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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카 노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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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BDB8,#ddd><colcolor=#fff,#010101> 히다카 노리코
[ruby(日, ruby=ひ)][ruby(髙, ruby=だか)]のり[ruby(子, ruby=こ)][1] | Noriko Hidaka
파일:IMG_6124-1080x720.jpg
본명 이토 노리코 ([ruby(伊, ruby=い)][ruby(東, ruby=とう)][ruby(範, ruby=のり)][ruby(子, ruby=こ)], Noriko Ito)
출생 1962년 5월 31일 ([age(1962-05-31)]세)
도쿄도 치요다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성우, 라디오 DJ, 배우, 가수
신체 156cm|AB형
가족 부모님, 여동생 2명
배우자, 아들(1996년 2월생)
소속사 81 프로듀스[2](1984~2006)
프리랜서(2006~2009.01.18)
콤비네이션[3](2009.01.19~현재)
활동 시기 배우 | 1970년대 ~ 현재[4]
가수 | 1980년 ~ 현재[5]
성우 | 1984년 ~ 현재[6]
별명 논코(ノン子)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공식 프로필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블로그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성우가 되기까지3. 성우 활동4. 출연 작품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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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성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누렸고 베테랑이 된 현재까지 활발히 일선에서 활동하는 성우.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터치아사쿠라 미나미, 이웃집 토토로의 언니 사츠키, 란마 1/2텐도 아카네 등 많은 국민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다. 소년 역에도 뛰어나서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남주인공 역인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피구왕 통키통키를 맡았다. 그리고 소녀 연기와 소년 연기를 적절히 조화시켜 연기하는 이누야샤키쿄우, 명탐정 코난세라 마스미역시 대표 캐릭터.

원래는 아역 배우, 아이돌 출신으로 피나는 노력으로 소년, 소녀, 성인, 중년 여성까지 소화할 정도로 넓고 뛰어난 연기력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아역/아이돌에서 성우 전향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2. 성우가 되기까지

파일:hidaka_01.jpg
80년대 아이돌 시절
일본무도관에서 가까운 양복 재단사를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세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장래희망은 여배우(将来は女優志望)》라는 작품에서 아역 데뷔를 해서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때 이토 노리코 본명으로 아동용 애니메이션 《ふた子のモンチッチのうた》라는 작품의 주제곡을 부르고 인형과 함께 '캠페인 언니'로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주제곡을 발매한 음반사 관계자가 노래를 듣고 아이돌 데뷔를 권유했지만 처음에는 여배우를 목표로 했었기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듭되는 요청으로 아이돌로 먼저 이름을 알리고 나중에 여배우를 하자는 생각이 들어 1980년 12월 1일 싱글 「첫사랑 선샤인(初恋サンシャイン)」으로 아이돌 데뷔한다.

당시 인기 음악방송 NHK 『렛츠 고 영』이라는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진[7]이 되고,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조금은 이름을 알렸지만 데뷔 동기인 마츠다 세이코, 타하라 토시히코에 비하면 한참은 모자란 무명 아이돌이었다. 아이돌 시절 갖가지 고초[8]를 겪었는데 라디오 생방송 도중 몰카 형식으로 스탭들이 조명을 끄고 전부 사라져서 혼자서 운 장면이 전국으로 퍼진 일이 몇번이나 발생했고, 공수도복을 입고 그라비아 화보를 찍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로케로 온천에 갔는데 스텝들이 몰카로 을 풀어 곰에게 머리카락을 물린 사건[9][10]으로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공언할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1983년 당시 21세로 아이돌로서 전성기 나이가 지났지만 여전히 무명인 암담한 상황에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에게 "목소리에 특색이 있으니까 성우로 전향하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사연이 온다. 이후 성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1984년 《초시공기단 서던크로스》의 무지카 노바 역으로 성우 데뷔를 한다. 데뷔만 세번째

3. 성우 활동

데뷔 초에는 연예인 캐스팅다운(?) 발연기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고 한다. 1985년 데뷔 1년만에 아다치 미츠루의 전설적인 만화/애니메이션 《터치》의 여주인공 아사쿠라 미나미 역으로 캐스팅된다. 오디션에서 연기는 별로였지만 목소리가 워낙 좋았고 당시 스태프들 사이에서 완성된 성우들보다 신인들을 발탁해서 키워보자는 쪽으로 캐스팅 방향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1][12]

신인을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캐스팅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연기력이 나빠서 히다카가 연기를 하면 녹음을 멈추고 스튜디오 구석에서 음향감독과 선배 성우들이 심각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회의했다고 한다.[13] 그걸 보는 히다카는 창피하고 자기가 한심해서 죽을 것 같았다고. 심지어 다른 모두가 돌아간 뒤에도 OK 사인을 받을 때까지 혼자 녹음을 했다고 한다. 2년간 《터치》에 출연하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여 연기력을 쌓아 최종화에서는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처참했던 신인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선배가 돼서 반드시 후배에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국민 히로인 미나미를 연기하면서 성우로서 자리를 잡고 아이돌 활동을 완전히 그만두고 성우 활동에 집중한다.[14] 터치가 종영하고 곧이어서 1988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에 쿠사카베 자매 중 언니 사츠키안노 히데아키의 OVA 《톱을 노려라!》에서 타카야 노리코를 연기하면서 대중들과 매니아들에게 모두 주목받는 당대 톱 성우가 된다. 《톱을 노려라!》는 이전까지 낭랑한 목소리의 소녀역할만 해온 히다카에게 목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는 최초의 배역이었다고 한다.

1989년 1월 세계명작극장 《피터팬의 모험》에서 생애 첫 소년역할 피터팬을 연기했는데 소년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하는지 전혀 감을 못잡아서 같이 출연한 마츠이 나오코시마모토 스미에게 매번 조언을 구하면서 연기했다고 한다.[15] 성우 양성소나 극단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성우가 된것이 아니라서 초창기에는 작품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깨지면서 실력을 키웠다고. 자서전에선 남성 역은 극단에서 연기했던 게 전부라 성우로써의 발성법이 아닌 극단에서 연기하던 시절처럼 한 탓에 매번 힘을 다 쓰면서 녹음했기에 스태프에게 야위었다는 말도 들었는데, 히다카 본인도 '에헤헤, 소년역 다이어트예요~.'라고 자조적으로 대답했다고 . 이후 어느 정도 편하게 소년 발성을 낼 수 있게 된 건 나디아의 장부터 어깨 힘을 빼고 편하게 녹음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녹음했다고 한다.

같은 해 4월 《란마 1/2》의 히로인 텐도 아카네 역을 연기하며 높은 인기를 이어간다. 히다카 노리코는 《란마 1/2》를 의미있는 작품으로 꼽는데 항상 선배들에게 폐를 끼쳤던 자신이 선배가 돼서 후배들을 이끈 첫번째 작품[16]이고, 성우들끼리 사이가 매우 좋아 20년이 넘게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연기한 캐릭터들 중 아카네가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아카네처럼 성격도 매우 활발하고 아버지가 가라데 사범이어서 어린시절 가라데를 배우고 여동생들이랑 싸우면서 놀았다고 한다.

유일하게 야마구치 캇페이를 미츠오라고 부른다. 이유는 같이 활동하던 때에는 아직 캇페이로 활동하기 전 이기 때문에, 스탭롤에도 야마구치 미츠오 라고 실렸다. 단, 리메이크 VOD에서는 캇페이.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캇페이라고도 부르는 중 이다. [17]

이후 1990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과 1991년 《피구왕 통키》의 통키, 1994년 《빨간망토 차차》의 시이네/빙빙 등 소년 역할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92년 5월 라디오에서 만난 2살 연하 라디오 프로듀서와 결혼하였고 이후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활동을 줄인다. 그래도 여러 작품에서 주역이나 고정 레귤러를 맡으면서 활동했지만 1996년 2월 아들을 출산한 이후로는 대부분 조역이나 게스트로 일을 줄였다.

아들이 태어난 후 맡은 레귤러는 《록맨 에그제 시리즈》와 《이누야샤》의 키쿄우와 《데스노트》의 니아 등이 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2011년 이후로는 활동이 늘어나서 《명탐정 코난》의 세라 마스미, 《PSYCHO-PASS》의 시빌라 시스템도미네이터, 《러브 라이브!》 코토리의 어머니 등 으로 출연하여 젊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나이도 있어 어머니 역할이나 성인 여성 역할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씩 맡는 소녀 역할에서 여전히 맑은 목소리를 들려준다.[18]
게임 「リングドリーム」의 PV. 배경음악이 Back drops의 데뷔곡 「Don`t fly」

2015년 12월 여자 프로레슬링(!) 게임 링드림과 관련하여 마츠이 나오코, 야마자키 와카나와 함께 평균 연령 52세(!!) 3인조 아이돌(!!!) Back drops를 결성하였다.[19] 이전에도 DoCo나 바나나 프리터즈 등 성우 유닛활동은 했었지만 '아이돌' 성우 유닛은 최초. 12월 29일 이벤트를 통해 데뷔할 예정이고 CD발매도 계획중이라고 한다. 블로그에서 밝히길 9월 초 마츠이 나오코에게 제안을 받았고 아이돌로 데뷔한 자신에게 마지막 아이돌 활동이 되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승낙했다고 한다.

파일:d8cbd0465734a059a4622f20170862c1-1080x720.jpg최근 2018년, 선배성우들인 후루카와 토시오히라노 후미의 레전드 성우 인터뷰에 초청되었다.[20]

4. 출연 작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다카 노리코/출연작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여담

6. 관련 문서



[1] 히다카의 髙는 높을(고) 高의 속자이다. 현재 잘 쓰이지 않는 한자고 PC 환경에 따라 글자가 깨질 수 있어서 (입력 자체는 IME에서 지원한다) 일본어 웹에서는 높을(고)자를 써서 日高로 표기한다.[2] 아이돌 시절부터 함께 한 매니저가 있는 연예 기획사에 있었으나 이 소속사가 폐업을 하면서 81 프로듀스로 이적한다.[3] 2006년 퇴사 후 잠시 프리로 활동하다가 2009년 1월 미츠야 유지와 함께 콤비네이션을 설립했다.[4] 첫 데뷔작은 《将来は女優志望》.[5] 싱글 「첫사랑 선샤인」.[6] 첫 데뷔작은 《초시공기단 서던크로스》.[7] 히다카는 1981년 4월부터 1982년 9월까지 레귤러였는데, 82년 10월 히다카의 후임으로 들어온 후배 아이돌이 나중에 성우가 되는 사쿠마 레이다!![8] 자서전에 따르면 아이돌로서의 일이 워낙 없는 탓에 주휴 6일이라는 믿기지 않는 스케줄이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성인식 후 어머니에게서 22살 이전에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한다면 연예계를 관두고 4년제 대학에 가라는 말을 듣고 자신감 없는 자기자신에게 강하게 마음을 먹게 만들고 닥치는 대로 일을 받기 시작했다고 언급된다. 아래의 곰에게 물린 사건도 유명하지만 나라에서 사슴 전병을 주다 사슴에게 걷어차인 적도 있다고 한다. 이같은 갖가지 고초는 히다카 본인이 예능계를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셈이다.[9] 데뷔 4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신곡은 제목부터 시작해 '곰한테 물리는 것보단 낫지'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나올 정도. 본인도 지금 와서는 본인에게 일어난 유명한 일화 정도로 여기는 수준이 된 건지 마지막 파트에 '곰한테 물리는 건 그렇게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라고 자조적인 대사가 들어가있다.[10] 이전에는 팔을 물렸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각종 인터뷰나 40주년 기념 자서전에는 당시 포니테일의 끝을 아기곰에게 물렸다고 기술하고 있다.[11] 자서전에 기고된 매니저의 회고록에는 처음엔 제작진 측에서 '신인을 고용할 생각은 없다.'라고 했지만 히다카 본인이 매니저에게 미나미 역을 맡고 싶다고 했고, 음향 감독과도 잘 부탁해 메카독에서의 인연으로 어떻게든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치러진 테이프에 번호만 붙여놓은 비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히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히다카의 번호는 8번이었다.[12] 그런 방침으로 남자주인공 우에스기 타츠야는 음향 스태프였던 미츠야 유지가 캐스팅 되었다.[13] 그 선배 성우이자 음향 스태프였던 미츠야 유지(작중에서는 소꿉친구 사이였던 우에스기 타츠야를 맡았었다)는 정말 눈물 쏙 뺄만큼 엄격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실제로 미츠야 유지는 성우 교육에 있어서는 호랑이 선생님 그 자체로 유명하다고.[14] 훗날 스쿨 아이돌의 엄마와 아이돌 기획사 사장님 캐릭터를 연기할 줄 누구 알았으랴...[15] 이 둘과는 나중에 명탐정 코난에서 함께 만난다. 마츠이 나오코스즈키 소노코, 시마모토 스미쿠도 유키코 역을 맡았다.[16] 당시 히다카 노리코의 나이와 경력은 후배를 이끌 정도는 아니었지만 란마 주역 성우진들 대부분이 신인이라서 히다카가 젊은 성우들을 보살피게 되었다. 80년대 중후반 소학관 계열의 작품들은 신인을 발굴해서 쓰는 정책이었고 여기서 스타가 된 성우들이 히다카 노리코, 하야시바라 메구미, 타카야마 미나미, 야마구치 캇페이, 사쿠마 레이, 이노우에 키쿠코 등이 있다.특히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히다카 노리코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17] 토크에서 말하길 미츠오군도 출연하지 않았었나?라는 질문에, 야마자키 와카나미츠오? 누구야 그 사람? 이라 답했으며, 이에 노리코는 캇페이군 이라고 대답 했다.[18] 2018년 방영한 팝팀에픽 1화 B파트의 피피미 연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19] 이 두 성우와는 명탐정 코난을 같이 하고 있는 멤버이기도 하다! 히다카는 세라 마스미, 마츠이는 스즈키 소노코, 야마자키는 모리 란을 맡고 있다.[20] 시끌별 녀석들의 주인공 커플인 모로보시 아타루라무의 성우들이다. 이 두 사람도 명탐정 코난에 참여하고 있다. 후루카와는 야마무라 미사오, 히라노는 와카사 루미를 연기하고 있다.[21]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시기. 여담으로 나디아와 비슷한 시기에 가이낙스에서 제작했던 불꽃의 전학생 OVA에도 히다카 노리코가 히로인을 맡았는데, 대사 중 "(선생이) 히다카 노리코와 결혼하라면 할 거나!!!"라는 대사가 있다. (원작에서는 마츠모토 이요) 다만 이 작품의 각본은 오카다 토시오가 썼기 때문에 안노의 프로포즈와 관계가 있는지는 불분명.[22] 안노는 방송에서 취재하러 온다고 해도 씻지 않고 취재에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23] 공식 블로그의 2012년 10월 7일자 일기 내용 참조.[24] 본인은 역발의 유라를 맡을 줄 알았다고.[25] 더 리얼한 연기를 위해 주먹으로 살짝 때리는 정도였다고 한다.[26] 공교롭게도 그녀의 초창기 작품과 많이 겹치는 한국 성우 서혜정도 신인 당시 라디오 PD에게 목소리에 힘이 없다고 엄청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PD가 거의 괴롭히다시피(....) 서혜정 성우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 PD를 원망했지만 그 훈련 덕분에 지금은 여성 성우 중에서도 발성이 제일 좋은 성우로 손꼽히게 되었다고 회상한다고.