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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05 11:59:37

내몽골 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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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蒙古自治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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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자치구
Inner Mongolia Autonomous Region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0px-China_Inner_Mongolia.svg.png

자치구정부
소재지
후허하오터시 루이개발구 치러촨다가 1
(呼和浩特市 如意开发区 敕勒川大街 1)
지역 화베이
면적 1,183,000km²
하위 행정구역 9지급시 3맹 23구 11현급시 17현 49기 3자치기
인구 2,505만명
인구밀도 20.2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리지헝(李纪恒)
정부주석 부샤오린(布小林)
HDI 0.767 (2017)
GRDP $2,612억 6,900만 (2018)
1인당 GRDP $10,322 (2018)
행정구역 약칭 内蒙古[1]
ISO 3166-2 CN-NM
홈페이지
1. 개요2. 상세
2.1. 몽골과의 관계
3. 역사4. 행정5. 인구6. 행정구역7. 문화8. 인물9. 기타10. 사건11. 관련 문서

1. 개요

네이멍구 자치구는 중국의 자치구이다.

약칭하여 네이멍구 (内蒙古)라고도 부르며, 약칭은 몽(蒙). 최대도시는 후흐 허트(Хөх хот, 呼和浩特)[2], 중국어 음차로는 후허하오터이다.

2. 상세

북쪽 국경지대에 독립국 몽골(외몽골),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 면적은 1,183,000km². 국경선이 무려 4,220㎞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몽골과 접경선이 3,192㎞, 러시아와 접경선은 약 1,000㎞이다.

네이멍구 자치주 중 다싱안링 산맥(大興安嶺山脈/大兴安岭山脉, 대흥안령 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은 넓은 의미의 둥베이(동북) 3성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 일대를 동4맹(東四盟/东四盟)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속하는 행정구역은 치펑시(赤峰市, 구 자오우다맹 昭烏達盟/昭乌达盟 ), 퉁랴오시(通遼市/通辽市, 구 저리무맹 哲里木盟 ), 후룬베이얼시(呼倫貝爾市/呼伦贝尔市, 구 후룬베이얼맹), 싱안맹(興安盟/兴安盟)이다. 여기서 '맹'은 내몽골 자치구에만 있는 행정구역 단위인데, 현재 행정구역 개편이 되어 본래의 동4맹 중 3개가 시로 승격되었다. 현재도 이 네 곳을 묶을 땐 예전 행정구역을 따서 동4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바뀐 행정구역에 맞춰 3시 1맹(三市一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몽골은 지역적인 관점에서 고비 사막 내외부에 따라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뉜다. 고비사막 내, 북쪽의 독립국인 몽골국(구 몽골인민공화국)은 '와이(外)멍구'이고, 고비 사막 외부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해있는 몽골은 '네이(内)멍구 자치구'라 명명한다. 이러한 구분법은 청나라의 몽골지배 시절 때부터 나뉘어진 것으로 구분된 몽골은 역사적으로 마찰이 심해서 같은 몽골인이라지만 서로를 상당히 적대시한다. 몽골의 사서를 보면 서로 노예로 삼겠다는 소리를 할 정도니.

사실 과거 시절에 이렇게 다른 나라들끼리 인접한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민족 출신들도 많이 살았다. 한나라 시절에는 대부분의 나라가 네이멍구 지역에 있었기도 했고, 투메드부의 지배 지역에 유입된 한인 정주민을 거주시키는 마을로 건설된 중국식의 성곽도시 바이신(大板升)이 도시 후허하오터의 기원이다. 명나라 역시 이런 유목민들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유목민들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도 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런 경우 민족이 달라도 자기가 살아온 나라 편을 드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현재 네이멍구 전통 몽골 문자를 사용하고 있으나 한족 이주민의 영향으로 한어중국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현재 내몽골자치구 인구의 80%는 한족 이주민으로 채워져 있고, 또한 내몽골인은 중국 내 소수민족이므로 "몽골인"이 아닌 "몽골족"으로 분류된다. 오늘날 "몽골인"이란 단어는 독립국가인 몽골의 국민을 지칭하며, 내몽골인은 국적상 중국인으로 분류된다.

동북3성의 악명 높은 추위에 묻힌 감이 있는 지역으로 내몽골자치구도 한 추위 하는 지역이다. 영하 20도 찍는 것은 일상이며 영하 40도 이하도 자주 기록되며 역대 최저기온은 북부 tulihe에서 기록된 영하 58도 이다. 이는 중국 내 최저기온이다.

2019년 시린궈러 맹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2.1. 몽골[3]과의 관계

네이멍구 외몽골을 소련식민지로 간주해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자부한다. 반대로 외몽골에서는 완전히 중국화 되어버린 내몽골을 중국에 굴복하여 민족을 배반한 배신자로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청나라의 중원 진출 때 내몽골에 해당되는 차하르 족이 가장 먼저 청나라에 복속되었고, 외몽골에 해당되는 할하 족과 그 외 민족들은 끝까지 항전하였다.

내몽골이 청나라에 가장 먼저 복속되면서 청나라 내 내몽골 귀족들의 세력은 크게 팽창하였다. 당시 칭기스칸의 씨족인 보르지긴만 해도 청나라 때 내몽골 씨족 중 최강이 되었을 정도였고 지금도 방계 후손들이 내몽골에 있다. 이는 청나라 황제가 몽골 대칸의 지위를 이양받음으로써 정통성을 얻기 위해 보르지긴 귀족들을 지원해 준 탓도 있다.

2012년에 내몽골에서 한족과 몽골족 간 마찰이 벌어지는 등 이쪽도 한족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지만, 오히려 한족보다 튀르크계 무슬림 카자흐인이나 외몽골인들을 더 나쁘게 본다고 한다.

3. 역사

파일:mongolia_s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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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세근현대

러시아 제국 소련 러시아(부랴티야 공화국)
청나라
(청나라 치하 몽골)
중화민국/북양정부 중화민국/국민정부 중화민국/국민정부 중화인민공화국
(내몽골 자치구)
몽강연합
자치정부
내몽골 인민 공화국
투바 인민 공화국소련
(투바 자치주)
러시아
(투바 공화국)
복드 칸국 중화민국 점령기 몽골 인민 공화국 몽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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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때는 흉노의 땅이었으며, 흉노의 후예로 추정되는 돌궐 역시 내몽골과 외몽골, 남시베리아, 북중국, 신강에 걸친 영역을 확보했다. 왕조에 들어서 태종의 북방 원정으로 중국에 귀속되어 기미주가 되었었으나 돌궐의 부활로 빼앗겨서 돌궐이 다시 차지했고, 다시 돌궐을 멸망시킨 위구르 제국이 차지했다.

원래 북만주에 살던 원시 몽골족인 몽올실위족이 초원으로 진출 한 후, 그들 중 한 씨족인 보르지긴 씨족에서 칭기즈 칸이라는 걸출한 전략가가 나와 몽골 부족을 통일하면서 몽골족이 생겼다. 이 몽골족은 나중에 북중국에서 금나라서하를 멸망시키고 몽골 제국을 세웠다.

북송 때는 서하, 요나라, 금나라가 있었다. 특히 요나라는 내몽골 남부 전체를 지배했으나 서하와 금나라는 일부를 지배하는 데 그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나라는 동남부의 츠펑 시 일대부터 서남부의 오르도스 동쪽까지 가졌고, 그 이후 오르도스 일대는 서하가, 내몽골의 동부 흥안성 일대(만주로도 간주)는 금나라가 가졌고 내몽골고원은 칭기즈 칸의 등장 이전까진 각 부족이 분열되어 있는 내분 상태다.

그러다 칭기즈 칸의 등장으로 각 부족이 통일되어 "몽골"이라는 문화적,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이 드디어 생겼다. 칭기즈 칸 등장 이전의 몽골은 그저 수많은 부족 중 하나의 이름에 불과했으나 칭기즈 칸은 최초로 모든 유목민에게 몽골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것은 몽골대제국, 그리고 현대의 몽골로 이어진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 사후 후손들에 의해 나뉘어 지게 되고 그 중 하나인 원나라는 몽골과 중국을 가로 지르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이후 원나라 시대를 거쳐 명나라 대에는 원나라는 100년 조금 못 가서 한족에게 밀려 몽골 고원으로 물러나 북원이라 칭했다. 한동안 내몽골 일대에는 북원과 몽골 칸국들이 일어나 명과 대치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시금 몽골 부족을 통일한 다얀 칸과 어느 정도 부흥기를 성립시킨 알탄 칸이 있다.

이후 내몽골지역은 차하르 부족이 계속 다스리다가, 1635년 만주족이 세운 후금에 릭단 칸의 아들 에제이가 항복해 이후 만주와 함께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 일로 청나라의 황제는 원의 옥새를 얻어 몽골 제국 대칸의 권위를 이양 받았고 내몽골은 완전히 청의 일부가 된다. 이후 청은 만주족과 몽골족 연합제국의 형태로 가며 건륭제 때는 외몽골까지 평정한다. 청나라는 18세기에 건륭제 시기에 외몽골과 신강, 티베트에 걸쳐있던 준가르 제국을 없애버리고 이 지역들까지 정복해 버린다.

신해혁명 후 외몽골에서는 복드 칸이 독립을 선언했으나 내몽골은 독립에 호응하지 않고 중화민국에 잔류했다. 이에 외몽골 측이 내몽골을 복속하기 위해 침공을 감행했으나 위안스카이의 개입으로 패퇴했다. 북양정부는 내몽골의 왕공 제도를 인정하고 특수 행정구역을 두어 통치했다. 이후 들어선 국민정부는 내몽골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여 1928년 러허성(熱河省)과 차하얼성(察哈爾省), 쑤이위안성(綏遠省) 등의 행정구역을 두어 내몽골을 분리해 관리하였다. 내몽골은 장제스의 중앙정부를 지지하면서 자치권 확대를 도모했으나, 일본의 세력이 만몽에서 확장되면서 장제스보다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일본 측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 1936년 데므치그돈로브를 옹립한 관동군수동사변을 일으켜 내몽골 병탄을 시도했으나 푸쭤이의 반격에 격퇴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군에게 내몽골은 병합 당하고 몽강국이 세워진다.

1945년 8월, 공산주의 몽골군과 소련군의 합동작전인 8월의 폭풍 작전으로 인해 소련군 플리예프 기병-기계화 집단이 내몽골 사막을 건너 쳐들어와 이미 미국에 의해 망해가던 일본제국이 세운 괴뢰국 몽강국은 멸망하였다. 당시 군비의 대부분을 해군력에만 쏟으며 미국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던 일본은 손쉽게 무너진다. 소련은 아예 내몽골을 몽골에 병합시키고 조만간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편입시키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철회하였다. 1945년 9월에는 내몽골 인민 공화국이라는 독립국가가 세워졌지만 몇 달 못가 중국 공산당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마오쩌둥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외몽골은 소련에 의해 독립되었고, 내몽골은 1947년 5월 1일 중국 공산당의 행정개혁으로 내몽골자치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몽골이라는 정체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유명한 인물은 몽골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 칸과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있다. 쿠빌라이 칸의 경우 몽골의 전통을 벗어나 원나라를 세워 중국식 연호를 사용하였다. 현재 중국은 내몽골자치구 내에 칭기즈 칸 무덤을 조성하고 중화민족의 자랑스런 위인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칭기즈 칸은 오늘날 외몽골에 해당하는 헨티 아이막의 빈데르 솜 출신이므로 중국측의 주장은 일방적인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4. 행정

면적은 1,183,000km²[4] 로 중국 국토면적의 약 12%를 차지한다. 행정구역은 시린궈러멍, 싱안멍, 아라산멍, 등 3개의 멍(盟)과 후허하오터를 비롯하여 바오터우, 우하이, 츠펑, 퉁랴오, 후룬베이얼, 오르도스, 우란차부, 바옌나오얼 등 9개 지급시(地級市), 11개 현급시(縣級市), 17개 현(縣), 49개 기(旗), 3개 자치기(自治旗)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3분의 1 정도가 대외적으로 개방되고 있으며, 얼롄하오터와 만저우리 등에 국경사무소가 있다. 개혁개방 정책을 전개한 뒤로 전세계 60여개 국가 및 지역과 무역거래를 하고 자매결연을 맺었다.

5. 인구

인구 구성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을 비롯하여 몽골족[5], 다우르족[6], 에벤키족, 오로촌족, 시버족, 회족, 러시아족, 조선족 등 49개 민족이 있다. 소수민족의 비중은 자치구 전체 인구의 약 20%이며, 몽골족은 약 400만 명에 이른다.

내몽골 자체가 인구가 워낙 적어서 대부분의 주민이 원나라와 북원, 차하르 통치시기에 이주한 한족으로 채워졌다. 오히려 몽골족은 원 지배기에 대거 중원으로 이주해 버렸고, 오늘날 베이징산시 성한족들에게 진하게 몽골족의 피가 섞였다. 인구의 80%가 한족이라는 현실 때문에 티베트, 위구르와 달리 분리독립 움직임이 매우 미약하다. 이것을 후원할 수 있는 나라인 몽골의 힘이 티베트의 지원국인 인도와 천양지차인 것도 크다.

현재 중국 땅인 내몽골의 인구는 몽골보다도 훨씬 많다. 중국 전체의 몽골족 수는 약 500만 남짓, 몽골의 국민은 300만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는 내몽골이 더 앞서서 몽골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러 오는 판이다.

내몽골에서 몽골어는 몽골족들의 모어(母語)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내몽골 주민들의 모어는 아니다. 몽골족들도 중국어를 (제2언어로서) 무리없이 구사할 수 있는 반면에 몽골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한족들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게르에 진짜로 살면서 유목하는 유목민이 거의 절반 정도 되는 몽골과 달리 내몽골의 게르는 대부분 관광지이다. 실제 대다수의 내몽골인들은 큰 도시에서 정착 생활을 한다. 몽골인들은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유목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이 다수이고 별장용으로 게르를 가지거나 돈이 없어서 게르에 사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오히려 내몽골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방송국 PD가 게르의 생활을 체험하는 내용의 "도시아들"이란 예능이 내몽골 TV의 인기 프로그램이 될 정도다. 이는 내몽골의 기후변화와 중국-몽골-러시아의 확실한 국경선 설정 등으로 유목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내몽골에 여행 와서 접할 만한 게르 등 유목민 거주지는 한국으로 치면 민속촌이나 하회마을 비슷한 곳이라 보면 된다.

6. 행정구역

중국어/몽골어
  • 맹/아이막(盟/ᠠᠢᠢᠮᠠᠭ)

7. 문화

복장은 도포에 장화를 신고 허리띠를 즐겨 찬다. 유목민으로 쇠고기와 양고기를 즐겨 먹으며, 분해와 조립이 간편한 천막 모양의 이동식 주택 게르에서 산다. 오늘날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많으며 아파트나 현대식 가옥, 또는 게르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고대 몽골족은 탱그리신앙을 신봉하였으나, 원나라 이후 티베트 불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해마다 7월 중순에는 몽골인이 모여있는 곳에서 나담(Наадам) 축제를 열어 물품을 교환하고 기마·사격·씨름 경기 등을 거행한다. 외몽골에서는 국가적인 행사로 진행되며 타국에 거주하는 몽골인들도 이 축제를 즐긴다.

문화대혁명 시기 내몽골 지역 유목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늑대 토템이 있고, 이를 원작으로 한 2015년 영화 "울프 토템"이 있다. 감독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로 유명한 장 자크 아노.

8. 인물

  • 여포
  • 명안도(한족) : 18세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9. 기타

그 외에도 황사나 미세먼지 근원을 이야기할 때 중국의 지명으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고비 사막의 모랫바람이 공업단지 먼지를 먹다보니...

미분양 부동산대륙의 기상급으로 지나치게 많아서 이렇게 유령도시화 되어버린 곳이 있다. 어얼둬쓰시 참고.

10. 사건

11. 관련 문서



[1] 자동차 번호판 등에서는 蒙을 쓴다.[2] 전통 몽골 문자로는 코크코타(ᠬᠥᠬᠡᠬᠣᠲᠠ)라고 쓴다.[3] 여기서 몽골은 외몽골 즉, 독립국 몽골을 의미함.[4] 몽골국(1,566,000km²)보다 작다.[5] 여기서 몽골족은 독립국 몽골의 국민이 아니라 자치구내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몽골족을 의미한다.[6] 거란의 후예 민족으로 자기들 조상을 요나라 태조로 본다.[7] 비록 NBA에 있었던 시간은 3시즌 뿐이고, 그 기간동안 팀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아니지만, 2002-03 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으로 무려 NBA 우승을 했다.[8] 마두금은 크게 몽골식과 중국식(내몽골식)으로 구분된다. 치 보락은 중국식 마두금 연주자로써 중국 내 국가일급연주자(国家一级演奏家)이다.[9] 다만 내몽골 출신인 것으로 보아 직계가 아닌 방계로 예상된다. 주치의 직계는 동유럽으로 넘어가 킵차크 칸국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