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탑 |
미합중국 해군이 운용한 함선용 대구경 함포이자 주포로 아이오와급 전함 6척과 몬태나급 전함 5척에서 운용될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아이오와급 4척만 취역함에 따라 해당 함선들에서만 운용되었다.[1]
2. 제원
2.1. 함포
시험 사격을 위해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16인치 함포 엄청난 무게로 인해 운반 차량들이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함포 이름 | 16"/50 (40.6cm) Mark 7 |
사용 함선 | 아이오와급 전함, |
설계 년도 | 1939년 |
도입 년도 | 1943년 |
함포 무게 | 121,519kg(포미 포함) 108,479kg(포미 제외) |
함포 길이 | 20.726m (816인치) |
튜브 길이[3] | 20.320m (800인치)[4] |
강선 길이 | 17.344m (682.86인치) |
강선 깊이 | 3.8mm (0.150인치) |
강선 회전 | Uniform RH 1 in 25, 55 Lands and Grooves (55조 우선, 1회 회전당 25구경장 전진.[5](1,015 cm))[6] |
연사 속도 | 분당 2발 |
CEP | 1987년 기준 140m (150 yardm) |
자료출처 | NavWeaps 16"/50 Mark.7 문서 Gun Characteristics 항목 |
2.2. 포탑
아이오와급의 16인치 주포탑 구조 |
1986년 훈련중 아이오와 2번 주포탑 중앙 주포에 포탄을 장전하는 모습 |
명칭 | Three-Gun Turret[7] |
중량 | 1,701 - 1,708 미국식 톤/1,728.4 - 1,735.4 미터톤(아이오와급) |
포신 부앙각도 | 아이오와급 1, 3번 주포탑: -2°- +45° 2번 주포탑: 0° - +45° |
포탑 선회각도 | 1950년대까지, 개장전: ±150° 개장후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1번 ±139° 2번 ±126° 3번 ±128°씩 |
포탑 선회속도 | 초당 4° |
주포 구동속도 | 초당 12° |
장전각도 | +5°고정각도 장전 |
주퇴복좌거리 | 119cm (47인치) |
발사방식 | 일제사격, 개별사격 모두 가능, 각 사격방식 전용 방아쇠 사용 |
자료출처 | NavWeaps 16"/50 Mark.7 문서 Mount/Turret Data 항목 |
2.3. 포탄
16인치 철갑탄 구조 왼쪽부터 포탄 본체, 탄두보호용 피모, 유선형 캡까지 조립완료한 포탄 완성본 |
16인치 함포 훈련 동영상 |
탄종 | 명칭 | 중량 | 길이 | 내부작약 | 도입 |
철갑탄 | AP Mark 8 Mods 0 to 8 | 1,225kg | 182.9cm | Explosive D 18.55kg | 2차대전 |
고폭탄 | HC Mark 13 Mods 0 to 6 | 862kg | 162.6cm | Explosive D 69.67kg | 2차대전 |
고폭탄 | HC Mark 14 Mod 0 | 862kg | 162.6cm | Explosive D 69.67kg | 2차대전 |
훈련탄 | Target Mark 9 Mods 1 & 2 | 1,225kg | 182.9cm | 훈련용 염료 연기발생용 작약 | 2차대전 |
훈련탄 | Target Mark 10 Mod 0 | 1,225kg | 182.9cm | 훈련용 염료 연기발생용 작약 | 2차대전 |
훈련탄 | Target Mark 18 | 1,225kg | 182.9cm | 훈련용 염료 연기발생용 작약 | 2차대전 |
훈련탄 | Target Mark 15 | 861.8kg | 162.6cm | 훈련용 염료 연기발생용 작약 | 2차대전 |
훈련탄 | Target Mark 16 | 861.8kg | 162.6cm | 훈련용 염료 연기발생용 작약 | 2차대전 |
핵포탄 | Nuclear Mark 23 | 862kg | 162.6cm | W23 핵탄두 15 - 20킬로톤 | 1950년대 |
집속탄 | HE Mark 19 | 852.8kg | 161.5cm | M43A1 자탄 400개 | 1967년 - 1969년 |
고폭탄 | HE-CVT Mark 143 | 862kg | 162.6cm | Explosive D 69.67kg | 1980년대 - 1990년대 |
집속탄 | ICM Mark 144 | 852.8kg | 161.5cm | M43A1 자탄 400개 | 1980년대 - 1990년대 |
고폭탄 | HE-ET/PT Mark 145 | 862kg | 162.6cm | Explosive D 69.67kg | 1980년대 - 1990년대 |
집속탄 | Anti-Personnel ICM Mark 146 | 862kg | 162.6cm | M42, M46, M77 자탄 666개 | 1980년대 - 1990년대 |
고폭탄 | Improved HC Mark 147(?) | 1,015kg | 182.9cm | Composition A-3 82.1kg | 1980년대 - 1990년대 |
컨테이너탄 | HE-ER Mark 148 with Sabot | 590kg(탄두) 454kg(새보) | 182.9cm | M46 자탄 300개 | 1980년대 - 1990년대 |
포구초속 | 철갑탄 762m/s 고폭탄 820m/s Improved HC Mark 147 861m/s HE-ER Mark 148 1,097m/s |
포신수명 | 2차대전 290발 6.25 전쟁 350발 1980년대 1,500발 |
자료출처 | NavWeaps 16"/50 Mark.7 문서 Ammunition 항목 |
3. 성능
기본적으로 초중량탄 채용으로 인해 철갑탄은 17인치급 능력을 발휘하였고 고폭탄도 매우 쓸만하여 2차대전중에 막강한 위력을 보였다.그러나 전후에 오랜 기간동안 아이오와급 전함을 재취역과 재퇴역을 반복하면서 사용하다보니 포탄과 장약을 예상했던 기간보다 오래 보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재생산 문제가 터졌다.
16인치 주포탄과 장약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도 공용하므로 전쟁중과 전쟁 끝난 직후의 재고량이 많아서 당장 단기간의 전투에는 지장이 없었다. 한참 후인 1981년에 해군탄약저장시설을 점검한 결과 16인치 주포탄은 고폭탄 15,500발, 철갑탄 3,200발, 연습탄 2,300발이 있었다. 일단 긴급대처분이 있고 신규 포탄도 개발 및 생산준비를 했으므로 포탄쪽은 큰 문제가 없었다.
발사용 장약의 경우에는 기존의 재고량도 있고, 조악하게 말하자면 화약뭉치를 천자루에 담아서 묶은 형태라[8] 포탄과 포신과는 달리 현대에도 제조가 가능하다. 그러나 장약은 형태와 포장 특성상 장기간 보관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전함 아이오와 2번 주포탑 폭발사고의 원인중 하나로 낡고 변질된 장약을 써서 유폭사고가 발생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장약이더라도 기본적으로 성능이 제멋대로가 돼서 포탄을 밀어주는 압력이 불균등해지므로 1984년에 뉴저지가 지상지원포격을 했을 때 포탄이 목표가 아닌 주변 지역에 흩뿌려지는 현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때문에 포탄 발사용 장약은 재생산되었다.
3.1. 철갑탄
Mark 7 16인치(406mm) 50구경장 함포는 콜로라도급 전함이 사용하는 16인치 45구경장 Mark 5에서 운용중인 기존의 철갑탄인 1,016kg짜리 Mk.5 철갑탄을 운용할 예정이었으나 아이오와급 전함이 진수되기 전 1,224.7kg짜리 Mk.8 초중량탄을 운용할 수 있도록 양탄장치 등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포신 구경장이 45구경장에서 50구경장으로 늘어남에 따라 동일한 초중량탄 철갑탄을 장비한 16인치 45구경장 Mark 6함포보다 관통력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성능이 향상되었다.1 | 포구초속이 증가했으므로 포구초속에 큰 영향을 받는 현측관통력이 상승했다. |
2 | 포구초속이 증가했으므로 동일한 거리를 발포해도 더 낮은 각도로 사격해 동거리의 현측장갑에 대한 낙하각이 높아져 현측관통력이 상승했지만, 포구초속이 증가함으로써 동일한 거리를 사격해도 더 낮은 각도로 사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동거리의 갑판장갑에 대한 낙하각이 낮아져 갑판관통력이 하락했다. 그러나 초중량탄의 중량으로 인해 기본적인 낙각이 매우 높았으므로 Mark 6보다 낙각이 줄어들었다는 소리지 타국의 함포에 비해서는 낙각이 높았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
3 | 포구초속에 비례하는 최대사정거리가 증가했다. 다만 이는 유사한 대구경 함포들과 비교하는 경우이다. 단순히 포구초속으로 사거리가 결정된다면 대체로 포구초속이 더 높은 순양함들이나 구축함들의 사거리가 더 길어야 하겠지만 중소구경 포탄들은 대구경 탄들보다 저중량이라 발사 후 대구경 포탄들보다 더욱 빠르게 속력을 소실한다. |
거리 | 측면장갑 | 갑판장갑 | 충돌속도 | 충돌각도 |
0m | 829mm | 명중불가 | 2,500fps (762mps) | 0 |
4,572m | 747mm | 17mm | 2,280fps (695mps) | 2.5 |
9,144m | 664mm | 43mm | 2,074fps (632mps) | 5.7 |
13,716m | 585mm | 71mm | 1,893fps (577mps) | 9.8 |
18,288m | 509mm | 99mm | 1,740fps (530mps) | 14.9 |
22,860m | 441mm | 131mm | 1,632fps (497mps) | 21.1 |
27,432m | 380mm | 169mm | 1,567fps (478mps) | 28.25 |
32,004m | 329mm | 215mm | 1,555fps (474mps) | 36.0 |
36,576m | 280mm | 286mm | 1,607fps (490mps) | 45.47 |
38,720m | 241mm | 357mm | 1,686fps (514 mps) | 53.25 |
주포의 관통력이 강력하므로 아이오와급의 방어력으로 대응방어는 23,600야드에서 27,400야드까지(21.6~25km) 였고, 야마토급 전함이 원래 장비한 장갑판보다 성능이 더 좋은 미국 B클래스 강철을 동일한 수준으로 두껍게 만들어서 장착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대응방어구간인 18km - 32km 구간을 제외하고 18km이내로 접근하면 측면장갑을 관통하고 32km 이상 떨어지면 갑판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관통력을 보여준다.
주포의 구경과 관통력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주포의 구경이 증가되면 관통력 역시 급증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포탄의 투영면적 증가로 인해 운동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에 탄의 중량증가 혹은 포구 속도의 증가가 동반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관통력이 하락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는 군축조약에서 제한한 주포의 구경인 16인치를 유지하면서 탄의 중량을 늘려 관통력을 향상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함들의 주포구경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탄질량을 증가시키고 포구초속를 유지하기 용이하며 포탄의 파괴력을 결정하는 철갑유탄의 작약량을 늘리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야마토급 전함에 94식 40cm 45구경장 함포의 경우에는 군축조약을 탈퇴한 후에 함포의 구경을 더 늘려서 460mm (18.1인치) 구경의 함포를 만들고 외국에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명칭만 40cm (16인치급)으로 잡은 경우이므로 당연하게도 물리적으로 체급이 2인치나 차이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야마토급 전함의 18.1인치 주포가 아이오와급 전함의 16인치보다 관통력이 높고 18.1인치 철갑탄의 작약량은 33.8kg이며 MK.7의 철갑탄의 작약량은 18.55kg로 화력에서 큰 격차가 생긴다.
여기서 작약량의 부족을 이유로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의 화력을 저평가하는 경우가 잦은데, 작약량이 20kg도 되지 않는 SHS탄을 주력으로 운용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간기의 여러 실험으로 작약량보다 관통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참조 본래 전함의 철갑탄은 적 주력함을 노리는 철갑탄(AP)와 부포로는 상대하기 힘든 순양함 등을 노리는 반철갑탄(SAP)로 이원화되어 있었는데 전간기의 여러 실험으로 주력함 이하의 함선에도 철갑탄이 반철갑탄보다 더욱 위력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반철갑탄은 작약량이 더욱 많았지만 대신 포탄의 외피가 얇아 철갑탄에 비해 생성되는 파편량은 많지만 개별 파편은 크기도 작고 가진 에너지량도 적어 관통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군함 내부로 관통한 철갑탄이 무겁고 큰 파편을 만들어내야 내부 손상이 심해지고 포탄의 작렬화염이 다른 격실로도 흘러가서 연쇄유폭을 일으켜서 치명상을 줄 확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이유로 2차 대전기에 들어서자 반철갑탄은 사라지고 전함의 철갑탄은 일원화된다.
애초에 작약이 적다고 작약량에 비례해 피해량이 줄어들었다면 아이오와급에는 작약이 30kg 넘게 들어간 SHS탄을 운용할 수 있는 18인치 Mk.1 주포가 달렸을 것이다. 2차대전기에 들어서자 미국 전함들뿐 아니라 유럽 전함들에도 작약량보다 관통력을 중시한 주포가 달리게 된다.
따라서 초중량탄의 채용과 장포신 함포의 도입으로 인해 16인치 구경임에도 불구하고 17인치 (432mm)급 성능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물리적인 격차에도 불구하고 스펙상으로 야마토급 전함의 18.1인치 (460mm)와 대결이 일단은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3.2. 고폭탄
16인치 고폭탄 폭발시 크레이터 크기 |
고폭탄의 경우에는 표준형 전함의 마지막인 콜로라도급 전함부터 미국의 신전함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HC Mark 13을 그대로 도입했다. 따라서 철갑탄과 고폭탄의 중량 차이가 많이 나므로 별도의 사격제원을 적용해야 했으나 사격통제장치와 레이더가 우월하므로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일본 제국에서 3식 통상탄으로 주포로 대공사격을 하려 했듯이 미국도 대공 사격용 포탄을 개발하려 한 적이 있다.[9] 물론 미국답게 최첨단 VT신관 탑재 확산탄을 이용했다. 그러나 주포로 VT신관이 담긴 포탄을 쏴서 대공사격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져 취소되었다.
일단 아이오와급 전함의 3연장 주포탑이 +45도까지 포구를 올릴 수 있으므로 +45도 각도로 대공사격을 할 경우에는 4,694m 고도까지 포탄을 도달시킬 수 있을 것으로 실험결과가 나왔으며 해당 시험결과는 VT신관을 탑재한 고폭탄을 고각으로 발사해서 적군의 머리 위에서 작렬시켜서 치명적인 파편세례를 날려주는 데 사격제원 참고용으로 사용했다.
3.3. 다양한 포탄
아이오와급 전함의 운용기간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포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HE Mark 19는 USS 뉴저지(BB-62)가 베트남전에 투입되면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포탄은 집속탄으로 HC Mark 13을 기반으로 한 포탄 내부에 M43A1 "바운싱 베티" 수류탄을 20개씩 20줄로 배열하여 총 400개의 자탄을 탑재한 컨테이너탄이었다. 포탄이 목표에 도달하면 미 육군의 M565 기계식 시한신관을 사용하여 M9 박격포용 추진장약 400g을 작렬시켜서 포탄을 파열시키고 자탄을 외부로 방출하는 구조로 동작한다. 자탄들은 공중폭발을 위해 파편을 상부로 방출하는 방식의 충격신관을 사용한다. 해당 포탄은 전함 뉴저지가 갑자기 퇴역하면서 사용하지 못하고 끝난다.
그 외에도 베트남전 기간에 포격 지원에 나선 뉴저지에 사용하기 위해 LRBA라는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포탄을 사격 실험했다. 280mm 핵 견인포 프로그램에서 남은 수만발의 일반 포탄이 있어서 이를 재활용해서 1968~1969년 경 제작해 실험했는데, 76,670 m[10]의 거리까지 338kg[11]짜리 포탄을 1387 m/s의 속도로 날려보냈다. 다만 여기의 기록은 HARP라는 16인치 50구경장 포신 2개를 이어붙인 포를 이용했다. 그래도 이 물건은 65인치 길이로 아이오와급의 포탄 장전 설비에 들어가서 실제 사격에도 상당한 사거리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뉴저지의 퇴역으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이 외에도 사거리 185km에 탄두 무게 680kg인 로켓 보조 추진탄, 사거리 514km에 탄두 무게 240kg인 "high mass fraction rocket assisted spin stabilized projectile"이라는 이름을 가진 포탄도 개발되었다. 전자는 기존 장전 시스템에서 길이가 20인치 초과했고 후자는 14인치 초과해서 실제 사용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쪽은 전체 길이를 67인치로 줄여도 370km 정도의 사거리는 확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12]
1980년대에 아이오와급 전함이 재취역을 하면서 다시 여러 종류의 포탄들이 개발되었다.
HE-CVT Mark 143은 HC Mark 13 고폭탄에다가 미 육군의 M732 가변시한신관(CVT)을 탑재한 것으로 해안 포격시 상공 6m에서 공중폭발해서 지상에 치명적인 파편을 뿌리는 용도로 개발되었다.
Anti-Personnel Improved Conventional Munition (ICM) Mark 144은 명칭인 대인 개량형 재래식 탄약(ICM) 답게 기존의 HE Mark 19 포탄을 미 육군의 M724 전자시한신관을 탑재한 M565 탄두 신관을 장착한 포탄이다. M724는 0.2초에서 200초 사이에서 10분의 1초 단위로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내부 자탄도 M43A1 대인용 자탄 400개로 교체되었으며 대인 및 장갑이 없는 소프트 목표에 효과적이라고 판단되었다.
HE-ET/PT Mark 145는 HC Mark 13 고폭탄에다가 기존의 Mod 4 신관 및 Mark 423 포인트 폭발(PD) 탄두신관을 갖춘 포탄이다. 1986년에 대잠용 탄두로 전환하는 것을 승인한 개발 프로젝트가 있었고 1989년에는 USS 아이오와(BB-61)에서 실험 목적으로 실제 발사를 하기도 했다.
Anti-Personnel ICM Mark 146은 Anti-Personnel ICM Mark 144와 유사한 포탄이다. 미 육군의 M724 전자시한신관을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자탄이 이중 목적 개량형 재래식 탄약(DPICM) 폭탄인 M42, M46, M77 666개로 구성된다. 자탄들은 모두 동일한 크기의 원통형 본체로 만들어졌으며 충격 관성 신관을 포함한다. 자탄에는 비행 중에 신관을 활성화시키는 리본 안정 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자탄간의 차이점도 있어서 M46 자탄은 내부 벽체가 매끄럽고 몸체가 더 무겁고 두껍다는 점에서 M42 및 M77과 차이가 난다. ICM Mark 146 Mod 2는 Mod 1과 유사했지만 개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나사형 베이스 플러그가 있는 것이 차이다.
그리고 개발중이었다가 취소된 포탄들도 존재한다.
Improved HC Mark 147의 경우에는 신형 고폭탄 개발계획과 연관이 있다. 1980년대에 아이오와급 전함이 재취역을 하면서 새로운 고폭탄을 만들기로 했는데 초중량탄 철갑탄인 AP Mark 8과 길이가 동일하며 중량이 1,015kg으로 증가했고 내부작약도 82.1kg로 늘어난 신형 고폭탄을 개발한다. 신형 고폭탄은 USS 아이오와 (BB-61)과 Dahlgren 시험장에서 발사 시험을 한 결과 861m/s의 새로운 기록의 포구초속으로 46,600m 이상까지 포탄을 도달시켜서 새로운 사거리 기록을 달성했다. 이때 전함 아이오와는 22.7kg의 추진용 장약이 들어간 장약 주머니를 기존의 장약에 추가해서 포탄도달거리를 늘렸으며 정식으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해당 포탄의 경우에는 1990년대에 모든 아이오와급 전함이 다시 퇴역할 때까지 정식으로 배치되지 못했다. Improved HC Mark 147이라는 이름도 정식으로 명명된 것이 아니며 보통은 2,240-lb. Extended Range projectile 이라는 가칭으로 불렸다.
HE-ER Mark 148의 경우에는 1980년대에 아이오와급이 재취역하면서 개발되었는데 다시 퇴역해버리면서 1991년 취소되었다. 일종의 분리철갑탄으로, 탄자는 13인치 구경에 500kg으로 상당히 가벼웠다. 하지만 이 포탄의 의의는 바로 사거리에 있는데, 초당 1097m의 속도로 날아가서 64km를 넘기는 거리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2차대전 중의 SHS와 완전히 반대되는 포탄이다. 하지만 이 포탄이 개발된 때는 이미 전함급 장갑을 두른 함선은 남지 않았기 때문에 쓸데없이 관통력을 늘린 포탄은 필요가 없었다. 구경을 11인치로 더 줄이고 로켓 추진 보조를 달아놓은 포탄을 DARPA에서 만들려 한 적도 있다. 사거리는 약 185km로 계획되었다. 숫자가 뭔가 애매한 건 미터법 환산 때문. 해리로는 정확히 100해리로 떨어진다. 더미 탄두가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있다.
이후 2003년 아이오와가 이미 퇴역한 이후 포탄 관련 연구 경험이 있는 한 물리학자가 스크램 제트를 이용한 16인치 740km 사거리 포탄도 제안했다.[13] 포탄을 쏘면 목표지점에 9분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초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포탄이었다. 당연히 해군에선 이미 퇴역한 아이오와급을 살릴 생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오와급은 그 당시 함령이 이미 60년을 바라보고 있었으며[14] 그정도 기술을 들인 포탄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것으로 초장거리 사격을 하기 위해서 아이오와급의 사통장치를 뜯어 고쳐야 하니 총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데다가 이 포탄에 의해 항공모함급 전략자산이 된 아이오와급 전함을 저지하려 새로운 건함 경쟁을 초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니. 현재 5인치포와 155mm 포에 해당 기술을 적용하려 한다고 한다.[15]
위의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추정 가능한, 155mm 및 175mm 기반 극초음속 포탄의 실사격도 진행되었다. 특히 175mm 자주포의 경우는, 해당 탄종의 사격시 반동이 강할 것으로 예상 가능한 만큼 애초부터 M110의 8인치포 반동도 버티는 M107 175mm 중자주포를 가져다가 테스트용 플랫폼으로 삼아 쏴본듯 하다. 그리고 그것은 맞아떨어져서, 웬만한 8인치포 못지 않은 무시무시한 반동에 M109A6 팔라딘의 경우 포탑 후부가 일시적으로 처지고, 2S25 스프루트의 기동간 사격이 생각날 만큼 엄청나게 출렁거린다.
3.4. 핵포탄
M65로 발사한 동급 핵포탄 폭발장면 |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한때 전함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16인치 핵 포탄 Mk.23. 보통 Katie라고 부르며, 1952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1956년에 완성되어 총 5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 - 20kt 정도인데, 아이오와급의 주포가 분당 2발, 그 포신이 9개 있으므로 이론상 분당 18발의 핵포탄을 난사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는데다 핵포탄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2번 주포탑에서만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사진의 폭발장면은 위력이 동일한 야포 포탄형 원자폭탄인 W-9의 발사실험 장면이다. W-9의 위력은 15kt. 아이오와급 전함은 16인치 포탄인 MK-23(W-23)이 사용된다. [16] 해당 포탄은 W23 핵탄두를 HC Mark 13 고폭탄 탄체 내부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사거리는 23마일 이상이다.
핵포탄의 발사를 위해 개발 당시 퇴역상태인 미주리를 제외한 나머지 3척이 개장되었고, 핵포탄의 발사는 2번 포탑에서 하게 만들었으며 핵포탄 전용의 탄약고를 설치하고 약 10여발 전후를 각 함마다 저장했다. 이후 전략공군의 발전과 ICBM의 개발 등으로 MK.23은 1962년에 최종적으로 철거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후에도 한동안 전략예비탄으로 보관했다고 한다.
실전과 훈련을 통틀어 실탄인 Mk.23은 발사된 기록이 없고, 전용 훈련탄인 Mk.24는 1957년 2월에 푸에르토리코 근해에서 전함 위스콘신이 육상표적으로 시범사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핵포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 당시 미국 해군 전함의 임무는 육상에 대한 화력지원이므로 1차 목적은 육상목표에 대한 포격용이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이 포탄은 웬만해선 사용할 일이 없다는 점과 특수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365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고, 가끔 적재하고 다닌 것으로 보이는데 전 승조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승조원들에게까지 핵포탄 적재 여부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았지만[17] 핵포탄을 적재할 시 함에 평소보다 많은 관리 인원이 배정되는 등의 차이점 때문에 대충 적재 여부를 눈치 챌 수는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함대간 전투에서도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예측한다. 15kt 정도의 위력이라면 폭발지점을 기준으로 광구 반경은 약 500m, 열복사 반경은 약 3.5km이며, 오퍼레이션 크로스로드의 실험에서는 폭발 지점에서 약 900m 이내의 배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전함의 교전거리상 자함이 핵폭발에 피해를 입을 걱정은 그다지 없다. 또한 전함의 교전은 포탄의 살포계 안에 적함을 협차시키고 포격을 반복하여 확률적으로 명중탄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핵포탄을 실전에서 사용한다면 포탄이 적중할 때 까지 쏠 필요도 없이 900m 안에만 떨어지면 큰 피해를 기대할 수 있으며 광구 반경인 500m 안에서 기폭할 시 한번에 완파시킬 수 있어 초탄에 적 전함, 또는 적 전열의 전함 다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므로 전술적인 가치도 크다. 다만 1956년 이후 미 해군에게 전함을 동원하여 전함 결전을 벌일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 또한 타국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아예 서로를 멸망시켜버리겠다는 각오로 전면전이 아닌 이상 이걸 실제로 사용했다간 바로 핵전쟁으로 번지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사거리도 상대적으로 짧고 전함이라는 초대형 무기체계가 필요한 핵포탄 대신 간단하게 잠수함, 함선 및 항공기 탑재 미사일로도 훨씬 긴 사거리의 핵 전력 투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부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냉전 도중에는 중도 퇴역한 M65의 핵포탄 잔여탄에 송탄통을 끼워서 사정거리를 더 늘린 분리핵포탄이라는 끔찍한 혼종까지 추가되었다. 사진
2차대전 직후 냉전기를 무대로 한 일부 대체역사물에서 종종 등장한다. 핵과 항공모함의 시대에 전함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가상적국의 방어전력 배분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시된다. 그냥 전함도 아니라 핵포탄을 탑재하여 주요 항구를 단 한 발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전함이 접근해오면 방어측에서는 해공군을 총동원하여 저지할 수밖에 없고, 그동안 다른 전력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발상. 게다가 핵폭탄으로 저지한다고 해도 전함에게 항공기로 핵폭탄을 투하하려면 철저한 방공망과 최악의 경우 대공 핵포격(...)까지 각오해야 하니 쉽지 않고 초기형 대함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봐도 사정거리와 발사체의 취약성[18]을 감안하면 큰 차이는 없다. 또한 전함은 고속으로 이동하므로 더 강력한 핵탄두를 실은 탄도탄도 유효범위 안에 맞추기 어렵다. 핵전략상으로도 다수의 값비싼 핵탄두를 핵포탄 전함 하나에 배정해야 해서 전쟁 경제에 부담을 준다. 결국 핵포탄 전함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4. 명중
아이오와급 전함은 타국 전함에 비해 레이더와 전자장비, 사격통제장치가 충실한 편이었으므로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의 명중률도 크게 올라갔다.SG레이더의 모습 | |
SG레이더의 PPI 화면 | SG레이더의 화면부 및 조절부위 |
PPI와 A 스코프 화면 그림 | PPI와 A 스코프 화면 표시 예제 그림 |
마크13 FC레이더 | FC레이더 B스코프 화면 그림 |
대수상용으로는 SG레이더를, 대공용으로는 SK레이더를 장착했다. 대수상용 SG레이더가 탐지한 것을 PPI와 A스코프에 대략적인 광점의 크기와 움직임을 연속으로 표시하여 이걸 바탕으로 해석하여 각도, 방위, 거리 확인과 대형 함선인지 소형인지 알 수 있고, 주포탑의 Mark 38 사격제원시스템에 장착된 구형의 MK 3 Fire Control Radar보다 개량된 신형 MK 8 Fire Control Radar 및 이후의 MK 13 Fire Control Radar로 날씨와 주야간에 관계없이 레이더 화면으로 일제 사격의 결과와 협차사격여부를 확인이 가능했다.MK 8 Fire Control Radar
그래서 걸음마 단계이기는 했지만 레이더를 이용한 사격 관제기술을 전쟁 중에 계속 발전시켜나가며 실전에서 사용했다. 링크 1 링크 2 링크 3 링크 4 링크 5
혹자 중에는 광학장비보다 레이더 조준이 주간전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링크문서에 따르면 MK 8 사격통제레이더의 Precision Sweep의 정확도는 0.1% + 15야드라고 한다. 그러니까, 22000야드에서는 오차 37야드, 33000야드에서 48야드 정도이다. 광학장비의 성능이 가장 좋은 야마토의 15.5미터 광학측거의의 30km에서의 오차가 대략 300미터(약 330야드)임을 생각하면 압도적으로 정확하다. 방위각 오차도 2밀에 불과하다. 또한 연막 혹은 흐린 날씨나 야간처럼 광학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추가적인 오차가 있을지언정 레이더 조준은 악천후에도 정상적으로 가동한다. 그렇기에 미합중국 해군은 레이더조준을 주 시스템으로, 광학조준을 보조시스템으로 사용한 것이다.OPERATIONAL EXPERIENCE OF FAST BATTLESHIPS; WORLD WAR II, KOREA, VIETNAM
IOWA fired 40 rounds and NEW JERSEY 18 rounds at ranges of between 33,500 (30.6 km) and 39,000 yards (35.6 km). IOWA opened at 35,000yds (32 km) and ceased at 39,000yds (35.6 km). She fired 40 rounds HC in 8-gun salvos, straddling on the first salvo. NOWAKI altered course after the first salvo and the next two salvos were fired during this turn. After the third salvo landed, NOWAKI disappeared from radar and optics and the last two salvos went out in generated mode from the rangekeeper. Even so, both ships reported being able to see the splashes (but not NOWAKI) out to nearly 39,000 yards (35.6 km) on radar and visually (using optics, of course). |
위의 언급에서는 Operation Hailstone을 시작해 트럭섬 공습 당시 전함 아이오와(IOWA)와 전함 뉴저지(NEW JERSEY)가 일본의 구축함 노와키를 레이더로 발견하고 레이더 조준사격을 실시한 적이 있다. 이때의 사거리는 35.6km라는 거리에서[19] 협차로 충분히 판단할 탄착점을 형성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협차와 같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노와키측 기록에 뉴저지가 쏜 것으로 보이는 포탄 3발이 노와키 오른쪽 300미터 거리에서 착탄하여 생긴 100미터 짜리 물기둥 말고는 협차라고 판명될 기록이 없다. 그러나 레이더 하나 없는 그 구축함이 모든 포탄을 발견해서 보고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근거리에 포탄이 떨어졌다면 굉음이 들리겠지만 회피기동 중인 구축함이 모든 포탄을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아이오와와 뉴저지의 기록이 노와키의 기록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아이오와 및 뉴저지가 포함된 함대가 연습순양함 카토리를 격침했던 당시 전함 아이오와는 16인치 고폭탄 46발, 5인치 고폭탄 124발을 발사했고 4번째 일제 사격이 끝난 뒤 카토리가 기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11분간 아이오와 및 순양함의 사격에 노출된 카토리는 침몰했는데 이때 아이오와 및 순양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포 및 부포를 쏴서 얼마나 명중탄을 내었는지 불확실하며 16인치 탄에 의한 명중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카토리는 공습에 손상을 입었으며, 아이오와 및 순양함과 구축함들은 13 - 17km까지 접근한 상황이었고, 카토리가 침몰 직전에 발사한 어뢰가 아이오와의 함미를 지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외부링크(영문)
아이오와의 전투보고서(action and Operational Reports)에는 4번째 사격을 끝낸 이후 카토리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있다. 함께 포격에 참여한 다른 순양함들의 보고서에도 맑은 날씨에 매우 가까운 거리라 육안과 레이더 양쪽 모두로 아군의 탄착관측이 매우 용이하다는 언급이 있으나, 아이오와의 명중탄에 대한 언급은 없다(보고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제7전함전대의 사령관 윌리스 A. 리 제독[20]은 당시 아이오와의 사격에 대해 '포격 자체는 완벽했다(8번의 사격이 모두 협차를 기록했다.)'라고 코멘트 했다. 주포명중탄이 몇 발인지는 불확실하나 일단 포격전에 참여해 격침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카토리는 전쟁 중 아이오와의 유일한 대함 격침 전과로 기록돼있다.[21] 아이오와와 같이 전투에 참여한 뉴저지의 경우 구축함 한 척과 무장 트롤선 한 척을 격침한 전과를 가지고 있으며 아이오와처럼 다른 함선과 함께 포격에 참여하였고 이때는 주포 사용 없이 부포를 사용했고 전쟁 중 뉴저지의 유일한 대함 격침 전과였다.[22]
아이오와#1와 뉴저지#2는 1944년 1월 2일에서야 태평양 방면으로 전속되었으며, 1944년 1월 29일에 마셜 제도 공략 시 대공방어지원으로 취역 후 처음으로 훈련, 전선 배치만이 아닌 실제 작전에 참여했고 카토리와 전투할 시점에서는 작전 참여 후 20여 일이 지난 첫 대수상함 전투였는데, 적 수상함에 대한 첫 실전 포격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으나 소형함에 대한 주포탄 포격이라 명중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건 아쉬운 점이다 하겠다. 이후 여러 전역과 해전에 참전했지만, 적 수상함대와의 직접적인 전투보단 지상 포격이나 대공 방어에 주로 동원되었고, 전후 개량된 상태에서는 지상 포격만 이루어져 실전에서 실질적인 대수상함전의 명중률을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뭐 대전 당시에는 적국 일본 측이 함대결전사상 때문에 전함을 구석에 처박아두느라, 그리고 전후에는 사실상 가성비가 똥망이 되어버려서 그런 거라 아이오와 탓만 하기도 그렇다.
그리고 아이오와급 전함의 실전사례를 바탕으로 해서 몬태나급 전함에서는 좀 더 개선된 시스템을 좀 더 안정적인 함체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능력을 더 향상시키려고 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아이오와급 전함은 1952년부터 레이더의 교체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서 최종적으로는 AN/SPS-49 대공 및 수색레이더, AN/SPS-67 추적레이더를 장착했다. 1980년대의 개수에서는 SWG-1 화력통제시스템을 장착하고, SWG-2, SWG-3 화력통제시스템도 추가함으로서 토마호크와 하푼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전자전 및 어뢰 대응책으로 AN/SLQ-32(V), AN/SLQ-25 닉시, Mark 36 SRBOC을 장착하고 통신실도 개량했다.
그래서 Mk.7은 제작된 당시에도 이미 최고급 명중률과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나 1990년의 걸프 전쟁에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와 위스콘신이 참전하게 되면서 각 포탑마다 DR-810 레이더를 장비하게 되었다. 이 레이더는 포구초속을 측정하여 차탄의 포구초속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지를 예측하기 쉽게 해주었다. 여기에 Mk.160 사통장치와 개선된 장약이 더해지면서 더욱 뛰어난 명중률을 자랑하게 되었다. 1987년 사격시험에서는 31,900m 거리에서 총 15발을 발사하였는데 탄착군은 200m에 걸쳐서 형성되었으며 15발 중 14발이 230m 이내에 착탄했고, 그 중에서도 8발은 150야드(약 140미터) 이내에 착탄했다.
5. 구조
원래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는 16인치 50구경장 Mark 2 함포를 장착할 예정이었다. 해당 주포는 군축조약으로 취소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1920)의 주포로도 채용할 예정이었고 해안포로도 사용중이라서 도입에는 문제가 없으나 해당 함포를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로 채용할 경우에는 아직 적용중인 군축조약인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에스컬레이터 규정인 기준배수량 4만5천통톤을 넘어가기 때문에 M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를 개발할 때 경량화에도 힘을 써서 포의 무게는 46cm(18.1인치) 주포의 75%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포신 수명은 2차대전 당시에는 290발로, 395발의 수명을 가졌던 Mark 6에 비해 많이 감소했는데, 이는 구경장(포신 길이)이 45구경장에서 50구경장으로 증가함에 따라 초중량탄을 더 고속으로 발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이니까 그 중량으로 이정도의 포신수명을 가질 수 있었다.
16인치 Mk.7 주포의 포신의 경우에는 아이오와급 전함만 쓰는 고유품종이고 전함의 시대가 끝남에 따라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서 대구경 함포 포신을 만드는 시설이 사라지고 기술이 잊혀져서 포신의 추가 제조가 불가능한데다가[23] 예비 포신의 숫자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포신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하였다.
원래 주포의 수명은 철갑탄을 최강의 위력으로 쏠 때 기준으로 몇 발 쏘는 지에 관한 것이므로 고폭탄을 약하게 쏘면 포신 수명을 상대적으로 덜 갉아먹는다. 그리고 아이오와급 전함은 수상함 상대한 기록이 매우 적어서 철갑탄을 최강의 위력으로 쏠 필요도 적었고, 기존 전함보다 상대적으로 지상포격도 덜 했기 때문에 고폭탄도 덜 쏴서 포신의 손상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포신 수명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은 6.25 전쟁 때는 전후의 기술발전으로 기존의 포신 수명이 290발에서 350발로 늘어났다. 베트남 전쟁때인 1967년부터 이산화 티타늄과 왁스가 주 성분인 스웨덴 첨가제라는 것을 발사용 장약 사이에 끼어넣어서 포신 내부의 동일한 손상 기준으로 철갑탄은 1발 쏠 손상정도로 4발을, 고폭탄은 1발 쏠 손상기준으로 10발을 사격가능해서 포신 수명이 더 늘었다. 1980년대에는 스웨덴 첨가제 외에도 발사용 장약 위에 폴리우레탄 재킷을 추가했는데, 이건 발화시 포신 내부에 임시적인 보호막을 만들어주므로 포신이 발사장약에서 나오는 가스로 손상되는 것을 막게 된다.
이렇게 한 결과 기존의 포신 내부 수명 감소율이 엄청나게 떨어져서 의미가 상실된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는 금속 피로도를 기준으로 포신수명을 측정하는데 그 기준에 따를 경우 16인치 Mk.7 주포의 포신 수명은 1,500발까지 늘어나게 된다.
3연장 함포탑의 경우에는 가격이 1기당 $1,400,000 였으며 해당 가격은 함포탑만의 가격으로 함포 자체의 가격같은 것은 빠진 가격이다. 가격이 높은 이유는 원래는 아이오와급 전함 6척과 몬태나급 전함 5척을 합쳐서 최소 38기를 양산하려다가 아이오와급 전함 4척만 완성되면서 12기로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탑 장갑은 전면장갑은 Class B 장갑 432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64mm를 추가했고, 측면장갑은 Class A 장갑 241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19mm를 추가했고, 후면장갑은 Class A 장갑 305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19mm를 추가했고, 천정장갑은 Class A 장갑 184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19mm를 추가했다.
몬태나급 전함의 주포탑 장갑은 조금 더 강화해서 전면장갑은 Class B 장갑 457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114mm를 추가했고, 측면장갑은 Class A 장갑 254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19mm를 추가했고, 후면장갑은 Class A 장갑 305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19mm를 추가했고, 천정장갑은 Class A 장갑 232mm 위에 파편방호용 STS 19mm를 추가했다.
주포탑과 관련시설은 아이오와급 전함이 예상외로 장기간 활동하면서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문제 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전함의 시대는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끝나버린지라 전함과 관련된 산업들이 사라져버리거나 업종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아이오와급 전함 4척에 장착된 수량밖에 없는지라 수요가 저조해서 없어진 산업을 다시 부흥시킨다던지 다시 생산라인을 깐다던지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전함 아이오와 (BB-61)이 1980년대에 재취역을 할 때 주포 2문의 포신부앙장치에 문제가 생겨서 원하는 각도로 조정이 불가능하고 흔들거림이 발생하였고 포미 폐쇄 제어밸브도 압력유지를 못해서 교체해야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모스볼 당시에 제대로 처리를 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래서 포신부앙장치는 모스볼시 방청제로 사용된 약품을 완전히 제거하고 펌프를 교체하고 미세조정을 해야 했으며 제어밸브는 교체품이 없으므로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방청제의 유입을 막기 위해 윤활유 필터도 도입하는 등의 개조가 진행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미 있는 재고 부품을 쓰거나 기념함으로 남은 다른 군함들에게서 뜯어오거나 부품을 재생해서 쓴다던지 하는 식으로 땜빵처리를 해서 돌리고는 있었고 모두 불가능하다면 대체품을 도입하거나 수명이라도 늘리는 조치를 취했으나 본질적으로는 전함용 산업들을 다시 부흥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수요의 저조와 비용의 폭증과 기술력 상실등으로 불가능했으므로 기술지원이 끊어진 낡은 함선을 굴리는게 얼마나 어려운 가에 대한 예시를 제공하면서 결국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퇴역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를 만들었다.
그나마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는 예상치 못하게 오랜기간 사용하면서도 높은 신뢰성을 보여주었으며 아이오와급 전함 4척이 모두 기념함이 되면서 더 이상 대규모의 정비를 못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4년의 시점에서도 주포탑 회전 실험이 가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6. 여담
전함 아이오와 2번 주포탑 폭발사고가 있으나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의 문제점이 아니라 허가도 받지 않고 관계자들에게 허가받았다고 속인 비공식 실험의 사고다. 그리고 해당 실험도 실험 주도자가 안전까지 무시하고 제멋대로 낡은 전함의 주포에 초중량탄 발사용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표기까지 된 낡고 변질된 장약을 사정거리 기록 향상을 위해 과잉하게 넣고 발사한 결과로 일어난 비극이다. 해당 사고는 비극적인 사고 후에 사건을 덮으려는 실험 주도자 및 미 해군의 행동이 더 큰 문제로 나타나기도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아이오와급 전함 2번함 USS 뉴저지 함이 발사한 16인치 대구경 통상고폭탄(HC)[24]의 불발탄이 베트남 꽝찌성(Quang Tri province)에서 발견되었다. 탄두 강선벨트가 빠져있고 신관이 안보이는 것으로 보아 베트남 인민군이 해체하는 과정에서 신관을 뺀 것으로 보인다.
7. 매체
- 언더 시즈 : BGM-109 토마호크 미사일을 탈취한 테러범들이 동원한 북한제 잠수함
과 포탑 옆에서 얼쩡거리던 토미 리 존스옹을 공격하는 데 사용한다. 2발 사격에 1발 명중.
- 배틀쉽 : 구축함 존 폴 존스, 묘코 격침후 생존한 승조원들이 박물관이 된 미주리함을 빌려 외계전함을 공격하는데 동원한다. 태평양 전쟁에 참여했던 노병들이 마지막 전투에 동참해서 소수의 승조원으로 함포를 운용해 외계인을 박살내 버린다. 이때 무시무시한 초중량 철갑유탄과 고폭탄으로 외계인 모선을 무지막지한 화력세례를 퍼부어 걸레짝으로 만들어 파괴해버린다.
8.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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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B-61 아이오와, BB-62 뉴저지, BB-63 미주리, BB-64 위스콘신[2] 건조계획 취소됨.[3] 위 함포 길이에서 브리치(포미개폐기. 격발기구가 들어있음)의 길이를 뺀 나머지 길이. 브리치가 차지하는 길이는 보통 함포의 구경만큼, 즉 1구경장을 차지한다.[4] 정확한 50 구경장 길이보다 2cm(0.020m) 더 긴 20.320m (정확히 800인치)이다.[5] 1구경장=포신의 직경만큼의 길이이며, 2구경장은 포신 직경의 두배이다. 고로 25구경장은 포신 직경의 25배 길이라는 뜻이다. 총기의 경우 약실을 제외한 길이, 함포는 튜브 길이(약실을 포함한다.)가 바로 구경장이다.[6] RH는 Right Hand direction. 즉 우측으로 회전한다는 뜻이며 1 in 25는 한번 도는데 25구경장을 나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자료출처는 Navweaps, 구경장 설명출처는 동 사이트의 함포 관련 설명 문서 "Definitions and Information about Naval Guns Part 1 - Weapons and Mountings"의 "Gun Definitions" 항목 아래에서 6번째 "Twist" 부분 9번째 줄부터 11번째 줄까지.[7] 포신 개별 단독구동이 가능하면 Three Gun, 일체형으로 구동하는것만 가능한 경우(키로프급 순양함이 대표적) Triple Gun이다.[8] 장약 주머니 방식을 의미한다.[9] 기존의 일반 고폭탄도 시한 신관을 맞추면 당연히 대공사격을 할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할 수는 있다 수준이지 적기의 격추를 기대하면 안된다.[10] 76.67km[11] 208kg이라는 자료도 존재한다.[12] https://www.defenseindustrydaily.com/files/2007-05_JFSC_Thesis_NFS_and_DDG-1000.pdf 53p[13] 현재 미 해군에서 개발중인 레일건보다도 더 멀리 날아간다. 만일 이 포탄이 실전 배치되었을 경우 관측 자산만 있다면 전함이 항공모함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14] 주력 이지스함인 타이콘데로가급도 30년 정도만 굴리고 퇴역한다.[15] https://www.defenseindustrydaily.com/files/2007-05_JFSC_Thesis_NFS_and_DDG-1000.pdf 55p[16] Battleships - United States battleships,1935-1992" by William H Garxke,Jr. & Robert O Dulin,Jr., Naval Institute Press, 1995[17] 아무래도 전략무기인 만큼 탑재 여부 자체가 기밀이라 유출을 방지하기 위함인 듯 하다.[18] 핵탑재 대함미사일을 장비한 폭격기나 구축함, 순양함 등이 적 전함의 호위전력을 뚫기 어렵다.[19] 만약 명중탄이 나왔다면 해상 포격전의 역사상 최장거리 명중탄 기록이 될 뻔 했다.[20] 위에도 잠깐 언급되지만, 당시 미 해군의 포격전, 그중에서도 특히 레이더 조준 사격의 제1인자였다. 1942년 11월의 과달카날 해전 당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을 주력으로 한 TF64를 지휘, 일본 해군의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야간 포격전 끝에 용궁으로 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21] First firing of weapons in combat in attack on Japanese naval base at Truk in Caroline Islands. In action off Truk, the USS IOWA sank light cruiser Katori.[22] the task force accounted for two Japanese light cruisers, four destroyers, three auxiliary cruisers, two submarine tenders, two submarine chasers, an armed trawler, a plane ferry, and 23 other auxiliaries, not including small craft. New Jersey destroyed a trawler and, with other ships, sank destroyer Maikaze, as well as firing on an enemy plane which attacked her formation.[23] 현재도 강선을 파주는 절삭기 헤드가 남아있으나 그마저도 전시중이다. 또 강관을 넣어 가열하는 공법 등 주포 만들때 쓰던 금속 가공공법은 아직 쓰이고 있다.[24] 미 해군에서는 3인치 포함 그 이상의 구경을 갖춘 고폭탄은 High Capacity, HC라고 별도로 분리하여 분류한다. 47mm와 57mm는 Common으로 따로 분류하며, 40mm까지는 HE로 분류한다. 이건 고폭탄 문서에 기재된 47mm, 57mm, 3인치 함포 3개 링크 전부 들어가서 Ammunition 문단 표를 읽어보면 알수있다.[25] 실제 역사에서는 건조가 중단된 일리노이와 켄터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