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0><colcolor=#fff> 스티브 바이 Steve Va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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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스티븐 시로 바이 Steven Siro Vai |
| 출생 | 1960년 6월 6일 ([age(1960-06-06)]세) |
| 미국 뉴욕주 나소 카운티 칼 플레이스 | |
| 국적 | |
| 직업 | 기타리스트 |
| 활동 | 1978년 ~ 현재 |
| 학력 | 버클리 음악대학 |
| 링크 | |
1. 개요
미국의 록 음악 기타리스트. 본격 기타한테 말을 시키는 남자.[1] 혹은 기타에게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남자. 한때 유명했던 일본의 '지옥의 메커니컬 기타 트레이닝' 시리즈에서는 대놓고 변태라고 부를정도. 혁신적인 기타 플레이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한 록 기타계 최고의 거장 중 하나이다.2. 생애
2.1. 유년 시절
스티브 바이는 1960년 6월 6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그는 6살 때 오르간을 배워 기초 음악 이론을 익혀 갔다. 그러다가 9세 때 우드스톡 라이브 영화에 나오는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연주로부터 강한 충격을 받은 것과, 12살 때 레드 제플린의 공연을 접한 걸 계기로 일렉트릭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이 무렵 훗날 인스트루멘탈 록의 거장으로 올라서게 되는 기타리스트 조 새트리아니에게 기타를 배웠다.[2] 조 새트리아니가 스티브 바이에게 해준 첫 레슨은 무려 한 주 안에 지판을 완벽하게 암기하기 였고, 이 내용을 처음 들은 스티브는 속으로 그걸 어떻게 한 주 안에 해요?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지간히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쳤는지 혼도 많이 났었다는데, shit이라는 욕설까지 들었을 정도라고.관련 인터뷰. 즉 지금에야 상상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천하의 스티브 바이도 레슨 내용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욕을 먹을 정도로 기타를 못 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티브 바이는 1978년 9월에 보스턴의 명문 음대인 버클리 음악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다.[3] 초창기에는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브라이언 메이, 앨런 홀즈워스, 제프 벡 등에게 영향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 학교에 다니면서 프랭크 자파의 난곡 중 하나인 <Black Page>를 완전 채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그 실력으로 이후 '기타 플레이어(Guitar Player)'지의 채보를 맡기도 했다.
2.2. 음악 활동
1980년 6월,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게 되었고 1981년에는 『Tinsel Town Rebellion』 앨범 제작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에서 『Them Of Us』 등 몇 장의 진귀한 앨범 제작을 함께하였다. 1984년에는 잉베이 말름스틴의 후임으로 알카트라즈에 가입해 이들의 3번째 앨범 『Disturbing The Peace』를 공동으로 제작했다. 스티브 바이는 이 앨범 수록곡 전부를 어레인지하여 스스로의 음악적 감각을 입증하였고, 태핑과 아밍 기술에 의한 기상천외한 주법으로 잉베이 이후의 알카트라즈 사운드 공백을 메웠다. 일본 공연에서 그는 인트로부터 오버네크의 태핑솔로를 연주하여 잉베이의 애드립을 완전 카피한 뒤, 그것을 태핑으로 여유있게 연주하기도 했다.[4]그 뒤 LA의 한 언더그라운드 바에서 데이비드 리 로스를 만나 서로 뜻이 통하자 스티브는 그의 그룹에 가입하게 된다. 데이빗 리 로스 밴드에서 스티브는 『Eat' Em And Smile』, 『Skyscraper』 등 2장의 앨범에 참여, 그의 눈부신 기타 플레이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이 밴드에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화이트스네이크에 가입하여 1989년에는 『Slip Of The Tongue』 앨범 녹음에 참여한다.
2.3. 솔로 활동
프랭크 자파 그룹에서 탈퇴한 스티브 바이는 솔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독자적인 스튜디오를 만든다. 이렇게 해서 1984년에 제작된 그의 첫 솔로 앨범이 『Flex-Able』이다. 여기에는 <The Attitude Song>, <Call It Sleep> 같은 획기적인 연주곡들이 수록되어 1980년대 록 기타 연주의 새 장을 여는데 일조했다.1990년 발표한 두번째 앨범 'Passion and Warfare'는 당시 록 기타계에 잉베이 말름스틴의 'Rising Force' 이후 최대의 충격을 준 기타 솔로 앨범으로, 현재까지도 그의 최고 앨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아티스트와의 협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사운드트랙, 컴필레이션 앨범 등 매우 활발한 커리어를 쌓았으며, 특히 1996년 시작된 G3 콘서트 투어의 고정 멤버로 활동하면서 국내에도 그를 동경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
또 2011년에는 버클리 음악대학의 온라인 기타 강좌를 개설했는데, 최대 규모의 온라인 기타 강좌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3. 음악성
3.1. 연주 스타일
| For The Love Of God | Tender Surrender[5] |
| The Attitude Song | Teeth of the Hydra[6] |
스티브의 곡들이 몽환적이고 이국적인 이유는 모드(선법)에 있다. 스티브가 주로 사용하는 모드는 리디안 모드, 도리안 모드인데, 모드 스케일 자체가 재즈적 어프로치에 기반하였기에 전통적인 서양 음악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으며, 지금 기준에서도 대단히 이국적이고 특이하게 들리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모드 스케일을 많이 사용하는 스티브 바이의 곡은 그만큼 매우 독창적인 멜로디 라인과 얼핏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코드 진행을 지니게 된 것. 테크닉적인 부분에서도 연주 감각이 대단히 개성적인 편이기에 듣고 커버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파악하기 힘들고, 강의나 타브 악보를 보고 치자니 리듬과 타이밍이 기묘해서 손이 꼬이고, 파악 다 했다고 하고 막상 쳐보면 그 특유의 느낌이 전혀 없는 등 끝판왕급의 난이도로 기타쟁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미 데뷔 당시부터 이러한 독특한 스타일로 화제가 되었으나, 나이를 제법 먹은 지금도 활발한 대외 활동을 통해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무서울 지경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과 천재적인 센스를 보여주는 일화로 60이 넘은 나이에 상대적으로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씬의 젊은 피 폴리피아가 2022년에 공개한 신곡 Ego Death에서 기타 피쳐링을 하여 극찬을 받은 일화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3분 14초부터 이것도 폴리피아가 헌정해서 곡에 끼워팔기하듯 넣은 것이 아닌, 곡의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피쳐링을 맡긴 것이다. 아무리 기타가 나이를 먹고 능숙해지면 더 잘친다고는 하지만, 무려 1980년대에 데뷔한 기타리스트가 트렌디하다 못해 앞서가는 음악성으로 잘 알려진 폴리피아에 피쳐링을 해 극찬을 받는 건 정말로 비범한 것이다. 동시기에 데뷔한 수많은 기타 비르투오소들이 1980년대, 90년대에 확립한 스스로의 스타일에서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천년 만년 그 스타일로만 울궈먹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이 사람은 아직도 젊은 신인들 사이에서도 특유의 캐릭터성을 과시하며 동시에 극찬까지 받았으니 정말로 대단한 거라 볼 수 있다.
한편 비상식적인 멜로디와 코드 진행은 동시대의 슈퍼 기타리스트인 잉베이 말름스틴의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잉베이에게 '이놈 청각장애인 것 같다'라며 까이기도 했다. 뭐 나중에 G3 공연도 같이 하면서 친한 사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인터뷰에서 스티브 바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스티브 바이더러 "그놈의 아이바네즈와 험버커 픽업 좀 버리면 참 좋을 텐데."같은 말은 곧 죽어도 꼭 한다. 잉베이가 정말 싫어하는게 플로이드 로즈와 하이 게인 험버커 픽업인데 하필 스티브가 그 두 개를 다 쓰니...[9]
여하튼 그는 자기 스타일이 아니면 까고 보는 잉베이 말름스틴과 달리 다른 유형의 음악을 매우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기존 록/메탈 팬들에게 까이기 일쑤인 모던 헤비니스 음악에도 편견이 없어서 Korn의 멤버들과 잼을 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3코드 펑크 록 기타리스트인 그린 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을 "팝적인 코드 진행 감각이 엄청나다." 라며 극찬하기도 했다.[10]또한 나인 인치 네일스 같은 밴드 또한 '내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어봐서 아는데, 이렇게 만들기 진짜 어렵다'라면서 높이 평가하기도. 해당영상 위에서 줄줄이 언급된 그의 연주 개성은 어쩌면 이렇게 얼핏 본인의 장르, 바운더리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부분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포용력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외로 속주 기타리스트라 지칭되는 경우는 적은 편이지만, 그의 속주 실력은 록 음악 전체를 통틀어도 견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수준이다. 화이트스네이크 재직 시절 발매된 Slip of the Tongue 앨범 수록곡들을 들어보면 중간중간에 어마무시한 속주로 내달리는걸 들어볼 수 있으며, 당장 위 영상들 전반에서도 절륜한 레가토 및 얼터네이트 피킹 실력을 볼 수 있다.
4. 사용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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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스티브 바이/사용 장비#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스티브 바이/사용 장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디스코그래피
| 스티브 바이의 솔로앨범만 등재합니다. (밴드 소속으로 활동한 앨범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
5.1. 정규 앨범
Flex-Able (1984)1번 트랙
1. Little Green Men
2. Viv Woman
3. Lovers Are Crazy
4. Salamanders in the Sun
5. The Boy/Girl Song
2번 트랙
1. The Attitude Song
2. Call It Sleep
3. Junkie
4. Bill's Private Parts
5. Next Stop Earth
6. There's Something Dead in Here
Passion and Warfare (1990)
1. Liberty
2. Erotic Nightmares
3. The Animals
4. Answers
5. The Riddle
6. Ballerina 12/24
7. For the Love of God
명불허전 스티브 바이의 최고 명곡이다. 바이 본인을 제외하더라도 기타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명곡. 평소 스티브 바이는 exotic하고 unique한 사운드를 중요시하는데 그런 성향이 이곡에 그대로 녹아있다. Sitar로 녹음된 백킹과 바이가 즐겨 쓰는 lydian 스케일이 바로 그 열쇠이다. 리프는 이미 모든 락키드들이 쳐봤을 정도로 유명하고 중간에 나오는 미친 레가토와 스윕피킹은 지금 들어봐도 정말 기타가 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노래의 제목 그대로 이곡은 종교에 관한 것인데, 스티브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어떤일도 마다하지않는 신도들의 굳은 의지를 위해 만들었다고. 이런 종교적 표현은 제목에서도 있지만 가사에서도 나오는데 스튜디오 버전에는 "Walking the fine line between Pagan and Christian"과 리마스터 버젼에는 "We may be human, but we're stil animals"라는 아웃트로 가사가 들어가있다. 스티브 바이는 이 곡을 처음 작곡할 때 이상하고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늦은 밤 스튜디오에 어쿠스틱 기타가 하나 있었고, 무언가가 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녹음을 시작했고, 지금의 시타르 배킹트랙을 완성하였다. 더나아가 본인의 목소리로 멜로디 라인을 잡고 그렇게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8. The Audience Is Listening9. I Would Love To
10. Blue Powder
11. Greasy Kid's Stuff
12. Alien Water Kiss
13. Sisters
14. Love Secrets
Sex & Religion (1993)
1. An Earth Dweller's Return
2. Here & Now
3. In My Dreams With You
4. Still My Bleeding Heart
5. Sex & Religion
6. Dirty Black Hole
7. Touching Tongues
8. State of Grace
9. Survive
10. Pig
11. The Road to Mt. Calvary
12. Down Deep into the Pain
13.Rescue Me or Bury Me
Fire Garden (1996)
1번 트랙
1. There's a Fire in the House
2. The Crying Machine
3. Dyin' Day
4. Whookam
5. Blowfish
6. The Mysterious Murder of Christian Tiera's Lover
7. Hand on Heart
8. Bangkok
9. Fire Garden Suite
2번 트랙
1. Deepness
2. Little Alligator
3. All About Eve
4. Aching Hunger
5. Brother
6. Damn You
7. When I Was a Little Boy
8. Genocide
9. Warm Regards
Flex-Able Leftovers (1998)
1. #?@! Yourself
2. So Happy
3. Bledsoe Blvd
4. Natural Born Boy
5. Details at 10
6. Massacre
7. Burnin' Down the Mountain
8. Little Pieces of Seaweed
9. San Sebastian
10. The Beast of Love
11. You Didn't Break it
12. The X-Equilibrium Dance
13. Chronic Insomnia
The Ultra Zone (1999)
Real Illusions: Reflections (2005)
The Story of Light (2012)
Modern Primitive (2016)
Inviolate (2022)
6. 사건사고 및 논란
- 2013년 7월 28일,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공연 참가 차 내한할 때 발생한 일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공연 다음 날인 29일 대한항공 을 이용하여 일본 나고야로 출국할 때, 대한항공이 기타의 기내 반입을 거절하여 넥 부분이 파손됐다고 본인 SNS에 사진을 올려 대한항공이 국내외 팬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게 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올린 사진의 EXIF 기록에 기재된 일시와 좌표가 7월 28일 대한민국 안산으로 확인되었으며, 공항 활주로에서 비를 맞으며 기타가 탑재되는 사진 속 항공기 로고가 한국으로 입국할 때 이용한 중국의 항공사로 판정되는 등 여러 정황 상 한국에 입국 전 기타가 이미 파손된 것으로 추정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본인도 잘못된 내용을 올렸다는 걸 인지했는지 대한항공에 대해 사과글을 업로드하였다.관련 기사
7. 여담
- 버클리 음악대학 재학 시절 만난 여자친구 피아 마이오코[11][12]와 결혼하여 2명의 아들을 두었다. 자신의 새로운 시그니쳐 기타 모델에 아내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13]
- 젊은 시절에는 상당한 미남이었다.리즈시절 현재 굉장히 멋있게 늙어서 미중년 축에 속한다.
- 처음 밴드 활동을 시작했던 프랭크 자파 밴드와[14] 어린 시절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젊은 시절부터 대마초를 포함한 마약에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
- 스티브 바이가 2018년도에 그의 절친 조 새트리아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 있는데, 나름의
변태적인센스가 돋보인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친밀한 사이인지 알 수 있을 정도.
- 1986년작 영화 'Crossroads'에서 악의 기타리스트로 출연해 랄프 마치오[15]와 영혼을 건[16] 기타 배틀을 펼치기도 했다.[17] 삑사리 내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내고 싶어도 못 내서 일부러 삑사리 내는 연습을 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상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연주를 못하는 연기를 저렇게나 잘 했으니 오스카 상을 받아야 될 거 같다."라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이 영상에서 스티브 바이가 사용한 붉은색 잭슨 기타는 현재 스티브 바이가 소유하고 있지 않다. 본인 말로는 이 기타의 행방은 기억이 잘 안 난다는데, 추정하기로는 랄프 마치오나 해당 영화의 감독, 스태프 중 누군가에게 준 것 같다고.
- 만화 공태랑 나가신다! (밴드편 단행본 36권-44권)에 스티브 바이를 오마주한 스티브 파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미국에서 공태랑 부모님과 인연이 있어서 공태랑 집에서 신세를 지게되는 인물. 대부분 기타 리프로 말을 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공태랑이 밴드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일조한 인물. 그리고 공태랑의 친구 음미의 우상이기도 하다.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악역인 카이저가 동료들을 상처입히고 협박하자 일부러 밴드를 떠나 은둔하였지만 공태랑과 음미와의 만남으로 다시금 밴드를 하려고 마음먹고, 이와중에 카이저가 자객을 보내고, 일본으로 오면서 밴드편이 진행된다. 천광사나 마유미 그리고 여월 정도 말고는 친구로서 인정하지 않는 공태랑이 유일하게 친구로서 인정하게 되는 두인물이 스티브 파이와 음미다. 그리고 스티브 파이는 공태랑 아버지의 놀랄만한 음악적 재능? 일찍이 겪어봐서 공태랑의 리듬감이나 연주 실력에 놀라다가도 바로 수긍했다. 미국에서 옆집 도장에 있던 공태랑 아버지가 잠깐 놀러와서 스티브 파이의 악기를 연주했는데 놀랄만한 실력을 보여 스티브 파이는 충.공.깽.
- 취미가 양봉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온 뒤 시작했다는데 작게 시작한 것이 규모가 커졌다고.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꿀을 수확하는 과정에 끌어들였다고 한다. 이렇게 꿀을 수확 및 판매함으로서 나오는 수익금은 스티브 바이와 리처드 파이크(Richard Pike)가 설립한 “Make A Noise Foundation”이라는 혼자서는 음악을 하기 힘든 어린 뮤지션들을 도와주는 재단의 기금이 된다.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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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일로 2 리마스터인 애니버서리에서도 몇몇 OST를 다시 피처링했다.
- 헬스키친 시즌15 8화 초반에 등장한다.관련 글
- 2017년 4월에 내한이 확정되었다.(제네레이션 엑스) 그리고 2019년 11월에 제네레이션엑스로 다시 내한했다.
- 2019년에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썼다. 링크
[1] Passion And Warfare 앨범의 'The Audience Is Listening'에서 특히 잘 보여준다.[2] 조 새트리아니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떤 중학생 꼬마가 기타를 들고 그의 집에 불쑥 찾아와서 '당신이 학교에서 연주하는 걸 봤어요. 제게 기타를 가르쳐 주세요.'고 하길래 "못생긴 꼬마 녀석, 일단 거기 앉아봐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꼬마가 스티브 바이였다고.[3]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에 따르면 자신의 형 마이크 메스니가 당시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는데 스티브 바이를 가르쳤다고 한다. 마이크는 스티브 바이가 이미 버클리 재학 시절 도를 넘어선 재능(Off-the-scale talented)을 가지고 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팻 메스니 본인도 스티브 바이를 대단한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라고 극찬했다.[4] 사실 이 부분은 약간의 논란이 있는데, 스티브 바이가 잉베이 말름스틴 수준의 피킹을 구사하지 못 해 자신의 장기인 태핑으로 연주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물론 잉베이 역시 바이와 같은 트리키한 태핑 연주는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실력은 엇비슷하지만 스타일 차이로 인해 주법을 바꿨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5] 해당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베이비 사이즈 기타가 만들어지는 과정", "내가 외출하면 혼자 남은 기타가 보는 영상", "일본에서는 이 영상을 보면 손가락이 블러 처리된다" 등등 죄다 섹드립이다. 확실히 연주 중 짓는 표정, 몸짓이 절대 범상치는 않다. 참고로 이 영상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저 기타가 적어도 18살 이상이길 바란다." 이다. 다만 현재는 타임라인을 성관계에 비유한 댓글에 밀린 상태이다.[6] 저 무시무시한 트리플넥 기타는 아이바네즈에서 그를 위해 특별 제작해준 악기이다. 최상단에는 피에조 픽업을 내장한 어쿠스틱 기타를, 중간에는 일렉트릭 기타를, 최하단에는 베이스가 달려있는 형태로,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저 세 개를 전부 사용하여 곡을 연주한다는 말도 안되는 퍼포먼스를 라이브로 보여준다. 그리고 잘 안보이지만 3개의 기타 브릿지 밑에 13현의 줄이 달린 하프가 또 달려있다. 거기에 기타의 옥타브를 변경해주는 노브 등 특수기능 노브도 여러 개 붙어있다.[7] 매우 과격한 아밍 주법을 구사하는데, 거의 암을 때리다시피 한다. 라이브에선 그냥 암만 잡고 기타를 흔들어 아밍을 하거나 암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는 등(...)의 기행도 벌인다. 덕분에 스티브 바이와의 엔도스먼트를 맺은 아이바네즈는 격렬한 아밍 주법에도 튜닝이 틀어지지 않는 브릿지를 만드는 것에 도가 텄을 정도다. 실제로 아이바네즈의 대부분 기타들은 아밍 주법을 많이 써도 튜닝이 거의 틀어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안정성이 스티브 바이 시그니처를 만들다 생긴 노하우 덕분이라 말하기도 하는 수준.[8] 양손 모두 태핑이 자유자재라 어깨 관절이 빠져서 연주가 힘들어진 상태에서 기브스를 하고 한 손으로 앨범 작업을 했다(...)[9] 그러나 잉베이는 플로이드 로즈와 험버커 픽업을 싫어할 뿐이지 스티브 바이 자체는 아주 높게 평가한다. 자기만의 스타일과 아이텐티티를 가지고 있고 항상 최고의 연주만을 해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잉베이가 높이 평가하는 아주 드문 케이스.[10] 정확히 얘기하면 "(빌리 조 암스트롱이 치는 코드는) 하나하나가 다 활기찬 느낌을 주는데,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느낌을 준다."고 표현하며 그렇게 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11] 여성 메탈 밴드 빅센의 베이시스트 출신이다.[12]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등장한 적 있다. 1:14:50부터[13] 아이바네즈 PIA 시리즈[14] 프랭크 자파는 뮤지션들의 마약 사용을 단호하게 반대했고, 자기 밴드 소속 기타리스트가 마약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가차없이 해고하기까지 했다.[15] '가라테 키드'(국내명 베스트 키드)로 당시 유명했던 하이틴 스타. 놀랍게도 저 영화 촬영 당시 스티브 바이와는 딱 한 살 차이였다.[16]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영혼을 담보로 하고 펼치는 대결이었다.[17] 영화 내에 나오는 두 사람의 연주는 대부분 스티브 바이가 녹음한 것들인데, 랄프 마치오가 보틀넥 주법으로 연주하는 부분만 슬라이드 기타의 거장 Ry Cooder의 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