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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23:52:02

Anal Cunt


1. 개요2. 역사
2.1. 밴드의 결성2.2. 첫번째 재결성2.3. 두번째 재결성2.4. 세번째 재결성과 밴드의 해체

1. 개요

파일:attachment/애널 컨트/AxCx.jpg
사진은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 Seth Putnam(1968. 5. 15. ~ 2011. 6. 11.).

미국 매사추세츠 출신의 그라인드코어 밴드.

희대의 개막장 밴드라는 설명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밴드다.

일단 밴드명부터 후장 보지로, 순화를 위해 AxCx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리더이자 보컬인 Seth Putnam이 "가장 역겹고 바보같은 밴드명이 뭘까?" 고민하다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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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로고 사진. 딱 봐도 이 밴드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유추하기 좋게 생겼다.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다 2011년을 끝으로 완전히 활동을 멈췄다. 왜냐하면 상단 사진의 보컬 Seth가 심장마비로 사망해 버려서(...)

청각과 음감을 마비시키는 막장 노이즈와 개판인 라이브 공연으로 유명한 밴드이다.


밴드 데뷔 직후인 1988년 7월 9일 지하실에서의 공연 영상. 처음에는 정상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가 보컬인 Seth가 무대에 등장해서 날뛰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밴드원들도 흥분해서는 채 한곡이 끝나기 전에 드럼 세트를 부수면서 깽판을 친다. 이후 흥분한 드러머 Tim이 Seth의 마이크를 뺐은 후 관중석으로 가서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고 흥분한 관객들도 덩달아 무대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시도하는 완전히 개판 오분 전 사태가 발생.


1993년 6월 19의 공연도 막장이다. 겨우 십수명의 관중이 보는 앞에서 공연을 하는데 이 사람들도 그냥 해괴한 소음 때문에 '저 인간들 뭔 짓을 하는거지' 하고 둘러보는 것에 가깝다. 공연 초반, Seth는 무대 아래로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가려고 하는데 몸뚱이가 무거워서(...) 한 번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버둥댄다... 영상 1분경 심각하도록 불쾌한 엉덩골이 시선을 끈다 곡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당장 공연을 중지하라는 방송이 나오질 않나, 관객 몇명은 조롱까지 하는데, 드러머 Tim이 관중을 향해 스틱을 집어던지고 당장 맞짱뜨자는 식으로 고함을 치는 장면도 나온다. 그야말로 막장.


2000년 10월 31일 공연 영상. 보컬인 Seth가 짧은 머리에 뚱보가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초기 라이브보다 그나마 음악 같아졌다.

활동 후기에는 막장의 끝을 달리는 내용의 가사로도 악명을 떨쳤다. 전반적으로 인종차별,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 고인드립, 유명인사 명예훼손(...) 등등 온갖 막장스러운 주제로 가사를 썼다.

다만, 밴드의 작사가이자 보컬인 Seth Putnam 지인들의 회고에 의하면 생전의 Seth는 결코 네오나치호모포비아가 아니었으며 자신을 일종의 코미디언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즉, 이들의 가사는 진지하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한 가사라는 것이다.

2. 역사

2.1. 밴드의 결성

1988년 밴드의 리더 Seth Putnam이 기타리스트인 Mike Mahan, 드러머 Tim Morse와 함께 멜로디, 리프, 드럼 비트, 가사가 존재하지 않는 '안티 뮤직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처음 결성했으며 Seth의 부모님 집 지하실에서 공연을 한 것이 밴드의 첫 라이브였다. 이후 어머니 친구들의 집 지하실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다가 어머니의 친구들 중 한명의 소개로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라디오 방송에서의 공연이 잡혔고 밴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으로 라이브를 하였다. 이후 밴드는 그대로 해산하려 했으나 라디오에서 같이 데뷔 무대를 가진 밴드 Shit Scum의 리더 Fred Ordonez의 제안으로 Anal Cunt는 Fred가 빌린 창고에서 Shit Scum과 함께 리허설과 공연을 하게 됐고 Seth와 Fred 두 사람은 서로의 지인들에게 나눠줄 목적으로 같이 데모 앨범을 만들게 된다.

이를 계기로 밴드는 1989년, 88 Song E.P.를 녹음했으며 이후 첫 투어를 계획했으나 밴드의 이름과 그들의 음악을 들어본 공연 기획자들이 밴드의 라이브를 보이콧하여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없었고 Seth는 더 이상의 밴드 활동이 무의미하다 여겨 1990년 Another E.P.!를 발표한 후 밴드를 해체했다.

2.2. 첫번째 재결성

이후 Seth는 여러 밴드들을 돌아다니며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기타리스트 Fred Ordonez, 드러머 Tim Morse와 함께 1991년 3월 1일 Anal Cunt를 재결성하였다. 밴드를 재결성 한 Seth는 Anal Cunt를 안티 뮤직 퍼포먼스 프로젝트가 아닌 '진짜 밴드'로 키우기로 결심했고 1992년, 밴드는 세계 최초의 어쿠스틱 노이즈 코어 엘범으로 꼽히는 The Unplugged EP를 500장 한정으로 발매했다.

이후 밴드는 유럽 투어를 하게되는데 투어 도중 드러머 Tim Morse가 밴드에서 갑작스럽게 탈퇴하여 Seth와 Fred는 새 드러머를 영입해야만 했다. 그 결과 딱 두 사람들만이 밴드의 드러머로 지원했는데 이에 Seth와 Fred는 두 드러머를 모두 고용, 다시 유럽 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두 드러머들은 밴드의 음악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모르는 채 무작정 투어에 참가했고 그 결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드럼을 두들겨 대야만 했다. 그 동안 Seth와 Fred는 관객들한테 뛰어들거나 서로 주먹 다짐을 하거나 무대를 부셔버리는 막장 행동을 하며 라이브를 진행했다.

겨우 유럽 투어를 마무리 하고 고용한 드러머들도 밴드를 탈퇴하자 밴드에는 드러머 Tim Morse가 재가입했다. 한편, 밴드는 Fred와 Tim이 음악을 연주할 동안 보컬인 Seth와 함께 무대에서 깽판을 칠 세컨드 기타리스트를 영입하려 했고 그 결과 John Kozik이 밴드에 들어오게 된다.

1993년, 밴드는 최초로 제대로 된 앨범을 만들기를 원했고 그 결과 전부터 밴드에게 관심을 가져온 Earache Records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데뷔 앨범은 1993년 3월부터 그 해 말엽까지 녹음되었으며 앨범 녹음 도중 Seth Putnam과 사이가 안 좋던 Fred Ordonez가 정형화된 음악을 연주한다는 이유로 Seth에 의해 밴드에서 퇴출당했고[1] 나머지 기타 파트는 John Kozik이 녹음하였다. 앨범 녹음 이후 밴드는 Fred Ordonez를 대체할 새 기타리스트로 Paul Kraynak을 영입하여 미서부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하던 도중 Seth가 여성 관중에게 마이크를 휘둘러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일어나 체포당하는 바람에 밴드는 반강제로 투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당시 공연 영상. John이 보석금을 내어 Seth는 풀려났고 1994년이 되자 밴드는 두번째 앨범 <Top 40 Hits>를 녹음했다. 그러나 녹음이 완료된 직후 Paul Kraynak이 탈퇴했고 멤버들은 다른 기타리스트를 영입하지 않고 세 명의 멤버로만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한다.

1994년 5월 24일 총 58곡이 수록되어 있는 밴드의 데뷔 앨범 <Everyone Should Be Killed>가 발매되었고 밴드는 본격적으로 W.B.I., The Necrophiliacs 등의 밴드들과 함께 수 많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한다. 1995년 3월 7일 밴드의 두번째 앨범 <Top 40 Hits>가 발매되었으며 앨범 발매 전에 "Stayin' Alive (Oi! Version)"이 프로모션 싱글로 발매되었다. 앨범 발매 이후 밴드는 미국 투어를 돌았고 처음으로 일본에서 공연을 하였으나 일본 공연 이후 John Kozik이 밴드를 탈퇴하고 만다.

John의 탈퇴 후 밴드에는 피그 디스트로이어를 비롯한 여러 그라인드 코어 밴드에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Scott Hull이 가입한다. Scott은 밴드에 가입한 멤버들 중 최초로 프로페셔널한 그룹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뮤지션이었다. 해당 라인업으로 밴드는 1995년에 세번째 앨범 <40 More Reasons to Hate Us>을 녹음했다. 이 앨범에서부터 가사가 들리는 곡들이 수록되면서 밴드에 블랙 코미디스러운 면모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필립 안젤모가 피처링한[2] I Just Saw The Gayest Guy On Earth라는 곡이 나름 유명하다. 앨범 녹음 후 밴드는 투어를 돌기로 계획했으나 Scott Hull이 더 이상의 밴드 활동을 거부하며 탈퇴하였다. 결국 Seth의 부탁으로 John Kozik이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재가입하여 2주 동안의 짧은 투어를 돌았다. 투어 이후 John Kozik이 다시 밴드를 탈퇴했고 드러머 Tim Morse마저 Seth와의 의견 충돌로 밴드를 탈퇴함으로서 밴드는 두번째로 해체되고 만다.

2.3. 두번째 재결성

이후 Seth는 Scott Hull과 함께 모리세이의 곡 You're Gonna Need Someone On Your Side을 리매이크하거나 판테라의 The Great Southern Trendkill 앨범에서 보컬 피처링을 하는 등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한편, Seth는 뉴욕 대학교에 재학 중인 기타리스트 Josh Martin과 친해졌고[3] 두 사람은 같이 어쿠스틱 블랙 메탈 밴드 Impaled Northern Moonforest를 결성해서 활동하였다.

참고로 이 시기 Seth는 식스 피트 언더에게 어그로를 끈 적이 있다. 식스 피트 언더가 1집을 발매하고 투어를 돌던 도중 Seth와 Josh가 이들의 공연을 보러 왔는데 Seth가 보컬리스트 크리스 번즈를 향해 큰 소리로 "하하 너 카니발 콥스에서 해고당했다며"라 놀린 것. 이를 듣고 빡친 크리스 번즈는 공연이 끝난 후 Seth에게 달려 들었고 둘이 한바탕 싸우기 직전 식스 피트 언더의 로디들이 두 사람을 때어놓고 크리스 번즈를 투어 버스로 데려가서 사태가 일단락 되었다고 한다. 이후 Seth는 <It Just Gets Worse> 앨범에 "Chris Barnes Is a Pussy"라는 곡을 수록했다.

1996년 1월 Josh가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으로 이사오자 Seth는 Josh를 새 기타리스트로 영입하여 Anal Cunt를 재결성한다. 이후 두 사람은 새로운 드러머를 찾기 위한 오디션을 열었고 드러머로 Nate Linehan을 영입한다. 한편, 1996년 3월 26일 밴드의 세번째 엘범 <40 More Reasons to Hate Us>가 발표되었다.

라인업을 재정비한 Anal Cunt는 1996년 새 앨범 <I Like It When You Die>를 녹음했다. 앨범을 녹음한 후 밴드는 Incantation, Mortician 등의 밴드들과 함께 투어를 돌았으나 투어가 끝난 직후 Nate가 밴드를 탈퇴했다. Nate 탈퇴 후, 1997년 2월 11일에 발매된 <I Like It When You Die> 앨범에는 게이룰 모욕하는 내용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후 두 사람은 블랙 사바스트리뷰트 앨범 in These Black Days Volume 1에 참여했다.

1998년 7월 21일, 밴드는 러브송을 패러디한 앨범 <Picnic of Love>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Josh의 어쿠스틱 기타와 Seth의 가성 창법으로만 이루어진 이색적인 앨범이었다. Picnic of Love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믹싱한 Mike Z Livingston이 유튜브 댓글을 달았는데 앨범은 1997년에 녹음되었으며 밴드와 자신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 앨범을 녹음했다고 한다. 기타리스트 Josh는 자신의 EF341C 어쿠스틱 기타로 앨범 전곡을 녹음했으며 Seth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게이같은 노래를 작곡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고. 여담으로 Seth는 자신에게 이 앨범을 녹음하기 위한 비용으로 1000달러를 주었는데 정작 앨범의 녹음 비용은 100달러밖에 안 들었고 나머지 비용은 자신이 꿀꺽했다고 한다(...) 5번 트랙에는 당시 Seth의 여자친구 Alison Dunn이 오프닝 멘트를 녹음했다. 이 앨범이 발매되고 4달 후에 Seth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Alison과 결혼했다.[4] 앨범 발매 후 두 사람은 Nate에게 밴드 재가입을 요청했고 그가 제안을 승낙함으로서 밴드는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후 미국과 일본에서의 공연을 마친 밴드는 새 앨범이자 Earache Records와의 마지막 앨범 <It Just Gets Worse>를 녹음하였다. 이후 Flächenbrand와 독일 투어를 하던 1999년 9월 Nate가 또다시 밴드를 탈퇴했다.

1999년 11월 9일 앨범 <It Just Gets Worse>이 발매되었고 앨범에 실린 노래들의 가사가 문제가 되어 밴드는 큰 비난을 받았다.

특히, 히틀러가 인구 과잉을 걱정해서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의 Hitler Was A Sensitive Man , 에릭 클랩튼같은 노래가 역겨워서 그 아들이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5]패드립을 담은 노래 Your Kid Committed Suicide Because You Suck 등 2곡이 큰 문제가 되었고 결국 레코드사에서는 2곡을 삭제하고 논란이 될 만한 몇 몇 곡의 제목을 바꾼 후 앨범을 재발매해야만 했다.

2000년이 되자 Earache Records는 밴드와의 계약을 해지했으며[6] 밴드는 새 드러머 John Gillis를 영입하여 투어를 재게한다. 그러나 로드아일랜드에서의 공연 도중 Seth가 같이 투어를 돌던 밴드 Dropdead의 멤버 Bob Otis를 모욕하는 말을 계속 하여 참다 못한 Bob이 무대에 난입, Seth와 주먹다짐을 하는가 하면 Seth가 공연 도중 관중들을 향해 나치 경례를 하여 밴드는 큰 논란에 직면하게 된다. 2001년 밴드는 EP <Defenders of the Hate>를 한정판으로 발매하고 6월에는 캘리포니아에서 9월에는 텍사스에서 투어를 돈 것을 마지막으로 2001년 12월 세번째로 해체를 선언한다. 이 때 Seth는 밴드가 재결성할 일은 없다며 못을 박았다.

2.4. 세번째 재결성과 밴드의 해체

2003년 3월 Seth는 Anal Cunt의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Mike Mahan, 세션 드러머 Florian Mahler와 함께 밴드 탄생 15주년 기념으로 초창기 안티 뮤직 퍼포먼스 시절을 연상시키는 공연을 펼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Seth는 2003년 8월 기타리스트 Josh Martin, 드러머 Nate Linehan의 라인업으로 Anal Cunt의 재결성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밴드가 재결성하고 단 한번의 리허설 후에 Josh Martin이 감옥에 가게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Seth는 전에 Anal Cunt에서 활동한 바 있었던 기타리스트 John Kozik을 영입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1월 밴드는 네이팜 데스, 피그 디스트로이어 등과 짧게 일본 투어를 돌았고 투어 이후 Nate Linehan이 밴드를 탈퇴하여 John Gillis가 다시 밴드에 복귀한다.

2004년 10월 밴드의 리더 Seth는 마약을 과다복용하여 자살 시도를 했고 그 결과 한 달동안 코마 상태에 빠지면서 밴드는 활동을 중단한다. 훗날 Seth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그는 크랙, 헤로인, , 수면제를 한꺼번에 복용했다 하며 의사들은 그가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다 한들 영구적인 뇌 손상으로 인해 건강이 예전같지 않을 것이라 진단했다고 한다. 이미 Seth는 코마 상태에 빠지기 직전 행한 공연에서 의자에 앉은 채로 공연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건강이 망가진 상태였다.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Seth는 인터뷰를 통해 "You're in a Coma"라는 곡이 들어간 새 앨범을 발매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2006년 밴드는 노르웨이에서 열린 락 페스티발에 참여하여 활동을 재개했지만 Seth가 공연 도중 기절하여 쓰러자면서 라이브가 도중에 중단되었다. 이후 Kozik과 Gillis가 밴드를 탈퇴했으며 감옥에서 출소한 Josh Martin과 드러머 Nate Linehan이 밴드에 복귀하며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후 밴드는 Defenders of the Hate에 보너스 트랙들을 추가하여 풀 랭쓰 앨범으로 발매한다. 이후 Seth는 Picnic of Love의 후속작이나 Putnam/Martin/Linehan 라인업 시절 작곡했으나 발표되지 않았던 곡들을 모아 하나의 앨범으로 발매하겠다는 계획을 말하였지만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Josh Martin이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Nate Linehan도 또다시 밴드를 탈퇴함으로서 밴드 활동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2008년 밴드 결성 20주년을 기념하여 Seth는 원년 멤버들인 기타리스트 Mike Mahan, 드러머 Tim Morse와 함께 보스턴, 텍사스 등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20주년 기념작으로 초기 Anal Cunt의 사운드로 이루어진 <110 Song> 앨범을 녹음했다. 20주년 기념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Tim Morse는 밴드에 계속 머무르기로 결정했고 Josh Martin이 다시 출소하여 밴드에 복귀했다. 2009년 밴드는 전미 투어를 돌았고 새 앨범을 녹음했다.

2010년 4월 Seth는 Anal Cunt의 새 앨범이 발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Josh Martin이 세번째로 감옥에 들어가면서 앨범 발표는 연기된다.

2010년 5월 11일 Seth는 앨범을 두 개로 쪼개서 발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Cock rock 스타일의 트랙들은 <Fuckin' A> 라는 앨범으로, 머틀리 크루의 데뷔 앨범 <Too Fast for Love>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트랙들은 <Wearing Out Our Welcome>라는 앨범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2010년 6월 22일 Seth는 밴드의 마이스페이스에다 <Fuckin' A>에 수록될 예정인 "Fuck Yeah"와 "Cranking My Band's Demo on a Box at the Beach"을 선공개했다. 이틀 후인 6월 24일 Seth는 기타리스트 Josh가 밴드에서 나갔다고 밝히면서 신곡을 발표하고 새 기타리스트를 영입하여 투어를 돌 것이라며 팬들에게 밴드 활동을 계속 해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2011년 1월 <Fuckin' A>가 발표되었고 Josh Martin이 다시 밴드에 복귀하여 2번의 공연을 하였다. 곧, 밴드는 마지막 투어를 도는데 밴드의 마지막 공연은 2011년 4월 30일 클리블랜드에서 펼쳐졌다.

2011년 6월 11일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Seth Putnam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밴드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이후 밴드의 마지막 앨범 <Wearing Out Our Welcome>이 발표되었다.

2018년 밴드의 기타리스트 Josh Martin이 사망했다. 사망 이유가 황당한데 에스컬레이터에서 장난치다 추락사했다(...)#

[1] 실제로 1집에서 Fred가 기타를 담당한 곡들은 다른 수록곡들과 다르게 그나마 음악같이 들리는 곡들이다.[2] 세스와 필립은 절친한 친구사이였다.[3] 1994년에서 1995년까지 Anal Cunt는 종종 뉴욕에서 공연하였는데 이때 Josh가 자주 밴드의 공연을 보러 왔고 Seth와 안면을 트게 되었다.[4] 그러나 두 사람은 2001년 6월에 이혼했고 이후 Seth는 독신으로 살다가 2008년 Julie Putnam과 재혼했다.[5] 에릭 클랩튼의 아들이 실수로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비극적인 사건은 후에 에릭 클렙튼의 명곡 Tears In Heaven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되었다.[6] 이후 Earache Records가 다시 밴드와 제계약할 용의를 보였으나 밴드가 제안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