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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01:59:47

대전차 소총

대전차 라이플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개발 및 전성기2.2. 쇠퇴 및 몰락2.3. 이후
3. 실제로 쓰인 대전차 소총들4. 기타5. 미디어

1. 개요

Anti-Tank Rifle. 전차장갑차의 장갑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총기.

2. 역사

2.1. 개발 및 전성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협상국, 동맹국 할 것 없이 신무기인 장갑차를 운용했고, 양편 모두 아무리 총을 쏴도 멀쩡한 장갑차를 뚫을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이것만 해도 버거웠지만, 결정적으로 영국의 신 병기인 Mk 시리즈를 시작으로 생샤몽, 슈나이더 CA1, FT-17과 같은 연합군의 전차독일의 참호망을 짓밟고 들어오며 전선돌파를 시도하자, 독일 제국군은 처음에는 야포, 집속수류탄, 엘리펀트 건 등의 무기로 대항했지만, 곧이어 T-Gewehr로 불리는 신무기를 개발하여 대항하기 시작한다.
파일:external/world.guns.ru/mauser_t-gew_1.jpg
세계 최초의 대전차 소총인 탕크게베어 M1918게베어 1898을 바탕으로 13.2mm 대구경 철갑탄을 발사하는 대형 단발식 총기로 당시 대부분의 전차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대구경의 탄약을 발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내구성과 반동의 완충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 크고 무거워질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들고 쏘는것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양각대가 기본 장착되어있다.
연합군 내에서는 특유의 크고 무거운 생김새와 강력한 반동 때문에 팔 하나에 한발이라는 농담이 돌았고 이로 인해 2연발 소총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반동은 버틸만 했고, 대전 말까지 잘 써먹었다. T-Gewehr의 가공할 위력과 휴대성에 주목한 각 군은 전차를 상대하기위한 보병무기로 이 총을 주목했고, 뒤이어 비슷한 물건들이 도처에서 만들어 지게 되었다.

대전차 소총의 전성기는 대충 1차대전 말[1]으로 부터 2차대전 초기[2]로 보며 이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1차대전 중 후반 등장한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부류의 물건은 200~300m 거리에서 10~30mm 정도의 관통력을 가졌기 때문에 1차대전 및 전간기의 소총탄이나 막는 수준이었던 당시의 전차 장갑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보병에게는 대전차포라는 제대로 된 병기를 주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데다가 기존의 야포로도 충분히 상대 가능할 정도로 당시 전차들은 느리고 둔했기 때문에 대전차포는 거의 개발되지 않았고,[3] 그 결과 대전차 소총이 사용되었다. 때문에 본격적인 대전차 무기를 탑재할 수 없었던 초기의 전차에 탑재되어 제한적인 대전차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도 중량 때문에 본격적인 중포를 탑재할 수 없는 정찰용 경장갑차에 탑재되곤 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마우저 군수회사에서 전차에다 장착을 할 수 있게 끔 직접 7.92x94mm 규격의 탄환을 제작, E.W.(Einbauwaffe) 141 대전차 소총을 만들어 1호 전차 C형에 장착한 사례가 있겠다.

2.2. 쇠퇴 및 몰락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기술과 전술이 발전하면서 보병을 본격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제작된 보병전차들이 중장갑을 두르기 시작했다. 기존의 쉽게 깨지고 부러지던 1차대전기의 전차 장갑판과는 달리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신형 장갑판은 더 이상 기존의 대전차 소총으로는 상대하기 힘들어졌다. 따라서 몇 년 후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의 37mm 대전차포가 사용되며 대전차 소총의 자리를 본격적으로 대체하게 된다. 문제는 전차 잡으라고 만들어서 들려줬던 얘마저 전차를 못 잡아서 일선에서는 "국방군의 상냥한 도어 노커(Door knocker)"라고 신나게 까였다. 영국의 마틸다 II8,8cm FlaK로 겨우 상대가 가능했고, 독소전에는 무시무시한 떡장의 보로실로프 전차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2차대전에서 대전차 소총은 그 설 자리를 잃어갔고, 고작해야 경장갑 차량을 상대하거나 엄폐물 정도만 파괴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일부는 유탄발사기로 개조되곤 했다. 그나마 보병 화기로의 가치는 있었지만 성형작약탄과 이를 사용한 대전차 로켓이 등장하며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1942년에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보이스 대전차 소총 교육 영상에서는 2차 대전 당시 대전차 소총의 위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데, 영상을 보면 목표물로 장갑이 빈약하여 보이스 소총으로 제한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1호 전차가 제시되고 있고, 2선 수준의 전장에서 경, 중전차의 가동부나 궤도를 고장내서 가동이 힘들게 만들고, 이어서 포병이나 기타 중화력으로 마무리를 짓는 용도로 사용됨을 잘 알 수 있다.

파일:attachment/PTRD-41/upload.jpg

다만, 독일의 기습으로 거의 존망에 기로에 서 있던 소련은 정신이 없어서 새로운 보병화기를 개발할 여력이 없었기에 대전차 로켓병기 개발이 늦어지게 된다. 때문에 소련은 서멧같은 최첨단 소재를 고작 대전차 소총탄을 만드는데 사용해서라도 쓸만한 대전차 관통력을 확보하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부족한 관통력은 대전차 소총 특유의 은폐성과 명중률로 보충할 수 있었고, 결국 독일 전차들은 이 지긋지긋한 대전차 소총 때문에 안 그래도 무거운 전차들에 쉬르첸을 달아 더 무겁게 만들어야 했다.

유도로켓을 제외한 로켓 무기 체계는 카츄샤 다연장로켓에서 보듯이 독일보다 앞서 있었지만 워낙 전황이 급박했던지라 대전차 로켓을 개발할 여력은 없었다. 소련 최초의 대전차 로켓인 RPG-1은 종전 직전인 1944년에서야 겨우 등장했다. 그 동안 보병들은 렌드리스로 받은 바주카PIAT을 사용한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이 RPG-40이나 RPG-43과 같은 대전차 수류탄[4]을 사용하여 전차를 상대해야 했기에 대전차 임무는 매우 위험했다. 따라서 대안이 없었던 소련군은 전쟁 말까지 대전차소총을 많이 사용하였다. 다만, 소련군 보병은 미칠듯이 생산되는 소련 전차의 기갑 웨이브 T-34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본격적인 대전차 임무를 수행할 필요가 적었으므로 큰 문제는 없었다. 또한 시가전에서는 입체적인 도시의 환경으로 인해 전차보다 보병이 오히려 유리했기 때문에 대전차 수류탄 혹은 급조 폭발물로도 충분히 전차를 상대할 수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대전차 소총으로 전차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대전차 수류탄이나 폭발물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충분히 전차를 상대할 수 있었다. 또한 대전차 소총은 사거리가 길고 명중률이 좋아 전차의 약점을 노리기 좋았으며, 관측창을 노려 시야를 차단하거나[5] 독일 전차의 얇은 장갑 부분을 노려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전차의 약점인 포탑 링과 헐 부분을 방어하기 위하여 스커트형 증가장갑인 쉬르첸이 장착되기도 했다. 대중에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초기형 쉬르첸은 대전차 고폭탄 방어 목적이 아니라 대전차 소총의 방어를 위해 제작된 물건이었다. 또한 궤도를 노려 전차를 퍼지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전차의 기동능력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이런 대전차 소총 전술들이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소련은 비교적 오랫동안 대전차 소총을 사용했다. 6.25 전쟁베트남 전쟁에도 소련 등으로부터 넘겨받은 대전차 소총이 불을 뿜어서 T-34에게 압도당해 대전차전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정찰, 호위, 보급로 습격, 교육 같은 비교적 간단한 임무로만 돌려졌던 채피 경전차들이 격파당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atr+ptr.jpg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에게 노획한 PTRD-41에 M2 중기관총의 총열을 달고 조준경을 붙여 저격총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미군.50 BMG 탄환을 사용하는 대전차 소총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긴 하였다.# 그러나 실사용과 대량 생산은 되지 않았다.

2.3.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대전차 소총은 특유의 강력한 탄환의 긴 사거리와 파괴력을 살려 대전차 용도가 아닌 대, 즉 경 장갑 차량이나, 엄폐물 등을 상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곤 했다. 문제는 이 물건의 유효사거리가 겨우 겨우 수 백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장거리 사격에 대한 고려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경 소총의 장점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조준경을 장착하는 등 현지 개조를 거쳐 일부 저격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탕크게베어 M1918를 최초의 대전차 소총이자 현 대물 저격총의 효시로 보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대물 저격총은 대전차 소총의 후손이라 평가 받는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대전차 소총=대물 저격총이라는 말은 아니다. 용도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둘의 설계 사상이나 세부적인 사용 목적, 또 그에 따른 운용방식은 매우 큰 차이가 있기 때문.

실제로 대전차 소총의 계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번 끊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대전차 소총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 소련 등의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사용되었고, 그마저도 50년대까지 사용되고는 사라졌다.[6] 따라서 실질적인 현대 대물 저격총의 시초는 잘 알려진 바렛 M82로서, 이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으로 2km의 초장거리 저격을 해낸 카를로스 헤스콕의 일화에 감명받아 만든 물건이라고 한다. M82가 등장하고 미군에 의해 효과적으로 사용되면서 대물 저격총의 필요성에 대해 다른국가들 또한 주목하게 되었고, 장거리 저격 임무와 카운터 스나이핑 용도를 위해 현재 도입하여 사용되고 있다. 물론 현대에도 제한적인 장갑차량 제압 임무 또한 가지고 있다.

파일:M82A1_barrett.jpg
M107 LRSR
대구경 저격소총은 다시 두 가지 갈래로 용도가 나뉜다. 첫 번째는 초 장거리(1km 이상) 정밀 저격이고 두 번째는 본격적인 경장갑차량의 제압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물건으로는 CheyTac Intervention이 있고, 후자의 대표적인 물건은 NTW-20이 있다. 전자는 기존 대전차 소총의 임무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후자에만 어느정도 남아있다. 자세한 것은 대물 저격총 문서 참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군14.5×114mm탄을 사용하는 2m 전장의 자국산 대물 저격총인 Snipex Alligator를 통해, 전차는 아니지만 장갑차의 측면을 노려 무력화시키는 전과를 올리고 있다.

3. 실제로 쓰인 대전차 소총들

4. 기타

5. 미디어



[1] T-Gewehr가 개발된 1918년[2] 대략 독일의 프랑스 침공 직전, 폴란드 침공까지는 어느정도 대전차 소총도 활약하긴 했다.[3] 그리고 이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직사포는 이미 옛날부터 있었다.[4] 2차대전 중 사용된 RPG-40은 대전 후반의 4호 전차와 판터를 상대하기에는 그 위력이 다소 부족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RPG-43인데, 무게만 1.2kg에 달하는 물건을 멀리 던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75mm의 균질압연장갑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돌입 각도를 정확히 90도로 맞춰야 했기에 여러모로 대단히 불편한 물건이었다.[5] 2차 세계대전 중의 전차 관측창은 대전차 소총으로 쉽게 뚫리는 물건도 아닌데다 대체로 프리즘식이었기 때문에 전차병을 직접 죽이긴 힘들었지만, 유리를 파손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야를 막을 수 있었다.[6] 베트남 전쟁에서 극소량의 PTRD-41이 쓰이긴 했다.#[7] 프로토타입에서 사장됨[8] 반면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같은 중기관총은 총 자체의 무게가 커서 반동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고, 특히 M2의 경우 폐쇄식 노리쇠 설계 덕에 조준경을 장착해 저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9] 대전차 소총보다 훨씬 약한 탄인 7.62×51mm NATO 탄을 사용하는 FN SCAR-H도 설계 문제로 인해 어지간한 도트 사이트는 쉽게 파손된다는 단점이 있다.[10] 실제 역사의 전차처럼 아머드 트루퍼의 방호력 상승으로 주인공의 보직이던 기갑엽병 자체로 작중 시점에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태이다.[11] 산업 시대의 대기갑 유닛. 퓨질리어(Fusiliers) 보병에서 승급하며 이후 시대를 거쳐 바주카대전차미사일 보병으로 변화한다.[12] 미국은 대전차 로켓바주카가 있으므로 제외한다. 각각 독일은 판처뷕세, 소련은 PTRD-41PTRS-41, 영국은 보이스 대전차 소총을 사용한다.[13] 근거리 기준 몸통도 원샷이다.[14] 폴아웃 세계관에서 파워아머는 작중에서 걸어다니는 전차 취급되는 장비라서 어찌 보면 정말로 대전차 소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