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라틴어: Gaius Septimius Severus Aper | |
전체이름 |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Gaius Septimius Severus Aper |
생몰년도 | 서기 175년(추정)~ 서기 211년(또는 서기 212년) |
지위 | 원로원 의원, 집정관, 로마 황족 |
왕조 | 세베루스 왕조 |
종교 | 로마 다신교 |
부모 |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아페르(父) |
친척 |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203년 집정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셉티미아 옥타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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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의 황족, 원로원 의원, 집정관. 세베루스 왕조를 창건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오촌조카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는 세베루스 아페르, 아페르로 나오는, 방계황족이다.아버지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아페르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원로원 의원으로 첫 경력을 시작했을 때부터 묵묵히 후원한 친척이자 열혈 지지자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세베루스 황제의 도움, 지지 속에 황족 반열에 오르고 207년 정규 집정관에 올랐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생전부터 세베루스 왕조의 존속을 위해 헌신했다. 허나 서기 211년 12월 말 또는 212년 1월 초 카라칼라가 게타를 존속살해할 당시, 부친과 함께 침묵을 지키며 카라칼라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카라칼라가 보낸 병사들 손에 부모와 함께 살해됐다.
2. 생애
고향은 로마인들이 푸닉 지방이라고 부른, 오늘날의 북아프리카 지중해 해안 중 동안에 속한 트리폴리타니아 속주의 렙티스 마그나다.153년 7월 보결 집정관에 오른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아페르의 손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아버지는 셉티미우스 게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형제의 숙부인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아페르.
일찍이 이탈리아로 건너가 귀족 반열에 오른 뒤에도 조카들을 후원한 아버지를 둔 만큼, 세베루스 왕조가 창건된 직후부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격려와 후원 속에 원로원에 입성했다.
서기 202년, 고향 렙티스 마그나를 방문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수행원, 황실 남자 황족 자격으로, 황제와 함께 트리폴리타니아 속주를 둘러 봤다.
최근 발굴된 서기 207년 군사 경력 비문에 따르면, 원로원 의원으로 있으면서 군 경력도 일정 이상 훌륭히 쌓았던 것이 확인된다.
세베루스 황제의 몇 안 되는 친척이며, 세베루스가 황제 자리에 오를 때까지 지지해준 집안 사람인 만큼, 세베루스 황제는 아페르를 각별히 아끼고 힘을 실어줬다. 이런 배경 때문에 카라칼라, 게타 형제가 공동 집정관에 취임하기 1년 전인 서기 207년, 세베루스 황제의 직접 추천과 후원 속에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를 동료 삼아 정규 집정관에 올랐다. 세베루스 황제는 아페르의 위상을 높여주고자, 자신의 뜻을 강하게 관철시켰다고 한다.
211년 12월 또는 212년 1월 말, 카라칼라 황제가 공동황제 게타를 살해했다. 이때 카라칼라는 원로원을 소집해, 자신이 게타를 직접 죽인 이유를 밝히면서 정당성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파피니아누스, 방계 황족인 아페르 부자 등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라고 했는데, 얼마 뒤 카라칼라는 아페르 부자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 단정지은 뒤 프라이토리아니 병사들에게 아페르 부자를 모조리 죽이라고 지시했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아페르는 이 명령이 내려진 직후, 자기 변호도 하지 못한 채 자택으로 쳐들어온 병사들 손에 잔혹히 살해됐다고 한다. 이때의 일에 대해, 아페르의 부모는 노구의 몸으로 옥상까지 도망쳤다가 스스로 뛰어내려 목이 부러져 죽었고 , 아페르 역시 아내와 동반 자살 또는 살해됐다고 한다. 그가 살해될 당시 나이는 많아도 고작 37살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