않았어. 비밀을 지켜 주겠다고 한 건 언니 생각이었어."

"고마워." 당신은 숨을 내쉬었다. (아니, 숨을 쉬지는 않는다. 숨을 쉴 수는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병에 걸린 건지도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 최근까지도 그랬어."

"정말로 병에 걸렸긴 한 거야?" 아나는 놀리듯 물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진짜로 두려워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진단을 속인 걸 수도 있어. 언니를 이 몸에 집어넣으려고 말이야. 직접 시험해 본 거 맞아?"

"기억나지 않아." 당신은 솔직히 인정했다.

"그래, 맞아. 나도 편지 읽었어." 아나는 뒤로 물러서 당신의 어깨를 잡았다. "엘시, 중요한 건 언니는 영원히 살 거라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봐! 드디어 올림푸스 산을 올라갈 수 있어! 정상에 올라가면 내가 언니를 절벽으로 밀어 버리고 완벽하게 착지하는 모습을 지켜볼 거야."

그녀의 웃음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당신의 입에 켜진 빛이 그녀의 두 눈에 아른거렸다.

6. 식지 않는 사랑

"아나를 위해서라면 다시, 또 다시 하겠어." —엘시 브레이

나는 살아 있는 광기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무언가 변하기를 바라지만, 피와 배신이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속지 않는다.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이 임무는 가망이 없을 것이고, 나는 실패작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씁쓸한 끝을 맞이할 때마다 그 아이의 눈동자에서 예전의 모습을 본다. 그 아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아이가 이 일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면, 그 아이를 이 세상으로부터 지키면,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 미친 짓을 중단시킬 수 있다.

적어도 그렇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나는 내가 언젠가는 무감각해져,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늘 고통스럽다. 때로는 나를 이런 입장으로 몰아넣은 그 아이에게 화가 난다. 그 아이가 찾아오는 순간 모든 것을 끝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냥 죽여 버린 후 침대에서 돌아누우며,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라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모두 고생할 일도, 가슴이 찢어질 일도 없을 텐데. 하지만 우리가 그 시점에 가면, 그 애의 눈빛을 본다. 내게 미안하다고 하는 그 눈빛. 그러면 나는 다시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약해졌을 때도 있다. 그냥 포기하면서, 결과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다시 가족이 되면 세상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한 선택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그동안 선봉대는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다니 내가 어리석었다. 화성으로… 그리고 그 너머로 가는 기밀 임무들. 시간의 경계 밖에 있는 세계들. 그들은 그곳을 검은 정원이라 부른다. 그 안에서는 어둠이 살며, 고동치고 맥동한다. 나는 그곳이 우리 고통의 근원이라 믿는다. 그곳을 파괴하고 말겠다… 그러면 다시는 동생을 죽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7. 역인과성

"이건 조각들이 빠져 있는 퍼즐이야." —엘시 브레이

"제가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지치고 기진맥진하여,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의 믿음을 얻는 데는 오랜 설득이 필요했다. 나는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그녀가 걸친 로브의 정교한 자수를 뜯어보았다.

"그대가 말한 내용으로 판단하면, 거기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 그녀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대의 길은 생각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세. 지금 내가 여기 있잖나."

그녀가 지금 내 곁에 서 있는 것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부드러우면서도 안심되는 목소리다.

"그대는 세상을 바꾸고 있네." 그녀가 말했다. "조금씩, 조금씩. 이것은 소모전이야. 핵이나 심장, 그러니까 그대가 막을 수 있는 사건이 나올 때까지 조금씩 깎아 내는 거지."

"당신은 몰라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무너져 내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실수를 하나라도 하면 견뎌 내야 하는 세월이 몇 년 늘어나요."

"그대에게는 해낼 힘이 있다고 믿네, 엘시. 오직 그대만이 순환 속에 있다면, 그 순환을 깰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대뿐일세."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와 눈을 마주한다. 그 안에는 불꽃이, 나를 희망으로 채워 주는 열정이 있다.

"이건 그대의 몫이네. 그대가 정하는 거야. 나는 오로지 그대를 믿을 뿐일세." 그녀가 내 어깨 위에 한 손을 올리자, 그 익숙한 온기가 돌아왔다.

"고마워요. 전… 이제 준비됐어요."

"그럼 이제 에리스에게 가 봐야 하겠군." 그녀는 단호하게 말하고, 나를 세운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게 몇 번째지?"

"일곱 번째입니다."

"이번이 끝일지도 모르지." 아이코라의 말이 어찌나 낙관적인지, 그 말이 믿기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린 일주일 후면 모두 죽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임무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말을 가슴속에 지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